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좋아하는 전직 신부이자 최고의 유방 절제술을 갖고 있는 암 전문의 헨델.

어려서부터 오빠에게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했고 자살 기도 전력이 있으며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어두운 성격 탓이라고 말하는 가족과 절연하고 사는 화가 피카소.

스스로를 호색가로 주장하며 언어와 욕정의 결합을 좇는 사포.

 

피카소와 사포와 헨델이라는 세 캐릭터가 시공을 초월하여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형태의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이 이야기는 철학과 예술과 성에 관한 질문이자 모색이고 궁극적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하는 아름다운 미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피카소사포헨델 세 사람이 돌아가며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예술과 역사와 종교를 논하고 자신의 현재를 고백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진실을 찾아 미로를 더듬어 나가는 체험. 전혀 다른 지점에서 출발한 등장인물들이 한데 모이고 어지러운 이야기의 가닥들이 하나의 타래로 엮이는 순간, 퍼즐을 풀고 미로를 탈출하는 후련한 쾌감이 기다립니다.

우리 모두 예술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예술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진실이 주어질 때 그 진실을 깨닫게 해주는 거짓말이다.”

_파블로 피카소

 


시간을 초월한 근미래의 런던에서 이들 셋은 각자의 도시에서 도망쳐 같은 열차에 탑승하게 되고, 흥미로운 한 권의 책을 통해 서로에게 끌리게 됩니다. 바로 어느 창녀의 철저하고 정직한 회고록이라 불리는 책. 이야기 속의 이야기인 어느 창녀의 철저하고 정직한 회고록을 통해 우리는 18세기 창녀인 돌 스니어피스라는 여인의 황당무계한 연애를 엿보고, 언어가 치유능력을 갖는 고통스러운 아름다움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이야기를 읽는 독자일 수도 있는 창녀 돌 스니어피스( 스니어피스Sneerpiece라는 성은 남자의 물건을 비웃는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어 인형이라는 의미의 이름 돌Doll과 충돌한다)는 전통적으로 남성이 차지한 전지적 화자와 독자의 역할 모두를 대체합니다.


예술작품의 본질은 (흔히 오해하듯) 현실세계의 일부가 되는 것이 아니고, 현실세계의 복제품이 되는 것도 아니며,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 독립적이고 완전하고 자치적인 세계가 되는 것이다. 또한 예술작품을 온전히 소유하기 위해서는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가 그 세계의 법규에 순응하고, 현실이라는 다른 세계에서 당신이 가졌던 믿음, 목표, 그리고 특정한 조건들을 당분간 묵살해야 한다.


소설의 첫 장을 열기 전에 이런 문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의 길잡이 같은 구절이지만 온전하게 예술을 온전히 향유하려는 많은 이들에게 기본을 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제언이 아닐까 합니다. 가벼운 소설들에 싫증이 난 독자라면 이 구절을 떠올리며 잠시 깊은 사색에 잠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넷 윈터슨


이 소설의 작가 지넷 윈터슨은 독실한 기독교도인 양부모 밑에서 자랐습니다. 열여섯 살에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깨달은 후, 그 경험을 소재로 스물다섯 살에 발표한 첫 소설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로 휫브레드상 데뷔 장편소설 부문을 수상합니다. 이후 30년 넘는 세월 동안 다양한 장르에서 종교예술성적 정체성 등을 소재로 글을 써온 그녀는 피카소헨델사포라는 거장들의 이름을 지닌 주인공들을 통해 성별의 차이에 어마어마한 사회적 법률적 함의가 담겨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연하게 통용되는 세상의 이치에 수많은 물음표를 던지며 그물망 같은 권력들이 더께처럼 굳어진 기존의 질서에 저항하는 지넷 윈터슨은 페미니즘과 문학, 성과 정체성, 가족 안에서의 성폭행, 종교음악과 거세, 아동성애 등의 날카로운 주제들을 대담하고 시적인 산문으로 유연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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