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처럼 문지 스펙트럼
다니엘 페낙 지음, 이정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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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 책은 SNS을 통해서 알게 된 책이란다. 이 책에 대한 호평과 지은이에 대한 호평이 있었어. 아빠는 모르고 있던 작가인데 말이야. 그래서 그의 책 몇 권을 덥석 샀단다. 다니엘 페나크. 20년 넘게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어린이를 위한 책도 많이 출간하고, 어른들을 위한 책도 많이 썼다고 하는구나. 아빠가 이번에 산 다니엘 페나크의 책들 중에는 너희들을 위한 책도 있어. 나중에 같이 읽어보자꾸나.

그리고 제목이 가장 마음에 드는 <소설처럼>이라는 책을 집어 들었단다. 생각보다 무척 얇은 책이더구나. 아빠는 이 책을 펴기 전까지는 소설인 줄 알았어. 그런데, 에세이더구나. 본격적으로 책에 들어가기 전에 앞머리에 이런 문장이 써 있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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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이 책을 강압적인 교육의 수단으로 삼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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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에 관한 책인가? 그런데 교육의 수단으로 삼지 말라? 20년 넘게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경력을 가진 지은이가? 호기심이 일었단다. 그리고 다음 장을 폈는데, 강력한 첫 문장을 만나게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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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읽다라는 동사에는 명령형이 먹혀들지 않는다. 이를테면 사랑하다라든가 꿈꾸다같은 동사처럼, ‘읽다는 명령형으로 쓰면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물론 줄기차게 시도해볼 수는 있다. “사랑해라!” “꿈을 가져라!”라든가, “책 좀 읽어라, 제발!” “, 이 자식, 책 읽으라고 했잖아!”라고.

네 방에 들어가서 책 좀 읽어!”

효과는?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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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책들 중에서 가장 강렬한 첫문장이 아닐 수 없었단다. 현실을 꿰뚫는 비유. ‘읽다의 명령어는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는 말. 하지만,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명령어 중에 하나. 어쩌면 그 명령어로 인해 아이들과 부모들 사이가 점점 멀어지는 것은 아닌가 싶구나.

.

1.

학교를 들어가기 전 아이들은 대부분을 좋아한단다. 그러나, 학교에 들어가고, 나이를 하나 둘 먹고 나면 책읽기는 점점 흥미를 잃어가고, 사춘기에 접어들면 극에 달하게 된단다. 그러면 그때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명령어를 가장 많이 듣게 될 거야. 이 책은 왜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책읽기에 대한 거부 반응이 생겨났는지 알아보고, 다시 책읽기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단다.

지은이 자신이 학교 선생님의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경험을 통해 얻어낸 답을 알려준단다. 답안을 알기 전에 먼저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의 모습을 보자꾸나. 사춘기에 접어들게 되면 신체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도 같은 사람 맞나 할 정도로 큰 변화가 일어난단다. 그 변화는 대개 (부모의 처지에서 보면) 좋지 않은 방향으로 변하게 된단다. 우리 아이는 안 그럴 거야. 하는 기대는 금물이란다. 우리나라에서도 2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잖니.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사춘기 학생들도 마찬가지인가 보구나. 다음을 한번 읽어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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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그런데 이제 어느샌가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가 제 방에 틀어박혀, 읽지 않는 책을 마주하고 있다. 어디론가 가버리고 싶은 아이의 열망이 아이와 펼쳐진 책 사이에 희뿌연 막이 되어 행간이 흩뜨린다. 아이는 방문을 닫아건 채 문을 등지고 창 쪽을 향해 앉아 있다. 48페이지. 여기까지 읽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지 차마 헤아려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책 전체는 정확하게 466페이지다. 그러니까 거의 500페이지나 마찬가지라는 소리다. 500페이지! 대화라도 좀 섞여 있으면 좋으련만! 어림없는 소리다! 페이지마다 얼마 되지도 않은 여백을 두고 좁쌀만 한 글자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새카맣게 행을 이루며 빼곡히 이어진다. 어쩌다 한번씩 가물에 콩 나듯 드문드문 대화가 섞일 뿐이다. 한 인물이 상대방에게 건네는 말을 가리키는 따옴표(“ ”)가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라도 되는 양 반갑기 그지없다. 하지만 상대방은 아무런 대꾸가 없다. 그러고는 다시 12페이지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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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다 보니 미소가 지어지더구나. 아빠의 사춘기 시절도 생각이 나고, 앞으로 너희들의 어떤 사춘기 시절을 보낼까, 생각이 들기도 하고이런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도 절대 실망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사춘기에는 이런 습성을 갖게 되니까 말이야. 이런 학생들에게 두꺼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오라고 하니 그것보다 악몽이 어디 있겠니. 책이라는 것은 그리고 사람을 아래쪽으로 끌어당기잖니.. 이 글을 읽고 또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하겠구나, 싶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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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더군다나 책이 지니는 무게란 한결같이 사람을 아래쪽으로 잡아당기는 성향이 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이는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쉽게 무너질 가벼운 결심을 하고 의자에 앉았다. 그러나 몇 페이지도 못 읽고, 아이는 익히 알고 있는 그 끔찍한 무게에 짓눌리기 시작한다. 책의 무게, 지루함의 무게, 아무리 기를 써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버거움의 무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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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생들과 20년 넘게 생활한 지은이라서 그런지 그들의 습성을 완벽하게 꿰뚫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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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6)

마냥 늑장을 부리다가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야 마지못해 저녁 식탁에 얼굴을 들이민 아이는 일언반구 말이 없다. 사춘기 특유의 무게를 잡고 앉아서, 한마디 사과는커녕 식구들 간의 대화에 끼려는 최소한의 성의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러고는 식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후닥닥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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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지만 방법이 있단다. 사춘기의 학생들이 책읽기의 즐거움을 사라진 것이 아니란다. 잠시 길을 잃었을 뿐이라고 지은이는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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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독서의 즐거움이 사라져간다고 해서(다들 우리의 아들딸이, 요즘 젊은 아이들이 책읽기를 싫어한다고들 하니까), 아주 까마득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잠시 길을 잃었을 뿐이다.

그 즐거움은 얼마든지 되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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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즐거움을 다시 찾는 방법은 어려운 것이 아니야. 아이들이 어렸을 때, 책읽기를 좋아하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된단다. 엄마, 아빠가 책을 읽어주면 얼마나 좋아했었니? 더 읽어달라고 조르던 시절 말이야. 아이들을 글을 읽고 나서는 더 이상 책 읽어주기를 하지 않게 되었지. 눈으로 조용히 혼자 책을 읽기 시작하였지. 그게 문제라는 것이지. 진정한 책읽기는 소리내어 책을 읽는 것이고, 아이들은 여전히 누군가 읽어주는 것을 듣는 것을 좋아하는 거야. 사춘기에 접어든 학생들에게도 말이야.

그래서 지은이는 아이들을 가르칠 때, 국어 수업 시간에 고전을 처음부터 읽어주었다고 하는구나. 그 전까지 볼 수 없었던 집중력을 아이들이 보였대. 한 시간 동안에 읽어봐야 얼마나 많이 읽겠니. 아이들은 뒷이야기를 궁금해서 스스로 찾아 있는 아이들도 생겨났다는 거야.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교과서에 실린다면 해석해야 하고 설명해야 하는 작품이 되어야 해서 학생들이 가장 거부하는 작품이 되는 것은 동서고금을 따지지 않는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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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미국 고등학생들에게는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 크나큰 골칫거리라는 말을 해주자, 얼마 전에 그 책을 너무나도 재미있게 읽은 벌링턴과 바이크족이 가장 놀라워했다. 단지 <호밀밭의 파수꾼>이 교과 과정에 포함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니 미국의 한 교사가 학생들에게 샐린저를 강매하느라 진땀을 흘리는 동안에, 한쪽 구석에서는 텍사스의 어떤 바이크족이 에마 보바리에게 푹 빠져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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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8-179)

초등학생이건 고등학생이건 적어도 학교를 다니는 동안은 늘 작품을 해석하고 설명하는 숙제가 아이들을 따라다닌다. 그런 식의 과제는 아이들을 질리게 만들어 급기야 책과 벗할 기회마저도 빼앗기기 십상이다. 20세기 말인 지금도 사정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주인처럼 군림하는 설명에 가려, 정작 설명하는 대상은 뒷전으로 밀려 보이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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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 답은 심플하단다. 책을 읽으라고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어주면 되는 것이야. 그래서 아빠도 한번 해봤어. 너희들이 읽었으면 하고 사 둔 지 꽤 오래되었는데, 너희들이 책장도 펴지 않는 책 하나를 집어 들고, 잠들기 전에 한 챕터씩 읽어주었어. 그러자 너희들이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고 더 읽어달라고 하더구나. 하하, 지은이의 말이 딱 맞네. 그리고 아빠도 오랜만에 너희들에 책을 읽어주니 기분이 좋더구나. 그래서 한 챕터 읽어 주고아빠가 회사일로 바빠 늦게 퇴근한 날은 읽어주지 못해서, 진도가 좀 느리기도 했지만, 엊그제 한 권을 마쳤잖니..

정말 뿌듯하더구나. 그래서 아빠는 계속 해보려고그리고 다음에 읽을 책으로 정한 것이 이 책의 지은이 다니엘 페나크가 어린이들을 위해 쓴 <늑대의 눈>이란다. 또 같이 읽어보자꾸나.

….

마지막으로 독서 지도를 할 때 아이들에게 주어야 할 권리를 적은 것이 있는데, 그 내용이 재미있어 발췌해 보았단다. 아빠도 너희들에게 아래의 모든 권리를 부여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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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독서에 관한 한, 우리 독자들은 스스로 모든 권리를 허용한다. 우리가 이른바 독서 지도를 한다면서 청소년들에게는 일절 허용하지 않았던 권리를 비롯해서 말이다.

1) 책을 읽지 않을 권리

2) 건너뛰며 읽을 권리

3)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4) 책을 다시 읽을 권리

5) 아무 책이나 읽을 권리

6) 보바리슴을 누릴 권리

7) 아무 데서나 읽을 권리

8) 군데군데 골라 읽을 권리

9) 소리 내어 읽을 권리

10)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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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읽다라는 동사에는 명령형이 먹혀들지 않는다.

책의 끝 문장: 살아 계시건 돌아가셨건 간에 그분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보름이라고요? 400페이지(사실은 500페이지다)나 되는 책을 보름 만에 다 읽으라고요? 말도 안 돼요, 선생님!"
선생님에게 타협이란 없다.
정말 골 때리는 책이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는 영겁의 돌덩이, 지겨움 그 자체다. 그게 책이다. 그냥 ‘책’ 말이다. 아이는 논술 과제를 쓸 때 책을 ‘책’이라고밖에 달리 뭐라 이름 붙일 수가 없다. 이 책이든 저 책이든 아이에게는 그저 그렇고 그런 책일 뿐이다. - P24

"아이는 냉철하기 그지없는 훌륭한 독자입니다."

아이는 누구나 훌륭한 독자가 될 자질을 타고난다. 그리고 주위의 어른들이 몇 가지 지침만 잊지 않는다면 아이는 언제까지고 훌륭한 독자로 남을 것이다. 우선은 어른들이 자신의 능력만을 내세우려 들기보다는, 아이에게 열정을 불어넣어 줘야 한다. 무조건 암기와 복습만을 강요할 게 아니라, 배우고자 하는 열의를 북돋워 줘야 할 것이다. 모퉁이에 서서 아이가 도착하기만 기다릴 게 아니라, 아이와 함께 노력하는 자세를 가져볼 일이다. 어떻게든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들기보다는, 기꺼이 아이에게 저녁 시간을 내어줘야 한다. 미래를 담보로 아이에게 으름장을 놓기보다는 아이의 현재가 한껏 펼쳐질 수 있도록 마음 써야 한다. 한때는 아이의 더없는 즐거움이었던 일이 결코 마지못해서 하는 고역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자면 아이가 그 즐거움을 맘껏 누릴 수 있도록 기다리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 P67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싶다. 생각을 추스르고 교사는 다시 아이들의 과제물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한낱 과제물 채점자에 지나지 않는 교사의 고독감을 그 누가 알겠는가?) 몇 장을 채 넘기기도 전에, 어느새 눈에 익은 낱말이 태반이다. 그렇고 그런 논지가 계속 반복되는 상황이다. 울컥 짜증이 치민다. 마치 반 아이들이 모두가 그에게 무슨 경전이라도 읊어대고 있는 듯하다. 책을 읽어야 한다. 책을 읽어야 한다!라고, 눈에 들어오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전혀 책을 읽지 않는다는 사실을 뻔히 드러내고 있는데도, 읽어야 한다니……! 그것은 끝없이 반복될 뿐인 공허한 교육적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 P94

우선 이제까지의 정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이제까지 우리 인격을 형성해온 책읽기란 대개 순응하고 따르는 책읽기라기보다는, 무언가에 반하고 맞서는 책읽기였다. 즉 이제껏 우리는 마치 세상과 등지듯 현실을 거부하고 현실과 대립하기 위해 책을 읽어왔다. 그래서 때론 우리가 현실 도피자처럼 여겨지고 현실마저 우리가 탐닉하는 독서의 ‘매력’에 가려져 아득해지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우리는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는 도망자,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탈주자인 것이다. - P103

결국 아이들은 두 세계에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두 세계와 단절되어 있다. 아이들은 (탄복할 정도로!) 세련되고 ‘쿨’한데, 학교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끊임없이 아이들을 괴롭히고 혹사시킨다. 아이들은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다. 그들은 언젠가 어른이 되리라는 막연한 기대 속에서 끝없는 항해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유로워지기를 갈망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스스로 버림받았다고 생각한다. - P140

그렇다고 무슨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 장족의 발전을 이루기까지 교사가 한 일이라곤 거의 없다. 책읽기의 즐거움이란 결코 멀리 있지 않았다. 다만 읽어도 모를까 봐 지레 겁을 먹었던 (그야말로 오랜 고질병과도 같은) 그 말 못 할 두려움으로 인해 줄곧 사춘기 아이들의 기억 저편에 묻혀 있었을 뿐이다.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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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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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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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 평전
김희곤 지음 / 푸른역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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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이육사라는 시인을 모르는 없지 않을까 싶구나. 학창시절 교과서에 이육사의 시가 실렸으니까 말이야. 청포도, 광야그 강렬하고도 뜨거운 시들…. 그리고 감옥에 수감되어 받아든 수인번호 264를 따서 이름을 이육사로 바꿨다는 일화까지일제시대 저항시인의 작품은 시험에도 자주 나오기 때문에 그의 시는 달달 외우고, 철저하게 분석을 해야만 했단다. 요즘 교과서에도 그의 시가 실려 있는지 모르겠구나.

그러나 그의 삶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아빠도 사실 그의 대표적인 시만 알고 있었지, 그의 삶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단다. 그러던 중 이 책을 알게 되었단다. 이육사 평전. 시인이기 전에 독립투사였던, 그의 짧은 삶을 그려 낸 이야기. 1904년 태어나 1944년 돌아가시다. 그야말로 우리 현대사의 가장 암흑의 시대에 짧은 삶을 사셨구나. 광복 일 년을 앞두고 눈을 감으셨다니우리 죽음 이후에도 영혼이 남아 있었으면 좋겠구나. 그래야 광복된 조국을 보셨을 테니. 비록 다시 둘로 갈라질지언정….

1.

이육사 정도 되면 상당히 유명하신 분인데, 그에 대한 자료가 이렇게 적은 줄은 정말 몰랐단다. 그 동안 이육사에게 잘못 알려진 부분들이 많았다고 하는구나. 그나마 이 책의 지은이 김희곤님이 여기저기서 이육사의 자료들을 모아 잘못 알려진 부분들을 바로 잡았다고 하는구나. 하지만, 여전히 그의 행적에 있어 추정한 경우도 많더구나. 그가 삶을 마감한 곳도 베이징의 동창후뚱 1호라는 곳도 정확히 어디인지 모른다고 했어. 안타깝구나.

이육사. 수인번호를 따서 지었다는 이름그가 어렸을 때 부모님으로 받은 이름은 이원록이었어. 그는 이육사라는 이름 이외도 이활 등 여러 이름을 사용했단다. 그의 나이 26살 때 광주학생항일투쟁의 여파로 일본 경찰은 전국적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잡아들였는데, 대구에서 대구청년동맹 간부로 있던 이육사도 체포되었어. 그때 수인번호가 264였다고 하는구나.

다시 풀려나서 조선일보사에서 기자로 일했는데, 그때 사용한 필명 중에 하나가 대구 이육사(二六四)였다고 하는구나. 그러나 그의 공식 한자는 李陸史라고 해이육사라는 이름에 한자를 여러 개로 바꾸어 썼다고 하는구나. 二六四로 시작했지만, 肉瀉(고기를 먹고 설사하다)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하고, 戮史(역사를 죽이다)라는 이름도 사용하기도 하고, 마지막에 陸史 정했다고 하는구나. 그는 기자로도 일하면서 이러 평론을 썼다고 하는데, 국내 정세뿐만 아니라 국제정세에 대한 비판의 글들도 많이 썼다고 했어. 평론을 쓸 때는 필명을 이활을 사용했다고 했어.

2.

1932년 그의 나이 스물여덟 살에 그는 중국으로 길을 떠났단다. 독립운동을 하려고 말이야. 아빠가 이육사가 그런 무장투쟁을 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고, 그의 행동하는 지식인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단다. 이육사는 의열단을 이끄는 김원봉이 운영하는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대. 그렇다고 정식 의열단원이 된 것은 아니었어. 김원봉과 사이가 썩 좋지 않다고 했어. 당시 독립운동의 최고봉이었던 김원봉과 대립각을 세울 정도라면, 이육사라는 분은 자신의 주장도 뚜렷했었던 것 같구나.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마치고, 상해에서 루쉰을 만나기로 하고, 다시 국내로 들어왔다고 했어. 그러다가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동기생이자 처남인 안병철이 체포되면서, 체포되었다가 기소유예로 풀려나고, 다시 글을 쓰기도 했어. 이 시절에 시들을 비롯하여 많은 글을 썼다고 했어. 그렇다고 그의 독립운동의 의지가 중단된 것은 아니란다.

그리고 1943년 다시 중국으로 가서 무력투쟁을 위한 준비를 했어. 하지만 국내에 귀국했다가 체포되어.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다시 베이징으로 붙들려갔어. 그리고 1944 1 16…. 베이징 동창후뚱 1호라는 곳에서 돌아가시고 말았어. 나라 없이 살았던 짧은 삶. 그의 삶은 어떤 삶이었을까. 조국을 되찾고 노력했던 많은 분들을 위해서라도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나라가 되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한 이들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깝구나.

이육사.. 그를 그리면서 그의 시 <광야>를 다시 한번 소리 내어 읽어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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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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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우리는 일반적으로 그를 이육사(李陸史)라고 부른다.

책의 끝 문장: 이미 광복된 날을 내다보며 미리 민족의 가슴에 노래를 불어넣은 그 자신이 곧 백마 타고 온 초인이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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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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