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그런데 최근 학계와 사회 일각에서는 자신들의 정치적 계급적 이해관계를 위해 역사의 기억들을 왜곡하고 전용하는 현상들이 나타나 우려스럽다. 2019년 일본이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자 배상 판결 문제를 구실로 경제보복 조치를 취했다. 이때 국내의 보수적인 정치인과 지식인, 나아가 경제 단체들이 원인 제공자인 일본이 아닌 자국 정부를 향해 마구 손가락질하며 법석을 떨었다. 일본의 요구에 순응하지 않으면 한국 경제가 당장 망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들은 한일 과거사 문제의 해결 방안에서도 같은 태도이다.

 

(37)

그런데 9*18 사변에 대한 중국 정부의 대일 정책은, 즉각적인 대일 항전을 바랐던 임시정부는 물론 상하이 민중과 대학생들을 점차 실망시켰다.

9*18 사변 직후 중국 정보는 일본 침략의 부당성을 국제연명에 호소하는 것과 함께 국내적 분열의 중심이 되고 있는 공산당 세력의 토벌에 집중하는 정책을 취했다. 이에 따라 동북지방의 방위를 맡은 장쉐량에게 일본군과 교전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중국 정부는 일본군의 침략에 대해 무저항주의를 선택하고 국제연맹을 통한 외교적 해결에 집중했다.

 

(142-143)

김구는 천퉁셩 부부의 극진한 환대 속에서 한결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그는 천퉁셩 부부의 안내를 받으며 자싱의 산천을 감상하고 유적지를 둘러보았다. 상하이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산과 호수, 넓게 펼쳐진 비옥한 토지를 감상했고, 임진왜란 당시 마을 부녀자들을 살리려다가 왜놈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승려의 슬픈 사연이 담긴 서문 밖 혈인사의 돌기둥, 그리고 소낙비에 보리가 떠내려가는 줄도 모르고 오직 글 읽기에만 골몰한 서생 주바이신의 무덤에 얽힌 사연을 들으며 오랜만에 눈과 귀가 호사를 누렸다.

 

(277)

위혜림의 행적과 관련하여 더욱 놀라운 사실은 해방 이후 그의 행적이다. 정병준은 김구를 암살한 안두희의 이후 행적을 연구한 논문에서,

‘1959년 안두희가 서울 수도방위사단 사령부 고급부관(대령 계급)으로 오사카에 나타나 경무대 기관원이던 위혜림, 나카지마 등과 북송손 폭파 공작을 벌였으나, 정보 누설로 공작에 실패한 후 귀국하였다.’

고 했다. 그리고 위혜림은 해방 직전에 상하이에서 아마기스 기관의 하부 조직인 무라이 기관의 기관장을 지냈고”, 해방 후에는 맥아더 사령부 정보참모부 휘하 특수 공작 기관이던 캐논 기관에서 일해고 이 기관이 해산된 뒤에는 이승만의 도쿄 주재 사설 기관인 경무대 기관에서 일했다고 한다.

위혜림과 김구의 질긴 악연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해방 전 김구 암살 공작에 밀정 노릇을 했던 위혜림이 해방 후에는 이승만 사설 기관의 부하가 되어, 김구를 암살한 안두희와 함께 재일교포의 북송선 폭파 공작을 함께한 이 사실이.

 

(299)

임시정부가 재건됨으로써 이제 중국 관내의 독립운동 정국은 김구가 주도하는 임시정부와 김원봉이 주도하는 민족혁명당이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서 독립운동의 주도권을 두고 서로 경쟁하는 양상이 되었다. 민족혁명당은 창당 당시 임시정부의 해체를 주장했다. 반면 임시정부는 이를 반대하고 재건한 입장이기 때문에 양측 사이의 갈등은 당분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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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브 (반양장) 창비청소년문학 111
단요 지음 / 창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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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다이브>라고 하는 얇은 소설 한편을 읽었단다. SF 장르이고, 디스토피아를 그린 소설이란다. 요즘은 아빠가 책을 고를 때 너희들과 같이 읽을만한가 살펴보곤 하는데, 이 책도 그런 책들 중 하나란다. Jiny는 천선란 님, 김초엽 님의 소설들을 재미있게 읽었으니, 이 책도 괜찮겠다 싶어서 골랐단다. 배경이 디스토피아라서 좀 그렇긴 하지만 말이야.

기후위기로 인한 기후 변화는 이젠 미래의 이야기는 아니란다. 예상치 못한 날씨가 우리를 찾아와 겁을 주곤 하니까 말이야. 그러 기후위기에 대처하지 못한 인류는 결국 빙하들이 모두 녹아 내리고 해수면이 급격히 높아지는 불행을 맞게 되는 것이 이 소설의 배경이란다. 2042년에는 바닷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해변가로 쭉 댐을 쌓았으나, 얼마 후 댐이 무너지면서 많은 도시들이 바다에 잠기게 되었단다. 그런 생활이 이어지던 2057년 서울이 이 소설의 배경이 된단다.


1.

소설 속 2057년 서울의 모습은 높은 산이나 고층 빌딩의 윗부분만이 물 위에 나와 있고, 그곳에서 생존자들이 생활하고 있단다. 빙하만 녹아서는 그렇게까지 해수면이 높아질 것 같지 않은데, 뭐 또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지구는 병들어 있으니까. 서울 노고산에서 선율은 다른 아이들과 함께 생활했어. 그 아이들을 이끄는 사람은 삼촌이라고 부르는 사람이었어. 선율은 물꾼이었는데, 물꾼은 물 속에 들어가서 생존에 필요한 물건이나 쓸만한 물건을 가지고 오는 일을 하는 사람이야.

어느날 선율은 멀쩡하게 보관된 기계인간을 하나 가지고 왔단다. 고민고민 하다가 기계인간에 배터리를 넣어 보았단다. 그 기계인간의 이름은 채수호라는 18살 아이의 기억을 저장한 기계인간이었어. 그리고 채수호는 2038년까지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는데 기억을 저장한 년도는 2042년이었어. 그러니까 2042년에 2038년까지의 기억만 저장을 한 것이지. 그 기억은 불치병을 갖고 죽음을 앞둔 18살 소년 수호의 기억이었단다. 그러면 왜 2038년에 저장을 하지, 4년이나 지나고 나서 저장을 했을까? 수호는 그 비어 있는 4년에 대해 알고 싶다고 했어.

일단, 2038년 수호의 기억으로 수호가 당시 어떤 생활을 했는지 알아봤어. 수호는 병원에 오래 있었어. 수호가 머무르고 있던 병실의 앞자리에 서문희라는 아주머니가 계셨는데, 그 아주머니의 아들은 서문경이라는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오늘날 삼촌이었던 거야. 나중에 서문경은 수호의 과외도 해주는 등 친하게 지냈단다. 6살 어린 수호는 서문경에게 삼촌이라고 불렀는데, 그것 때문에 다른 아이들에게도 삼촌이라고 부르라고 했던 거야. 그런데 2057년 서문경은 기계인간 수호를 알아보지 못했어. 아빠가 생각하기에 일부러 아는 척을 안 한 것 같아.


2.

남산에도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었는데, 남산에 우찬이라고 하는 선율과 친구였던 아이가 있어. 우찬도 물꾼이었어. 선율과 우찬은 그리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둘은 내기를 하기로 했어. 물 속에 들어가서 특이한 물건을 찾아오는 내기였단다. 그 내기에서 선율은 수호의 옛 아파트에 갔어. 그곳에 가 보니 또 다른 망가진 수호 기계인간이 있었단다. 그 기계인간을 가지고 와서 왔단다. 그 기계인간이 고장이 났지만 data는 저장되어 있었어. 2038년 이후의 기록이 남아 있었어. 결국 수호는 불치병을 이기지 못하고 죽고 말았어. 불쌍하구나.

수호의 부모는 다시 수호 기계인간을 만들어 함께 생활했단다. 그러니까 그 기계인간이 수호를 대신하는 것이었어. 수호 기계인간은 인간과 기계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었어. 그러다 보니 불만도 쌓이고 부모님과 잦은 말다툼도 했단다. 수호 기계인간은 문경 삼촌에게 도움을 받으려고 했지만, 당시 문경 삼촌은 자기 살기도 힘든 상황이라서 도와주지 못했어. 오히려 수호 기계인간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도 경솔하게 내뱉았어. 돈 많고 몸 안 아프게 새로 태어났는데 뭐가 걱정이냐고 쏘아붙였지. 나중에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지만, 수호기계인간은 투신해서 삶을 다시 마감했단다. 그런 기억을 가지고 있던 삼촌이었기에 수호기계인간을 보고 아는 척을 하지 않았던 거 같아.

수호 기계인간, 선율, 문경 삼촌그들은 지난 옛이야기를 했어. 삼촌은 그동안 괴롭고 힘들었다고 했는데, 그 모든 일들이 모두 과거이고 그런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 수호기계인간도 아니었어. 사과하고 용서하고 화해하고 따뜻하게 잘 마무리되면서 소설은 끝이 났단다. 짧은 소설이지만, 지구 위기의 결과로 만들어진 디스토피아 세계, 인공 지능을 가진 기계인간의 정체성 문제그런 어려운 시기에서도 시들지 않은 인간 본연의 감정들그런 것들을 이 소설에서 만날 수 있었단다. 짧지만 괜찮은 소설이었어. 지은이는 단요라는 필명을 갖고 계신 분인데, 다음 작품도 한 기대해 봐야겠구나.


PS:

책의 첫 문장: 서울은 언제나 한국의 동의어였다.

책의 끝 문장: 선율 또한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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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슨 인 케미스트리 2
보니 가머스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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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레슨 인 케미스트리> 2권을 이야기해줄게.

드디어 엘리자베스는 첫방송을 했어. 아참, 이 방송은 생방송으로 진행된단다. 엘리자베스는 세트장도 마음에 안 들고, 대본도 양심상 말할 수 없는 대본들이 적혀 있었어. 엘리자베스 성격에 그대로 말할 사람이 아니지. 그냥 자기 마음대로 했단다. 생방송이니 중단할 수도 없고, PD인 파인 월터는 완전 가시방석이었어. 자신이 주문했던 것을 하나도 하지 않는 엘리자베스. 화면 앞에서 웃지도 않고, 사용하는 말들도 온갖 화학 용어뿐이고이러다가는 자신도 잘릴 것이라 생각했단다. 자기 마음대로 하긴 했지만, 엘리자베스의 거침없고 솔직한 발언들 속에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여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 있었단다.

======================

(16)

제가 경험한 바로는 아내와 어머니, 여자로 살아가는 데 드는 희생과 노고를 알아주지 않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 저는 그 희생과 노고를 잘 알아요. 우리가 함께 30분을 보낸 뒤에는 그럴 가치가 있는 결과물을 얻게 될 겁니다. 눈에 확 띄는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저녁 식사를 만들 겁니다. 참 중요한 것이죠.”

======================

방송의 마지막 멘트로는 늘 얘들아, 상을 차려라. 너희 어머니는 이제 자기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라고 했는데, 멘트를 듣는 어머니들은 속 시원한 멘트라 생각했을 거야.

엘리자베스의 딸 매들린은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데, 유치원 숙제로 가계도를 만들어 오라는 숙제가 있었어. 1권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매들린은 이제 다섯 살이지만 엄청 똑똑하다고 했잖아. 매들린은 아빠가 다녔던 보육원을 알아보기 위해서 혼자 도서관에 갔단다. 그곳에서 웨이클리 목사라는 사람을 만났는데, 매들린이 자신의 아빠 이름이 캘빈 에반스라고 하자 목사는 놀랬단다. 웨이클리 목사는 캘리 에반스의 친구였거든. 대학 때 학회에서 만나고, 이후 과학과 종교에 관한 내용을 편지로 주고받는 펜팔이었어. 캘린 에반스가 죽고 나서 웨이클리 목사는 장례식장에도 참석을 했었단다. 아무튼 도서관에서 만난 매들린과 웨이클리 목사는 친해졌단다. 웨이클리 목사가 매들린의 숙제도 도와주고.


1.

월터와 엘리자베스가 일하고 있는 방송국의 매니저는 필이라는 사람인데, 참 못된 사람이란다. 예전에 엘리자베스의 대학 지도 교수와 비슷한 수준의 인성을 가지고 있었어. 엘리자베스를 불러 성폭행을 하려고 하다가 그녀가 꺼내든 부엌칼, 사실 방송 때 쓰던 칼이긴 하지만, 그 칼을 꺼내 들자, 필은 놀래서 심장마비를 일으키고 쓰러졌단다. 엘리자베스는 911에 전화를 해서 필은 다행히 죽지는 않지만, 다시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어.

필이 물러나고 나서 필의 문서를 보던 중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단다. 엘리자베스가 진행하고 있던 요리 방송이 엄청나게 인기를 끌고 있었던 거야. 필은 그 동안 그런 사실을 숨기고, 엘리자베스와 월터에게 계속 화만 내고 있었거든. 당시는 시청률에 대한 정보가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았나 보구나. 월터도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방송국에서는 필의 후임으로 월터를 매니저로 선임했단다. 엘리자베스의 방송은 점점 인기가 많아져서 공개 방송으로 진행하게 되었어. 방청석 자리를 구하기 위해서는 새벽부터 와서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단다. 수소 결합을 첫눈에 반한 사랑으로 설명을 해 주는 식이니, 인기가 없을 수가 없지. 아빠도 수소 결합에 대해 그 개념만 대충 기억하고 있었는데, 엘리자베스의 설명을 듣고 나니 개념이 확 잡히더구나. 수소 결합은 첫눈에 반한 사랑이야.

======================

(72-73)

엘리자베스는 또 다른 분자식을 가리켰다.

이제 세 번째 결합을 보겠습니다. 수소 결합은 이 셋 중에 가장 약하고 섬세한 결합니다. 저는 이것을 첫눈에 반한 사랑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양쪽 다 그저 상대의 시각적 정보만을 근거로 끌리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은 그 남자의 미소가 마음에 들어서 끌리고, 그 남자는 여러분의 머리카락이 마음에 들어서 끌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서로 이야기해보니, 그 남자는 남몰래 나치즘을 추종하고 있었던 데다 여자들이 너무 불평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게 드러났습니다. 그럼 어떻게 될까요? 펑 하고 끝나는 거죠. 약한 결합은 이렇듯 깨지고 맙니다. 이게 바로 수소 결합입니다. 숙녀분들. 만약 뭔가가 진짜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좋아 보인다면, 대부분 생각처럼 진짜일 리 없다는 걸 화학적으로 알려주는 표식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

똑똑한 매들린은 아버지가 어렸을 때 올 세인트 성당이 경영하는 올 세인트 보육원에 있었을 거라고 확신했단다. 매들린이 확신하면 맞겠지. 웨이클리 목사가 알아봐 준다고 했어. 웨이클리 목사는 올 세인트 성당의 주교를 만나보았는데 돈만 밝히는 그런 사람이었단다. 캘빈이 보육원에 있을 때 주교는 캘빈을 무척 싫어했어. 캘빈을 양자로 데리고 가려고 했던 피터 재단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그 피터 재단에게 캘빈이 죽었다고 거짓말까지 했단다. 피터 재단은 캘빈을 양자로 받아들이는 대신, 캘빈을 추모하는 기금을 주었단다. 그곳도 아주 많이.

피터 재단과 캘빈은 도대체 무슨 사이길래? 캘빈에게는 비밀이 있단다. 1권에서 이야기하기로는 캘빈의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했잖아. 사실 그 부모님은 친부모님이 아니고 양부모님이었단다. 캘빈의 친부모는 살아 있었어. 캘빈도 나중에 커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지. 캘빈의 과거에는 어떤 비밀이 있었을까?


2.

엘리자베스가 키우고 있던 개, 생각나지? 이름이 아주 독특했잖아. 여섯시 삼십분. 그 개가 우연히 방송국에 왔다가 엘리자베스와 함께 방송을 출현했는데, 그 이후에 여섯시 삼십분도 엄청나게 인기를 끌게 되었단다.

엘리자베스가 인기를 끌자 여기저기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어. <라이프>지의 기자 로스도 그 중에 한 사람이었단다. 엘리자베스는 처음에는 계속 거절을 하다가 사적인 이야기를 제외하고 과학에 관한 이야기만 한다는 조건으로 인터뷰를 했단다. 로스는 엘리자베스와 약속을 지켜서 과학에 관한 내용들만 추려서 기사를 썼단다. 그러나 편집자가 그 기사에 잔뜩 화를 내고, 기사 내용을 대폭 수정을 했단다.  아주 자극적으로 엘리자베스의 사생활을 왜곡해서 기사를 썼어. 엘리자베스와 원수관계에 있는 헤이스팅스 연구소의 도나티 과장과 인터뷰하고, 대학 지도 교수 때 엘리자베스를 성폭행했던 교수도 인터뷰를 해서 기사에 실었단다. 그들이 엘리자베스를 좋게 이야기해주겠니. 그리고 사생아를 낳았다는 내용까지 기사에 다 실었어. 그 기사가 나가고 엘리자베스뿐만 아니라 매들린과 해리엇도 큰 상처를 받았어. 아무튼, 언론이라는 것들은 예나 지금이나

로스는 자신의 잘못이라고 자책하고 진짜 인터뷰한 내용을 열 군데 이상의 언론사에 보냈지만 다 거절당했단다. 그리고 그는 <라이프>를 그만두고 베트남으로 떠났단다. 진짜 인터뷰 기사는 나중에 엘리자베스에게도 전해주었어..

프래스크란 사람이 있단다. 헤이스팅스 연구소의 인사과 직원이었는데, 처음에는 엘리자베스와 앙숙관계였는데, 나중에는 친하게 되었단다. 프래스크도 헤이스팅스 연구소에서 해고를 당했단다. 프래스크는 엘리자베스를 도울 생각으로, 예전에 엘리자베스의 연구에 투자를 했던 익명의 투자자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진실을 편지로 보냈단다. 헤이스팅스 연구소의 도나티 과장이 중간에서 돈을 착복한 사실도 모두 보냈단다. 해리엇도 도와주었어. 로스가 쓴 진짜 기사를 <보그>지에 보내서 제대로 된 기사가 나오게 했단다.

한편,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어하는 화학연구를 하기 위해서 방송을 그만두기로 했단다. 마지막 방송의 마지막 멘트는 명멘트였단다. 아빠도 여러 번 읽어보면서 의심 날 때나 두려울 때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

(236)

자신에 대한 의심이 들 때마다, 두려움을 느낄 때마다 이것만 기억하십시오. 용기는 변화의 뿌리라는 말을요. 화학적으로 우리는 변화할 수 있게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그러니 내일 아침 일어나면 다짐하십시오. 무엇도 나 자신을 막을 수 없다고. 내가 뭘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더는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라 규정하지 말자고. 누구도 더는 성별이나 인종, 경제적 수준이나 종교 같은 쓸모없는 범주로 나를 분류하게 두지 말자고. 여러분의 재능을 잠재우지 마십시오, 숙녀분들. 여러분의 미래를 직접 그려보십시오. 오늘 집에 가시면 본인이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시작하십시오.”

======================


3.

엘리자베스는 방송은 그만 두었고, 아무 곳에도 연락이 오지 않았어. 아무래도 그 거짓 기사의 영향이 크겠지? 그런데 어느날 헤이스팅스 연구소 인사과장이라면서 프래스크가 전화를 했어. 프래스크는 해고되었는데, 헤이스팅스 연구소 인사과장이라니? 장난 전화인가 싶었는데, 프래스크가 연구소로 와보라고 했어. 연구소에 가니 정말 프래스크가 반갑게 맞아주었어. 프래스크가 복직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프래스크가 익명의 투자자에게 편지를 보낸 것 때문이었어. 익명의 투자자는 사실 파커 재단의 총수인 에이버리 파커라는 사람이었단다. 프래스크가 보낸 편지를 통해 모든 진실을 알게 되었고, 에이버리 파커는 헤이스팅스 연구소를 아예 인수를 해버린 것이란다. 그리고 프래스크를 다시 고용한 것이고 말이야. 못된 도나티는 엘리자베스의 논문을 훔친 일도 발각되어 연구소에서 잘리게 되었단다.

에이버리 파커는 엘리자베스에게 숨겨진 진실을 이야기해주었단다. 그 동안 뿌려두었던 떡밥을 거둘 시간. 에이버리는 17살 때 풋사랑으로 그만 임신을 하고 말았어. 부모님에 의해 미혼모 시설에서 아이를 낳았으나, 에이버리에게는 아이가 죽었다고 이야기를 했어. 에어버리는 그런 줄 알았지. 에이버리가 아이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으로 그로부터 10년 뒤였어. 그 아이의 양부모는 교통사고로 죽고 아이는 보육원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 그래서 보육원에 연락했으나, 안타깝게도 아이도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단다. 그 아이가 캘빈인 것 알겠지? 그렇게 아들 캘빈이 죽은 줄만 알고 있었는데, 몇 년이 더 지나고 잡지책에 실린 아들을 보게 되었단다. 그리고 몰래 아들이 있는 연구소에 후원을 하게 된 거야. 그런데 결국 갤빈은 죽고 말았지. 만남을 잠시 뒤로 미룬 것뿐이었는데, 결국 만나지 못한 거야. 이 이야기를 들은 엘리자베스는 에이버리를 이해해주고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단다. 엘리자베스도 다시 헤이스팅스 연구소에 일하게 되었고그렇게 소설은 해피엔딩으로 끝이 났단다. 캘빈도 살아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재미있는 소설 한 편 잘 읽었구나. 누군가에게 책 추천할 일이 있다면 최근에 읽은 책으로 손꼽아 볼만 하구나. 1권 독서편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지은이 보니 가머스가 카피라이터 출신이라고 그런지, 참신한 문장들도 읽는 즐거움을 주었단다. 보니 가머스의 늦은 데뷔가 안타까울 정도네. 다음 작품이 무척 기대되는구나.


PS:

책의 첫 문장: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월터는 처음부터 엘리자베스에게 세트장을 보여줬어야 했다.

책의 끝 문장: 화학진화. 시작해보자.


엘리자베스는 이 말을 생각해보았다. 아니. 자신은 남자들이 어떤지 모른다. 캘빈과 죽은 오빠 존, 메이슨 박사는 빼고, 어쩌면 월터 파인까지 제하더라도, 이제껏 봐온 남자들은 최악이었다. 남자들은 엘리자베스를 멋대로 휘두르고, 만지고, 지배하고, 입 다물리고, 교정하고, 이래라저래라 하고 싶어 했다. 왜 남자들은 자신을 평등한 인간으로, 동료로, 친구로, 동등한 존재로, 하다못해 그냥 길거리에 지나가는 낯선 사람으로도 봐주지 않는 걸까.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을 죽인 다음 뒷마당에 묻어놓았다가 발각된 범죄자를 맞닥뜨린 게 아니고서야 누굴 처음 봤으면 당연히 존중받아 마땅한 사람으로 여겨야 하는 것 아니야? - P46

해리엇은 손톱에 낀 때를 빼내면서 엘리자베스가 여성에게 배정된 종속적 역할을 받아들이는 것을 두고 불평하는 소리를 들었다. 어째서 작은 몸집을 뇌가 작다는 생물학적 표시라고 여기는지 모르겠다고, 왜 여성이 선천적으로 열등하며 그만큼 예쁘장하게 태어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고 말이다. 더 나쁜 것은 이런 개념을 주입받은 많은 여성이 그걸 다시 아이들에게 전수한다는 것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남자애는 남자다워야지’라든가 ‘여자애들이 어떤지 알잖아’ 같은 말을 해대면서 말이다. - P48

"대중들이 멋대로 당신의 이야기를 지어내게 두면 안 돼요, 조트 양. 그들은 진실을 왜곡할 줄 알거든요."
"기자들도 마찬가지죠."
- P186

"화학의 기본은 변화잖습니까. 변화는 당신의 신념 체계의 바탕을 이루고요. 변화는 좋은 겁니다. 우리에겐 더 많은 변화가 필요해요. 우리는 현 상태를 받아들이길 거부하거나 두려워하곤 하죠. 하지만 때로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 당신의 경우에는 오빠의 자살과 캘빈의 죽음 같은 일은 사실 언제나 일어나요. 엘리자베스, 사건사고는 항상 생깁니다. 아무 이유 없이 말이죠."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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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여담이지만, 작품을 읽다 보면 작가의 성별에 따른 표현 차이가 조금씩 보이는데요. <프랑켄슈타인>은 여성 작가 특유의 휘몰아치는 감정 표현을 극대화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표현은 특히 피폐한 분위기의 장르문학에서 빛을 발하죠.


(115-117)

저는 책벌레오서 평소에 독서가 여행과 닮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읽은 책 중 쥘 베른 작품만큼 철저하게 독자와 함께 거니는 책은 없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현실을 살아가야 합니다. 언제나 생업에 매달려야 하고, 잡다한 현실을 신경 써야 하죠. 여러분도 그렇고 저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쥘 베른의 책을 펼칠 때 우리는 꿈을 꿉니다. 육지를 등진 괴짜 선장에게 이끌려, 기이한 돌멩이를 사랑하는 교수에게 이끌려, 도박을 좋아하는 부자 신사에게 이끌려, 인생에 다시없을 여정을 떠나는 꿈을요. 


(118)

<해저 2만리>만 읽었을 때 저는 쥘 베른을 단순히 재미난 캐릭터성, 흥미진진한 서사를 잘 챙기는 작가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이상의 생각이 듭니다. 그의 작품은 픽션이 지녀야 할 미덕을 너무도 순순하게 보여줍니다. 독자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장 명랑한 방식으로 풍요롭게 보여줍니다. 그렇기에 저는 쥘 베른을 사랑합니다. 그의 솔직한 매력을, 거침없는 열정의 서사를 사랑합니다.


(220-222)

내 타임머신은 시간선을 살해하는 도구나 마찬가지야. 한번 가면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쳐서 본래 있던 세계는 사라져버리지. 언젠가 나는 반드시 이 기계를 파괴해야 할 거야.

단순히 새로운 시간선을 만들어내는 도구일 수 있고. 하나의 세계가 복도라고 하면 시간 여행은 수많은 복도를 만들어내는 거요.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항상 불완전해서 언젠가 그 복도 사이를 넘어갈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오.

나는 너무 많은 걸 알게 돼서이 기억이 있는 한 절대 시간 여행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야. 나는 1891년의 그날로 돌아가서 평범하게 인생을 마치지는 않을 거야. 설령 기회가 생긴다 해도.

나는 기회가 생긴다면 더 높은 층위를 탐구할 거요.

그게 끝나면 어쩌게? 휴식을 취하는 건가?

휴식은 없소. 한계 또한 없소.

생명과 정신이 도전하여 뚫지 못하는 경계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329-330)

이봐요, 로봇 공학의 3원칙부터 시작해보자고요. 로봇의 두뇌 깊숙이 심어놓은 세 가지 원칙이요.

1원칙.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 그리고 위험에 처한 인간을 모른 척해서도 안 된다.

2원칙. 1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3원칙. 1원칙과 제2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로봇 자신을 지켜야 한다.


(394-395)

<아이 로봇> <파운데이션>을 읽어본 지금 시점에서 말씀드리자면요. 아시모프의 작품들은 낡았기에, 레트로이기에, 다시 말해 올곧고 전형적이기에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저는 수많은 고전 작가를 사랑합니다. <고전 리뷰툰>에 실은 작품의 작가들은 모두 제가 가슴으로 사랑하는 분들입니다. 하지만 아시모프만큼은가슴이 아니라 머리로 사랑합니다. 작품으로 보여준 그의 이성과 통찰을 존경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긴 리뷰의 마지막을 빌려 젼호하려 합니다. 온갖 혼란이 밀어닥쳐 무엇이 올바른 가치인지조차 모르게 된 이 시대에, 우리에게는 아시모프의 낢음이 필요합니다. 거미줄처럼 흩어진 역사의 앞날에 가장 알맞은 방향을 찾고자 한 그의 고전적 지성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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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슨 인 케미스트리 1
보니 가머스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인터넷 서점에서 서핑하다가 알게 된 소설 <레슨 인 케미스트리> 1권을 읽었단다. 책 표지를 보면 원색들로 뒤덮여 있고, 빨간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오래된 텔레비전을 들고 있는 독특한 표지였단다. 그런데 이 소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은이 때문이란다. 지은이는 보니 가머스라는 사람인데, 육십이 넘은 나이에 이 소설로 데뷔를 했다는 구나.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을 갖고 있어서 늘 창작은 하셨겠지만, 육십대에 소설가 데뷔라니, 대단하시구나. 그리고 이 데뷔작은 2020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큰 화제를 몰고 왔고 판권이 25억에 계약되었고, 너희들도 좋아하는 캡틴 마블 브리 라슨이 주인공인 드라마도 찍고 있다는구나.

소설의 내용이 엄청 궁금했단다. 그래서 책을 구입하자마자 읽었단다. 아빠는 책을 사면 보통 몇 달은 묵혀두었다가 읽는 경우가 꽤 있는데, 이 소설은 도착하마자 펼쳐 보았어. 소설은 1950~6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주인공은 여성 화학자란다. 1950~60년대 미국은 여성 차별이 아직 심하던 시기였고, 특히 과학계에서의 여성 차별은 더욱 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단다. 그래서 같이 연구한 여성연구자들만 쏙 빼고 노벨상을 수여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알고 있어.

그런 과학계의 여성 화학자 이야기. 제목도 <레슨 인 케이스트리>면 대충 화학 수업이라고 해석하면 되나? 소설 속 주인공이 시종일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지만, 통통 튀는 듯한 전개였단다. 지은이가 카피라이터 출신이라서 그런지, 참신한 대화체도 좋았단다. 예를 들어 자신의 딸의 점심을 빼앗아 먹은 딸의 친구의 아버지한테 던지는 말. 멋지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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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파인 씨, 유감스럽지만 당신 따님의 점심 도시락까지 싸줄 시간과 여유가 내겐 없군요. 우리의 뇌를 일깨우고 가족을 단합시키고 미래를 결정하도록 도와주는 촉매제가 음식이라는 점은 모두가 아는 바죠.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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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그럼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소설의 이야기를 해줄게. 캘빈 에번스라는 젊은 천재 화학자가 있었단다. 캘빈은 어렸을 때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고아가 되어 보육원에서 자랐어. 캘빈은 조정 매니아였고 대학도 조정을 많이 할 수 있는 케임브리지 대학을 들어갔고, 졸업 후 화학 연구를 하면서도 조정을 많이 할 수 있는 동네를 선택했어. 돈을 많이 주는 곳이 아니고 말이야. 그렇게 헤이스팅스 연구소에 오게 되었단다.

캘빈은 늘 혼자 연구를 했고 한마디로 천재 괴짜 화학자였어. 동료들로부터 시기를 받기도 했단다. 캘빈은 젊은 화학자임에도 노벨상 후보에도 여러 번 오르는 등 대단한 성과를 냈어. 그리고 캘빈이 다니는 헤이스팅스 연구소의 동료 화학자인 엘리자베스 조트가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이란다. 엘리자베스의 아버지는 사이코 목사였다가 지금은 감방에 갇혀 있고, 엄마는 바람둥이로 지금은 딴 남자랑 살림을 차려 어디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고, 오빠는 어렸을 때 동성연애자였는데 아빠 때문에 십대에 자살로 삶을 마감했단다. 이런 가족사를 가지고 있는 엘리자베스는 절대로 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했어. 가족사만 불행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대학원 시절에는 담담 교수도 못된 대학 교수를 만났단다. 박사 과정 중에 담당 교수가 엘리자베스를 강제로 성폭행을 했고, 이 일로 엘리자베스는 박사 과정을 중단해야 했단다. 그 담당교수는 제대로 된 처벌도 받지 않고 말이야. 그 시절이 그렇게 콱 틀어 막힌 시절이었나 보구나.

엘리자베스가 화학자로써는 자존심 세고 남자에게 의지하지 않으려고 했어. 혼자 힘으로 성공을 하려는 열렬 화학자였단다. 하지만 1950년대 여성 과학자의 삶은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단다. 여성 차별이 심해서 연구소 월급도 남자 연구원에 비해 절반도 되지 않았고, 업적을 세워도 남자 연구원의 업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단다. 그런 엘리자베스가 캘빈과 우연한 두 번의 만남 이후 사귀게 되었어. 사귀어도 엘리자베스는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했단다.

캘빈은 화학만큼 좋아하는 것이 있으니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조정이란다. 캘빈은 엘리자베스에게 조정을 같이 하자고 했어. 당시 여자가 조정 같은 운동을 하는 것은 흔치 않은 것인데, 캘빈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엘리자베스의 역할이 있다고 해서 함께 했단다. 지은이 가니 보거스의 이력을 보니, 조정 선수이기도 했다고 하는데 자신의 경험을 소설에 잘 녹여낸 것 같구나.

그렇게 캘빈과 엘리자베스는 사랑도 하고 연구도 하고 조정도 하면서 잘 지냈단다. 그런 그들에게 유기견 한 마리가 찾아왔는데, 그들은 그 개에게 여섯시 삼십분이라는 독특한 이름을 주었단다. 여섯시 삼십분은 엄청 똑똑한 개였단다. 그들의 행복한 시간이 오래갔으면 좋았겠지만, 캘빈은 여섯시삼십분과 아침 조깅을 하다가 차에 치여 그만 죽고 말았단다. 엘리자베스는 심한 충격과 슬픔에 빠지게 되었단다.


2.

캘빈이 그렇게 갑자기 가버렸는데, 그냥 가버린 것이 아니고 엄청난 걸 하나 주고 갔단다. 캘빈이 죽었다는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비혼주의자에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엘리자베스. 엘리자베스는 그 아이를 낳기로 했단다. 그런데 엘리자베스가 다니고 있던 헤이스팅스 연구소는 임신한 미혼모는 해고를 시킨다면서 엘리자베스는 해고당했단다. 엘리자베스는 남자가 결혼 전에도 임신을 시키면 해고당하냐면서 반박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단다.

엘리자베스는 돈을 못 버는 것보다 더 억울한 것은 화학 연구를 못하는 것이었어. 그래서 집의 부엌을 개조해서 연구실로 만들었단다. 집에 그렇게 머무르고 있었는데, 연구소 사람들이 찾아와서 엘리자베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러 왔어. 엘리자베스는 그들에게 도움을 주었는데, 나중에는 수고비조로 돈을 받게 되어 그것으로 생활하게 되었어. 그리고 시간이 지나 딸을 낳게 되었고 이름을 매들린으로 했단다.

원치 않던 임신에 준비 없는 출산으로 갑작스러운 육아 전쟁으로 엄청 고생을 하게 된단다. 여자 혼자서 아기를 돌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란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이웃집 아주머니 헤리엇 슬로운이 찾아와서 엘리자베스를 공감해주면서 육아에 대한 이런 조언을 해주었단다. 나중에는 헤리엇이 아기를 직접 돌봐주기도 했단다. 헤리엇에게도 매들린을 돌보는 것은 무료한 삶에 새로운 삶의 원동력이 되었단다. 헤리엇이 매들린을 돌봐주게 되자, 캘빈이 죽고 나서 그만두었던 조정도 가끔 다시 하게 되었어. 매들린은 아빠와 엄마를 닮아 엄청 똑똑해서 다섯 살에 <모비 딕> 같은 어려운 책들도 읽었어. 아빠가 읽는 책들에 <모비 딕>은 참 여러 번 등장하는구나. 아빠도 꼭 읽어봐야겠구나. 이 책에서는 <모비 딕>을 간단 명료하게 설명을 해주는데, 누구랑 혹시, 그럴 일은 없을 확률이 훨씬 높지만, <모비 딕>에 대해 이야기할 일이 있으면, 이 책에서 소개한 한 문장을 써먹어보면 좋겠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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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

좀 이따가 메이슨 박사님 진료 예약이 있어. 그 전에 이 책을 반납하려고. 네가 <모비 딕>을 좋아할 것 같아. 인간이 어떻게 다른 생명체를 계속해서 과소평가하는지 알려주는 이야기거든. 위험을 무릅써가면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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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엘리자베스가 헤이스팅스 연구소에 복직을 하게 되었단다. 화학진화 분야에 거금을 투자하려는 익명의 투자자가 있었는데, 화학진화가 엘리자베스가 전문이었거든. 그리고 그 익명의 투자자는 엘리자베스의 논문을 보고 화학진화에 투자하기로 한 것이고, 늘 그 논문의 저자에 대해 안부를 헤이스팅스 연구소에 물어보았단다. 헤이스팅스의 도나티 과장은 엘리자베스를 엄청나게 싫어하는 사람인데, 상황이 이렇게 되자 돈을 받지 위해서는 엘리자베스를 다시 고용하지 않을 수 없었어. 그런데 도나티 과장은 엘리자베스를 엄청 싫어하니까 엘리자베스를 연구원이 아닌 보조연구원으로 복직시켰단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엘리자베스는 화를 내면서 자신을 화학연구원으로 대우해 달라고 했어. 물론 엘리자베스는 자신에게 투자하고 있다는 익명의 투자자가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지. 중간에서 도나티 과장이 돈을 잘 빼돌리고 있는 거지. 그것뿐만 아니라, 엘리자베스의 논문도 도나티 과장이 훔쳐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어.

그 즈음 매들린의 점심을 빼앗아 먹는 매들린의 친구의 아버지에게 항의하러 갔는데, 매들린의 친구의 아버지에게 캐스팅을 당했단다. 매들린의 친구의 아버지는 파인 월터라는 사람인데, 방송국 PD였는데, 당당한 여성 화학자이고 미모도 갖춘 엘리자베스는 신선한 캐릭터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어. 프로그램은 오후 시간대에 진행하는 요리 프로그램이었어. 과학과 요리를 접목한 프로그림으로 오후 4 30  나른한 오후 시간대 일명 오후의 저기압대가 끝날 즈음 시작하는 프로그램을 해보자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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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342)

저녁 식사를 만드는 거죠. 바로 거기서 당신이 필요한 겁니다. 당신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4 30분에 시작해요. 시청자들이 오후의 저기압대에서 슬슬 나오기 시작할 때죠. 연구에 따르면 대다수의 가정주부가 이 시간대에 가장 심한 압박을 느낀다더라구요.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너무 많은 걸 해내야 하거든요. 저녁도 짓고 상도 차리고 애들도 데려오고 등 일은 끝이 없다고요. 하지만 여전히 기진맥진하고 우울한 시간이죠. 그래서 이 특정 시간대의 책임이 막중한 거랍니다. 누가 나와서 무슨 말을 하든 반드시 기운을 북돋워줘야 해요. 당신이 시청자를 즐겁게 해줘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에요. 진심으로 하는 말이에요. 사람들을 다시 일상으로 끌어내줘요. 엘리자베스. 다시 정신을 차리게 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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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궁하고 연구소에서 푸대접을 받고 있던 엘리자베스는 파인의 제안에 오케이를 했단다. 그런데 프로그램 포맷에 있어 엘리자베스와 파인은 서로 의견 충돌이 있었어. 요리에 초점을 맞추자는 파인에 반해, 엘리자베스는 과학에 더 초점을 맞추자고 했고, 그래서 실험 가운을 입고 방송을 하겠다고 했단다. 중재 끝에 서로 조금씩 양보를 하고 방송이 시작되었단다.

1권의 이야기는 대충 여기까지란다. 2권에서는 엘리자베스가 방송을 하면서 일어나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펼쳐지게 된단다. 그 이야기는 조만간에 또 해줄게. 오늘은 그럼 이상.


PS:

책의 첫 문장: 그 옛날 1961년은 여자들이 오후마다 셔츠웨이스트 원피스 차림으로 이웃집 정원에 모여 수다를 떨던 때였다.

책의 끝 문장: 뒤에 덧붙인 이 말이 사실로 밝혀지리라는 걸, 그는 꿈에도 몰랐다.


엘리자베스가 앞치마를 두르고 촬영장에 들어간 첫날부터 그녀에겐 ‘뭔가’가 있다는 게 확실히 느껴졌다. 그 ‘뭔가’는 뭐라 말하기 어려우면서도 분명하게 드러나는 자질이었다. 또한 그녀는 아주 실용적인 사람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솔직해도 너무 솔직하고, 헛소리라고는 절대로 하지 않는 사람이라서 다들 이 여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다른 요리 프로그램에서는 사람 좋아 보이는 요리사들이 셰리주를 꿀꺽꿀꺽 마시며 방송을 유쾌하게 진행했지만, 엘리자베스 조트는 진지했다. 좀처럼 미소도 짓지 않았다. 농담하는 법도 결코 없었다. 그녀의 요리는 그녀만큼이나 있는 그대로였고, 아주 현실적이었다. - P21

"캘빈, 내가 배운 게 하나 있어.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복잡한 문제를 풀 때 언제나 간단한 해결책을 간절히 바란다는 점이야.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고, 설명할 수 없고, 변할 수 없는 걸 믿는 편이 훨씬 쉽거든. 실제로 보이고 만져지고 설명할 수 있는 걸 믿기는 오히려 어려워. 말하자면 실재하는 자기 자신을 믿기가 어렵다는 말이지." - P75

물론 화학자이니만큼 캘빈은 징크스에 집착하는 행위가 전혀 과학적이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건 미신일 뿐이다. 음, 그렇다면 좋겠지. 하지만 인생이란 결과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시험할 수 있는 가설이 아니었다. 무언가는 반드시 폭발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캘빈은 엘리자베스에게 위협이 될 만한 게 뭔지 항상 경계해왔다. 오늘 아침에도 그녀는 조정을 하다가 죽을 뻔했다. - P137

"하지만 우리는 대개 일 때문에 낮잠을 생략하죠. 그러니까 제 말은 미국인이 그렇다는 뜻이에요. 멕시코 사람들은 이런 문제가 없어요. 프랑스나 이탈리아나 다른 어느 나라를 가도 점심시간에 우리보다 술을 훨씬 많이 마시고요. 인간의 생산성이 자연적으로 오후에 떨어진다는 건 엄연한 사실이에요. TV 업계에서는 이걸 가리켜 ‘오후의 저기압대’라고 부르죠. 뭔가 의미 있는 걸 하기엔 너무 늦은 시간인데, 그렇다고 집에 가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에요. 주부나 4학년 어린애나 벽돌공이나 사업가나 전부 마찬가지죠. 나른하지 않은 사람이 없어요. 오후 1시 31분부터 4시 45분까지는 소위 말해 생산적인 삶이라는 게 사라져버려요. 이 시간은 사실상 죽음의 시간대란 말입니다." - P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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