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 : 삶의 군더더기를 버리는 시간 배철현 인문에세이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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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은 미래의 나를 그리며 오늘의 나를 전폭적으로 변화시키는 훈련이다. 이 훈련은 무엇을 더하는 게 아니라 덜어내는 것이다. 불필요한 말, 행동 등 '오늘 하루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의 목록을 만들어,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쌓인 삶의 군더더기를 버리는 연습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오늘의 나를 변화시켜라

 

책의 저자 배철현은 고대 오리엔트 문자와 문명을 전공한 고전문헌학자다. 고대 오리엔트 언어들에 매료되어 하버드대학교 고대근동학과에서 셈족어와 인도-이란어를 전공했다. 고대 페르시아제국 다리우스 대왕의 삼중 쐐기문자 비문인 베히스툰 비문의 권위자다. 2003년부터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와 그 이전 문명과 종교를 가르치고 있다.

 

또 2009년에서 2013년까지 격주로 주말에 중국 베이징대학교에서 오리엔트 언어들을 가르쳤다. 2015년 미래 혁신 학교 '건명원建明苑'을 기획하여 출범시켰고, KBS1 텔레비전 과학 프로그램 <장영실쇼>를 진행한 바 있다. 최근 저서로는 <신의 위대한 질문>, <인간의 위대한 질문> 등이, 번역서로는 <문자를 향한 열정: 세계 최초로 로제타석을 해독한 샹폴 리옹 이야기>, <성서 이펙트>, <꾸란 이펙트> 등이 있다.

 

저자는 얼마 전 <심연>이라는 책을 집필, 출간한 바 잇다. 이 책은 전작의 연장 경인데, 그 내용은 이렇다. 그는 '위대한 나 자신'을 흠모한다. 위대한 개개인이 모여 곧 위대한 공동체와 위대한 국가를 만들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나 또한 이 점에 적극 동의하기에 <심연>은 이미 읽었다. 그래서 그는 위대한 개인을 완성시킬 수 있는 교본이 필요함을 깨닫고 진실한 자아를 만나는 단계인 <심연>을 출간했던 것이다.

 

그는 '심연-수련-정적-승화'의 4단계를 통해 위대한 개인을 발견하고 완성시킨다고 보았다. 심연은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연못'을 말하는데, 진실한 자아를 만나기 위해서 반드시 들어가야 할 마음의 연못이 바로 심연이라는 설명이다. 즉 심연은 외부의 어느 것으로부터 간섭받지 않고 온전히 자기 자신과 독대하는 경지인 것이다.

 

총 4부 28개 주제로 구성된 이 책은 두 번째 단계인 '수련'을 다룬다. 이는 자기 자신이 되고 싶은 미래의 자아상을 상상하면서 현재의 자아상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훈련인 셈이다. 불필요한 언행과 생각들을 마이너스해 나가는 연습으로, 이를 통해 매일 조금씩 발전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수련의 완성점은 목표에 도달하는 게 아니라 매일 새로운 지점을 정해 묵묵히 참으면서 걸어가는 과정임을 알아야 한다.

 

 

 

 

과거와 미래가 하나 되다

 

'시작'은 항상 불안하고 폭력적이다. 시작이라는 단어에는 과거와의 매정한 단절, 미래에 대한 비전과 희망 그리고 지금과 여기에 대한 확신과 집착이 혼재混在해 있다.

 

익숙한 것들은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편함을 선물한다. 그러나 이 편함은 이중적이다. 시간이 지나면 이내 불평과 지루함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주도적으로 고유한 목적을 구축하고, 그것을 위해 열정적으로 수련하는 자만이 실망하지 않는다.

 

최선을 지향하는 지금 이순간이 내가 희구하는 천국이다. 이 순간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나는 그 시간의 흐름에 이리저리 떠나니는 부초부초와 다를 바 없다. 시작은 독창적이다. 현재라는 순간을 파괴해 미래라는 영원으로 끊임없이 지배하려는 의지다. 로마 제국의 시인 호라티우스는 이런 의지를 글로 남겼다.


지금 내가 말하는 동안에도 남을 부러워하다 보낸 세월이 저만큼 도망갑니다.

바로 이 순간을 낚아채십시오, 미래에 일어날 일을 신경쓰지 마십시오.

 

 

환경에 지배받지 말고 주체적으로 살자

 

"너 커서 뭐가 될래?", 아마도 이말은 우리들 모두 어릴적부터 가장 많이 들어온 질문 중 하나였을 것이다. 태어난 환경과 문화적 배경이 서로 다르기에 각자 느낌대로 제각각 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런 질문은 무례하기 그지 없다. 왜냐하면, 장차의 일에 대해서는 어떤 일이 발생할지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기에 사실은 정답이 없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각자에게 주어진 환경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신의 위치를 심오하게 돌아보고 자신의 미래를 능동적으로 선택하지 않는 한 우리는 환경의 노예로 전락한다. 그리고 그런 환경에 안주하는 것이 편하고 익숙하기 때문에 우리의 미래는 예측할 수 없는 진부한 상태로 결정된다.

 

전 미국 대통령 버럭 오바마는 미혼모인 어머니와 외조부의 손에서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케냐 출신이라고 알려져있지만, 그는 한번도 아버지를 만난 적이 없었다. 미국은 인종차별이 심한 곳이라 그의 대통령 도전은 사실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그는 그 꿈을 실현하고자 기나 긴 여정을 시작했다. 왜 이렇게 힘든 발걸음을 내딛었을까? 바로 주체적인 삶을 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결국 바꾸고 말았다.  

 

 

비겁함

 

우리는 용기 있는 사람의 행동에 대해서는 열렬한 박수 갈채를 보낸다. 지하철 역사에서 실수로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급히 구출하고 자신은 미처 피할 시간이 부족해 현장에서 즉사한 사람에 대해서는 용기를 넘어 의인義人이라고까지 부른다. 반면 비겁卑怯은 무시무시한 대상 앞에서 도망치는 마음의 상태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비겁은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비출 거울을 소유하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끊임없이 타인의 이미지에 탐닉하는 것이다.

 

비겁은 자신이 간절히 바라는 위대한 자신에 대한 상상력의 부재不在다. 그런 자신을 상상해본 적이 없다 보니 하는 짓거리라고는 늘 다른 사람을 훔쳐보고 부러워하면서 흉내 내는 일 뿐이다. 오죽하면 미국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부러움은 무식이고 흉내를 내는 것은 자살행위다"라고 외쳤겠는가. 그렇다면 현실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다. "당신은 비겁한 자인가, 용기 있는 자인가?"

 

 

자기 자신에 몰입하라

 

아바스타나는 자신의 과거와 결별하고 자신이 거居하고 싶은 원대한 나-자신의 자리에 침잠하는 능력이다. 나-자신이라는 단단한 바위를 찾지 못한 사람들은 스스로의 시선을 끊임없이 타인에게로 향한다. IT가 가져다준 편리함은 우리의 시선을 더더욱 타인에게 향하게 한다.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훔쳐보고 탐닉하고 부러워하게 만든다.

 

거의 습관화되어버린 이 행위로 우리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우리-자신을 잃어버린다. 그 속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자극적인 문구와 이미지는 우리가 거주해야 할 아바스타나를 파괴하고, '나-자신이 아닌 것'에 몰입하도록 유도한다.

 

깨어있는 개인은 자신을 관찰하는 사람이다. 선진 국가와 선진 사회는 이러한 개인들의 집합이다. 반대로 후진 개인은 시선을 늘 타인에게 고정시켜 이를 부러워하고 시기하는 것이다. 또 마치 자신이 집요한 탐정인 것처럼 타인의 잘못을 밝혀내는 일에 몰두한다. 이런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의 집합소가 바로 후진 국가이며 후진 사회인 것이다. 

 

 

나만의 개성을 찾아라

 

사람들이 미켈란젤로에게 다윗의 조각상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는 "다윗을 재현하기 위해 다윗의 몸에 붙어 있지 않을 것 같은 돌들을 쪼아냈지"라고 대답했다. 창조는 삶에서 본질적이지 않은 것들, 도덕이나 종교가 우리의 동의도 없이 돌에 새겨 넣은 것들을 과감히 잘라내고 단절하는 용기에서 시작한다.

 

추상抽象이란 자신에게 몰입해 나만의 개성을 찾는 훈련이다. 그 개성이 바로 고유固有다. '굳을 고固'는 에워싼 공간을 뜻하는 한자 부수 '큰입구몸'과 '옛 고古'가 합쳐진 말이다. 즉 예부터 전해져온 것이 굳어져 자기만의 전통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오늘도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해 무엇을 덜어내고 잘라내야 할까? 나만의 고유함은 무엇일까?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

 

자유自由란 무엇인가? 자유는 외부의 어떤 것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유일한 것을 찾아 사랑에 빠지는 행위다. 영어 단어 '프리(free)'의 본래 의미는 '사랑에 빠진 상태'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그 자유로운 상태로 진입할 수 있을까?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스스로의 존재 이유가 되는 상태가 바로 자유다. 그리고 사랑에 빠질 만큼 소중한 것을 찾기 위한 과정을 '연습'이라고 한다. 연습을 가장 잘 설명한 사람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다. 그는 그리스 비극을 고대 그리스어 '미메시스 프락세오스', 즉 '연습에 대한 흉내'라고 정의했다.

 

 

내공을 길러라

 

패기覇氣는 밤하늘에 떠 있는 달과 같다. 달은 만물이 활동하는 낮에는 해에게 자리를 내주어 스스로 자취를 감춘다. 그러다 밤이 되면 살포시 나와 자신을 하늘 더 높이 띄워 올린다. 바다 한복판에서 갈을 잃은 선원들에게 길을 알려주고, 사막에서 헤매는 무역상에게 시간을 알려준다.

 

달은 현재의 자신에 안주하는 법이 없다. 시간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며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묵묵히 걸어간다. 처음에는 거의 보이지않는 약한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완벽한 모습으로 변화한다. 달은 자신을 비울 줄 안다. 완벽한 보름달의 모습을 유지하려고 안달하며 애쓰지 않는다. 자신의 모습이 아무것도 아닌 상태로 돌아간 뒤 또 다시 채운다. 그래서 달에게는 비움과 채움은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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