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편안한 죽음 을유세계문학전집 111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강초롱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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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블로그 알라딘 서재에서 알게 된 책, 시몬 드 보부아르의 <아주 편안한 죽음>이란 책을 읽었단다. 을유문화사의 세계문학전집은 양장본으로 디자인이 너무 마음에 드는 시리즈인데, 이 책도 그 시리즈로 나와서 아빠가 선택하는데도 한몫을 했단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죽음이 제목에 들어가 있는데, 역설적이게도 편안한 죽음이라니누가 죽음을 경험해봤다고 편안한 죽음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 세상 사람은 누구도 자신의 죽음을 이야기해주거나 글로 쓸 수 있는 사람은 없단다. 그저 다른 이의 죽음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인데 과연 편안한 죽음이 있을까.

이 책의 지은이는 시몬 드 보부아르라는 분인데 보부아르는 이름이 낯설지 않은 이름이구나.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행동하는 지성이라는 소개를 보니, 꽤나 유명한 사람인 것 같은데 아빠는 그저 낯설지 않은 이름이라고밖에 할 수 없구나. 얼마 전 알라딘 서재에서 많이 소개되는 책 <2의 성>이라는 책도 이 분의 작품이더구나. 지은이 소개를 좀더 읽어보니 프랑스 콩쿠르 상도 수상하고 페미니즘 운동도 하시고, 사회문제에 있어서 시위도 직접 참여하는 등 많은 활동을 하셨더구나. 그리고 유명한 철학자 사르트르와 계약 연애를 했다는 내용도 지은이 소개란에 있더구나. 평생을 열정적인 삶을 사신 분 같구나. 이번에 읽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아주 편안한 죽음>은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자신의 경험,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적은 글이었단다.

다들 어머니라고 하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일 텐데 그 가장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모든 사람이 힘들 거야. 그리고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경험일 테고 말이야.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이자 지은이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같이 아파하고 슬퍼하면서 읽게 되었단다.


1.

엄마가 욕실에서 넘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간 보부아르. (일인칭 시점으로 소설은 진행되는데, 그 일인칭이 지은이일 테니 너희들에게 이야기할 때는 그냥 보부아르라고 할게) 병원에서는 대퇴부 경부 골절이 발생해서 입원 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어. 의사들도 낙관적인 소견을 보이면 세달 뒤면 뼈 붙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것이라고 했어. 엄마의 나이 일흔여덟. 기력이 없으셔서 욕실에서 넘어질 수도 있는 나이. 보부아르는 병원에 있으면서 지나온 엄마의 고단한 삶을 떠오르기도 했단다. 쉰네 살에 아버지가 죽고 혼자된 어머니의 삶. 아버지가 그리 착하신 분이 아니고 속만 썩이다가 가셔서 그런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오히려 더 열정적인 삶을 사셨던 어머니. 하지만 어머니 한 평생 삶은 억압의 삶이라고 할 수 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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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자기 생각을 스스로 반박해 보는 경험을 통해 우리는 자주 많은 걸 얻게 된다. 하지만 어머니는 전혀 다른 경험을 했다. 자신의 뜻을 거스르며 살았던 것이다. 다양한 욕망을 품고 있었지만 그것을 참아 내기 위해 엄마는 온 힘을 쏟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분노를 느껴야만 했다. 엄마는 유년 시절 내내 규범과 금기라는 갑옷을 두른 채 몸과 마음, 정신을 억압당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끈으로 옭아매도록 교육받았다. 그런 엄마의 내면에는 끓어오르는 피와 불 같은 정열을 지닌 한 여인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러나 그 여인은 뒤틀리고 훼손된 끝에 자기 자신에게조차 낯선 존재가 되어 버린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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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드신 분이 병원에 입원을 했으니 이것저것 검사를 받아보게 되었는데, 뜻밖의 발견. .

그 동안 소화가 계속 안 된다고 하셨는데, 그게 악성종양이 소장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라고소장을 막고 있을 정도의 종양이라면 진행이 이미 한창 되었다는 의사의 말.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도 인정하기 싫지만, 부모님이 암에 걸렸다는 소리를 들어도 인정하기 싫어할 거야. 그만큼 두려운 병이 암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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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 그런 것 같았다. 심지어 암인 게 분명해 보이기까지 했다. 눈언저리에 든 멍이며 살이 빠지는 것 하며. 그런데 의사는 암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이다.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아들이 미쳤다는 사실을 가장 나중에 인정하는 이는 부모고, 어머니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가장 나중에 인정하는 이는 자식이기 십상이다. 엄마는 평생 동안 암에 걸리지 않을까 두려워해 온 만큼 나와 내 동생은 엄마가 암에 걸릴 수 있다는 걸 믿지 않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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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엄마에게는 말씀을 드리지 못했단다. 말기암이라는 것을 환자에게 비밀로 해야 하는가, 솔직히 말해야 하는가는 오래 전부터 어려운 문제였던 것 같구나. 최근에는 환자에서 솔직히 이야기하고 치료를 해서 고치자고 희망을 주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 책이 쓰여진 시점에는 환자에게 숨기는 경우도 많았던 것 같구나. 보부아르도 어머니에게 숨겼어. 어머니에게는 그저 복막염이 발견되어 치료가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했단다. 그렇다고 병세가 나타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어머니는 병의 위중함이 커졌다 작아졌다는 반복하면서 몇 번의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오셨단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또 하나의 선택. 말기암이라서 죽음은 피할 수 없지만, 수술을 한다면 생명 연장을 할 수 있다는 의사의 말. 이 경우 수술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환자와 환자의 가족들은 의사의 소유물로 전락해 버린다고 지은이는 이야기하고 있단다. 수술을 거부할 경우 쏟아지는 비난을 어찌 감수할 것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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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사실이었다. 전문가들이 내린 진단과 예측, 그리고 결정을 무력하게 따를 수밖에 없는 우리로서는 악순환에 갇힌 셈이었다. 환자는 의사들의 소유물로 전락해 버렸다. 그러니 그들의 손아귀에서 환자를 빼내 와야 하지 않겠는가! 지난 수요일에는 수술과 안락사 중 양자택일을 해야만 했다. 당시로서는 굳어 가던 심장이 다시 힘차게 뛰게 되면 엄마가 장폐색증을 견디면서 지옥을 맛봐야 하는 처지에 놓일 게 뻔했다. 의상들이 안락사를 거부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지난 수요일 아침6시에 내가 그 자리에 있었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랬다고 해도 용기를 내서 N박사에게 그대로 돌아가시도록 어머니를 내버려두세요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내가 어머니를 괴롭히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면서 말하고자 했던 바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러나 N박사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아는 자 특유의 거만한 태도를 보이며 나를 냉대했다. 의사들은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어머니에게서 몇 년 더 사실 수 있는 기회를 빼앗은 셈입니다라고. 내가 엄마를 죽게 내버려 두라는 말을 하지 못한 것은 그래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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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고통스러워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의사의 수술에 대한 낙관적인 이야기를 듣고 결국 수술을 하기로 결정하였단다. 엄마는 여전히 복막염 때문에 수술하는 줄 아시고


2.

보부아르의 가족은 동생 푸페트가 있는데, 푸페트도 병원에 와서 둘이 함께 어머니 병상을 지킬 때도 있고, 번갈아 가면서 병상을 지킬 때도 있었단다. 병원 밖에 있을 때 임종이 다가왔다고 연락이 오고 병원에 가보면 다시 위기를 넘겨 안정을 취하고 계시는 어머니의 모습. 이런 것을 몇 번 경험하는 것은 가족들도 심한 스트레스일 거야. 죽음에 두려움과 이런 순간들의 괴로움이 교차하는 모순. 보부아르와 동생 푸페트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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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푸페트는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태로 지냈다. 나 역시 혈압이 높아 얼굴이 붉어진 상태다. 우리는 엄마가 임종 직전까지 갔다가 다시 회복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걸 보는 게 괴로웠다. 또한 그걸 지켜보면서 모순적 감정을 느끼는 우리의 처지로 인해 특히나 힘들었다. 고통과 죽음 사이에 경주가 벌어지는 가운데 우리는 죽음이 이기길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죽은 듯 잠든 엄마의 얼굴을 바라볼 때면, 우리는 시계를 매달아 둔 검은색 리본이 미미하게나마 움직이는지를 확인하게 위해 엄마가 입고 있는 하얀색 실내복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조심스레 관찰하곤 했다. 이게 마지막 경련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위가 쪼그라들 정도로 괴로워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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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을 통해 조금 더 늦춰진 엄마의 죽음. 지은이는 그 늦춰진 죽음에게 자신도 얻은 것이 있다고 이야기를 했단다. 수술을 하지 않아서 후회하는 괴로움을 없었다고자칫 수술을 하지 않았다면 죄책감에 괴로워 했을 거라고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경험하는 것은 이처럼 힘든 경험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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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137)

그러나 엄마의 죽음이 늦춰진 결과, 어떤 면에서 우리는 얻은 게 있었다. 그 덕분에 거의 후회하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소중한 누군가를 잃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수많은 후회 속에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그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독자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죽음을 계기로 그는, 자신의 부재로 인해 완전히 소멸하는 동시에 반대로 자신의 현존 덕분에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이 세계만큼이나 거대한 존재가 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는, 우리 삶에서 더 크고 많은 자리를 차지했어야 했던 존재, 극단적인 경우에는 우리 삶 전부에 해당하는 존재로까지 여겨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그가 다른 이들 중 한 사람에 불과한 존재라는 사실을, 정신을 잃을 전도로 아찔함을 자아내는 이 사실을 외면하고자 한다. 그러나 자신에게 스스로 부과한 한계-물론 한계의 범위를 정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테지만-내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로서는 누군가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기란 절대로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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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술을 통해 조금 늦춰진 엄마의 죽음은 얼마 못 가 현실이 되었단다. 보부아르는 병원 밖에 있어서 임종을 지키지 못했단다. 병원에 뒤늦게 도착한 보부아르는 엄마의 얼굴에 드리워진 죽음의 신만 보았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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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152)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사랑, 우정, 동료애가 죽음이 야기한 고독을 능가할 때가 있다. 하지만 겉에서 보는 것과 달리, 내가 엄마의 손을 잡고 있을 때조차 나는 엄마와 함께 있지 않았다. 엄마를 속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항상 속고만 살아온 엄마를 거짓말로 끝내 다시 한 번 속이고 있다는 사실이 끔찍했다. 엄마에게 폭력을 가하고 있는 운명과 공모한 셈이었다. 하지만 나는 죽음을 거부하고 죽음에 맞서 싸우던 엄마와 세포 구석구석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엄마의 패배로 나 역시 쓰러지고 말았다. 다른 사람이 임종하는 자리에는 세 번씩이나 참석했던 나는 정작 엄마의 임종은 지키지 못했다. 그런데도 나는 엄마의 머리맡에서 얼굴을 찡그리고 조소를 머금은 채 음산하게 춤을 추던 죽음의 신을 보았다. 한 손에 낫을 든 채로 문을 두드린다는, 밤새워 듣던 이야기에 나오는 그 죽음의 신을, 낯설고도 끔찍한 모습을 하고서 머나먼 다른 곳에서 찾아온다는 죽음의 신을 나는 보았다. 죽음의 신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입을 활짝 벌리고 턱뼈를 드러내며 웃던 엄마의 바로 그 얼굴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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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아주 편안한 죽음이라고 했지만, 지은이도 이야기한단다. 자연스러운 죽음은 없다고 말이야. 그래 맞아.. 편안한 죽음은 없어. 자신에게도…. 남겨진 이게도 말이야. 지은이가 이야기한 것처럼 죽음은 폭력일 뿐이야. 그것도 부당한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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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자연스러운 죽음은 없다. 인간에게 닥친 일 가운데 그 무엇도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 지금 이 순간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 이는 그 자체로 세상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하지만 각자에게 자신이 죽음은 하나의 사고다. 심지어 자신이 죽으리라는 걸 알고 이를 사실로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인간에게 죽음은 하나의 부당한 폭력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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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죽음에 관해 이런저런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었단다. 죽음은 두렵고 피하고 싶지만, 그 누구도 피할 것 없는 것. 그래서 누군가는 그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빠는 솔직히 말해 자신 없구나. 고통은 둘째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을 어찌 의연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PS:

책의 첫 문장: 1963 10 24일 목요일 오후 4시에 나는 로마에 있는 미네르바 호텔 방에 있었다.

책의 끝 문장: 하지만 각자에게 죽으리라는 걸 알고 이를 사실로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인간에게 죽음은 하나의 부당한 폭력에 해당한다.


나는 엄마를 말리는 데 애를 먹었다. 엄마는 베개에 몸을 기댄 채 내 눈을 바라보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보다시피 매가리가 풀린 게야. 너무 피곤하고 진이 다 빠져버렸어. 내가 늙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단다. 하지만 내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를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며칠이 지나면 일흔여덟이야. 완전히 늙어 버린 셈이지. 그러니 준비를 해야겠구나. 인생의 책장을 한 장 넘기려고 해."
- P22

엄마가 다른 이들에게 내 영혼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는 대신에 나를 조금 더 믿고 내게 마음을 더 써 줬더라면 우리 관계가 좀 더 좋을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엄마가 그러지 못했던 이유를 이제는 알겠다.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기에는 다른 사람들을 향한 복수심이 너무나 컸고, 치료해야 할 상처가 너무나 깊었던 까닭이다. 무언가를 할 때면 엄마는 늘 스스로를 포기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엄마가 감정을 느끼는 것조차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하물며 자신의 마음을 헤아리길 거부해 온 엄마가 어찌 나를 이해해 보려는 마음을 먹을 수 있었겠는가? 우리 사이가 나빠지지 않도록 태도를 꾸며 내는 데 있어서도 엄마는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상황과 맞닥뜨린 때면 엄마는 무척 당황하곤 했는데, 이는 이미 주어진 틀 안에서만 생각하고 행동하고 느끼도록 교육받은 탓이었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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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2-25 08: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연스럽고 편안한 죽음은 없겠죠? 마지막 문장이 너무 공감이 가네요~ 저도 죽음은 의연하게 받아들이긴 힘들거 같아요 ㅜㅜ

bookholic 2022-02-25 23:29   좋아요 0 | URL
네, 먼 일이라고 생각하고...
주말을 즐겁게 보내요~~~^^
 
















(35)

한쪽 성별의 안전과 유복함, 다른 성별의 궁핍과 불안전함을, 작가 정신에 전통이 주는 영향과 전통의 결핍이 주는 영향을 생각했습니다. 마침내 논의, 인상, 분개, 웃음이 얼룩진 하루의 구겨진 껍데기를 둘둘 말아 울타리에 던질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수한 별이 시퍼런 창공에서 번쩍거렸습니다. 헤아릴 길 없는 사회에서 달랑 혼자인 것 같았습니다. 모든 인간은 잠들었습니다. 엎드려서, 바로 누워서, 멍하니. 옥스브리지 거리에 아무 인기척도 없는 듯했습니다. 여관 문마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열렸습니다. 깨어 있다가 방까지 내게 불빛을 비춰 주는 사환 한 명 없었지요. 밤이 무척 깊었습니다.


(39)

여성들은 남성에 대한 책을 쓰지 않습니다. 안심하며 반길 수 없는 사실이었지요. 먼저 남성들이 여성에 대해 쓴 책들을 읽고 나서 여성들이 남성에 대해 쓴 책들을 읽어야 한다면, 백 년에 한 번 꽃을 피우는 알로에가 두 번은 피어야 내가 펜으로 종이에 쓸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열두어 권쯤 임의로 선택해 대출 신청서를 철망 쟁반에 올려놓고, 진리의 정유를 찾으려는 이들 속에서 자리에 앉아 기다렸습니다.


(56)

더구나 백 년 뒤에는 여성들이 보호받는 성인 시대는 끝날 거라고 내 집 문간에 도착하면서 생각했습니다. 필연적으로 여성들은 과거에 금기였던 모든 활동과 일에 참여할 겁니다. 보모는 석탄을 배달할 겁니다. 상점 여주인은 기관차를 운전하겠지요. 여성이 보호받는 성이었을 때 관찰된 사실들이 입각한 모든 가정은 불식될 겁니다.


(63)

가끔 엘리자베스나 메리 같은, 여왕이나 귀부인 같은 여성이 개인적으로 언급됩니다. 하지만 자기 소유라곤 두뇌와 개성밖에 없는 중산층 여성들은, 사학자의 역사관을 형성하는 어떤 주요 사건에도 참여할 길이 없습니다. 또 우린 일화 모음집에서도 여성을 찾지 못합니다. 오브리는 그녀를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회고록을 집필하지 않고 일기도 거의 쓰지 않아, 편지 뭉치만 남습니다. 우리가 평가할 수 있는 희곡이나 시를 남기지 않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정보 뭉치입니다.


(70)

바로 16세기에 큰 재능을 갖고 태어난 여성은 미치거나 총으로 자살하거나, 마을 밖 외딴집에서 반은 마녀로 반은 현자로 두려움과 조롱의 대상이 되어 생을 마쳤을 게 빤하다는 점입니다. 심리학 지식을 들먹이지 않아도 이건 확실합니다. 큰 재능을 가진 아가씨가 시재(詩才)를 발휘하려 했다면 남들이 좌절시키고 방해했을 겁니다. 그녀는 상충되는 본능들에 시달리고 갈기갈기 찢긴 나머지 심신의 건강에 큰 이상이 생겼을 겁니다.


(98)

여자들은 일반적으로 무척 차분하다고 여겨지지만, 여자들도 남자들과 똑같이 느낀다. 남자 형제들처럼 재능을 위해 훈련이 필요하고 노력할 마당이 필요하다. 여자들도 남자들처럼 지나치게 엄격한 규제에, 지나치게 답답한 침체에 시달린다. 더 혜택을 누리는 동료 인간들이 여자는 푸딩을 만들고 양말을 뜨개질하고, 피아노를 치고 가방에 수나 놓아야 된다고 말한다면 편협하다. 관습이 여성에게 필요하다고 공언한 것 이상을 하거나 배우려는 여자들을 비난하거나 비웃는 것은 경솔하다.


(103)

물론 대부분 소설들은 어딘가에서 실패합니다. 지독한 압박하에서 상상력이 휘청댑니다. 통찰력이 혼란을 겪고 더 이상 진실과 허위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더는 매 순간 다양한 능력이 요구되는 힘든 노동을 견지할 힘을 못 내지요. 이 모든 게 소설가의 성별과 얼마나 관련이 있을까요? <제인 에어>와 다른 책들을 보면서 궁금했습니다. 여성이란 사실이 어떤 식으로든 여성 작가의 진면목에 관여할까요? 내가 작가의 진수로 여기는 그 진면목에? 내가 <제인 에어>에서 인용했던 대목을 보면, 분노가 작가 샬럿 브론테의 진면목에 관여한 게 분명합니다. 그녀는 오롯이 전념해야 하는 이야기에 사적인 분노를 개입시켰습니다. 본인에게 적절한 경험이 부족했던 게 떠올랐지요. 자유롭게 세상을 유람하고 싶었으나 목사관에 박혀 양말이나 꿰매야 했으니까요. 사적인 분노로 상상은 빗나갔고 우린 그걸 느낍니다. 하지만 분노보다, 상상력을 잡아당겨 딴 길로 빠지도록 더 큰 영향을 미친 요소들이 있었습니다.


(154-155)

나는 여러분에게 책임을 기억하라, 더 숭고해지라, 더 영적이 되라고 당부해야 할 겁니다. 얼마나 많은 게 여러분에게 달려 있는지, 여러분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상기시켜야 마땅하겠지요. 하지만 그런 권고들은 안전하게 남성들에게 맡겨도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은 내가 구사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달변으로 조언할 테고 사실 그래 왔습니다. 내 마음을 뒤져 봐도, 동반자가 되고 평등해지고 세상이 더 고양된 목적을 갖도록 영향을 미치는 데 대한 고귀한 정서가 없네요. 나도 모르게 간단하고 지루하게 말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자기다워지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말이지요. 내가 고귀하게 들리게 말할 줄 안다면, 타인에게 영향을 미칠 꿈을 꾸지 말라고 말하겠습니다. 사물을 그 자체로 생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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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 로켓 가우디 프로젝트 변두리 로켓
이케이도 준 지음, 김은모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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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작년에 재미있게 읽은 이케이도 준의 <변두리 로켓> 시리즈 2번째 이야기, <변두리 로켓 가우디 프로젝트>를 읽었단다. 작년에 <변두리 로켓>을 읽고 나서, 우연히 오랜만에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친구를 만난 적이 있단다. 그 친구에게 아빠가 이 책을 추천해 주었단다.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사장과 그 회사에 다니는 연구원들의 삶과 애환을 담겨 있는 따뜻한 소설이라고 하면서, 그 친구에게 추천을 했는데 읽었는지 모르겠구나. 이번 2 <변두리 로켓 가우디 프로젝트>에도 사람 냄새 나는 회사 이야기가 있었단다. 재미도 좋아서 순삭해버렸단다.


1.

주인공 쓰쿠다가 운영하는 쓰쿠다제작소. <변두리 로켓>의 결말에서 해피엔딩으로 끝이 나서, 이제 탄탄대로만 갈 것 같았지만, 위기는 다시 찾아왔단다. 그 위기들을 어떻게 넘겨가는지 이야기해줄게.

니혼클라인이라는 대기업에서 의문의 의뢰가 들어왔단다. 어디에 쓰는지는 알려고 하지 말고, 설계도대로만 시제품을 만들어달라면서 했어. 그것도 적은 비용으로 의뢰가 들어왔단다. 쓰쿠다는 대기업 니혼클라인과 협업하면 나쁠 게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 적은 비용으로 시제품을 만들면 적자이기 때문에 망설이다가 시제품뿐만 아니라 나중에 양산까지 쓰쿠다제작소에서 한다는 조건으로 해당 프로젝트를 진행하겠다고 했단다.

쓰쿠다제작소에서 일하다가 더 공부한다고 그만 둔 마노라는 사람이 있는데, 마노가 다니는 아시아의과대학과 니혼클라인과 협업 프로젝트로 인공심장을 개발하는 일을 한다고 쓰쿠다에게 알려주었어. 그리고 쓰쿠다제작소에 의뢰한 것은 인공심장의 핵심 부품 중 하나인 소형밸브였단다. 쓰쿠다제작소에서 받아본 소형밸브의 설계도... 좀 이상하고 내구성도 보장이 안되어 보여서 인공심장에 쓰이기에 부적합하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설계변경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는데, 대기업에서 의뢰한 것을 자신들이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었어. 그래서 니혼클라인에서 요구한 조건에서 내구성까지 갖추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애를 썼지만, 개발 담당자들이 불만을 드러내는 것은 어쩔 수 없었어. 특히 개발을 이끌고 있는 나카자토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 어찌저찌하여 시제품을 완료해서 니혼클라인에 납품을 했는데, 뒤늦게 설계 변경 요청이 왔단다. 그것도 터무니없는 기간과 개발비용의 조건으로 말이야.

결국 쓰쿠다제작소는 그간 적자를 감수하고 그 제품 개발에서 손을 떼기로 했단다. 그런데 그 밸브를 니혼클라인에서 요구한 비용과 기간으로 개발하겠다고 하는 업체가 나타났어. 시나라는 사장이 경영하는 사야마제작소란 곳이야. 시나는 미국 나사 출신의 뒷배경이 빵빵한 그런 사람이었단다. 니혼클라인의 입장에서는 나사출신의 사장이 경영하는 회사에 더 신뢰를 보냈어. 경험은 보지 않고 말이야.

아시아의과대학에서 인공심장 개발의 총책임자는 기후네 교수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은 탐욕과 권력 욕심이 엄청난 사람이란다.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이 프로젝트를 맡게 된 거야. 그 기후네 교수 아래에서 앞서 이야기했던 마노가 같이 인공심장을 개발하고 있었던 거야. 마노는 니혼클라인이 쓰쿠다제작소를 대하는 것을 보고 비도덕적인 회사와 함께 일하기 싫다면서, 최근 연락 온 옛 스승님이 일하고 있는 후쿠이현의 호쿠리쿠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단다. 그 스승님의 이름은 이치무라 교수였는데, 원래 이치무라 교수도 아시아의과대학에서 일하고 있었고, 기후네 교수의 제자이기도 했어. 그런데 기후네 교수가 이치무라의 아이디어를 빼앗아 자기 것처럼 발표하는 것으로 보고, 그와 결별하여 지방에 있는 호쿠리쿠 대학으로 이전을 한 것이란다.

이치무라 교수는 그곳에서 인공 판막 개발을 하고 있었단다. 마노도 호쿠리쿠 대학에 와서 이 인공 판막 개발에 합류하게 된 것이란다. 이치무라 교수가 인공 판막을 개발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후네 교수는 그 기술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이치무라 교수에게 접근했는데, 이번에는 이치무라 교수가 거절을 했단다. , 그렇더니 기후네 교수의 치졸한 복수가 시작되었어. 이치무라 교수가 써낸 논문들을 너무 부적합이 되도록 뒤에서 힘을 썼던 거야. , 정말 치졸한 인간이로구나.


2.

며칠 뒤 마노가 쓰쿠다제작소를 찾아왔어. 인공 판막에 사용하는 원형틀을 쓰쿠다제작소에서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어. 의료제품에 사용하는 것이고 인공 판막이라는 생명과 직접적 영향을 주는 제품이라서, 나중에 의료사고가 발생할 경우 중소기업에서 그것에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하고 처음에는 제안을 거절할 생각이었단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의료복지사업이라는 좋은 의도의 사업을 그냥 외면하기 어려웠단다. 그래서 결국 한번 해보기로 했단다. 이번 개발의 리더로 지난 인공심장 개발의 리더였던 나카자토에게 다시 맡기려고 했어. 지난번에 중단된 프로젝트를 다시 만회해 보라고 말이야. 그런데 나카자토가 회사를 그만둔다는 거야. 그리고 경쟁업체인 사야마제작소를 스카우트를 받아서 가기로 했다고같이 일하던 사람들은 심한 배신감을 느꼈지만, 뭐 어쩔 수 없었지.

니혼클라인과 프로젝트가 깨진 지 얼마 안되어, 데이코쿠 중공업에서도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왔단다. 데이코쿠 중공업이라면 1권에서 인공위성 로켓을 같이 개발했던 대기업 아니던가. 성공적인 발사를 했으면 같이 일해야겠지만, 데이코쿠에서는 다음 버전은 수주가 아닌 경쟁입찰로 하겠다고 통보했단다. 당연히 수주라고 생각해서 원자재까지 다 놓았는데 이제 와서 경쟁 입찰이라니…. 횡포도 이런 횡포가 없구나. 그런데 그 경쟁 업체라는 곳이 알고 모니, 사야마제작소였단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했듯 사야마제작소의 사장 시나의 나사 출신이라는 소문이 여기에도 퍼져 있었다. 이미 다음 버전의 생산 업체는 사야마제작소로 내정되어 있고, 경쟁 입찰은 형식적인 것으로 보였어.

예상대로 사야마제작소는 데이코쿠 중공업의 신규 밸브 개발 입찰도 따는 분위기였어. 경쟁 입찰 시험 성적은 쓰쿠다제작소가 좋았지만, 사야마제작소로부터 로비를 받은 이가 사야마제작소의 사장 시나가 NASA 출신임을 강조하고 앞으로 발전성에서 사야마제작소와 손 잡는 것이 좋겠다고 했어. 기본에 충실한 쓰쿠다제작소는 이대로 무너지는가?


3.

쓰쿠다제작소를 퇴사하고 사야마제작소에 스카우트된 나카자토. 시제품을 만들었으나 계속 실패했어. 내구성이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였고, 그것은 시제품 제작 오차에 의한 것처럼 보였어. 그래서 담당자한테 이야기했더니, 그럴 리 없다고 큰 소리치면서 무조건 설계 문제라고 했단다. 쓰쿠다제작소와 다른 회사 분위기쓰쿠다제작소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다 같이 어디가 문제인지 확인해 봤을 텐데..

어찌저찌하여 사야마제작소에서 만든 인공심장의 첫 이식 수술. 그런데 인공심장을 이식한 환자가 얼마 안되어 위급상황이 벌어졌고, 당직 의사였던 사람이 심장 마사지를 하면서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단다. 인공심장은 기계로 되어 있어서 마사지를 하면 안되었거든. 결국 인공심장을 이식 받은 환자는 죽고 말았어. 니혼클라인과 사야마제작소에서는 제품에는 이상이 없었다. 당직의사가 실수로 조치를 잘못해서 환자가 죽고 말았다. 이렇게 발표를 했단다. 뭔가 붕괴의 냄새가정말 제품에 이상이 없었을까?

그런데 내부고발자가 나타났단다. 인공심장 이식 환자가 죽은 것은 인공심장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고 말이야. 인공심장에 대한 시험성적서의 데이터가 조작되었다고 했어. 그 근거 자료를 잡지사에 보내게 되어 언론에 보도되었단다. 사야마제작소는 큰 타격을 입었어. 다른 것도 아니고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제품인데 시험성적서를 거짓으로 만들다니. 이건 소설이지만 정말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정말 이렇게 조작된 시험성적서를 이용해서 제품을 출시하는 회사가 있을까. 망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되는구나. 사야마제작소가 이런 스캔들이 터지자 인공심장 공동 개발을 하던 니혼클라인과 아시아의과대학은 발 빠르게 발을 뺏어. 그리고 경쟁 입찰에서 사야마제작소의 손을 들어주었던 데이코쿠 중공업도 그들의 손을 뿌리치고, 다시 쓰쿠다제작소의 손을 잡았단다. 데이코쿠 중공업도 쓰쿠다제작소에 한 짓들을 보면 한번 당해야 하는데, 다시 손을 잡고 정리를 하다니데이코쿠 중공업에도 대부분 사야마제작소로 돌아섰지만 자이젠 같은 착한 사람이 쓰쿠다제작소를 계속 밀어주었으니 좀 봐주기로 하자. 다신 배신하지 말기를

그리고 쓰쿠다제작소와 호쿠리쿠 대학이 협업을 해오던 인공 판막은 성공적인 개발을 완료했단다. 여기까지가 변두리 로켓 가우디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란다. 줄여서 이야기한다고 마음 먹었는데, 문맥은 자주 끊기고 글만 길어지는 낭패가 발생했구나. 변두리 로켓은 4권까지 출간되었는데, 다음에 읽게 되면 또 이야기해줄게. , 졸립다.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봄바람에 초여름 기운이 섞인 4월 하순, 소규모 공장들이 밀집해 있는 오타구 가미이케다이에 위치한 직원 200명 규모의 중소기업 쓰쿠다제작소에 의뢰가 들어왔다.

책의 끝 문장: 기술자들의 싸움도 조용히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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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015년에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의약품 가격 스캔들이 발생했다. 62년 전에 출시된 약 가격이 갑자기 한 알에 736달러로 급등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전직 헤지펀드 매니저였던 마틴 슈크렐리는 튜링이라는 벤처 제약 회사를 설립하고 에이즈 치료제로 쓰이던 다라프림 판권을 사들인 뒤 한 알에 13.5달러이던 약값을 하루 만에 736달러로 올려버렸다. 환자 입장에서는 하루아침에 약값이 55배 상승한 것이다. 이 때문에 환자들은 생명 유지를 위해 연간 10만 달러에 달하는 약값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26-27)

제약 회사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 곤란하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위법행위를 밥 먹듯 자행하는 범죄 기업이다. 다국적 제약 회사가 되었든, 시골 장터의 약장수가 되었든 약장수는 약장수일 뿐이다. 조직적 힘과 자금을 동원해 경쟁 관계에 있는 비타민, 미네랄, 약초와 같은 자연치료 물질들을 음해한다. 의사와 교수들을 매수하고, 환자들에게는 허위 과장 광고를 한다. 제약 회사의 목적은 오로지 돈이다. 건강을 지키기는커녕 환자들을 해치고 상하게 하고 죽게 만들어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지금까지 보아온 바로는 그렇다. 그런 제약 회사에 의사도 매달리고 환자도 매달리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44)

그러나 불행하게도 통계자료들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의료 시스템은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 안전하지 않다. 미국에서 연간 의료 사고에 의한 사망자는 심혈관 질환과 암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2009년을 기점으로 미국에서 약물에 의한 사망자 수가 자동차 사고 사망자 수를 넘어섰다. 60% 이상이 약물 남용이 아닌 정식적인 진료를 통해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으로 사망한다.


(83)

진정한 보험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제공하는 의료보험이 아니라 제대로 된 식습관과 충분한 수면, 운동, 스트레스 관리를 잘하는 건강한 생활 습관이다. 적당한 운동과 스트레스 관리를 먼저 점검하는 것이 훨씬 더 확실한 보험이다. 1년에 한 번 하는 정기검진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먹는 음식이다.


(172-173)

수십 년간 잘못된 가이드라인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망가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콜레스트롤이 함유된 지방 섭취가 건강에 해롭다는 이유로 가공식품에서 지방이 줄어들고 그 자리를 과당이 메웠다. 지방 대신 맛을 내기 위해 가공된 과당의 사용이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은 지방보다 훨씬 파괴적인 역할을 한다. 그 결과, 지방간이 엄청나게 증가했다. 지방을 많이 먹어야 지방간이 생길 것 같은데, 당분이 지방간의 원인이라고 하니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 몸이 액상 과당이나 콘시럽 같은 가공 당을 처리하는 방법은 알코올()을 처리하는 방식과 같다. 일반 포도당은 몸의 모든 부위에서 처리되고 사용이 가능하지만, 과당은 전부 간으로 간다. 과당을 이동시키는 효소가 간에만 있기 때문이다. 즉 과당 처리를 많이 하면서 간은 무리를 하게 되고, 그래서 비알코올성 지방간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술도 안 마시는 지방간 환자들이 급증한 것이다. 물론 비만, 당뇨, 심장병 모두 함께 증가했다.


(180)

콜레스트롤 수치를 낮추기 위해선 결국 체내 염증 반응을 낮추는 것이 관건이다. 어렵다면 어렵고 쉽다면 쉬운 일이다. 생활 습관을 바꾸는 것은 기본이다. 올바른 음식과 충분한 수면, 스트레스 관리는 기본이다. 햇빛을 쬐는 것이 콜레스트롤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 햇빛을 쬘 때 생성되는 비타민 D가 콜레스트롤이기 때문이다. 의사 손에 달린 것이 아니라 환자 스스로의 노력에 달린 것들뿐이다.


(193)

그런데 조금만 아프면 왜 염증 반응이 생겼는지에 대한 고민 없이 약국에 가서 소염제를 사먹거나 병원에 가서 진통제를 처방받는 것이 일상이 돼버렸다. 불편한 증상을 빨리 없애는 것이 최고의 치료라고 생각하는 환자와 의료인이 만났기 때문이다.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항상 어떤 목적 아래 일어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를 보면 당장의 불편함을 없애주는 처치라도 해주어야 하는 것이 현재 의료인의 입장이다. 그러다 보니 증상에 대응하는 치료들, 즉 대증요법에서 끝나면 절대로 안 된다. 증상의 원인이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에 증상을 억누르는 치료 효과가 끝나는 동시에 더 큰 증상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결국 처음에는 한두 알의 약으로도 잘 듣던 증상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세 알 네 알, 나중에는 한 주먹의 약을 먹어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아주 곤란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206-207)

그런데 요즘은 싱겁게 먹어야 건강에 좋다고 알려져 있어 일부러 저염식을 한다. 특히 고혈압 환자들은 짜게 먹으면 절대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무조건 싱겁게 먹어야 건강에 좋다는 인식이 강하게 뿌리 박고 있다. 하지만 싱겁게 먹는 습관은 혈압을 낮추는 데 큰 도움이 되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위산만 약하게 만든다. 집안 내력으로 싱겁게 먹는 사람들은 대체로 위장이나 소화기가 건강하지 못하다. 기름진 음식을 먹으면 바로 설사하고 소화력도 약한 편이다.


(310)

또 의사로서 진정한 백신 전문가라면 강압적으로 백신 접종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논란이 될 만한 정보가 나왔을 때 백신의 부작용을 신속히 알아보고 환자 편에 서서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백신이 안전하니까 무조건 접종할 것을 강요하고 부작용에 대해 이야기해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세일즈맨이다. 하지만 백신에 대한 신뢰가 지나치다 보면 눈에 드러나는 뻔한 부작용도 간과하게 된다. 연구는 불충분하고 효과는 부풀려져 있는 탈 많은 일개 의약품에 불과한 백신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나은 백신 정책과 백신 스케줄을 요구할 수 있어야 전문가일 것이다.


(311)

하지만 WHO 같은 국제기구나 미국 식품의약국(FDA) 같은 보 건 당국 또는 백신을 지지하지 않는가? 많은 이들이 과대평가는 것이 FDA의 역량이다. FDA는 백신이나 신약을 검증할 만한 인적, 재정적 여유가 없다. FDA가 신약을 허가해주고 관리 감독하는 기관인 것은 맞지만, 제약 회사는 연구 결과를 제출하기만 하면 된다. 필요한 서류만 구비되면 행정적 절차를 거쳐 신약 허가가 나온다. 연구가 미비하면 FDA가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연구해오라고 지시할 뿐이다. 마치 미국 이민국의 업무와 비슷하다. 영주권을 신청하는 데 서류가 미비하면 빠꾸를 맞지만, 서류만 잘 갖춰지면 별문제 없이 영주권이 나오는 것과 비슷한 구조다.


(331)

백신 강제 접종을 찬양하는 이들은 개인의 선택이 타인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으므로 개인의 상황이나 선택에 상관없이 누구나 접종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강제 접종을 거부하는 이들은 본인들의 선택이 이론적으로 미래에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머무르지만, 강제 접종 명령에 따를 경우 즉각적으로 영향을 받는다면 반박할 것이다. 백신이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점에 대해 서로 합의할 수 없는 것처럼, 백신이 없으면 반드시 질병이 확산된다는 점도 서로 합의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미 오랜 기간 끝없이 이어져온 쟁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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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 우리의 직관 너머 물리학의 눈으로 본 우주의 시간
카를로 로벨리 지음, 이중원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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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한 해 한 해 지나면서, 시간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는 것 같구나. 아인슈타인이 이야기한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중력의 크기에 따라서 시간의 속도가 다르게 간다고 하지만, 그것보다 우리가 살아온 세월의 크기에 따라서 시간의 속도가 더 차이 나게 가는 것 같구나. 그렇게 시간이 휙휙 지나가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는 새해, 아빠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는 책이 눈에 들어왔단다. 세상 많은 사람들이 시간은 빨리 흘러간다고 하는데,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니영화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를 제목으로 달다니

책을 주문할 때는 책 값이 비싸서 꽤나 두꺼운 책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무적 작고 얇더구나. 그런데 왜 이리 비싸게 받는 거야? 양장 때문인가? 지은이가 인세를 많이 줄 만큼 유명한 사람인가? 지은이는 카를로 로벨리라는 분으로 아빠는 처음 알게 된 작가이나, 이미 많은 과학 교양서로 유명한 사람이라고 하는구나. 이론 물리학자이자 양자 이론과 중력 이론을 결합한 루프양자중력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사람이래.

양자 이론은 미시적인 세계, 중력 이론은 거시적인 세계. 각각 다른 물리 법칙이 작동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 두 세계를 모두 설명할 수 있는 물리 법칙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연구하는 많은 과학자들이 있단다. 카를로 로벨리 님이 만들어낸 개념인 루프양자중력이라는 말에 양자라는 말도 있고, 중력이라는 말도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분도 미시 세계와 거시 세계를 공통적으로 설명하는 물리 법칙을 찾아내려고 공부하시는 분인가 보구나.

그런데 그런 중력과 양자역학의 공통 접점을 연구하시는 분이 왜 시간을 흐리지 않는다고 주장을 하셨을까.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면, 시계 초침이 흘러가는 것은 시간이 아니고 무엇일까.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시간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새해에 시간이 천천히 가라는 생각으로 이 책을 펼쳐 들었다. 그런데 아빠의 바람도 무색하게 벌써 2월도 중반이 넘어가 버렸구나.


1.

그런데, 이 책은…. 어렵다.

아빠와 같은 사람이 읽기에는 참 버거운 책이었단다. 1부에서 나오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의해 시간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는 부분은 그래도 읽을 만했단다. 아인슈타인 전까지 시간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절대 변하지 않는 것 말이야.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그런 개념을 산산이 깨트렸고, 이론이었던 그의 상대성 이론이 실제로 증명이 되면서 진리가 되었단다. 중력과 속도의 크기에 따라 시간의 흐름은 변한다는 것이 핵심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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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시계만 느리게 가는 것이 아니다. 아래쪽에서는 모든 과정이 더 느리다. 나이가 같은 두 친구가 있는데, 한 명은 평지에 살고 다른 한 명은 산에 산다고 해보자. 수년이 지난 뒤 두 사람이 만나면, 평지에서 산 친구는 살아온 시간이 더 짧아서 덜 늙어 있다. 이 친구의 집에 걸린 뻐꾸기시계는 덜 진동했고, 볼일을 볼 시간도 적었으며, 집에서 기르는 식물도 덜 자랐다. 또한 이 친구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시간도 적었다. 아래쪽은 위쪽보다 시간이 적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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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시간은 일정하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어. 그리고 우주를 시각을 확장시키면 같은 시간대 같은 공간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단다. 1광년 떨어진 곳에 별이 있다면 그 별에 일어나는 일을 우리가 지금관측한다면, 그 별은 이미 1년 전에 일어난 일을 보게 되는 것이거든이렇듯 시간이라는 것은 우리 사람들이 만들어낸 환상이라는 거야. 그렇다면 과거, 현재, 미래는 무엇이란 말인가. 지은이는 그것을 그것은 사건들의 네트워크라고 설명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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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108)

반면, 세상이 사건의 네트워크라고 생각하면 작동한다. 아주 간단한 사건이든 아주 복잡한 사건이든 더 단순한 사건들의 조합으로 분해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쟁은 사물이 아니라 사건들의 총체이다. 폭풍우도 사물이 아니라 돌발적인 사건들의 집합이다. 산 위의 구름도 사물이 아니다. 공기 중의 습기가 응결된 것을 바람이 산으로 이동시킨 것이다. 파도도 사물이 아니라 물이 움직이는 것이고, 이 물은 언제나 다른 모양을 만든다. 가족도 사물이 아니라 관계와 사건, 느낌의 총체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떨까? 당연히 사물이 아니다. 산 위에 결린 구름처럼 음식, 정보, , 언어를 비롯한 수많은 것들이 들어가고 나오는 복잡한 프로세스다. 사회적 관계의 네트워크 속에, 화학적 프로세스의 네트워크 속에, 자신과 비슷한 타인들과 교환한 감정의 네트워크 속에 있는 수많은 매듭들이 인간 안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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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건의 네트워크를 설명할 수 있는 과학 이론은 바로 열역학 제 2법칙이란다. 열역학 제 2법칙은 너희들도 나중에 학교에서 배우게 될 거야. 쉽게 이야기하면 열이란 것은 높은 온도에서 낮은 온도로 이동하지 못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데, 이것은 사건의 흐름은 엔트로피는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만 흐르게 된다는 법칙이란다. 엔트로피라는 것은 무질서한 정도라고 하는데, 모든 물질은 무질서한 정도로 변하려고 하는 성질, 그것이 바로 열역학 제 2법칙인 것이란다. 사실 우리 거실이라 너희들 방도 누군가 치우지 않으면 점점 지저분해지게 되니, 열역학 제 2법칙을 완벽하게 따르고 있는 것이란다.^^

그럼 다시 과거, 현재, 미래의 정체를 알아보자꾸나.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은 사실은 엔트로피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흘러가는 것을 숫자로 나타낸 것이야. 과거는 엔트로피가 낮고, 미래는 엔트로피가 높은 것이지. 엔트로피가 낮고 높은 곳으로 흐르는 것이 사건의 네트워크로 엮이게 되는 것이고생물체들이 태어나서 자라고 늙어가고 죽는 것도 시간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엔트로피가 그렇게 만들어 놓는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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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생명체도 유사하게 상호 뒤얽힌 과정들로 구성되어 있다. 광합성은 태양으로부터 받은 낮은 엔트로피가 식물에 쌓이는 과정이다. 동물은 음식을 섭취하는 방식으로 낮은 엔트로피를 먹고 산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엔트로피가 아니라 모두 에너지라면, 우리는 음식을 먹지 않고 사하라 사막의 뜨거운 열기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할 것이다.) 살아 있는 모든 세포 내부는 복잡한 화학 공정들의 네트워크로서 낮은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문을 여닫는 구조물이다. 분자들은 촉매처럼 공정들의 얽힘을 촉진하거나, 반대로 억제하기도 한다. 각각의 모든 공정에서 엔트로피의 증가는 모든 작용을 가능하게 한다. 생명은 서로 촉매작용을 하는,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과정들의 네트워크다. 간혹 생명이 특별히 질서화된 구조들을 만들어낸다거나, 국소적인 영역에서 엔트로피를 감소시킨다고 흔히 말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그저 낮은 엔트로피의 음식을 분해하고 소비하는 과정일 뿐이다. 나머지 우주에 존재하는 스스로 구조화된 무질서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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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뒤로 갈수록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구나. 분명 한글로 되어 있는데, 이해하기 쉽지 않은 글들. 이렇게 엔트로피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이동하는 이유를 양자역학까지 끌어들여 설명하게 된단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지은이가 연구하는 학문이 중력 이론과 양자 이론을 합친 루프양자중력을 연구하는 사람이잖니이런 엔트로피의 단방향 흐름도 양자의 불확실성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라고 아빠는 대충 이해를 했단다. 잘못 이해했다는 해도 문제될 것 없고, 자세한 내용은 이해하지 못해도, 뭐 어쩔 수 없고….

….

마지막으로 지은이가 바라보는 죽음의 독특한 시각에 대해 소개해 볼게. 사람을 비롯하여 많은 동물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진화의 오류라고 설명했단다. 그런데 진화의 오류든 아니든 죽음이라는 것은 본능적으로 피하고 싶고 두려운 것이니. 엔트로피 무질서의 최고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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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내가 보기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진화의 오류다. 수많은 동물들이 포식자가 다가오면 본능적으로 두려워하며 도망친다.. 그것이 건강한 반응이고 그래야 위험에서 도망칠 수 있다. 하지만 잠깐 동안의 두려움일 뿐 계속되지는 않는다. 이 두려움 덕분에 유인원이 탄생했다. 미래를 예상하는 능력은 분명 도움이 되는 특권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때문에 우리 유인원은 피할 수 없는 죽음에 직면해야 한다. 물론 두려움의 본능을 일깨워 포식자로부터 도망치게 해주기는 한다. 나는 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두 가지 진화의 압박에 의한 우발적이고 어리석은 간섭이자, 우리 뇌 속에서 발생한 잘못된 자동 회로 연결의 산물일 뿐 특별히 유용하다거나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일정한 기한이 있다. 인류도 마찬가지다.

=======================


2.

시간이 환상이더라도 거의 같은 시간대를 살고 있는 지구의 모든 사람들이 잘 살아가려면 시간은 꼭 필요하단다. 그래야 약속을 정한 시간에 친구들을 만날 수 있고, 내가 원하는 시간에 기차나 버스도 탈 수 있고 말이야. 그렇게 보면 시간에 종속되어 살아가고 있는 모습에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두메 산골에서 시계 없이 사는 것이 아니라면, 시간은 꼭 필요한 것 같구나. 현재 시간 밤 11 35. 시간이 없다면 도대체 지금이 어느 정도 깊은 밤인지 잘 몰랐을 것 같구나. 이런 금방 또 시간이


PS:

책의 첫 문장: 가만히 멈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책의 끝 문장: 이것이 시간이다.


이것이 시간이다. 친숙하고 은밀하다. 시간이라는 도둑은 우리를 끌고 간다. 1초, 1분, 1시간, 1년의 쏜살 같은 흐름이 우리를 삶 속으로 밀어넣었다가 나중에는 아무것도 없는 무(無)로 끌고 간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사는 것처럼 우리는 시간 곳에서 산다. 우리 존재는 시간 속에 존재한다. 시간의 애가(哀歌)는 우리의 영양분이 되고, 우리에게 세상을 열어주며,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한편, 편안한 요람이 되어주기도 한다. 세상은 시간의 순서에 따라, 시간이 이끌어가는 일들을 펼쳐나간다. - P7

즉, 시간은 첫 번째 층인 유일함을 상실했다. 모든 장소의 시간은 다른 리듬과 속도를 갖는다. 다양한 리듬의 춤 속에서 세계의 사건들이 얽힌다. 세상이 춤추는 생명의 여신으로부터 지배를 받는다면 최소한 만 명의 여신이 있어야 할 테고, 그 여신들의 춤은 마티스의 그림처럼 거대한 군무로 펼쳐질 것이다. - P26

현재가 아무 의미 없다면 우주에는 무엇이 ‘존재’할까? ‘존재’하는 것이 ‘현재 속에’ 있는 것 아닌가? 우주가 어떤 특별한 구성으로 ‘지금’ 존재하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한다는 생각은 이제 더는 타당하지 않다. - P65

뉴턴의 시간은 우리 감각의 증거물이 아니라 우아한 지적 산물인 것이다. 교육받은 여러분에게 사물과 관련이 없는 뉴턴의 시간이란 존재가 단순하고 자연스러워 보인다면, 그 이유는 여러분이 학교에서 이 시간을 접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조금씩, 알게 모르게 시간에 대해 이런 방식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전 세계 교과서들은 시간을 공통적으로 생각하도록 기타의 개념들을 걸러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교육을 바탕으로 시간에 대한 직관을 만들었다. 지금은 사물이나 사물의 움직임과 별개인 균일한 시간의 존재가 자연스러워 보일 수 있지만, 고대의 인류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 P76

관점의 역할을 고려한다면 우리가 본 수많은 것들은 이해될 수 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이해할 수 없는 채도 남는다. 어떤 경험을 하든 우리는 이 세상 안에서 마음과 뇌, 공간의 어느 지점, 시간의 어느 순간 안에 있다. 세상 속에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이 시간에 관한 우리의 경험을 이해하는 데 근본적이다. 우리는 ‘외부에서 본’ 세계의 시간 구조와 우리가 보는 세상의 측면, 즉 우리가 세상 안에 세상의 일부로 존재함에 따라 달라지는 세상의 측면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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