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1 위대한 작가들/줄리언 패트릭 책임 편집/김재성 옮김/뮤진트리

예전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세계문학에 대한 방대한 정보와 텍스트가 인터넷상에 존재하고 있다. 세계 문학의 흐름은 작가론과 작품론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해야 비로소 일목요연해지는데 자판을 몇 번 두드리는 것으로 원하는 정보는 컴퓨터 화면에 뜨게 된다. 그렇더라도 더더욱 넓어져만 가는 세계 문학의 영토 안에서 작가와 작품을 취사선택하기란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만큼이나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전 세계의 비평가, 작가, 교사, 기자 등으로 구성된 필진이 쓰고 캐나다 토론토대학 비교문학교수인 줄리언 패트릭이 책임 편집한 ‘501 위대한 작가들’은 어떤 작품을 읽으라고 알려주지는 않지만 지적인 독서를 가능케 하는 길라잡이다. 이 책의 장점은 기원전 8세기 호메로스에서 1977년 생인 나이지리아 출신 소설가 치마만다 아디치에에 이르기까지 연대순으로 501명의 작가들의 작품을 망라하면서 그들이 왜 위대한 작가로 인정받았고, 그들의 책이 왜 읽을 가치가 있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압축하고 있다는 데 있다. 수록된 작가에 대한 일종의 해제는 비록 1페이지라는 제한된 지면밖에 할애되지 않지만 곧장 핵심을 찌른다.

헨리 밀러를 펼쳐본다. “20세기 문학의 걸작으로 인정받는 ‘북회귀선’은 1930년에 프랑스로 이주한 헨리 밀러가 파리에서 궁핍한 생활을 하던 중에 씌어졌다. (중략) 밀러는 뉴욕의 웨스턴유니언사에서 일했던 1920년대의 뉴욕생활을 그린 ‘남회귀선’을 출간한 직후 파리를 떠났다. 그는 동료 소설가이자 친구인 로런스 더럴과 함께 그리스에서 6개월 동안 지낸 후 그리스와 그 나라의 과거를 깊이 있게 탐색하여 단순히 기행문이라 하기에는 훨씬 통렬한 의미가 내재되어 있는 걸작 ‘마루시의 거상’을 썼다.” 사진도 덧붙이고 있는데 헨리 밀러가 아내 이브 매클루어와 함께 스페인 해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장면은 압권이다.

“스콧 피츠제럴드는 자신의 짧은 인생을 예감한 듯 빠른 속도로 살았다.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던 그는 학교 잡지에 단편 소설을 발표했고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육군에 복무하면서 잡지에 작품을 기고하고 노랫말을 지었으며 ‘낭만적인 이기주의자’라는 장편 소설을 여러 출판사에 보냈으나 거절당했다. (중략) 그는 문학을 통해 미국에 재즈 시대의 씁쓸한 삶을 두려움 없이 드러내는 자유를 선사했다.”(스콧 피츠제럴드)

44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피츠제럴드의 이미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첫 문장은 이 책의 필진들이 얼마나 공을 들여 글을 썼는가를 알게 한다. 또 “매력적이고 생기발랄한 작중 인물들은 종종 지나친 무절제로 인해 실패와 파국의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데, 이는 피츠제럴드 자신의 삶에 대한 우울한 비판이기도 하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 촌철살인의 문장은 인터넷에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코멘트이다.

501명의 작가 가운데는 우리에겐 생소한 이름도 상당수 끼어있다. 이는 구미권에서는 이미 위대한 작가 반열에 올라 있는 이들의 작품이 아직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은 탓에 기인한다는 반성을 우회적으로 촉구한다. 예컨대 프랑스 작가 ‘조르주 페레크’의 경우다. “페레크는 앞뒤로 읽어도 같은 말이 되는 회문, 여러 나라의 언어로 된 낱말 퍼즐, 십자말 퍼즐 등 소규모의 실험 외에 외부로부터 적용된 틀을 사용한 대규모 작품도 완성했다. 가장 악명 높은 작품은 ‘실종’으로 알파벳 ‘e’가 하나도 사용되지 않는다.”

가장 젊은 작가로 맨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나이지리아 출신 치마만다 아디치에 역시 생소한 작가로, 이렇게 언급되고 있다. “아디치에는 ‘아프리카를 무대로 한 사실주의 소설을 쓰는 작가로서 내게는 거의 자동적으로 정치적 역할이 주어져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는데, 확실한 것은 그녀에게 현대 나이지리아 문학을 재구성하는 역할이 맡겨져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단점도 있다. 구미권 작가들이 주로 소개된 반면 동양쪽 작가는 상대적으로 적게 다뤄져 있다. 일본 작가는 오에 겐자부로, 무라카미 하루키, 이시구로 가즈오 등 3명이 소개되어 있는 반면 이 책이 출간된 게 2008년 5월인데도 한국 작가는 단 한 명도 없다. 이를 필진들의 편식 증세로 몰아부치기 전에 우리 작가들이 아직 외국의 문학계나 비평계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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