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오늘날 기계화, 자동화가 이미 깊숙이 생산 현장 속에 들어와 있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예전처럼 장시간 노동에 얽매여 있어야 할 합리적인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런데도 자본과 국가는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아이디어에 대해서 진지하게 숙고해볼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오히려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 수를 줄이거나 정규직 사원들의 비정규직화를 고집스럽게 밀어붙이고 있다 .그리고 아직 일터에서 쫓겨나지 않은 노동자들은 예전보다 더 긴 노동시간, 더 힘든 노동조건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되는 처지에 내몰려 있다.

 

(31)

여러분은 1991년 소비에트연방의 붕괴와 함께 사회주의가 죽은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2008년 이후로는 자본주의가 죽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체제 속에 있습니다. 이 체제를 나는 뱅크럽토크라시(bankruptocracy)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파산한 은행들이 세계를 지배하는 체제입니다. 은행이 파산을 크게 할수록, 이 파산한 은행이 사회의 다른 부문-산업자본과 노동을 포함한-으로부터 경제적 가치들을 동원해 소모해버리는 능력은 더욱 커집니다. 6년 이상이나 우리는 사회의 생산적 부문에서 형성된 부와 경제적 가치를 금융 영역으로 이전시켜왔습니다. 그런데도 금융 영역은 여전히 지급 불능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37)

첫째, 누군가 게으르다고 사회가 그에게 간섭을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굶주려 죽게 해야 합니까? 만약에 그게 제 자식이라면, 저는 꾸짖고 야단을 치겠지만 집 밖으로 내쫓아버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둘째, 이것이 더 중요합니다만, 어떤 일자리를 거절할 수 있는 권리는 원활한 노동시작의 작동을 위해서나 사회와 문명화를 위해서나 불가결하다는 점입니다. 그 권리, 즉 일자리를 거절할 수 있는 진정한 권리를 갖자면 대안이 있어야 합니다. 선택의 여지가 있어야 한다는 거죠. 왜냐하면 선택의 여지가 없으면 어쩔 수 없이 아무 일자리라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41)

우리의 실수는 저 순간적인 번영을 신성한 것, 영속적인 것으로 생각해왔다는 점이다. 우리가 누리는 번영이 영구적으로 지속할 것이라는 확신은 지난 10~20년간 우리가 대안적인 것이나 재생 가능한 것을 미친듯이 찾아온 까닭을 설명해준다. 우리는 현재의 정치가들을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게 하고 대중들이 평정한 기분으로 지낼 수 있게 해주는 그 무엇을 끝없이 찾아왔다.

우리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이 있을 것이며, 테크놀로지가 계속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유혹적인 세뇌작용에 길들어왔다. 우리 대다수는 무엇인가를 바라기만 하면 실현되는 풍요의 경제학을 신봉하면서,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게 실은 한정된 탄소연료에서 온다는 사실을 무시해왔다. 그리하여 우리가 돈만 들인다면 대안이 발견되어 우리의 생활양식을 유지시켜줄 것이라고 믿어왔다.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석유를 둘러싼 갈등과 싸움은 그게 그렇지 않을 것임을 알려준다. 세계 석유경제의 중심축은 사우디아라비아이다(‘사우디아메리카라는 개념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것인가는 여기서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그러나 모래언덕과 높은 탑들로 이루어진 저 환상의 땅은 지금 세계 석유의 동맥이 끊어지면 선진 산업사회들이 죽어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광신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63)

우리가 애써 노동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진정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 그를 위해 사회적으로 어떤 조건들을 확보해야 하는지, 우리 자신이나 다른 나라의 경험은 무엇인지, 그 속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 이런 질문들을 부단히 던지고 공부하며 함께 손잡고 나아가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노동자의 경영참여에 대해 이분법 내지 흑백논리 식의 찬반 논란에 머물 일이 아니라, 서울시의 선구적 시도를 계기로 현재의 조건 속에서나마 경영참여의 폭을 넓혀나가면서도 현장 조직력과 교섭력을 기초로 연대성을 강화해 마친내 (자본독재라는) 두꺼운 벽을 허물겠다는, 보다 긴 안목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다. 열린 마음으로 모이고 배우고 나눠야 한다. 참자유(liberty)를 위해선 노동과 자본, 권력과 국가의 굴레에서 해방(liberation)되어야 한다. 세상에 공짜가 없듯이, 제대로 된 변화는 결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75)

“GMO작물을 재배하면 안되는 겁니다. 지금까지는 ‘GOM 반대이런 형태로 운동을 해왔습니다만 이 시작부터는 그렇게 해가지고는 안됩니다. 이 정부나 몬산토가 절대 중단하지 않습니다. 안정성 검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다 몬산토 장학생들입니다. 볼 것도 없이 다 안전하다이렇게 결정이 될 겁니다. 기반 확충을 다 해놓고 바로 심도록 돼 있는데 우리 국민들이 절대 용서해서는 안됩니다. 어떤 형태로든지 막아야 합니다. … Non-GMO에 대한 법을 지금 식약처에서 바꾸려 하고 있습니다. ‘내가 농사지은 것이 GMO 아니다이렇게 표시하면 (법에) 걸린다는 겁니다. 우리 국민들은 GMO를 안 먹기 때문에 농민들은 이것은 GMO가 아닙니다.’하고 붙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위법이라는 겁니다. 이런 못된 짓을 하는 게 이 정권입니다.

 

(78)

한국에서 GM농산물에 대한 검역 및 검사 제도와 GMO 표시 제도는 있으나 마나 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유전자조작 DNA 또는 단백질이 검출되지 않은 식품은 표시를 안해도 된다는 것이 한국의 GOM표시제도이다. 이에 따라 간장, 식용유, 당류 등과 같은 식품은 표시를 안해도 된다. 그런데 한국이 수입하는 유전자조작 콩, 옥수수, 카놀라의 대부분이 식용유, 간장, 전분당 원료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GMO표시제도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같은 허술한 제도 때문에 식용 유전자 조작작물 수입이 세계 1위이고 수많은 가공식품들이 이를 원료로 만들어지고 있지만 GMO 표시가 된 제품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처럼 한국이 이미 GM농산물의 주요 소비처가 된 가운데, 국내에서도 GM농산물 생산이 추진되고 있으며 그 중심지는 농촌진흥청이 있는 전북혁신도시이다.

 

(83)

세계적 거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 부부는 몬산토 주식 20%를 소유하고 있다. 그가 아프리카를 돕겠다며 GMO곡식을 무상 원조하겠다고 나섰다가 짐바브웨가 거부하여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됐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사람이 먹어서는 안될 GMO 따위는 안 받겠다고 거부 의사를 밝힌 것이다. 이러한 GOM작물을 한국정부에서는 상용화하겠다며 이를 추진하고 있다.

 

(110)

금주주의사회가 되면서 생명의 소중함이 잊혀졌다. 생명은 매뉴얼대로 되지 않는다. 생명은 각각이 특유한 삶의 방식을 고집스럽게 가지면서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 환경은 다양한 생명들로 구성되어서 자신의 생명대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바로 그 환경을 문명의 힘으로 억눌러서 수탈해온 것이 물량물량이었던 것 아닐까.

 

(115)

혹독한 미애에 대해서 절망할 필요는 없다. 절망적인 미래이기 때문에 오히려 삶의 힘에 자신을 가지고 받아들일 수 있다. 물량문명의 파탄이 가깝다. 인류의 멸망도 가까울지 모른다. 중동의 참극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불신과 증오가 뒤덮고 정의의 가면을 쓴 힘들이 서로 싸우는 악순환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 자신의 정의와 상대의 약함을 맹신한 채 힘이 충동하고 있다. 이라크의 후세인 대통령의 불행을 보아서일까. 북한의 김정은은 핵무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불신을 선동해서 전쟁준비를 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곤란한 상황이라며 인상만 쓰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그러나 힘에 의해서 나아가는 부조리를 다른 힘으로 멈출 수는 없다. 힘에 의한 것이 아닌 다른 길을 찾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생활을 바구고 사치스러운 식생활의 물량문명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힘에 의한 문명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 생활의 문화를 찾아야 한다. 주어진 풍토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지혜를 소중히 해야 한다. 다양한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데는 기쁨도 있다. 그러한 삶의 방식을 택한다면 평온하고 조용한 행복이 약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참한 파국을 저지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포기할 수도 없다. 파국을 막는 노력은 정신의 개벽으로부터 시작되고, 이를 위해서는 원한과 증오 그리고 보복의 악순환을 끊는 해원상화가 필요하다. 공감하고 협조하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동원도리를 기초로 하여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필요할 것이다.

(136)

우리사회가 20대 총선에서 희망과 절망의 기로에 서 있다고는 볼 수 있는데, 전체적인 표심을 보면 적어도 절망으로 가는 것은 안돼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오만한 권력에 대해서 그렇게는 안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한편으로 진보정당에 대한 평가를 하자면, 사실상 진보정당은 대중에게 의미 있는 세력으로서 평가를 못 받은 거죠. 일반 대중이 던지는 메시지가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그렇게 해가지고는 당신들을 미래의 대안 세력으로 볼 수 없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준 거예요. 저는 이 점에 대해서 뼈저린 성찰을 기대하는데, 유감스럽게도 아직 그런 조짐이 보이지 않습니다.

 

(139)

거칠게 평가하자면 이번 선거는 보수당들의 승리로, 진보정당들이 그 존재가치를 대중들로부터 외면당했다고 정리하는 것이 맞겠죠. 진보정당 국회의원들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그게 유의미한 정도의 당선인가라는 의문이 있습니다. “비빌 언덕이 있으니 이것을 키워나가면 되지 않겠느냐하는 생각을 저는 경계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1987년 민주화투쟁으로 만들어졌던 열기, 노동자 대중과 농민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민주노동당, 어떻게 보면,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관통하면서 만들어졌던 운동에 뿌리를 둔 민주노동당이 사실상 이번 선거를 통해 그 생명을 다했다고 평가하는 게 솔직한 것 아닐까요. 3당의 지위, 즉 캐스팅보트를 쥔 추게도 끼지 못하는, 매우 미약한 존재로 전락했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요. 그리고 과연 이러한 상태로 계속 갈 때 진보정당이 위력적인 세력으로서 존재를 드러내게 될 가능성이 있을까. 현재 자신들에게 주어진 조그마한 지분을 나누어 가지고 겨우 숨만 쉬면서 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습니다. 이번 선거로 고공에 올라간 노동자들이 내려왔습니까? 백남기 농민에 대한 정치권의 태도가 달라졌나요? 유성기업 한광호 열사에 대한 해법이 보입니까? 공권력에 의해 노동자들이 짓밟히고 있는 현실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공권력의 창끝은 종전에 마찬가지로 가혹하게 노동자와 민중들을 향하고 있단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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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 핸드북 삶과 전설 4
힐다 바리오 외 지음, 윤길순 옮김 / 해냄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참고] 기억력에 의한 내용상 오류 있을 수 있음.

 

[사진으로 만나는 체 게바라]

얼마 전에 최진기의 <일생에 한 번은 체 게바라처럼>을 읽었다. 그 책에서 인용한 체 게바라가 한 말들 중에 가슴을 뛰게 하는 말들이 있었다. 그래서 체 게바라를 읽어보고 싶었다. 아주 오래 전에 읽은 <체 게바라 평전>을 다시 집어들 수도 있겠지만, 다른 책을 한번 읽어보고 싶었다. 우리나라에도 체 게바라에 관한 책들은 아주 많이 출간되어 있어서 그에 관한 책은 쉽게 접할 수 있다.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하나 골랐는데, 그 책이 바로 <체 게바라 핸드북>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세 사람이 공저로 되어 있는데, 물론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모두 쿠바 사람들이다. , 지은이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이 책을 펴보는 순간, "와우" 작은 탄성이 나왔다. 왜냐하면 이 책은 내가 생각했던 그런 책이 아니었다. 이 책은 체 게바라 화보집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많은 분량이 사진이 담겨 있었다. 생각했던 그런 종류의 책이 아니라서 실망한 것은 아니고, 오히려 많은 사진을 통해 체 게바라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의 사진부터 그의 전 생애에 걸쳐 찍은 사진이 담겨 있었다. 심지어 죽고 난 후, 그의 시신의 사진도 실려 있었다.

겉표지는 그의 우수에 찬 깊은 눈동자를 가진 체 게바라가 시가를 물고 있는 사진인데, 담배 피는 모습이 이렇게 멋있으면 금연 운동에 방해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체 게바라의 사진들을 보면 시가를 물고 있는 사진이 꽤 많다. 그만큼 담배를 사랑했는데, 이유가 좀 의아했다. 체 게바라는 어렸을 때부터 천식을 심하게 앓았다. 그의 천식은 평생 그를 따라 다녔는데, 담배가 천식을 완화시키는데 도움이 되어서 피었다고 한다. 나는 분명 그렇게 읽었는데,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담배가 천식에 도움이 되는 게 맞나?

그의 사진 중에는 담배를 물고 있는 사진이 많다고 했는데, 그것만큼 또 많은 사진이 있는데, 그것은 책을 보거나 무엇인가 쓰는 사진이다. 총탄이 오가는 전쟁터에서도 그는 늘 읽고, 무엇인가 썼다. 수첩 같은 것을 늘 갖고 다녔고, 자신의 생각을 썼다. 그래서 그가 그렇게 많은 어록을 남긴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유시민도 그랬고,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수첩을 언제가 가지고 다니는 것 같다. 나도 그러려고 하는데, 가방이 없는 경우는 그러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가방 속에 작은 수첩을 넣고 다녀도 그것을 꺼내는 것이 습관이 되지 않았다. 좀더 노력해보려고 한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을 바로 적는 습관을 가지려고 노력해봐야겠다.

 

[]

체 게바라는 알려져 있다시피 아르헨티나 출신이다. 그리고 그는 대학 시절 친구 알베르토 그라나도와 함께 라틴 아메리카를 횡단하는 여행을 했다. 그 여행은 그에게 있어 인생의 항로를 바꾼 위대한 여행이 되었다. 어쩌면 그 여행부터 그는 혁명을 꿈꾸지 않았나 싶다. 그의 이 위대한 여행은 영화 <모터 사이클 다이어리>란 영화로도 만들어졌었다. 그가 여행을 할 때 오토바이를 타고 했고, 늘 일기를 썼기 때문에 그런 영화 제목으로 하지 않았나 싶다. 이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이런 영화가 있다는 것은 기억이 난다. 언젠가는 보겠지. 세상에는 볼 책들도 많고, 볼 영화들도 참 많구나.

체 게바라는 본명이 아니다. 그의 본명은 에르네스토. 에르네스토 게바라. 니코 로페스라는 쿠바 사람이 에르네스토에게 붙여준 별명이 ''라고 한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처음 대화를 시작할 때, ''라고 말하는 습관이 있는 것을 보고 붙인 별명이라고 한다. 대충 "이봐, 자네"라는 뜻이란다. 아무튼, 아주 간단한 이 별명은 나중에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본명보다 더 많이 알게 되었다.

그는 왜 투쟁을 할까? 그는 무엇을 위해 싸울까? 그는 이미 자본주의가 잘못된 체제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는 많은 모순점을 가지고 있지만, 세상을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주의'로 군림하고 있다. 이것에 대한 병폐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 자본주의는 제국주의와 맞물려 저개발 국가들을 억압한다는 것이 체 게바라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런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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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델 카스트로와 만난 뒤 체는 자신이 필요한 곳에서는 어디서나 사회주의를 위해 싸웠다. 시에라 마에스트라에 있을 때나 나중에 아바나에 있을 때나 마찬가지였다. 그의 목표는 제국주의를 무너뜨리는 것이었고, 그에게 제국주의란 저개발 국가들을 억압하는 전세계적인 자본주의 체제였다. 따라서 쿠바에서 투쟁에 참여한 것도 체에게는 그런 투쟁의 일환이었고, 그는 그것이 아메리카에 있는 다른 나라로,

그중에서도 특히 그가 태어난 아르헨티나로 확산되기를 바랐다. (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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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싸움이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던 것은 민중과 하나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

민중의 영웅은 민중과 분리될 수 없으며, 우상으로 떠받들어져 민중의 삶과 동떨어진 것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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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혁명을 성공한 다음에도 그는 만족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많은 나라들이 여전히 제국주의의 강압에 억눌려있으니까 말이다. 그는 쿠바 행정부에서 중요한 일들을 하였지만, 그는 늘 다른 나라들의 억압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또다시 혁명의 길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또 한번의 혁명의 꽃을 피우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그의 아이들]

이 책에서 가장 감명 깊은 부분은 체 게바라가 자신의 아이들에게 남긴 유서다. 그가 쓴 글에 감정이입을 해서 읽었더니 울컥했다. 그는 그런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두고 혁명의 길을 떠났다니.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이번 리뷰는 그가 아이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로 끝을 맺는다.

==================================

사랑하는 일디타, 알레이디타, 카밀로, 셀리아, 에르네스토에게

혹시라도 너희들이 이 편지를 읽어야 한다면

그건 내가 이제 너희들과 같이 있지 못하기 때문일 거야.

무엇보다도 세계 어디서든 불의가 저질러지면 그것에 깊이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게 어떤 불의이건 어떤 사람에게 저질러진 불의이건 상관없이

이게 혁명가가 가진 가장 아름다운 자질이란다.

아이들아, 영원히 안녕. 하지만 넌 아직도 너희를 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단다

사랑을 듬뿍 담은 정다운 입맞춤과 포옹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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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는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를 수정하여 작성함.

 

피델 카스트로와 만난 뒤 체는 자신이 필요한 곳에서는 어디서나 사회주의를 위해 싸웠다. 시에라 마에스트라에 있을 때나 나중에 아바나에 있을 때나 마찬가지였다. 그의 목표는 제국주의를 무너뜨리는 것이었고, 그에게 제국주의란 저개발 국가들을 억압하는 전세계적인 자본주의 체제였다. 따라서 쿠바에서 투쟁에 참여한 것도 체에게는 그런 투쟁의 일환이었고, 그는 그것이 아메리카에 있는 다른 나라로,
그중에서도 특히 그가 태어난 아르헨티나로 확산되기를 바랐다. (329쪽)

민중의 영웅은 민중과 분리될 수 없으며, 우상으로 떠받들어져 민중의 삶과 동떨어진 것이 될 수 없다.

사랑하는 일디타, 알레이디타, 카밀로, 셀리아, 에르네스토에게
혹시라도 너희들이 이 편지를 읽어야 한다면,
그건 내가 이제 너희들과 같이 있지 못하기 때문일 거야.
무엇보다도 세계 어디서든 불의가 저질러지면 그것에 깊이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게 어떤 불의이건 어떤 사람에게 저질러진 불의이건 상관없이.
이게 혁명가가 가진 가장 아름다운 자질이란다.
아이들아, 영원히 안녕. 하지만 넌 아직도 너희를 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단다.
사랑을 듬뿍 담은 정다운 입맞춤과 포옹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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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책 속에 심어놓은 생각과 감정을 읽어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세계와 인간과 나 자신을 더 깊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공부의 한 면이고, 그렇게 해서 생각하고 느낀 것을 문자로 옮기는 글쓰기는 공부의 다른 면입니다. 세상을 대하고 나를 대하고 타인을 대하는 태도나 방식을 정할 때, 우리는 독서를 통해서 얻은 정보와 지식을, 책을 읽으면서 느낀 감정을 활용해요. 그래서 어떤 책을 어떻게 읽는지에 따라서 사람의 감정과 생각이 바뀌며, 감정과 생각이 달라지면 행동도 달라집니다. 정치권력자가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려 한다면, 그것은 바로 그런 점을 알고 하는 행동입니다.

 

(64)

저 같은 먹물은 그럴 때 책을 폅니다. 지금까지 내가 텍스트를 읽으면서 얻은 지식과 정보와 감정을 활용해서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를 결정해왔는데 뭔가 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옛날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어봤습니다. 어려서 읽었을 때하고는 무척 다르더군요. 신기했어요. 그래서 쓰게 된 책이 <청춘의 독서>(2009)입니다. 그 책을 쓰면서, 내가 달라지면 같은 텍스트도 다르게 해석하게 되고, 텍스트를 다르게 해석하면 그 해석을 토대로 한 삶의 태도도 달라진다는 걸 경험했습니다.

 

(74)

공부는 인간으로서 최대한 의미 있게 살아가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학위를 따려고, 시험에 합격하려고, 취직을 하려고 공부를 할 때도 있지만 공부의 근본은 인생의 의미를 만들고 찾는 데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고 공부를 할 때는 내가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결정하는 데 참고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인쇄된 책이 기독교 성경이라는데,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누구나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거기에서 찾을 수 있거든요.

 

(105)

자식 기르는 부모로서 제가 스스로를 위로하는 말이 있습니다. 자식이 왜 있느냐? 세상사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가르쳐주려고 자식이 있는 거랍니다. 공부를 잘 하든 그렇지 않든 다 그렇다는군요. 고마운 분들이지요!

 

(130)

책에서 위로받고 싶다면 위로받을 준비를 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스스로 책에서 위로를 찾아내야 하기 때문에 준비가 된 사람만 위로받을 수 있어요. 준비가 안 되어 있으면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제가 직업 정치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부사>가 눈에 들어온 거죠. 정치에 계속 미련이 있고, 낙선한 게 분하고, 다음에는 꼭 당선되고야 말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었다면 그 문장이 보이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 사람은 <어부사>가 아니라 <손자병법>을 읽어야 합니다. 다음에 이렇게 하면 이길 수 있겠다, 그런 희망을 찾아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죠. 결국 책 속에서 위로를 발견하는 건 책을 읽은 사람 자신이에요.

 

(131)

야박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진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너무 자주 위로받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함부로 남을 위로하려고 하지도 마시고요. 삶은 원래 고독한 것이고, 외로움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감정입니다. 견딜 만큼 견뎌보고, 도저히 혼자서 못 견뎌낼 때 위로를 구하는 게 좋은데, 요즘은 다들 위로를 남발하는 경향이 있어요. 저는 그런 게 좀 못마땅합니다. 청년단체 같은 데서 강연 요청하면 꼭 힘들게 사는 청년들에게 위로가 되는 말씀 부탁드립니다.’ 그러거든요. 그러면 저는 죄송합니다. 강연 못 합니다.’ 그래요. 남에게 위로를 구하기보다는 책과 더불어 스스로 위로하는 능력을 기르는 쪽이 낫다고 저는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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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정복 - 개정판
버트란드 러셀 지음, 황문수 옮김 / 문예출판사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참고] 기억력에 의한 내용상 오류 있을 수 있음.

  

[버트런드 러셀이라는 사람]

이 책은 얼마 전에 읽은 책을 통해서 알게 된 책이라고 생각했다. 왜 이렇게 이야기를 하냐면... 나의 기억력 때문이다. 분명 얼마 전에 읽은 책(이것도 어떤 책이었는지 좀 헛갈린다.)에서 처음 알게 된 줄 알았다. 그런데, 며칠 전 책장에서 <법정 스님이 추천하는 책들>이라는 책을 우연히 펼쳐봤다. 그 책을 읽고 나서 꽤 지났으니, 법정 스님이 추천한 책들을 그 동안 얼마나 읽었나 갑자기 확인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책에 나와 있는 책 목록 중에 이번에 읽은 <행복의 정복>이 있었다. , 이 책을 법정 스님도 추천해주셨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그 때 이 책에 대한 소개를 받았었구나. 그런데 모두 잊혀졌구나... 하는 기억력 좌절을 깊게 느꼈다.

아무튼,,,  <행복의 정복>이라는 책은 버트런드 러셀이라는 사람이 1930년에 쓴 책이다. 읽을 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1930년은 세계대공황으로 세상 많은 사람들이 불행과 절망의 깊은 늪에 빠져 있던 시기였다. 혹시 지은이 버트런드 러셀은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행복에 관한 책을 쓴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지은이 버트런드 러셀. 분명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름은 무척 익숙하다. 아무래도 그 사람이 남긴 문구들이 여기저기 많이 소개되어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냐 하면, <행복의 정복>을 읽으면서, 발췌한 글들이 무척 많았다. 공감하는 글들이 정말 넘쳐났다. 그만큼 나도 행복을 절실히 원하고 있나? 싶기도 했다. 가만히 생각하면 난 지금 무척 행복하다. 그런데도 더 행복을 원하는 것인가?

지은이 버트런드 러셀은 수학과 도덕과학을 전공했고, 사상가, 철학자, 수학자로 활동했다고 한다. 그리고 아흔의 나이에는 핵무기 반대에 앞장서고, 시민 불복종 운동에 앞장섰다고 한다. 정말 열정적인 삶을 산 사람이다. 노벨문학상도 수상했다고 한다.

 

[우주적 중요성을 갖지 않는다.]

예전에 우주과학에 관한 책들을 읽고 나서 느낀 바가 있었다. 그것은 아무리 힘들고, 걱정을 해도 범우주적으로 봤을 때는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깨달음이다. 그래서 힘들거나 걱정거리가 생기게 되면, 범우주적으로 생각하고 심호흡을 하곤 했다. 그런데 큰 효과를 보곤 했다. 그래서 친한 사람들한테도 그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때 울렁증이 있다. 그때도 범우주적으로 생각해보자고 하면 그 울렁증이 줄어들곤 했다. 그런데, 이 책의 지은이 또한 그런 이야기를 해서 무척 신기했다. 지은이도 처음 강연을 할 때 많이 떨었다고 한다. 그 때 지은이도 우주를 생각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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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강연을 잘하든 못하든 상관이 없으며, 잘하든 못하든 우주에는 변화가 없다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그리하여 강연의 성공 여부에 개의치 않으면 않을수록 강연이 덜 서툴러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분에 점차로 신경의 긴장이 감소되어 결국엔 거의 긴장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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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불행이 닥쳤을 대도 우주를 생각해보라고 했다. 그러면 나의 불행이나 최악의 상황이 결 우주적 중요성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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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불행이 닥쳐왔을 때 진지하고 신중하게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를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보라. 일어날지도 모를 불행을 직시한 다음에는, 그 불행이 그렇게 두려운 재난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는 정당한 이유를 열거해보라. 그런 이유는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나빠보았댔자 내 한 몸에 일어나는 일이 결코 우주적 중요성을 갖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당신이 얼마 동안 최악의 가능성을 갖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당신이 얼마 동안 최악의 가능성을 응시한 후, 진정한 확신을 가지고 “좋아, 그까짓 것 별 문제 아닐 거야”라고 자기 자신에게 말했을 때 당신은 당신의 걱정이 놀라울 정도로 감소된 것을 알게 되리라. 이러한 과정을 몇 번은 되풀이해야겠지만 아무튼 당신이 최악의 사태를 직시하는 데 있어서 아무것도 회피하지 않게 되었다면 당신은 당신의 걱정이 말끔히 사라지고, 그 대신 일종의 쾌감이 생긴 것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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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행의 원인과 행복의 원인]

이 책은 아주 깔끔하게 정리해 주고 있다.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에는 불행의 원인, 2부에서는 행복의 원인을 이야기하고 있다. 제목만 봐도 1부에서 불행의 원인을 알아보고, 2부에서는 행복의 원인을 알려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소제목을 보면, 그가 생각하는 불행의 원인과 행복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먼저 불행의 원인에서 다룬 부분의 소제목들 살펴보면 경쟁, 피로, 질투, 죄의식, 피해망상, 여론에 대한 공포 등이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들일 수 있지만, 그는 자기만의 사상과 철학으로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그런 것들이 나의 생각과 차이가 나는 것들이 있었지만, 결국 나의 생각이 틀렸고, 그의 생각이 맞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권태로움에 대한 자세. 나는 권태로움은 좋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좀더 재미있는 것을 접하게 해주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은이는 어린이들에게 너무 자극을 많이 주지 말라고 한다. 자극은 마약과 같아서 점점 더 많은 양을 필요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단조로움에 참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는 한다. 이 부분을 읽고 우리집 아이들에게 한번 시험해 보았다. 주말에 집에 있을 때 아무것도 안 하는 "멍때리기" 놀이를 해보자고 했다. 아이들이 멍이 날 때까지 때리는 놀이냐면서 농담을 하긴 했지만, "멍때리기"가 어떤 것인지 이야기를 해주고, 직접 해보니, 오래 있지 못하고 무엇인가 재미를 찾으려고 하였다. , 정말 아무것도 안 하는 "멍때리기"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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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의 단조로운 생활을 참는 능력은 어린 시절에 길러야 한다. 현대의 부모들은 이 점에서는 크게 비난 받아 마땅하다. 현대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쇼라든가 맛있는 음식 따위의 수동적인 오락을 지나치게 제공하는 반면, 특별한 때를 제외하고는 다른 날과 변함없는 하루를 보내는 일이 어린이들에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어린 시절의 즐거움은 주로 약간의 노력과 창의력에 의해서 어린이 스스로가 자신의 환경으로부터 찾아내는 것이라야 한다. 예컨대 영화 구경처럼 자극적이지만 육체적 노력이 전혀 필요 없는 즐거움은 아주 드물게 주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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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2부 행복의 원인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열의, 사랑 가족, , 일반적 관심사, 노력과 체념 등이 있었다. 대부분 수긍이 가는데, 일과 체념은 생각해 봐야겠다. 분명 회사에서 생활은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다반사인데 행복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은이도 일에 대해서는 행복의 원인으로 볼 것인가, 또는 불행의 원인으로 볼 것인가는 쉽게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문제라고 했다. 그래도 일을 가지고 있는 것은 여러 가지로 봤을 때 행복을 가져다 준다고 그는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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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행복의 원인으로 볼 것인가, 또는 불행의 원인으로 볼 것인가는 쉽게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문제이다. 확실히 대부분의 일은 지나치게 따분하며, 과도한 노동은 언제나 매우 고통스럽다. 그러나 일이 그 양에 있어서 과도하지만 않다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덜 고통스러우리라고 생각한다. 일의 성질과 일하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 단지 권태를 덜어주는 것으로부터 가장 시원한 기쁨을 주는 것에 이르기까지 일에는 온갖 단계가 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들은 대체로 일 그 자체로 흥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일에도 커다란 이점이 있다. 우선 하루 시간의 대부분을 메워주므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할 필요가 없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시간을 쓸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면 해볼 만하고 보람이 있으며 충분히 즐거운 일을 생각해내느라 쩔쩔맨다. 그리고 그들이 결정을 내렸을 때에는 다른 일이 좀더 유쾌하지 않을까 하는 의혹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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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체념... 처음에는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체념이 왜 행복의 원인인지 곧 알게 되었다. 갖지 어려운 것에 대한 집착... 그것은 곧 불행의 씨앗이 되는 것이다. 때로는 집착을 버리고 체념하는 것이 마음의 평온을 가져오고 행복을 주게 되는 것이다.

 책을 덮고 나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 부분을 컴퓨터로 한 자 한 자 치면서 다시 읽어 보았다. 다시 한번 공감을 갖게 되었고, 처음 읽었을 때 깨닫지 못했던 생각들을 다시 만들어내기도 했다. 누군가 힘든 시절을 지내고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해 주고 싶다. 그리고 지은이 버트런드 러셀의 다른 책들도 더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깊게 들었다.

 

 

 

※ 이 리뷰는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를 수정하여 작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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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일요일 아침 일찍 아들을 데리고 공중목욕탕에 가는 거야. 발가벗은 몸으로 탕 안에서 물장난도 치고, 아이를 끌어안고, 얼굴도 맞부비고 하는 거야. 그보다 더 좋은 스킨십, 깊고 뜨거운 정 나누기가 어디 있겠는가. 거리를 두고 사랑한다는 말 백번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가 크지. 그리고 아빠의 등을 밀게 하고, 아들의 등을 밀어주고 하면서 얘기를 나누는 거야. 우리 아들이 쑥쑥 잘 크네. 아빠는 매일 너랑 재미있게 살고 싶은데 회사 일이 바빠서 그렇게 못하는 것 알지? 아빠가 늘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우리 아들이 잘 이해할 수 있지? 그런 말 한마디로 아이는 아빠의 속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그동안의 불만이나 서운함도 싹 씻겨나가는 거야. 그리고 떡뽁이 내기 배드민턴도 치고, 아이스크림 내기 축구도 하고, 피자 내기 농구도 하는 거야. 서로 몸 부딪치고, 땀 흘리고 하면서 아빠와 아들의 정이 얼마나 깊어지고 두터워지겠어.

 

(1-77)

부모로서 해줄 단 세 가지

-       박노해

 

내가 부모로서 해줄 것은 단 세 가지였다

 

첫째는 내 아이가 자연의 대지를 딛고

동무들과 마음껏 뛰놀고 맘껏 잠자고 맘껏 해보며

그 속에서 고유한 자기 개성을 찾을 수 있도록

자유로운 공기 속에 놓아두는 일이다

 

둘째는 '안 되는 건 안 된다'를 새겨주는 일이다

살생을 해서는 안 되고

약자를 괴롭혀서는 안 되고

물자를 낭비해서는 안 되고

거짓에 침묵 동조해서는 안 된다

안 되는 건 안 된다!는 것을

뼛속 깊이 새겨주는 일이다

 

셋째는 평생 가는 좋은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자기 앞가림은 자기 스스로 해나가는 습관과

채식 위주로 뭐든 잘 먹고 많이 걷는 몸생활과

늘 정돈된 몸가짐으로 예의를 지키는 습관과

아름다움을 가려보고 감동할 줄 아는 능력과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홀로 고요히 머무는 습관과

우애와 환대로 많이 웃는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1-142)

언제나 공부하고 싶게 분위기를 만들었고, 어렸을 때부터 재미있는 놀이하듯이 함께 공부하고는 했습니다. 아내는 아이의 지배자나 통솔자가 아니라 협조자나 보조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습니다. 아내는 학교에서 교사 노릇을 할 때와 똑 같은 태도를 취했습니다. 특히 초등학교 때부터 책을 많이 읽혔는데, 언제나 아내도 함께 읽었지요. 그리고 반드시 독후감을 토론했습니다. 그런 때는 저도 참석하려고 최대한 노력했습니다. 그 토론 시간이야말로 복합적인 교육 효과를 내는 최고의 방법이었습니다. 그 작품에 대한 이해력을 확대하고, 독해력을 증진시키며, 상상력을 자극시키고, 논리력을 구축해 하고, 언어 구사력이 신장되고, 발표력이 강화되고, 글쓰기 용구가 강력해지는 등 그 효과는 예상 이상이었습니다.

 

(1-144)

어린 자식이 있다면 최선의 능력을 다해 돕고 지도하고 보호해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공간을 허용하는 일이다. 존재할 공간을. 아이는 당신을 통해 이 세상에 왔지만, ‘당신의 것이 아니다.   – 에크하르트 톨레

 

 

(2-14)

아니, 영어를 그렇게 한다고 자신이 잘된다는 보장이 있나?”

영어가 국제어니까 세계 어디서나 통할 수 있고, 그 능력을 갖추면 잘살게 된다는 계산인 거지.”

그거 좀 이상한 계산이잖아. 국민 모두가 영어를 쓰는 직업을 갖고 세계를 돌아다니는 것도 아닐 텐데.”

나도 잘 모르겠어. 어쨌든 역대 대통령 두어 명이 고맙게도 영어 조기교육을 외쳐대는 바람에 그 경쟁은 갈수록 심해진 것이 분명한데, 우린 그 고마우신 대통령들 덕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지.”

 

(2-42)

, 언어가 인간을 지배한다는 말 고등학교 때 배웠지? , 언어는 인간의 영혼을 경작한다는 말도. 지금 한국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우리 미국의 문화식민지가 되려 하고 있어. 우린 얼마나 고마운 일이야? 벌써 그 현상들이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그 많은 아파트들의 이름이 거의 다 영어고, 그 많은 상점들의 간판도 날마다 영어가 늘어나고 있고,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들의 브랜드도 거의 다 영어고, 심지어 텔레비전 프로그램 이름이나 한글 신문들의 지면 타이틀까지도 영어투성이야. 이런 식으로 한 20년쯤 가면 한국은 어떻게 되겠어? 자기네 글 천대하고 우리 영어 떠받드는 문화식민지로 변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 너와 나 같은 사람은 위대한 공헌자가 되는 거고.”

 

(2-55)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 차량의 과잉 경호로 일반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쳐서는 안 되니까 대통령 차도 일반 신호를 지키는 게 좋다이런 내용의 발언을 할 정도로 그는 민주주의의 처녀성을 지키고자 했던 사람이었어. 그래서 마음먹고 시작한 것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환원 추진이었지. 그런데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도 경제 세력들과 보수 언론의 전면적 방해에 부딛쳤던 그는 그때보다 더 강한 적들을 만나게 되었지. 비정규직의 정규직 환원은 바로 대기업 집단인 재벌들의 재산을 축나게 하는 것이었고, 재벌 회사들의 광고로 언론 권좌를 누리고 있는 보수 언론들은 순식간에 똘똘 뭉쳐 한 덩어리가 됐어. 자본주의국가에서 그 두 세력의 일치단결은 대통령의 권한을 압도하는 거야. 대통령은 그 저항에 맞서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절충안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지.

 

(2-90)

교육이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의 실천이었다. 지식의 일깨움이나 전달은 그다음이었다. 그런데 세태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그 반대로 세찬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니, 그 반대라고 할 수도 없었다. 공부가 강조되고, 경쟁이 신봉되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은 실종되어 그 자취가 묘연했다.

 

(2-213)

아무도 눈 여겨보지 않는 그 어린 청소년들은 어쩌면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 같은 존재들인지도 모른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2-283)

공부란 그게 재미가 있어서 자꾸 하고 싶어지는 사람만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지.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는 사람들까지 죽자 사자 매달린 필요는 없는 일입니다. 인생살이에서 공부란 취지에 따라, 필요에 따라 적당하고 알맞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무한 경쟁이라는 황당한 깃발을 내걸어놓고 서로 1등 하겠다고 혈안이 되어 교육 광풍을 일으키고 있지 않습니까. 어리석기 짝이 없는 체력 낭비고, 금력 낭비고, 인생 낭비입니다. 아이들의 인생은 아이들이 주인이고, 주인공입니다. 그들이 싫어하는 일을 강요하지 말고, 그들이 좋아하는 길로 가도록 도와주십시오. 그게 부모의 참된 역할입니다.

 

 

(3-320)

교문을 나서다가 송채연은 학교를 뒤돌아보았다.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준 보금자리…… 혁신학교의 3대 정신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경쟁 아닌 협력’, ‘주입 아닌 토론’, ‘배제 아닌 배려’, 그 세 번째 정신에 의해서 자신은 지옥에서부터 천당으로 구원을 받은 것이었다. ‘배제 아닌 배려’, 그것은 일반학교에서는 꿈꿀 수 없는 것이었다. 일반학교는 우열반을 편성해 공부 좀 못하는 학생들을 노골적으로 차별하고 배제시키는 일을 능사로 삼고 있다.

 

(3-330)

우리가 선망하는 선진국들 중에서 일본 하나만 빼고 그 어떤 나라가 이름표를 달게 합니까. 이제 우리는 우리 교육계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일제 잔재를 제거하고 청산하는 차원에서도 이름표 달기를 폐지해야 합니다. 일제 잔재를 다른 분야도 아닌 교육계에서 해방 70년 세월이 흐르도록 이렇게 무신경하고 무책임하게 방치하고 답습하고 있다는 것은 민족적 수치이고, 교육적 자해 행위입니다. 우리 교육계에는 일제 잔재가 너무나 많습니다. 이름표를 붙이는 것과 함께 성적표에 석차를 공개적으로 표시하는 것도 일본과 우리나라만 하고 있는 일제 잔재입니다. 달달 외우에 하는 주입식 암기 교육도 일본과 우리나라만 하는 일제 잔재입니다. 학생 지도로 체벌을 가하는 것도 일제 잔재입니다. 두발 길이를 제한하고 단속하는 것도 일제 잔재입니다. 교육을 꼭 입히는 것도 일제 잔재입니다. 학제가 6-3-3-4인 것도 일제 잔재입니다.

 

(3-337~338)

그래서 그들이 맨 처음 버리기로 한 것이 체벌이었다. (중략) 두 번째로 버리기로 한 것이 학생들이 가장 지긋지긋해하는 교문 지도라는 강압적 단속이었다. 이거야말로 식민지 백성의 일거일동을 감시하고 단속했던 일재의 잔재였다. (중략) 세 번째 버리기로 한 것이 생활지도부에서 선생들이 직접 나섰던 규율 위반 단속이었고, 이것은 학생 자율에 맡기기로 했다. (중략) 네 번째 버리기로 한 것이 반장, 부반장, 부장 등 학급 간부제였다. 그건 학급의 평화를 깨는 권력화였고, 동급생끼리의 인간 차별을 조장하는 병폐였다. (중략) 다섯 번째 버린 것이 모든 시상제였다. (중략) 여섯째 선생들이 전면적으로 작위적인 근엄한 얼굴을 버리고 언제나 모든 학생을 웃음으로 대하기로 했다. 일곱째 최소한 자기 반 아이들의 이름을 완전히 외워 성을 빼고 이름만 다정하게 부르기로 했다. 여덟째 학생들에게 무조건 명령하거나 시키는 일을 하지 말고, 학생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나무라거나 책임 추궁 같은 것을 하지 말고, “괜찮아”, “실수는 경험이야”, “담에 안 그러면 돼하는 식으로 긍정적으로 위로하고 격려하기로 했다. 한마디로 과거의 인위적 권위와 조작적 위신을 버리고 사랑과 인내로 자기를 낮추며 학생과 더불어 학교생활을 가꾸어 가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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