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8)

남로당이 불법화되자 그때부터 서청의 민중 탄압은 더욱 포악해졌다. 이 무렵에 많은 서청 단원들이 경찰로 특채되었고 제주경찰서 서장도 서청 출신이 되었다. 그야말로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한라산에 백두산 호랑이가 왔노라! 공포 분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도 고조되었다. 단순한 두려움이 아니라 무시무시한 공포였다. 구타가 일상화되어 한번 걸려들면 언제 끝날지 모를 고문과 구타를 견뎌야 했다. 남로당의 민애청 소속 청년들은 지하로 더욱 깊이 숨어들 수밖에 없었다. 민애청에 속하지 않은 청년들도 잡히면 민애청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가 어려워 무조건 도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사상이 있든 없든, 뭔가 한 일이 있든 없든 간에 잡히기만 하면 무조건 개 패듯이 했다.  


(41-42)

미군정은 서청에 이어 도내 우익 청년 단체도 경찰 보조 인력으로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10월 말경에 미군방첩대의 지휘 아래 몇 개의 군소 우익단체를 합친 단일조직체 대동청년단(대청)이 결성되었다. 그동안 여론에 밀려 좌익이 붙인 삐라를 떼고 그 위에 자기네 삐라를 덧붙이는 따위의 소극적인 활동밖에 할 수 없었던 그들이 아연 활기를 띠며 수배당한 청년들이 지하로 잠적하여 생긴 빈 공간을 차지하려 달려들었다. 서청과 마찬가지로 경찰을 도와 피의자 검거에 나서는 무서운 존대로 변신한 것이었다. 우익 학생 조직인 학생연명(학련)의 활동도 활발해졌다. 그들은 세를 불리려고 시국 강연회, 삐라와 포스터 살포 활동을 맹렬히 벌여나갔다. 이제 법을 쥔 자는 우리다! 우리가 법이다! 우리 말이 법이다! 우리가 빨갱이라고 하면 빨갱이다!


(42-43)

그렇게 공포에 짓눌린 가운데서도 단독선거 반대를 내건 2.7사건이 터졌다. 설마설마하던 남조선만의 단독 선거 책동이 1월 중순이 되자 바로 눈앞의 현실로 나타났는데, 5 10일 이전에 남쪽만의 선거를 치른다고 했다. 지난 삼년 동안 온 나라 백성이 갈구해온 통일국가의 꿈에 대한 공식적인 전면 부정이었다. 온 천지가 분노와 탄식의 목소리로 들끓었다. 남로당과 민전이 2 7일을 기해 전국적 총파업을 일으키고 김구와 김규식 등 우익 세력이 이에 적극 호응함으로써 단독선거 반대의 함성이 전국 곳곳에서 동시다발로 터져나왔다. 공장 노동자, 부두 노동자 들이 파업을 단행했고, 전기 노동자는 송전을 중단했고, 철도 노동자는 철도 운행을 중지했고, 통신 노동자는 통신을 두절시켰다. 수많은 학생, 농민, 노동자들이 가두시위에 나섰고 경찰지서들이 공격당했다.


(68-69)

, 여러분, 이제 울음을 멈춥시다! 언제까지 우리가 울기만 할 겁니까? 언제까지 우리가 매 맞기만 할 겁니까? 저놈들은 용철이처럼 우리도 매를 때려 죽일 거우다. 저놈들한테 매 맞아 죽을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앉은 채 매 맞아 죽을 순 없지 않습니까? 우리 일어납시다. 일어나서 싸웁시다. 싸웁시다! 복수합시다! 여러분, 저 악독한 서청 강도들을 이 땅에서 몰아냅시다! 여기는 우리 땅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이 땅을 저 침략자들이 짓밟고 있습니다. 저 육지 놈들이, 저 육지 경찰 놈들이, 저 서청 놈들이 이 땅을 짓밟고 있습니다. 침략자들을 물리칩시다!”


(86)

미군정이 딘 소장을 둘러싼 최고 수뇌부가 항공편으로 날아들어 비밀회의를 열었는데, 딘 소장을 대변한 경무부장 조병옥이 화평 정책을 내세운 김익렬 연대장을 공산주의자라고 매도하면서 무섭게 몰아붙였다. 김익렬이 모처럼 얻어낸 산부대와의 약속은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미군정 당국에 의해 파기되었다. 정책은 화평이 아닌 강경 무력 진압으로 급선회했다. 남쪽만의 단독선거인 5.10선거가 코앞으로 닥쳐왔으므로 그전에 군대를 투입해 저항 세력을 속전속결로 진압해버리자는 것이 미군정의 의도였다. 순식간에 경비대의 대이동이 이루어졌다. 온건파 김익렬이 해임되었고, 9연대도 일부만 남기고 육지부로 전출시키고 수원에 있던 11연대를 불러들였다.


(87)

갑자기 교체된 11연대는 9연대와 달리 일본군이 쓰던 99식 장총 대신에 미제 카빈총으로 무장하고 군비 일체를 미제로 일신했다. 박격포, 로켓포 등 중화기도 들어왔다. 일본군 출신 중령 박진경이 연대장이었다. 그 무렵 경비대에서는 그때까지 주도권을 잡고 있던 민족주의 세력이 제거되고 그 자리를 일본군 출신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박진경은 북소학교 운동장에 박격포와 로켓포를 진열하고 사살한 시체들을 관덕정 마당에 늘어놓아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다음, 수많은 사람들을 연행해 포로수용소에 수감했다.


(95-96)

조천리 사람들은 목장에 도착한 즉시 이슬 젖은 풀밭에 선 채로 얼마 동안 집회를 가졌다. 조천리와 와흘리 산부대 청년들 몇 명이 번갈아가며 연설을 했다. 저놈들은 우리를 반역자라고 하는데, 왜 우리가 반역자인가? 우리는 미군정에 반대하는 것이지 민족에 반역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통일 정부를 세우자는 주장이 애국이지 왜 반역인가? 오히려 단독정부를 지지하여 투표에 참여하는 것이 반역 행위다. 이 나라의 허리를 잘라서는 안 된다, 국방경비대는 우리 편이니 곧 해결이 날 것이다 하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금 하는 행동이 과연 잘하는 일인지, 큰 죄를 짓는 것은 아닌지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128-129)

외세에 대한 싸움이 이제는 동족 간의 싸움으로까지 번져갔다. 산과 해변의 대립은 살벌했다. 좌우 양쪽이 번갈아 서로를 죽이고, 그 가족을 죽이고, 그 집에 불을 질렀다. 복수심에 눈멀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친구가 친구를 잡아먹고, 친척이 친척을 잡아먹었다. 천년의 공동체, 무엇으로도 끊어낼 수 없을 것 같던 끈끈한 우애와 혈연의 공동체, 씨줄 날줄로 정교하게 엮인 그 돈독한 공동체가 무참히 찢겨나가고 있었다. 일찌감치 군경에 장악당한 읍내의 여자아이들은 고무줄놀이를 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위에 붙어라, 아래 붙어라 산에 붙어라, 해변에 붙어라.”


(189-190)

방화에 살인에 도취된 자들이 환각 속에서 계속 불을 지른다. 고함치고 총을 난사한다. 겨우 불을 피해 벗어난 사람들을 향해 총알이 사정없이 날아간다. 참새떼가 날고, 닭이 날고, 사람들과 개, 돼지, , 말 들이 달아난다. 총격에 쫓긴 사람들이 혼비백산 울담을 타고 넘어 산 쪽으로 도망친다. 근처의 대숲이나 덤불숲에 뛰어든다. 닭들도 덤불 아래로 오르르 숨어든다. 죽어가면서 고통의 비명을 지른다. 내년 농사를 위해 보관 중이던 씨앗 망태가 타고, 이 집 저 집 곳간에서 쥐를 없애고 곳간을 지켜주던 업신 구렁배암들이 타 죽는다. 닭 한마리라도 구해보려고 옆구리에 끼고 달아나던 소년이 총에 맞아 쓰러지고, 울담을 넘어 도망치던 청년이 총에 맞아 돌덩이 하나 가슴에 안고 엎어지고, 아기 안은 아낙이 솜옷 입은 등에 불이 붙은 줄도 모른 채 허둥지둥 달아나다가 쓰러진다. 쌀독은 물론 간장독, 된장독, 부엌의 물 항아리, 솥단지들이 개머리판에 맞아 와장창 깨진다. 죽음의 위협을 느낀 노파들이 궤 속에 보관 중이던 호상옷 보따리를 챙겨 허리춤에 매고 불 밖으로 나가려고 허둥대고, 매운 연기를 마시고 캑캑거린다.


(199-200)

하늘이 무너져내린다. 어느 순간 검은 구름이 크게 찢기면서 그 틈새로 기울어진 저녁 햇빛이 폭포수처럼 눈부시게 쏟아진다. 그 사다리를 타고 주황빛 불의 날개를 펄떡거리면서, 불의 칼을 휘두르면서 수많은 천사들이 지상으로 쏟아져 내려온다. 불의 칼, 불의 날개들이 이글거리면서 지상을 휩쓴다. 하느님이 명령한다. “그러니 너희는 당장에 가서 아말렉을 치고 그 재산을 사정 보지 말고 모조리 없애라! 남자와 여자, 아이와 젖먹이, 소떼와 양떼, 낙타와 나귀 할 것 없이 모조리 죽여라!” 최고 사령관 로스웰 브라운이 단호하게 천명한다. “사태의 원인에는 흥미가 없다. 나의 사명은 오직 진압뿐이다!” 이승만이 명령한다. “공비 토벌을 빨리 끝내라. 시일을 끌면서 이렇다 저렇다 보고하지 말고, 공비가 없어졌다는 보고를 듣고 싶다. 남녀노소 가리지 말고 불순분자를 제거하라! 지체 말고 단숨에 처리하라! 가혹하게 응징하라!” 조병옥이 맞장구친가. “온 섬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태워버려야 한다!” 월남민 교회의 목사가 설교한다. “한없이 기꺼운 마음으로 서청 여러분을 위해 하느님께 축복을 청합니다. 여러분의 승리는 곧 하느님의 승리입니다. 어서 그 붉은 무리들을 소탕하고 오시오!” 연대장 송요찬이 외친다. “일본 군대는 이러지 않았어! 더 잔인하게! 더 잔인하게!”


(245-246)

사람은 누구나 미워하는 마음 없이는, 증오 없이는 싸우지 못하는 법, 지휘관은 신병의 마음속에서 증오의 불씨를 지피려고, 인간 정신의 가장 어두운 부분, 밑바닥 깊이 숨어 있는 야만성을 일깨우려고 악을 써댔다. 그러나 빨갱이에 대한 증오만으로는 부족했다. 아니, 증오조차 없이 죽여야 했다. 아무리 하느님은 뜻, 하느님의 명령이라지만 무고한 사람을 학살하고 있다는 생각이 신병을 괴롭혔다. 그러나 우물쭈물할 수가 없었다. 상관이 무서웠다. 한라산의 산군보다 더 무서웠다. 우물쭈물했다간 무지하게 얻어맞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여전히 두려웠다.


(250)

경찰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직급의 경찰에게 즉결처분권이 주어져 있었다. 고문과 살인이 너무도 흔해졌고 그 자체에 쾌감을 느끼는 자들이 생겨났다. 그 무서운 광증은 집단 내에서 빠르게 퍼져나갔다. 광기에 중독된 자들이 법을 가진 자, 법을 쥔 자가 되었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죽이고, 시키지 않아도 내 마음대로 죽이고, 닥치는 대로 마구 죽였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인간에게 목숨을 준 신에게만 그것을 빼앗을 권리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마음대로 죽일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을 때 그들은 마치 신의 권능을 부여받은 것 같은 황홀감을 느꼈을 것이다. 사람 죽이는 일은 죄인데 마음대로 죽여도 좋다니, 게다가 그것이 애국 행위라니, 참으로 기묘한 희열이고 최상의 쾌락이자 최고의 자유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그 힘에 도취되었다. 희생자들은 그렇게 죽어 마땅한 존재처럼 보였다. 매일 한명이라도 죽이지 않으면 밥맛이 없다고 떠벌리는 자들도 생겨났다.


(323)

도대체 우리가 잘못한 게 뭔가? 무얼 잘못했단 말인가? 아아, 우리의 죽음이 아무 보람도, 아무 가치고 없는 죽음이 되어버렸어. 그게 원통해! 도대체 이건 인간의 죽음이 아니여. 짐승이라도 이런 떼죽음은 없어. 너무 억울해, 원통하고 절통해! 우린 결코, 우린 결코 죽어도 죽지 않을 거여! 너무도 원통해 죽어도 죽을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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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6 - 제2부 민족혼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조정래 님의 <아리랑> 6권을 이야기해줄게.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아리랑>은 너희들도 나중에 꼭 읽으면 좋겠구나. <아리랑>을 통해 일제 시대 역사를 알 수도 있는 좋은 기회는 당연한 것이고, 우리나라 지리에 대한 묘사도 정말 아름답게 하시는 것 같단다. 그런 부분이 여러 곳 나오는데, 오늘은 백두산과 압록강에 대한 묘사한 부분을 소개해 줄게. 어떻게 하면 이런 문장을 뽑아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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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양쪽 강변에 완만하고 묵직한 자태로 뻗어나가고 있는 산줄기는 진초록으로 치장한 몸을 압록강에 그림자로 담그고 있었다. 느린 파도의 굽이침처럼 봉우리 봉우리를 이루어나가고 있는 그 긴 산줄기는 동쪽으로 가면서 점점 높아지고 억세지면서 그 모습을 아스라하게 감추고 있었다. 그 산줄기를 따라서 따라서 가면 이르게 되는 곳, 그곳이 백두산이었다. 그러니까 압록강 양쪽으로 뻗어내리고 있는 산줄기는 사방팔방으로 뻗치고 있는 백두산의 서쪽 일부 자태였고, 압록강 철교 부근에서 자취를 감추는 산줄기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드리워진 백두산의 머리카락 그 한오라기 끝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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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 보면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는데, 우리나라 함경도에 프랑스 파리 식으로 만든 도시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단다. 물론 아빠가 <아리랑> 20여 년 전에 한번 읽었으니 그때도 알았을 텐데, 다 까먹어 버렸으니 처음 알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지. 나남의 옛 사진을 좀 찾아봤는데, 서양식 건물이 몇 개 있는 것 같은데, 파리식으로 보일만한 사진은 찾기 어렵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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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나남은 프랑스의 수도 파리식으로 꾸며졌다고 했다. 나남은 그야말로 군대가 중심이고 군이니 주인인 도시였다. 군사업무를 총괄하는 건물이 시가지 중앙에 크게 자리잡고 있었고, 바로 그 옆에 있는 원형공원을 중심으로 해서 일곱 개의 도로가 방사선으로 곧게 뻗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도로들에서 다시 가지를 치며 다른 도로가 뻗어나가기도 했다. 나남은 억센 산줄기 많기로 유명한 함경북고의 산들로 에워싸여 있는 자연요새 같은 분지였다. 그 궁벽한 오지에 어찌 그리 멋들어진 서양식 건물들을 즐비하게 세워 도시를 이루어낸 것인지 양치성은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그런데 나남에서는 조선사람들의 집이라고는 기와집이든 초가집이든 간에 단 한 채도 찾을 수가 없었다. 온통 서양식 관공서들과 일본식 상점이나 집들로 차 있는 것을 양치성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군산이 개명한 줄 알았는데 군산은 나남에 댈 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의문은 한마디의 설명으로 쉽게 풀렸다. 일본군이 처음 나남에 주둔한 것은 노일전쟁이 끝나면서였고, 그때 나남은 조선사람들 30호 정도가 마을을 이루고 산 한촌이었다는 것이었다. 그 뒤로 10년 세월 동안에 순전히 일본사람들 손으로 새 도시가 꾸며졌으니 한옥이 있을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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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격적으로 <아리랑> 6권의 이야기를 해줄게. 6권이 제2부 민족혼의 하이라이트가 아닐까 싶구나. 일본 정보부 소속 양치성은 장사꾼으로 위장하여 만주로 떠난단다. 만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독립군 조직을 색출하기 위함이지. 그 만주땅에는 송수익도 가명으로 독립운동을 하고 있었어. 대놓고 독립운동을 할 수 없어서, 겉으로는 대종교로 활동하면서 실제로는 독립운동을 하고 있었어. 국내에서 살기 어려워진 백성들이 만주로 밀려들었는데, 이 중에는 밀정도 있었어. 그래서 새로 오는 사람들은 아주 철저하게 조사를 했고, 밀정으로 밝혀진 이들은 가차없이 죽였단다. 백성들이 만주에 정착한 마을은 통하현, 유하현, 해룡현 등으로 계속 늘어났단다. 그 와중에 대종교 교주였던 나철의 자살 사건이 있어서 독립운동이 위축되기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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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나철은 유서 <순명삼조(殉命三條>를 통해 자신이 왜 목숨을 바치는지를 밝히고 있었다. 첫째 배달민족의 번성이 걸린 대교를 위해 죽는 것이며, 둘째 한배님의 은혜를 갚지 못한 죄로 한배님을 위해 죽는 것이며, 셋째 온 천하의 동포 형제자매가 암흑세상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대신 죽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계기로 하여 대종교가 더욱 번창하고, 그 힘으로 일본을 물리쳐 배달민족이 광명을 되찾기를 소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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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국내에서는 군자금 조달을 하려는 노력이 이어졌어. 박상진이라는 사람은 대한광복단을 만들어 친일 부자들에게 경고 편지를 보내고 강제로 돈을 빼앗는 과감성을 보이기도 했어. 주색잡기에 빠진 정재규도 그 경고편지를 받았단다. 그 편지를 받고 겁을 잔뜩 집어 먹은 정재규는 주재소를 찾아가 신고를 하고 신변 보호 요청을 했어. 주재소는 이에 서무룡 일당을 보내주었단다. 서무룡 기억나지? 깡패 집단을 만들고 자신이 오야붕이 된 사람. 도둑을 지키겠다고 집안에 깡패 무리들을 끌어들인 거야. 서무룡 일당들은 정재규의 집에 와서 오히려 온갖 횡포를 부리고, 집을 지켜준다고 큰 돈을 요구하기도 했어. 정재규는 울며 겨자 먹기로 서무룡의 요구를 들어주었단다. 박상진의 대한광복단은 대구에서 육혈포 강도단 사건으로 친일 부자들을 죽이기도 했지만 안타깝게도 얼마 못 가 체포 당하고 말았단다.

 

1.

일제의 탄압은 점점 심해져서 사사건건 통제를 했어. 당시 전국에 서당이 만여 곳이었는데, 일제는 서당 폐쇄법으로 강력 규제를 했단다. 서당을 중심으로 민족의식을 높이려던 노력도 더 이상 할 수 없었어.

불쌍한 보름이도 생각나지? 장칠문이 첩으로 두었다가 일본의 사찰과장 세키야에게 빼앗겼잖아. 보름이를 서무룡이도 탐내고 있었는데, 서무룡은 보름이가 혼자 있을 때를 틈 타 찾아와 겁탈했단다. 정말 나쁜 사람들이란다. 불쌍한 보름이는 세키야의 아이를 임신했어.

정재규, 정상규, 정도규 삼형제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려줄게. 크게 바뀐 건 없어. 정재규는 여전히 주색잡기로 정신을 못 차리고, 정상규는 재산을 불리는데 혈안이 되어 소작인들을 엄청 괴롭혀서 소문이 났지. 정도규는 이 두 형들을 못 마땅해했고, 자신은 일본에 유학을 하면서 다른 유학생들과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했단다.

다시 만주의 밀정 양치성 이야기를 해줄게. 양치성은 밀정 검사를 통과해서 송수익이 살고 있는 마을 잠입에 성공했단다. 장사꾼을 위장하여 그 마을을 수시로 드나들었어. 그런데 그 사악한 밀정도 보는 눈이 있는데, 그만 수국을 보고 첫눈에 반해버렸단다. 자신이 밀정 일로 그 마을에 오는지, 수국을 보러 오는지 스스로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어. 수국에 반한 사람은 양치성 뿐만 아니라, 수국의 동생 방대근의 친구인 김시국도 수국을 좋아했단다. 김시국은 수국에게 고백을 했지만 수국은 거절했어. 예전에 그 일 이후 남자들을 너무 무서워하고 거부했단다.

한편, 송수익은 방대근, 김시국 등과 함께 무기를 얻기 위해 연해주에 왔단다. 당시 연해주는 러시아 혁명 이후 백군과 적군이 내전을 벌이고 있어서 혼란의 시기였어. 연해주에서 공산주의 활동을 하던 조선 청년들도 이 내전으로 혼란을 가져왔어. 연해주의 이런 혼란으로 무기를 목표량에 한참 미치지 못했단다. 만주에서는 독립운동은 점점 무르익고 있었고 1918 11 18일 만주에서 독립선언을 발표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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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만주땅의 가을은 너무 짧아 9월로 접어들면서 며칠 간 가을빛이 스치는 것 같으면서 나뭇잎들이 와짝 단풍이 들었다. 그 단풍들도 며칠이 못가 낙엽 지며 10월의 문턱에서 얼음이 얼었다. 그리고 설한풍이 몰려오는 11월의 만주땅에 뜻밖의 열풍이 일어났다. 독립지사 39명의 이름으로 <대한독립선언서>가 발표된 것이었다. 그 독립선언서는 만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박은식 신채호 박규식을 대표로 하여 중국 전역을, 이동휘 이범윤 등을 대표로 하여 노령 일대를, 박용만 안창호 이승만을 대표로 하여 미주지역까지 포괄하는 그야말로 범민족적 대표성을 확보한 최초의 대한독립선언서였던 것이다. 1918 11 13일 터져오른 함성이었다. 사람들은 그 선언을 무오(戊午)독립선언이라고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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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19 2 8일에서는 도쿄에서 유학생들 중심으로 독립선언을 발표했단다. 이때 주도한 백관수라는 사람인데, 그가 남긴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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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백관수 : ……오족(吾族)은 생존의 권리를 위하여 모든 자유행동을 수()하여 최후의 일인까지 자유를 위하여 열혈의 투쟁을 불사할 것이다. …… 일본이 만약 오족의 정당한 요구에 응치 않으면 오족은 일본에 대하여 영원히 혈전을 선언하겠다. …… ()에 오족은 일본 또는 세계 각국이 오족에게 민족자결의 기회를 부여할 것을 요구하여 만불성(萬不成)하면 오족은 생존을 위하여 자유행동을 취하여 오족의 독립을 기성(期成)할 것을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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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6권에는 삼일운동에 대한 전개 과정을 상세히 잘 이야기해주고 있단다. 삼일운동은 어느날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란다. 앞서 이야기했던 만주에서의 독립선언, 도쿄에서의 독립선언이 영향을 주었고, 국내외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준비가 있었기 때문에 3.1운동이 일어날 수 있었던 거야. 드디어 1919 3 1일 종로에서 3.1 운동의 횃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단다. 33인의 민족대표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으나 실제 백성들이 모여 있는 종로에는 나타나지 않았단다. 그들의 비겁함은 아빠가 작년에 읽은 <만세열전>에서도 이야기 주었지. 그래서 학생들 중심으로 만세 운동이 전개되었어.

공허 스님도 그 현장에 있다가 이 큰 물결을 전국으로 퍼트려야겠다고 생각하여 군산으로 독립선언서를 들고 내려갔단다. 공허 스님이 군산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군산의 학생들을 중심으로 만세 운동을 하고 있었어. 송수익의 첫째 아들인 송중원도 만세 운동에 참가했어. 이 만세운동은 전국적으로 퍼지게 되었는데, 대부분 학생들과 농민들이 주축이 되어 전개되었다고 하는구나.

땅을 일제에 빼앗겨 되찾는 것을 도모하고 있던 박건식, 김춘배도 만세 운동을 통해서 땅을 되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단다. 무리들을 이끌고 주재소까지 밀고 갔는데 일본 경찰들도 강경 대응하였어.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김춘배도 칼에 찔려 죽고 말았단다. 뿐만 아니라 경찰에 잡힌 만세꾼들은 공개 처형을 당했단다. 만세꾼들도 밤에 친일파 지주들을 습격하곤 했단다. 호남 친화회 회장인 악질 백종두도 습격을 당해 중상을 입고 며칠 지나 숨지고 말았단다. 소설 속에서라도 친일파들이 이렇게 처단되는 것이 시원하더구나.

 

2.

수국의 미모는 중국인 지주까지 반하게 하여 수국을 첩으로 삼으려고 했어. 송수익이 잘 설득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단다. 결국 감골댁, 수국, 방대근은 야반도주하기로 했단다. 송수익이 추천장을 써주어 대근의 식구들은 북간도 용정으로 또 이주했단다. 방대근은 대한정의단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했고, 감골댁와 수국도 대한정의단의 살림을 도와주었어.

여자에 눈이 멀면 세상 끝까지 쫓아오는가 보구나. 먼저 방대근의 친구 김시국이 수국을 찾아왔단다. 수국은 여전히 김시국의 구애를 거절했어. 얼마 후에는 장사꾼으로 위장한 양치성까지 찾아왔단다. 양치성은 김치국이 수국에 마음에 품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를 납치해서 죽여버렸단다.

만세 운동은 국내뿐만 아니라 만주까지 퍼졌단다. 3.1운동 이후 서간도와 북간도에서는 많은 독립단체들이 생겨났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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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

본국에서 3.1 만세가 일어나고 그 불길이 서간도로 옮겨 붙자 북간도의 여러 단체들은 만세시위를 계획했다. 그 단체들은 대종교의 중광단, 기독교계의 간민회, 공자를 모시는 공교도, 성리교 단체 등이었다. 그들은 시위가 벌어진 그날 저녁 연길현 국자가에서 통일조직으로 조선독립기성회를 결성했다. 그리고 4월에 접어들어 명칭을 대한국민회로 바꾸면서 조직을 개편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기독교인들이 간부직을 장악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중광단에서는 그 사태를 묵과하지 않았다. 외래 종교에 대해서 비판적인 대종교들로서는 기독교인들의 그런 독주를 용납할 수 없었고, 또 그동안 많은 학교를 세우고 무오독립선언을 추진하는 등 북간도의 독립운동을 주도해 왔던 중광단의 명예를 지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래서 중광단은 5월에 대한국민회를 탈퇴하여 대한정의단을 결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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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독립단체들이 생기도 하니, 지향하는 바도 다른 경우도 있는데, 그 단체들 중에는 나라를 되찾으려는 목표가 다시 임금을 받들기 위해서라는 단체도 있었어. 그런 걸 복벽주의자들이었는데, 송수익은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이 임금 중심의 나라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새로운 나라는 백성들이 주인이 되는 나라여야 한다고 생각했어. 아빠도 송수익의 생각이 맞다고 생각한다.

만주에서 불이 붙은 독립 운동은 무장투쟁으로까지 이어졌단다. 홍범도 장군이 이끈 봉오동 전투의 승리는 많은 백성들의 가슴을 뛰게 했단다. 봉오동 전투에서 패배한 일본은 비겁한 복수를 했단다. 원래 일본 경찰은 만주에 직접 들어오지 못하는데, 훈춘 사건을 조작하여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핑계로 일본 경찰과 군인들이 만주로 들어와서 독립군들을 토벌하기 시작한 거야. 이때 많은 독립군들이 죽었단다. 송수식의 부하이자 필녀의 남편이었던 배두성도 이때 죽고 말았단다.

하지만 이런 일제의 만행에도 여의치 않고 독립군은 또 하나의 전투를 준비했는데 바로 청산리 전투였단다. 홍범도 장군과 김좌진 장군 등이 주도한 이 전투에서도 일본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단다. 방대근도 북로군정서 소속으로 이 전투에 참가했단다. 청산리 전투 이후에 일본은 더 잔혹한 복수를 감행했단다. 조선 민간인들을 마구 죽인 거야. 1920년이 육십갑자로 경신년이었기 때문에 일제의 이 만행을 경신참변이라고 부른단다. 양치성은 이 때가 수국이를 차지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어. 수국의 어머니 감골댁을 죽이고 수국이를 뒤로 빼돌린 다음 자신이 보호해준다는 척 하면서 수국을 차지하게 된 거야. 소설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지 모르겠지만, 양치성이란 놈은 제발 고통스럽게 죄값을 치렀으면 좋겠구나.

요즘 들어 더욱 친일파들이 더 극성인 것 같아 열 받는단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는 말이 없는데, 정부 인사들이나 정치인들 중에 역사를 잊은 이들이 많은 것 같아 걱정이 되더구나.

,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

 

PS,

책의 첫 문장: 압록강은 여름답게 강폭이 넓어져 물결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책의 끝 문장: 독립군이 밀산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풍문과 함께 사람들은 그 대학살을 경신참변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동회는 향촌 어디에서나 저마다 운영하는 마을사람들의 모임이었다. 동네마다 당산나무가 있듯 동회가 없는 마을은 없었다. 동회에서는 마을을 위해 서로 힘을 모아야 하는 대소사에서부터 공동의 질서와 규율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모임이었다.
동네제사 날짜, 계모음, 두레와 품앗이 순서, 농로나 수로 보수의 부역, 명절놀이 계획, 예절과 풍기, 각종 부고, 남녀 품삯, 구휼 같은 것을 결정해서 서로서로 힘을 합쳐 돕고 마을이 화목하고 평온하게 유지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 여러가지 마을일들을 결정하는 기본이 되는 규범이 바로 향약이었다.
- P84

윤철훈은 앉음새를 고치며 목례를 차리고는, "제가 동지들을 만나고자 한 뜻을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여기 연해주는 사태가 급박합니다. 일본군은 반혁명군인 백군을 지원하는 동시에 우리 조선 사람들을 회유하고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조선사람들이 택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적군을 지원하면서 일본군을 치는 빨치산투쟁을 전개하는 것입니다. 그건 소비에트 혁명을 돕는 길인 동시에 우리 조선을 위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일본군들을 연해주에서 몰아내야만 우리의 독립투쟁지를 회복하게 됩니다. 또한 우리가 혁명을 도와야 혁명이 완수되면 소비에트는 식민지 약소민족의 해방선언에 입각해 우리의 독립을 한층 더 적극적으로 돕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청년단을 조직했고, 단원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침 동지들이 오셨다기에 인사도 드릴 겸 해서 찾아뵌 것입니다." - P109

"예, 그 말언 맞구만요. 허나 독립단체라고 혀서 다 똑겉지가 않다는 것얼 명백허니 알아둬야 헐 것이구만요. 시방 독립운 단체덜언 서로 다른 두 가지 주의 주장을 내세우고 있는디, 그것이 무엇인고 허니 보황주의허고 공화주의로구만요. 요것이 무신 뜻이냐 허면 우리가 뺏긴 나라럴 되찾자고 독립투쟁얼 허기넌 허는디, 누구럴 위허는 어떤 나라럴 세울 것이야 허는 중대서럴 논허는 것이올시다. 다른 말로 복벽주의라고도 하는 보황주의넌 나라에 주인언 임금이니 독립운동도 임금얼 다시 받들기 위해 해햐 헌다는 것이고, 공화주의넌 그 반대로 나라에 주인언 백성이니 독립운동도 온 백성의 뜻얼 받드는 나라럴 세우기 위해 해야 헌다는 것이오. 우리 군정부에서넌 공화주의럴 내세우는 것이고, 아까 그 대한독립단언 복벽주의럴 내세움스로 여러분덜얼 끌어갈라고 헌 것이구만요. 그러니 쌈이 안 일어날 수가 있겄소?" - P203

11월의 만주는 한겨울이었다. 북풍은 칼날이었고, 하늘도 땅도 다 얼어붙어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엮어내는 소문이나 소식들은 전혀 얼어붙을 줄을 모르고 싱싱하게 살아움직이고 있었다. 서간도의 군정부가 명칭을 바꾸었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다. 새로 붙인 이르이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라고 했다. 그 까닭인즉 상해임시정부에서 여운형을 파견하여 군정부도 상해임시정부에 통합해 줄 것을 요청했고, 군정부의 총재 이상룡은 하나의 민족이 두 개의 정부를 가져서야 되겠느냐고 간부들을 설득하여 <군정부>라는 명칭을 양보한 것이라 했다. 그것은 곧 상해임시정부를 유일 정부로 인정함과 아울러 그 위상을 높여주는 조처였던 것이다. - P219

그 노랫소리는 금방 독립군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많은 목소리들이 그 노랫소리에 합해졌다.

기다리던 독립전쟁 돌아왔다네

노랫소리는 모든 독립군들의 마음을 끌어잡으며 뒤흔들고 있었다. 노래는 마침내 합창이 되었다.

이때를 기다리고 십년 동안데
갈았던 날랜 칼을 시험할 날이
나아가세 대한민국 독립군사야
자유독립 광복함이 오늘이로다
정의의 태극 깃발 날리는 곳에
적의 군대 낙엽같이 쓰러지리라

탄환이 빗발같이 퍼붓더라도
창과 칼이 네 앞을 가로막아도
대한의 용장한 독립군사야
나아가고 나아가고 다시 나아가라
최후의 네 핏방울 떨어지는 날
최후의 네 살점이 떨어지는 날
네 그리던 조상나라 다시 살리라
네 그리던 자유꽃이 다시 피리라
-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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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7)

미군정이 충격적인 명령을 내린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공식 출범한 미군정이 인민위원회 해체를 명령했던 것이다. 미군정이 삼팔선 이남 조선에서 유일한 정부라고 했다. 인민위원회 체제가 미군정의 행정체제에 반영되기를 원했던 도민들에게 그것은 크나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해방의 기쁨과 열광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었다. 도민의 의견을 받아들여 인민위원회 간부들 중에서 미군정에 발탁된 경우는 극히 드물었고, 대개는 친일파의 재등용이었다. 일제의 착취 기구에 종사했던 자들이 미군정의 부름을 받고 그 자리로 복귀하다니, 하급 관리들은 그만두더라도 친일파의 고위직 재등용은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면서기를 하던 자들이 버젓이 면장으로 승진하여 복직하기도 하고, 순사 노릇 하던 자들이 경찰서장, 지서 주임이 되었다. 명칭이 순사에서 순경으로, 주재소에서 지서로 바뀌었을 뿐 복장도 검정색 일본 순사 제복 그대로였고, 무기도 일본군으로부터 압수한 99식 혹은 38식 장총과 일본도였다.


(108-109)

해가 바뀌어 1946년이 되자 제주도에서도 신탁통치 반대운동이 맹렬하게 벌어졌다. 미국과 소련이 삼팔선을 경계로 조선을 둘로 분할하여 오년간 통치하려는 음모에 대한 반대였다. 한시바삐 독립하기를 갈구하던 조선 백성들에게, 특히 지난 반년 동안 뜨거운 열정 속에 새 나라 건설의 꿈을 안고 달려온 청년들에게 그것은 정말 믿기지 않는 소식이었다. 해방자를 자처한 미국과 소련이 이럴 수가 있는가 하는 경악 속에서, 조선 땅을 삼팔선으로 두동강 내어 이북은 소련, 이남은 미국이 차지하려는 음모를 분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천리에서도 오일장이 열릴 때마다 신탁통치 반대 집회가 열렸다.


(131)

해방 후 맞는 첫 봄, 신생의 기운이 제주섬 도처에서 샘솟듯 기운차게 솟아나고 있었다. 새봄, 새 학교, 새 일꾼, 새 나라, 해 희망! 그 모든 것이 청년들, 소년들의 것처럼 생각되었다. 꽃들도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리면서 해방의 노래를 부르고, 침울했던 청년들의 가슴도 꽃망울 터지듯이 세상을 향해 활짝 열렸다. 해방 직후 시작된 집단적 열광에 불쏘시개 역할을 한 것은 물론 전장과 탄광 등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살아 돌아온 귀환 청년들이었다. 그들이 겪은 지독한 절망감이 이제 급격하게 강력한 에너지로 바뀌어 그들을 추동했다. 그들은 생각했다. 지금은 귀향민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온 상태라 취직난이 극심하지만 친일파들이 물러나면 자리가 생기리라고, 그러한 집단적 열광은 곳곳에 신설 중학원이 등장함으로써 더욱 증폭되었다.


(133)

일제의 노예 경험이 너의 마음에 무엇을 가르쳐주었는지 생각해보아라. 무엇을 가르쳐주었는가? 그렇다, 내 나라, 내 땅을 다시는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비록 지금은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점거하여 신탁통치 운운하면서 남북분단을 획책하고 있지만, 그것은 열화 같이 일어난 거족적 반대 투쟁에 의해 반드시 분쇄될 것이다.”


(162)

정두길 : 순태 너는 박헌영파지만 난 여운형이 맘에 들어. 그가 말하는 좌우합작에 나는 찬성이여.

부대림 : 나도 여운형이 좋아. 한독당 김구 선생의 노선도 좋아 보이고.

박털보 : 미국이나 소련이나 우리에겐 해방군이 아니라 훼방꾼이여, 독립의 훼방꾼!

양순태 : 하아, 해방과 훼방! 거참 딱 맞는 말이네예. 해방군이 아니라 훼방꾼!

정두길 : 그래서 온 나라 온 백성이 이렇게 외치는 거 아니우꽈? (구호를 외치듯이 큰 소리로) 미국을 믿지 말고, 소련에 속지 말고, 조선 사람 조심하자!


(166-167)

장영발 : 허허, 상옥이 말이 틀린 건 아니주. 무정부주의는 작년에 울던 매미 신세가 돼버린 게 사실이여. 나는 다만 그 자치주의 정신은 지금도 이 제주 땅에 살아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거주. 국가 속의 자치 공동체! 그 정신은 죽지 않아. 결코 죽지 않아!(이마에 깊은 골을 만들면서) 물론 제주도 독립은 불가능한 일이주. 그러니 그걸 정치적으로 주장한다면 미친놈의 미친 소리가 되는 거여. 그런디 우린 무슨 본능처럼 은연중에 마음속으로 그것 비슷한 걸 생각한단 말이여. 왜 그럴까? (양미간을 모아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나가 왜 그런지를 생각해봤주기. 제주인의 성격이 유별하다는 걸 난 일본에서 고학하면서 노동운동 할 때 알았어. 남과 비교해보지 않으면 자기 자신을 잘 모르잖는가. 노동현장에서 보니까, 일본 노동자들은 순종적인 데 반해서 우리 제주 출신들은 결코 고분고분하지 않더란 말이여. 우리 제주인은 성질이 좀 거칠고 완강해. 사람은 자기가 태어난 산천을 닮는다고 하는디, 우리 제주도가 바람 많고 돌투성이에 거친 화산섬이라 그럴까? 그럴지도 모르주. 그리고 제주 출신은 단결심이 좋았어. 똘똘 뭉쳐 있었주. 바로 그런 단결심이 그 많은 노동쟁의를 조직적으로 전개할 수 있게 만든 거여. 제주인은 집단으로 사고하고, 집단으로 행동하는 것에 익숙하거든.


(265-266)

극심한 불행과 좌절의 연속인 지난 일년이었다. 대흉년의 굶주림과 호열자에 짓눌린 죽음의 시간이었고, 강제공출, 복시환 사건, 친일파 재등용, 단독정부 추진 등등 미군정이 자행한 총체적 모순이 만들어낸 절망의 시간이었다. 해방의 감격과 미래에 대한 꿈이 참혹하게 짓밟힌 한해였다. 이제 사람들은 피폐했던 마음에 다시 활기가 들어차는 것을 느꼈다. 사람마다 가슴속에 환한 빛이 가득해졌다. 정두길은 감격이 북받쳐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미군정을 반대하는 거대한 실체가 거기에 있었다! 정두길에게 그것은 소름 끼치는 강렬한 충격이었다.


(296)

조병옥은 3.1절 발포 사건에 대해 사과하기는커녕 정당방위였다고 도리어 적반하장으로 나왔다. 심지어 사살은 내가 시킨 바다. 발포 명령자를 처벌하라고? 발포는 내가 명령했으니 처벌할 테면 나를 처벌하라라고 싸늘하게 비웃었다. 읍내 공무원들이 모인 시국 강연 사리에서는, 제주도 사람들은 사상적으로 불온하다면서 건국에 저해가 된다면 싹 쓸어버릴 수도 있다고 협박하듯 엄포를 놓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방약무인이었다. 너무도 놀라운 발언이어서 사람들은 아연실색했다. “제주도 사람들은 사상적으로 불온하다. 건국에 저해가 된다면 싹 쓸어버릴 수도 있다.” 이 말이 도민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337)

무자비한 테러 행위로 전국적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던 서북청년단의 존재가 제주 사회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 무렵부터였다. 그간 육지부의 각 도시, 각 읍면 지역에 조직을 만들어 대규모로 세력을 확장해온 서청은 좌파 인사와 집회에 무자비한 폭력을 가해 백색테러의 대명서로 떠올랐다. 신임 도지사 유해진이 자신의 경호원으로 일곱명을 데리고 들어온 이래 서청 단원의 입도가 두어차례 이어져 지금은 그 수가 수백명에 이르렀다. 충남 부대의 탄압에 시달리던 도민은 이제 그보다 훨씬 사나운 세력을 만나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승냥이가 나가더니 범이 들어온 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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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처한 경제 이야기 3 : 금융 편 - 돈이 흐르는 원리 난처한 경제 이야기 3
송병건 지음, 매드푸딩 그림 / 사회평론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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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송병건 님의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경제 이야기> 마지막 3권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게. 3권의 부제는 <금융 편>이란다. 경제 공부 좀 해보겠다는 일반 사람들의 목표는 금융이 아닐까 싶구나. 자신의 돈을 잘 투자해서 불리려는 것은 자본주의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본능이 아닐까 싶구나. 그렇다면 금융이란 것은 무엇일까? 이 책에서는 먼저 금융이라는 용어의 한자어를 풀어서 설명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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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대부분의 용어는 어원만 제대로 알아도 의미를 거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금융도 마찬가지예요. 금융은 한자로 금 금()자 녹일 융()자를 써요. 여기서의 금은 광물 금(gold)이라기보다 돈을 뜻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융의 경우 좁게는 녹인다는 뜻이지만, 크게는 기존과 다른 상태로 변화한다는 의미에서 융합’, ‘융통성등에 쓰이는 한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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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설명한 것에 따르면 금융이란 돈을 적절한 곳으로 흐르게 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구나. 돈을 적절하게 흐르게 하다 보니, 주식회사도 생겨나고 은행도 생겨나고 보험도 생겨나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금융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은행이 아닐까 싶구나. 은행(銀行)도 한자어로 풀이해 보면 은이 오가는 가게라는 뜻이 되고, 17세기 중국에서 은을 화폐로 사용하여 만들어진 말이라도 생각하면 돼. 은행의 영어 단어인 ‘bank’는 원래 탁자라는 뜻에서 파생된 말이라고 하는구나. 탁자에 앉아 귀금속을 대출해주던 대출업자에서 유래되었다고 해.

그럼, 은행은 무엇으로 돈을 벌까? 예대마진이라는 말이 있는데, 예금금리와 대출금리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이득을 의미한단다. 그러니까 돈을 보관해주면서 주는 금리는 적게, 돈을 빌려주면서 받는 금리는 많게 해서 이윤을 만드는 거야. 은행에는 보통 사람들이 가는 일반은행, 농협이나 수협 같은 특수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특수은행, 그리고 금융기관만 상대하고 화폐를 만들어내는 중앙은행이 있단다. 우리나라의 중앙은행은 한국은행이야. 이렇게 은행은 크게 일반은행, 특수은행, 중앙은행이 있단다. 그렇다면 저축은행은 어디에 속하지? 저축은행은 은행이라기보다 일반회사에 가깝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문제가 생겼을 때 구제받을 수 있는 범위도 다르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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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저축은행은 이익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일반 회사에 가깝습니다. 웬만한 사람들은 이 차이를 모르지만 구분할 필요가 있어요. 은행인지 아닌지에 따라 문제가 생겼을 때 구제받을 수 있는 범위가 다르거든요. 은행은 사회 공익적인 업무를 일부 담당하는 만큼 국가로부터 각종 혜택을 받습니다. 대신 관리 감독을 열심히 받아야 하고요. 은행 아닌 금융기관에는 그런 혜택을 주지 않는 대신 규제를 좀 더 느슨하게 적용하죠. 아무튼 이처럼 우리 주변엔 은행이 아닌 금융기관이 생각보다 많고, 보험사도 그중 하나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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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돈(화폐)는 한국은행에서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데, 요즘 시대는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란다. 일반은행에서 돈을 만들어낸단다. 그것을 신용창조라고도 한단다. 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돈보다 몇 배의 돈을 빌려줄 수 있기 때문이야. 예금을 맡긴 사람들이 한꺼번에 돈을 찾지만 않는다면 가능하거든.. 이 이야기는 아빠가 예전에 다른 책을 읽고 이야기해준 것 같구나. 아무튼 이 일로 인해 시중에 통화량은 계속 늘어나고 그로 인해 인플레이션도 생기고, 잘못하면 뱅크런으로 은행이 망할 위험도 있는 것이란다. 하지만 그런 리스크 없이 은행은 운영한다면 이익을 내기 쉽지 않지.


1.

금융의 기반은 뭐니 해도 , 화폐란다. 인류 역사와 함께 화폐의 역사는 함께 했는데, 그 동안 화폐로 쓰인 것들을 보면 희소성과 내구성을 갖춘 것들이었어. 대항해 시대까지는 은이 국제 화폐로 쓰였는데, 은은 아메리카에서 채굴되어 유럽으로 이동했고, 유럽 사람들은 중국과 인도로부터 차와 도자기 등을 구입하면서 은은 중국과 인도로 이동했단다.

금이나 은이 희소성과 내구성을 갖추면서 오랫동안 화폐 역할을 했는데, 점점 늘어나는 통화량에 금과 은이 부족하게 되었어. 그래서 지폐가 생겨나게 되었다는구나. 하지만 초기 지폐는 금과 교환할 수 있는 교환증 역할을 했어. 그런 것을 금본위제라고 했어. 하지만 이것도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 점점 사라졌어. 국가에서 인정해주는 화폐, 신용화폐가 등장을 했단다. 그렇게 되자 신용화폐가 많이 찍어대면서 인플레이션이 자주 발생하게 되어, 중앙은행으로 하여금 신용화폐의 통화량을 조절하는 임무를 주었단다.

처음으로 생겨난 중앙은행이 영국의 잉글랜드은행이라고 하는구나. 중앙은행의 가장 큰 역할을 화폐를 적절하게 찍어내는 거라고 했는데, 많이 찍으면 인플레이션이 오고, 너무 안 찍으면 경기 불황인 디플레이션이 오게 된단다. 정부는 경제라는 것은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에 발맞춰 완만하게 물가가 상승하는 인플레이션을 목표로 한다고 하더구나. 요즘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높은 인플레이션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구나. 월급은 오르지 않는데 말이야.

인플레이션이 생기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 투자와 소비가 증가하면서 물가가 상승하는 경우란다. 투자가 증가하려면 금리가 낮아야 하겠지. 그래서 보통 금리가 낮으면 물가가 상승하는 경향이 있단다. 인플레이션의 원인 두 번째, 생산의 비용이 비싸지면서 물가가 상승하는 경우이고 세 번째는 경제 상황이 악화되어 화폐 자체의 가치가 하락하여 물가가 상승할 수 있다고 하는구나. 네 번째는 사람들의 경제 호황에 대한 기대로 물가가 상승하는 경우가 있대. 이렇게 인플레이션이 오게 되면 정부는 이것을 조절해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금리를 조절하는 방법이 있대.. 앞서 이야기했지만 금리가 낮아지면 인플레이션이 오니까, 반대로 금리를 높이면 인플레이션을 방어할 수 있단다. 그러나 소비와 투자가 위축될 수 있으니, 그 조절을 잘 해야겠지. 소비가 위축되고 경제 상황이 안 좋아질 때 뉴스를 보면 양적완화 정책을 한다는 말을 흔히 들을 수 있단다. 양적완화란 무엇이냐면, 기준금리를 내릴 만큼 내려도 살아나지 않을 때 중앙은행이 국채를 매입하여 시장에 돈을 좀더 풀어서 경기를 부양하는 정책을 말한단다.

이번에는 환율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먼저 환율을 읽는 법부터 알아보자. 환율을 이야기할 때 보통 두 나라의 통화를 붙여서 이야기한단다. 예를 들어 원달러 환율이라고 말을 쓰지.. AB 환율이라고 할 때 B를 기준으로 한 A의 값을 뜻한단다. 그러니까 원달러 환율은 1달러가 우리나라 돈으로 얼마인지를 이야기할 때 써. 최근 원달러 환율이 많이 올라서 1400원까지 육박하고 있구나. 예전에는 나라간 환율을 고정해서 사용했다는구나. 달러만 금과 연동하고 나머지 통화들은 달러에 고정 환율로 했대. 그런데 1971년 미국 닉슨 대통령인 달러와 금의 연동을 중단하기로 했어. 그리고 페트로달러 시스템이라고 달러로만 석유를 거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대. 강대국의 횡포라는구나.

그렇게 달러에 의존하는 시스템이 되다 보니, 각 나라의 통화는 경제 사정에 따라 달러 값어치가 달라지게 되었어. 변동 환율로 변하게 되었고, 환율에 따라서 경제 사정이 수시로 바뀌게 되었단다. 중앙은행이 의도적으로 환율을 조정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외국 자본 유치를 위해 원화를 사고, 달러를 팔기도 했다는구나. 그래서 IMF의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지만


2.

, 이번에는 주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게. 주식은 합법적인 도박이라고 부를 정도로 잘못하게 되면 크게 손해를 보는 경우가 있단다. 물론 잘 하면 큰 돈을 벌 수도 있고 말이야. 그렇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어. 주식을 하다 보면 배당이라는 용어를 듣게 되는데, 배당이라는 것은 회사가 주주에게 이익을 나눠주는 것을 말한다. 회사마다 배당금 규모도 다르기 때문에 어떤 투자자는 배당금을 많이 주는 회사만 골라서 투자하는 이들도 있어. 그 밖에 주식에 관한 용어들과 증권사가 하는 일들을 설명해주었는데,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들이라 패스할게.

금융 투자 중에 펀드라는 것이 있어. 펀드는 여러 투자자의 돈을 모아 전문가가 대신 투자해주는 금융상품으로 정말 많은 펀드 종류가 있단다. 펀드도 원금 보장이 안되고 있어서 펀드 투자를 할 때 잘 선택을 해야 한단다. 펀드의 성격에 따라서 분류가 되는데, 그 중에 사모펀드와 헤지펀드라는 것이 있어. 용어는 많이 들어봤는데 어떤 것인지 잘 몰랐단다. 사모 펀드는 소수의 개인투자자를 모아 만든 펀드를 말해. 헤지펀드는 정확히 모르지만, 주식이 떨어지면 오히려 수익을 얻는 펀드라고 들은 적이 있어. 어떻게 주식이 떨어지면 수익을 얻을 수 있지? 궁금했는데 그것은 헤지펀드가 주로 공매도를 이용한 투자여서 그렇고, 공매도라는 것이 주식을 비쌀 때 빌려서 그 주식을 팔아 현금으로 갖고 주식이 싸지면 그 주식을 다시 사서 주식으로 갚음으로써 차액으로 돈을 보는 것을 이야기한대. 그렇다 보니 주식이 내려가면 이익을 얻는 구조가 나오는 거란다. , 이번에 확실히 이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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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

예를 들어 지금의 A사의 주식이 7만 원이라고 칩시다. 증권사를 통해 익명의 누군가에게 7만 원짜리 주식을 빌려서 팔면 7만 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빌린 주식이니까 나중에 사서 갚아야겠지요? 이틀 뒤에 A사 주식이 4만 원으로 폭락할 때 주식을 다시 사서 빌린 사람에게 갚습니다. 4만 원의 지출이 생긴 거죠. 그럼 주식 한 주를 빌려서 팔고, 나중에 빌린 주식을 갚는 것뿐인데도 7만 원 -4만원=3만원의 차액을 얻을 수 있어요. 이런 방식으로 시세차익을 노리는 게 공매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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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투자로 선물과 옵션이 있단다. 이것도 용어는 들어봤지만 정확히 어떤 것인지 잘 몰랐어. 선물 거래는 미래에 주고받을 물건을 미리 거래하는 것을 말하는데, 선물로 미리 사들인 상품의 가격이 오르면 이익이고, 가격이 하락하면 손해를 보는 구조를 이용하여 투자하는 거야. 옵션이라는 것은 미래에 거래하는 권리를 거래하는 것을 말한대. 용어가 좀 어렵긴 한데, 미래에 어떤 상품을 권리를 계약하는 경우를 콜옵션 매수라고 하고 미래에 어떤 상품을 권리를 계약하는 경우를 풋옵션 매수라고 한대. 그러니까 물건이나 상품을 직접 사는 것이 아니고 살 수 있는 권리, 팔 수 있는 권리를 사는 것이라고 하는구나. 아빠 같은 소심한 사람은 패스해야 할 투자인 것 같구나.

마지막으로 최근 몇 년 사이에 엄청 핫한 암호화폐란 것이 있단다. 비트코인은 화폐의 발행 근거가 암호 기술인 화폐로, 금처럼 채굴양에 제한이 있고, 엘살바도르 같은 나라는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인정했다는구나. 암호화폐를 이야기할 때 블록체인이라는 말도 자주 듣게 되는데, 이것은 참여자들이 모두 같은 내용의 장부를 가진 채로 연결하는 기술이라고 간단히 말할 수 있단다. 암호화폐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어서 아빠도 관련 유튜브를 보긴 했는데, 너무 변경성이 큰 것 같아서 아빠의 성향이 맞지 않다고 생각했단다.

이렇듯 수많은 금융상품들이 있고, 사람들은 그 금융상품들에 돈을 투자하고 있단다. 24시간 쉬지 않고 돈은 계속 움직이고 있지. 맨 처음 이야기한 것처럼 이렇게 돈이 계속 이동하고 있는 것, 그것이 바로 금융이란다.

이렇게 3권의 이야기도 해봤단다. 오늘은 특히 독서 편지를 쓰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쓴 것 같구나. 얼른 쓰고 지금 읽고 있는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책 읽을 시간까지 독서편지 쓰니라 써버린 것 같구나. 기회비용이 적절했는지 모르겠구나. 3권을 통해 아빠의 경제 상식이 얼마나 쌓였는지 모르겠구나. 그래도 경제에 조금은 더 익숙해진 것 같구나. 그거면 됐지, 오늘은 독서편지에 너무 많이 시간을 투자해서 퇴고는 생략하련다. 오타 있어도 양해 바람.


PS,

책의 첫 문장: 인간은 수많은 리듬에 맞춰 살아갑니다.

책의 끝 문장: 가까운 미래에 우리가 사용할 화폐는 어떤 모습일까요?


금본위제 사회에선 거래가 이뤄질 때마다 비싼 금을 일일이 다 싸들고 다녀야 했으니 위험하고 비효율적이었거든요. 그래서 은행에 금을 넣어두고 금 보관증을 받아 지폐처럼 사용하는 방식이 자연스레 발달한 거예요.
지폐가 있으면 금이 일상에서 사용할 만큼 충분하지 않다는 문제도 해결됩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은행이 금고에 보관 중인 금보다 더 많은 액수의 지폐를 발행하면 돼요. 실제로 금본위제 당시 영국 중앙은행이 보관하고 있던 금의 양은 실제 유통되는 지폐의 액면가액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 P99

결국 본위제는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던 거죠. 시장 규모는 점점 커지는데 금과 은의 양은 한정돼 있으니 말입니다. 화폐를 새로 찍기 위해서는 광산을 뚫어 금은을 더 캐거나 국가와 가계, 기업이 금은 생산량에 맞춰 씀씀이를 줄이는 수밖에 없는데 현실적으로 둘 다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경제의 중심이 된 미국이 금 실물을 화폐와 연동하는 일을 시도했습니다만 결국에는 한계를 느껴 포기하게 되죠. - P103

실제로 당시 미국이 보유한 금은 세계 곳곳에 뿌려진 달러화와 교환해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습니다. 결국 1971년 미국 대통령 닉슨은 달러와 금의 교환을 전면 중단한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했어요. 금과 달러의 연약한 고리가 마침내 끊어진 거죠. 모두가 ‘금 교환증’이라 믿었던 미국의 달러화를 포함해 전 세계의 통화는 이때부터 한낱 종이쪼가리로 전락할 가능성을 안게 됩니다. 돈과 금을 영원히 결별하게 만든 이 사건을 닉슨쇼크라고 합니다. - P242

미국은 어떻게 해서든 달러의 지위를 지키려 하고, 중국은 달러화 대신 위안화로 석유 결제가 되도록 ‘페트로위안 시스템’을 만들려는 시도를 하면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죠.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통화, 즉 기축통화를 발생하는 나라가 누릴 수 있는 막대한 정치, 경제적 이익 때문입니다. - P252

게다가 일본 정부가 발행한 국채는 대부분 자국 내에서 소화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이 대단히 중요해요. 만약 일본 국채를 해외에서 많이 샀더라면 이미 국가 부도 사태로 이어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는 족족 일본 중앙은행을 비롯해 보험, 연기금 등이 대부분 사들이고 있어요. 쉽게 말해 일본 기관들의 자금을 정부가 매해 국채를 통해 빨아들이면서 다시 예산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 P276

나는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지만 인간의 광기는 측정할 수 없다.
- 아이작 뉴턴(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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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조천리 김해 김씨의 젊은 반역아 집단을 대표하는 최초의 인물은 솔뫼 김명식과 목우 김문준이었다. 솔뫼는 이론가였고 목우는 현장 활동가였다. 처음에는 서울의 같은 단체에서 함께 일하던 두 젊은이는 곧 헤어져 한 사람은 서울, 다른 한 사람은 일본 오사카로 활동 영역을 달리했다. 김명식은 <동아일보> 창간 역원이면서 1면의 논설란을 거의 전담하다시피 한 열정적인 논객이었다. 자유가 무엇이고 평등이 무엇인지, 제국주의가 무엇인지, 루소와 몽테스키외가 누구이고 맑스가 누구인지 아는 이가 별로 없던 그 시절에 그 시절에 그의 논설은 새로운 사상에 목마른 청년들에게 특히 인기가 있었다. 나중에 신문사를 떠나 정치조직운동에 투신한 그는 조선 최초의 사회주의 필화사건을 일으켜 세간의 이목을 모은 바 있었다. 그 사건으로 투옥된 그는 모진 고문과 옥독(獄毒)으로 병을 얻어 형기 중간에 출감했지만, 이미 몸은 형편없이 망가져 반신불수에 청각장애인이 되어 있었다.


(271-272)

면장을 마을 밖으로 내친 시위대는 예순살의 원로 김시범 선생을 모시고 동쪽으로 일주도로변에 위치한 만세동산으로 행진해갔다. 기미년 3.1만세운동 때 올라 만세를 불렀던 동산에 그 운동의 주역으로 징역살이를 한 김시범 선생을 모시고 오른 조천리민들의 가슴에는 참으로 만감이 교차했다. 조천리의 모든 항일운동의 원천은 만세동산이었고, 항일로 점철된 마을의 수난사는 언제나 그들의 자부심이었다. 그런 만세동산에서 만세 소리가 다시 터져나온 것이다. 만세동산의 남쪽 사면을 빈틈없이 뒤덮은 군중은 강풍 맞은 대숲처럼 다 함께 온몸을 흔들면서 열렬하게 만세를 불렀다. 이십육년 만에 터져나오는 조선 독립 만세였다. 열세살 창세도, 열여섯살 행필도 땅에 두 발을 쿵쿵 구르면서 목이 쉬도록 소리쳤다. 일제에 의해 억눌렸던 땅, 그 땅에서 기운이 솟아올라 그들의 몸에 넘쳐오르는 것 같았다. 온 세상, 온 우주가 환희로 가득 찬 느낌이었다. 한층 가깝게 다가온 한라산을 향하여, 그 아래 질펀하게 펼쳐진 푸른 들판을 향하여, 저 푸른 희망을 향하여 함성을 지르고 또 질렀다. 휑하니 비어 있는 일주도로 또한 밝은 미래를 향한 새로운 질주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조선 독립 만세!


(295-296)

우리 삼팔선이 그어진 중도 몰랐수다. 전쟁 중에 정신없이 살아서…… 시모노세키 항구에서 출국심사하는 맥아더 사령부 미군이 우리한테 물읍디다. 북조선으로 가겠느냐, 남조선으로 가겠느냐고. 허 참! 북조선, 남조선이라니, 난생처음 듣는 말 아니우꽈? 그래서 물어십주. 거 무슨 말이냐고, 북조선은 뭐고 남조선은 뭐냐고 하니까 삼팔선이 그어졌다는 거라예. , 그것참!”

그래서 모두 이구동성으로 말해십주. ‘우린 남도 아니고 북도 아니고, 제주도로 가겠다!’ 하고.”


(327-328)

조천리민 여러분! 그동안 우리가 나라를 빼앗기고 얼마나 고생이 많았수과? 얼마나 많은 피눈물을 흘렸수과? 부모 없는 설움보다 나라 없는 설움이 더 컸수다. 왜 놈들한테 당한 일을 생각하면 참말로 치가 떨립니다. 멸시당하고 매 맞고…… 아아, 그러나 이제는 해방이우다. 압제의 굴레에서 풀려났수다. 여러분, 고맙수다. 이 기쁜 자리에 우리를 불러 이렇게 축하해주시니 참말로 고맙수다. 하지만 우리가 축하받기 전에 먼저 생각해야 할 어른님들이 있수다. 극악무도한 살인적, 강도적 일본제국주의와 싸우다가 해방을 보지 못한 채 돌아가신 순국열사, 우리 마을 조천리가 낳은 영웅들, 그분들을 먼저 생각하면서 애도를 표합시다!”


(333)

청년 여러분, 지난날을 생각하면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저 악독한 왜놈들을 위해 종노릇한 일을 생각하면 참으로 지긋지긋해여마씸. 식민지 청년이란 얼마나 가난하고 누추하고 비굴한 존재였수과? 우리는 채찍 맞아 돌아가는 팽이처럼 날이면 날마다 매 맞고 구박을 당해야만 했수다. 그러나 이제는 해방이우다. 압제의 족쇄와 쇠사슬이 풀리고 해방이 왔수다. 금방 안세훈 선생님의 말씀, 참말로 옳은 말씀이우다. 이제 청년의 시대입니다. 우리의 시대란 말이우다!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375)

일제의 극심한 압박에 짓눌렸던 제주 사회는 일본군이 떠나자 도처에 신생의 기운이 넘쳐흘렀다. 사방 초목도 억압에서 벗어난 듯 더욱 푸르고 푸른 바다, 푸른 하늘도 새로운 빛으로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밭마다 돌담 안에 가득 실린 조 이삭들이 탐스럽게 자라 풍작을 기약하고 있었고, 알뜨르, 진뜨르 비행장도 농토로 복구하여 주인에게 돌려주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었다. 전분 공장, 단추 공장, 방직 공장이 작업을 재개했고, 공습으로 파괴된 주정 공장은 복구 중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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