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코다 이발소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로드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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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 히데오는 일본사회를 날카롭게 바라보고 그 문제점들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는 데 탁월하다. 기존의 일본 작품들이 팝콘같은 가벼움으로 한국 여성독자층을 파고 들었다면, 오쿠다 히데오는 이런 기존의 일본소설들과 달리 일본 사회의 모순들을 끄집어내어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문체로 풀어내고 있다. 독자들은 그의 유머스러운 글솜씨를 좋아하기에 부담없이 그의 조롱에 담겨 있는 잔혹한 현실에 공감한다. 오쿠다 히데오는 이런 독특함으로 현재 한국 소설 시장의 "일류 붐"을 선도하고 있다.

 

그는 1959년 일본 기후현 기후시에서 태어나 기후현립기잔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잡지 편집자, 기획자, 구성작가, 카피라이터 등으로 활동하였으며 1997년 40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우람바나의 숲>(한국어판 서명 : 팝스타 존의 수상한 휴가)으로 등단하였다.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일본 사회의 모순과 그 틈바구니 속에서 각자의 사정에 의해 상처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는 내용들이 그의 소설의 중심을 이룬다. 

쉽고 간결한 문체로 인간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내면서도 부조리한 세상에서 좌충우돌하며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잊고 있던 가치를 묻는 주제의식을 보이고 있는 그는 포스트 하루키 세대를 이끄는 선두주자이다.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 등과 함께 본격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는 일본의 크로스오버crossover 작가로 꼽힌다. 이 소설은 한때 탄광 도시로 번성했지만 산업의 침체와 함께 지금은 쇠락해버린 시골 마을 도마자와의 무코다 이발소를 배경으로, 무코다 이발소의 주인 야스히코 씨 주변에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을 그려냈다.

 

 

 

 

젊었을 적 도시의 광고 회사를 포기하고 이곳에서 가업을 이어받아 25년째 이발소를 운영 중인 53세 무코다 야스히코 씨. 한때 10여 곳에 이르렀던 이발소들은 모두 문을 닫고 이제 남은 곳은 딱 둘뿐. 인구 감소와 고령화 문제, 공동화 현상이 만연한 이곳은 하릴없이 쇠락해갈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스물셋의 맏아들 가즈마사가 갑자기 삿포로의 직장을 때려치우고 귀촌을 해서 이발소를 이어받겠다고 나선다.

쇠락한 탄광 마을 재건을 위한 공무원과 마을 청년단의 분투, 마을 축제 때 쓰러진 할아버지와 이웃들의 품앗이, 수줍은 시골 노총각의 털털한 중국인 신부맞이, 새 술집의 매력적인 마담과 동네 남자들의 신경전, 동네를 들썩이게 만든 영화 촬영과 범죄자 수배 소식까지. 눈으로 뒤덮인 마을은 조용한 가운데에도 사건이 끊이질 않는다.

 

 

무코다 이발소

 

'무코다 이발소'는 홋카이도 중앙부에 있는 도마자와 면에서 전쟁이 끝난 지 오래지 않은 1950년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옛날 이발소다. 주인인 야스히코는 쉰세 살의 평범한 이발사, 스물여덟 살에 아버지로부터 이발소를 물려받은 후로 사반세기에 걸쳐 부부 둘이 이발소를 꾸려오고 있다.

 
무코다 야스히코가 가업을 잇게 된 것은 아버지가 허리 디스크를 앓아 일할 수 없게 된 탓이었다. 삿포로에서 대학생활을 마친 야스히코는 역시 삿포로에서 광고 회사에 취직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집안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귀향을 결심했다. 장남이라 뒷짐만 지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용학원을 다니면서 기술을 기초부터 배워 아버지 뒤를 잇게 되었다. 아버지는 3년 전에 여든 살의 나이로 세상을 하직했다.

 

 

조그만 술집

면사무소 뒤 옛날 영화관 옆 공터에 조그만 술집이 새로 문을 열었다. 인구가 점차 감소하고 있는 도마자와에서 신규로 가게가 생기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다. 개업자는 마흔 두살의 여인 미하시 사나에였다. 전혀 외지인이 아니라 미하시 집안의 딸이었다. 야스히코보다는 열 살쯤 아래이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도시로 나가 삿포로에 취직했다고 알려져 있다.

 

들리는 말로는 그녀는 삿포로에서 결혼했다가 바로 이혼하고 줄곧 혼자 살았다고 한다. 미하시 집안의 가장이 죽고난 후 부인 혼자 살고 있기에 아마도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온 듯했다. 하지만 초자가 술집을 개업하기란 어려운 일, 삿포로에서도 물장사를 했을거로 짐작이 간다. 나중에 확인한 결과, 그녀는 이혼 후 10년 정도 도쿄에 살면서 클럽 호스티스로 일했고, 이후 클럽 선배를 따라 삿포로에서 술집 일을 도왔다고 한다.

 

"사정이 있어 보이던 걸. 안 그러면 왜 돌아오겠어요. 이런 곳에. 여태 외지 생활을 했는데 부모 보살핀다는 이유로 돌아오진 않지"    

 

야스히코는 아내 교코의 지적에 무릎을 쳤다. 듣고 보니 그렇다. 이런 촌 동네에 묻히기에는 아까운 미색이다. 여자 나이 마흔둘, 미묘한 나이지만 50대인 야스히코 눈에는 한창 무르익은 때다.


"당신, 사나에에 대해서 무슨 소리 들은 거 있어?"
"아니, 못 들었는데. 남 일인데 괜히 파고들지 않는 게 좋아요"


좁은 동네이기에 더욱이 신경 쓸 필요가 있다. 야스히코도 동네 사람들의 인간관계에 대해 가슴에 묻고 있는 것이 몇 가지나 있다. 그날 밤, 사나에가 꿈에 나타났다. 아내 얘기를 들어서 그런지, 사나에가 꿈속에서 빚보증을 서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하면서 몸으로 밀고 들어왔다. 기분이 달짝지근해지고, 나쁜 꿈은 아니었는데.

 

사나에의 술집은 연일 북적거렸다. 야스히코의 아들 가즈마사도 청년단 사람들과 어울리며 이 술집에 몰려다녔다. 그런데, 아들의 말로는 늦은 시간에 아버지의 친구 세가와 씨가 혼자 구석에서 술을 마시며 사나에와 반갑게 얘기를 나누고 있는 걸 목격했는데, 절대로 이를 야스히코한테는 비밀로 해달라는 부탁까지 있었다는 얘기였다. 이 작은 동네에 여자 문제로 풍파가 미치지 않을지?  

 

 

붉은 눈

"괜찮겠습니까? 우리 어머니 전혀 연기를 모르는 사람인데요"


걱정스러워 감독에게 물으니, "걱정할 거 없어요. 화면에 크게 어필되는 것도 아니니까" 하고 태평스럽게 대답했다. 혹시나 해서, 다른 장소에서 주저앉는 장면만 연습해봤는데, 어머니는 긴장한 탓인지 엉덩방아를 제대로 찧지 못했다. 좀처럼 촬영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야스히코는 책임감을 느끼고 어머니 옆에 들러붙어 "좀 더 자연스럽게" 하고 몇 번이나 조언을 했다.


"어머니, 연기하지 않아도 됩니다. 기껏해야 5초 정도 되는 장면이에요. 잘 안 되면 컷을 할 거니까, 걱정 마세요. 실례가 될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배역이면 배우를 썼을 겁니다"

 

 

도망자

 

"어이! 여기 좀 와 봐! 히로오카 씨네 아들이잖아!"

 

무코다 야스히코는 저녁 7시 NHK 뉴스에서 그 소식을 접했다. 지난 며칠 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기단의 주범에 대해 전국에 지명수배령이 내렸고, 이름과 함께 얼굴 사진이 공개된 것이다. 저녁을 먹고 있던 야스히코는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큰 소리를 질렀다. 놀란 어머니가 틀니를 식탁에 떨어뜨려, 어푸어푸거렸다.


"여보! 어서 와보라니까! 텔레비전, 텔레비전!" 

 

뉴스 내용에 따르면 슈헤이를 리더로 하는 사기단이 고령자를 대상으로 묘지를 개발한다는 허위 광고를 낸 후 돈만 투자받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자 이에 피해를 본 어떤 노인이 이를 비관하여 자살을 하는 바람에 사기 범죄가 뉴스로 다루어졌고, 이어서 슈헤이의 은신처를 찾아내어 급습한 경찰을 피해 슈헤이는 아파트 2층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그대로 도주했다는 것이다. 전국에 지명수배령이 내려졌다는 거다. 과연 슈헤이는 자수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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