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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 노희경 원작소설, 개정판
노희경.이성숙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5년 5월
평점 :
이 소설은 1996년 MBC 창사 특집 드라마로 방영되었던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 원작으로, 며느리, 아내, 그리고 어머니의 이름으로 가족을 위해 삶을 희생한 한 여자의 일생을 그린 작품이다. 2013년도 7월 12일에 시행된 고3 전국모의고사 언어영역에서 스토리 후반부 일부가 독해 지문으로 출제되어 '고3 학생들 울린 지문'으로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또 2011년에 영화로 제작, 개봉되었다.
"피곤해" 병원 일에만 신경 쓰는 가장 정철(김갑수)
"밥 줘, 밥" 어린애가 되어버린 할머니(김지영)
"알아서 할게요" 언제나 바쁜 큰 딸 연수(박하선)
"됐어요" 여자친구밖에 모르는 삼수생 아들 정수(류덕환)
"돈 좀 줘" 툭 하면 사고치는 백수 외삼촌 부부(유준상&서영희)
그리고.. 꿈 많고 할 일도 많은 엄마 김인희(배종옥)
영원히 반복될 것만 같았던 일상에 찾아온 이별의 순간. 그날 이후… 이들은 진짜 '가족'이 되었다. 그렇다. 우리 모두 늘 곁에 있는 행복은 당연시하고 가볍게 여기는 경향에 많다. 매일 얼굴을 맞대는 가족의 경우엔 특히 더욱 그러하다. 흔히 항상 사용하던 물건이 갑자기 없어졌을 때 그 물건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는 그런 깨달음처럼 가족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있을 때 잘해라"란 말이 떠오른다.
작가 노희경은 "사람이 전부다"라는 인생철학을 20년간 변함없이 드라마에 투영해오며 독보적인 작가 세계를 구축했다. 삶의 진정성, 사람을 향한 뜨거운 애정, 완성도 높은 대본 등으로 일반 대중은 물론 함께 일하는 동료들로부터 언제나 최고로 평가받아온 그녀는 1995년 드라마 공모전에 <세리와 수지>가 당선되면서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이듬해 단편 <엄마의 치자꽃>으로 방송 데뷔를 했고 2개월 뒤 자신의 데뷔작 <세리와 수지>도 전파를 탔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과 <거짓말> 등을 통해 마니아층을 거느린 젊은 작가로 급부상한 뒤 <내가 사는 이유>, <바보 같은 사랑>, <꽃보다 아름다워>, <굿바이 솔로>, <그들이 사는 세상>, <빠담빠담- 그와 그녀의 심장 박동 소리>, <그 겨울, 바람이 분다>, <괜찮아 사랑이야>, <디어 마이 프렌드> 등 거의 매년 굵직굵직한 작품을 발표했다.
에세이집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를 펴냈으며, 대본 <그들이 사는 세상>, <거짓말>, <굿바이 솔로>, <그 겨울, 바람이 분다>, <괜찮아 사랑이야>로 '읽는 드라마'라는 장르를 개척했다. "글을 쓰는 일은 다른 어떤 노동과 다를 바 없다"고 여기기 때문에 20년을 한결같이 매일 8시간 이상 글을 쓰는 성실함과 "글과 삶이 따로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기부와 봉사를 실천해오고 있는 그녀는 책을 펴낼 때마다 인세의 전액 또는 일부를 기부하고 있다.
엄마 인희의 죽음을 예고하다
"분명히 말하지만, 가능성이 있는데 손을 놓는 게 아니야. 엄마의 고통을 줄이는 방법으로 포기하는 길을 택한 거야. 이제 우리가 엄마한테 해줄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어서야"
이는 당혹스러움에 어안이 막힌 연수에게 윤 박사가 한 말이다. 자신에게 남아 있는 게 고작 엄마를 포기하는 일뿐이라니…. 연수는 누군가 심장을 쥐어짜기라도 하는 것처럼 쓰라렸다. 아버지 말대로 집에 와선 손 하나 까딱 않고, 그것도 모자라 늘상 바깥일 힘들다고 짜증이나 내던 딸이, 마지막으로 엄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엄마를 포기하는 일뿐이다.
"...전요, 아줌마, 전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사람은 다, 한 번은 다 죽는데, 우리 엄마가 죽게 될 줄은 정말 몰랐고, 딸들은 다 도둑년이라는데 제가 이렇게 나쁜 년인지 전 몰랐어요. 지금 이 순간두 난 엄마가 얼마나 아플까보다는 엄마가 안 계시면 난 어쩌나, 그 생각밖에 안 들어요. 엄마가 없는데 어떻게 살까, 어떻게 살까, 그 생각밖에 안 들어요. 나, 어떡해요, 아줌마?” 연수는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그리고 오열한다.
"나 어떡해요, 이제 난 어떡해!"
홀로 남겨질 할머니에 대한 엄마의 애통함
엄마는 이불을 끌어올려 할머니의 목까지 덮어주었다. 그러다, 한순간 흠칫 숨을 멈추었다.
목숨이 무엇이관데, 사는 게 무엇이관데 죽을 날 가까운 노모가 아들한테 방문 못질을 당하고, 손주놈한테 모진 소리를 들어야 하나. 이제 내 한 몸 죽어지면 끈 떨어진 갓처럼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고 구박이나 당하며 사실 텐데…. 나 간 뒤에도, 이 노인네 투정 부리며 밥 잘 드실까. 기세 좋게 심통 부리며 이년, 저년 욕도 잘하실까. 아니, 아니지….
갑자기 엄마의 눈에서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한참을 소리 없이 울어대던 엄마의 슬픈 눈에 돌연 비장한 빛이 떠올랐다.
엄마는 이불자락을 잡아채더니 머리끝까지 할머니를 덮어 씌웠다. 잠결에 숨이 막힌 시어머니가 이불 속에서 발버둥을 쳤다. 엄마는 눈을 꾹 감은 채 팔에 힘을 주었다. 온 힘을 다해 이불을 누르고 있는 엄마의 얼굴에 뭔지 모를 비애와 독한 기운이 퍼지고 있었다. 이미 엄마의 이마와 볼은 눈물과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어머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아. 나 살았을 때 어머니가 죽어야 어머니도 편하고, 그래야 나도 편히 눈을 감지. 이제 금방 만날 거야, 어머니. 저승에 가서 내가 백 배, 천 배 더 효도할게…'
엄마와 아빠의 이별 장면
"나, 보고 싶을 거는 같애?"
아버지는 엄마를 더 이상 마주보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여주었다.
엄마가 또 묻는다.
"언제? 어느 때?"
"… 다"
"다 언제?"
"아침에 출근하려고 넥타이 맬 때"
"… 또?"
"맛없는 된장국 먹을 때"
"또?"
"맛있는 된장국 먹을 때"
"또?"
묻는 엄마도, 대답하는 아버지도 점차 목소리가 잦아들고 있었다. 아버지는 엄마를 보지 않은 채 마음속에 빗장처럼 걸려 있던 말들을 하나씩 하나씩 뱉어냈다.
"술 먹을 때, 술 깰 때, 잠자리 볼 때, 잔소리 듣고 싶을 때, 어머니 망령 부릴 때, 연수 시집갈 때, 정수 대학 갈 때, 그놈 졸업할 때, 설날 지짐이 부칠 때, 추석날 송편 빚을 때, 아플 때, 외로울 때…"
아버지의 고백이 이어지는 동안 엄마는 물기를 가득 머금은 눈으로 괜한 손톱만 물어뜯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엄마도 차마 아버지의 얼굴을 마주 보지 못할 만큼 감정의 진폭이 커지고 있었다.
"당신 빨리 와. 나 심심하지 않게"
기어이 엄마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아버지는 엄마를 와락 껴안았다. 그리고 더 이상 눌러둘 수 없는 슬픔을 꺽꺽 토해냈다. 엄마가 젖은 눈을 들어 수줍게 웃으며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여보, 나 이쁘면 뽀뽀나 한번 해주라" 아버지는 엄마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쥐고 길고 오랜 영혼의 입맞춤을 했다.
"인희야… 정말… 고마웠다…"
누구에게도 찾아올 수 있는 이별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면 없던 철이 든다고 말한다. 희노애락을 함께 하며 살아가는 모든 가족들에게 이 소설은 곁에 누군가가 살아 있을 때 한껏 사랑하라는 메세지를 던진다. 죽고 나면 사랑하고 싶어도 더 이상 이를 실천할 방도가 없다. 고작 제사상을 준비하고 지난 일을 돌이켜보는 게 전부일 뿐이다. 그러니, 아침에 눈을 떠서도 그리고 잠자리에 들어 눈을 감을 때에도 한없이 사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