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여담이지만, 작품을 읽다 보면 작가의 성별에 따른
표현 차이가 조금씩 보이는데요. <프랑켄슈타인>은
여성 작가 특유의 휘몰아치는 감정 표현을 극대화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표현은 특히 피폐한 분위기의
장르문학에서 빛을 발하죠.
(115-117)
저는 책벌레오서 평소에 독서가 여행과 닮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읽은 책 중 쥘 베른 작품만큼 철저하게 독자와 함께 거니는 책은 없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현실을 살아가야 합니다. 언제나 생업에 매달려야 하고, 잡다한 현실을 신경 써야 하죠. 여러분도 그렇고 저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쥘 베른의 책을 펼칠 때 우리는 꿈을 꿉니다. 육지를 등진
괴짜 선장에게 이끌려, 기이한 돌멩이를 사랑하는 교수에게 이끌려, 도박을
좋아하는 부자 신사에게 이끌려, 인생에 다시없을 여정을 떠나는 꿈을요.
(118)
<해저 2만리>만 읽었을 때 저는 쥘 베른을 단순히 재미난 캐릭터성, 흥미진진한
서사를 잘 챙기는 작가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이상의 생각이 듭니다. 그의 작품은 픽션이 지녀야 할 미덕을 너무도 순순하게 보여줍니다. 독자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장 명랑한 방식으로 풍요롭게 보여줍니다. 그렇기에 저는 쥘 베른을 사랑합니다. 그의 솔직한 매력을, 거침없는 열정의 서사를 사랑합니다.
(220-222)
내 타임머신은 시간선을 살해하는 도구나 마찬가지야. 한번
가면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쳐서 본래 있던 세계는 사라져버리지. 언젠가 나는 반드시 이 기계를 파괴해야
할 거야.
단순히 새로운 시간선을 만들어내는 도구일 수 있고. 하나의
세계가 복도라고 하면 시간 여행은 수많은 복도를 만들어내는 거요.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항상
불완전해서 언젠가 그 복도 사이를 넘어갈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오.
나는 너무 많은 걸 알게 돼서… 이 기억이 있는
한 절대 시간 여행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야. 나는 1891년의
그날로 돌아가서 평범하게 인생을 마치지는 않을 거야. 설령 기회가 생긴다 해도.
나는 기회가 생긴다면 더 높은 층위를 탐구할 거요.
그게 끝나면 어쩌게? 휴식을 취하는 건가?
휴식은 없소. 한계 또한 없소.
생명과 정신이 도전하여 뚫지 못하는 경계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329-330)
이봐요, 로봇 공학의 3원칙부터 시작해보자고요. 로봇의 두뇌 깊숙이 심어놓은 세 가지 원칙이요.
제1원칙.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 그리고 위험에 처한 인간을 모른 척해서도 안 된다.
제2원칙. 제1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제3원칙. 제1원칙과 제2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로봇 자신을 지켜야 한다.
(394-395)
<아이 로봇>과 <파운데이션>을 읽어본 지금 시점에서 말씀드리자면요. 아시모프의 작품들은 낡았기에, 레트로이기에, 다시 말해 올곧고 전형적이기에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저는 수많은
고전 작가를 사랑합니다. <고전 리뷰툰>에 실은
작품의 작가들은 모두 제가 가슴으로 사랑하는 분들입니다. 하지만 아시모프만큼은…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 사랑합니다. 작품으로 보여준 그의 이성과 통찰을
존경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긴 리뷰의 마지막을 빌려 젼호하려 합니다. 온갖 혼란이 밀어닥쳐 무엇이 올바른 가치인지조차 모르게 된 이 시대에, 우리에게는
아시모프의 낢음이 필요합니다. 거미줄처럼 흩어진 역사의 앞날에 가장 알맞은 방향을 찾고자 한 그의 고전적
지성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