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민주주의 - 새로운 위기, 무엇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가
야스차 뭉크 지음, 함규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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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평화롭고 번영한 시대에 살면서 부귀를 누려 왔다. 지난 몇 년 동안의 사건들이 혼란스럽고 심지어 어쩔 줄 모를 만한 것이었을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더 나은 미래를 만들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30년이나 15년 전과 달리 지금은, 더 이상 느긋한 마음으로 미래의 영달을 기대할 수 없다. 민주주의의 적들은 수호자들보다 사회의 틀을 바꾸는 일에 더 몰두하고 있다. 평화와 번영을, 국민자치와 개인의 권리를 보존하고자 한다면, 지금이 평상시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이 특별한 때에 특별한 길로 나아가야 한다. - '서론' 중에서

 

 

새로운 정치 환경에 대하여

 

이 책의 저자 야스차 뭉크는 포퓰리즘의 부상과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연구로 명성이 높은 학자이자 작가이며 연설가이다. 폴란드인 부모를 둔 그는 독일에서 출생했으며,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를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하버드 대학에서 정치 제도에 대해 강의하고 있으며, 미국의 정치 분야 싱크 탱크인 뉴 아메리카 재단의 수석 연구원이자 토니 블레어 국제 변화 연구소의 전무 이사로 재직 중이다.

그가 집필한 주요 저서로는 독일에 대한 회고를 담은 <STRANGER IN MY OWN COUNTRY>(2014년)와 개인의 책임이란 개념이 변모 시킨 서구의 복지 정책을 설명하는 <THE AGE OF RESPONSIBILITY>(2017년), 포퓰리즘의 부상과 민주주의의 위기를 분석하는 이 책 <위험한 민주주의>(2018년) 등이 있다.

 

2016년 11월, 도널드 트럼프가 모든 정치 평론가들과 정치학자들의 예상을 뒤엎고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으로 당선됨으로써 가히 충격적인 사건으로 평가받는다다. 저자도 이런 해프닝은 어쩌다가 한 번 있을 법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재벌 출신으로 정치 경력이 전무한 인사가 막발을 쏟아내면서 소수자에 대한 경멸적인 태도와 언론의 자유를 우습게 여기는 그런 반민주적인 선거 유세를 펼쳤기 때문이다. 

 

물론 이미 남미, 유럽, 아시아 등에서도 포퓰리즘을 앞세워 권위적인 '스트롱맨'이 집권함으로써 민주주의의 뿌리를 흔든 사례들이 있어왔다. 또 유럽연합의 집행위원회 같은 테크노크라트들은 국민들이 선출한 정치인들을 압도하면서 회원국 국민들의 삶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남유럽국가의 실패를 책임지지 않겠다고 유럽연합에서 탈퇴한 '브렉시트'도 이런 불만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무튼 권력분립, 언론자유, 법치주의 등을 무력화시키며 높은 지지율로 포장한 '국민의 뜻'을 내세워 일방 독주하는 그런 권위적인 지도자가 독재로 치닫는다면 과연 진정한 국민의 뜻이 숨을 쉴 수 있겠는가. 소수가 민주주의를 지배하는 '민주주의 없는 권리 보장'이 창궐하면서 자유민주주의는 분열의 위기를 맞았다는 게 저자의 의견이다. 나아가 저자는 이런 추세를 극복할 방법을 이 책에서 논하고 있는 것이다.

 

 

 

 

책은 3개 파트 총 9장으로 구성되었는데, 여기서 저자는 새로운 정치 환경을 분명하게 제시한다. 첫째 자유민주주의가 이제 구성 요소별로 분해되어 한쪽에선 반자유적 민주주의, 다른 한쪽에선 비민주주적 자유주의가 등장하고 있고, 둘째 정치체제에 대한 환멸이 자유민주주의 생존에 위협을 가하고 있으며, 셋째 이런 위기를 초래한 근원적인 원인을 설명하고, 넷째 흔들리는 정치 질서하에서 진정 가치 있는 것들을 구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2개의 체제로 분리된 자유민주주의

 

자유민주주의가 두 가지 방식으로 삐뚤어질 수 있다. 민주주의는 반자유주의가 될 수 있다. 특히, 독립기관을 행정관들의 자의적 통치에 종속시키기를, 또 소수자들의 권리를 축소하기를 선호하는 곳에서 이런 경향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자유주의 체제이며 경쟁적인 선거를 치르고 있을지라도 비민주적으로 될 수 있다. 특히, 정치제제가 엘리트 위주로 왜곡된 상태에서, 선거가 국민의 뜻을 공공정책으로 이어지는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에 나타날 수 있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우연히 서로 함께한 기술, 경제, 문화적 조건에 의해 결속되어 왔다. 하지만 이 둘을 결속하게 하는 힘이 지금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 다시 말해 북미와 서유럽 정치를 오랫동안 대표한, 개인 권리 존중과 국민자치의 독특한 조합인 자유민주주의는 분리되고 있다. 대신 새로운 형태의 두 가지 체제가 부상하고 있다. 권리 보장 없는 민주주의라고 할 반자유주의적 민주주의, 그리고 민주주의 없는 권리 보장이라고 말할 수 있는 비민주주의적 자유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장차 21세기의 역사에 관해 쓰게 될 때는, 자유민주주의가 이 두 개의 체제로 분리된 것이 중심이 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의 실적이 미흡하다

 

왜 시민들은 자신들이 속한 정치제제에 충성심을 가질까? 이는 근본적인 원리원칙 때문이 아니라 그 체제가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해주고 주머니를 두둑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지금껏 자유민주주의가 패권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이와 관련해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라는 판단에서다. 물론 이 판단이 전적으로 옳다고 보기엔 우려스럽다.   

 

아무튼 그 판단이 맞다면,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대중들의 애착은 고매한 지지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얄팍하고 깨어지기 쉬울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이상론은 지금의 위기를 설명하기에 벅찰 것이다. 실상은 자유민주주의가 시민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효율이 떨어져서 벌어지는, 심각한 '실적 위기'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고조되는 포퓰리즘 운동은 이 위기를 최대한 활용하여 우리 체제의 핵심 요소들을 파괴하려 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양차 세계전쟁 이후 급속한 경제 발전은 자유민주주의에 많은 정당성을 부여했다. 이 제도가 기능을 발휘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편에 서 있다고 기꺼이 믿었다. 하지만 오늘날엔 정치인들을 믿어줘야 할 이유가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유권자들은 더 이상 정치 기구가 자신들 편일거라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이다.

 

하급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이 상급 중산층으로 상승하기를 꿈꾸는 사람들은 가난하게 태어나 빈곤한 삶을 지낸 사람들 못지 않게 경제적으로 향상되지 못한다는 좌절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거나 이웃의 사정이 더 악화되는 걸 목격하다 보니 비교적 잘 사는 시민들도 자신들의 경제적 상태가 매우 불안정하다고 여기게 된다. 따라서 이들도 극빈자들과 마찬가지로 포퓰리스트에게 투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트럼프에 대한 쏠림을 연구한 결과 '실업률이 더 높고, 일자리 증가가 느리고 수익이 더 낮은 곳에서' 훨싼 더 강력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경제 불안은 현재에 초점을 둔 게 아니라 미래에 관한 것이다. 또 자동화 대상이 되는 직업의 비율이 높은 지역이, 즉 22개 주 중 21개주가 트럼프에게 표를 던졋고, 반대로 가장 낮은 15개 주 모두는 힐러리에게 표를 던진 걸로 파악되었다.      

 

경제적 성과와 정치적 안정성 간의 관계가 종종 예상보다 다소 더 복잡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꼭 사회의 가장 빈곤한 구성원들이 정치체제에 등을 돌리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정부 혜택에 많이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니 말이다. 또한 개인적으로 경제적 재난을 겪은 사람들이라고 반드시 반체제적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지금은 물질적으로 편안하게 사는 편이지만, 미래가 그들에게 가혹해질까봐 두려워하는 그룹들이 가장 불만이 크다. 

 

 

계층 하강의 문제

 

에이브러햄 매슬로에 따르면, 인간의 욕구는 계층구조에 따라 움직인다. 가장 기본적이고 긴급한 욕구는 안전이며, 인간은 이를 위해 식량, 피난처, 육체적 공격으로부터의 보호 등을 포함한 재화를 원한다. 이런 기본적 욕구가 충족될 때, 사람들은 더욱 희소한 욕구에 점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사랑과 소속감을 추구하고 존경받기를 갈망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자아실현'이라고 명명한 욕구를 성취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성장이 정체되면서 불평등이 심화되고, 불안감이 커지면서 인구의 대다수가 자아실현의 가치에 집중하지 않게 된다. 대신, 유권자들은 다시 한 번 매슬로가 말하는 하위 계층 욕구에 관심을 돌린다. 백인들은 자신들의 생계유지에 대해 걱정하면서 자원의 집단적 배분을 주장하는 이민자와 소수인종에 대해 더욱 분개한다. 그리고 세계화와 테러리즘의 통제할 수 없는 힘에 더욱 위협을 느끼며 소수민족과 종교적 소수자에 대해 덜 관대한 관점으로 되돌아가 버린다.

 

이제 물질주의 가치의 귀환이 우리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자신의 안전과 생계유지를 걱정하는 유권자들은 단순한 경제적 해결책을 제시하고 우리의 모든 문제에 대해 외부자를 희생양으로 삼는 포퓰리스트들의 호소에 훨씬 더 솔깃해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일

 

우리는 수상한 시대에 살고 있다. 정치 영역에서 큰 위험이 실재한다. 앞으로 몇 년 동안,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우리가 결정적 순간에 옳은 일을 하려면, 기꺼이 희생할 각오를 해야 한다. 우리가 포퓰리스트들과의 다음 전투에서 패배한다면, 전쟁은 너무 빨리 끝날 것이다.

 

어쩌면 모든 단계에서 개인의 권리가 침해되고, 지구상에서 사라진 세계 질서가 나타나는 경천동지할 변화가 생길지도 모른다. 누구도 행복한 결말을 약속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의 가치와 제도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결과와 상관없이 신념을 위해 싸울 결심을 해야 한다. 노력의 열매가 불분명할지라도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완성은 진행형이다

 

인터넷과 SNS가 가짜뉴스와 혐오적 발언의 온상이 되면서 극단적인 편가르기를 넘어 과격한 선동을 서슴없이 펼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민주주의는 살아있다. 포퓰리즘적인 지도자나 정당에 대해선 단호하게 반대의 목소리를 내면서 뭉쳐야만 민주주의가 절대 폐기되지 않는다. 더불어 이런 저항만으로 부족하므로 자유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한 정치, 경제, 사회적 환경을 지속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세제를 개선하고,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일자리의 창출로 빈부격차를 줄여 나가면서 번영과 풍요를 함께 나누는 그런 체제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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