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
모든 것은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렸다. 세상을
보는 시각을 바꾸는 것이 우리를 위해 세상을 바꾸는 일, 또는 그냥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왜냐하면 세상이란 결국 우리가 보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유려하고
아름다운 글을 쓰도록 하는 우리 내면의 정의, 죽은 감수성을 되살리는 진정한 개혁, 이런 것이야말로 진실이고, 우리의 진실이고, 유일한 진실이다. 나머지는 그저 풍경, 느낌을 담는 액자, 생각을 적어놓는 서류철일 뿐이다. 들판, 집, 포스터, 옷 들 같은 것으로 가득한 총천연색의 풍경이든, 때때로 오래된 단어와
몸짓이 되어 표면에 떠올랐다가 다시 인간 표현의 원초적 어리석음 안으로 가라앉는 지루한 영혼의 흑백 풍경이든 마찬가지다.
(215-216)
사람들이 영위하는 삶을 주의깊게 들여다볼수록 동물의 삶과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다. 사람과 동물은 둘 다 세상에 무심코 던져진 채 살아간다. 둘 다
이따금 만족스러운 순간들을 누린다. 둘 다 매일 똑 같은 생리 현상을 해결한다. 둘 다 자신의 생각 이상을 생각하지 못하고, 실제 삶 이상을 살지
못한다. 고양이는 햇볕 아래서 뒹굴다가 거기서 잠든다. 인간은
삶 안에서 자신의 복잡한 문제들을 안고 뒹굴다가 거기서 잠든다. 인간도 짐승도 숙명의 법칙을 벗어나지
못한다. 둘 다 존재의 무게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인간
중에서 위대한 자들은 영광을 탐하지만, 그건 개인의 불멸을 누리는 영광이 아니라 개인과 관련 없는 추상적인
불멸일 뿐이다.
(218)
내가 바라는 것은 도망치는 것이다. 내가 아는 것, 내 것, 내가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다. 갈 수 없는 인도나 남쪽 바다의 큰 섬이 아닌 아무 시골 마을이나 황야라도 좋으니 어느 곳으로라도 떠나고 싶다. 매일 보는 얼굴들, 일상, 하루하루를
그만 보고 싶다. 어디론가 멀리 떠나 내 고질적인 가식에서 벗어나고 싶다. 휴식이 아니라 삶처럼 다가오는 잠을 느끼고 싶다. 바닷가의 작은
오두막이나 심지어 바위투성이 산비탈의 동굴도 그런 순간을 선사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내 의지만으로는 그런 순간을 누릴 수 없다.
(246)
언젠가 사람들은 내가 다른 이들과는 달리 우리가 태어난 세기의 일부를 해석하는 타고난 사명을
완수했음을 이해할 것이다. 그 사실을 비로소 이해한 이들은, 동시대인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불행히도 내 작품을 홀대하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내가 그렇게 살았다니 유감스럽다고 글을 쓸 것이다. 그런 글을 쓰는
이들은 지금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듯이 동시대에 살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을 역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들의 증조부 세대에서만 쓸모 있는 것을 배우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로지 죽은 이들을 상대로나 바르게 사는 법을 가르칠 수 있다.
(254)
이런 생각을 하면서 현실이 나의 갈증을 풀어줄 수 있는지 보려고 주위를 살피면 무표정한 집, 무표정한 얼굴, 무표정한 몸짓 들이 보인다. 돌멩이도 육체도 생각도 다 죽어 있다. 모든 동작이 멈춰 일체가
정지한다. 그 무엇도 내게는 의미가 없다.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낯설어서가 아니라 정말 뭔지를 모르겠다. 세상이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이 순간의 유일한 현실인 내 영혼의 밑바닥에는, 보이지 않는
강렬한 고통이, 어두운 방에서 누군가 우는 소리 같은 슬픔이 존재한다.
(268)
오늘 나는 거리를 걷다가, 자기들끼리 서로 다투었던
두 친구를 따로 마주쳤다. 각자가 왜 상태에게 화났는지 내게 말해줬다.
둘 다 진실을 얘기하고 있었다. 둘 다 자신의 이유를 말하고 있었다. 둘 다 옳았다. 둘 다 틀림없이 옳았다. 한 명은 이것을 보고 나머지 한 명은 다른 면을 보는 게 아니었다. 두
사람은 발생한 일의 진상을 정확히 보고 있었고, 모든 같은 기준에 근거해 사태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둘은 뭔가 다른 것을 보았고, 결국 둘 다 옳았다.
(273)
글을 쓴다는 것은 꿈을 객관화하는 것이고, 우리의
창조적 본성이 베풀어준 일종의 특혜로서 외부 세계를 하나 만들어내는 것이다. 책을 낸다는 것은 이 세계를
다른 이들에게 줘버리는 것이다. 우리와 그들의 공통된 외부 세계란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물질로
만들어진 현실적인 ‘외부 세계’뿐일 텐데 무엇 때문에 그리하겠는가? 다른 사람들이 내 안에 있는 우주와 무슨 상관이란 말이가?
(280)
내가 인생에서 찾아다녔던 모든 것들은, 찾아다니려고
나 자신이 직접 버렸던 것이다. 나는 마치 뭔가를 찾아다니던 꿈속에서,
뭘 찾는지 이미 잊어버렸건만 넋을 잃은 상태로 찾고 있는 사람 같다. 그래서 뭔가를 찾아
헤매느라 이것저것 뒤지고 들어올리고 옮겨놓은 손의 실제 움직임이, 길고 흰 다섯 손가락이 양손에 달린
모습이, 찾고 있는 대상보다 더 사실적이 돼버린다.
(294)
독서는 다른 사람의 손에 이끌려 꿈을 꾸는 것이다. 부주의하고
산만하게 읽음으로써 우리를 이끄는 손에서 해방될 수 있다. 피상적으로만 지식을 취하는 것이 가장 좋은
독서이며 심오해지는 길이다.
(299)
우리가 했던 모든 일이 사랑이라면 죽어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