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여섯 살 되던 해에 어머니 곁을 떠났다.
지난의 숙부 댁으로 온 그날 밤새도록 서럽게 울었다. 어느 해인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아홉 살에서 열두 살 사이에 할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시는 바람에 고향집에 다녀왔다.

“자식이 어머니를 만나면 아무 일 없이도 세 번 운다”는 옛말도 있지만, 밤낮으로 그리워하던 어머니를 만났는데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오히려 날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엔 눈물이 가득 고였다.

우체국에서 책을 찾으면, 비록 얇디얇은 책 한 권일지라도 내겐 그 무엇보다 큰 힘을 주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행복감이 가슴 속에서 복받쳐 올랐다. 책을 품에 안고 학교로 돌아가는 길엔 이미 20여 리 길을 걸어왔는데도 하나도 힘든 줄 몰랐다. 오히려 우체국에 갈 때보다 하늘이 더 푸르고, 구름이 더 희고, 연못은 더 맑았으며, 나무는 더 푸르고, 연꽃은 더 붉고, 연잎도 더 둥글었다.

그 전까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남의 밑에서 일하면서 그럭저럭 먹고 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었다. 용이 되어 승천하겠다는 망상조차 품어보지 않은 어린 뱀이었다.
하지만 표창장 하나가 나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불현듯 용은 되지 못할지언정 이름없는 뱀으로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부 집에 도착한 후에야 비로서 어머니가 병이 나신게 아니라 돌아가셨다는 걸 알았다.
하늘이 무너져도 그보다 절망적이지는 않았다. 후회와 자책감이 독사처럼 내 가슴팍을 헤집고 들어왔다. 설마 8년간 여덟 번의 여름방학을 보내는 동안 단 며칠이라도 어머니를 만나러 갈 시간이 없었단 말인가? 적적함과 쓸쓸함에 가난까지 겹쳤는데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몸으로 어떻게 견딘단 말인가? 도저히 내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가만히 눈을 감으면 어린 누이의 고운 자태가 떠오른다. 중국에는 예로부터 ‘물고기가 보고 헤엄치는 걸 잊고 가라 앉는다’, ‘달도 부끄러워 구름 뒤로 숨는다’ 등등 아름다운 여인을 칭송하는 수사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어린 누이의 미색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옛날 문인들의 시 속에 묘사된 미인들은 대부분 허상이고, 어린 누이는 생생하게 살아 있으니 허구를 향한 찬사로 어떻게 살아 있는 미인을 표현할 수 있겠는가.


세상 모든 사람이 황천길을 향해 가고 있지만, 그 길에선 굳이 1등을 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난 이 길에선 절대로 기득권을 주장하거나, 새치기를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저 느긋하게 가다가 내가 ‘끝내야’ 할 때가 오면 담담히 받아들일 것이다. ‘술잔을 기울여 한탄하지도’ ‘애써 울음을 삼키며 억지 웃음을 지어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남극의 ‘식물’은 1백 년 동안 단 1밀리미터밖에 자라지 않았다. 중국의 역대 왕조 가운데 가장 길었던 주나라는 약 8백 년 동안 유지되었다.
그 8백 년 동안 역사는 얼마나 많은 격변을 겪었던가. 춘추 시대와 전국 시대가 모두 그 기간에 속한다. ‘백가쟁명百家爭鳴 백화제방百花齊放’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철학가들이 각양각색의 주장을 내놓고, 기기묘묘한 논리를 펼쳤다. 하지만 이 남극 ‘식물’은 그 기나긴 세월동안 빙산 속에서 묵묵히 인내하며 불과 6밀리미터 자란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