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의 책들과 사랑하는 작가들을 한 꾸러미 짊어지고

길을 떠난 작가 세스 노터봄.


세스 노터봄의 여행기는 문학적이다. 굳이 여행기라기보다는 여행을 하고 글로 돌아본 것이고, ‘문학적이란 말이 얼마나 진부한 표현인지 알지만 이보다 더 정확한 표현을 애써 찾아야 할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이 공간과 시간을 여행하며 세상의 지식을 얻은노터봄의 글을 지금이라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행운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는 결코 한 곳에 머물지 않는 유목민처럼 살면서,

한 공간 안에서 끝없이 여행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세계를 두루 여행하고 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 ‘순례를 뜻하는 아랍어 siyâha의 정의인데, 세스 노터봄은 여기서 수수께끼로 바꿔 보고 흡족해한다. 세계를 두루 여행하고 수수께끼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 쉼 없이 여행하고 늘 다른 어딘가에 있는, 시인이고 소설가이자 언론인인 자신의 삶의 방식을 이만큼 정확하게 표현한 단어도 없다 싶었을 것이다. 그는 결코 한 곳에 머물지 않는 유목민처럼 살면서, 한 공간 안에서 끝없이 여행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1933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태어난 노터봄은 제2차 세계대전 중 헤이그를 향한 영국군의 오인 공격으로 아버지가 그곳에서 사망한 후, 재혼한 어머니와 함께 네덜란드에서 살다가 이십대 초부터 유럽 여기저기를 여행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첫 소설 필립과 다른 사람들(1955)을 출간했고 이 작품으로 안네 프랑크 상을 수상하면서 스물둘의 젊은 나이에 일약 문단의 스타가 되었다.

 

1957년에는 화물선에 수습 선원으로 취직하여 수리남으로 떠났고, 이 첫 번째 장기여행 이후 그의 삶은 여행을 멈춘 적이 없다. 이스파한감비아말리와 같은 이국적인 곳에서부터 베니스뮌헨과 같은 잘 알려진 곳에 이르기까지, 그의 길은 멀고 지역은 방대하다. 그 길 위에서 노터봄은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장소의 새로움과 우리들 대부분이 결코 볼 수 없을 장소의 친근함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그의 세계관을 공유한다.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문학적 여행가

세스 노터봄의 [유목민 호텔]


 

함께 나눈 모험이라는 이미지가 눈앞에 생겨난다. 사소한 것이 거의 우연히 시작되었다가 압도적인 열정이 되고, 신나면서도 고독하고, 강렬한 무언가의 이미지. 그의 프루스트에 맞선 그녀의 베르길리우스와 단테, 기나긴 겨울밤에 서로 책을 읽어주는 두 사람, 2인 수도원, 그 안에서 보내는 나날들 속에 서서히 책이 태어났다. 섬사람들의 사연, 관찰과 독서로부터. _ (유목민 호텔, 141p)

 

작가 알베르토 망구엘은 유목민 호텔은 중세 애호가들이 현명한 책이라고 부를 만한 책이다. 하지만 나는 노터봄의 글에 담긴 지혜가 노련한 여행보다는 문학적 경험에서 우러난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그의 표현들은 문학이 세계를 비추는 참된 거울이라고 믿는 사람의 몸짓이다. 세계에서 도피하고 등 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메두사와 대적하는 페르세우스처럼 그 힘에 압도되어 돌로 변하지 않기 위해서. 참된 여행자라면 누구나 세계의 현실이 세계의 현실을 보지 못하도록 미혹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라고 하며, 노터봄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문학적 여행가임을 인정했다. 노터봄을 이보다 더 잘 이해했을 수가 없다. “기억 속의 책들과 사랑하는 작가들을 한 꾸러미 짊어지고길을 떠나 본 사람끼리의 공감이리라.


예전과 다름없는 똑같은 짜릿함.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보는 일, 읽을 수 없는 표시,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 실체적으로 알지 못하는 종교, 당신을 밀어내는 풍경, 공유할 수 없는 삶. 나는 요즘 그런 것들을, 이상한 말이긴 한데, 축복으로 여긴다. 완전히 낯선 것이 주는 충격에는 은은한 관능이 있다.” _161p


오래된 장소를 읽는 관찰자로서의 경이로운 재능과 독서와 학문의 풍요로움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유목민 호텔]. 어디에서건 이방인으로 존재하는 짜릿함을 즐기고, 진정한 이방인의 시선으로 그곳을 관찰하며, 자신이 본 것의 언저리를 언어로 돌아보고자 했던 작가, 세스 노터봄.

 

문득 노터봄이 한국을 여행하면 어떤 글을 쓸까 궁금하고, 그 글이 어딘가에 발표된다면 한류라는 콘텐츠 외에 또 다른 색깔의 한국이 세계인들에게 전해지지 않을까.

여행에는 여행자를 얼간이로 만드는 욕망이 들어 있다. 그는 타인의 일상적인 주변 환경에서 특별함을 찾곤 한다. _ 유목민 호텔, 25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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