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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그 이후 - 블록체인 시대의 필수 교양
애덤 로스타인 지음, 홍성욱 옮김 / 반비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이 책에서는 디지털 기술로서 새로운 돈의 개념을 소개한다. 암호화폐가 무엇이고, 어떻게 탄생했으며, 앞으로 블록체인은 어디로 갈지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릴 것이다. 그 과정에서 독자들은 인터넷의 어두운 뒷골목부터 세계 금융의 펜트하우스까지 여행할 것이다. 암호수학을 자세히 살펴보고, 다소 낯선 비트코인 하위문화를 탐구할 것이다. 사람들의 주머닛돈을 움직이는 것은 무엇이고, 국가 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무엇이 이런 관념을 영원히 바꾸어버릴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 '서문' 중에서
암호화폐의 실체와 그 미래는?
책의 저자 애덤 로스타인은 기술의 역사적 전개와 사회적 영향력에 관심을 두고 과학기술의 전략적 이용을 논하는 작가이자 이론가, 저널리스트이며 <바이스>의 과학기술 전문 채널 '마더보드', <애틀랜틱 테크>, <뉴 사이언티스트> 등에 기고하고 있다. 또 드론 예술 페스티벌인 '머머레이션Murmuration'의 큐레이터이기도 하다.
암호화폐가 세상에 나온 후, 세상 사람들은 돈을 기술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암호화폐가 가져오는 혁신의 핵심은 바로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이다. 돈이라는 기술은 거칠게 미래로 나아가고 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이 기술의 최첨단에 올라타고 있다. 그 과정에서 가까운 미래에는 사물인터넷 기기, 탈중앙화된 은행, 심지어 자율기업 같은 혁신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총 14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암호화폐에 관해 알아야 할 필수 정보들을 스토리텔링을 통해 풀어내면서 우리들을 암호화폐가 탄생한 인터넷의 뒷골목에서부터 블록체인의 미래라는 큰 그림까지 이어지는 여행에 동행시킨다. 이 여행을 통해 블록체인, 스마트 계약, 작업증명 등의 핵심 개념과 함께 어떻게 돈이 움직이는지, 온라인 기반의 환경에서 '신뢰'는 어떤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는지, 기술의 세계에서 민주주의는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 등을 이해하게 된다.
사토시 나카모토와 비트코인
비트코인의 창시자는 사토시 나카모토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정체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그가 비트코인 가치의 상당 부분을 통제하고 있으며, 2016년 말 기준으로 그가 소유한 비트코인의 가치를 6억 달러로 추정했다. 새로운 형태의 가상화폐라는 비트코인은 얼마전까지 마치 '튤립열풍'을 연상시킬만큼 광폭 행진을 해 왔었다.
스스로를 '공포의 해적 로버츠'라고만 밝힌 사람이 실크로드라는 웹사이트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실크로드는 정부 통제를 무산시킨다는 이념 아래, 불법 거래를 위한 일종의 아마존 같은 시장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피해자 없는 물건'(마약류와 위조된 공문서는 괜찮았지만 무기류, 불법 음란물, 도용된 신원정보는 허용되지 않았다)만을 판매한다는 철학을 내세운 실크로드는 토어(TOR)라는 주소 익명화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사용자만 접속할 수 있었다. 이 복면을 쓴 공간은 다크 웹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리고 실크로드에서 유일하게 사용된 통화는 바로 비트코인이었다.
비트코인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사토시 나카모토의 소식을 마지막으로 들은 것은 2011년 4월 경이었다. 나카모토는 짧은 이메일 몇 통을 주고받으면서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고는 잠적했다. 나카모토가 사라진 시점에 존재하던 비트코인의 총 가치는 5400만 달러(한화 약 600억 원)에 달했는데, 두 달이 지나서는 2억 700만 달러(한화 약 2300억 원)를 넘어섰다.
2011년 6월 8일, 280만 비트코인이 거래되며 최고 거래치를 경신한 날, 비트코인 거래소인 마운트곡스는 24시간 만에 수수료로 90만 달러 가까이를 벌어들였다. 공포의 해적 로버츠가 7월에 재개한 실크로드는 한 달에 3만 달러의 수수료 수익을 올렸고, 그 수치는 빠르게 증가했다. 암호화폐는 더 이상 단순한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인터넷에서나 언급되는 뜬구름 잡는 소리 같던 암호화폐의 모습은 그 창시자와 함께 사라지고, 실제 가치를 지닌 실제 화폐가 남게 되었다. 그로 인한 부작용도 함께 말이다.
암호화를 통해 만들어진 화폐
비트코인을 작동하는 데 필수적인 도구는 디지털 암호기술이다. 이는 오랫동안 해커와 스파이의 영역에서 발전해왔다. 해커와 스파이라는 양 축 사이에는 다크 웹이 존재한다. 암호화를 통해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숨은 인터넷 공간인 다크 웹은 가능과 불가능, 그리고 합법과 불법 사이에서 가능한 것과 합법적인 것의 경계를 확장해왔다. 암호화폐라는 아이디어가 탄생한 곳도 다크 웹이었다. 사실 암호화폐는 다크 웹이 아니고서는 어디에서도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믿을 만한가? 앨리슨 조지가 진행한 아래의 인터뷰를 살펴보자.
신뢰성은 어떤가? 봇이 사기를 당하거나, 돈을 냈는데 배송이 안 된 경우가 있나?
없다. 다크 웹의 신뢰성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다크 웹에서 물건을 판매하는 사람들은 온라인 거래 상대를 신뢰하는 데 익숙하고, 또 좋은 평가를 받길 원한다. 쇼핑 봇이 구매한 마약을 압류했던 스위스 경찰도 길거리에서 거래되는 마약보다 좋은 품질에 놀라기도 했다.
화폐 채굴의 세계
암호화폐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소위 '채굴'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곡괭이로 금속을 캐거나 땅굴을 파는 그런 개념이 아니다. 암호화폐의 채굴에 필요한 도구는 성능 좋은 컴퓨터와 몇 가지 전문 소프트웨어, 그리고 속도가 빠른 인터넷 연결이 전부다. 암호화폐 네트워크상의 컴퓨터는 블록체인을 업데이트하기 위한 경주에서 계속해서 경쟁을 펼친다. 적절한 장비만 갖춘다면, 누구든지 이 경주에 참여 가능하다.
이런 형태의 채굴은 어떤 실재적 물체를 발견하거나 생산하는 행위가 아니다. 다만 암호기술과 작업증명을 통해 블록체인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것뿐이다. 새로운 코인은 단지 프로그램된 보상일 뿐이다. 이것은 가치 있는 재화를 생산하는 공급 사슬 활동이 아니다. 실제로는 화폐의 (현재까지 알려진 유일한 용도인) 송금 행위일 뿐이다. 암호화폐 채굴은 가상의 재무 시스템 전체를 뒷받침하기 위해 장부를 마감하고 거래를 처리하는 은행가의 업무에 비유하는 게 더 적절할 수도 있다.
새로운 산업의 탄생
암호화폐 채굴로 돈 벌기가 어려워지자, 채굴 장비 생산이 곧 하나의 산업을 형성했다. 하지만 그 시작이 순조롭지는 않았다. 2012년 6월, 미국 회사 버터플라이랩스가 비트코인 채굴 전용 장비 ASIC를 최초로 판매한다고 발표하자마자 선주문이 500만 달러가 쇄도했다. 그런데, 2013년 1월 중국의 아발론에서 독자적인 전용 모델을 판매함으로써 고객들의 불만이 폭주했다. 이에 미 연방무역위원회는 버터플라이랩스를 폐쇄해버렸다.
좋게 이야기하면 경영이 부실했고 나쁘게 얘기하면 순전히 사기꾼이었던 기업들이 코인 채굴 장치 산업이라는 미명 아래, 온라인 거래를 통해 빠르게 수익을 올릴 기회를 노렸다. 2014년 3월, 미국 플로리다의 피보나치라는 회사가 스크립트 기반 암호화폐를 채굴할 수 있는 ASIC의 선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5개월 만에 웹사이트는 사라지고 회사는 연락조차 두절됐다. 뉴스 보도에 의하면 투자자들의 손해는 100만 달러를 넘을 것으로 추산됐다. 채굴 장치 산업은 순전히 폰지 사기와 유사해 보였다.
금융 세계에서는 규모도 중요하다. 암호화폐 시장의 규모가 크다고는 해도 전통적인 시장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비트코인 시장은 90억 달러가 넘는 규모이지만, 약 19조 달러 규모인 뉴욕증권거래소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규모가 더 크다는 것은 거래량이 더 많다는 것이고, 이는 또한 더 안정적인 시장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비트코인 회계사
암호화폐 비즈니스가 성장하고 있는 새로운 영역은 회계 분야다. 거래를 기록하는 일은 언제나 필수적이기 때문에 암호화폐의 거래를 기록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업체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리브라테크는 기존 회계절차에 블록체인 분석 기능을 통합해주는 기업이다. 콘텔리전스도 블록체인 분석을 통한 '이상거래 감지' 서비스를 지원한다.
가상화폐가 만들어진 동기 중 하나가 거래를 익명화하고 금융당국이 사용자의 거래를 감시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은 역설적이기도 하다. 암호화폐 블록체인은 현실적으로 모든 거래를 상세하게 기록하는 장부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이 상세한 장부를 어떻게 펼치고 해석하는지를 학습한 새로운 종류의 전문 회계사들까지 나오고 있다.
돈의 역사
초기엔 인간은 물물교환에 의존했다. 이후 녹슬지 않는 금은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교환 수단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고대 문화라고 물물교환에만 의존한 게 아니라 거래시 돈도 사용되었다는 증거가 있다. 물물교환은 상대방을 신뢰할 수 있을 때에나 가능했다. 이방인과 거래할 경우에는 추상적인 가치의 양이 필요했고, 그것이 바로 돈인 것이다.
이때의 돈은 동전이나 지폐의 개념이 아닌 채무 관계를 기록해둔 일종의 장부였다. 누가 누구에게 어떤 것을 빚졌는지를 상호 약정한 단위로 간단하게 기록한 것이다. 즉 돈은 교환의 매개체 또는 가치 저장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흔히 잊어버리는 돈의 제3의 기능, 즉 회계 단위로서 탄생한 것이다.
암호화폐의 법적 지위
2014년, 미 국세청은 암호화폐의 법적 지위를 공식적으로 언급하며 입장을 좀 더 분명히 했다. 암호화폐가 실제 화폐가 아닌 '자산'이며, 암호화폐의 판매에는 다른 자산 유형, 예를 들어 기업 주식 판매와 마찬가지로 세금이 부과될 수 있다고 결론지은 것이다. 이는 중앙의 통제를 받지 않는 암호화폐를 어떻게 정부의 통화 정책과 조화시킬 것인지의 문제는 피해가면서, 대신 암호화폐를 별난 디지털 금융상품으로 분류한 것이었다.184
다른 국가는 달리 판단하기도 했다. 2014년 9월, 영국 국세청은 법인세에 대해서는 비트코인이 화폐로 간주된다고 명시했다. 따라서 비트코인 거래로 발생한 손익은 정상적으로 과세된다는 설명이었다. 이는 표준소득세와 양도소득세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나아가 비트코인으로 구매한 재화에 대해서는 파운드 환산 가치에 따라 정상적으로 부가가치세를 징수할 것이라고 했다.
비트코인의 문제점
비트코인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처리 가능한 거래량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비트코인 사용자가 늘어나고 블록체인이 길어지면서, 창시자 나카모토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들에 직면하고 있는 셈이다. 새로운 거래 내역이 블록체인에 등록되어 새로운 블록을 형성하는 데는 약 10분 걸린다. 하지만 블록의 크기는 제한되어 있다. 10분마다 단 1메가바이트의 거래만이 기록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개빈 안드레센은 비트코인 XT라는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개발, 블록의 크기를 더 크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도 신구 버전의 차이로 인해 소위 '포크' 상황이 발생했다.
2016년 1월, 비트코인 XT를 두고 '투표'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단 10퍼센트의 컴퓨터만이 업데이트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유는 다양했다. 어떤 사용자들은 기술적인 측면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블록 크기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나은 대안이 있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용자들은 업데이트가 '강제'되었다는 게 불만이었다. 원칙을 벗어났다는 것이었다. 영향력 있는 인물과 기업 들이 두 편으로 나뉘면서 논쟁이 벌어졌다. 그리고 누군가의 사주를 받은 해커가 비트코인 XT를 사용하는 컴퓨터들을 공격해 오프라인 상태로 만들기 시작했다. 결국 기업과 개인 사용자 다수가 공격을 피하기 위해 구 버전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암호화폐의 진정한 가치는 코인에 있지 않다
사람들은 블록체인에 무엇을 담는 것이 최선일지, 그리고 블록체인을 비트코인이나 다른 암호화폐, 아니면 완전히 다른 어떤 것과 결합하는 것이 좋을지 살펴보고 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이런 연구가 작은 스타트업이나 자유주의자 해커들에 의해서만 이뤄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가장 선도적인 프로젝트 중 일부는 대형 은형 같은 주류 금융기관들이 추진하고 있다. 블록체인이라는 강력한 기술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한 이들은 그것이 가져올 금융 혁명에서 도태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지분증명을 비롯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성장하고 있다. 여기에는 가장 지분을 많이 보유한 노드가 가장 중요하다는 사고방식이 깔려 있다. 이런 노드는 네트워크에 상당한 투자를 했을 것이고, 여러 노드들을 동일한 사람이 통제하는 상황은 매우 일어나기 어렵다. 이런 경우, 네트워크를 공격하는 것은 각 노드에게 이로운 선택이 아니다. 따라서 각 노드 간 합의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며, 엇나간 노드를 발견해서 정상 궤도로 복귀시키는 것이 선결 과제가 된다. 다시 양떼로 비유하자면, 양떼는 뭉쳐 있기를 좋아하며, 양치기 개의 역할은 이탈한 양을 찾아 친구들 사이로 다시 데리고 오는 것이다.
이더리움의 시대
이더리움의 잠재력은 비트코인을 탄생시킨 이상주의를 부흥시켰다. 자율기업은 자유주의적 암호화폐 지지자들의 새로운 꿈으로 자리 잡았다. 모든 기업이 탈중앙화된 분산형 블록체인에 담겨 어느 국가의 사법 제도에도 속하지 않는다면,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자유’를 부여받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누가 자율기업에게서 세금을 걷을 수 있을까? 블록체인에 기반한 기업이 어떤 정치인에게 머리를 숙여야 할까? 결함투성이인 정부는 (코딩 기술만 있으면 누구든 접근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안전하고 인간의 불완전성으로부터 자유로운) 단순한 오픈소스 코드로 대체될 것이다. 이 이상주의에 매료된 투자자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더리움에 투자했고, 이더는 비트코인에 이어 두 번째로 시가총액이 큰 암호화폐가 되었다.
이더리움과 리플 중 어떤 것이 맞는 방법일까? 두 기업 모두 완전히 새로운 시장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도하고 있는데, 아직까진 어떤 기업이 승리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대결에서 엿볼 수 있는, 새로운 금융 기술을 분류하는 관점은 참고할 만하다. 시스템과 '함께하는' 기술인가, 아니면 '맞서는' 기술인가? 이상적인가, 아니면 현실적인가? 혁명적인가, 아니면 점진적인가? 새로운 개념을 증명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돈을 벌려는 것인가? 이런 질문들은 기술 개발자와 지지자 들이 어떤 동기를 가지고 있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다오 기금 도난 사건이 주는 교훈
다오의 치명적인 결함 중 하나는 세상이 실제로 그렇게 단순하다고 가정한 데 있었다. 반복 분할 결함은 차치하고서라도, 의견 불일치를 이유로 구성원이 조직을 분할하는 것을 계속 허용했다는 사실은 믿기 어렵다. 모든 인간은 생각이 같을 수 없고, 기회만 된다면 약점을 이용하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권력 구조를 만들거나 이용할 존재이기 때문이다. 반복 분할 문제는 다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그러니까 수천 개의 차일드 다오로 쪼개져 어떤 합의도 이루어지지 못할 정도가 되기 전에 멈춤으로써 모두를 구해낸 것일 수도 있다.
아마도 블록체인 기술에는 능통한 다오의 개발진은(이들의 코딩 실수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 걸로 하자.)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은 심각하게 부족해 보인다. 결국 프로그램의 오류 때문이든, 아니면 과도하게 코딩된 민주주의가 불러온 위험 때문이든, 다오의 실패는 불가피해 보였다.
어떤 이는 기술이란 모름지기 이렇게 실패를 거듭하며 진화한다고 이야기할지 모르지만, 정말 이상한 것은 다오 사건이 벤처캐피탈의 자금을 이용한 실험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벤처 투자가는 이런 종류의 투자의 위험성을 이미 잘 알고 있으며, 침착하게 실패를 받아들일 능력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다오는 인터넷에서 끌어모은 개인 투자자들의 돈으로 실패를 맛본 것이다.
기업 자본의 규칙과 권력 구조에서 탈피한다는 명목으로 실행되고 있는 다오 같은 대안 기업의 실험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리스크에 대한 대비는 거의 없이 입증되지 않은 청사진을 믿으라고 요구하며, 그들이 힘겹게 번 돈을 위험으로 내몰고 있다. 크라우드 펀딩이라는 실험은 모두가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어 평등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블록체인의 경우에는 각종 오류와 실책, 그리고 단순 판단 착오가 몰고 오는 폭풍우를 잠재우는 데 소득이 높지 않은 시민들이 이용되고, 정작 그 교훈은 옆에서 지켜보던 대형 은행이 가져가고 있다. 힘 있는 자의 추락을 막기 위해 대중을 쿠션으로 이용하는 이런 실험이 만들 미래는 전혀 평등해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