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303)

사람이든 사랑이든 어떤 이념이든 무엇에도 종속되지 않는 것, 진실을 믿지 않고 진실을 안다는 것의 유용성도 믿지 않으며 초연한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늘 사고하며 사는, 내면이 지성적인 자가 갖춰야 할 바른 자세라고 본다. 어딘가에 소속되며 평범해진다. 신념, 이상, 여인, 직업 이 모든 것이 감옥이고 족쇄다. 존재는 자유로운 것이다. 야망도 우리가 그로 인해 자부심을 갖는다면 한낱 짐일 뿐이다. 그것이 우리를 끌어당기는 밧줄임을 안다면 야망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안 된다. 심지어 우리 자신에게도 묶이지 말 것! 다른 이들로부터 자유로운 것처럼 우리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명상하되 황홀경에 빠지지 말고, 생각하되 결론을 구하지 말자. 우리가 신으로부터 자유롭다면, 감옥 마당에서 간수가 잠시 한눈을 파는 바람에 생긴 이 짧은 휴식 시간의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내일은 사형이 집행될 것이다. 내일이 아니라면 그 다음날에 집행될 것이다. 계획하고 추구했던 것을 의도적으로 잊어버리고, 종말이 오기 전에 햇볕 아래서 거닐자. 태양이 우리의 주름살 없는 이마를 금빛으로 물들이고, 바람은 기대를 접은 자에게 시원하게 불어오리라.

(310)

나를 찾는 순간 나는 나를 잃어버렸고, 내가 찾아낸 것은 의심스러우며, 내가 얻었던 것은 이미 내게 없다. 나는 길을 걷듯 잠을 자지만 사실은 깨어 있다. 나는 잠을 자듯 깨어 있고, 나는 내게 속해 있지 않다. 결국 삶이란 근본적으로 거대한 불면이고,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의식이 또렷한 인사불성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323)

생각하는 것은 여전히 행동의 한 형태다. 절대적인 백일몽 상태에서, 끼어드는 어떠한 움직임도 없이, 마침내 우리 자신의 의식조차 진창에 빠져 미지근하고 축축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에야 비로소 완전히 포기하게 된다.

(327)

우리는 서로를 모르기 때문에 어울려 살 수 있다. 낭만주의자들이 그 말의 위험을 모른 채 하는 말처럼, 만일 수많은 행복한 부부들이 상대방의 영혼을 들여다보고 서로를 정말로 이해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모든 결혼은 다 잘못된 결혼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마음 한구석에 있는 악마의 영역인 비밀스러운 장소에 간직된 남성상과 여성상은 배우자가 구현할 수 없고 상대를 만족시킬 수도 없는 이상형이자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가장 행복한 이들은 자신의 좌절된 욕구를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 때로 불의의 습격이나 퉁명스러운 모욕으로 인해, 그들 안에 숨겨진 있던 악마, 고대의 이브, 기사와 요정 등이 행동과 언어의 표면으로 떠오른다.

(334)

예술의 역할은 우리가 느끼는 바를 타인들도 느끼게 하는 것, 우리의 개별성을 제공하여 이를 통해 타인들이 스스로에게서 해방되도록 하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것의 진정한 실체는 절대로 전달될 수 없고, 나의 느낌이 심오할수록 소통은 더욱 불가능해진다. 그러므로 내가 느낀 것을 타인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나의 감정을 그들의 언어로 번역해야 한다. 즉 그들이 읽었을 때 내가 느낀 바를 정확히 느낄 수 있도록 글을 써야 하는 것이다. 예술의 정의에 따르면 여기서 타인이란 특정한 이 사람마다 저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뜻한다. 결국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내 느낌의 진정한 본질을 다소 왜곡하더라도 나의 감정을 전형적인 인간 감정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343)

여행은 독서와 같고, 독서는 다른 모든 것과 같다…… 나는 고전과 현대물이 고요히 공존하는 박학다식한 삶을 꿈꾼다. 그 삶에서 나는 다른 이들의 감정을 통해 내 감정을 새롭게 할 수 있고 명상하는 이들과 대체로 생각만 했던 자들, 대부분의 작가들이 그러한데, 그들 사이의 모순에 기반한 사고로 나 자신을 채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독서에 대한 이러한 꿈은 책상 위에서 책을 한 권 집어들자마자 사라져버리고, 책을 읽는 실제 행위는 읽고 싶다는 모든 욕구를 없앤다…… 마찬가지로 어쩌다 기차역이나 항구 같은 출발지에 가까이 가는 순간, 여행에 대한 모든 상상은 창백하게 시들어버린다. 그리고 나에게 가장 확실한 두 가지, 나처럼 아무 가치 없는 두 가지로 돌아온다. 바로 아무도 모르는 나그네 같은 나의 일상, 그리고 잠들지 못한 자의 불면증 같은 나의 꿈이다.

(348)

사랑과 잠, 마약과 술은 예술의 기본 형태와 다름없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예술과 같은 효과를 낸다. 하지만 사랑과 잠과 마약에는 환멸이 따른다. 사랑은 우리를 지치게 하고 실망을 준다. 잠을 자면 깨어나야 하고, 또 자는 동안은 사는 게 아니다. 마약을 복용하면 자극을 얻는 데 사용한 육신이 손상을 입는 대가를 치른다. 그러나 예술에는 환멸이 따르지 않는데, 예술은 처음부터 환상을 인정하고 들어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술로부터 깨어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예술 안에서 우리는 자는 게 아니라 꿈꾸기 때문이다. 예술을 향유했다고 내야 하는 세금이나 요금은 없다.

(361)

자유란 고립을 견디는 능력이다.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살 수 있다면, 즉 돈이나 친교, 또는 사랑이나 명예, 호기심 등, 조용히 혼자서 만족시킬 수 없는 욕구들을 해결하려고 다른 사람들을 찾지 않을 수 있다면, 당신은 자유롭다. 만일 혼자 살 수 없다면 당신은 노예로 태어난 사람이다. 아무리 고귀한 영혼과 정신을 갖고 있다 해도 혼자 살 수 없다면 당신은 귀족적인 노예, 지적인 노예일 뿐이고 결코 자유롭지 못한다. 그렇게 태어났다면 당신의 비극이 아니라 운명자체의 비극이다. 하지만 삶이 당신에게 노예가 되도록 강요한다면 당신은 불운하다. 이 경우 비극은 당신 것이고, 당신을 따라 다닌다.

(364)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나 자신을 분명히 의식하면서 삶에 충실하다가도 때로는 의구심이라는 이상한 감정이 엄습한다. 내가 과연 존재하는지, 혹시 내가 누군가의 꿈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아닌지 궁금해진다. 나는 사실 어느 소설 속 인물이고 문체의 긴 파동을 타고 복합적으로 서술된 이야기 속 현실 안에서 움직이는지도 모른다고, 꽤 구체적으로 상상해본다.

(369)

삶과 멀리 거리를 두고 기대앉아 있노라면, 내가 결코 쓸 수 없을 문장들이 무기력한 나에게 들려오고, 결코 묘사할 수 없을 풍경들이 나의 명상 속에서 명료하게 표현된다. 모든 단어가 제자리에 들어 있는 완벽한 문장을 짓고, 정밀한 희곡의 줄거리가 마음속에 전개되고, 모든 단어들 속에서 위대한 시를 구성하는 어휘와 운율을 느끼며, 끝없는 열정이 보이지 않는 노예처럼 그림자 속에서 나를 따라다닌다. 그러나 이 모든 감각이 내 몸에서 활동을 개시하기 직전인 상태로 앉아있던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글을 쓰기 위해 책상에 앉는 순간, 단어들은 달아나고 희곡도 죽어버리고 율동적인 속삭임을 하나로 모으던 살아있는 결합 관계도 사라져버린다. 그 자리엔 아득한 그리움, 머나먼 산 위를 비추던 햇빛의 자취, 황량한 변두리의 나뭇잎을 날리는 바람, 결코 밝혀지지 않은 친족 관계, 타인들이 즐기는 난잡한 잔치, 언젠가 우리를 뒤돌아봐줄 것 같지만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여인만이 남는다.

(390)

내 영혼은 비밀스러운 오케스트라다. 내 안에서 어떤 악기가 연주되고 울리는지, 현악기인지 하프인지 심벌즈인지 북인지 모른다. 나는 나 자신이 교향곡 같다는 것만 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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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의 화가들, 근대를 거닐다 : 북촌편 경성의 화가들, 근대를 거닐다
황정수 지음 / 푸른역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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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그림을 볼 줄은 모르지만, 화가나 그림 속에 깃든 이야기를 읽는 것은 좋아하는 편이란다. 그래서 인터넷 서점에 우연히 알게 된 <경성의 화가들, 근대를 거닐다 북촌 편>이라는 책을 구입했었단다. 언제 산 것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두어 해는 된 것 같구나. 다른 책에 우선 순위가 밀리다가 이번에 우연히 눈에 맞아 읽게 되었단다. 원래 책 제목이 <경성의 화가들, 근대를 거닐다>에서 끝나는 줄 알았는데, 조그맣게 북촌 편이 붙어 있더구나. 그래서 인터넷 서점을 검색해 보니 <경성의 화가들, 근대를 거닐다 서촌 편>도 있더구나.

이제 북촌이라고 하면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즐겨 찾는 관광지란다. 우리나라의 옛 건물들과 멀리 보이는 초고층 건물들이 잘 어우러진 배경으로 사진들을 많이 찍곤 한단다. 원래 조선시대 북촌에는 부촌들이 살았고, 그들은 광통교 근처의 많은 서화 가게에서 그림들을 샀다고 하는구나. 그러다가 일제 시대 넘어오면서 서화 가게들의 중심이 인사동으로 바뀌게 되었대. 오늘날 인사동도 서울의 주요 관광지 중에 하나인데, 그 탄생은 일제시대 행정 통폐합에 의한 것이라고 하는구나. 관인방의 과 대사동의 를 따서 인사동이라고 했다는구나. 그렇게 과거 북촌에는 화가들의 후원자들이 많이 살았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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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2)

도화서 화원들은 궁궐 외에 주문을 받곤 했던 양반 고객들은 대부분 북촌(北村))’에 살았다. 당시 북촌은 벌열 양반과 왕의 인척들이 사는 조선조 최고의 부촌이었다. 화원들의 후원자가 될 만한 사람들은 대부분 북촌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화원 입장에서는 궁에서 멀지 않고, 부수 입을 올릴 수 있는 서화 가게들이 있는 광통교 근처이고, 자신들의 후원자가 사는 북촌에서도 멀지 않은 지역이 가장 살기 좋은 곳이었다. 이 세 곳이 모두 연결되는 중심부가 지금의 인사동 지역이었다. 이러한 입지는 후에 인사동이 서화와 전전(典籍), 고미술 거래의 중심지가 되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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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북촌에서 활동하던, 특히 서울을 경성으로 부르던 시기인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화가들의 이야기들이 실려 있단다.

 

1.

아빠는 조선 말부터 일제시대를 거쳐 해방 전후에 우리나라에 그렇게 많은 화가들이 있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고, 조금은 놀랬단다. 그들의 작품들이 책에 실려 있었는데, 그림에 대해 잘 모르는 아빠이지만, 모두 범상치 않은 그림들이었단다.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문화강국의 저력은 여전했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들이 시대를 잘 만났다면 더 많은 훌륭한 작품들을 남겼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들이 살았던 시절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사의 최악의 시절이었단다. 일제 강점기, 광복 후 남북으로 나뉘고, 또 처참한 전쟁에 이르기까지살아남는 것에 신경을 써도 모자랄 판에, 미술에 대한 그들의 열정은 식을 수 없었단다.

하지만어떤 화가들은 미술에 재능이 있지만 나라의 독립이 중요하다면서, 미술을 관두고 독립운동에 헌신한 이들이 있었고, 어떤 화가들은 뛰어난 재능이 있었지만, 친일 활동으로 인해 그 재능을 인정 받지 못한 이들도 있었고, 또 어떤 화가들은 훌륭한 재능이 있었지만, 광복 후 자신이 믿는 사상에 따라 북으로 가서 남한에서는 잊혀진 이들도 있었단다. 이렇듯 그 시대를 사는 화가들은 시대와 싸워야 했단다. 이 책에 소개된 화가들은 대부분 처음 들어보는 이름들이었단다. 그리고 작은 꼭지로 소개해 주어 읽은 지 두어 주 되었더니 또 다 잊혀져 가는구나. 요즘은 뉴스를 좀 즐겨 찾다 보니 책 읽는 시간도 줄고, 독서 편지는 더 밀리게 되었구나. 그래서 이 책을 읽을 때는 재미있게 읽었는데, 막상 너희들에게 이야기해주려니 잘 생각이 안 나는구나. 이 책에서 나온 화가들의 이름이라도 남겨두어야겠다고 생각하여 책의 목차에 나온 부분을 발췌해 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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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동양화단의 좌장 안중식

다재다능하고 신비로운 서화가 지운영

근대 전각의 길을 개척한 전각 명인 오세창

근대 난초 그림을 정립한 서화가 김응원

근대 서화계의 어른으로 불린 김용진

서양화의 시작을 알린 고희동

조선조 마지막 내시 출신 서화가 이병직

독립운동에 앞장선 서화가 김진우

임금의 초상을 그린 인물화의 귀재 김은호

금강산을 잘 그린 산수화의 거장 배렴

기억상실증으로 불행했던 비운의 화가 백윤문

남과 북에서 공명을 누린 서화가 이석호

장애를 극복한 의지의 화가 김기창

한국 문인화의 정형을 정립한 장우성

한국적 인상파 화법을 완성한 화가 오지호

해방 후 좌익 미술계를 이끌었던 길진섭

월북한 감성적 모더니스트 최재덕

근대 나전칠기를 개척한 공예가 전성규

현대 건축의 산실 공간 사옥과 김수근

근대 미술의 요람 중앙고보와 휘문고보

사진관, 화랑까지 경영한 서화가 김규진

근대 서예의 체계를 정립한 김돈희

한국 최초로 시사만평을 그린 이도영

조선미술전람회 입선한 명월관 주인 안순환

금강산 그림 전통을 이은 산수화의 명인 변관식

늘 경계인이었던 월북 서양화가 임군홍

유럽에 이름 떨친 첫 한국화가 배운성

좌수서의 신경지를 개척한 서예가 유희강

한글 서예를 개척한 김충현과 김씨 4형제

죽음으로 예술을 완성한 비운의 조각가 권진규

국립중앙박물관 최초의 유물사진가 이건중

화가들도 흠모했던 슈퍼스타 최승희와 매란방

천도교 중앙대교당을 설계한 나카무라 요시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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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훌륭한 화가들이 시대를 잘 만났다면 어땠을까? 안타까운 마음에 자꾸 이런 생각이 드는구나. 오늘 독서편지는 짧게 마칠게. 아참, 오늘부터 정상적인 대한민국의 첫걸음을 내딛게 되어 정말 다행이구나.

 

PS,

책의 첫 문장: 조선 후기 예원을 이끌었던 추사 김정희(1786~1856) 문하에는 양반에서 중인, 평민에 이르는 다양한 계층의 제자들이 드나들었다.

책의 끝 문장: 그런 면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안중식은 솜씨 좋은 서화가였을 뿐 아니라 국민 계몽의 필요성을 느낀 개화사상가이기도 했다. 1906년에는 대표적인 애국계몽운동 단체인 대한자강회(大韓自彊會)에 회원으로 가입했으며, 이듬해 <대한자강회월보> 제8호 첫 페이지에 을사늑약에 항의하다가 자결한 충신 민영환(閔泳煥)(1861~1905)을 기리는 <민중정공혈죽도>를 그려 싣기도 했다. 또한 이듬해에는 어린이용 교과서 <유년필독>과 진보적이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잡지 <청춘(靑春)>, <아이들보이>에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1913년에 창간된 <아이들보이>에는 군복을 입고 백마를 탄 우리나라의 옛 무사를 그린 삽화가 표지화로 실리기도 했다. 이런 모습은 근대적인 면모를 보이기는 하나 전체적으로 보면 전통적 기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한계도 있다. - P29

고희동은 그동안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라는 역사적 의미와 새로운 조형 방법을 후진에게 가르친 미술 교육자로서 높이 평가받았다. 화단을 형성하고 이끌어나간 미술 행정가의 성격이 강해 일부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최초’였음에도 결국 서양화를 포기하고 동영화로 돌아온 화가로서의 정체성 문제는 더욱 그에 대한 평가를 박하게 만들었다. 이런 치우친 평가가 과연 정당한지 의문이다.
실제 전하는 그의 작품들은 당대에 활동한 대표적인 화가들 못지않은 개성과 미덕을 가지고 있다. 원근이 살아 있는 생동감 넘치는 산수화나 뛰어난 색채감을 보이는 개성적인 화면은 다른 화가들에게서 보기 어려운 새로운 면이다. 이는 현대에 와서 더욱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 점에서 화가로서의 고희동에 대해 더욱 정치한 연구가 필요하다.
- P88

첫눈에 반한 김기창은 박래현이 도쿄로 돌아가자 계속 편지를 보내 그녀의 환심을 산다. 김기창의 4년간의 끊임없는 열정에 박래현에 처음에는 ‘바위 덩어리처럼 시커먼 물체’처럼 보였던 그에게 애정을 느끼게 되어, 결국 두 사람은 4년 뒤 결혼한다. 결혼한 두 사람은 부부 이전에 예술적 동반자였다. 미술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던 두 사람은 서로를 존중하면서 미술세계를 넓혀갔다. 같은 공간에서 살며 작업하다 보니 두 사람의 예술세계는 서로 다른 듯 닮아갔다. 마치 피카소와 브라크의 그림이 서로 닮아 예술의 동반자임을 드러냈듯이, 김기창과 박래현의 그림은 어느 시기까지 서로 비슷한 면을 많이 보였다. - P154

사람들이 현대사옥을 정경 유착의 결과물로 이야기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이 건물 건축의 첫째 의문은 건축의 허가가 정당했는지의 문제이다. 우선 크기가 너무 크다. 지금도 너무 커 위압감을 느낄 정도인데 1983년에는 어떤 정도였을지 상상이 될 것이다. 더구나 이곳은 창덕궁이 바로 옆에 있어 건축법상 이렇게 높고 큰 규모의 건물이 들어서서는 안 된다. 실제 주변 다른 곳의 경우 고도제한을 받는다. 이런 높은 건물이 어떻게 허가를 받을 수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 P235

2001년 월북한 서양화가 배운성의 작품 48점이 발견되자 한국미술계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때 발견된 작품이 대부분 유화 작품이어서인지 주로 그의 유화 작품에 대해서만 언급되었다. 그러나 당시 유럽이나 한국에서 배운성이 미술세계가 주목을 받은 것은 유화보다는 판화 부문이었다. 배운성이 한국에 돌아왔을 1940년 당시에도 한국 화단과 언론에서의 관심은 그의 기구한 삶과 함께 뛰어난 판화 실력이었다. 당시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에서 대서특필한 기사도 ‘세계적인 판화가’라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실제 배운성은 여러 살롱전과 공모 전람회에서 판화로 입상했으며, 개인전에서도 유화 못지않게 판화를 전시하곤 했다. - 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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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들의 숙제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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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위대한 작가 박경리 님의 <죄인들의 숙제>라는 이야기를 해줄게. 박경리 님께서 <토지>라는 대작을 쓰셔서 우리한테 익숙하시지, 실제로 작가로 왕성하게 활동하시던 시기는 아빠가 태어나기 전이거나 아빠가 어린 시절이란다. 그래서 박경리 님께서 책을 많이 쓰셨지만, 아빠가 알고 있는 것은 대표작들 몇 편뿐이란다. 그래서 직접 찾아봐야 박경리 님의 숨어 있는 명작들을 만들 수가 있어. 아빠가 작년에 박경리 님의 장편 대표작 <김약국의 딸들>을 읽고, 박경리 님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겠다고 인터넷 서점 서핑하다가 알게 된 책이 바로 이번에 읽은 <죄인들의 숙제>란 책이란다.

물론 이번에 제목조차 처음 들어보는 책이란다. 그런데 책이 800페이지가 넘어가는 방대한 책이란다. 스무 권이 넘는 대하소설 <토지>를 쓰신 분이니, 800페이지 넘어가는 장편소설은 별 거 아니게 쓰실 지 모르겠지만, 일반 사람들, 아니 소설가를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힘든 작업이 아닐까 싶구나. 책 소개는 읽어보지도 않고, 지은이 이름만 보고 사고 읽었단다. 아빠가 읽은 박경리 님의 소설은 대하소설 <토지> <김약국의 딸들>뿐이니, 이 책도 당연히 역사 소설일 것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이 소설은 박경리 님께서 살아가는 동시대의 시대상을 그린 소설이란다. 약간 우연도 지나치고 소위 막장 분위기도 좀 나지만,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어 좋았단다.

아빠가 아침드라마를 보지는 않지만, 소재가 딱 아침드라마로 만들면 좋을 것 같은 줄거리를 가지고 있단다. 책이 두껍게도 겁 먹을 것이 없는 게, 일상적인 사람들 사는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라 술술 읽혀졌단다. <죄인들의 숙제>라는 작품은 아빠도 태어나기 전인, 1969 5 24일부터 1970 4월까지 <경향신문>에 연재했던 소설이라고 하는구나. 거의 매일 288회 연재를 했다고 하는구나. 독자들이 아침에 배달 온 신문을 집어 들고 매일 연재되는 이 소설을 읽는 모습들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구나. 그 시절의 아침드라마라고 할 수 있겠구나.

 

1.

1969년이면 전쟁이 끝난 진 20년이 안 된 시절이라서 아직 전쟁의 아픔을 겪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았단다. 주인공 윤희정 윤희련 자매도 그런 사람들이야. 그들은 사실 이복 자매란다. 아버지가 재혼하셔서 희련을 낳았고, 아버지가 재혼할 때 희정은 외가에서 살았어. 그러다가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다시 아버지와 새어머니의 집으로 들어왔는데, 그 집에는 자신보다 12살이나 어린 희련이 있었던 거야. 희련은 희정을 언니라고 부르면서 잘 따랐고, 희정도 그런 희련을 잘 대해주었단다. 그런데 전쟁이 일어나고 부모님이 전쟁통에 돌아가시고 둘만 남은 거야. 더욱이 희정은 포탄으로 한쪽 팔을 잃어버렸단다. 희정이 살아가는 이유는 어린 동생 희련을 보살피고 잘 키우는 것이었단다. 처음부터 눈물 자극하는 스토리구나.

희련이 어른이 되고 나서는 자기 주장이 뚜렷해지면서 자주 싸우고 희정도 감정 폭발하여 큰 소리를 낼 때도 있었어. 희정은 자신이 한쪽 파리 없는 장애인이라서 처음부터 결혼할 생각도 안 했어. 그리고 희련은 장기수라는 화가와 결혼했다가 성격차이로 이혼하고 다시 언지 희정과 함께 살고 있었단다. 미련을 버리지 못한 장기수는 술만 먹었다 하면 희련에게 계속 연락을 하는데, 찌질남이라고 생각하면 된단다.

희련에게는 강은애라는 절친이 한 명 있단다. 강은애는 남편 정양구와 아이 둘과 함께 살고 있단다. 아주 평범하고 행복해 보이는 그런 가족 구성원이지. 남편은 회사에서도 잘 나가는 그런 사람이야. 희련이 열등감을 가질만한 그런 생활을 은애가 하고 있구나. 하지만 은애도 행복한 생활을 하는 이는 아니야. 우연히 백화점에 갔다가 바람을 피는 남편을 보았어. 아주 젊은 여자와 말이야. 자신이 본 것을 남편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참으려고 했지만, 남편도 자신이 바람 피는 것을 은애가 봤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은애의 엄마는 정신병을 앓다가 일찍 스스로 목숨을 끊었단다. 그런 엄마를 두어서인지 은애도 정신적으로 나약했단다. 우울증 증세가 계속 있었어. 거기에 결혼 전에 사귀었던 남자가 유부남이었다는 것을 알고 또 깊은 상처를 받았단다. 그런데 남편이 바람 피는 모습까지 목격했으니,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거야. 잠잠했던 조울 증상을 다시 보이기 시작했단다.

 

2.

희련은 의상 디자인 일을 하고 있었어. 송인숙이라고 하는 희련의 후배가 있단다. 송인숙은 이 소설의 최대 빌런이라고 생각하면 돼. 인숙은 다짜고짜 파티를 한다면서 희련을 자기의 집에 초대를 했어. 어떤 파티냐고 물어봐도 실망하지 않을 파트니까 꼭 오라고만 했단다. 계속된 설득에 희련을 거절할 수 없었어. 그런데 거절했어야 하는 파티였단다. 송인숙은 별거 중인 최일석 전무라는 바람둥이를 희련과 연결시켜주려는 거야. 분위기가 좋지 않아 희련을 그 자리를 빨리 나왔단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최일석 전무는 계속 연락해 왔단다. 오늘날 같았으면 스토커로 신고를 해버렸을 텐데..

강은애의 남편 정양구가 바람 피는 상대는 남미라는 젊은 대학생이란다. 정양구는 그저 즐기는 상대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남미는 그런 정양구에게 조금씩 거리를 두려고 했어. 자신이 일하는 레스토랑 사장을 비롯한 일행들과 함께 바다에 놀라간다고 했어. 정양구는 화가 났지만 자신은 회사 일도 그렇고 가정 일도 그래서 남미와 놀러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단다. 남미는 그 이후 연락이 끊겼는데, 정양구가 몇 달 만에 연락을 해보니 남미는 그 레스토랑 사장인 로웰과 결혼하기로 했다는 거야. 로웰은 자신을 위해서 이혼까지 했다면서 말이야.

….

강은애의 오빠 강은식은 일본에서 성공한 재일교포 사업가인데 이번에 오랜만에 한국에 왔단다. 엄마의 정신병 DNA 때문에 결혼도 안 하겠다고 다짐한 사람이야. 심지어 그런 유전자를 물려주지 않겠다는 생각에 정관수술까지 한 사람이야. 이미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인 것 같구나. 강은식은 동생 은애를 통해서 희련을 알게 되었는데, 둘 사이에서 사랑의 감정이 싹트게 되었어. 그런데 어느날 은애가 사라졌단다. 희련과 정양구는 은애가 자살했을까 봐 걱정했단다. 최근 조울 증세가 심해졌거든. 그런데 며칠 뒤 강은식이 대전에서 은애를 찾아와 데리고 와서 일단 자신이 묵고 있는 호텔에 머물게 했어. 그리고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계룡산 갑사 근처에서 요양을 하기로 했단다. 남편 정양구는 바람 핀 사람 같지 않게, 지극정성으로 은애의 병간호를 해주었단다. 회사 때문에 매일 갈 수는 없지만 주말마다 내려가서 보살펴주었어. 어쩌면 좋은 남편연기를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

….

빌런 인숙을 통해 희련은 언니 희정이 곗돈 사기를 당하고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출판사에 투자했다가 쫄딱 망했다는 사실을 듣게 돼. 희정이 그렇게 망해가는 것을 인숙은 알면서도 방조했다고 볼 수 있지. 빌런이니까 말이야. 그렇게 안 좋은 일은 얼른 가서 이야기를 하고희련도 이제서야 그동안 희정의 감정이 들쑥날쑥 했었는지 이해가 됐단다. 동생 모르게 그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동분서주했던 거야. 희련은 언니 희정에게 그 문제를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집을 팔아서 빚을 갚자고 했단다.

희정도 더 이상 뾰족한 방법이 없다 보니, 희련의 말에 반대를 할 수 없었어. 그리고 자신이 사기를 당해 폭삭 망한 것을 이제 희련도 알게 되어서 오히려 심적으로 안정을 찾은 것 같았어. 이게 가족이지.. 어떤 문제를 혼자 해결하려고 끙끙대면 오히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점점 어려워질 수 있어. 그 문제점을 가족 등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게 되면 그것은 나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의 문제가 된단다. 더 금방 더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거야. 이 점 명심^^

 

3.

희련은 은애가 요양하는 곳에 가서 며칠 머물면서 은애 병간호도 하기로 했어. 당시는 전화도 쉽게 할 수 없는 시대라서, 편지로 알리고 길을 떠났단다. 그래서 먼저 와 있던 강은식을 그곳에서 우연히 만날 수도 있었지. 며칠 머물면서 강은식과 더 친하지는 계기가 되었지. 하지만 한편으로 한번 이혼의 경험이 있는 희련은 남자를 만나는데 있어 조심하려고 했단다. 그에 반해 은식은 희련과 좀더 가까워지고 싶었고그런 둘 간의 속도 차이 때문에 갈등을 빚기도 했단다.

한편, 인숙은 희련이 강은식과 사귀는 사이가 되자, 둘 사이를 이간질하려고 했어. 그래서 강은식을 자신이 차지하려고 했지. 강은식은 인숙의 이간질에 넘어가 희련에게 차갑게 대하기도 했단다. 집 문제도 그렇고 강은식 문제도 그렇고 만사가 복잡한 희련은 시골 고모네 집에 내려갔단다. 핸드폰은커녕 집전화도 많이 없던 시절이라 뒤늦게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안 강은식이 희련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었어. 일본에서 하고 있는 일이 있어 계속 한국에 머물 수 없는 상황, 그는 희련에게 연락을 못하고 일본으로 돌아갔단다.

은애는 요양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고, 희련도 한 달 만에 서울로 돌아왔어. 집은 지인의 도움으로 팔리고 언니와 함께 조그마한 아파트로 이사를 가기로 했단다. 그런데 그 아파트에 뜻밖에 사람을 만났어. 은애의 남편 정양구였단다. 그 아파트는 정양구의 불륜 상대가 남미가 살던 집이었고, 정양구도 남미 생각이 나서 하필 그날 그 곳에 왔던 거야. 정양구는 당황했겠는데? 복덕방에서 이야기하기를 이전에 살던 아가씨는 암에 걸려 어디론가 사렸다고 했어. 다들 이런 저런 아픔들을 갖고 사는구나. 그래도 아빠는 이 소설이 어느 정도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충격적인 결론이 기다리고 있었단다. 은애가 아닌, 희련이 우울증에 심신이 약해져서 그만 자살을 하고 말았단다.

아빠가 이 소설이 왜 아침드라마 같다고 했는지 알겠지? 너무 뜻밖의 결말이라서 아빠도 살짝 당황했단다. 굳이 결말을 이렇게 하실 필요까지 있었나 싶었어. 아무리 소설 속 인물이라고 하지만, 희련이 너무 불쌍하구나. 지은이들이 다들 아픔을 갖고 죄를 안고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 이 소설의 배경인 1960년대말 우리나라 사회상이 전반적으로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죄인들의 숙제>라는 소설은 지금까지 읽은 박경리 님의 소설과는 결이 다른 소설이라서 오히려 신선함마저 들었단다. 지은이가 박경리 님이 아니면 다소 식상한 소재일 수도 있는데 말이야. 드라마 한 편 잘 본 기분이다. 2025년에 1960년대를 그린 소설을 읽는 것도 좋았단다. 그 시절의 사회상과 문화도 접할 수 있고 말이야. 앞으로 50년 후 지금 출간된 소설들을 읽는 독자들은 어떤 기분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단다. 앞으로도 박경리 님의 소설들은 간간히 찾아 읽어봐야겠다.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여덟 시가 지나면 득실거리던 다방 안은 휑뎅그렁해진다.

책의 끝 문장: 덜렁이 사원 마스터 한의 목소리였다



그런데 말이야, 태곳적부터 사람은 그놈의 답답증 때문에 말을 내지르다 보니 문자가 생겨났고 답답증 때문에 소리를 내지르다 보니 음악이 생겨났고 모양을 나타내어 보고 싶은 답답증 때문에 그림이나 조각 같은 게 생겨났을 성싶은데, 그래서 그놈의 답답증 때문에 종교니 철학이니 윤리 도덕이니, 그게 다 춥고 배가 고파서 생겨난 게 아니란 말이야. 답답증, 다시 말하면 마음이 춥고 배고파서 생겨난 건데 그래서 인간은 동물보다 복잡해졌단 말이야. - P570

"여덟이에요. 나인 그렇다 치고, 난 엉큼하질 못해서 탁 털어놓는 거예요. 마음은 간절하면서 안 그런 체하는, 소위 그 숙녀라는 물건들을 보면 메스꺼워서 원, 나같이 솔직만 하다면 세상은 아주 살기 좋고 밝아질 거예요. 한국 사람들의 병이 바로 그거 아니에요? 남이 갖다주어서, 그래야 겨우 먹고 싶지도 않지만 권하니까 먹는다는 식으로 말에요. 배 속은 비어서 꾸럭꾸럭 소리가 나는데 한 푼어치 가치도 없는 체면치레는 사실 치사한 거예요. 난, 결혼 문제에도 그래요. 따지고 보면 목적은 간단한 데 공연한 사탕발림을 한단 말예요. 결혼이라는 것도 수지계산의 범주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거예요." - P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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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모든 것은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렸다. 세상을 보는 시각을 바꾸는 것이 우리를 위해 세상을 바꾸는 일, 또는 그냥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왜냐하면 세상이란 결국 우리가 보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유려하고 아름다운 글을 쓰도록 하는 우리 내면의 정의, 죽은 감수성을 되살리는 진정한 개혁, 이런 것이야말로 진실이고, 우리의 진실이고, 유일한 진실이다. 나머지는 그저 풍경, 느낌을 담는 액자, 생각을 적어놓는 서류철일 뿐이다. 들판, , 포스터, 옷 들 같은 것으로 가득한 총천연색의 풍경이든, 때때로 오래된 단어와 몸짓이 되어 표면에 떠올랐다가 다시 인간 표현의 원초적 어리석음 안으로 가라앉는 지루한 영혼의 흑백 풍경이든 마찬가지다.

 

(215-216)

사람들이 영위하는 삶을 주의깊게 들여다볼수록 동물의 삶과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다. 사람과 동물은 둘 다 세상에 무심코 던져진 채 살아간다. 둘 다 이따금 만족스러운 순간들을 누린다. 둘 다 매일 똑 같은 생리 현상을 해결한다. 둘 다 자신의 생각 이상을 생각하지 못하고, 실제 삶 이상을 살지 못한다. 고양이는 햇볕 아래서 뒹굴다가 거기서 잠든다. 인간은 삶 안에서 자신의 복잡한 문제들을 안고 뒹굴다가 거기서 잠든다. 인간도 짐승도 숙명의 법칙을 벗어나지 못한다. 둘 다 존재의 무게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인간 중에서 위대한 자들은 영광을 탐하지만, 그건 개인의 불멸을 누리는 영광이 아니라 개인과 관련 없는 추상적인 불멸일 뿐이다.

 

(218)

내가 바라는 것은 도망치는 것이다. 내가 아는 것, 내 것, 내가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다. 갈 수 없는 인도나 남쪽 바다의 큰 섬이 아닌 아무 시골 마을이나 황야라도 좋으니 어느 곳으로라도 떠나고 싶다. 매일 보는 얼굴들, 일상, 하루하루를 그만 보고 싶다. 어디론가 멀리 떠나 내 고질적인 가식에서 벗어나고 싶다. 휴식이 아니라 삶처럼 다가오는 잠을 느끼고 싶다. 바닷가의 작은 오두막이나 심지어 바위투성이 산비탈의 동굴도 그런 순간을 선사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내 의지만으로는 그런 순간을 누릴 수 없다.

 

(246)

언젠가 사람들은 내가 다른 이들과는 달리 우리가 태어난 세기의 일부를 해석하는 타고난 사명을 완수했음을 이해할 것이다. 그 사실을 비로소 이해한 이들은, 동시대인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불행히도 내 작품을 홀대하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내가 그렇게 살았다니 유감스럽다고 글을 쓸 것이다. 그런 글을 쓰는 이들은 지금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듯이 동시대에 살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을 역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들의 증조부 세대에서만 쓸모 있는 것을 배우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로지 죽은 이들을 상대로나 바르게 사는 법을 가르칠 수 있다.

 

(254)

이런 생각을 하면서 현실이 나의 갈증을 풀어줄 수 있는지 보려고 주위를 살피면 무표정한 집, 무표정한 얼굴, 무표정한 몸짓 들이 보인다. 돌멩이도 육체도 생각도 다 죽어 있다. 모든 동작이 멈춰 일체가 정지한다. 그 무엇도 내게는 의미가 없다.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낯설어서가 아니라 정말 뭔지를 모르겠다. 세상이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이 순간의 유일한 현실인 내 영혼의 밑바닥에는, 보이지 않는 강렬한 고통이, 어두운 방에서 누군가 우는 소리 같은 슬픔이 존재한다.

 

(268)

오늘 나는 거리를 걷다가, 자기들끼리 서로 다투었던 두 친구를 따로 마주쳤다. 각자가 왜 상태에게 화났는지 내게 말해줬다. 둘 다 진실을 얘기하고 있었다. 둘 다 자신의 이유를 말하고 있었다. 둘 다 옳았다. 둘 다 틀림없이 옳았다. 한 명은 이것을 보고 나머지 한 명은 다른 면을 보는 게 아니었다. 두 사람은 발생한 일의 진상을 정확히 보고 있었고, 모든 같은 기준에 근거해 사태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둘은 뭔가 다른 것을 보았고, 결국 둘 다 옳았다.

 

(273)

글을 쓴다는 것은 꿈을 객관화하는 것이고, 우리의 창조적 본성이 베풀어준 일종의 특혜로서 외부 세계를 하나 만들어내는 것이다. 책을 낸다는 것은 이 세계를 다른 이들에게 줘버리는 것이다. 우리와 그들의 공통된 외부 세계란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물질로 만들어진 현실적인 외부 세계뿐일 텐데 무엇 때문에 그리하겠는가? 다른 사람들이 내 안에 있는 우주와 무슨 상관이란 말이가?

 

(280)

내가 인생에서 찾아다녔던 모든 것들은, 찾아다니려고 나 자신이 직접 버렸던 것이다. 나는 마치 뭔가를 찾아다니던 꿈속에서, 뭘 찾는지 이미 잊어버렸건만 넋을 잃은 상태로 찾고 있는 사람 같다. 그래서 뭔가를 찾아 헤매느라 이것저것 뒤지고 들어올리고 옮겨놓은 손의 실제 움직임이, 길고 흰 다섯 손가락이 양손에 달린 모습이, 찾고 있는 대상보다 더 사실적이 돼버린다.

 

(294)

독서는 다른 사람의 손에 이끌려 꿈을 꾸는 것이다. 부주의하고 산만하게 읽음으로써 우리를 이끄는 손에서 해방될 수 있다. 피상적으로만 지식을 취하는 것이 가장 좋은 독서이며 심오해지는 길이다.

 

(299)

우리가 했던 모든 일이 사랑이라면 죽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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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나와 인생 사이에는 아주 얇은 유리 한 장이 있다. 뚜렷하게 바라보며 인생을 이해한다 해도, 결코 만질 수는 없다.


(129)

, 내 안에 살아 있고 내 안이 아니면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는 죽은 과거여! 들판의 작은 집 정원의 꽃들은 오직 내 안에만 있구나! 뜰의 채소와 과일나무와 소나무들은 오직 내 꿈속에만 있구나! 내가 상상한 전원생활과 시골 산책은 한 번도 존재한 적 없어라! 길가의 나무와 오솔길과 돌 들, 지나가던 시골 사람들…… 모든 것은 단지 꿈이었을 뿐, 내 기억에 새겨진 채 나를 아프게 한다. 그것들을 꿈꾸며 수많은 시간을 보내던 나는 지금은 꿈꾸던 순간을 회상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것이 사실은 나의 진정한 그리움이자 나를 눈물짓게 하는 과거이고 죽어버린 진정한 삶이다. 나는 그 삶이 엄숙하게 관에 누운 모습을 바라본다.


(138)

모든 것에 지칠 때가 있다. 심지어 우리에게 휴식을 주는 것마저 피곤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우리를 피곤하게 하는 것은 피곤하게 하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에게 휴식을 주는 것은 그것을 얻으려는 생각이 우리를 피곤하게 하기 때문에 그렇다. 모든 걱정과 아픔 아래에는 낙담한 영혼이 있다. 인간적인 걱정과 아픔을 교묘히 피하고 자신의 권태마저 비켜갈 수 있는 이들만이 그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갑옷을 입은 이들에게는, 어느 순간 의식 속에서 갑옷 전체가 갑자기 무거운 짐이 되고 인생은 전도된 걱정과 잃어버린 아픔이 되는 일이 별로 놀랍지 않다.


(156)

글을 쓴다는 것은 잊는 것이다. 문학은 인생을 무시하는 가장 유쾌한 방식이다. 음악은 마음을 달래고, 미술은 기운을 북돋고, 연극이나 무용 같은 행위 예술은 즐거움을 준다. 그러나 문학은 잠에 빠지듯 인생에서 멀어지게 한다. 다른 예술의 경우, 어떤 것은 눈에 보이는데다 살아 있는 형식을 사용하고 또 어떤 것은 인간의 삶 자체를 살아가기에 인생에서 멀어지지 않는다.


(160)

나는 국가와 인류에 종속되길 거부한다. 소극적으로라도 저항한다. 국가는 나에게 어떤 행동을 요구할 수 있을 뿐이다. 내가 꼼짝 않는 이상 내게서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한다. 오늘날 사형제도도 폐지되었으니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봐야 나를 귀찮게 하는 정도다. 그런 일이 생긴다면 영혼을 더욱 단단히 무장하고 내 꿈속 더 깊은 곳에서 살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난 적이 없다. 국가는 나를 귀찮게 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는 운명이 나를 봐준 것 같다.


(169)

분개하지 않는다. 분개는 힘 있는 자들이나 하는 것이니까. 체념하지 않는다. 체념은 고귀한 자들이나 하는 것이니까. 침묵하지 않는다. 침묵은 위대한 자들이나 하는 것이니까. 나는 힘 있는 자도, 고귀한 자도, 위대한 자도 아니다. 나는 고통스러워하고 꿈을 예술가라서 나의 불평으로 노래를 만들며 놀고, 내 꿈들을 더 아름다워 보이도록 배열하며 논다.


(182)

정말 오랫동안 나는 존재하지 않는 상태였다. 내 마음은 지극히 고요하다. 아무도 나의 진정한 모습과 다른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방금 무엇인가 아주 새로운 일을 했거나 뒤늦게 한 것처럼 숨을 쉬는 나를 느꼈다. 의식을 갖고 있음을 의식하기 시작한다. 아마도 내일은 다시 나로 깨어나 내 존재의 궤적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 그래서 더 행복해질지 그 반대일지 나는 모른다. 아무것도 모른다. 길을 걷다 고개를 들고 성벽이 세워진 언덕 위로 차가운 불덩이로 만든 반사경 같은 노을이 십여 개의 창문을 불태우는 모습을 본다. 그 단단한 불의 눈 주위로, 언덕 위에는 하루가 저물 무렵의 포근함이 가득하다. 적어도 지금 나는 슬픔을 느낄 수 있다. 지금 막 나의 슬픔이, 저 지나가는 전차의 갑작스러운 소음과 젊은이들이 대화하는 소리와 살아 있는 도시의 잊혔던 속삭임과 마주치는 것을-나는 그것을 내 귀로 보았다-의식할 수 있다.

정말 오랫동안 나는 내가 아니었다.


(192)

어떤 이들은 삶에서 큰 꿈을 품지만 이루지 못한다. 또 어떤 이들은 아무런 꿈도 품지 않기에 마찬가지로 이루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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