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

워쨌든 나는 내외간, 자슥간에 착취란 말은 쓰고 싶지 않허요. 왠지 나는 그 말이 싫으요, 착취, 착취 해봤자 불쌍한 게 누구요. 결국 나 아니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착취당했다는데 그라믄 나만 바보 되는 거 아닌가. 지들 엄메가 바보라는데 서방이라고 좋겄소 자슥이라고 좋겄소. 그 교수 선생한테 가서 내 생각은 이란디 내가 틀린 것이오, 당신이 틀린 것이오, 그라고 묻고 싶은 맴도 있었지만 워디 가당키나 한 일이오. 을매나 배웠으면 여자가 그 젊은 나이에 교수까지 하고 있을 것이오. 내가 무슨 수로 그런 사람을 당해낼 수 있겄소. 그냥 속이 답답해서 엄메한테나 하는 말이지라. 엄메가 아니면 내가 또 누구한테 이런 말을 하겄소.


(134)

지금 저기에서 제일 가슴 아픈 사람은요, 사장도 아니고 주주도 아니고 인근 음식점 주인도 아니고, 바로 자기 일터에다 불을 질러야 하는 저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어르신께서 뭔가 단단히 착각을 하고 계신 것 같네요. 자기 권리를 모르는 사람은 종이 되는 겁니다. 싸우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 종이 된다고요.”


(193)

그 형사 하는 말이, 하숙생은 원체 세상에 불만이 많은 인물이라 여그랑은 완전히 다른 꿈나라 같은 세상을 그리워해서 그런 짓거리를 한고 다닌다는디, 저가 살아본 적도 없는 세상을 워떻게 그리워한다는 건지 나는 그게 이해가 안 가는 거라. 한 번이라도 겪어봤어야 그리워하든 보고 잪아 하든 하는 거 아니오? , 우리가 먹는 이 밥만 해도 그렇지 않소? 뭐가 먹고 잪아도 어릴 때 한두 번씩 해먹던 음식이나 그리워하지 생판 먹어본 적도 없는 음식을 뭔 맛인 줄 알고 그리워하겄소?”


(284-285)

사람의 운명이란 건,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하룻밤만의 생각으로 내리는 결정일까. 아니면 먼 훗날, 소중한 무언가를 지킬 수 없는 순간에 맞닥뜨리게 되면, 부모도 모르게, 형제도 모르게, 친구도 모르게 자신의 발목을 자르고 스스로 뛰어내겠다고 신에게만 조용히 고백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의 오래된 결심일까. 만약 그런 것이라면 삶에 미련을 가지도록 달콤한 말들로 꾀어보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얼굴이 상해 보인다, 무슨 고민이 있느냐, 다 괜찮아질 것이다, 정도의 서툰 걱정이 무슨 위안이 될 수 있을까. 그 깊고 차가운 물 앞에 섰을 때는 이미 이 밤이 나의 마지막 밤이라고 결정지어놓은 것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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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의 과학 허세 (리커버판, 양장)
궤도 지음 / 동아시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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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몇 년 전에 양자역학에 대해 관심을 가질 때 유튜브에서도 양자역학에 대한 영상을 찾아보았거든. 그때 안될과학이라는 유튜브 채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과학 관련 유튜브 답지 않게 구독자도 엄청 많았단다. 그 채널은 무엇보다 알기 쉽고 재미있게 편집하여 설명해주었단다. ‘안될과학에 올라온 몇몇 영상을 보고 나서 왜 구독자가 그렇게 많은지 알게 되었고, 아빠도 구독 버튼을 눌렀단다. 그 이후에도 가끔씩 안될과학의 영상을 보곤 했단다.

안될과학의 패널 중에 한 분이 궤도라는 분인데, 그 분이 책도 쓰셨다는 것을 얼마 전에 알고 한번 읽어보겠다고 샀단다. 기본적으로 안될과학이라는 유튜브가 재미있으니, 책도 재미있게 과학을 소개해줄 거라는 생각과 함께, 그 책에서 알게 된 내용을 너희들에게 다시 전달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읽게 되었단다. 이 책의 차례를 보면, 각 장마다 주 제목 옆에 괄호를 치고 부 제목을 달아 놓았는데, 부 제목이 OO의 과학이라는 일관성으로 가지고 있단다. 알코올의 과학, 심해의 과학, 블랙홀의 과학으로 시작해서, 계속 무엇의 과학으로 계속 이어졌어. 마지막 양자역학만 빼고 말이야. 그것도 양자역학의 과학이라고 하면 안 되었을까? 양자역학은 그냥 양자역학으로 부르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양자역학의 과학이라고 해도 되지 않았을까, 싶구나. 그런데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은 모두 를 빼는 것이라고 생각한단다. 아빠가 존경하는 이오덕 님의 말씀에 의하면 는 일본어의 잔재로 우리나라 말에는 가급적 를 안 쓴다고 하셨으니 말이야. 그냥 알코올 과학, 심해 과학, 블랙홀 과학이라고 해도 말이 다 통하니까 말이야. 한참 이야기하다 보니, 아빠가 차례를 잡고 괜한 트집을 잡고 있는 것 같구나.

차례의 소제목을 보면 세상 모든 잡다한 일에 과학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단다. 심지어 귀신의 과학이라는 장도 있구나. 이렇듯 이 세상에서 과학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고, 과학으로 이 세상을 모두 설명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구나.


1.

각 장마다 길지 않아서 너희들과 하루에 한 장씩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으나, 너희들은 바쁘고 관심 밖의 분야에 대해서는 지루해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생각만 했단다. 책은 재미있게 쓰여 있어도 말이야.

시작은 술 이야기부터구나. 적당한 술은 몸에 좋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건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하는구나. 아빠도 술을 어느 정도 먹으면 머리가 빠개질 듯이 아파서, 조금씩만 먹고, 먹으면서 이 정도는 건강에 좋다는 생각을 하면서 먹었는데 그것이 근거도 없고 잘못된 지식이라고 하는구나. , 그래도 시원한 맥주 한 잔을 포기할 수는 없지.

깊고 깊은 바다에는 태양의 빛이 닿지 않는단다. 그렇다면 그 곳에는 생명체가 없는가? 왜냐하면 생명체는 태양이 없으면 살 수가 없으니까 말이야. 태양이 있어야 그 에너지를 이용하여 식물들이 자라고, 식물들로부터 먹이사실이 시작하여 다른 생물들도 살 수 있으니 말이야. 그런데 태양이 닿지 않는 깊은 바다에는 생물이 없어야 맞는 말이잖니. 그런데 심해에 열수분출공이라는 것이 있어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심해에도 생명체들이 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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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이 깊은 곳에는 열수분출공이라는, 일종의 심해 생물들의 놀이터가 있는데 거의 사막의 오아시스나 다름없는 곳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심해에는 독일 과학자가 광합성할 만한 태양조차 없다. 지상의 생명체들이 태양으로부터 에너지를 받듯이 심해의 생물들은 바로 이곳을 근원으로 생존한다. 열수분출공에서 뿜어져 나오는 황을 먹고 사는 세균들이 있는데 이들이 똥을 싸면 그게 바로 심해 생물들이 먹을 수 있는 탄수화물이다. 태양의 광합성이 없이 탄수화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역시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사는 게 세상의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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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를 돋우기 위한 주제도 참 많단다. 시간여행은 가능한가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었어. 아빠가 예전에 어떤 책에서 봤는데, 시간여행이 먼 훗날 가능하게 되었다면, 미래에서 온 여행객들을 지금 시대의 사람들이 봐야 하는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시간여행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내용이었어. 아빠도 그 이야기에 깊게 수긍이 되어, 어쩌다 대화를 하다가 시간여행이라는 주제가 나오면 그 내용을 이야기하면서 시간여행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를 했어. 그런데 어떤 미국의 과학자는 또 다른 가설을 내세우면서, 미래에서 온 관광객이 없는 이유를 설명하였는데, 그의 주장도 일리가 있어 보였단다. , 다음에 시간여행이 대화의 주제가 나올 때는 이 이야기도 해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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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70)

미래에서 온 관광객이 아직까지 없다는 점이 시간여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보는 관점도 있다. 미국의 한 과학자는 타임머신이 일종의 체크포인트 역할을 해서 최초의 기계가 가동을 시작하는 그 시점부터가 돌아갈 수 있는 과거의 시작점이 된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 타임머신이 작동되기 전의 과거는 타임머신상에서 없는 시대이며 오직 타임머신이 작동된 이후만 자유롭게 시공간을 오갈 수 있는 시대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아직까지 미래 관광객이 보이지 않는 것도 일리가 있다. 미래에서 봤을 때 지금 우리 시대는 돌아갈 수 없는 시대가 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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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과학이라는 장에서는 이상형을 만나기 어려운 이유를 과학적 확률로 설명하기도 한단다. 어떤 사람은 이를 데이트 방정식이라는 하고 확률을 구했는데, 기대치가 1명보다도 극히 적었다고 하는구나. 데이트 방정식을 어떻게 푸는 거냐면, 서울에 사는 남성의 예를 설명한 것을 같이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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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서울에 사는 결혼적령기의 한 남성의 경우, 서울의 인구를 1,000만 명이라고 가정하고 이 중 50퍼센트를 여성이라고 하자. 남성의 출퇴근하는 방법이나 동선에 따라 지나가다 이성을 만날 확률은 달라지겠지만 1퍼센트 정도라고 하면 이미 대상자는 5만 명으로 줄어든다. 같은 결혼적령기 여성을 만나야 하기 때문에, 대상자의 나이 분포를 1세부터 100세까지 일정하다고 했을 때 15퍼센트 정도와 나이가 맞을 것이다. 비슷한 교육환경에 있을 확률은 1퍼센트 정도로 보고 매력을 느낄 확률은 5퍼센트, 서로 만날 때까지 살아 있을 확률 10퍼센트까지 계산을 하면 고작 0.375명이 이 남자와 연애 가능한 여성의 숫자라고 볼 수 있다. 아쉽게도 1명도 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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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빠는 인연을 믿고, 운명의 짝을 믿는단다.

다이어트 이건 많은 사람들의 꿈 중에 하나란다. 적게 먹고 열심히 운동하는 것. 이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란다. 여기에도 과학에 담겨 있단다. 운동을 많이 하고 나면 더 많이 먹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 그것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지극히 정상이란다. 뇌는 너무 똑똑해서 운동을 하게 되면 칼로리는 많이 소모된 것을 알게 되고 어떤 수를 써서든 잃어버린 칼로리를 보충하려고 애를 쓴다고 하는구나. 그걸 참지 못하고 운동한 것이 수포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지. 그런 것을 보면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들은 정말 독한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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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당신의 뇌는 매우 똑똑해서 혹시나 운동으로 평소보다 더 많은 칼로리가 소모되면 어떻게든 수를 써서 당신이 더 많은 칼로리를 먹도록 만든다. 운동을 열심히 하고 난 뒤에 라면을 끓여서 먹어보아라. 몇 젓가락 먹지도 않았는데 이미 라면은 국물만 남아 있고 바로 하나를 더 끓여야 하나 고민에 빠진다. ? 평소보다 더 먹도록 뇌가 유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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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것도 과학이다, 라고 하면서 재미있는 주제들을 뽑아 과학적 시각으로 이야기해주는 것이 좋았단다. 그리고 마지막 4부에서는 필수교양이라는 제목을 달고, 암호화폐, 중력, 힉스, 우주쓰레기, 음식, 양자역학 등에 대해서 다루었는데, 아빠도 궁금했던 암호화폐에 대한 이야기도 있어서 좋았단다.

, 이 정도로 책 소개를 마칠게. 이 책에서 읽은 것을 너희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지만, 아빠의 기억력은 이미 책 읽기 전으로 돌아간 듯 하구나.


PS:

책의 첫 문장: 간단히 말해서 술이 몸에 좋지 않다는 말이다.

책의 끝 문장: , 다행이다.


배가 고프거나 목이 마를 때, 기분이 안 좋아지는 게 바로 이 현기증 뉴런 때문이다. 심해지면 두통이나 현기증까지 나기도 하지만 일단 현기증 뉴런이 활성화되면 불쾌하고 울적해진다. 반대로 음식을 먹어서 현기증 뉴런이 작용을 멈추게 되면, 뇌에서 보상회로가 가동되면서 평소에 먹던 음식이라고 해도 더욱 맛있게 느끼게 된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이 맞다. - P113

그리고 그 흔적은 당신에게도 남아 있다. 바로 흰자. 달걀 노른자 흰자 말고 눈동자의 흰자 말이다. 길들여지지 않은 동물은 눈에 흰자가 없다. 하지만 사람은 흰자가 눈동자에 대부분을 차지한다. 반려동물도 마찬가지다. 흰자가 많다고 시력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동공이 크면 클수록 시력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오히려 흰자가 많으면 보는 성능이 떨어진다. 그럼 왜 이렇게 불리한 상황을 감당하면서도 흰자가 많아진 걸까? 역시 뭔가 이득이 있을 것이다.
흰자가 있다면 멀리서도 상대방이 어디를 보고 있는지 알 수가 있다. 서로 마주 본다는 것도 느낄 수 있고 소통하는 데 눈짓이 굉장히 많이 쓰인다. 눈동자의 방향을 통해 상호 신뢰를 줄 수 있다는 말이다. 서로가 잘 길들여졌다는 증거로 이만한 게 어디 있을까?
- P137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유전자는 단백질을 조립하는 매뉴얼이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단백질을 제대로 조립하기 위해서 특이하게 생긴 레고블록 같은 것을 이용하는데 이걸 아미노산이라고 부른다. 출신이 고작 블록 조각 비스무리한 녀석이라 아무리 백날 열심히 조립을 해도 단백질의 기능을 넘어서는 것들은 못 만드는 것이 당연하다. 즉, 원래 단백질은 하늘을 나는 기능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단백질을 아무리 잘 조립해도 하늘을 날지 못한다. 눈으로 레이저를 쏘고 타인의 마음을 조종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 P175

거래 내용에 대한 신뢰도를 보증하는 중앙이 없고 거래에 참여하는 사람 개개인이 모든 거래 내역을 기록하고 확인한다. 따라서 물리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암호화에 도달한다. 기존의 보안 방식이 최대한 복잡하고 많은 자물쇠를 금고에 빽빽하게 거는 형태라면, 블록체인을 이용한 이 방식은 금고 자체를 전 세계를 셀 수도 없이 많은 곳에 뿌려두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 금고들은 정기적으로 암호가 바뀌며 끊임없이 새로운 장소를 옮겨다닌다. 내가 해커라도 맥이 빠지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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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7)

생각해 보면 개인의 사고를 그토록 붙들어 맨 일본의 국가권력은 놀랍다. 그것도 장구하게 유지해 왔다는 것이 더욱 놀랍고 유례없는 일이다. 그러나 바로 그러했기 때문에 기능과 세기(細技)가 우수하면서도 일본은 항상 남의 틀과 본을 훔쳐 오거나 얻어 와서 갈고 닦고 할밖에 없었다. 본과 틀이 없는 나라, 그들의 정치 이념은 창조의 활력이 위축된 민족을 만들었던 것이다. 오늘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 날조된 역사 교과서는 여전히 피해받은 국가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어 있고 고래심줄 같은 몰염치는 그것을 시정하지 않은 채 뻗치고 있는 것이다. 가는 시냇물처럼 이어져 온 일본의 맑은 줄기, 선병질적이리만큼 맑은 양심의 인사(人士), 학자들이 소리를 내어 보지만 날이 갈수록 작아지는 목소리, 반대로 높아져 가고 있는 우익의 고함은 우리의 근심이며 공포다. 일본의 장래를 위해서도 비극이다. 아닌 것을 그렇다 하여 분명한 것이 차츰 부풀어 거대해질 때 우리가, 인류가, 누구보다 일본이 자신이 환란을 겪게 될 것이다.


(39-40)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종교나 도적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것들은 적시적소에 써먹은 도구에 불과하고 어떤 권력이든 도구화하려는 속성은 있게 마련이지만 일본처럼 철저한 경우는 드물 것이다. 일사불란하게 그런 그들에게 내세관이 희박한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유한(有限)을 잘 소화시켜 온 민족이다. 유한은 인간의 숙명이지만 그러나 인간이기 때문에, 생명이 오는 곳 생명이 가는 곳, 그 한() 때문에 사람은 유한 밖으로 나가려 몸부림치는 것이며 그 몸부림은 신의 축복인 창조의 능력으로 나타난다. 신의 축복이 없는 나라 일본, 역사상 한 번 기회가 있었다. 시마바라의 난으로까지 몰고 갔으나 섬멸되고 만 천주교도들, 답회령(踏繪令)으로 수없는 순교자를 냈던 그때, 아마테라스를 뛰어넘고 영혼의 구제로 향한 죽음들이 있었다.


(58)

나는 내 자신을 소개하기를 철두철미 반일(反日) 작가다.” 두 사람은 약간 놀라는 것 같았다. 왜 충격을 받을까? 전에도 그런 얘기는 했었고 일본인들은 가만히 듣는 것 같았다. 그러나 깨달았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것을. 반일을 당연하다고 본 그들은 이제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느끼게 된 것이다. 그들과 나는 꽤 오랜 시간 얘기를 했다. 남경(南京, 난징) 학살 사건에 관한 말이 나왔을 때 그들의 안색은 변했고 실은 겁이 많은 것이 일본 사람 아니냐 했을 때는 당혹하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손님에게 너무 무례했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62)

물질로 환산할 수 없는 피해였지만 그들은 거의 보상하지 않았다.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통분이 무슨 사과인가? 그러고도 욕을 안 먹겠다는 것은 뻔뻔스러운 일이다. 가와무라 씨는 한글세대는 반일이라는 대전제를 전면에 세우고 있으나 구체적 체험과 연구 관찰이라는 기회를 가지지 못하고 다만 반일이라는 민족교육으로 길러진 지식과 근본적 이미지에 의해 일본을 단죄, 규탄하는 태도를 가지기 일쑤다 했는데 동감이다. 그러나 동감의 뉘앙스는 상당히 다르다. 도식적인 교육을 떠나 생생한 역사적 사실 역사적 입김에 접할 수 있다면 한글세대는 무조건 감정적 시비를 떠나 조목조목 따지고 넘어가는 사상적 강화(强化)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일본의 전후세대도 우리 한글세대에 대한 불만을 사실에 입각하여 반박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을 관찰하고 연구해야만 한다. 대로(大路)는 결코 일방통행일 수 없기 때문이다.


(76)

전쟁은 문화의 어머니요 어쩌고 하는 말도 생각이 난다. 일본 지식인들의 대부분은 한국인의 분노를 지겹고 불쾌하고 귀찮아한다. 언제까지 이럴 것이냐, 하면서도 철도를 놓아주었느니, 학교를 세워주었느니, 아무도 그것을 부탁한 바 없는 일을 좀스럽고 쩨쩨하게 늘어놓는 데 대해서는 말이 없다. 간간이 들려오는 침략이 아니라는 망언에 대해서도 무반응이다. 그들의 계속되는 망언은 괜찮아도 한국인의 분노는 왜 지겨운가. 사리를 명백하게 하지 않는 이상 잘못은 되풀이된다. 과거지사보다 미래를 내다보는 데서 오는 근심이다. 장차 세계에서, 인류라는 차원에서 일본은 어떤 모습으로 있을 것인가. 인류에 속하는 일본인 역시 오늘 군비 확장의 의미를 깊이 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자결하지 못하는 모친의 목을 조르는 아들의 비극이 없기 위하여.


(93)

언제였는지 일본인의 저축열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기사를 읽었을 때 일본인은 저금통장을 위하여 세상에 태어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사람은 결코 저금통장을 위해 태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살기 위해 태어난 것입니다. 사는 데 필요하기 때문에 저금통장이 필요한 것이지 저금통장을 위해 삶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쿠타가와의 예술지상주의가 만일 저금통장을 위한 삶 같은 것이라면 그것은 전적으로 허위인 것입니다. 착각이거나 아쿠타가와뿐만 아니라 일본인의 의식구조는 반생명적인 경향이 농후하며 그것이 체제에서 굳어져 버린 것이고 보면 분재와도 같이, 축소되고 불구적인 정신세계를 떠나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국체를 부정하고 진실에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106-107)

이삼 년 종안 나는 우리 뒷동산에 계단을 하나씩 하나씩 쌓아 올리는 일을 계속하여 육십오 계단이라는 꼬불꼬불 계단이 만들어졌습니다. 비록 만리장성은 아닐지라도 내 손자가 오르내리는 기쁨의 자리가 되었고, 오른다는 것 무한히 오른다는 것 무한히 간다는 것…… 나는 그 계단을 끝내고서 생각했습니다. 마지막 계단 위에 산이 계속되고 또 울타리가 없다면 계단은 계속하여 쌓아 올려졌을 거라고. 그리고 시시포스의 바위를 생각했지요. 부정적, 근원적으로 부정적인 인생과 문학 행위. 아마도 긍정적이었다면 갈 길은 없었을 것이요, 배불리 먹고 눈물이 없고 죽음이 없고 사랑도 없고 존재뿐인 삶은 비인간 로보트가 아니겠습니까.


(114)

인간들의 지칠 줄 모르는 파괴와 약탈로 아시다시피 지구는 지금 만신창이가 돼 있습니다. 설령 지구가 멸망한다 하더라도 자업자득, 어디 봄의 죄이겠습니까. 소생시켜 놓은 생명들이 참살을 당하고 멸종이 된들 봄에게는 임무 밖의 일이지요. 다만 길손일 뿐, 노쇠해 가는 길손일 것만 같습니다. 어쩌면 그도 인간이 저질러서 맞이하게 될 재난에 희생되어 처지일 수도 있고 지구와 생명들과 운명을 같이하게 될지도 모르지요. 노쇠한 봄이라는 말은 물론 합당하지 않습니다. 늙는다는 것은 세월의 조화인데 계절 자체가 세월이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은 늙고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궁지에 몰아넣고 오도 가도 못하게 합니다.


(119)

내 생각에는 말입니다. 인간의 이성은, 또 창조적 열정은 균형을 잡고 균형을 잡아주어 존재하게 하지만 인간의 욕망과 탐욕은 균형을 잡아주어 존재하게 하지만 인간의 욕망과 탐욕은 균형을 파괴하고 존재를 흔들리게 하는 것으로 바로 오늘, 현재가 그 같은 것을 여실하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지구 도처에서 균형을 망가뜨리고 있지 않습니까. 땅이 죽어간다거나 물이 썩어간다거나. 이젠 그것이 대단한 일도 아니게 되었습니다. 보다 가공할 일은 오존층이 찢기어 점점 넓어져 가고 있다는 것, 환경호르몬에 관한 것, 지구온난화 현상, 여차하면 자멸의 무기 핵폭탄 등. 이것들이 하늘이 내린 재앙이라 하겠습니까? 지구의 사막화, 도처에서 범람하는 물, 이런 상황이 천재인가요?


(161)

일본인에게는 예()를 차리지 말라. 아첨하는 약자로 오해받기 쉽고 그러면 밟아버리려 든다. 일본인에게는 곰배상을 차리지 말라. 그들에게는 곰배상이 없고 마음의 여유도 없고 상대의 성의를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의 힘을 상차림에서 저울질한다.


(164)

일본을 이웃으로 둔 것은 우리 민족의 불운이었다. 일본이 이웃에 폐를 끼치는 한 우리는 민족주의자일 수밖에 없다. 피해를 주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는 민족을 떠나 인간으로서 인류로서 손을 잡을 것이며 민족주의도 필요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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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갈대
펄 벅 지음, 장왕록.장영희 옮김 / 길산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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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펄 벅은 무척 유명한 작가란다. 대표작은 <대지>라는 작품인데, 읽진 않았어도 대부분 제목은 알고 있고, 그 소설이 중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도 대부분 알고들 있을 거야. 아빠는 너희들만 할 때 책을 잘 안 읽었단다. 추리 소설이나 가끔 읽고 그랬지. 그런데 중학교 때인가 어느날 친구 집에 놀러 갈 일이 있었는데, 친구 집에 세계문학전집이 있던 거야. 당시 책에 대해 잘 모르던 아빠에게는 그 세계문학전집이 무척 부럽고 멋있더구나. 그 전집에 <대지>라는 책도 있었단다. 아빠도 왜 그랬는지 기억은 나질 않지만, 그 친구한테 <대지>라는 책을 빌려 달라고 했어. 아마 그 전집 중에 책 제목이 익숙한 몇 안 되는 책이라서 그러지 않았을까 싶구나. 그렇게 읽은 책이 <대지>라는 책인데, 줄거리가 생각나지는 않지만 어렵지 않게 읽었던 기억이 있구나. 고전 소설은 요즘도 읽기 쉽지 않은 책들이 있는데 말이야. 그때 좀더 책읽기를 즐겨했다면 좋았겠지만 일회성으로 그치고 말았지. ㅎㅎ

펄 벅 작가는 <대지>를 비롯해 중국 관련된 작품들을 많이 쓰셨고 그런 작품들로 미국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도 수상하셨단다. 펄 벅 작가가 중국에 대해 잘 알았던 이유는 생후 3개월 만에 선교사인 부모님을 따라서 중국에 갔다가 거의 40년 가까이 중국에서 살았다고 했어. 1910년부터 1914년까지 대학교 때문에 미국에서 지내다가 다시 중국으로 돌아왔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1934년에 다시 미국으로 떠났는데 그 이후에는 한 번도 중국에 가지, 아니 갈 수 없었다고 하는구나. 마오쩌둥이 펄 벅을 제국주의 시각으로 중국을 왜곡한 작가라고 해서 중국 입국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래. 그런데 미국 내에서는 친중 작가로 사찰을 받기도 했었다고 하는구나.

아빠는 어른이 되어 펄 벅 작가의 책은 <연인 서태후>란 책을 읽은 적이 있어. 그리고 그 때 펄 벅 작가에 대해 검색을 해보다가 펄 벅 여사가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우리나라의 사생아들을 미국 입양을 알선해 주는 펄 벅 재단을 우리나라에 세우기도 했대. 그리고 우리나라 배경으로 한 소설들도 쓰셨다고 말이야. 아무래도 중국에 오래 살다 보니 이웃나라인 우리나라에 대해서 알게 되고 우리나라에 대한 소설을 쓰셨나 보다, 생각했단다. 나중에 기회 되면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읽게 되었구나.

제목은 <살아있는 갈대> 페이지가 무려 648페이지나 되는 대작이란다. 읽고 나서 깜짝 놀랐단다. 펄 벅 여사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어. 우리나라 작가도 이렇게 쓰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읽는 내내 했단다. 구한말부터 해방까지 안동 김씨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인데, 당시 우리나라 역사도 고스란히 다 담겨 있었단다. 그리고 옮긴이는 아빠가 좋아하는 장영희 교수님과 아버지 장왕록 교수님였어. 옮긴이들 또한 훌륭하신 분들이셔서 그런지 외국 작가가 쓴 것을 번역한 것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단다. 완벽 그 자체였단다.

이렇게 완벽한 소설을 이제서야 알게 되다니…. 그리고 이런 소설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이 안타깝구나. 최근 한류가 전세계적으로 열풍인데, 이 책이 좀 알려져서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그리고 누군가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주면 안될까? 이런 생각도 들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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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 벅 여사는 우리나라에 방문할 때마다 사람들의 품성에 감동을 받았다고 하는구나. 그래서한국은 고상한 사람들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이다라는 말씀을 남기셨다고 하는구나. 이 말은 아빠가 이번에 읽은 <살아있는 갈대>라는 책머리에 적혀 있단다. 펄 벅 여사는 우리나라 이름도 갖고 계신데, 성은과 발음이 비슷한 박, 이름은을 번역한 진주. 박진주. 아빠가 너희들에게 펄 벅 여사의 한국이름을 맞춰보라고 퀴즈를 냈는데, Jiny가 단박에 박진주라고 이야기해서 아빠도 깜놀했었지 ㅎㅎ 자, 그럼 <살아있는 갈대>는 어떤 책인지 아빠가 왜 이리도 극찬을 했는지 이야기해줄게.

 

1.

이야기는 1881년 한양에서 시작한단다. 김일한은 양반집의 장손으로 아내 순희가 있고, 큰 아들은 김연춘, 둘째 아들은 이제 갓 태어난 김연환이었어. 김일한의 할아버지는 흥선대원군이 정권을 잡고 있을 때 고위관리였단다. 1881년은 명성황후의 실질적 권력을 잡고 있었는데, 김일한은 명성황후의 측근으로 일하고 있었단다.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은 계속 대립관계에 있었으니 할아버지와 김일한은 어찌 보면 다른 곳에 서 있는 것 같구나. 김일한의 아버지도 조정에 드나 드시는데, 아버지는 고종과 친분이 있단다. 김일한은 아버지와도 정치적 노선이 달랐던 거야. 김일한은 신식문물을 받아들이고 서양책도 많이 봤단다. 김일한은 명성황후와 자주 대면하여 나랏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명성황후는 청나라와만 교류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어. 일한은 서양의 강국들, 특히 미국과 손을 잡아야 한다고 했어. 그런 강한 나라가 우리나라의 안전을 보장해 줄 수 있다고 했어. 당시 일본이 우리나라를 호시탐탐 노리기 시작하던 시기였거든

일한은 명성황후의 허락을 받고 전국을 돌면서 백성들의 목소리를 듣기도 했단다. 전국을 돌고 몇 달 만에 다시 돌아온 한양은 모든 것이 싹 바뀌어 있었단다. 명성황후는 어디론가 쫓겨나갔고 흥선대원군이 다시 정권을 잡고 있었어. 역사적으로 임오군란이 일어났던 시기였단다. 급히 집에 돌아온 일한,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단다. 명성황후가 자신의 집에 피신해 있었던 거야. 일한은 명성황후를 모시고 충주에 가서 그곳에 있는 친구의 집에 숨겨 두고 다시 한양으로 돌아왔단다.

한양에 온 일한은 측근들과 명성황후를 다시 돌아오게 하는 작전을 짰단다. 머리를 싸매보았지만 결국 청나라의 도움밖에 없다고 생각했어. 청나라 군사가 와서 대원군을 잡아내어 청나라로 호송해 갔단다. 대원군은 청나라까지 글려가서 연금 당했단다. , 나라의 힘이 이리 없었구나. 대원군이 잘못한 것이 있다고 한들 왕의 아버지인데, 다른 나라 군인들이 끌고 간다는 것이 가슴 아픈 현실이로구나. 이걸 본 또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어찌 생각했겠는가. 대원군이 청나라로 끌려 간 이후 명성황후는 다시 한양으로 돌아왔단다.

김일한은 다시 미국과 손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의 주장은 일리가 있었단다. 하지만 명성황후는 거절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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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우리가 정말로 경계해야 할 나라는 노서아와 일본입니다. 이 두 나라의 통치자들은 탐욕스럽고, 그 국민들은 통치자의 속셈을 모릅니다. 더구나 그 나라들은 평화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일본은 작은 나라이므로 야심이 큽니다. 작은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에게 만족하기 못하기 때문에 한번 야심을 품으면 무섭습니다. 일본은 큰 머리를 가진 작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야심이 없는 큰 나라와 맹방이 되어야 이 작은 나라의 침략을 막을 수 있습니다. 청나라라 할지라도 지금은 우리를 보호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서양 우방을 가져야 합니다. 이홍장은 이 점을 알고 우리에 대한 종주권을 유지하려고 협조자를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더러 미국과 조약을 맺으라고 충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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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느날 갑자기 김일한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단다. 장례식을 치른다고 한동안 조정일을 보지 못했지. 장례식을 다 치르고 얼마 후, 고종의 호출이 있었단다. 고종은 어린 시절 왕위에 올랐지만 아버지 대원군이 정권을 잡고 자신은 허수아비였어. 나중에는 커서는 명성황후가 대원군과 대립하면서 또 존재감이 없었단다. 이제서야 조금씩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단다. 고종의 호출을 받은 김일한은 고종과 대면했단다. 미국에 다녀오라는 지시를 받았어. 그 전에 조선과 미국 사이의 수교도 맺겠다고 했단다. 민영익, 홍영식, 서광범이 가는데 함께 다녀오라고 했단다. 민영익, 홍영식, 서광범은 실존인물이고 그들이 미국에 다녀온 것도 사실이었단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채경서와 <서유견문>으로 유명한 유길준도 함께 동행했단다. 역사적 사실과 허구가 자연스럽게 잘 엮여 있는 소설이구나.

그렇게 김일한은 미국 워싱턴에 도착을 해서 미국 대통령과 정부 인사들을 만나고 다시 제물포에 도착을 했단다. 이때가 1884 5월이었어. 고종은 미국을 다녀온 이들의 의견을 듣고 실행에 옮기기도 했단다. 그렇게 세운 대표적인 것이 우정국이고 그 외에도 개혁을 시도했단다. 하지만 어려워진 백성들의 삶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단다. 어려운 삶에 동학이 널리 퍼지게 되었단다. 김일한의 첫째 아들 김연춘을 가르치는 선생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도 동학도였어. 그리고 동학운동이 일어나게 되면 김일한의 집안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생각에, 일한의 식구들을 미리 시골 본가로 이동시켰단다. 김일한은 동학에 안 좋은 시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들의 선생이 동학이라는 것에 배신을 느꼈지만 한편으로 그로 인해 안전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에게 뭐라고 하지는 않았단다. 자신의 정체를 밝힌 선생은 일한의 집을 떠나게 되었단다. 시골에 있으면서 일한은 책을 쓰고 아들들의 가르치면서 지내고 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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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잘도 흘러 10여 년이 흘렀어. 큰아들 연춘은 한양으로 공부하러 가겠다고 해서 했는데, 일한은 잠시 망설이다가 허락을 해주었단다. 얼마 후 보은이라는 곳에서 동학운동을 했는데, 아들 연춘도 가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단다. 연춘은 한양에 가서 어렸을 때의 선생님과 계속 연락을 했었나 봐. 어렸을 때부터 선생님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아 오래전부터 동학에 빠져 있었고동학운동이 성공하면 좋았겠지만, 조정은 동학운동을 제 힘으로 제압하지 못하고, 청나라와 일본의 힘을 빌려 진압하게 된단다. 또다시 다른 나라의 군대가 우리나라에 들어왔고, 동학운동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단다. 그런데 또 하나의 비극. 청나라 군대와 일본 군대가 우리나라에서 전쟁을 하게 되었단다. 청일전쟁은 그렇게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단다. 이제 우리나라는 풍전등화의 운명이었어.

어느날 알고 지내던 미국인 외교관이 일한을 찾아왔단다. 한양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것 같다고 했어. 일한은 변복을 하고 한양에 도착을 했는데, 궁 안이 일본인 무사들로 난장판이 되어 있었단다. 그 날이 바로 명성황후에 일본인 무사들에게 무참하게 살해당한 날이었단다. 나라의 힘이 약해져서 결국 이런 일까지 벌어진 것이로구나. 여기까지가 1부의 이야기란다.

 

3.

2부는 1910년부터 이야기가 시작한단다. 이 소설이 1881년에 시작했으니, 30년 정도가 흘렀고, 등장인물들의 나이도 그렇게 먹었다고 생각하면 되겠구나. 김일한은 야학을 하면서 동네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단다. 큰아들 연춘의 소식은 끊긴 지 오래였단다. 둘째 아들 연환은 29살이었고, 경성에서 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었어. 연환은 아직 결혼 전이고 최인덕이라는 여자 친구가 있었어. 최인덕도 여학교의 선생님이었고 기독교도였어. 연환은 시대 흐름에 따라 신식으로 결혼을 하였고, 일한과 순희는 신식 결혼을 반대했지만 결국은 받아들였단다. 김연환과 최인덕은 아들과 딸을 낳았단다.

어느날 깊은 밤 연락이 끊겼던 연춘은 부모님을 뵈러 왔단다. 연춘은 그 동안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이번에 국내 잠입을 했다고 했어. 앞으로는 인편으로 가끔씩 소식을 전하겠다고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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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선천이라는 지역에서 다리우치 총독 암살 미수 사건이 있었는데, 일한은 혹시나 연춘이 연루된 것이 아닌가 싶어서 재판에 가보았는데, 역시나 재판장에 연춘이 당당하게 앉아 있었단다. ‘살아있는 갈대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던 전설적인 독립운동가가 바로 연춘이었던 거야. 결국 연춘은 감옥에 들어갔단다. 연춘은 왜 자신의 별명을 살아있는 갈대로 했을까? 하나가 꺾여도 다시 다른 갈대가 자라는 생명력 때문에 그런 이름을 지었던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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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7)

“제 이야기는아버님께서 제 얼굴을 영영 보지 못하시게 되면제 이름을 영영 들으실 수 없게 되면이 아들 역시 하나의 갈대였다고 생각해 주십시오. 제가갈대 하나가 꺾였다 할지라도 그 자리에서 다시 수백 개의 갈대가 무성해질 것 아닙니까? 살아 있는 갈대들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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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독립은 이제 불가능한 것인가. 이때 전세계적으로 식민지 국가들에게 희망을 안겨 주는 이가 있었으니 미국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었단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민족자결주의를 이야기했는데, 이것은 다른 나라의 통치를 받고 있는 나라들의 독립을 보장해준다는 내용으로 희망을 안겨 주었단다. 이게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18년 즈음에 발표한 걸 거야. 그런데 아빠가 알기로는 1차 세계 대전에서 진 독일과 그들에 편 들었던 나라들에게 식민 통치를 받는 나라들의 독립을 보장해준다는 내용이라고 알고 있어. 전쟁에서 이긴 연합국의 통치를 받는 식민지는 해당이 안 되고... 그런데 일본은 당시 연합국 소속의 승전국 소속이었지. 그래서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우리의 독립을 주장하려고 갔던 우리나라 사람들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단다.

이런 속사정을 모르고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우리나라 백성들에게 독립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고, 여러 가지 요인들과 합쳐져서 3.1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단다. 연환도 독립선언서를 인쇄하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했어. 너희들도 알 듯이 3.1운동은 비폭력 평화 시위 운동이었잖아. 하지만 일본은 경찰을 앞세워 강압적으로 대응했어. 어느 곳에서는 교회에 사람들을 가두고 불을 지르기도 했단다. 수원 제암리 학살 사건이라고 실제 있었던 잔인한 사건인데, 이 소설에서 그 제암리 학살 사건도 각색해서 실려 있었단다. 연환이 불 타는 교회에 아내 인덕과 딸이 갇혀 있다고 소식을 들었어. 이 소식을 듣자마자 교회로 간 연환. 자주 갔던 교회라서 비밀 출입구를 알고 있었고, 그곳은 지키는 사람이 없어서 들어갔는데, 아내와 딸을 구하기 전에 교회가 무너지는 바람에 연환도 함께 그곳에서 그만 죽고 말았단다. 그날 교회에 가지 않았던 아들 김양 혼자만 남게 되었어.

 

4.

연춘은 감옥에서 탈출한 후에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이어나갔단다. 지금은 북경 지역에 있었어. 연춘은 독립운동을 위해서 결혼도 하지 않고, 사랑도 하지 않았단다. 그런데 연춘을 사랑하던 동지 한녀가 찾아왔어. 사실 연춘도 속으로 한녀를 마음 속에 두고 있었단다. 멀리까지 찾아온 한녀를 더 이상 내칠 수 없어서 그녀와 함께 지내기로 했단다. 몇 달이 지나고 한녀는 임신을 했어. 연춘은 조심하지 않았냐고, 지금 독립운동에 매진할 때 아이를 어떻게 키우냐는 식으로 차갑게 이야기를 했는데 그 말에 한녀는 연춘을 떠났단다.

며칠이 지나도록 한녀는 돌아오지 않았어. 연춘은 한녀도 찾을 겸 독립운동의 정황도 살필 겸 남쪽으로 내려갔단다. 상하이와 광둥 지역에서 독립운동가들을 만났어. 독립운동이 길어지면서 독립운동도 분열되는 양상을 보였고, 연춘은 독자 노선을 걷기로 했단다. 그러다가 소년 김약산을 만나 함께 독립운동을 하기도 했어. 소설 속 김약산은 나이가 맞지 않았지만 아마 약산 김원봉을 모델로 만든 캐릭터인 것 같았어. 독립운동을 계속 하던 연춘은 가족의 소중함도 깨닫게 되었고, 한녀를 찾아 길을 떠났단다. 한녀의 흔적으로 찾아 북경, 만주, 시베리아까지 갔고 수소문 끝에 아들 샤샤를 만났단다. 세월은 꽤 흘러서 아들 샤샤는 이미 십대 후반이었어. 한녀는 이미 오래 전에 죽고 샤샤는 고아원에서 지냈다고 했어. 연춘의 죄책감은 얼마나 컸을까. 연춘은 샤샤에게 잘 이야기해서 함께 고향으로 돌아왔단다.

고향에는 아직 연로하신 부모님 일한과 순희가 있었고, 혼자 살아남았던 조카 김양이 있었어. 샤샤와 김양은 사촌지간인데 태어나서 처음 만나게 되었단다. 둘은 친형제처럼 친하게 지냈지. 한편 일본은 미국을 침공하게 되고 미국이 일본에 반격을 하면서 일본은 급격하게 국력이 쇠락하게 되었단다. 이제 우리나라도 독립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연춘도 독립 국가에 대한 준비를 했어. 그리고 드디어 해방이 되었어.

해방에 큰 도움을 준 미국들이 국내에 들어와 환영회를 했단다. 많은 우리나라 백성들이 모여들었어. 그런데 뭔가 이상했어. 질서 유지를 한다면서 미군은 일본 경찰을 앞에 세웠고, 만세를 부르는 우리나라 백성들이 혼란스럽다면서 총까지 쏘고 그로 인해 사람들이 죽기도 했어. 그렇게 죽은 사람 중에 불운하게도 연춘도 포함되어 있었단다. , 그 오랜 세월 일본 경찰에 쫓기면서 독립운동을 했는데, 해방 조국에서 이렇게 허망하게 죽다니... 그렇게 소설은 끝을 맺었단다.

펄 벅 여사께서 주인공을 마지막에 죽게 했을까? 궁금했단다. 생각해보니 평생 독립 운동을 한 이들 중에 해방 이후에 허망하게 암살당한 여운형, 김구 같은 분들이 있단다. 힘든 독립운동을 모두 이겨내서 해방을 이뤄냈는데 이런 허망한 죽음이 현실에도 있었던 것을 아시고 주인공 또한 그런 비슷한 죽음으로 소설을 끝내신 것 같구나.

....

아빠가 첫부분에 이야기한 것처럼 소설은 술술 잘 읽혀진단다. 속도감도 있고, 서사도 있었어. 너희들도 나중에 크면 이 책은 꼭 한번 읽어봤으면 좋겠구나. 강추란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얼마 후에, 회사 동료 분께서 혹시 괜찮은 책 좀 추천해 달라고 하셨어. 그래서 다섯 권 정도 추천해 드렸는데, 그 중에 이 책 <살아있는 갈대>도 포함했단다. 이 책을 일고 펄 벅 여사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어. 그래서 유튜브도 보긴 했는데, 평전이나 전기를 보려고 찾아봤는데 우리나라에 출간된 책은 없더구나. 조금 안타깝구나. 우리나라에 애정을 갖고 계시고 좋은 일도 많이 하셨는데....

펄 벅 여사가 쓴 다른 책들도 또 읽어봐야겠구나. , 읽어야할 책들은 점점 쌓여가고 아빠의 읽는 속도는 따라가지 못하고 있구나. , 오늘은 그럼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단기 4214, 서기로는 1881년이었다.

책의 끝 문장: 대문 너머 하늘에는 새로 나온 달이 높이 떠 있고, 달 아래로는 늘 보는 별이 변함없이 반짝이고 있었다.


"부분적으로 서양적인 요소가 있기는 하지. 그러나 그건 좋은 거네. 중전에 대한 반역이 아니라면 나는 이렇게 말하겠네. 우리는 너무나 오래도록 낡은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아 왔다고 말이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전적으로 서양의 영향을 받도록 우리들 자신을 방임하자는 말은 아니네. 우리가 많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여 어느 정도 그들의 영향을 받는 것은 우리의 숙명이네. 받아들이고 거부하는 것, 접목하고 혼합하는 것, 그리고 우리 자신을 하나로 만들어 독립된 국가를 세우는 것이 우리의 과제네. 그러나 그 하나가 무엇이겠는가? 아, 그게 문제네! 나는 그것에 대답할 수가 없네. 그러나 이제 내 아이들을 위하여 해답을 찾아내야만 하네." - P27

그는 옆으로 본 여자의 얼굴에 감탄했다. 참으로 잘생겼다, 이 나라 사람들은! 그는 청나라나 일본 장사꾼들도 본 적이 있다. 일본 사람들은 체구가 작고, 중국 사람들은 피부가 누런 데다 머리칼은 더 까맣고 빳빳하다. 이 고상한 사람들이 어떤 불행을 타고 났기에 남들이 탐내는, 좁고 산이 많은 땅에 갇혀 있는 것인가! 만약 이 백성들을 평화롭게 내버려 두기만 한다면, 마음대로 꿈을 꾸게 내버려 두기만 한다면 그들은 노래를 만들고,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릴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이제 바야흐로 주위의 굶주린 나라들은 입맛을 다시고 있고, 문관인 동반은 점점 부패해 가고 있으며, 호시탐탐하는 서반은 또다시 밑으로부터 위협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 P49

그는 이제 백성들의 참모습을 소상히 알게 된 만큼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재촉했다. 조선 사람들은 용감하고 강인했으며, 용기뿐만 아니라 감탄할 만한 낙천성으로 시련을 견뎌내고 있었다. 부처님한테서도 임금님한테서도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은 채 조그만 행운에도 고마워하며 스스로 돕고 또 서로 도왔다. 거칠면서도 순박했고 폭풍우와 추위와 먹구름 아래서 자연과 맞서 싸웠지만 혼자가 아니라 나란히, 다 함께였다. - P110

조선 왕조 제 26대 왕인 고종은 아직도 한창 나이의 청년이었다. 왕이 된 이래 대비 조씨와 아버지 대원군 사이에서 자랐다. 두 분 다 성격이 강했다. 대원군은 저돌적인 의지를 가진 사내였고, 조대비는 여자의 완고한 고집을 깊이 간직한 분이었다. 두 분다 그를 어린아이 취급했고, 따라서 그는 더디게 철이 들었다. 그는 이따금 두 분 사이에서 씨름할 때가 있었다. 게다가 민씨 문중의 아름다운 규수를 왕비를 맞이함으로써 세 사람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신세가 됐다. - P179

"조선의 유일한 희망은 과거를 떨쳐 버리고 현재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나는 희망을 갖게 됐어요. 이제 조그만 나라도 과학과 가계의 힘으로 강성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말이오. 조선에서 가장 뛰어난 젊은이들을 뽑아 당신네 나라에 유학을 시킨 다음 돌아와서 사람들을 가르치게 해야 하오. 우리는 젊은이들을 위한 대학을 세워야 합니다. 허나 민 대감의 힘이 이리 막강한데 역시 설득할 수 없을 게 분명하오. 민 대감이 중전의 조카니까요. 그 짐작이 틀렸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오. 두렵고 안타까운 추측이긴 하지만, 민 대감은 자기가 본 것에 겉으로만 관심을 기울이는 척할 거요. 개혁을 건의하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은밀히 방해 공작을 꾸밀 거라는 얘깁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을 바로 그거예요." - P211

모든 일이 흡족하게 마무리되자 궁왕은 장례일을 선포했다. 밝고 화창한 날씨였다. 사방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녀의 온갖 변덕과 고집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과 쾌활함, 용기와 명석한 두뇌, 심지어는 그 억센 의지까지도 사랑했다. 중전이 죽은 이제, 사람들에게 그녀는 두 번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조국의 옛모습을 영원히 상징하는 존재였다. 이미 전쟁에서 승리한 정복자 일본이 조선의 옛 전통과 언어, 생활 방식을 말살하는 일에 착수한 것이다. - P290

"아아, 당쟁 때문이지. 그게 우리의 죄야. 어떻게 해야 적을 물리치고 자유를 지킬 수 있는지, 우리는 그 방법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시간만 허비했어. 수세기에 걸친 당쟁이 우리나라를 분열시켜왔어. 분열되었기 때문에 나라가 망한 거야. 우리 자신의 부패를 뿌리 뽑기 위해 노력한 이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끝났어. 이씨, 민씨, 박씨, 김씨, 최씨 같은 명문가도 사라졌고 실학파, 동학당 등도 다 쓰러졌어. 다행히 지금은 상하 귀천 없이 온 백성이 잃어버린 독립을 되찾는 갈망으로 뭉쳐 있다. 이제는 우리들끼리 서로 증오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일본놈들만을 미워하게 되었으니 아마 일이 좀 더 쉽게 풀리겠지." - P298

조상 대대로 살아온 집의 아늑한 방에서 연춘은 이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까지 닿을 수 있는 연락망을 짜기 시작했다. 그의 목적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조선인들로 하여금 승전에 대비하게 하여 일본이 쫓겨 가면 곧바로 기능을 수행할 정부를 갖추게 하려는 것이고, 둘째는 다른 나라, 특히 미국에 있는 동포들을 분발시킴으로써 승리를 촉진하려는 것이었다. 러시아는 수백 년 동안 조선의 해안과, 산지에 감추어진 귀중한 광물들, 어장들, 그리고 유속 빠른 강과 좋은 항만 조건을 탐내 왔다. 그는 혁명이 일어났다 해서 러시아의 본질까지 변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나라의 야욕은 굶주린 이들의 새 정권에 의해 오히려 날카로워지고 강화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들의 조상은 아사지경의 농민들이었다. 이제 그들은 살찌고 부유해질 차례가 왔다는 것이었다. - P563

"선생은 열반의 의미를 잘못 알고 계시는군요. 열반은 비존재가 아닙니다. 사실은 고통의 부재, 죄업의 부재, 정욕의 부재, 그리고 미혹의 부재까지를 의미하는 것이지, 비존재라 해서 열반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정반대로 열반을 선생이 말하는 바로 그 전존재이지요. 그것은 완전한 깨달은, 완전한 인식, 완전한 이해를 의미합니다. 말이 없이도 마음이 통하는 상태 말이지요. 말이 없어도 우리는 그냥 압니다. 우리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열반에 든 정신과 영혼한테 갖출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괴로움, 고통, 정욕, 미혹 자체의 부재는 이미 알고 있음의 결과, 즉 우리가 시간이라 부르는 이 영원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이해, 깨달음의 결과이지요." - P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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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개화기는 새로운 외부 문화와의 충돌을 경험한 시대였다. 그 충돌은 개화기 이전부터 일어났으니 그건 바로 천주교에 대한 대응이었다. 그 대응은 박해로 나타났다. 조선 정부의 천주교 박해는 당파싸움으로 인해 증폭되었다. 이는 개화기가 결국 망국(亡國)으로 종결된 과정을 이해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조선의 자폐적 시스템과 더불어 내부갈등이 나라의 진로를 결정하는 주요 변수였다는 사실을 폭로해주기 때문이다. 개화기로 들어가기에 앞서 천주교 문제를 살펴보고 넘어가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72)

블라디보스토크의 블라디는 러시아어로 정복하다는 뜻이고 보스토크는 동쪽의 의미인바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가 동쪽으로 와서 정복한 도시인 셈이다. 이전 이 땅은 발해의 중요한 거점 지역이었고 이후로는 여진과 거란의 땅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이 땅을 한자로 해삼위(海蔘威)라고 표기했는데 바닷가에 해삼이 많아서 해삼위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바다도 4~5개월간 결빙하기 때문에 부동항을 얻으려는 러시아의 남하정책은 이후에도 계속된다.


(90)

역설이지만 서학은 물론 동학에 대한 이러한 탄압은 조선 조정이 자신들의 죄, 즉 민생을 도탄에 빠뜨린 현실을 잘 알고 있었다는 걸 시사하는 건 아닐까? 민생을 도탄에서 건져낼 수 없는 무능이, 언제든 민심을 폭발시킬 수 있는 위험요소 제거에만 총력을 기울이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 게 아니었겠느냐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망국(亡國)의 씨앗이 싹트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99)

다블뤼의 다음과 같은 진술은 자선(慈善)의 원조 국가가 조선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할 정도다.

이 나라에서는 자선 행위를 진정으로 존숭하고 실천한다. 사랑방에서 받는 대접 이외에도 식사 때 먹을 것을 달라면 거절하지 않는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일부로 그를 위해 밥을 다시 하기도 한다. 들에서 일하는 일꾼들은 식사하다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즐거이 자기 밥을 나누어준다. 뱃사공들은 밥을 먹지 않고 배 타러 나온 사람과 나누어 먹는 것을 철칙으로 한다. 잔치가 벌어지면 언제나 이웃 사람들을 초대해서 형제처럼 모든 것을 나눈다. 여비가 없이 길을 떠나는 사람은 엽전 몇 닢의 도움을 받는다. 없는 사람과 나누는 것, 이것이 바로 조선인이 가진 덕성 중의 하나이다.”

먼 훗날에라도 조선에 희망이 있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161)

조선은 강화도조약에 따라 개항을 하게 되었고 근대적인 서양 문물을 수입하게 되었다. 1876년 부산이 개항하고 이어 1879년 원산, 1880년 인천이 개항했다. 학계에선 근대화가 되는 시대를 의미하는 근대가 언제부터인가 하는 논쟁이 있는데 학계의 통설적 견해는 아무런 준비 없이 강요된 것이긴 하지만 개항을 통해 새로운 서구 중심의 국제질서에 편입한 1876년을 근대의 시발점으로 보고 있다.


(188-189)

금장태는 최한기는 조선 후기 실학파의 마지막 인물이자 근대 개화사상으로 한걸음 나아갔던, 그 기대의 가장 앞선 진보적 지성인이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의 저술은 1000권이나 된다는데 세상에 알려진 것은 아직 100여 권뿐이다. 그의 탁월한 학문의 폭넓은 식견이 알려지자 당시의 여러 재상들은 그를 조정에 끌어들이려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뜻을 펼 수 없는 상황에서 벼슬하기를 허락하지 않았다. 다만 신미양요로 강화도가 미국 함대에 침략당하자 친분이 있던 유수의 자문요청에 조언한 바 있다. …… 자신의 시대를 새로운 것으로 낡은 것을 바꾸는변혁의 시대로 규정한 그는 차라리 옛것을 버릴지언정 지금을 버릴 수는 없다하여 진보정신을 표방하고 과학과 문명이 더욱 발전하고 역사가 발전해나간다는 것을 확신했다.”


(284)

한편 최초의 미국 유학생 유길준의 미국 생활은 어떠했는가?

미국 <뉴욕타임스> 1883 11 8일자는 사절 수행원의 한 사람인 유길준은 자기나라의 옷을 벗고 지금은 서양 옷을 입고 있다. 그는 매사추세츠주 세일럼시의 에드워드 모스(1838~1925) 교수 지도하에 학생으로 이 나라에 머물 것이다. 어제 저녁 이 젊은이는 5번가(뉴욕)에 산책을 나갔다가 길을 잃었다. 그러나 몇 마디의 영어를 사용하여 경찰관에게 호텔 가는 길을 물어 찾아왔다.”고 보도했다.


(301)

<한성순보>는 신문발간의 동기와 기술적 지원은 일본에 의존했지만 신문의 뉴스원, 내용과 관련해선 중국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 이 신문이 기사로 가장 많이 다루었던 국가는 중국(453)이었으며 그 다음으로 베트남(165ㅎ회), 프랑스(71), 영국(56), 일본(53), 미국(47) 등이었다. 중국 관련 기사가 압도적으로 많았던 이유는 조선과 중국의 관계가 밀접했다는 것 이외에 영국, 미국을 비롯한 열강의 선교사나 상인 등이 발간하던 중국계 신문들을 주요 뉴스원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또한 <한성순보>의 실무자들은 거의가 한학자와 중국어 역관(譯官) 출신들로서 한문에는 능통한 반면 일본어는 몰랐다는 점과 이들이 일본보다는 중국을 더 숭상했다는 점도 작용했다.

베트남, 프랑스 관련 기사가 많았던 건 1884 6월 프랑스의 베트남 침략(1883) 문제로 일어난 청불전쟁과 베트남이 프랑스에 먹히는 비극에 대한 동병상련(同病相憐) 감정 때문이었다.


(334)

갑신정변의 내각은 청춘정권이었다. 내각 서른두 명의 연령을 보면 20대와 30대가 3분의 2 이상을 차지했다. 김옥균 서른세 살, 홍영식 스물아홉 살, 서광범 스물다섯 살, 박영효 스물세 살, 서재필 스무 살 등 주동자들은 더 젊었다. 혈기가 지혜를 앞섰음을 시사해주는 대목이다.


(336)

너희들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군주는 그렇게 개화를 버렸다. 김옥균은 군주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쏟는다. 이제 곧 천하대역죄인이 될, 그의 부모와 아내와 아이들은 몰살을 당하게 될, 그리고 자신은 10여 년의 망명객이 될 것이며 망명지 일본에서도 버림받은 후 결국 중국 상하이에서 조선 정부가 보낸 암살자에게 목숨을 잃을, 그러나 군주를 사랑하였고 조선의 강대한 힘을 꿈꾸었던 김옥균은 이렇게 군주와 마지막 작별을 했다. 박영효, 서재필, 서광범 등이 김옥균과 함께 후퇴하는 일본군을 쫓아갔다. 군주의 곁에는 이제, 청군과 군중들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될 홍영식, 박영교만 남았다. 실패한 혁명 뒤에 남은 것은 군중의 분노뿐이다. 거리는 살육으로 뒤덮인다. 일본인과 개화파들, 그들의 가족은 보이는 대로 습격을 당한다. 김옥균의 집과 일본공사관은 성난 군중의 손으로 불타올랐다.


(345)

이어 신용하는 그러나 무엇보다도 주목해야 할 실패 요인은 일본군 무력을 차용한 요인이라며 갑신정변은 아무리 필요하고 애국적인 목적을 갖고 있어도 그 수단에 있어서 침략의도를 가진 일본의 힘을 일부 빌려서 수행하려 해서는 실패하고 만다는 뼈아픈 역사의 교훈을 우리들에게 남겨주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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