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역습
김용운 지음 / 맥스미디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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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곳곳에서 분출하고 있는 테러와 핵위협, 자연파괴, 과학의 진행방향 등은 인류가 멸망의 벼랑에 서 있음을 시사한다. 19세기가 서구 세력에 의한 동아시아의 침략의 역사였다면, 21세기는 그에 대한 역습으로 막을 열었다. 그 중심엔 한반도의 희생과 고뇌가 있어 왔다. 이 숙명의 본질을 파헤치기 위해 민족족 집단 무의식의 구조에 초점을 두고, 역사와 미래를 하나로 묶는 복안複眼적 시야로 가능한 우리의 선택지를 구상해보았다. - '여는 글' 중에서

 

 

한반도엔 어떤 평화가 자리잡을 수 있을까?

 

저자 김용운은 현재 수학문화연구소 소장, 한양대학교 수학과 명예교수로 재직하며 수학관련 저서 출간에 힘써 한국출판문화상과 서울시문화상, 대한수학회공로상을 수상한 학자이다. 그는 와세다 대학을 거쳐 미국 어번 대학원, 캐나다 앨버타 대학원에서 각각 이학 석사 및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이후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 조교수, 일본 고베대학과 도쿄대학, 일본 국제문화 연구센터 등의 객원교수를 역임, 국내에서는 수학사학회 회장, 한양대학교 대학원장으로 활동했다.

또 그는 수학적 사고의 시스템화와 그 보급에 힘을 기울여왔는데저서 <인간학으로서의 수학>은 한국은 물론 국제적으로 주목할 만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일본의 몰락>은 90년대에 일본에서 일어난 버블 경제의 붕괴를 예측하여 큰 파장을 불러오기도 했다. 일본어를 포함 5개 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그는 외국어를 배우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역사, 문화, 언어를 한꺼번에 배우는 삼위일체 학습'으로 정의하며 관련 저서들을 집필하기도 했다.

 

이 책은 총 10부로 구성되었는데, 1부와 2부에서는 카오스적인 현대 상황을 관찰하며, 억압당해온 소수민족의 한(恨)과 정체성 희구의 의욕이 국제화, 정보화에 촉발되어 기존질서에 어떻게 대항해 역습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카오스 이론의 자기조직화 개념으로 새로운 질서로 향한 인류적 의지의 창발 가능성을 논한다.

3부에서는 위기의 저변에 흐르는 원형 충돌의 실상을 밝히고 인류 생존의 길을 모색하고, 4부에서는 '집단 무의식=원형'의 입장에서 풍토와 공동체 사이의 되먹임(feedback) 관계를 한·중·일의 현실에서 실증적으로 밝히며, 5부에서는 민족역사의 틀을 원형사관으로 고찰하고 국토의 성격이 원형에 미치는 양상을 설명하며 역사 되풀이의 의미를 생각한다.

 

6부에서는 백제 최후의 전쟁인 663년의 백강전투의 결과로 인해 한반도 지정학의 특수성이 결정되었음을 밝히고, 7부와 8부에서는 한반도 주변국인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등의 국가원리와 국가이성의 충돌과 외교방법을 원형사관으로 고찰하며, 9부에서는 북미 간의 새로운 전쟁 개념인 온전溫戰의 성격을 분석하면서 그 근본 원인인 중동과 한반도 등지에서 자행된 기마민족에 의한 ‘선 긋기’에 대한 원형의 역습을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10부에서는 새로운 정신혁명 속 한반도의 비핵화와 영세중립화와의 연동을 기대해 한국적 가치와 원형 승화의 길을 논한다.

 

 

 

 

시작된 역사의 대반란

 

역사는 더 이상 힘의 크고 작음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즉 약자弱者가 오히려 강자强者를 위협하고, 강자의 위신을 추락시켜 역사의 순서와 법칙도 뒤바뀌고 있다. 대한민국이 위치한 한반도 또한 큰 소용돌이 속 작은 소용돌이처럼 세계의 카오스와 얽혀 갈수록 혼돈에 빠져드는 상황이다. 과격한 이슬람 무장세력에 의한 미국 세계무역센터의 테러뿐만 아니라 북한의 권력자 김정은도 핵미사일 발사로 국제 질서를 어지럽히면서 미국을 향해 곧 핵전쟁을 유발할 듯한 공세를 취했다.   


이 카오스의 소용돌이는 정보화와 국제화 그리고 오랜 동면冬眠에서 깨어난 각 민족의 집단 무의식에서 비롯되고 있다. 민족들은 국제화가 되면서 저마다 자기정체성과 한恨을 깨우치고, 동시에 이에 대한 보상을 찾기 시작했다. 당연히 모순과 갈등이 발생하고, 이런 갈등은 회오리처럼 상승작용을 일으켜 이젠 인류의 존속마저 위협하게 되었다. 역사의 대반란은 이미 시작되었다.

 

 

카오스 이론의 초기조건 

카오스 이론에서 첫 단추는 초기조건이다. 어떤 유기적 운동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의 조건은 그 후의 모든 변화에 민감한 영향을 끼친다. 가령, 같은 대학을 나와 동등한 조건에서 출발한 두 사람이지만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때의 사소한 차이가 인생행로를 크게 바꾸는 예를 많이 보았을 것이다. 인생의 유아 시절은 그 사람의 전 생애에 막대한 영향을 준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역사에서도 다르지 않다. 한국 독립의 초기조건은 38선 분단인데, 이는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쳐 대한민국 국민들이 핵전쟁의 공포를 느껴야 할 상황까지 만들고 있다.

 

 

단순계의 사고를 거부하는 복잡계

 

카오스 이론은 물리학, 심리학, 천문학, 사회학 등의 영역을 넘나들며 이들 영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혼돈 현상을 분석하는 이론이다. 일찌기 기원전 5세기에 플라톤이 자신이 세운 아카데미 정문에 내걸었던 현판의 글은 지적 세계의 입장권은 기하학임을 공지했던 것처럼, 21세기의 복잡계 입장권은 바로 카오스 이론이다.

 

"기하학을 모르는 자, 이 문에 들어오지 말라"

 

세계는 단순계의 사고에 익숙한 우리 인간들을 비웃기나하듯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움직여갔다. 국제화와 정보화는 오히려 민족의 정체성과 종교의식을 자각시켰다. 이슬람 과격 세력의 테러가 격화되었고 영국의 EU 이탈도 현실이 되었다. 한때 단순한 민주화 운동으로 간주되었던 중동의 자스민 혁명은 오히려 민족의식의 자각으로 작용했다. 미국의 미래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세계정신과 지성이 역사를 움직일 것으로 보았으나, 현실은 각 민족의 집단 무의식과 원형의 생명력을 증폭시켰다. 이처럼 단순계의 사고로는 파악할 수 없는 여러 요인이 상호작용하여 심화된 복잡계의 세계를 전개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현재의 한국도 국제적 카오스와 연동하며 주변국과 밀접하게 얽혀 있다.

 

 

미국의 국가원리

 

미국인은 국가원리를 하나님의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으로 인식했다. 이 사명감으로 개척자들은 애팔래치아 산맥을 넘어 서부로 개척해갔고 스페인과의 전쟁도 승리로 이끌었으며, 태평양으로의 진출과 우주개발까지 이루었다. 선교사 같은 카우보이 원형은 미국인의 무의식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정의'라는 뚜렷한 명분이 있는 일에 대해서는 분명한 실행의지를 가진다. 노예제도 폐지나 금주법 같은 것도 선교사적 사명으로 실천에 옮겼다.

 

이런 국가원리는 외교 전략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이유는 물론 일본의 진주만 공격이 불을 당겼지만, 사실은 국가원리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먼로주의는 '미국은 아메리카 대륙에만 관심을 가질 테니까, 다른 나라들도 아메리카에 간섭하지 말라'라는 선언이엇다. 그런데, 미국의 세계 전략은 '먼로주의'와 '명백한 운명'을 번갈아 채택한다. 미국의 외교는 시계의 추처럼, '먼로주의'와 '명백한 운명' 사이를 오갔다. 트럼프의 북한 핵에 대한 대응도 '먼로주의'의 연장선일 가능성이 높다.

 

한반도에서의 미군의 주둔은 국가원리인 만주주의의 수호라는 명분에 입각해왔지만, 국제적 카오스로 인해 미국의 패권은 점점 쇠퇴해갈 것이기에 이후론 미국이 현실주의적 판단에 의거 새로운 한미동맹이 수립될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최근에 불거지는 주한 미군 철수라는 이슈도 이러한 맥락에서 발생될 소지가 있는 것이다. 향후 한반도의 정세가 심각할 정도로 악화된다면 미국은 철수할 것이고, 한국은 독자노선을 채택해야만 할 것이다. 이럴 경우 우리는 독자적으로 중국과 북한, 그리고 일본으로부터 안전을 지켜내야 한다.

 

 

중화사상의 복귀

 

고대 중국인의 지리적 관념은 대륙과 주변국이 곧 세계였고 그 중심인 중원에서 황제가 통치하는 구도였다. 소국이 대국을 예로 섬기는 사대지례事大之禮와, 민족 간의 차이 없이 크게 뭉치자는 대동사상大同思想이 결합해 중화사상이 되었다. 중국의 국가원리는 황제의 권위와 중화사상, 그리고 제국주의가 결합해 완성되었다. 지금 당 주석도 황제의 권위를 갖고 있다. 만약 모택동의 아들이 한국전에서 전사하지 않았더라면 문화혁명 대신 모택동 왕조가 수립되었을 것이다.

 

중국은 거대한 영토와 압도적인 인구, 그리고 높은 수준의 문화를 지녔음에도 중원을 노리는 주변세력에 늘 불안감을 가져왔다. 이제는 패권야욕에 노골적이다. 군사 대국화의 노선을 공언하면서 항공모함과 신종 무기들을 증강, 군비확장에 열을 올린다. 시진핑 주석이 바라는 중국몽中國夢은 청왕조가 이룬 중국질서의 회복이다. 하지만 제국주의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중국몽은 또 하나의 제국주의로 변질되어 스스로 모순에 빠진 셈이다.

 

지금까지 중국의 생산시설은 주로 미국 시장 때문에 활발하게 가동될 수 있었다. 중국이 첨예하게 미국과의 무역전쟁에 돌입한다면 아마도 미국은 핵을 전면 포기한 북한에 많은 공장을 유치해서 또 다른 세계의 공장을 가동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이리 된다면 수많은 중국의 노동자는 실업자가 될 것이고, 이는 국내 민심의 흉흉함으로 이어져 중국 권력은 필연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불황-인심동요-폭동-혁명'이라는 패턴은 지금껏 중국사가 보여준 일관된 역성혁명이다. 어쩌면 지금이 북한 경제 중흥을 위한 골든타임일 수도 있다.

 

 

한국, 중국, 일본의 원형 충돌

 

한중일 외교 분쟁의 근본 원인은 원형 속에 잠재해 있는 시간관(역사)의 차이에서도 온다.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 속에는 '원점회귀'와 '원념과 한恨'이 있다. 불합리한 역사 가운데 부조리를 겪어온 탓에 정의의 회복이 그만큼 더 절실하다. 그러나 일본인의 생각은 다르다. "구린 것에는 뚜껑을 덮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과거사는 묻어버리라는 '앗사리' 정신을 강조하는 집단 무의식을 갖고 있다. 원형 충돌의 대표적인 본보기이다. 이민족에 의한 왕조 교체를 여러 차례 경험한 중국은 속과 겉이 다른 국가정책을 취하고 일반인까지도 책략적이다.

 

 

투키디데스의 덫 

그리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신흥세력 아테네가 스파르타의 패권에 도전한 구조로 바라보며 제2인자가 제1인자에 도전하는 양상을 국제정치에 투영해 역사의 중요한 국면을 설명했다. 이를 사자 무리에 비유하면, 늙은 우두머리가 암컷들에게 접근을 시도하는 2인자 수컷을 항상 경계하는 것과도 같다. 2인자는 번번이 실패를 경험하지만 실력이 충분해졌다고 판단되면 과감히 우두머리 사자에게 도전해 그 자리를 빼앗는다. 이러한 구도를 '투키디데스의 덫'이라 부른다. 현재 진행 중인 미국과 신중국의 대립도 어김없는 투키디데스의 덫이다. 

 

 

 

 

영세중립이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한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한반도를 무시하거나 포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핵전쟁을 감행할 수도 없다. 북한도 일시적으로 핵무기로 전세계를 공포의 분위기로 몰고갈 수 있을지 몰라도 이렇게 하면 국제사회의 영원한 낙오자로 전락하게 된다. 북한은 현재의 경제난국을 타개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 김씨 왕조의 세습이 불가할 것이고, 민중 봉기에 처할 게 분명하다. 그래서 저자는 북한의 핵 대치를 미지근한 전쟁인 온전溫戰이라고 규정한다.    

한반도는 언젠가는 통일이 되겠지만 어떤 모습의 통일일까? 친중, 친미, 친러, 친일 등 우리는 다시 조선 말기의 고민에 처해 있다. 하지만 당시와 오늘의 우리가 다른 것은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다는 사실이다. 이에 저자는 이렇게 강조한다. "더 이상 코리아 패싱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남이 하는 대로 보고만 있을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한반도 평화가 영세중립에 있음을 주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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