평생 걱정 없이 사는 법 - 마음이 지치고 심란할 때 읽는 반야심경의 지혜
페이융 지음, 허유영 옮김 / 유노북스 / 201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인생을 한바탕 도박에 비유한다면, 우리가 자신의 패를 결정할 수는 없지만 이 도박이 우리 자신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인생에서 승패를 목적으로 삼는다면 우리가 만들어 내는 현실은 전투가 되고, 우리가 성공하는 방법을 배우는 데만 몰두한다면 끊임없이 실패의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반야심경에서 깨닫는 인생의 지혜

 

책의 저자 페이융은 중국의 대표적인 불경 연구가. 중국 저장 출신인 저자는 15세에 대학에 입학해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지난 대학교 중문과에서 강의하며 제48회 라이프치히 국제 영화제 심사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현대시, 장아이링 연구 등 다양한 분야의 학술서와 산문집 <남쪽으로 걷다> 등을 발표했다.

 

1990년부터 불경을 연구하고 불경의 수심법(修心法)에 관한 책들을 발표했다. 무엇보다 수천 년 이어 온 지혜의 보고인 불교를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데 30여 년의 세월을 보낸 것으로 유명하다. <초조하지 않게 사는 법>, <평생 걱정 없이 사는 법>을 비롯해 금강경, 반야심경 등 불교 경전들을 대중의 눈높이에서 해설한 일련의 저서들이 그런 노력으로 탄생한 저자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 외에도 <인생이 즐겁지 않다면 한산을 만나라>, <우울하지 않게 사는 법> 등이 있으며, 하나같이 불안, 걱정, 두려움으로 평생 초조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현실에 집착하지 않는 초월의 삶을 사는 지혜를 들려준다.

 

총 8장으로구성된 이 책은 단 260자의 반야심경에 담긴 지혜를 우리들에게 전한다. 이는 바로 반야심경이 제시하는, 모든 고통을 벗어나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즉 인간사 모든 번뇌의 원인과 해결 방법을 담아 놓았다. 반야심경은 깨달음을 얻고 최고의 지혜로 오를 수 있는 필수적인 방법이자 속세의 고통을 초월할 수 있는 근본적인 길이다. 우리는 마음이 지쳤을 때 차분히 앉아 이 260자를 읽고 그 뜻을 헤아려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에서 벗어나 평정을 얻을 수 있다.

 

 

 

 

좋은 일은 많이 하라

 

지졔持戒는 나쁜 일은 하나도 하지 않고 좋은 일은 많이 한다는 것이다. 계戒는 몸과 입, 마음을 깨끗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몸과 입, 마음이 깨끗하면 현실도 깨끗해진다. 계를 지키면 잘못된 행동으로 악연을 맺는 일이 없어지고, 좋은 행동으로 선연을 맺게 되기 때문이다. 불교 수행에서 계는 기본 바탕이며, 이것이 없으면 다른 수행은 무의미해진다.

 

"계를 스승으로 삼으라"

- 부처

 

따라서, 지금부터 이간질 하지 않는 계를 수행해 보자. 남을 헐뜯지 않고 남의 험담을 하지 않는 것이다. 한 달, 석 달, 1년, 2년…, 이것이 쌓이면 어떻게 될까? 인간관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는가? 나아가서 자신이 처해 있는 현실이 평화롭고 따뜻하게 변하지 않겠는가? 남을 헐뜯지 않고 험담하지 않는 것부터 하라.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단서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믿을 수 없다. 이때 가장 기본적인 철학 문제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이다. 이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나는 누구인가?"이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서 논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남에게 칭찬을 받고 기쁠 때 우리는 그 기뻐하는 사람이 '나'라고 생각하고 남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을 하려고 애를 쓴다. 이처럼 사람들은 교수, 사장, 시장 등 사회가 부여한 신분이 바로 '나'라고 생각하고 그 신분이 요구하는 대로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는 '나'의 세상에 살며 "나는 …을 할 거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날마다 '나'를 위해 싸우고 타인과 경쟁하고 이 세상과 투쟁한다. 

 

세상의 분쟁은 모두 우리가 이 '나'에 푹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그러므로 '나' 또는 '우리'를 너무 내세워선 안 된다. 그래서 부처는 '아집'을 깨뜨려야 한다고 설파했다. 이 말은 '자아'의 의식에 집착하지 말고, '타인'과 대립되는 자아의식에 집착하지 말며, 사욕을 채우기에만 급급한 자아의식에 집착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진정한 자아를 만나라

 

모든 일이 인연에 의해 이루어지고 모든 일에 업력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인연과 업력이라는 근본적인 차원에서 노력을 할 것이고, 이것이 자신의 운명과 일의 방향을 결정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불학佛學은 그 어떤 종교나 철하고다도 적극적인 학문이다.

 

의지력과 업력의 차원에서 노력하면 바꾸지 못할 것이 없다.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의 말에서도 불학의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헤세는 "누구든 진정으로 해야 하는 일은 오직 하나, 바로 자아를 찾는 것이다. 진정한 자아가 시인인지 미치광이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자기 운명을 찾은 다음(타인의 운명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평생 그것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 그 외의 다른 길은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다. 그 외의 다른 길은 모두 인간의 도피 방식이다"라고 했다.

 

 

'그게 아니면 안 된다는 장벽'을 깨뜨려라

 

세상에 그게 아니면 안 될 것은 없다. 결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도 아니고, 집을 사지 않으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대학을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그게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우리를 비좁은 공간에 가둔다. 그 생각을 따라 가다 보면, 점점 길이 좁아지고 결국에는 막다른 길이 나타난다. 온전한 전체를 두 가지로 분리하고 그 중 하나에만 집착하는 순간 고통이 생겨난다.

 

 

'비교의 장벽'을 깨뜨려라

 

진정으로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것은 행복에 대한 어리석은 망상이자 행복의 비결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이다. 행복이라는 단어는 인생을 성공과 실패로 나누고, 성공만을 받아들이고 실패를 버리라고 우리에게 요구한다.

 

하지만 진정으로 즐거운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지금 겪고 있는 모든 상황을 온전한 인생으로 받아들이고 누려야 한다. 맑은 날에는 햇볕을 누리고, 비 오는 날에는 비바람을 누린다면 불행함도 사라질 것이다. 

 

 

운명에 휘둘릴 때는 자기 자신에 집중하라

 

모든 것은 우리 스스로 만들었다. 운명이나 신령한 힘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과 행동이 뿌린 씨앗이 자라나서 맺은 열매다. 불운이 닥치면 우리 대부분은 자신을 불운으로 빠뜨린 사람이나 일을 증오한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들은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에 집중한다. 우리가 번뇌에 빠지는 대부분의 원인은 남을 원망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쏟아 붓는 데 있다.

 

남을 원망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자신이 그 사람을 원망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바뀌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닥치든 그 결과에 대해선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스스로 짊어지고 천천히 해결하면 된다. 남에게 책임을 미뤄서는 문제를 영영 해결할 수 없다. 그저 계속 원망만 할 뿐이다. 

 

 

즐거움도 괴로움도 내 삶의 일부다

 

이 세상을 초월하는 마음을 가지면 어떤 사람이나 일에 대한 증오도 그저 평범한 느낌으로 변할 것이다. 미워하는 사람을 돌멩이 하나 또는 풀 한 포기라고 생각해 보자. 돌멩이나 풀은 눈에 보여도 그저 무시하고 지나가 버린다. 좋고 싫음이 없다. 사람이든 돌멩이는 풀이든 나를 고통스럽게 할 수는 없다.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언제나 나 자신이다. 

 

 

칭찬도 비난도 호숫가 풍경 바라보듯 보라

 

즐거운 사람은 인생을 경치 감상으로 생각하며 차분하게 생활한다. 반면 우울한 사람은 인생을 장거리 경주로 생각하고 오로지 앞으로 달리는 데만 집착한다. 인생의 모든 것이 풍경이라 여기면 자아를 내세우지 않고 자신이 경험한 모든 것들을 꽃이 피었다가 떨어지고 해가 떴다가 지고 바람이 불고 기러기가 날아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온 마음을 다해 하고 싶은 것을 하라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야 한다. 헛된 생각이란 뭘까? 그것이 생겨나지 않았기를 바라고, 또 그것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병이 찾아오면 이 병은 금방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일정 시간과 과정을 거친 후에야 사라진다. 지금 당장 아프고 괴롭지만 그저 지금 이 순간 뿐이다. 따라서 피하지 말고 이를 받아들인 뒤 서서히 사라지는 과정을 지켜보면 된다.

 

일에 쫓겨 사는 사람들은 늘 당장의 즐거움을 다음으로 미룬다. 그래서 그 순간에만 누릴 수 있는 희열을 지나쳐 버린다. 또 게으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다음에 할게'라고 핑계를 대면서 시간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낸다. 이 순간 내 인생에 찾아온 것들 중 대부분은 죽기 전에 다시 만날 수 없다. 이 순간 눈앞에 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다시는 볼 수 없다. 시시각각 찾아오는 수많은 순간들은 다시 반복되지 않는다. 

 

당장 내일 죽는다는 생각으로 살아 보라. 그러면 자신의 인생이 소중해지고 지금까지 몰랐던 새로운 세상이 보여지기 시작한다. 죽음의 필연성과 숙명성이 자신의 생명에 의의를 부여한다. 인간이 언젠가는 죽으며 자신이 죽음의 위험 속에서 살고 있음을 안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 다시 말해 자기 생명이 갈구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마음이 지치고 심란할 때 반야심경 주문을 외워라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이는 반야심경의 마지막 구절이다. 홀로 앉아서 천천히 물 한 잔을 마시면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물을 마시는 동안은 물을 마시는 행위에만 정신을 집중한다. 이후 자신의 온 몸 구석구석으로 그 물이 스며드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이 마지막 구절을 읊어 보라. 주문에는 신비한 힘이 있다. 주문이란 인간의 원초적인 언어로 인간이 아닌 바깥의 존재와 소통하는 것이다. 이것은 은밀한 정보이자 비밀스러운 연결이다. 반야심경 속 이 주문은 부처가 우리에게 알려 주는 깨달음이자 모든 고통을 없애 주는 진실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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