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 2023년 가을호 - 통권 183호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 녹색평론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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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녹색평론 183 2023년 가을호를 읽었단다. 세 달에 한번씩 아빠를 각성하게 해주는 녹색평론이란다. 올 여름 정말 더웠잖니. 오래 전부터 녹색평론에서 이야기하던 기후위기가 이제는 현실이 되어 우리를 괴롭히고 있구나. 뿐만 아니라 핵오염수를 대놓고 바다에 버리기 시작했단다. 강력하게 항의를 해야 할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인 우리나라는 오히려 일본의 핵오염수를 변명하고 있으니, 지금 내가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또 지난 여름 새만금 간척지에서 진행된 세계 잼버리 대회를

대처하는 정부의 무능력까지더운 여름을 더 덥게 만드는 일들이 무척 많이 일어났단다.

녹색평론이 더 바빠지게 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음이 가슴 아프구나. 녹색평론이 쓸 것이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지만, 앞으로 녹색평론은 점점 두꺼워질 것 같구나. 녹색평론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읽고 공감하여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아빠 주위에는 녹색평론을 읽는 분이 잘 안 보이는구나.


1.

이번 녹색평론에서는 핵오염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단다. 우리나라 정부에서 핵오염수에 대해서 안전하다고 자꾸 이야기하는 것이 창피하단다. 일본 정부로부터 무슨 큰 대가를 받기로 한 것인지, 아니며 무슨 큰 약점을 잡힌 것인지, 왜 그런 친일 스탠스를 잡고 있는지 이해가 안 가는구나. 핵발전소의 오염수 방출은 이미 몇 년 전에 OECD에서도 정당화하기 어렵다고 했단다. 하지만 일본은 무슨 로비를 했는지, 그냥 바다에 버린다. 일본은 그렇다 쳐도 왜 우리나라 정부는 그들을 옹호하는지우리날에서 일본의 오염수 방출을 비판하는 전문가가 고발당하는 일까지 일어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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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핵발전소 사고가 난 곳에, 아무리 안전기준 이내라고 하더라도 오염수를 생태계에 버리는 것을 정당화하기란 매우 어렵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16년 보고서에서 말했다.(<핵발전소 사고 이후의 방사능 폐기물 관리>), 그러나 눈앞에 펼쳐지는 세상은 다르다. 인류는 7등급 핵사고 재난이 발생한 후쿠시마, 바로 그곳에서 130t의 방사능 폐수가 바다로 투기되는 것을 목격한다. 핵공학자 서균렬 서울대 명예교수는 후쿠시마 오염수가 남해에 도달하는 데에 걸릴 시간을 공무원들과 다르게 말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고발당했다. 나는 그가 명예교수라는 직함을 더 이상 가지지 못할까 봐 걱정한다. 한국은 달라졌다. 공무원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과학자가 경찰조사를 받는 곳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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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에서도 비이성적인 우리나라 대통령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창피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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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7)

그 정점에 한국의 대통령이 있다. 도쿄전력은 일본 법령에서 원자력 사업자이다. 작년에 오염수 투기 실시계획 허가를 일본 원자력규제청에 신청했다. 신청서에 이렇게 썼다. “방출 후 모니터링에서 방출 방사능 물질 기준을 초과하는 이상치가 검출되는 경우에는 방출을 정지하겠다.” 일본 원자력규제청은 이 내용을 포함해 실시계획을 인가한 것이기 때문에, 만일 도쿄전력이 이 조건을 지키지 않으면 투기 자체가 금지된다. 처벌을 받는다. 법적 의무다. 여기에 더해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는 기준 초과 여부를 측정할 해상 모니터링 장소를 늘리라고 지시했다. 그래서 도쿄 전력은 올해 2, 이런 내용을 담아 실시계획 변경 인가를 추가로 받았다. 이미 일본의 법령 안에서 결정된 일이다. 그런데 이것을 지금 한국 대통령이 일본 총리에게 요구조건으로 제시하는 중이다. 외면하고 싶은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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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실 핵오염수 방출 반대보다 더 시급하게 반대 운동을 해야 하는 것은 핵발전소 반대 운동이란다. 탈핵 운동이 벌어져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해야 그것이 정책에 반영되고 그럴 텐데, 우리나라는 갈 길이 너무 먼 것 같구나.


2.

우리나라에서는 자기 돈으로 하라고 하면 안 할 일들을 나라 세금으로 하기 때문에 기를 쓰고 하려고 하는 사업들이 많은 것 같단다. 대표적인 것 중에 새만금 공항 추진이란다. 우리나라 지방 공항들은 늘 적자에 시달리고 있고 이용하는 사람들이 적은데 왜 새만금에 공항을 만들려고 하는지 좀처럼 이해가 가질 않는단다. 새만금 갯벌의 환경 문제를 둘째 치더라도 새만금의 공항은 누가 봐도 필요 없어 보어 보이는데 말이야. 그렇게 짓고 싶으면 자기 돈으로 지어보라고 하지. 짓겠는가 말이야.

환경부는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이런 사업을 하겠다면 도시락 싸들고 가면서 말려야 하는데, 떡 하니 도장을 찍어주고 있으니, 이게 도대체 환경부가 맞는가 싶구나. 이전 녹색평론에서도 설악산 환경을 파괴하는 케이블카 사업에 도장도 찍어주었다고 해서 환경부가 아니고 환경파괴부라고 했었는데, 녹색평론에 환경부가 자주 등장하는구나. 새만금 공항 사업 철회는 또 시민들의 몫이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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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잼버리대회가 파행 속에 열린 곳은 해창갯벌을 매립한 매립지이다. 그 한편은 매립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고 장승들이 서 있다. 3년 전, 잼버리대회를 위해 장승과 컨테이너를 다 치우라 했었지만, 시민들은 힘을 모아 장승들을 지켜냈다. 20년 동안 갯벌 복원의 염원을 담아 장승을 세우고, 비바람에 쓰러지면 일으켜 세운다. 삼보일배 출발지이자 갯벌 살림의 성지인 해창갯벌에, 어제 200명의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장승을 세웠다. 우리는 함께 울고, 함께 음식을 나누고, 함께 노래하고 춤추고 웃었다. 그리고 <수라>의 엔딩곡인 아름다운 것들을 다 같이 부르며 갯벌의 보전과 부활을 기도했다. 국민 1308명이 원고가 되어 새만금공항 기본계획 철회를 위한 소송을 진행 중이다. 9 14일 서울행정법원에서 3차 공판이 열릴 예정이다. 아름다움을 목격한 사람들이 이제 증인이 되어 나설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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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이라는 말의 어원이 이번 녹색평론에 실렸는데, 아빠도 처음 알게 되었단다. 새만금 간척지로 엄청 유명한 것은 알았는데 새만금이라는 말이 간척지 사업을 하면서 처음 만들어진 말이라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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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새만금이라는 이름의 갯벌이 실제 존재하는 줄 알았던 나는 영화를 만들며 그 뜻을 처음 알게 되었다. ‘새만금이라는 말은 본래 없던 말이다. 만경평야의 만, 김제평야의 금(), 두 글자를 합친 만금이라는 말 앞에, 새로운 땅이라는 뜻의 자를 붙여 만들어진 신조어로, 만경평야와 김제평야를 합친 만큼의 새로운 땅을 만들겠다는 뜻이다. , 새만금은 만경강과 동진강이 서해와 만나는 세계 최대의 갯벌을 무려 33.5km에 이르는 콘크리트 벽으로 막음으로써 만들어지는 땅, 혹은 그 땅을 만들고자 하는 세력의 욕망이 응집된 단어이다. ‘새만금은 역사에도, 지도에도, 사전에도 없는 단어이다. 그렇기에 새만금 갯벌이라는 말은 모순이고, 만경강, 동진강 하구의 광활한 갯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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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녹색평론에서도 기후 위기에 관한 이야기도 했단다. 이젠 기후 위기는 매 호에서 이야기를 해줄 것 같구나. 현실이 되었으니 말이야.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의 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잡아야 한다고 했는데, 그건 성공하기란 어려워진 것 같구나. 기후 위기에 관한 이야기는 지난 녹색평론에서도 이야기했고, 앞으로도 계속 이야기할 것 같으니 오늘을 생략할게.

녹색평론은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무거워지는구나. 걱정쟁이 아빠에게 걱정거리가 더 늘어나느 기분이고 말이야. 이제 완연한 가을이 된 것 같구나. 아침 저녁으로 찬 공기가 느끼진다. 가을 냄새와 함께그런데 앞으로는 이 멋진 가을이 사라질까 두렵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오늘은 짧게 마칠게.


PS,

책의 첫 문장: 근대문명은 쓰레기를 생산하는 시스템이다.

책의 끝 문장: 그리고 팜프리촌 촌민들이 농사에서 자신들의 비빌 언덕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기후변화, 대량멸종, 군국주의에 대응하기 위해 최소한으로 필요한 일은 급진적인 문명적 전환이다. 탄소배출권 거래제, 탄소세, ESG, 그린뉴딜 같은 제도적 개혁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재생에너지, 전기차 같은 녹색기술로도 충분치 않다. 자원 추출에서 제조, 운송, 폐기에 이르기까지 산업화된 경제에서 녹색화(탈물질화)의 여지는 극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장 긴급한 일은 생산성의 엔진을 멈추는 일이다. 2016년 예일대 노드하우스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세계경제가 성장하는 한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시대 이전에 비해 1.5도 이내로 제한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문제는 현재의 시스템은 심각한 정치적, 경제적 혼란을 감수하지 않고는 멈출 수도 없고 되돌리기는 더욱 불가능한 성장역학을 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P9

쫄깃하다 과메기, 김이 모락 꼬막살, 숙취에는 해물짬뽕, 보양 으뜸 장어탕, 톡톡 튀는 생대하, 시원하다 대구탕, 돈 생각해서 동태탕, 새콤달콤 서대회, 쫄깃하다 박대구이, 생일이면 미역국, 기분이다 킹크랩, 회복 촉진 전복죽, 제사장 문어숙회, 땀이 난다 낙지볶음, 맥주에는 노가리, 그 향기 이채롭다 멍게속살, 속을 풀자 조개국물, 여름이다 민어회, 가족여행 대게찜, 승부수다 복어국, 포장마차 홍합탕, 생각난다 가자미식혜, 밥도둑 갈치조림, 애 어른 모두 명란젓, 이런저런 생선구이, 얼큰하다 매운탕, 심심풀이 쥐포, 그리고 끝끝내 어묵까지… - P38

전세계적으로 기후위기 등 무분별한 환경파괴를 국제법상 ‘에코사이드(ecocide)’로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생태학살’이라는 말이 점점 더 많은 환경 운동 현장에서 들리고 있다. 환경파괴를 형법상 범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요구가 왜 등장했을까? 그 방식이 실제로 가능할까? 이미 환경파괴를 범죄로 처벌하는 나라가 있을까? - P108

인간의 시간은 문명화 이후의 시간으로 제한될 수 없다. 1만 년도 채 되지 않은 문명의 시간은 인간 역사 400만 년 이상의 시간을 쓰레기 취급했다. 인간 형성의 99.9%의 시간은 0.1%도 안되는 신석기혁명 이후 형성된 인간성에 억압당해 폐기되었다. 인간적 가능성은 한없이 협소해졌고 자연과 생명에 대한 감각 또한 형편없이 조악해졌다. 유구한 생명활동의 시간 속에서 형성되어온 고귀한 인간적 자질은 버려야 할 야만성으로 취급되었다. 인간은 대부분의 시간을 수렵채집인으로 살았다. 현대인은 그 시간을 고상하고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한 유아기로 취급한다. 하지만 인간 역사 속에서 인간성이 성장하고 진보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 P125

세 번째는, 아마도 지겨울 만큼 반복해서 들은 이야기일 테지만, 재생 불가능한 에너지, 특히 액화상태의 화석연료들이 공급의 한계에 부딪혔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른바 녹색혁명의 성취하고 하는 것은 전적으로 화석연료에 의존한 것이었고, 지금도 전 세계 농업은 화석연료를 더더욱 많이 사용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토양이 지속적으로 황폐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양침식으로 인해 상실되고 있는 자연적 비옥도의 총량은 기본적으로 화석연료로 벌충할 수 있는 것보다 크다. 바로 이것은 산업국들의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 농업경제의 실상이며, 한계점은 사람들이 예측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도래할 수 있다. 에너지 학자들은 2008년에서 2020년 사이에 전 세계 석유생산이 정점에 도달하고 이후에는 영구적으로 감소 추세로 돌아서서, 이번 세기 후반부에 이르면 연간 농업생산량이 지금에 비해서 10%까지 떨어질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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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일본의 참전 목적은 유럽에서 전쟁 중인 서구 열강들이 아시아에 신경 쓸 겨를이 없음을 틈타서 힘의 공백상태에 있는 중국을 침략하려는 것이었다. 일본은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중국 안에 있는 독일 조차지(租借地)와 독일령 남양제도에 주둔하고 있는 영세한 규모의 독일군 병력을 공격하여 쉽게 점령함으로써 중국 대륙을 침략을 교두보를 마련하는 데 성공하게 된다. 또한 일본은 유럽에는 군수품을 수출하고 동남아에는 생필품들을 수출하는 거대한 공급기지가 됨으로써 제1차 세계대전이 일으킨 특수경기의 수혜자가 된다.


(130)

윌슨의 민족자결권이든 레닌의 민족자결권이든, 민족자결권에 대한 한반도의 오독은 이념적 경계선을 훌쩍 넘어버린다. 윌슨의 그 유명한 ‘14개조에는 자결이라는 용어는 없다. 그러니 아무리 눈 씻고 찾아도 민족자결권이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은 영국 수상 로이드 조지(Lloyd George, 1863~1945) 1918 1 5일 영국 노동조합연맹에서의 연설에서 볼셰비키의 자결이라는 용어와 윌슨의 피치자의 동의를 섞어 쓴 이후의 일이었다. 아직까지도 한국의 역사 서술에서 윌슨의 민족자결권은 부동의 상식이자 진리다. ‘레닌의 민족자결권또한 20세기 한반도의 역사에서 해석학적 오류의 생산성을 잘 드러내준다. 마르크스주의로부터의 일탈을 감수하면서까지 레닌은 공식적으로 피억압 민족의 분리, 독립을 승인했다. 그것은 마르크스주의가 중심부의 노동해방에서 주변부의 민족해방 이론으로 전환되는 계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레닌의 속내는 피억압 민족의 프롤레타리아트가 분리 독립이 아닌 통합을 스스로 결정, 자결했으면 하는 것이었다.


(158)

신복룡은 세상사를 속속들이 알고나면 우리는 늘 마음이 쓸쓸해진다는 노엄 촘스키의 말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3.1운동 지도부의 전략과 당일의 처사를 볼 때 우리는 꼭 같은 심정을 느낀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3.1운동을 영웅사관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3.1운동을 민중운동의 시각에서 볼 때 그 참된 위대함과 진면목을 이해할 수 있다. 3.1운동의 주역에는 이름 없는 사람이 더 많다. 역사의 조타수(操舵手)는 당대의 지식인들이지만, 역사의 추진세력은 그 시대의 민중일 수밖에 없다.”

33인의 감옥생활은 길어야 3년이었던 데 반해 지방시위를 주도한 농민 지도자의 감옥생활은 15년이나 되었다는 지적도 있다.

김성보는 “33인 개개인을 존경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이들이 마치 민족대표로서 3.1운동을 지도한 것처럼 인식한다면 이것은 오히려 3.1운동에서 표출된 전민족의 숭고한 민족해방의 의지와 정신을 손상해버릴 수 있다그들이 보여준 모습은 그들을 민족대표라 부르기에는 너무나 나약하였다고 주장했다.


(180-181)

이완용이 어떻게 하면 기독교를 믿을 수 있느냐?”고 묻자 스코필드는 기독교를 믿으려면 먼저 이천만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한다며 일침을 놓았다고 한다. 프로그램을 제작한 김동관 프로듀서는 우리가 모르던 역사적 사실을 담고 싶었다. 독립기념관을 비롯해 공공기관에서도 비무장, 비폭력 만세운동이 있었던 삼일절과 석호필 박사에 대한 만족할 만한 자료를 찾고 보여주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특히 석 박사는 유품으로 지갑과 여권만 남길 정도로 남에게 베풀고 검소한 삶을 살아갔다고 전했다.


(220-221)

일제가 1920년에 <동아일보>의 발행을 허가한 속셈은 무엇이었을까? <조선일보>는 친일단체에게 허가한 것이므로 굳이 그 속셈을 따질 필요가 없다 하더라도 <동아일보>의 경우엔 보다 깊은 뜻이 있었을 것이다. 그 깊은 뜻은 당시 일본 고등경찰과장의 다음과 같은 술회에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동아일보>를 한다는 청년들이 장래 조선의 치안을 소란테 할 것인가 안할 것인가를 판가름하는 중심인물들임에도 틀림없습니다. 그럴수록 이런 인물들을 항상 한 자리에 모이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적을 알아야 이쪽의 방비책도 쓸 수 있을 줄 압니다. 저의 정보망만으로 그들의 움직임을 완전 파악할 수는 없습니다. 신문을 허가함으로써 그들의 동정을 낱낱이 알 수 있을 줄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모아 놓아야만 일조유사시에 일망타진하는 경찰행동을 취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단 문제가 생겼을 때는 정간이든 발행 중지든 마음대로 시킬 수도 있습니다. 이 신문을 허용하는 것은 백 가지 이득이 있을지언정 한 가지 해도 없을 줄 압니다.”


(258-259)

당시 간도에 주재한 캐나다 선교사 마틴은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먼동이 틀 무렵 일본군 보병이 무장하고 기독교 신자가 많은 이 마을을 포위하여, 먼저 노적가리에다 불을 질러 태웠다. 곧 이어 집안에 들어 있는 사람들을 밖으로 나오게 하여, 무릇 남자는 노인과 어린애를 막론하고 그 자리에서 총살하였다. 채 숨이 끊어지지 않았으면 섶에 불을 붙여 그 몸 위로 던지니, 숨이 넘어가려는 사람의 아픔을 못 견뎌 펄펄 뛰며 비명을 질렀다. 그리하여 숨진 뒤에는 그슬려져 누구의 시체인지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은 이처럼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면서도 사망자의 부모처자로 하여금 지켜보게 했다. 동시에 집에 불을 질러 온 마음이 순식간에 초토화되었다. 일병은 또 다른 마을로 가서 기독교들을 박해하였는데, 산골짜리에서 모든 촌락들이 이러한 참변을 당했다. 일병들을 만행을 자행하고 나서 병영으로 돌아가 일본 천황의 탄생일을 축하하였다. 그러한 참변을 당한 마을은 확실히 알고 있는 것만도 36개 마을이며, 어느 마을에서는 양민 145명이 죽었다고 한다. 중국은 국력이 미약해 이에 대항할 힘은 없지만, 이러한 역사상 일찍이 없던 만행을, 대부분이 기독교국으로 구성된 국제연명에 왜 제소하지 않는가.


(345)

우리들의 희망은 오직 한 가지 어린이들을 잘 키우는 데 있을 뿐입니다. 내 아들놈 내 딸년들을 자기의 물건 같이 여기지 말고 자기보다 한결 더 새로운 시대의 인물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린이를 어른보다 더 높게 대접해주십시오. 어린이를 결코 윽박지르지 마십시오. 어린이는 항상 칭찬해가며 기르십시오.”

방정환의 연설이 끝나자 참석한 천도교, 기독교, 불교단체의 소년회장과 조선소년단장 등이 어린이, 어른들에게 당부하는 말씀을 계속 한다.

돋는 해와 지는 해를 반드시 보기로 합시다.”

어린이를 책망할 때는 성만 내지 말고 자세하게 타일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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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의 예언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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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 그럼 오늘은 <꿀벌의 예언> 2권을 이야기해보자꾸나. 1권에서 주인공 르네와 르네의 지도교수 알렉상드르가 퇴행최면을 통해서 전생의 삶을 오가는 이야기를 해주었잖아. 2권에서도 비슷한 여정이 진행된단다. 르네는 최면을 통해 자신의 전생인 살뱅에게 미래의 일들을 알려주고, 살뱅은 그것을 받아 적어 <꿀벌의 예언>을 작성하게 된단다. 그런데 경쟁심과 명예욕이 충만한 알렉상드르도 자신의 전생인 가스파르에게 미래의 일들을 이야기해주었단다. 그래서 가스파르도 예언서를 쓰기 시작했어. 살뱅과 가스파르가 몸담고 있는 성전기사단은 두 사람이 예언서를 쓰고 있는 것을 알고 둘 중에 하나만 공식 예언서로 채택하기로 했어.

아무래도 오랫동안 교수를 했던 알렉상드르에게 르네가 문장력이 딸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어. 그렇다면 어떻게 이기지? 가스파르가 쓴 예언서가 선정이 된다면 과거가 다 바뀌게 되는 건가? 타임슬립은 늘 머리를 복잡하게 하는구나. 르네는 문장력에서 뒤지면 다른 방법으로 이기면 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2053년 미래의 르네를 최면을 통해 만나서, 그를 통해서 더 먼 미래까지 살뱅에게 알려주라고 했고, 2053년의 르네는 현시점을 기준으로 더 먼 미래의 일까지 살뱅에게 알려주었단다. 르네가 알렉산드르부터 훨씬 젊다는 것이 예언서 쓰는데 있어 큰 강점이었단다. 알렉산드르가 모르는 미래의 일들까지 알 수 있으니 말이야. 그런데 이왕 이렇게 된 거, 알렉상드르가 최면을 통해 다음 생의 자신을 만나고 오면 되지 않나? 최면을 통해 다음생의 자신을 만날 수는 없나?

아무튼 성전기사단의 단장인 위그 드 팽은 더 먼 미래까지 예측한 살뱅의 예언서를 공식 예언서로 채택했단다. , 뭔가 소설이 산으로 가고 있는 기분. 그런데 살뱅이 침입자의 공격으로 예언서는 잃어버리고 쇠뇌를 맞고 죽고 말았어. 르네는 알렉산드르의 전생인 가스파르의 짓이라고 생각했어. 경쟁에서 져서 말이야. 르네는 알렉산드르에게 분풀이를 했지만, 알렉산드르는 결백을 주장했단다. 설령 가스파르가 그랬다고 해서 전생의 책임까지 현생에서 져야 하는 것인가?

지구를 구하기 위해서는 <꿀벌의 예언>이라는 예언서를 찾아야 하는데, 돌아가야 할 전생이 죽었으니 이를 어쩌지? 그런데 르네의 전생이 살뱅 한 명뿐이었겠니? 르네는 최면을 걸어서 살뱅이 죽고 다음 생에 태어난 사람을 만나러 갔어.

살뱅은 죽고 에브라르로 태어났는데, 르네가 최면을 걸어 만난 에브라르는 17살이었어. 때는 1291. 에브라르도 성전기사단 소속이었는데, 성전기사단 단장으로부터 특별한 임무를 부여 받았는데, 예언서를 지키라는 것이었어. 당시 에브라르가 있는 지역은 아크레라는 지역이었는데, 르네는 그곳에 예언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아크레 지역으로 향했단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굳이 아크레에 갈 필요가 있나 싶구나. 전생을 따라 계속 <꿀벌의 예언>이 마지막에 보관된 장소로 가면 되지… 1291년에 아크레에 그 예언서가 있다고 아직도 그곳에 있을 가능성이 얼마나 있다고아빠가 예상했던 것처럼  에브라르는 아크레에서 마지막 기사단의 단원으로 항전하다가 키프로스 섬으로 도망갔단다. 르네 일행은 이번에는 키프로스 섬으로 향했단다. 허허, 답답하구나.

이 즈음의 알렉상드르의 전생은 클로틸데라는 사람인데, 에브라르가 다시 예언서를 찾는데 클로텔데가 도움을 준단다. 에브라르는 파리 성전기사단 단장에게 예언서를 전달하는 임무를 받고 파리로 행했단다. 이번에는 파리? 르네 일행은 다시 파리로 행했단다. 그렇게 예언서를 쫓아다닌다고 해도 이미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라서 바뀔 일도 없을 텐데, 가만히 앉아서 전생을 쭉 좇아가다 보면 예언서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지 모르겠구나. 읽는 아빠가 좀 답답하더구나.


1.

파리에서 메델리크 교수와 오델리아를 만났단다. 예루살렘에서 안내를 해주었던 메델리크 교수와 그의 아내 오델리아 기억나지? 오델리아는 꿀벌 전문가여서, 르네가 지하성전단에서 발견한 밀납 속에 박제된 여왕벌을 오델리아에게 주었었어. 오델리아는 그 여왕벌의 연구결과를 파리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발표했단다. 밀납에서 발견된 여왕벌은 등검은말벌을 처치할 수 있는 면역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했어. 그래서 그 여왕벌을 회생시키면 등검은말벌에 면역체계를 가진 꿀벌을 번식시킬 수 있어, 꿀벌의 멸종을 막일 수 있다고 했어.

그런데 그 학술대회에서 르네는 뜻밖의 사람을 만났단다. 바로 베스파였어. 1권의 첫 부분에서 인구폭발과 세계3차대전이 일어난 미래를 보고와서 사고를 당한 그 사람이야. 그래서 르네를 고소해서 르네가 더 이상 최면 공연도 못하고 빚을 떠안게 되었잖아. 알고 보니 베스파는 오델리아의 지인이었어.

르네와 알렉상드르는 다시 최면에 빠졌단다. 그리고 1권에서 퇴행최면에 실패했던 알렉상드르의 딸 멜리사도 다시 시도한 끝에 퇴행최면에 성공하여 전생을 탐험할 수 있게 되었단다. 멜리사 역시 르네와 알렉산드르의 주변인물로 등장하여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단다.

 파리로 온 예언서의 행방은 어떻게 되었을까? 르네와 알렉산드르, 멜리사는 그들은 전생을 통해 시대를 거슬러 올라와서 예언서가 3개의 필사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파리의 소르본대학, 그러니까 알렉산드르가 일하고 있는 대학교에도 하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단다. 결국 돌고 돌아 자신이 일하고 있는 대학교에 있었구나. 파랑새인가?

그들은 소르본대학교 도서관에 있는 예언서 한 권을 발견했단다. 그런데 그때 베스파가 나타나 총으로 위협해서 예언서와 여왕벌을 빼앗아갔단다. , 도대체 베스파의 정체는 무엇인가?  베스파는 어벤저스의 타노스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단다. 지구의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 수를 줄여야 한다고 생각한 거야. 베스파는 미래에 가서 인구폭발의 지구의 현실을 보고, 인구의 수를 줄이기 위해 음모를 꾸몄던 거야. 그래서 답을 찾은 것이 등검은말벌이었고, 등검은말벌을 세계에 퍼뜨리고 꿀벌을 멸종위기에 만든 것도 바로 베스파의 음모였던 거야. 그런데 르네 일행이 나타나 그녀의 계획에 차질이 생긴 거야.

이제부터는 르네 일행과 베스파의 일전. 결국 르네 일행은 예언서와 여왕벌을 되찾고, 예언서의 내용대로 2053년 이후 다시 여왕벌을 회생시켜서 인류 평화를 되찾게 된단다. 그런데 지금 여왕벌을 되살려서 처음부터 꿀벌을 멸종 안 되도록 하면 되지, 2053년에 가서 세계3차 대전도 다 일어나 사람들이 많이 죽은 다음에 여왕벌을 되살리게 된 거지? 아빠가 뭔가 놓쳤나? 아니면 <꿀벌의 예언>이라는 예언서에 적힌 대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 때문인가?

….

지은이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기후 위기와 지구온난화라는 인류의 총체적인 문제점을 소설의 소재로 채택한 것은 잘 한 것 같구나. 꿀벌이 사라지고 있고, 그것이 우리 인류에게 큰 위기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을 텐데, 경각심도 불어넣어주는, 좋은 역할을 한 것 같구나. 하지만, 너무 쉽게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설정이 너무 판타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리고 역사와 과학을 포괄하겠다는 생각을 하셨는지, 노스트라다무스, 프리메이슨 등도 끌어들였는데 적절했는지 의문이 들었어.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오랜만에 베르나르 베르베르 소설을 읽었는데, 이젠 그의 소설을 읽기에는 아빠의 나이가 너무 많아졌나? 이런 생각도 들었단다.

….

소설의 줄거리를 자세히 해주려고 메모도 좀 많이 했는데, 예언서를 쫓아 이 동네, 저 동네 돌아다니는 이야기라서 많이 생략했단다. 밀린 책읽기와 독서편지를 위해서

오늘은 이상.


PS,

책의 첫 문장: 멜리사가 르네의 방갈로 문을 두드린다.

책의 끝 문장: <꿀벌의 예언>.


"키프로스섬은 솔로몬왕 시절에 구리 생산지로 유명했어. <키프로스>라는 이름도 그리스어로 <구리>를 뜻하는 쿠프로스에서 왔지. 이 섬도 이스라엘 못지않게 외세의 각축장이 됐어.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현대에 들어서는 영국까지 눈독을 들였지.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유대인들이 엑소더스호를 타고 이스라엘 땅으로 향하던 중 영국군에 의해 유럽으로 강제 송환됐는데, 그들 중 일부는 다른 불법 체류자들과 함께 이 섬에 수용됐지. 이 사건은 나중에 미국 배우 폴 뉴먼이 주연한 영화 <엑소더스>로 만들어지기도 했어." - P134

"등검은말벌의 벌집은 제거하지 않으면 이듬해에 네 개로 늘어납니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번식하는 거죠. 2005년, 그러니까 토냉스시에 최초로 등검은말벌 여왕벌이 유입된 지 딱 1년 만에 로트에가론 지방 전체로 등검은말벌이 퍼져 꿀벌 군락의 30퍼센트가 파괴됐어요. 2006년에는 아키텐 지방에까지 피해가 확산되더니, 2009년에는 급기야 프랑스 전역에서 등검은말벌이 발견됐어요. 이때부터 사람의 사망사고도 잇따랐죠. 등검은말벌의 침에 쏘이면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 혈관 부종으로 이어져요. 침을 한번 박아 넣으면 빼지 못하고 죽는 꿀벌과 달리 등검은말벌은 여러 번 침을 쓸 수 있어요. 그러는 사이 우리 몸에 많은 양의 벌 독이 주입돼 사망에 이르게 되는 거예요. 프랑스에서만 매년 1백여 명이 등검은말벌에 쏘여 사망한다는 통계가 있어요." - P213

"꿀벌은 개미, 등검은말벌과 함께 말벌에서 분화돼 나왔죠. 고릴라와 침팬지, 인간이 같은 조상을 둔 영장류 동물인 것과 같아요. 원시 말벌을 조상으로 둔 개미와 꿀벌, 등검은말벌은 일종의 <사촌 형제>인 셈인데, 먹이가 이들을 저마다 다르게 진화시켰다고 이해하면 돼요. 꿀벌은 식물성, 등검은말벌은 동물성, 개미는 잡식성이죠. 이 세 막시류 곤충은 여러 가지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커다란 공통점이 있어요. 군집 생활을 하며 한 마리의 여왕을 중심으로 계급 체계가 짜여 있죠." -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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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5)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이다


모든 꽃나무는

홀로 봄앓이하는 겨울

봉오리를 열어

자신의 봄이 되려고 하는


너의 전 생애는

안으로 꽃 피려는 노력과

바깥으로 꽃 피려는 노력

두 가지일 것이니


꽃이 필 때

그 꽃을 맨 먼저 보는 이는

꽃나무 자신


꽃샘추위에 시달린다면

너는 곧 꽃 필 것이다


(19)

투표용지에 투표했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네가 틀릴 수도 있다중에서

내가 틀릴 수도 있다에 투표했다

나는 바다이다라고 노래하는 물방울에게 투표했다


나는 별들이 밤하늘에 쓰는 문장에 투표했다

삶이 나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라

내가 삶에게 화가 난 것이라는 문장에,

아픔의 시작은 다른 사람에게 있을지라도

그 아픔 끝내는 것은 나에게 달려 있다는 문장에,

오늘은 나의 몫, 내일은 신의 몫이라는 문장에 투표했다


       - <나는 투표했다> 중에서


(21)

한 사람의 진실



한 사람이 진실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한 사람이 진실하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진실한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한 사람이 진실한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

모두가 거짓을 말해도

세상에 필요한 것은 단 한 사람의 진실

모든 새가 날아와 창가에서 노래해야만

아침이 오는 것은 아니므로

한 마리 새의 지저귐만으로도

눈꺼풀에 얹힌 어둠 밀어낼 수 있으므로

꽃 하나가 봄 전체는 아닐지라도

꽃 하나만큼의 봄일지라도


(34-35)

흉터의 문장



흉터는 보여 준다

네가 상처보다 더 큰 존재라는 걸

네가 상처를 이겨 냈음을


흉터는 말해 준다

네가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

그럼에도 네가 살아남았음을


흉터는 물에 지워지지 않는다

네가 한때 상처와 싸웠음을 기억하라고

그러므로 흉터를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그러므로 몸의 온전한 부분을

잘 보호하라고


흉터는 어쩌면

네가 무엇을 통과했는지 상기시키기 위해

스스로에게 화상 입힌 불의 흔적

네가 네 몸에 새긴 이야기


완벽한 기쁨으로 나아가기 위한

완벽한 고통


흉터는 작은 닿음에도 전율하고

숨이 멎는다

상처받은 일을 잊지 말라고

영혼을 더 이상 아픔에 내어 주지 말라고


너의 흉터를 내게 보여 달라

나는 내 흉터를 보여 줄 테니

우리는 생각보다 가까우니까


(52-53)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뭇잎의 집합이 나뭇잎들이 아니라

나무라고 말하는 사람

꽃의 집합이 꽃들이 아니라

봄이라는 걸 아는 사람

물방울의 집합이 파도이고

파도의 집합이 바다라고 믿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길의 집합이 길들이 아니라

여행이라는 걸 발견한 사람

절망의 집합이 절망들이 아니라

희망이 될 수도 있음을

슬픔의 집합이 슬픔들이 아니라

힘이 될 수도 있음을 잊지 않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벽의 집합이 벽들이 아니라

감옥임을 깨달은 사람

하지만 문은 벽에 산다는 걸 기억하는 사람

날개의 집합이 날개들이 아니라

비상임을 믿는 사람

그리움의 집합이 사랑임을 아는 사람

(57)

꽃은 무릎 꿇지 않는다

꽃에게서 배운 것

한 가지는

아무리 작은 꽃이라도

무릎 꿇지 않는다는 것

타의에 의해

무릎 꿇어야만 할 때에도

고개를 꼿꼿이 쳐든다는 것

그래서 꽃이라는 것

생명이라는 것


(82-83)

우리가 입맞춤하는 동안



우리가 입맞춤하는 동안

북극의 빙하는 무너지고

시리아 난민들은 영국 해협에서 떠오르고

카불의 여성들은 검은 히잡 속에 숨는다


우리가 입맞춤하는 동안

티베트 승려들은 몸에 불을 붙이고

후쿠시마에서는 원전수가 바다로 흘러가고

멕시코인 밀입국자들은 트럭 안에서 숨이 막힌다


우리가 입맞춤하는 동안

우한에서는 바이러스가 폐를 잠식하고

갠지스강은 성스러운 중금속으로 오염되고

인도의 노동자들은 수천 리 걸어 집으로 간다


우리가 입맞춤하는 동안

바그바드에서는 자살 폭탄 테러가 이어지고

미얀마에서는 시위 군중이 영화처럼 쓰러지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어린이 병원에 미사일을 쏜다


우리가 입맞춤하는 동안

알래스카에서는 신생아가 울음을 터뜨리고

이스탄불에서는 수도승들이 회전춤을 추고

제주 바다에서는 해녀가 숨비소리 내며 자맥질한다


우리가 입맞춤하는 동안

지구는 초속 30킬로미터로 태양 둘레를 내달리고

야생 기러기는 희망의 날갯짓으로 대륙을 건너고

혹등고래는 새끼 업고 북극해로 이동한다


우리가 입맞춤하는 동안

신이 하루를 더 허락하고

맹인 소녀는 점자로 시를 읽고

아이는 나무 아래서 주운 새를 품에 안는다


(114-115)

접촉 결핍



만약 자신이 죽었는데 그 사실을 모른다면

당신이 허기를 느낄 것이다

뱃속 허기가 아니라 피부의 허기를

당신의 피부는 접촉을 원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가벼운 포옹, 어루만짐, 우연한 스침도

봄바람마저 당신의 얼굴을

간지럽힐 수 없다 다가가 손을 내밀지만

뼛속까지 투명한 혼이 되어

누구도 그 손 잡을 수 없고

그 손 또한 다른 손 잡을 수 없다

살아 있을 때 당신은 접촉을 두려워했다

상처 줄까 상처 입을까

그림자 인형으로 살았다

서로 맞닿은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아무 접촉도 하지 않는 그림자놀이 속

인형으로

하지만 육체가 없는 지금

당신이 갈망하는 것

당신이 질투하는 유일한 것은

서로 만지고 입 맞추고 껴안는 행위

그것들 모두 가능했던 때를

그리워하면서

격렬한 통증 같은 접촉 결핍으로

혼이 점점 희미해져 가면서


(122-123)

늦게 출가해 경전 외는 승려가 발견한 구절


어떤 꽃도

거짓으로 꽃을 피우지 않는다


어떤 새도

절반의 마음으로 날갯짓하지 않는다


어떤 번개도

건성으로 파열하지 않는다


어떤 바다도

절실함 없이 파도치지 않는다


이 길에 온 존재 쏟아붓지 않는 것은 없다

자신이 속한 세상과

일체가 되기 위해

다 걸어야 한다

아무리 작은 기회라도

온몸을 던지는 씨앗처럼


(135)

달에 관한 명상



완전해야만 빛나는 것은

아니다

너는 너의 안에 언제나 빛날 수 있는

너를 가지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너보다

더 큰 너를

달을 보라

완전하지 않을 때에도

매 순간 빛나는 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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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8)

스스로 싸우지 않는 자에게 차례질 권리는 없단 말입니다. 말입니다, 김알렉산드라가 했던 말 위로 아주 오래전 다른 한 사람이 내게 했던 말이 메아리처럼 겹치며 귓전에 울렸다. 부디, 당신이 양반과 침략자, 남자의 편에 서지 않기를 바랍니다. 조선에서 양반보다 더한 계급이 남자입니다. 양반이나 아니나 다 그 더러운 계급의 혜택을 누린단 말입니다. 말입니다, 백무아가 조선을 떠나며 남긴 그 말을 들은 가을로부터 얼마나 많은 계절이 바뀌고 해가 지나간 다음, 나는 메아리가 되어 돌아온 그녀의 말을 듣고 있는가. 모든 차별과 억압, 침략에 반대하는 진정한 인민의 권력. 참된 민주공화정……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의 분신과 같은 소총을 꺼내들고 가늠자를 들여다 봤다.


(549)

고려령 1고지를 떠나기 전에 나는 결과 특임분대 여덞 명의 분대장으로 남은 지휘관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나라가 망한 이래로 우리가 의병이 되어 목숨을 내걸고 싸운 것은 반드시 이길 수 있을 것이라 믿어서는 아니었소. 이기고 지고를 떠나 오직 의로써 싸워왔소. 그렇게 싸우다가, 저격여단의 창설자 김수협과 항일연합포연대의 청년중대장 현창하, 부중대장 이정재,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이 전사했소. 박한과 리범진이 스스로 목숨을 내던지며 항거했고, 허위와 박상진이 장렬하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소. 그들이 싸워왔기에 오늘의 싸움이 있소. 오늘 싸워내야 내일의 싸움도 있소. 이번에 싸우지 않으면 다음 싸움도 없소. 우리가 포기하지 않아야 언젠가, 대한의 누군가가 못다 한 우리의 이 싸움을 이어갈 것이오. 그렇지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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