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력이 부족한 당신이 꼭 알아야 할 인생법칙
제임스 알렌 지음, 이선이 옮김 / 이너북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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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모습은 그사람이 과거에 생각했거나 행동했던 결과물이다. 지금의 생각과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의지력이 약한 사람은 스스로 마음을 약한 상태로 유지하기 때문이다. 죄가 많은 사람은 죄를 많이 짓고, 지금도 똑같은 행동을 계속하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어리석은 행동을 계속해 어리석은 것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의지력이 인생을 바꾼다

 

책의 저자 제임스 알렌1864년 영국 레스터에서 출생해서 어릴 때 가족을 따라 미국으로 이주했다. 사업을 하던 아버지가 파산하고 강도들에게 살해당함으로써 15세 때부터 방직 공장 등에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고, 결혼한 뒤에는 영국계 대기업에서 경영자의 비서로 일했다. 이후 잡지를 창간하는 등 CEO의 길을 걷다가 그의 나이 38세 되던 해 인생의 갈림길에 섰다. 즉,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영향을 받아 돈을 벌고 소비하는 삶에 회의를 느낀 나머지, 영국 남서부 해안의 작은 마을 일프라콤에 정착해 자발적 빈곤과 영적인 훈련을 체현하며 소박한 삶을 살게 된다.

 

그는 10년 동안 삶을 성찰하며 성경, 탈무드, 불교, 노자와 공자 등의 동양 고전에서 얻은 깨달음을 다수의 작품으로 남겼고, 1912년 48세에 세상을 떠난다. 그의 아내 릴리는 '20세기 신비의 작가'로 불리는 그의 남편에 관해 "스스로의 실천을 통해 검증된 사실을 작품에 적었다"라고 회고했다. 후에 그의 작품은문학적으로 천재적이고 영적인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인간은 의지력으로 자신의 성격을 고칠 수가 있다. 목수가 나뭇조각으로 아름다운 가구를 제작해 내듯이, 잘못을 저지르거나 죄가 많은 사람도 진리를 추구하는 현명한 인간으로 거듭 태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최고의 아름다운 인생에 악악은 존재하지 않으며, 죄나 슬픔이 사라져 버려 고통스럽거나 눈물 흘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낮은 차원에서 만족하는 사람은 인생을 승리로 이끌 수가 없다. 승리를 갈망하고 의지력으로 그것을 이루려고 애쓰는 사람만이 이를 손에 넣을 수 있다. 즉, 열심리 정의를 추구하며 높은 차원으로 나아가려는 사람들만이 인생의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  이처럼 성격도, 정신도, 인생도, 자기 자신의 사고나 행동과 분리해서 이루어질 수 없다.

 

 

 

 

총 21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제임스 알렌의 핵심 사상이 응축되어 있다. 전반부에는 '사고'와 '의지력'에 포커스를 맞추어 행복과 평안의 삶으로 가는 인생의 여러 법칙들을 설파하고, 후반부로 갈수록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국가적인 부분까지 영역을 확대하여 대승적 관점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따라서, 고통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진실한 삶의 안내자로서 부족함이 없다.

 

"사고나 행동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정해진다.

즉, 사고나 행동을 의지력을 갖고 바꾸고자 노력하면 자신도 바뀐다"

 

 

왜 계속 갑질을 할까?

 

최근에 대한항공의 조현민 전무는 '물벼락 갑질'로 연일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조 전무는 일전에 '땅콩회항 갑질'로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조현아 부사장의 여동생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시쳇말 이상으로 이들 자매의 행동은 한국 사회에 크게 경종을 울린다. 급기야 아버지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대국민 사과와 함께 두 딸을 그룹 경영에서 배제한다고 발표했다. 사실 두 딸의 그릇을 미리 알아보지 못한 아버지의 죄도 크다.

 

아무리 학력이 높다 해도 인생이라는 학교에선 이런 졸업장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단순히 지식을 머릿속에 집어 넣는다고 올바른 사고를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비로소 이런 지식이 빛을 발하려면 그 사고思考가 순수하고 고결해야 하는 법이다. 아버지를 잘 만난 덕분에 많이 배우고 높은 자리를 차지했다고 안하무인眼下無人의 불순한 마음을 지녔기 때문에 이런 행동이 자연스레 나타난 것이다. 원인이 있었기에 그 결과가 생긴 것이다.

 

우리 모두는 자신이 해 온 사고의 결과이다.

자신의 사고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자신의 사고로 완성된 것이다.

 

- <법구경法句經>, 제1장 1절

 

생각하고 행동하고 이해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이처럼 사람의 정신적 요소를 만들어 놓는 것은 바로 자신인 것이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알 수가 있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보면 된다. 그러자면 지금까지 착각에 빠져 스스로 만들어 놓은 가공의 세계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이미 언니가 갑질 파동으로 한 차례 홍역을 치루는 광경을 곁에서 목격했을 터인데,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사고가 틀렸기 때문이다.

 

 

방해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진정 성숙한 인간으로 살고 싶다면 '그들이 나를 방해한다'라는 유약하고 어리석은 사고에서 벗어나 '방해하는 것은 나 자신'이라고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타인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것도 자기 자신에게 결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 타인을 사기꾼이라고 욕하기에 앞서 이를 먼저 깨달아야 또 다시 사기를 당하지 않는다. 이를 이해하는 순간 지혜의 빛이 비추고 평안으로 가는 문이 활짝 열린다. 비로소 자아의식의 정복자가 되는 셈이다. 

 

최고의 지혜에 도달하려면 배워야 한다. 최고의 가르침은 스스로를 컨트롤하는 것, 즉 '자제'이다. 자제심이 없으면 '구제'와 같은 말은 무의미하며 평안도 없다. 욕망을 억제하지 않으면서 왜 죄의 사赦함을 받기를 원하는가 말이다. 자신의 마음의 문제나 장애를 극복하지 않고는 영원한 평안에 이를 수가 없다. 솔깃한 투자 제안에 현혹된 것도 자기 자신의 탐욕이 빚어낸 결과인 것이다. 나쁜 행동은 좋은 결과를 불러오지 못하며, 올바른 행동은 절대 나쁜 결과를 초래하지 않는다.

 

"올바른 행동의 씨앗을 뿌리면 그 열매도 달다"

 

 

갈등은 적대심을 만든다

 

진리 그 자체에는 모순이 없다. 사실에 입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왜 사상이나 종교의 종파 간에는 대립이 그치질 않을까? 이는 뭔가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모순과 농쟁이 발생한 것이다. 예를 들어, 기독교인이 "우리는 진실이고, 불교는 틀렸다"라고 말하면, 불교신도는 "기독교가 틀리고, 불교가 올바르다"라고 말하게 됨으로써 우리들은 모순에 직면하게 된다.

 

진리는 뭘까? 서로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이 잘못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 태도를 바꾸어 적대심을 좋은 관계로 바꾸면, 대립이 각을 세우지 않는 진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자신의 사상은 올바르며, 이웃의 사상은 가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사상 안에서 아직 진리를 찾지 못했다. 진리란 순수한 마음이다.

 

 

마음속에 있는 진리를 찾아라

 

훌륭한 경전을 통해 평안을 찾을 수 있을까? 물론 이는 진리의 길로 안내해 준다. 하지만 경전을 암기했음에도 마음속에 갈등이나 불안이 남는다. 왜냐하면 원전의 해석은 너무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경전이 영원한 기반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올바른 것 속에서 기반을 찾아야 한다. 정화된 마음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러면 마침내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진리에 도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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