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느 날 골목길을 걷다 몸이 불편한 장년의 남자와 그를 부축하는 노인을 발견했습니다아마도 늙은 아버지와 장애를 겪는 아들이겠죠한데 노인이 갑자기 힘에 부치는지 잠시 방심한 순간 아들이 돌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힘겨워하는 노인과 무참한 표정으로 당혹스러워하는 아들을 발견한 당신은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을까요한 걸음에 뛰어가 휠체어를 바로 세우고 몸이 불편한 남자를 부축해서 휠체어 앉힐 수도 있습니다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정도의 호의와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합니다여기서 조금 다른 상황을 가정해보죠.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그의 산문집 [말의 정의]에서 자신이 직접 겪은 상황을 전하며 우리가 타인이나 세상을 대하는 시선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오에 겐자부로의 아들은 심각한 장애를 지니고 태어났습니다이 경험은 오에의 소설 [개인적인 체험]을 통해 당시의 상황이 잘 묘사되어있습니다장애를 지닌 아이가 태어났다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며 아이를 위해 굳건히 최선을 다하는 아내와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자꾸만 돌이키고 싶어 하는 남편(화자)의 갈등이 진솔하게 다가왔던 소설로 기억합니다.

 

아들은 말을 하지 않지만 절대음감을 지니고 있습니다유명한 작곡가가 된 아들은 40대로 접어들었으나 여전히 늙은 부모의 수발이 없다면 생활하기가 어렵습니다. "지진이 났을 때 늙어 힘도 없는 아내와 내가 히카리(아들)를 데리고 대피를 해야 할 경우의 그 아득함"에 대해서 말할 때는 가슴이 먹먹합니다.


오에 겐자부로는 마흔두 살로 성인병의 몇 가지 증상이 나타나고 있는 히카리의 비만을 염려해서 보행훈련을 하러 밖으로 나왔습니다오에가 머릿속의 산만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사이 굴러 다리는 돌에 발이 걸린 히카리는 그만 넘어지고 말았죠히카리는 오히려 자신이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자신의 실수를 자책이라도 하는 모양이었습니다.

 

오에 겐자부로와 히카리


그가 할 수 있는 일은자신보다 훨씬 무거운 히카리의 상체를 안아올려 산책로의 목책까지 간 다음 머리를 다치지 않았는지 살펴보는 정도입니다그러느라 두 사람이 꼼지락거리는 모습은 필시 미덥지 않게 보였을 것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온 나이 지긋한 부인이 뛰어내리더니 "괜찮아요?"하고 말을 걸면서 히카리의 어깨에 손을 댔습니다히카리가 가장 바라지 않는 일은낯선 사람이 자기 몸을 건드리는 것과 개가 자기를 보고 짖는 것입니다이럴 때 오에 겐자부로는 자신이 에부수수한 노인이라는 것을 알지만자신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어 달라고 강력하게 말합니다.

 

부인이 화가 난 채 가버린 후일정한 거리를 두고 역시나 자전거를 세우고 이쪽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소녀를 발견합니다그녀는 호주머니에 휴대전화를 내보였습니다그것을 꺼내는 것이 아니라 잠깐 보이기만 하고는 주의 깊게 이쪽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히카리가 일어나 걷기 시작할 때 돌아보자 소녀는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가뿐히 자전거를 타고 떠났습니다그들에게 전해진 메시지는내가 여기서 당신들을 지켜보고 있다구급차나 가족에게 연락할 필요가 있으면 휴대전화로 협조하겠다하는 것이었습니다오에 겐자부로는 아들과 걷는 모습을 보고 떠난 그 소녀의 미소 띤 인사를 잊지 못합니다.

 

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유에 의하면 불행한 인간에 대해 깊은 주의를 갖고, '무슨 힘든 일이라도 있습니까하고 물어보는 힘을 가졌는가의 여부에 인간다움의 자격이 달려있다고 합니다불행한 인간에 대한 베유의 정의는 독특합니다만갑작스럽게 넘어진 것에 동요하는 오에와 히카리도 그 자리에서는 불행한 인간입니다이쪽이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의 적극적인 선의를 보여준 부인도 베유가 평가하는 인간다움의 소유자입니다오히려 이런 때에도 자신에게 집착하는 모습에 스스로 질책도 합니다.

 

그러나 불행한 인간에 대한 호기심만 왕성한 사회에서 오에는 주의 깊고 절도 있는 그 소녀의 행동에서 생활에 배어 있는 새로운 인간다움을 찾아냈습니다호기심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만주의 깊은 눈이 그것을 순화하는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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