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끝까지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엄지영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6월
평점 :
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코로나가 창궐한 지 어느덧 만으로 3년이 되었구나. 코로나로 참 많은 사람들이 안타깝게 생명을 잃었단다. 코로나는 유명한 사람들도 비껴가지 않았어. 코로나 초반 한창 창궐하던 시기에 안타까운 부음을 들었단다. 소설가 루이스 세풀베다가 코로나 때문에 별세했다는 소식이었어. 아빠가 읽은 루이스 세풀베다의 소설은 <연애소설 읽는 노인> 한 권뿐이지만, 재미있게 읽어서 지은이 루이스 세풀베다를 좋게 생각했거든. 그래서 언젠가는 읽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의 책들도 여러 권 샀었어. 그런 루이스 세풀베다의 별세 소식을 들어서 참 안타까웠단다. 그가 별세하고 나서 얼마 후 그의 마지막 장편소설이 우리나라에서도 출간되어서 꼭 한 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서야 읽었단다.

루이스 세풀베다는 칠레 군사 독재자 피노체트 정권에 항거해 반정부활동을 했고, 그로 인해 투옥되기도 했고, 망명도 했단다. 한편으로 환경 문제에도 관심이 받았던 루이스 세풀베다. 행동하는 지성인의 본모습을 보여주셨지. 이런 그의 모습 때문에 그의 별세는 더욱 안타까웠단다. 최근에 칠레 작가의 책들을 여러 권 읽게 되는데 모두 좋았단다. 칠레의 이미지가 점점 좋아지는구나. , 그럼 지은이 루이스 세풀베다에 대해서는 이렇게 간략히 하고 곧바로 이번에 읽은 <역사의 끝까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1.

때는 2010 2월 칠레. 당시 칠레 대통령은 미첼 바첼리트라는 여성 대통령이었단다. 1970년대 피노체트가 군부 쿠데타로 아옌데 대통령(이 분은 아빠가 전에도 여러 번 이야기했었지?)을 무너뜨릴 때 아옌데 대통령을 지지하던 바첼리트 장군이 있었어. 그는 결국 피노체트 정권에 고문을 받다가 죽었는데, 미첼 바첼리트 대통령은 바로 그 바첼리트 장군의 딸이란다. 2010 2월은 미첼 바첼리트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이던 시기였단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바첼리트 대통령은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또 한번 대통령을 했다고 하는구나.

전직 게릴라 출신으로 최고의 스나이퍼로 이름을 날렸으며 러시아와 볼리비아 혁명 등 남미 곳곳에서 활동을 했고, 칠레에서 피노체트에 탄압을 받은 후 망명하여 20년 동안 은둔하며 생활하고 있는 벨몬테라는 사람이 이 소설의 주인공이란다. 그렇게 은둔하며 지내던 벨몬테에게 칠레 정보부 요원이 찾아왔단다. 그래서 벨몬테는 20년 만에 산티아고에 오게 된단다. 그를 호출한 사람은 크라머라고 하는 옛 상관이며, 벨몬테에게 주어진 임무는 두 명을 찾으라는 것이었어.

크라머 역시 슬라바라고도 부르는 전직 러시아 대령 소콜르프의 부탁을 받은 거야. 그런데 소콜로프 대령 역시 벨멘토의 예전에 게릴라 활동을 할 때 알고 지내던 인물이었어. 예전에는 군인이었지만, 지금은 러시아 사업가였지. 벨몬테에게 찾아달라고 하는 사람들은 에스피노사와 살라멘디라는 사람들인데, 그들은 러시아와 칠레를 오가며 활동을 하고 있고, 러시아와 칠레의 기업들에 타격을 주려는 음모를 꾸민다고 했어. 지금은 칠레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어. 그런데 사실 에스피노사와 살라멘디은 벨몬테의 옛 동료였단다. 에스피노사와 살라멘디 역시 1978년 이후 활동을 안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고 했단다.

오랜만에 임무를 맡게 된 벨몬테는 실력이 여전했단다. 칠레에 있는 옛 동료들을 연락하여 정보를 입수해서 2일 만에 에스피노사와 살라멘디를 찾아냈단다. 곧바로 크라머와 슬라바에게 연락을 했지. 그런데 에스피노사와 살라멘디도 눈치를 채고 도망을 갔단다. 슬로바는 에스피노사와 살라멘디가 무슨 일을 꾸미려고 하는지 알려주었어

미셀 크라스노프라는 사람이 있었단다. 그는 카자흐스탄 장군 출신이었어. 카자흐스탄은 러시아 혁명 당시 소비에트를 공격하는 백군에 참여했다가 패배하고 말았어. 러시아 혁명이 성공하자 카자흐스탄이라는 나라는 소련에 병합되고 말았지. 2차 세계대전 당시 카자흐스탄은 히틀러의 꼬임에 넘어가 나치 편을 들게 되었단다. 전쟁에서 이기면 독립시켜주겠다는 꼬임. 하지만 전쟁은 나치의 패배로 끝나고 카자흐스탄을 그대로 소련에 흡수되고 말았단다. 카자흐스탄 군대는 용병으로 게릴라 활동을 했는데, 미겔 크라스노프도 카자흐스탄 군의 장군 출신이었던 거야.

그는 게릴라 활동을 하다가 칠레까지 들어오게 되었고, 피노체트 독재 시대에 정권의 하수인이 되어 악명 높은 고문기술자가 되었단다. 그 죄로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던 거야. 그 이야기를 듣자 벨몬테도 분노를 느꼈어. 왜냐하면 벨몬테의 사랑하는 연인이자 동지인 베로니카 역시 미겔 크라스노프의 고문의 희생양이었거든. 베로니카는 거의 죽을 뻔했는데 간신히 살아났지. 하지만 후유증으로 실어증에 걸리고 평생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했어. 벨몬테가 베로니카를 돌보면서 지금껏 살아왔던 거야. 사랑하는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으니 얼마나 화가 났겠니. 그런데 그런 그를 구출하려는 작전을 펼치다니벨몬테가 화가 나겠니, 안 나겠니벨몬테는 다시 에스피노사와 살라멘디를 찾아 나섰단다.


2.

그런데 에스피노사와 살라멘디도 보통 사람들이 아니었어. 그들은 베로니카의 은닉처를 찾아내서 베로니카를 납치했단다. 그리고 벨몬테에게 연락해서 그를 유인했어. 벨몬테는 그들을 만났어. 그리고 그들의 진짜 목적을 듣게 된단다. 에스피노사와 살라멘디 또한 가족들이 미겔 크라스노프의 고문으로 희생됐다고 했어. 에스피노사는 아내와 아들이 죽었고, 살라멘디는 동생이 죽었다고 했어. 그들은 미겔 크라스노프를 탈옥시켜서 그들 나름의 죗값을 치르게 하려고 했던 거래. , 알고 보니 같은 편이었구나. 미겔 크라스노프를 단죄하는 것. 그것이 그들의 목표였지. 벨몬테, 에스피노사, 살라멘디는 미겔 크라스노프가 수감하고 있는 교도소 옆 건물에 자리를 잡았단다. 미겔 크라스노프가 야외 활동을 하면 그가 보였어. 그리고 벨몬테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명사수였지.

그들은 때를 기다렸고, 드디어 미겔 크라스노프가 벨몬테의 가늠쇠 구멍에 보였어. 이제 방아쇠만 겨누면 되는데, 그때 베르니카가 소리쳤단다. 베로니카는 고문으로 다친 이후에 말을 잃었었는데, 그런 베로니카가 소리쳤단다. 벨몬테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지. 그때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서 그들은 그곳을 피할 수밖에 없었단다. 뜬금없이 지진이 웬 말이냐고 할 수 있지만, 실제로 칠레에 2010년에 큰 지진이 있었다고 하는구나. 지진이 안정되고, 베로니카는 그를 죽이지 말라고 한 이유를 이야기했어. 평생 고통 받으며 살라는 의미였는데, 과연 그가 고통을 느끼고 있을지 의문이구나. 그런 괴물 같이 사악한 놈들이 말이야.

아무튼 그렇게 그들의 임무는 거기서 종결하는 것으로 하고, 벨몬테는 에스피노사와 살라멘디와 헤어지고 베로니카와 함께 집으로 향하면서 소설은 끝이 났단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미겔 크라스노프는 실존 인물이란다. 그가 실존 인물이다 보니, 소설 속에서 그를 죽이지 못했던 것 같구나. 이렇게 악한 짓을 하는 이는 또 왜 이리 사는지인터넷 검색해보니 얼굴은 멀쩡하게 생겼는데, 그 안에 괴물을 키우고 있었나 보구나.

이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전 모씨가 생각나더구나. 그러면서 전 모씨를 시민들이 단죄하려고 했던 영화 <26>도 생각이 나고, 최근에 본 영화 <헌트>도 생각나는 구나. 그 영화 역시 전 모씨를 단죄하려고 했다가 실패한 영화거든.

비록 영화나 소설 속에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들의 사악함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구나. 루이스 세풀베다의 <역사의 끝까지>는 실존 인물과 역사적 사건을 소설로 잘 각색한 것 같았단다. 이젠 그의 새로운 소설을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는 것이 정말 아쉽구나. 그가 남긴 소설들이 여럿 있으니 더 읽어봐야겠다.

그의 명복을 빌며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친애하는 동지 여러분.

책의 끝 문장: 대지는 여전히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지만, 두 사람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상처 입은 도시 속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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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그런 클래스에서 클래식이라는 말이 나와서 쓰이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클래식은 어떠한 분야에서 최상위의 가치를 지칭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클래식이란 말은 가치가 불변하고 영구적이며,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고 품위가 있으며, 절제되고 모범적인이라는  뜻을 내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음악이나 문학이나 저술에서의 그런 것들을 일러 클래식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죠. 즉 클래식이라는 말에는 각 분야에서 가장 높은 자리의 것이며, 최상의 걸작이며, 영구불변의 가치를 가진 것이라는 뜻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59)

그것은 클래식의 특성이기도 합니다. 앞에서 클래식 음악이라고 부르는 것은 1700년에서 1950년 사이의 250년에 집중되어 있다고 했지요. 1950년 이후의 음악은 일반적인 콘서트의 레퍼토리에서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물론 그 이후의 음악들만 연주하는 음악회도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연구나 학술활동 혹은 특정 예술가를 위한 기념이거나 특정 청중을 대상으로 한 활동인 경우가 더 많고 관객 일반을 위한 공연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64-65)

처음에는 귀족을 중심으로 성행했지만, 고전음악은 1800년을 전후하여, 음악 소비의 새로운 중심계층이 되었던 시민계층의 성원을 받게 되고, 점점 모든 계층을 아우르고 통합하는 기능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상징이 베토벤의 교향곡 9 <합창> 4악장 <환희의 송가>라고 할 것입니다. 교향곡 역사상 최초로 가사를 붙일 수밖에 없었을 만큼 베토벤과 실러가 전하려는 뜻은 위대했습니다. 그 가사를 유념해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요약하자면 신 앞에서 만인은 평등하다. 그러니 차별 없이 모든 인류가 손잡고 환희의 노래를 부르자라는 뜻입니다.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이르지 못한 고매한 이상입니다.


(68-67)

그러니 클래식 음악을 차용한 영화음악이나 TV 드라마의 배경음악으로 아무리 클래식이 나와도 그것을 클래식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입니다. 축하 행사장이나 결혼식 피로연에서 샴페인을 터뜨리며 웃음꽃을 피우는 동안에 저만치 뒤에서 존재감 없이 울려 나오는 <사랑의 인사>는 더 이상 클래식이 아닌 것입니다. 쇼 프로에서 테너가 핏대를 세우며 <공주는 잠 못 이루고>의 고음을 성공시킨다 하더라도, 그것은 클래식의 정신과 하등의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그 성악가에게 일말의 박수를 보낸다면, 그것은 공중제비 넘기에 성공한 곡예사에게 보내는 박수와 같은 등급의 의미입니다. 베토벤은 청중들로부터 그러한 박수를 받기를 거부했습니다. 그가 연주 대신 작곡에 더 집중하려고 했던 뜻이 여기 있습니다.


(128-129)

음악은 다릅니다. 윤동주나 채만식은 활자를 통하여 나와 바로 연결되고, 비록 복사본으로 감상하여도 피카소나 이중섭의 그림은 나와 바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음악이라는 장르의 특징은 여기서 두드러지게 다릅니다. 즉 창작자와 감상자인 나 사이에는 재현이라는 과정, 즉 연주자가 있는 것입니다. 한 단계가 더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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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23-02-24 2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잉...왜 제 이름이 태그 되어 있는지 놀랍고 궁금하네요 ^^
아..저자분이 박종호 이군요 ㅎㅎㅎ 그래도 박균호 라고 착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

bookholic 2023-02-25 00:29   좋아요 0 | URL
앗, 죄송합니다...... ㅎㅎㅎ
즐거운 주말 되시고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9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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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유명한 작가의 유명한 작품을 이제서야 읽었단다. 유명한 작가는 프랑수아즈 사강. 유명한 작품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이란 사람을 아빠는 이름만 알고 있었단다. 이름이 프랑수아즈니까 프랑스 사람인가? 했는데 역시 프랑스 사람이네.^^ 원래 본명은 프랑수아즈 쿠아레이고, ‘사강은 필명이라고 하는구나. 그 어렵다고 하는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을 따서 필명을 사강이라고 하였다고 하니, 프랑수아즈 사강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어렵지 않게, 감명 깊게 읽은 모양이구나.

프랑수아즈 사강은 고작 열여덟 살 때 지은 첫 번째 작품인 <슬픔이여 안녕>으로 프랑스 문학비평상을 받았다고 하니, 재능이 대단했나 보구나. 열여덟 살에 소설을 쓰기도 쉽지 않을 텐데, 그것으로 큰 상까지 받았다고 하니 대단하구나. <슬픔이여 안녕>이라는 소설도 읽어보고 싶어지더구나. 리스트에 추가. 이번에 읽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도 이십 대 초반에 쓴 작품이라고 하니, 천재라 불릴 만 하구나.

하지만 천재 작가의 삶만 보여준 것은 아니란다. 자동차 질주를 좋아해서 큰 교통사고로 죽을 위기도 있었고, 도박과 약물중독으로도 스캔들을 몰고 다녔다고 하는구나. 말년에는 탈세 혐의로 금고형을 받고 재산을 몰수 당해서 궁핍한 생활을 이어가다가 2004년 병환으로 죽었다고 하는구나. 천재 작가의 삶의 말로가 해피엔딩이 아니라 안타깝구나.

아빠가 이번에 읽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십 대 초반에 쓴 작품인데, 소설의 주인공은 39살의 여인이란다. 이십 대 초반의 나이에 39살의 여인의 내면을 어찌 잘 알았을까. 아빠가 여자의 심리를 잘 알지 못하지만, 소설을 읽다 보면 39, 딱 그 나이의 감성이 느껴졌단다. 그런데 이십 대 초반의 이 소설을 썼다니아참, 그리고 이 소설의 제목을 들었을 때는 의문문처럼 들렸는데, 지은이는 소설의 제목을 표기할 때 문장 끝에 물음표(?)가 아닌, 마침표 3개로 된 말 줄임표로 표기해 달라고 했다는구나. 소설의 제목이 질문이 아니라는 거지.. 그러니까 브람스를 좋아하라는 권유형이라는 것인가? 프랑스어에도 의문문의 문장 끝에 말줄임표를 끝에 붙이면 다른 뜻이 되는 것인가? 프랑스어를 잘 모르니 잘 모르겠구나. 그런데 이 소설의 본문에서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고 물음표가 되어 있는 문장이 나오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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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일요일, 자리에서 일어난 폴은 문 아래 편지가 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과거에는 푸른 쪽지라고 시적으로 표현했던 속달우편으로, 그녀는 실제로는 그 편지가 시적으로 여겨졌다. 그도 그럴 것이 맑은 11월의 하늘에 다시 나타난 태양이 그 순간 그녀의 방을 따뜻한 빛과 음영으로 채웠던 것이다. ‘오늘 6시에 플레옐 홀에서 아주 좋은 연주회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어제 일은 죄송했습니다.’ 시몽에게서 온 편지였다. 폴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웃은 것은 두 번째 구절 때문이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구절이 그녀를 미소 짓게 했다. 그것은 열일곱 살 무렵 남자아이들에게서 받곤 했던 그런 종류의 질문이었다. 분명 그 후에도 그런 질문을 받았겠지만 대답 같은 걸 한 적이 없었다. 이런 상황, 삶의 이런 단계에서 누가 대답을 기대하겠는가? 그런데 그녀는 과연 브람스를 좋아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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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인공 폴은 39살로 실내 인테리어를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단다. 6년 사귄 남자친구 로제가 있었어. 6년 동안 사귀다 보니 그들의 사랑은 익숙한 사랑이 되어 있었어. 설레임도 없어 보였고, 만남도 습관적인 만남 같았어. 폴은 그런 관계 속에서 외로움도 느끼는 것 같았어. 심지어 로제는 폴 몰래 다른 여자들을 만나고 그랬어. 폴에게 출장 간다는 뻔한 거짓말을 하고 주말에 다른 여자랑 여행가기도 했어. 그런 폴에게도 새로운 남자가 접근해왔단다. 폴이 인테리어를 하기로 한 반덴 베스 부인의 집에 갔는데, 그곳에서 반덴 베스 부인의 아들 시몽을 만났어. 시몽은 폴을 보고 첫눈에 반했단다. 그런데 시몽은 폴보다 한참 어렸단다. 시몽은 폴보다 14살 어린 25살이고, 직업은 변호사였단다.

그 짧은 만남 뒤로, 시몽은 폴에 푹 빠지고 말았어. 술 먹고 밤에 불쑥 찾아오기도 했는데, 폴은 그 모습이 순수해 보이기도 했지만, 너무 어린 시몽을 남자로 볼 생각이 없었어. 그리고 익숙하지만 편안한 남자친구 로제가 있었잖아. 시몽은 폴이 일하는 곳에 찾아와 점심을 먹자고 했는데, 폴은 그것까지 거절할 수 없어 같이 점심을 먹었단다. 그것이 지루하고 단조로운 폴의 일상에 작은 파장이 이는 것 같았어. 유쾌하고 재미있는 시몽이 싫지만은 아닌 거야. 시몽도 폴의 얼굴에 드리우진 고독을 본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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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44)

그리고 당신,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이 죽음의 이름으로,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을 고발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고독 형을 선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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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몽은 폴에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으로 데이트 신청을 했단다. 망설임 끝에 폴은 가기로 했어. 폴도 시몽에 끌리기 시작했단다. 폴은 시몽을 좋아하긴 하지만 불편함 마음도 같이 들었단다. 왜냐하면 시몽의 나이가 너무 어렸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을 거라 생각했거든. 지금 당장 폴은 로제보다 시몽에 더 끌렸고, 로제와 관계도 소원해져서 거의 헤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폴이 시몽과 사랑을 만들어가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지. 하지만 폴에게는 불편한 사랑이었지. 뒤늦게 로제는 폴과 다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 때 폴은 냉정하게 내치지 못했단다. 결국 폴은 시몽의 계속된 프로포즈를 거절하고, 로제와 다시 만나게 된단다. 지금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지만 과거부터 계속 익숙한 것을 선택한 것이지.

이 소설에서는 사랑으로 그렸지만, 우리가 무엇인가 선택을 할 때 어느 것에 초점을 두고 선택할까.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가는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지만, 가장 중요한 자기 자신이란다. 아빠도 사실 어떤 행동을 할 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는 편이야. 그것도 많이. 그것이 좋은 행동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하긴 해. 남들 시선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의 생각이라는 것도 알고 있지. 하지만 행동은 자꾸 그렇게 되는구나. 타고난 거지. 이 소설을 통해 아빠를 돌아보게 되는 계기도 되었단다. 그리고 남들 시선 좀 그만 보라고 내면에 이야기를 해보게 되더구나.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시몽이 폴에게 이야기하는 부분은 이 소설의 하이라이트가 아닌가 싶더라. 남들의 시선 까짓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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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알다시피 나는 경솔한 사람이 아냐. 나는 스물다섯 살이야. 당신보다 먼저 세상을 살진 않았지만, 앞으로 당신이 없는 세상에선 살고 싶지 않아. 당신은 내 인생의 여인이고, 무엇보다도 내게 필요한 사람이야. 나는 알아. 당신이 원한다면 내일이라도 당신과 결혼하겠어.”

난 서른아홉 살이야.” 그녀가 말했다.

삶은 여성지 같은 것도 아니고 낡은 경험 더미도 아니야. 당신은 나보다 열네 해를 더 살았지만, 나는 현재 당신을 사랑하고 있고, 앞으로도 아주 오랫동안 당신을 사랑할 거야. 그뿐이야. 나는 당신이 자신을 천박한 수준, 이를테면 그 심술쟁이 할망구들의 수준으로 비하시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어. 지금 우리의 문제는 로제뿐이야. 다른 건 문제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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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로제는 다시 잘 지내겠다고 했지만 결국 마지막 문장 하나로 그는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 어쩌면 폴 아닌 다른 여자를 만날 약속을 했을 수도

미안해, 일 때문에 저녁 식사를 해야 해. 좀 늦을 것 같은데……”


PS:

책의 첫 문장: 폴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책의 끝 문장: 좀 늦을 것 같은데


"모르지. 어째서 당신은 내가 미래를 준비하느라 현재를 망치기를 바라는 거지? 내가 관심 있는 건 오직 내 현재뿐인데 말이야. 그것만으로도 난 충분해."라고 대답하며 그는 요란하게 절하는 시늉을 했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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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3)

물론 일본이 가진 내부적 역량이 근대화를 성공시키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요인을 찾자면 비슷한 시기에 근대화를 시도한 동아시아 삼국 가운데 일본이 유일하게 성공한 까닭은 결국 이 좋았기 때문이다.


(37)

비스마르크는 이 포위된 지정학적 위치를 외교로 극복해낸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는 비스마르크를 존경했고, 그를 늘 모범으로 삼았다. 그는 기본적으로 외교와 협상을 통해서 자국의 이익을 늘려가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각 단계별로 형식과 절차를 갖춰서 차근차근 접근해나갔다. 그렇다고 해서 이토 히로부미가 전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류큐국(지금의 오키나와)을 복속시킨 것도, 대만을 식민지로 만든 것도, 한국을 식민지 직전까지 몰고 간 것도 모두 전쟁을 기반으로 해서 얻은 결과다. 이토 히로부미는 전쟁의 결과 얻어낸 권한을 가지고 큰 잡음 없이 식민지 확보에 나서겠다는 것이지 식민지를 포기한 것이 아니었다.


(40)

외교관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는 피를 흘리지 않으면서도 원하는 목적을 얻어내는 것에 집중했다. 이토 히로부미가 러일전쟁 직전 러시아와 비밀 회담을 가지고 전쟁을 막아섰던 것은 그가 평화주의자거나 한국에 대해 우호적인 감정을 가져서가 아니라 냉정하게 이해타산을 따지는 현실주의자였기 때문이다.


(51)

또한 이순신 장군이 입고 있는 갑옷은 조선식 갑옷이 아니라 중국식 갑옷이다. 그리고 제작자 측에서는 현충사에 있는 칼을 참고해 만들었다고 하지만, 이순신 장국의 손에 들려 있는 칼은 실제 이순신이 사용한 조선식 쌍룡검이 아니라 일본도다. 그런데 이 칼이 일본도인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 칼을 쥐고 있는 손이 오른손이라는 사실이다. 오른손에 칼을 든 것은 명백한 패장(敗將)의 항복을 의미한다.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은 우리 민족의 기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패배의 역사를 보여주는 절망적인 조형물일 수도 있다.


(97)

그런 일본이 안중근 장군의 M1900 권총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M1900은 증거품으로 분류돼 일본 검찰에 넘어갔다. 재판이 끝난 뒤에는 일본 본토로 옮겨졌다. 이후에도 계속 일본에 있었는데, 어느 순간 이 총이 사라진다. 일본은 관동 대지진 당시 분실했다고 주장한다. 1923 9 1일에 대지진이 일어나고 뒤이은 사회적 혼란과 수습의 과정에서 M1900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과연 이 말을 그대로 믿을 수 있을까?


(169)

2차 세계대전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한국전쟁에도 사용됐고 우리나라에서도 제식화기로 쓰인 BAR나 현재까지도 쓰이는 MG50 같은 총들은 예비군으로 복무해본 이라면 익숙한 무기일 것이다. 한국은 MG50을 기반으로 하여 K-6 중기관총을 만들었는데, 거의 MG50을 베낀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당대 최고의 총기 회사라 할 수 있는 윈체스터, 레밍턴, 콜트, 그리고 벨기에 FN사와 함께하며 시대를 뛰어넘는 역작들을 만들어낸 사람이 존 브라우닝이었다. 분명 브라우닝이 없었다면 현대 자동화기의 역사는 다른 식으로 쓰였을 것이다.


(188)

우리는 안중근 장군의 하얼빈 의거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당시 조건들을 현실에 그대로 대입해 보면, 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표적의 노출 면적은 상당히 적었고, 러시아군 덕분에 시야도 제한됐다. 결정적으로 표적이 이동했다. 이동하는 이토 히로부미의 측면(오른쪽 상박)을 노리는 것, 그것도 시야가 제한되는 상황에서 일곱발을 발사해 표적 넷에 여섯 발을 맞혔다는 것은 당시로서도, 지금으로서도 신기(神技)에 가까운 능력이다.


(219)

인생은 어쩌면 간단한 것이다. 인생을 걸어볼 만한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과정. 무엇인가가 가리키는 대로 나아갈지, 아니면 저어할지 선택하는 것.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안중근 장군은 온전히 자신의 인생을 살았다. 그의 짧은 인생을 안타까워하지만, 어쩌면 그는 여든, 아흔을 사는 현대의 우리보다 훨씬 더 깊고 진한 인생을 산 것인지도 모른다.


(238)

1939 10 16일 박문사에서 있었던 이 이벤트는 조선총독부의 작품이다. 격화되는 전쟁 앞에서 내선일체를 외치던 일제로서는 안준생과 이토 분기치의 만남과 화해가 더없이 훌륭한 이벤트가 될 수 있었다. “조선 초대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안중근의 아들이 30년이 흘러 아버지의 죄를 사죄하는 모습이것은 그 자체로 한일 병합의 정당성과 내선일체의 당위성을 한눈에 보여주는 그림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이 모든 것은 철저히 기획했던 이벤트다. 안준생과 이토 분기치가 박문사 단상에서 처음 만났을까? 아니었다. 이들은 이미 조선호텔에서 만나 박문사에서 어떤 동선으로 움직일지 이미 을 맞춰 놓고 박문사로 향했던 것이다.

그리고 조선총독부가 기획한 이벤트는 기대했던 효과를 냈다.


(239)

포기했을 때 패배가 시작된다. 독립에 대한 갈망이 있을 때는 아무리 희망이 없더라도 싸울 수 있다. 그러나 하나둘 무너지며 희망이 체념으로 변하면, 달아올랐던 독립에 대한 열망도 사라질 것이다. 내선일체의 진정한 목표는 우리 민족의 체념이었다.


(301)

어떤 역사학자가 내게 건넨 말이다.

한국사에서 꼭 찾아야 할 무기가 세 점 있다. 첫째는 신궁이라 평가 받는 태조 이성계의 어궁(御弓)’이다. 태조 이성계가 고려 장수 시절부터 수많은 전투에 사용하던 실전용 활로서 일제시대까지 함흥본궁에 남아 있다가 사라졌다. 둘째는 충무공 이순신의 실전검인 쌍룡검(雙龍劍)’이다. 마찬가지로 일제시대까지 종가에 전해지다가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안중근 장군의 ‘M1900’이다. 이 세 점의 무기는 한국사에서 꼭 찾아야 할 유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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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수학이 필요한 순간 - 질문은 어떻게 세상을 움직이는가
김민형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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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몇 년 전에 김민형 교수님의 <수학이 필요한 순간>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어. 학창 시절에 수학을 좀 좋아했던 편이라서, 수학 관련된 책이라서 읽었는데, 기대를 너무 많이 해서 그런지 그냥 그렇게 읽었단다. 그래서 후속편 <다시, 수학이 필요한 순간>이 나와도 읽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단다. 그런데 엄마가 <다시, 수학이 필요한 순간> 우리 집에 있냐고 물어보더라. <수학이 필요한 순간>만 없고, <다시, 수학이 필요한 순간>는 없다고 이야기를 했지. 엄마도 읽어보시겠다는데 사 드려야지.

그리고 책이 집에 도착을 하고 아빠가 먼저 읽어보았단다. 이런 책은 조용한 공간에서 좀 집중을 해서 읽어야 좀 이해가 가는데, 번잡한 출퇴근 시간에 주로 읽어서 그런지 집중도 잘 안되고 그랬단다.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수학을 배우기 시작하고, 대학에 들어갈 때도 상당히 중요한 과목으로 자리 잡고 있는 과목이고, 어떤 학과에서는 대학에서도 계속 공부해야 하는 과목. 직접 활용하기도 하지만, 많은 학문의 기초가 되는 수학. 그런 수학을 어려워하는 사람도 많이 있단다. 수학은 범위가 너무 광범위해서 수학을 쉽다는 생각하는 사람이 훨씬 적을 거야. 그런 수학을 일반 사람들에게도 쉽게 설명해주려고 노력한 책이 이번에 읽은 <다시, 수학이 필요한 순간>이라는 책이란다. 세미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실제로 김민형 교수님이 여러 분야, 여러 세대를 포함한 분들과 함께 세미나 형식의 모임을 갖기도 했다는구나. 그래서 질문과 답변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읽기는 좋았단다.


1.

이 책을 읽다 보니 아빠도 학창 시절에 배웠던 수학들이 생각이 나더구나. 원의 면적이나 구의 면적을 증명하는 것을 예전에 봤었을 텐데, 다시 보니 새롭고 재미있더구나. 원의 면적을 구하는 방법을 처음으로 생각해 낸 사람은 아르키메데스라는 유명한 고대 철학자이자 수학자란다. 원의 면적이라는 것이 결국은 원둘레를 밑변으로 하고 반지름을 높이로 하는 삼각형의 면적과 같다라는 것을 증명했단다. 이것을 증명하는 것이 책에 나오는데, 그런 생각을 해냈다는 것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구면적도 원기둥에서 아랫면과 윗면을 뺀 옆면의 면적과 같다는 것도 증명했단다.

고대의 수학은 대부분 기하학을 이용해서 설명하려고 했다는구나. 타원형 같은 경우도 원뿔을 자른 모양이라고 설명을 했대. 너희들이 고등학교에 가면 타원형을 x y의 식으로 나타나는 것을 배울텐데 현대의 수학에서는 기하학보다 수와 함수를 많이 이용한다고 하는구나. 이 책에서는 참과 거짓에 대한 논리학을 이야기해주기도 했는데, 이것은 컴퓨터의 기초가 되기도 한단다. 이 부분을 읽을 때는 대학교 때 들었던 논리학 수업이 생각나더구나. 함수 이야기를 할 때는 삼각함수에 대한 이야기도 했고, 삼각함수의 덧셈공식도 설명해 주었었어. 고등학교 시절에 참 많이 헛갈렸던 삼각함수의 덧셈공식, 뺄셈공식들…. 수학 문제가 어렵게 나온다면 삼각함수가 포함되어 있는 문제들이 있었지. 틀리기 일쑤지만 그런 어려운 문제를 풀어 답을 찾았을 때의 쾌감마저 떠오르더구나.

그리고 고등학교 수학 때 어려운 분야 중에 하나가 벡터 분야가 있었단다. 방향과 힘을 동시에 포함하기 위해 도입된 벡터. 물리에서도 등장하는데, 수학에서 문제를 어렵게 내면 정말 어려웠던 기억이 있단다. 고등학교 때 어려운 수학문제만 모아놓은 문제집이 있었는데, 그 문제집에서 아빠가 가장 어렵게 생각했던 분야가 벡터였던 걸로 기억해. 참 좌절감 많이 느끼게 하는 문제점이었지. 오늘은 책 이야기를 하는데, 자꾸 아빠의 학창시절을 자꾸 이야기하게 되는구나.^^

책의 내용은 뒤로 갈수록 점점 어려워졌단다. 확률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고, 3차원이 아닌 4차원 그리고 그 이상의 다차원을 숫자로 표시한 방법도 이야기해주고, 소리와 파동을 수식으로 나타날 때 많이 쓰는 푸리에급수에 대한 이야기도 했어. 이 부분은 아빠가 오래 전에 읽은 <수학으로 배우는 파동의 법칙>이라는 책이 생각나더구나. 그 책은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공부하는 내용을 적은 책이었는데, 그 책도 나쁘지 않았지. 역시 수학은 범위도 넓고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어려워지는구나.


2.

요즘 shawn이 로봇에 관심이 많고 코딩도 배우고 있잖니, 코딩을 배우다 보면, 알고리즘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알고리즘의 어원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 발췌해 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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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125)

규칙의 기계적인 적용만 이용해서 하는 작업을 보통 알고리즘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컴퓨터 프로그램과 알고리즘을 거의 동일시하죠. 알고리즘은 아주 단순한 단계의 축적으로 이루어진 명령의 조합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가 알고리즘이라고 보는 것들이 아주 오래전 기록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기원전 2500년경 바빌로니아에 원시적인 나눗셈 알고리즘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곱셈 알고리즘, 최대공약수 알고리즘, 소인수분해 알고리즘 등을 생각할 수 있죠. 알고리즘이라는 말 자체는 중세 이후 16시기경까지 유럽 대학에서 수학 교재로 널리 사용되던 책 <복원과 대비의 계산>을 쓴 알 콰리즈미의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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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는 원주율을 구하는 방법도 설명해주고 있는데, 갑자기 너희들이 심심풀이로 원주율(π)을 외운 일이 생각나더구나. 아빠는 여전히 3.14까지밖에 모르는데 너희들은 3.14 그 아래 몇 자리까지 더 외웠잖니. 아직 까먹지 않고 있니?^^ 책에는 더 많은 내용을 설명해주고 있는데, 그런 전문적인 내용을 다시 전달해줄 능력이 없어서 오늘은 이상으로 짧게 마치련다. 아빠가 나중에 다시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부분을 발췌해서 따로 정리해 두었는데, 너희들도 이 책을 다 읽지는 않더라도 그 부분만 같이 읽어도 좋겠더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수학이 필요한 순간>이 출간된 많은 독자가 보내온 고마운 피드백 덕분에, 비전문가에게 수학적 사고를 설명하는 과제에 대해서 나름대로 숙고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책의 끝 문장: 또 방금 보았듯이 어떤 정의가 모호해질 때마다 가능한 모든 정의를 모아놓은 집합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에 이는 상당히 고등한 개념적 도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무세이온은 일종의 연구소 같은 곳으로, 지중해 방방곡곡과 중동 등지에서 모인 다양한 학자, 물리학자나 수학자 들이 각종 시인, 문인과 어울리면서 다양한 학술 활동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아르키메데스는 지금의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섬의 시라쿠사라는 작은 도시에서 태어나 일생의 대부분을 거기서 살았지만, 공부는 알렉산드리아에서 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일부 주장에 따르면 아르키메데스가 알렉산드리아에서 수학하던 때에 유클리드에게서 배웠다고도 합니다. 이를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지만, 알렉산드리아에서 굉장히 많은 과학적 지식을 습득한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물론 유클리드라는 인물이 실제 존재했는지도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확인하기는 어렵겠지요. 당대 수많은 학자가 교류했던 무세이온과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기념하는 현대 도서관이 2002년 이집트 정부와 유네스코의 후원으로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 P53

이런 원리는 학교 교육에도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가끔은 수학의 기본 개념을 조심해서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반대로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깊은 생각 없이 효율적으로 문제를 푸는 방법을 보여줄 필요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정해진 형식을 따라 저절로 푸는 것도 중요한 훈련이니까요. 수학의 학습은 피아노 연주 같은 면이 있습니다. 기초 기술을 습득하면 반복 훈련을 해야 하고, 그게 익숙해지고 나면 그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말입니다. 흔히 수학 공부에서 암기가 중요한가 원리 파악이 중요한가 하는 질문에 제가 늘 둘 다 중요하다고 답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명료한 사고가 반드시 원리를 아는 사고만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 P98

세상에 대한 이론을 만드는 일에는 명제를 분석하는 것과 생성하는 것 모두 필요합니다. 여기서의 생성은 앞서 이야기한 명제의 합성과 논법의 적용을 둘 다 포함합니다. 이론가들이 원하는 완벽한 이론이란 분해와 생성 과정이 어디선가 만나는 경우일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그런 이론은 없고, 궁극적으로 가능한지도 불분명합니다. - P185

크세나키스는 작곡할 때 확률론을 굉장히 많이 사용했습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피아노 곡을 쓸 때 먼저 88개의 음 가운데 ‘이 곡에서 이 88개의 음을 다음과 같은 분포로 사용하겠다’ 정한 뒤 작곡을 하는 겁니다. 가령 ‘도’는 전체 음의 12%가 나오고, ‘레’는 14%, ‘미’는 37% 나오게 하는 식으로 분포를 정한 다음 작곡을 하는 거죠. 음뿐 아니라 박자, 화음, 시간 등의 음악적 요소들을 물리적인 입자와 유사하게 여기는 작곡철학과 관계 있습니다. <확률의 작용>이라는 곡에서는 맥스웰 볼츠만 분포를 많이 사용했는데요, 이는 이상 기체 안에 있는 입자들의 속도 분포를 말합니다. 이를 작품에서 선율의 속도 분포에 사용한 것이죠. - P353

우리 눈에 안 보이는 것 같지만 핵과 전자 사이, 원자와 원자 사이가 비어 있는 것이 아니고 광자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광자의 압력 때문에 통과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적당한 설명인 듯합니다. 이런 관점에서는 손으로 만지는 것이 귀로 듣는 것보다는 눈으로 보는 것에 훨씬 더 가깝습니다. 물체가 손으로 느껴지는 이유가 빛 때문이라는 의미에서입니다. - P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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