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한쪽 성별의 안전과 유복함, 다른 성별의 궁핍과
불안전함을, 작가 정신에 전통이 주는 영향과 전통의 결핍이 주는 영향을 생각했습니다. 마침내 논의, 인상, 분개, 웃음이 얼룩진 하루의 구겨진 껍데기를 둘둘 말아 울타리에 던질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수한 별이 시퍼런 창공에서 번쩍거렸습니다. 헤아릴 길 없는 사회에서
달랑 혼자인 것 같았습니다. 모든 인간은 잠들었습니다. 엎드려서, 바로 누워서, 멍하니. 옥스브리지
거리에 아무 인기척도 없는 듯했습니다. 여관 문마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열렸습니다. 깨어 있다가 방까지 내게 불빛을 비춰 주는 사환 한 명 없었지요. 밤이
무척 깊었습니다.
(39)
여성들은 남성에 대한 책을 쓰지 않습니다. 안심하며
반길 수 없는 사실이었지요. 먼저 남성들이 여성에 대해 쓴 책들을 읽고 나서 여성들이 남성에 대해 쓴
책들을 읽어야 한다면, 백 년에 한 번 꽃을 피우는 알로에가 두 번은 피어야 내가 펜으로 종이에 쓸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열두어 권쯤 임의로 선택해 대출 신청서를 철망 쟁반에 올려놓고, 진리의 정유를 찾으려는 이들 속에서 자리에 앉아 기다렸습니다.
(56)
더구나 백 년 뒤에는 여성들이 보호받는 성인 시대는 끝날 거라고 내 집 문간에 도착하면서 생각했습니다. 필연적으로 여성들은 과거에 금기였던 모든 활동과 일에 참여할 겁니다. 보모는
석탄을 배달할 겁니다. 상점 여주인은 기관차를 운전하겠지요. 여성이
보호받는 성이었을 때 관찰된 사실들이 입각한 모든 가정은 불식될 겁니다.
(63)
가끔 엘리자베스나 메리 같은, 여왕이나 귀부인 같은
여성이 개인적으로 언급됩니다. 하지만 자기 소유라곤 두뇌와 개성밖에 없는 중산층 여성들은, 사학자의 역사관을 형성하는 어떤 주요 사건에도 참여할 길이 없습니다. 또
우린 일화 모음집에서도 여성을 찾지 못합니다. 오브리는 그녀를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회고록을 집필하지 않고 일기도 거의 쓰지 않아, 편지 뭉치만
남습니다. 우리가 평가할 수 있는 희곡이나 시를 남기지 않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정보 뭉치입니다.
(70)
바로 16세기에 큰 재능을 갖고 태어난 여성은 미치거나
총으로 자살하거나, 마을 밖 외딴집에서 반은 마녀로 반은 현자로 두려움과 조롱의 대상이 되어 생을 마쳤을
게 빤하다는 점입니다. 심리학 지식을 들먹이지 않아도 이건 확실합니다.
큰 재능을 가진 아가씨가 시재(詩才)를 발휘하려
했다면 남들이 좌절시키고 방해했을 겁니다. 그녀는 상충되는 본능들에 시달리고 갈기갈기 찢긴 나머지 심신의
건강에 큰 이상이 생겼을 겁니다.
(98)
여자들은 일반적으로 무척 차분하다고 여겨지지만, 여자들도
남자들과 똑같이 느낀다. 남자 형제들처럼 재능을 위해 훈련이 필요하고 노력할 마당이 필요하다. 여자들도 남자들처럼 지나치게 엄격한 규제에, 지나치게 답답한 침체에
시달린다. 더 혜택을 누리는 동료 인간들이 여자는 푸딩을 만들고 양말을 뜨개질하고, 피아노를 치고 가방에 수나 놓아야 된다고 말한다면 편협하다. 관습이
여성에게 필요하다고 공언한 것 이상을 하거나 배우려는 여자들을 비난하거나 비웃는 것은 경솔하다.
(103)
물론 대부분 소설들은 어딘가에서 실패합니다. 지독한
압박하에서 상상력이 휘청댑니다. 통찰력이 혼란을 겪고 더 이상 진실과 허위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더는 매 순간 다양한 능력이 요구되는 힘든 노동을 견지할 힘을 못 내지요. 이
모든 게 소설가의 성별과 얼마나 관련이 있을까요? <제인 에어>와
다른 책들을 보면서 궁금했습니다. 여성이란 사실이 어떤 식으로든 여성 작가의 진면목에 관여할까요? 내가 작가의 진수로 여기는 그 진면목에? 내가 <제인 에어>에서 인용했던 대목을 보면, 분노가 작가 샬럿 브론테의 진면목에 관여한 게 분명합니다. 그녀는
오롯이 전념해야 하는 이야기에 사적인 분노를 개입시켰습니다. 본인에게 적절한 경험이 부족했던 게 떠올랐지요. 자유롭게 세상을 유람하고 싶었으나 목사관에 박혀 양말이나 꿰매야 했으니까요.
사적인 분노로 상상은 빗나갔고 우린 그걸 느낍니다. 하지만 분노보다, 상상력을 잡아당겨 딴 길로 빠지도록 더 큰 영향을 미친 요소들이 있었습니다.
(154-155)
나는 여러분에게 책임을 기억하라, 더 숭고해지라, 더 영적이 되라고 당부해야 할 겁니다. 얼마나 많은 게 여러분에게
달려 있는지, 여러분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상기시켜야 마땅하겠지요. 하지만 그런 권고들은 안전하게 남성들에게 맡겨도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은 내가 구사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달변으로 조언할 테고 사실 그래 왔습니다. 내
마음을 뒤져 봐도, 동반자가 되고 평등해지고 세상이 더 고양된 목적을 갖도록 영향을 미치는 데 대한
고귀한 정서가 없네요. 나도 모르게 간단하고 지루하게 말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자기다워지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말이지요. 내가 고귀하게 들리게 말할 줄 안다면, 타인에게 영향을 미칠 꿈을 꾸지 말라고 말하겠습니다. 사물을 그
자체로 생각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