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자들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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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는 노벨문학상 작가들의 책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니란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들의 책은 기본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많았거든. 그런데 그걸 깨준 이가 있었으니, 올가 토카르추크라는 분이란다. 아빠가 작년에 올가 토카르추크의 제목도 외우기 어려운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거든. 그래서 그 이후에 올가 토카르추크가 쓴 책들을 몇 권 더 사들였단다.

그 중에 한 권을 이제서야 읽었단다. 제목은 <방랑자들> 그런데 이번에 읽은 <방랑자들>은 작년에 읽은 제목도 외우기 어려운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와는 사뭇 다른 책이로구나. <방랑자들>이 분명 장편소설이라고 알고 읽기 시작했는데, 도대체 줄거리를 종잡을 수 없었어. 왜냐하면 각각의 에피소들이 이어지지 않고 각각의 독립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거든. 그리고 그 형식도 소설의 형식을 띄는 것도 있고, 에세이의 형식을 띠는 것도 있고, 편지 형식도 있고, 심지어 어떤 에피소드는 한 문장으로 된 것도 있단다. 아빠가 책 표지에서 장편소설이라고 본 것이 확실한데도, 다시 책 표지를 확인해 보았단다. 역시나 장편소설이라고 써 있었어.

, 대단한 형식 파괴로구나. 소설의 형식이 확실하게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이런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묶어 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역시 노벨문학상은 아무나 타는 것이 아니야, 이런 생각도 들었어. 그 많은 에피소들을 관통하는 제목이 바로 방랑자들이란다. 읽다 보면 제목을 여행자들로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많은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여행을 하면서 본 책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여행을 하면서 느낀 생각들도 이야기하고, 갑자기 방랑과 여행의 차이점이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래서 사전을 뒤져보았단다. 간편하게 인터넷 국어사전을 찾아볼 수도 있지만, 종이로 된 국어사전을 펼쳐봤어.

방랑. 갈 곳을 정하지 않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것. 예문 <김삿갓은 전국을 방랑하면서 시를 지었다.>

여행. 이것저것 두루 구경하려고 다른 고장이나 다른 나라에 가는 것. 예문 <삼촌은 혼자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

이런 차이가 있다고 하는구나.


1.

아무튼 이 책은 장편소설이지만, 줄거리 이야기해주기 참 곤란한 책이라는 거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에세이 같은 글도 있고 편지 형식의 글도 있고 소설의 형식의 글도 있단다. 여행이나 방랑하면 떠오르는 장소인 공항에서 일어나는 일, 기차에서 일어나는 일, 호스텔 같은 숙소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있고, 그런 장소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도 있단다. 그래도 명색이 소설인데 소설 같은 글들도 있단다. 어떤 에피소드들은 단편 또는 중편 소설의 길이의 이야기가 그것이야. 하나의 에피소드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중간중간 에피소드들로 나뉘어서 이야기를 해주기도 한단다.

쿠니츠키라는 남자가 있는데 크로아티아에 여행을 왔다가 아내와 아이를 잃어버리고 경찰과 함께 찾는 이야기가 나온단다. 조그마한 섬이라서 갈 곳도 별로 없는데, 실종이 되어 걱정을 하며 찾는 것으로 에피소드가 일단락된단다. 그리고 한참 뒤쪽에 다른 에피소드에서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3일만에 아내와 아이가 안전하게 돌아왔단다. 그런데 그 3일동안 무엇을 했냐고 추궁하기 시작하고 아내가 한 이야기는 믿지 못하고, 강박증과 의심증이 심해졌어. 그리고 아내 몰래 휴가를 쓰고 아내의 뒤를 밟기도 하다가 들통이 나기도 했어. 결국 아내는 아이들 데리고 집을 나가 버렸지. 기분 좋아지려고 간 여행이었을 텐데, 최악의 결말이 되었구나.

또 하나 에피소드를 이야기해줄게. 아누슈카라는 여자가 있었어. 아들 피에티아가 있었는데, 불치병에 걸려서 늘 아누슈카가 보살펴 주어야 했단다. 하루는 시어머니가 피에티라를 보살펴 주셔서 외출을 할 수 있었어. 외출이라고 해봐야 기도하고 장보고 그런 거였지. 그런데 집에 돌아오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뒤로 돌아섰어. 무작정 떠나고 싶었어. 기차를 타고 아무 곳에나 내리고 또 떠나고 밤이 되면 노숙하고 그렇게 지내다가 며칠이 지난 뒤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단다. 아들을 보살피며 쳇바퀴처럼 살던 아누슈카. 멋진 여행은 아니지만 자신의 영혼에게 잠시 자유를 주었던 멋진 방랑이 아니었을까 싶더구나.

….

신의 구역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어. 주인공은 옛사랑으로부터 메일이 한 통 받았어. 메일을 읽어보자 그 사람이 누구인지 떠올랐어. 그는 불치병에 걸려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고 했어. 곁에는 누이밖에 없는데, 한번 와 달라고 부탁을 했단다. 편지를 받은 주인공은 남편에게 학회에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유럽으로 떠났단다. 그 옛사랑을 만나려고... 그렇다고 그 옛사랑과 다시 무엇인가 하려는 것은 아니고 죽음을 앞둔 사람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생각에서였어. 그는 모르핀으로 고통을 참아가며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신세였단다. 삶 자체가 고통이었지. 그는 자신이 편하게 죽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단다. 주인공은 그의 부탁을 들어주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단다.

쇼팽의 심장에 관한 이야기도 재미있었단다. 쇼팽이 폴란드 사람이잖니. , 그러고 보니 지은이 올가 토카르추크도 폴란드 사람이구나. 쇼팽이 파리에서 숨을 거두었고 장례식도 파리에서 했다고 하는구나. 쇼팽이 죽기 전까지 누이 루드비카가 보살펴 주었어. 쇼팽이 죽기 전에 늘 고향이 묻히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대. 그래서 루드비카는 쇼팽이 죽은 뒤에 쇼팽의 심장만 따로 떼어내고 치마 속에 숨겨서 폴란드 바르샤바로 가지고 와서 그곳에 매장을 했다는 하는구나. 그래서 쇼팽의 묘지는 파리에 있지만, 쇼팽의 심장은 바르샤바에 묻혀 있다고 하는구나.

….


2.

이 책은 앞서 이야기했지만 에세이 형식의 글도 많다고 했잖아. 그런 에세이들 중에 담긴 글들 중에 좋은 글들을 너희들에게 소개해 주고 싶기도 하구나. 두어 편 소개하면서 오늘 편지는 마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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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하지만 시간에 대해 나는 의견이 다르다. 모든 여행자의 시간은 수없이 많은 시간이 하나로 모인 결합체다. 그것은 혼돈의 대양 속에서 정리된 시간, 섬과 군도의 시간이다. 기차역의 시계가 만들어 내는 시간, 가는 곳마다 달라지는, 그때그때 약속된 시간이자 자오선의 시간이기에 그 시간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시간이 사라져 버리고, 먼동이 크기가 무섭게 오후와 저녁의 발소리가 계단에서 들려온다. 그저 잠시 머무는 대도시에서의 빡빡한 시간은 하룻저녁을 송두리째 바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비행기에서 목격할 수 있는, 인적 없는 평원의 느긋한 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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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뭔가를 글로 묘사한다는 건, 그것을 사용한 것과 비슷해서 결국엔 그것을 망가뜨리게 된다. 색깔이 엷어지고 모서리는 닮아서, 글로 적어 놓은 것들은 결국 희미해지고 사라져 버린다. 특히 장소에 관한 글이 그렇다. 여행 안내서들은 침략이나 전염병처럼 지구의 상당 부분을 파괴하고 막대한 손실을 초래했다. 다양한 언어로 수백만 부를 찍으면서 해당 장소를 속박하고 약화시키고 그 윤곽을 지워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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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6)

밤이 되면 세상 위로 지옥이 떠오른다. 가장 먼저 일어나는 현상은 공간의 형태를 파괴하는 것이다. 모든 곳을 더욱 비좁게 만들고, 더욱 거대하게 만들고, 움직일 수 없게 만든다. 세부 항목들은 사라지고 사물은 자신의 고유한 모양을 잃어버리며 쪼그라들어서 불분명해진다. 낮에는 아름답다혹은 유용하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들이 밤에는 마치 형태를 잃어버린 몸뚱이처럼 이전에 과연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짐작조차 하기 힘든 상태가 된다. 지옥에서는 모든 것이 가상으로 존재한다. 낮 시간에 드러난 형태의 다양성, 색의 현존, 음영 따위는 전부 헛된 것이 되어 버린다. 대체 그것들이 다 무슨 소용인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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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나는 서너 살이다.

책의 끝 문장: 어쩌면 우리는 새로 태어날 것이라고. 이번에는 적절한 시간, 적절한 장소에서.


심장. 그 신비는 확실히 밝혀졌다. 주먹 하나 정도 크기의 고르지 못한, 더러운 크림색 덩어리. 칙칙하고 보기 싫은 잿빛이 감도는 크림색, 크게 바로 우리 몸의 색깔이라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다. 자동차나 벽지를 고른다면, 우리는 절대 그런 색을 원치 않을 것이다. 그것은 어둠의 색깔이자 내부의 색깔이다. 햇볕이 들지 않고 물질이 낯선 시선으로부터 음습하게 자신을 감추는 내부. 아무것도 과시할 게 없다. 하지만 피가 돌기 시작하면 화려한 치장이 허용된다. 피는 경고이고, 그 붉은빛은 경고의 신호다. 우리를 덮고 있던 조개껍데기가 열리고 세포 조직의 지속성이 깨질 수도 있다는.
실제로 우리 몸의 내부에는 아무런 색깔이 없다. 심장이 원활하게 혈액은 펌프질 할 때 혈액의 색깔은 콧물과 같다.
- P40

그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인체는 전적으로 신비로운 대상이다. 아무리 정확하게 묘사한다고 해도 그것에 대해 완벽하게 아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모든 것을 더욱 가까이 들여다보기 위해 열심히 유리를 갈면서 동시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엄청나게 어려운 언어를 창조했던 렌즈 연마공 스피노자, 그 철학자의 논리와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흔히 말하듯 ‘보는 것이 아는 것’이므로. -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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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브레인 - 삶에서 뇌는 얼마나 중요한가?
데이비드 이글먼 지음, 전대호 옮김 / 해나무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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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우리 신체 기관 중에 가장 비밀도 많고 신기한 기관은 뇌가 아닐까 싶구나. 사람이 죽었다고 판단하는 기준에 있어서도 일반적으로 심장이 멈췄을 때를 죽었다고 하지만, 심장은 뛰어도 뇌가 죽었을 경우를 죽었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어. 그만큼 뇌라는 것이 우리 신체에서 중요한 부분이고 말이야. 그래서 단단한 머리뼈로 보호할 수 있도록 진화된 거겠지. 그런 뇌에 대한 비밀을 풀기 위한 연구는 오랫동안 이루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것이 뇌가 아닐까 싶구나. 일반인들을 상대로 한 뇌에 대한 책들도 시중에 엄청 많이 나와 있고, 아빠도 그런 책들을 여럿 읽어 보았단다.

이번에 읽은 <더 브레인>이라는 책도 뇌에 관한 책이란다. 지은이는 데이비드 이글먼이라는 뇌과학자인데, 뇌에 관한 책들을 여럿 쓰신 분이라고 하는구나. <더 브레인>은 미국과 영국에서 다큐멘터리로 방영된 TV 방송 프로그램을 책으로 엮은 것이라고 했어. TV 프로그램을 책으로 엮은 것이라서 그런지 중간중간 사진들도 많이 나오고, 어렵지 않게 설명되어 있어 읽기 편했단다. 정말 뇌라는 것은 신기하구나. 1.4 킬로그램 밖에 되지 않는 쭈글쭈글한 것이 우리 몸을 통제하고 우리 정신 세계를 구축하고 인간의 존재를 만들어내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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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신경과학은 내가 매일 하는 예사로운 일이지만, 지금도 나는 인간의 뇌를 손에 받쳐들 때마다 경외감에 빠진다. 뇌의 상당한 무게(성인의 경우 1.4킬로그램), 기이한 균질성(꼭 탄탄한 젤리 덩어리 같다), 쭈글쭈글한 겉모습(둥그스름한 전체에 깊은 골들이 패여 있다)을 살펴보고 나면, 뇌가 순전히 물리적인 대상이라는 점이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이 보잘것없는 물질 덩어리와 그것이 산출하는 정신적 과정들은 너무나 어울리지 않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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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은 다른 동물과 달리 머리가 커서, 태어날 때 머리는 미성숙한 상태에서 태어난다고 알고 있어. 태어난 이후에도 뇌는 계속 성장하고, 20대가 넘어서야 완전한 뇌가 된다고 들었어. 그래서 뇌를 이루는 주요 요소인 시냅스가 계속 늘어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시냅스의 개수는 아기일 때가 최대치라고 하는구나. 처음 알게 된 사실이야. 뇌가 자란다는 것은 최대치에 이른 시냅스의 개수를 적절하게 제거하면서 최적화하는 과정이라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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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이제 아기의 스냅스 개수는 최대치에 도달했으며, 그 개수는 앞으로 아기에게 필요한 개수보다 훨씬 더 많다. 이 시점에서 새로운 연결들의 만발 대신에 신경학적 가지치기가 새로운 전략으로 채택된다. 당신이 성숙하는 동안, 당신이 가진 시냅스들의 50퍼센트가 감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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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동작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 걸까? 수많은 시냅스와 뉴런은 어떻게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을까? 컴퓨터의 저장디스크에 데이터를 저장하는 원리를 알고 있다면 뇌라는 것에 데이터가 저장되는 것은 방식은 정말 신비롭단다. 그리고 왜 어떤 기억은 오랫동안 기억되고, 어떤 기억은 금방 잊혀지고 말이야.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달해도 이런 뇌를 구현하기는 어려울 거야. 이 책에서 말하길 뇌의 동작을 도시에 비유했단다. 도시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 상호 작용을 하면서 작동하는 거처럼 뇌도 여러 뉴런들의 상호작용으로 작동한다고 말이야. 그런 상호작용들이 우리가 지금 행동하고 생각하고 보고 맛보고 냄새 맡는 등 모든 몸의 기능을 할 수 있게 하는 거라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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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뇌의 작동도 마찬가지다. 뇌의 작동은 한 지점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도시에서와 마찬가지로, 뇌의 어떤 구역도 격리되어 홀로 작동하지 않는다. 뇌의 도시에서 모든 일은 거주지들 사이의 상호작용에서 발생한다. 그 상호작용은 온갖 규모에서 일어난다. 국소적으로 일어나기도 하고, 먼 거리를 가로질러 일어나기도 한다. 열차들이 도시로 들여온 천연자원과 직물이 가공되어 도시의 경제에 편입되듯이, 감각기관들에서 유래한 미가공의 전기화학적 신호들은 뉴런들로 이루어진 초고속도로로 운반된다. 그러면서 그 신호들은 가공과 변환을 거쳐 우리가 의식하는 실재에 편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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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상호작용이라는 것이 뇌의 뉴런들 사이에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란다. 뇌와 뇌도 서로 상호작용을 하여 뇌를 변화시키고 있어. 그러니까 너희들의 뇌와 아빠의 뇌가 서로 영향을 준다는 것이지.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도 뇌가 그렇게 다른 뇌의 영향을 받아 변화하는 특징이 있어서 가능한 거야. 너희들의 뇌 형성에 영향을 주는 것이 가장 가까이 있는 엄마와 아빠의 뇌라는 것이구나. 갑자기 책임감이 확 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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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전통적으로 뇌 연구는 고립된 뇌를 대상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이 접근법은 엄청나게 많은 외 회로들이 다른 뇌들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우리는 깊은 수준에서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는 우리의 가족들, 친구들, 동료들, 거래 상대들이 중첩되어 이룬 복잡한 상호작용으로 구성된다. 주위의 모든 곳에서 우리는 관계의 형성과 결렬, 친밀한 유대, 강박적인 사회연결망 형성, 충동적인 동맹을 본다. 이 모든 사회적 결합을 위한 접착제는 뇌 속의 특별한 연결망들에서 생산된다. 어지럽게 퍼져 있는 그 연결망들은 타인들을 주시하고, 타인들과 소통하고, 타인들의 고통을 느끼고, 타인들의 의도를 파악하고, 타인들의 감정을 읽어낸다. 우리의 사회생활 솜씨는 뉴런 회로 속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 그 회로를 이해하는 일은 사회신경과학이라는 신생 분야의 기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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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공지공 로봇에 대한 연구가 한창이란다. SF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도 인공지공 로봇을 소재로 한 것들이 많아. 과학이 발달하게 되면 정말 인간과 비슷한 인공지능 로봇을 만들 수 있을까? 다른 기관들은 비슷하게 만들 수 있는데, 인간의 뇌를 잘 구현할 수 있을까? 계산능력 데이터처리능력 판단능력 등은 이미 인간의 뇌를 넘어섰어. 인공지능의 바둑실력을 이제는 인간이 이길 수 없다고 하잖아.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인간의 능력을 컴퓨터로 구현할 수 있을까. 걷거나 달리거나 자전거 타는 것들은 무의식적으로 하는데, 컴퓨터가 하게 되면 수많은 계산을 통해서 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을 구현할 수 있을까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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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그러니 다음번에 사람이 걷거나 달리거나 스케이트보드를 타거나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보거든, 잠깐 멈춰서 인체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그 동작을 완벽하게 지휘하는 무의식적 뇌의 능력에도 감탄할 시간을 가지기 바란다. 우리의 가장 기초적인 동작들의 복잡한 세부 사항은 수조 회의 계산에서 나온 결과다. 그 모든 계산은 당신이 볼 수 없을 만큼 작은 공간적 규모에서 당신이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게 일어나는 신호 전달의 형태를 띤다. 지금까지 제작된 로봇들의 움직임은 인간의 신체 동작에 훨씬 못 미친다. 게다가 슈퍼컴퓨터는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는 반면에, 우리의 뇌는 놀라운 에너지 효율을 자랑한다. 인간 뇌에 에너지 소비량은 대략 60와트 전구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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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소설을 읽다 보면 우리 머릿속의 데이터를 뽑아 내어 디스크에 저장하는 이야기가 나오곤 한단다. 과연 이 기술이 가능할까? 이런 것 또한 시도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 우리 머릿속의 의식을 데이터로 뽑아서 저장이 가능하게 되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지은이는 다른 별로 가는 여행이 가능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구나. 그런데 아빠가 생각하기에 이건 정말 불가능해 보이는구나. 가능하더라도 인간의 멸종이 더 빠르지 않을까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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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5)

만일 의식의 업로드가 가능하다고 밝혀진다면, 다른 별들로 가는 여행의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우리 우주에는 제각각 1000억 개의 별들을 거느린 은하가 최소 1000억 개나 있다. 우리는 그 별들 주위를 도는 외계 행성들을 이미 수천 개 발견했다. 그것들 중 몇몇은 지구와 꽤 유사하다. 문제는 우리가 현재 지닌 생물학적 몸으로는 그 외계 행성들로 가는 여행이 영영 불가능하리라는 점이다. 우리가 그토록 먼 시공을 가로질러 그곳들에 도달할 전망이 전혀 없다. 그러나 당신이 디지털화되어 있다면, 당신의 시뮬레이션을 중단시킨 상태로 먼 우주로 발사한 다음에 1000년 후 어느 외계 행성에 도착할 때 재가동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당신의 의식은 당신이 지구에서 발사된 다음에 곧바로 새 행성에 도착했다고 느낄 것이다. 의식을 업로드하는 기술의 등장은 웜홀의 발견과 마찬가지로 일 것이다. 그 기술은 우리가 우주의 한 위치에서 다른 위치로 (주관적인 관점에서) 순식간에 이동하는 것을 가능케 해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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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이 책에 나와 있는 내용 중에 일부를 소개해 주었는데, 아빠가 소개하지 않은 내용들 중에도 흥미로운 이야깃거리 많았단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뇌의 동작에 대해 몰랐던 점을 알게 된 것도 있지만, 뇌에 대해 더욱 궁금해지더구나. 이 책이 다큐멘터리를 바탕으로 한 책이라고 했잖아. 그 다큐멘터리 원본을 볼 수 있는지 함 찾아봐야겠구나. , 그럼은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뇌과학은 빠르게 변화하는 분야다.

책의 끝 문장: 우리가 누가 될지는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요컨대 그 생일잔치에 대한 당신의 기억은 이미 퇴색하기 시작했다. 왜 그럴까? 첫째, 당신이 보유한 뉴런의 개수는 유한하며, 모든 뉴런은 여러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각각의 뉴런이 때에 따라 다른 연결망에 참여한다. 그 생일잔치에 대한 기억을 담당하는 ‘생일’ 뉴런들이 다른 기억 연결망에 동원되는 일이 거듭됨에 따라, 그 생일잔치 기억은 퇴색한다. 기억의 적은 시간이 아니라 다른 기억들이다. 새로운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유한한 개수의 뉴런들 사이에서 새로운 연결망이 형성되어야 한다. 오히려 놀라운 것은, 기억이 퇴색했는데도 당신은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다. 당신은 그날의 장면 전체가 기억에 남아 있다고 느끼거나 최소한 추측한다. - P38

시각이란 눈에 들어온 광자들을 뇌의 피질이 손쉽게 해석하는 활동이 아니다. 오히려 시각은 온몸이 참여하는 경험이다. 뇌로 들어오는 신호들은 훈련을 거쳐야만 유의미하게 해석될 수 있고, 그 훈련은 그 신호들을 우리 활동의 감각적 귀결들과 비교하는 작업을 필요로 한다. 이런 훈련을 통해서만 우리의 뇌는 시각 데이터가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석할 수 있게 된다. - P64

결론적으로, 당신의 머리 바깥에 있는 세계의 ‘참모습’은 어떠할까? 그 세계에는 색깔이 없을뿐더러 소리도 없다. 그 세계에 있는 공기의 압축과 팽창이 당신의 귀에 포착되어 전기 신호로 변환될 뿐이다. 그러면 뇌는 그 신호들을 감미로운 음악과 ‘쌩’하는 소리와 덜거덕거리는 소리와 쨍그랑거리는 소리로 가공하여 우리에게 제공한다. 냄새도 실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뇌 바깥에는 냄새 따위가 없다. 공중에 떠도는 분자들이 우리의 콧속 수용기들과 결합하고 뇌에 의해 다양한 냄새로 해석될 뿐이다. 실재 세계는 풍부한 감각적 사건들로 가득 차 있지 않다. 오히려 우리의 뇌가 손전등으로 대상을 비추듯이 고유한 감각 능력으로 세계를 비추는 것이다. - P86

컵 쌓기 챔피언 오스틴 네이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몰입 상태에 진입한 극한 스포츠 선수의 뇌파는 의식적 숙고의 재잘거림(내가 멋있게 보일까? 내가 이러이러한 말을 해야 할까? 내가 집에서 나올 때 문을 잘 잠갔나?)으로 요란하지 않다. 몰입 상태의 뇌에 서는 ‘이마엽 저하(hypofrontality)’가 일어난다. 이 용어는 앞이마엽피질의 몇몇 부위에서 일시적으로 활동이 감소하는 것을 뜻한다. 그 구역들은 추상적 사고, 미래 계획, 자아감에 주의 집중하기를 담당한다. 이 배경 활동들을 줄이는 것은 선수가 암벽을 타는 비법의 핵심이다. 딘이 발휘한 것과 같은 솜씨는 내면의 재잘거림이 없을 때만 발휘될 수 있다. - P121

당신의 뇌는 경쟁하는 정당들로 구성된 의회와 유사하다. 정당들은 국가라는 배를 조정하기 위해 끝까지 싸운다. 당신은 때때로 이기적으로 결정하고, 때로는 자비롭게, 때로는 충동적으로, 또 어떤 때는 장기적인 전망을 고려하면서 결정한다. 우리는 복잡한 존재다. 왜냐하면 우리는 수많은 욕망들로 이루어졌고, 그 모든 욕망들이 저마다 통제권을 쥐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 P142

개별 뉴런은 어둠 속에서 산다. 뉴런 각각은 다른 뉴런들과 함께 이룬 연결망 속에서 단순히 신호들에 반응하면서 평생을 보낸다. 개별 뉴런은 자신이 셰익스피어를 읽는 당신의 눈을 움직이는 일에 참여하는지, 혹은 베토벤을 연주하는 당신의 손을 움직이는 일에 참여하는지 알지 못한다. 애당초 당신이라는 존재 자체를 모른다. 당신의 목표, 의도, 능력은 이 작은 뉴런들의 존재에 전적으로 의존하지만, 이 뉴런들은 자신들이 모여서 이루는 결과를 알아채지 못하는 채로 더 작은 세계에서 산다. -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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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가 강제 수용소에서 사용한 독가스의 전신인 치클론A는 수십 년 전 캘리포니아 오렌지 살충제로 뿌려졌으며 멕시코인 수만 명이 미국에 밀입국하려고 몰래 탑승한 기차의 이를 구제하는 데 쓰였다. 객차의 나무판은 고운 파란색으로 물들었는데, 오늘날까지도 아우슈비츠의 벽돌에서 볼 수 있는 바로 그 색깔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 시안화물의 진짜 기원은 1782년에 최초의 현대적 합성 안료 프러시안블루에서 분리된 부산물이다.

 

(42)

프리츠 하버가 죽을 때 지니고 있던 몇 안되는 소지품 중에는 아내에게 쓴 편지가 있었다. 편지에서 그는 견딜 수 없는 죄책감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무수한 사람들의 죽음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기 때문이 아니라 공기 중에서 질소를 뽑아내는 자신의 방법이 지구의 자연적 평형을 무지막지하게 교란하는 바람에 인류가 아니라 식물이 세계를 차지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단 몇십 년 동안이라도 인구가 산업시대 이전으로 감소한다면 인류가 공급한 잉여 영양소 덕에 식물이 무한히 증식하여 지구에 두루 퍼지고 땅을 완전히 뒤덮어 모든 생명을 끔찍한 초록 아래 질식시킬 테니까.

 

(48)

일반적인 항성의 경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공간은 아인슈타인의 예측대로 완만하게 휘어졌으며 항성 본체는 마치 해먹에 누운 두 아이처럼 함몰부 중앙에 떠 있었다. 문제는 거성이 연료를 다 써버려 붕괴하기 시작할 때처럼 너무 큰 질량이 매우 작은 면적에 집중될 때 일어났다. 슈바르츠실트의 계산에 따르면 그런 경우에는 시공간이 단지 휘어지는 것이 아니라 찢어진다. 항성이 짜부라들어 밀도가 계속 커지다보면 중력이 너무 세지는 바람에 공간이 무한히 휘어져 스스로를 감싸고 만다. 그 결과는 우주의 나머지 부분과 영영 단절되어 빠져나갈 수 없는 심연이다.

사람들은 이를 슈바르츠실트 특이점이라고 불렀다.

 

(153)

아인슈타인이 1905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을 주장했을 때 다들 그가 선을 넘었다고 판단했다. 비판자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물론 빛은 비물질적이니 이런 기이한 형태로 존재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물질은 고체 아닌가. 그들은 물질이 파동처럼 행동하리라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빛과 물질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결국 물질의 입자는 작은 금알갱이와 같아서 한정적 공간에 존재하며 세상에서 그 하나의 장소만을 점유한다. 입자의 정확한 위치를 시시각각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 물질이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앞쪽으로 발사된 물체는 장애물에 부딛히면 뒤로 튕겨져나가 특정한 점에 떨어진다. 이에 반해 파동은 드넓은 바다의 물처럼 끝없는 수면을 따라 뻗어 있으며 이런 식으로 동시에 여러 위치에 존재한다. 파동은 바위에 부딪히면 바위를 에돌아 제 길을 같다. 정면으로 마주친 두 파동은 서로 상쇄하여 소멸할 수도 있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그대로 진행할 수도 있다. 해변에서 부서지는 파도는 바닷가의 모든 장소를 동시에 때리지 않으면서도 여러 장소를 때린다. 입자와 파동이라는 두 현상은 본질 면에서 대립하고 모순되며 행동 면에서 상반된다. 그럼에도 드 브로이에 따르면 모든 원자는 빛과 마찬가지로 파동이자 입자이며 때로는 파동처럼 때로는 입자처럼 행동한다.

 

(200)

이 새로운 파동역학의 중요성을 감히 부정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몇몇은 빌라 헤어비히 요양원에서 슈뢰딩거의 골머리를 썩인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파동 함수가 실재에 대해 실제로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처음으로 질문을 던진 사람 중 하나인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이렇게 썼다. “참으로 아름다운 이론이다. 인류가 발견한 것 중에서 가장 완벽하고 정확하고 우아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뭔가 기이한 구석이 있다. 마치 우리에게 이렇게 경고하는 듯하다. 자신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내가 보여주는 세상은 당신이 나를 적용하명서 생각하는 세상과 같지 않다고.” 슈뢰딩거는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개념을 설명하는 일에 열중했으며 어딜 가든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216-217)

하이젠베르크가 자신의 새 개념을 뒷받침하는 수학적 근거를 적어둔 종이를 꺼내 건네자 보어는 눈밭에 앉아 읽었다. 하이젠베르크에게 영원처럼 느껴진 시간 동안 보어는 말없이 계산을 검토했으며, 다 끝나자 일어나는 것을 도와달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추위를 떨치려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보어는 이것이 실험적 한계와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있으냐고, 기술이 발전한 미래 세대는 이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하이젠베르크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것은 물질 자체에 관계된 것이고, 만물이 창조되는 방식을 지배하는 원리이며, 어떤 현상이 완벽하게 정의된 특징들을 한꺼번에 가질 가능성을 배제하는 듯하다는 것이었다. 그의 애초 직관은 옳았다. 양자의 실체를 보는것이 불가능한 이유는 양자가 단일한 정체성을 가지지 않는다는 단순한 이유에서다. 양자의 성질들 중 하나를 규명하면 다른 것이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양자계를 기술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림도 은유도 아니라 숫자의 집합이다.

 

(253)

전 세계를 장악한 스마트폰 뒤에는, 인터넷 뒤에는, 신과 같은 연산 능력이라는 가슴 벅찬 약속 뒤에는 양자역학이 있다. 양자역학은 우리 세상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우리는 양자역학을 이용할 줄 알며 양자역학은 마치 신기한 기적처럼 작동하지만, 이것을 실제로 이해하는 사람은 산 자와 죽은 자를 막론하고 단 한 명도 없다. 우리의 정신은 양자역학의 역설과 모순을 감당할 수 없다. 양자역학은 마치 다른 행성에서 지구로 떨어진 이론 같아서 우리는 유인원처럼 그 주위를 뛰어다니고 만지작거리고 노리개로 쓸 뿐 결코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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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로 가는 사람들 스텔라 오디세이 트릴로지
김보영 지음 / 새파란상상(파란미디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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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최근 SF 소설을 좀 읽어서 그런지 SF 소설이 눈에 많이 들어오는구나.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SF 소설을 전문적으로 쓰는 소설가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었어. 이번에 읽은 <미래를 가는 사람들> SF 소설을 찾아보다가 알게 된 소설이란다. 지은이는 김보영이라는 분인데, 2004년 등단하신 이후 많은 SF 소설들을 써 오셨단다. 이번에 아빠가 읽은 <미래를 가는 사람들>이란 책은 스텔라 오디세이 트릴로지시리즈 중에 하나라고 하더구나. 그렇다고  그 소설들이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서 읽는 순서가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더구나. 다른 책들도 찾아보니 같은 시리즈라서 그런지 책 표지의 디자인이 비슷비슷하더구나.


1.

<미래로 가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이 비유적이거나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줄 알았는데, 소설 속에 실제로 미래로 가는 사람들이 나오더구나. 시간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거지. 보통 시간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면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능력이 있는 경우와 타임머신이라는 기계를 이용하는 경우가 있단다. 이번에 읽은 소설에서는 광속우주선이라는 것이 개발되어 시간여행을 하는 이들이 생겨난 거야. 광속우주선으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은 특수상대성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단다.

특수상대성이론을 간단히 이야기하면, 빠른 속도를 가진 물체는 시간이 천천히 간다는 것이고, 만일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가 있다면 그 물체의 시간은 멈춰 있게 되는 거야. 그러니까 광속우주선 속의 사람은 시간은 멈춰 있고, 그 우주선 밖의 사람은 시간이 흘러가니까 시간 여행을 하는 것이지. 우주선 밖의 시간이 수백 년이 흘러도 광속우주선 안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 거야. 그랬다가 광속우주선의 속도를 줄이게 되면 다시 시간이 흐르니, 미래로 갈 수 있다는 것이지. 아빠는 그렇게 이해를 했단다.

시간은 멈췄다고 해도 영양분은 섭취해야 하지 않을까? 기술이 발달하여 광합성을 하는 나노봇이란 것을 핏속에 넣을 수 있었어. 그러면 그 나노봇이 광합성을 일으켜 식물처럼 영양분을 만들어낼 수 있는 거지. 그럴 듯한 설정이었단다.

그런데 이야기의 소재는 좋았지만, 스토리 라인은 아빠 취향이 아니랄까 아빠에게는 별로였단다. 주인공 성하라는 사람이 항법사 셀레나를 만나서 우주여행을 하는 스토리였어. 어떤 행성에서는 자신처럼 시간여행을 하는 사람이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이제 막 문명을 싹 틔우려고 하는 사람들 속에서 ()’으로 군림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어. 성하에게 자신과 같은 ()’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했지만 이내 성하는 그곳을 떠나 다시 시간여행이자 우주 여행을 했단다. 또 다른 여행자들도 만나기로 하고 인간과는 전혀 다른 생명체도 만나면서 겪는 이야기였단다.

소설이 짧아서 금방 읽었는데, 며칠 지나니 그 줄거리가 잘 생각나질 않는구나. 무슨 뜻인지 알겠지?^^ 오늘은 이렇게 간단히 끝낼게.


PS:

책의 첫 문장:  가장 큰 문제는 이 집에 밤과 낮의 구분이 없다는 사실이다.

책의 끝 문장: 이 작은 별 가득히 자라나게 될 수많은 생물과, 앞으로 펼쳐질 그들의 찬란한 삶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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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하지만 신라의 입장에서 헤아려 본다면 생각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지금의 경상도 크기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나라 신라가 북쪽의 강대한 세력인 고구려와 최대의 라이벌 백제, 끊임없이 침략을 자행하는 왜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당시엔 지금처럼 고구려, 백제, 신라를 민족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던 시대가 아니었음도 상기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서로 별개의 나라로 오직 국가를 유지하는 것이 지상과제였고, 신라도 그들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다. 신라가 백제의 땅을 지키지 못하고 신라 땅마저 당나라에 병합됐더라면, 고려와 조선의 역사가 있었을까?


(42-43)

탈해는 훌륭하고 지혜 있는 사람은 이가 많다고 하면서 떡을 깨물어 유리와 자기의 이의 수를 헤아려 보았다. 그 결과 유리의 이 수가 더 많자, 탈해는 자기의 측근들과 함께 유리를 받들었다. 그후로 이 자국이라는 뜻의 이사금을 왕호로 하였다고 전한다.


(73)

이렇게 볼 때, 신라 왕조는 시조 혁거세왕부터 제 8대 아달라왕까지 240년 동안은 박씨의 시대, 9대 벌휴왕부터 제16대 흘해왕까지 172년 동안은 석씨의 시대, 17대 내물왕부터 제52대 효공왕까지 556년 동안은 김씨의 시대, 그리고 멸망기 해당하는 제53대 신덕왕부터 제55대 경애왕까지 15년 동안은 다시 박씨의 시대로 구분될 수 있다. 마지막 왕인 경순왕은 후백제 왕 견훤이 세운 왕이었으므로, 이때는 이미 신라의 왕권이 무너진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215)

눌지왕 대에 이르러 왕에 대한 칭호가 이사금에서 마립간(麻立干)으로 변경되었다. 김대문에 따르면 마립이란 말뚝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직위에 따라 놓는 것이니 조선 시대의 품석(品石, 품계를 새겨 나열한 돌)과 같은 것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조선의 품석은 임금의 것이 없지만, 신라의 마립엔 임금의 것도 있다는 점이다. , 신라 조정에는 왕의 마립의 최상석 한가운데 있고, 그 아래로 신하들의 마립이 나열되어 있는 형태였다. 따라서 마립간이란 마립의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곧 임금을 의미했다.


(266)

이렇듯 목숨을 버려 신라에 불법을 퍼뜨린 순교자 이차돈은 죽을 당시 22세의 젊은 청년이었다. 성은 박씨이고 자는 염촉이다. 그는 궁중에서 자랐으며 조부는 아진찬 박종이요 아버지는 습보갈문왕이다.

염촉의 염은 향찰로는 이차 또는 이처라고도 하는데, 발음이 다를 뿐 번역하면 모두 싫다는 뜻이다. 또 촉은 해골이라는 뜻으로 사람의 골육을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이름에 붙이는 어조사로 쓰인 까닭에 뚜렷한 뜻이 없으며, 사람들의 편의에 따라 ()’, ‘()’, ‘()’, ‘()’ 등으로 대체할 수 있다. 따라서 염촉과 이차돈은 같은 이름을 다르게 발음한 것이다. 말하자면 염촉은 한자식 발음이고, 이차돈은 향찰식 발음인 것이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기록된 신라인들의 이름 중 상당수가 이렇게 한자식 발음과 향찰식 발음으로 기록되어 있다. 지증은 지대로 또는 지철로, 태종은 이사부, 황종은 거칠부 등으로 불린 것도 그 예들이다.


(288)

김대문은 <화랑세기>에서 어진 재상과 충성스런 신하가 화랑도에서 나왔고, 훌륭한 장수와 용감한 병사가 또한 이에서 생겼다고 했다. 김대문이 <화랑세기>에서 거론한 풍월주는 총 32명이다. 그는 이 시기의 화랑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화랑도 출신이 많았다. 신라의 삼국 통일에 가장 크게 기여한 김유신이 화랑의 제15세 풍월주이고, 태종무열왕 김춘추가 제18세 풍월주였으며, 김춘추의 아버지 김용춘이 제13세 풍월주였다. 또한 가야 정벌의 영웅 사다함이 제5세 풍월주였고, 화랑 중의 화랑으로 이름을 날린 문노가 제8세 풍월주였다. 그 외에도 일일이 이름을 댈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장수가 화랑도 출신이었다. 김대문의 말대로 6세기 중엽에서 7세기 말엽까지 신라 사회를 떠받친 인물들은 모두 화랑도 출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40-341)

선덕왕이 647년 정월에 일어난 비담의 난 중에 죽자 그 와중에 승만이 왕위에 올랐는데, 왜 그녀가 왕이 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길이 없다. 당시 성골로서 왕위를 이을 남자가 없었기 때문에 성골 여자인 승만이 왕이 되었다는 것이 통설인데, 성골이라는 신분에 대한 정확한 규정이 없어 이 또한 왕으로. 무열왕부터 경순왕까지를 진골 왕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런데 성골과 진골을 구분하는 기준이 모호하여 이 기록의 진의조차 파악되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따라서 진덕왕의 즉위를 성골과 진골의 구분에 따른 결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선덕왕의 영험한 지혜를 믿던 백성들을 달래기 위해 실권자 김춘추가 난국 타개를 목적으로 그녀를 왕위에 앉혔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503)

스물이 갓 넘은 나이에 대군을 일으켜 나라를 세운 점으로 봐서, 견훤은 꿈이 원대하고 용맹이 뛰어났으며 항상 미래를 계획하는 성품을 지닌 장부였다. 또한 상황에 따라 잘 대처하는 것으로 봐서 임기응변에 능하고, 적을 칠 때는 먼저 적을 안심시킨 다음 치는 것으로 봐서 다소 음흉하여 그 속내를 읽기 힘든 면에 있었으며, 빠른 시일 안에 중앙집권적 권력 구조를 형성한 점으로 미뤄 과단성 있고 남다른 주변 장악력을 소유했던 게 분명하다. 또 자기 손으로 열었던 후삼국 시대를 스스로 끝내는, 그래서 왕건에게 통일이라는 대업을 선물로 안기는 영웅의 면모를 가졌던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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