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사회의 방향성은 둘 중 하나다. 시장의 자유 또는 정부의 개입. 그리고 이 두 가지 방향성 중 하나를 선택하게 만드는 핵심적인 요인은 세금이다. 세금은 사회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근원이다. 거칠게 말하면, 세금으로부터 모든 사회 문제가 비롯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의 이야기는 세금에서 시작된다.

(37)

우선 지금의 누진세율이 너무 높다고 생각하는 견해부터 알아보자. 이들은 현재의 누진세 제도 자체가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들이 보기에 누진세는 국가가 소수의 고소득자들의 권리를 강제로 침해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개인이 시장에서 노력하고 투자해서 얻은 성과를 보호해주지 않는 국가는 경제적으로 건강하지 못하고 윤리적으로 정의롭지 않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따라서 현재의 누진세율을 낮추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는 반대로 지금의 누진세율이 너무 낮다고 생각하는 견해에 대해 알아보자. 이들이 보기에 누진세는 경제적 양극화를 해결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다. 빈부격차가 극단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바로 지금이 누진세를 강력하게 적용할 시점이라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따라서 이들은 과세표준에서 최고구간에 해당하는 세율을 최대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45)

시민은 놀랍도록 참을성이 강해서 문제가 악화되는 시점까지 기다리는 경향이 있다. 가시적으로 문제가 발생해야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너무 늦어 사태가 악화되었을 때가 보통이지만, 시민의 움직임은 사회의 분위기를 역전시킨다.

진짜 문제는 움직이지 않는 시민에게 있다. 상황이 악화되는 시점에 이르기까지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하지 못하는 부동의 시민들이 문제다. 그들이 사회의 절대다수일 경우 그 사회는 균형을 잃어버리고 특정 계층, 특정 계급의 이익만을 반복적으로 보장하는 부정한 사회로 변질될 수 있다.

(69)

시민은 권리를 갖고 있는 주체를 의미한다. 서울시나 부산시에 살면 시민이고 경기도나 충청도에 살면 도민인 것이 아니다. 물론 매우 좁은 의미로는 그렇게 쓰이기도 한다. 행정구역상 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시민이라고 칭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시민을 언급할 때는 그런 협소한 의미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시민은 의무를 이행하고 권리를 갖는 주체 모두를 지칭하는 점을 기억하자.

(103)

자유를 기준으로 본다면 역사는 하나의 방향으로 진보해온 것으로 드러난다. 역사는 자유인의 확대, 같은 말로 자유의 확장이라는 하나의 방향으로 흘러왔다. 그리고 여기서 자유가 확장된다는 말은 동일한 의미로 절대정신이 확장되고 있음을 말한다.

(111)

자유란 타자에게 간섭받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자유의 정의다. 그런데 이러한 자유의 정의는 실제로는 두 부분으로 나눠진다. 우선 앞부분, 자유는 타자에게 간섭받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특정 국가나 권력에 얽매이지 않고 주체적으로 존재하는 상태가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자유를 소극적 자유라고 한다. 다음으로 뒷부분, 자유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음을 말한다. 자신이 지향하고 선택하는 것을 주체적으로 이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상태가 그것이다. 이러한 자유를 적극적 자유라고 한다.

(129)

자본주의란 생산수단의 개인소유를 인정하는 체제를 말한다. 생산수단의 개인소유가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본질인 것이다. 자본주의가 자유주의를 이념으로 한다고 할 때, 이때의 자유는 실제로 생산수단을 소유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한다. 자본주의에서는 생산수단을 구매할 자유가 있다.

공산주의는 이에 저항하며 등장했다. 공산주의는 생산수단의 개인소유를 거부한다. 타인을 착취하는 부도덕한 상품이라면 이를 개인이 장바구니에 담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신 국가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 없이 노동자에 의해서만 구성된 사회가 프롤레타리아 독재 사회, 즉 공산주의 사회다.

(160)

시민에게는 의무가 있다. 나의 이익을 추구하는 동시에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고 사회의 이익을 고려해야 할 책임 말이다. 물론 모든 구체적인 사회적 쟁점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세계에 대한 거시적인 관점을 토대로 개별 사안을 단순하게 분류할 수는 있어야 한다. 시장의 자유와 정부의 개입으로, 자본가의 이익과 노동자의 이익으로,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이념으로, 주주 자본주의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시민들 스스로가 개별 쟁점의 방향성을 이해하고 분류할 수 있을 때, 사회적 담론들은 합리적이고 건강하게 논의되어갈 것이다.

세계에 대한 단순한 구분. 이것이 시민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교양이다.

(183)

그런 까닭에 비정규직의 확대에 대한 논의는 문제가 있다. 노동자의 임금을 낮추는 동시에 리스크까지 높이는 제도는 불공정하다. 따라서 노동자가 비정규직의 확대에 저항하는 것은 시장 원리에서 매우 상직적이고 합리적인 일이 된다. 만약 특정 정부가 노동자의 임금 인상 없이 규제 완화를 통한 노동시장의 유연화만을 추구한다면, 그 정부는 공정하지 않고 정의롭지 않는 정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그에 대응하는 고용 안정성 정책과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205)

한국은 오랜 기간 동안 객관주의 인식론에 기반한 교육체계를 유지해왔다. 강의식 교육과 전통적인 교실 구조 그리고 객관식 평가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교육 형식이다. 빠른 경제성장과 산업화가 요구되던 시기에 이러한 교육관은 매우 효율적으로 기능했다. 문제는 진리가 실재한다는 절대주의 세계관에 익숙하다. 반대로 고정된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상대주의와 여기서 파생되는 다양성에 대한 담론들에 불편해한다.

우리가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보수와 진보, 세금과 복지의 문제를 합의와 절충의 문제가 아니라 옳고 그름의 문제, 선과 악의 이념 대립으로 다루려고 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교육의 형식보다 교육의 내용에 집중해오는 동안 한국인은 진리가 실재한다는 이념을 내재화하게 되었다.

(213)

우리는 교육의 형식이 학생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교육에 대한 담론에서 중심이 되는 주제는 교육의 형식이 아니라 내용에 대한 것이다. 어떤 내용을 가르치고, 어떤 교과를 강화할 것인지, 선택과목의 수를 어떻게 할 것인지 등 가르치는 내용에 대한 고민에 집중되어 있다. 거 근본적으로 논의되어야 하는 것은 교육의 형식인데도 말이다.

학생들은, 아무도 말해주지 않지만 교육의 형식을 통해 학습한다. 특히 진리에 대한 이념과 경쟁의 정당성에 대한 믿음이 발생하는 원인에 주목해야 한다. 그 원인은 우선 강의식 수업과 교실 구조 그리고 객관식이라는 평가 형식이었다. 학생들은 스스로 인식하지 못할지라도 절대적이고 고정된 진리가 어딘가 존재할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을 갖게 된다. 이것은 성인이 되었을 때 사외 문제를 옳고 그름, 선과 악의 문제로 접근하게 하는 경향성을 높인다. 다음으로 지속적인 교내 평가와 대입시험을 거치면서 학생들은 경쟁과 그에 따른 결과가 정당하다고 믿게 된다. 문제는 경쟁의 형식이 사회의 책임을 개인의 책임으로 손쉽게 전환한다는 점이다. 어떠한 평가가 되었건 그에 따른 결과가 중간에 위치한 사람이 중간으로서 대우를 받을 수 없는 평가라면, 그 경쟁은 정의롭지 않다.

(227)

교육은 경제가 결정한다. 경제적 생활과 환경. 구체적으로는 일자리와 소득격파의 정도가 어떠한가에 따라 교육의 모습이 결정된다. 문제는 일자리와 소득격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대립하는 국가 방향성과 연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시장의 자유를 추구하면 상대적으로 일자리의 양이 늘어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만큼 소득격차는 심화될 수 있다. 이러한 경제 환경에서 학생들은 과도한 경쟁에 노출된다. 반대로 정부의 개입을 추구하면 상대적으로 소득격파의 완화를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만큼 투자가 줄어들고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 이러한 경제환경에서 학생들은 마찬가지로 제한된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과도한 경쟁에 내몰린다.

그래서 한국의 학생들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저성장 시대의 도래와 빈부격차의 심화는 일자리의 수를 줄이고, 소득격차를 심화하고 있는 것이다.  

(241)

윤리에서 말하는 정의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정의의 관념과 닮아 있다. 그것은 정의로움에 대한 관념이다. 무엇이 정의로운 것인가? 어떤 사람은 기본적으로 차등적 세계를 정의롭다고 생각한다. 사회에는 수직적인 질서가 있으며, 엄연히 법과 규칙이 존재한다. 이를 준수하는 사람과 그러지 않는 사람은 다르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다른 사람은 기본적으로 평등한 세계를 정의롭다고 생각한다. 모든 인간은 예외 없이 절대적인 권리로서의 인권을 갖는다. 따라서 차이와 차별이 없는 수평적인 관계의 실현을 위해 사회가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274)

보수와 진보는 고리타분하고 모호한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이며, 정의로운 사회를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다. 명심해야 할 것은, 평생 한 가지의 정치적 성향만을 지지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평생 보수이고 평생 진보인 사람은 정치인밖에 없다. 시민은 자유롭다. 인생 속에서 변화하는 개인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에 따라 순간순간 가장 적합한 선택을 하면 된다. 이제 미디어나 타인의 말, 혹은 고정관념에 휘둘리지 말고, 나와 사회의 이익을 대변할 정치적 입장을 선택할 때다.

(310)

국제사회는 저성장 시대로 돌입했다. 모든 국가가 자국의 경제성장을 위해 경쟁하게 되었다. 이때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인플레이션 정책이다. 앞으로 국제사회는 자국의 통화량을 팽창시키고 화폐가치를 낮추려는 경쟁을 할 것이다. 미국의 양적 완화, 중국의 위안화 절하, 일본의 엔저 정책이 이러한 맥락에서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급격한 통화량 팽창에 따른 부작용으로 부동산과 주식 가격의 버블이 커질 수 있다. 경제성장과 경제붕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계속될 것이다.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국가는 세계의 눈치를 보느라 통화량 팽창을 쉽게 진행하기 어렵겠지만, 강대국은 군사적, 정치적 압력을 행사함으로써 스스로의 통화량 팽창의 정당성을 부여할 가능성이 높다.

(345)

시민은 그 자체로 자유다. 역사의 필연적 귀결로서 시민은 자유의 실현자다. 여기서의 자유는 두 가지 의미다. 개인으로서의 나를 구성할 자유와 사회를 선택할 자유. 삶의 현장 속에서 나는 치열하게 일하고 공부하고 경쟁하며 나를 구성한다. 동시에 세계를 분석하고 이해함으로써 정치적, 사회적 선택을 해야 한다. 세계의 복잡성으로부터 잠시 회피하여 쉬고 있는 시민들에게 손을 내밀고, 그들을 사회적 담론의 장으로 이끌어야 할 책임은 시민으로서 당신에게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돌베개 - 장준하의 항일대장정
장준하 지음 / 돌베개 / 201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얼마 전에 아빠가 김삼웅의 <장준하 평전>을 읽었잖아. 그리고 장준하가 쓴 <돌베개>라는 책을 연이어서 읽고 싶었어. <돌베개>는 장준하의 항일투쟁기라고도 해. 김삼웅의 <장준하 평전>에도 <돌베개>의 글을 많이 인용했고 말이야.

이 책에는 장준하가 일본군에 들어간 1944년부터 해방 후 다시 귀국하여 김구 선생의 일을 보좌하던 1945년 말까지 약 2년에 걸친 이야기가 담겨있단다. 돌베개.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봤을 때, 왜 제목을 돌베개라고 지었을까? 하는 굼긍증도 생겼지만, 그보다 돌베개 출판사가 더 먼저 떠올랐단다. 돌베개에서 출판한 책들은 진보성향의 책들과 사회문제를 다른 책 등 아빠가 좋아하는 책들을 많이 출간하는 출판사였거든. 그 돌베개 출판사가 바로 장준하의 책 <돌베개>에서 이름을 따왔나? 이렇게 생각했어. 그래서 확인해보니, 그것이 맞더구나. 출판사 돌베개는 장준하의 책 <돌베개>에서 출판사명을 따온 것이래. 그러면 장준하는 항일투쟁수기를 엮은 책의 이름을 왜 <돌베개>로 지었을까? 그것은 아내와 암호였다고 하는구나. 김삼웅의 <장준하 평전>에도 나와 있지만, 일본 유학 중이던 장준하는 예전의 제자였던 김희숙과 애틋한 정을 나누다가 결혼을 했고, 결혼한지 일주일 만에 학도병에 자원하여 입대하면서, 나눈 암호. 일군을 탈출할 경우 편지에 창세기에 나오는 구절을 편지로 적어 보내겠다는 암호. 그 구절 속에 한 단어 돌베개. 그리고 그가 황량한 중국 땅에서 들판에서, 산에서 잠을 청했을 때, 그가 벤 돌을 돌베개라고 생각했을 거야.

=================================

창세기 28 10~15절에 나오는 야곱의돌베개이야기는 내가 결혼 일주일 만에 남기고 떠난 내 아내에게 일군(日軍)탈출의 경우 그 암호로 약속하였던 말이다. 마침내 나는 그 암호를 사용하였다. “앞이 보이지 않는 대륙에 발을 옮기며 내가 벨돌베개를 찾는다고 하였다. “어느 지점에 내가 베어야 할 그돌베개가 나를 기다리겠는가?”라고 썼다. 그 후 나는돌베개를 베고 중원 6천 리를 걸으며 잠을 잤고 지새웠고 꿈을 꾸기도 하였다. 나의 중원 땅 2년은 바로 나의돌베개였다. 아니, 그것이 나의 축복받는돌베개여야 한다고 생각했다.(7)

=================================

 

1.

장준하가 일군에 들어갔다가 일군을 탈출하고, 중국군 부대에서 생활하다가 다시 6000리 길을 행군하여 충칭에 있는 임시정부에 다다른다는 내용은 이미 김삼웅의 <장준하 평전>을 통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단다. 이 책은 그런 그의 행보를 장준하의 글을 통해 직접 볼 수 있어 더욱 실감이 나고, 그때그때 순간마다 그의 생각이 어떠하였는지 알 수 있어 좋았단다. 어쩌면 장준하를 비롯한 그의 일행이 일군을 탈출한다는 것은 무모한 짓일 수도 있었어. 철조망 밖의 상황이 어떤 상황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탈출하는 것은 목숨을 내놓고 벌인 일이야.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목숨을 내놓고 행동하게 했는가? 그들이 일군을 탈출하고 밤을 이용하여 도망 중에 불로하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게 되었단다. 그리고 그들을 말할 수 없는 감격을 맞게 되고, 그 감격을 조국에 바치고자 했어. 그래서 그들은 조국을 향해 절을 했단다. 아빠는 그 장면을 상상해봤어. 일군에 쫓겨 밤새 도망가다가 불로하의 큰 강 물결에 떠오르는 태양이 비치고... 그 광경을 보는 젊은이 4명이 조국을 향해 큰절을 하는 그 장면... 그들의 뜨거운 가슴이 느껴지는 듯했단다. 그 뜨거운 가슴이 목숨을 내놓는 탈출을 감행한 것이 아닌가 싶구나.

=================================

“너, 불로하, 말 없는 강, 안으로 안으로 모든 것을 가라앉혀 비록 그 바닥에서는 물결이 거세어도 수면은 언제나 잔잔히 흐르기만 하는 강, …… 너 마르지 않고 너 나타나지 않는 그 강심을 나는 여기서 배우리라.”

어느새 이국의 태양은 머리 위에 올랐고 강물 위엔 쏟아진 햇볕이 물결을 덮으며 웅장한 음악이 강 밑으로 흐르는 것이었다. 우리의 소망과 새로운 각오를 위해 강은 흘렀다.

우리는 목욕을 마치고 군복을 입었다. 서로서로를 돌아보며 새 결의를 다짐했다. 모두 새사람이 되었다. 진정 우리는 새사람이 되어야만 했다.

조국 광복, 이 깊고 긴 강처럼, 크고 깊은 긴 일을 마침내 나는 찾아낸 것이다. 이제 우리는 떳떳한 조국의 아들이 다시 되었다. 기쁨과 감격은 이 아침을 신비롭게 하였다.

우리는 동북쪽의 조국을 향하여 경건하게 머리를 숙였다. 이글대는 태양을 마주하고 가로로 한 줄을 만들어 서서 이 가슴의 감격을 조국에 고하고자 했다. 김준엽 동지, 윤경빈 동지, 김영록 동지, 홍석훈 동지 그리고 나, 이렇게 차례로 서서 조국을 향한 배례를 한 것이다.(77)

=================================

 

2.

장준하 일행은 중국 중앙군 유격대에서 생활을 하다가 충칭에 있는 임시정부를 찾아 나서기로 했단다. 그러다가 그들은 린촨(임천)에 있는 한국광복군 훈련반에서 합류하게 되는데, 그곳에는 이미 한국 젊은이들이 팔십여 명이 머무르고 있었어. 낯선 타지에서 같은 한국인들을 만나는 것은 또다른 감회였을 거야. 그런데 말이 한국광복군 훈련반이었지만, 그들은 그곳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었어. 무기도 없으니, 그들이 하는 것은 제식훈련이 전부였어. 장준하는 취사병으로도 일을 했는데, 전우들을 위해 고구마를 몰래 훔쳐오던 일화도 이야기해주었단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대원들의 글을 받아서 잡지를 냈단다. 동료들은 그 잡지를 <등불>로 제목을 뽑았고, 속옷을 깨끗이 빨아서 표지를 만들기도 했어. 그곳에서 훈련을 하긴 하지만 제식훈련이 전부였고, 장준하는 최종 목적지는 충칭이라는 것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어. 그는 김학규 중위의 만류를 뒤로하고 다시 길을 떠났단다. 그때 임촨에 남는 이들도 있었고, 장준하와 같이 떠난 이도 있었어. 민간인들 포함하여 53명이 임촨을 떠났는데, 그때가 1944 11 30일이었어. 11 30. 이제 한파가 몰아닥치는 겨울이 찾아올 거야. 거기에 먹거리도 거의 없고, 언제 어디서 마적단이 나타날지도 모르는 길. 그들은 뜨거운 피 하나로 길을 떠났단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중칭으로 향한 길은 고난의 길이었어.

그리고 해가 바뀐 1945 1월말 장준하 일행은 중칭의 임시정부에 도착을 했단다. 김구 주석, 이청천 장군 등 고위직의 환대를 받았어. 장준하를 포함한 50여 명들도 감격을 받았지. 그리고 그는 앞으로 조국 독립을 위해 할 일에 대한 기대를 했어. 그러기 위해서 길고 긴, 그 힘든 여정을 떠났던 거니까. 그런데, 며칠 지내고 보니 장준하는 임시정부에 실망을 느끼게 되었단다. 김삼웅의 <장준하 평전>을 읽고 쓴 편지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장준하는 임시정부 요원들 앞에서 그들의 당파싸움에 신랄히 비판했어. 그리고 혼날 것을 각오하고 자신의 생각을 거듭 이야기했어. 그러면서, 임시정부 요원들이 변하여 자신의 당을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대한 독립을 위해 하나로 뭉치길 바랬어.

=================================

길지 아니한 단 10여 일 동안, 그동안 우리의 눈에 비친 임정은 결코 우리가 사모하던 그 임정과 다른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잘못 본 것이라면 용서하십시오. 진정으로 여러 선배 선생님께서 이곳 이 땅에서 임정을 사랑하고 있다고 저희에게 생각되지 아니했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랑한다는 것과 탐욕을 내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탈출해서 기나긴 행군으로 오면서 그리던 임정은 모두 일치단결되어 있는 완전한 애국투쟁의 근본이라고 여겼습니다. 이곳에 오기만 하면 그 단결된 힘으로 오직 잃은 나라 찾는 데만 목숨 바쳐 일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 그 기대는 지나친 하나의 환상이 아니었나 하는 회의를 품게 되었습니다. 이 회의는 누가 준 것입니까?

조국을 잃고 망명한 입장에서 임정을 세웠기에 임정이 하는 일에는 파쟁이 개재되어 있으리라고 생각도 못 했습니다. 이것은 저희가 잘못 본 것입니까? 아니면 사실입니까? (263)

=================================

임시정부에 대해 실망을 한 장준하는 기대와 달리 그곳에서도 딱히 할 일이 없었어. 그러다가 이범석 장군과 만나게 되었고, 이범석 장군의 소개로 30여명의 동료들과 함께 임시정부를 떠나 미국첩보대인 OSS에 들어가게 되어 특수훈련을 받게 된단다. 그들은 조국에 잠입할 목적으로 훈련을 받고 있었는데, 일본이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면서, 그들의 국내 잠입이 의미 없게 되었단다. 일본의 포츠담 선언은 곧 전쟁의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었으나, 자신의 손으로 독립을 쟁취하겠다는 독립운동가들에게는 반가운 소식만은 아니었던 거야.

 

3.

1945 8 14, 장준하는 다른 일행들과 미국사령부 사절단 소속으로 비행기를 타고 국내로 향했단다. 그리고 여의도에 도착했는데,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일본군의 총부리였단다. 일측촉발의 상황. 아직 국내 사정이 안정되지 않은 상황이었어. 결국 그들은 다시 회항하기로 결정되어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어. 그리고 다시 조국을 찾은 것은 그 해 11월 김구 주석과 함께였단다. 임시정부의 최고 수장이었던 김구 주석의 귀국이었는데, 공항에는 아무도 없었어. 조짐이 이상했던 것이지. 광복이 되고 난 3개월 동안 국내 정세는 대혼란의 시간을 겪고 있었어. 거기에 미군정은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개인 자격으로 입국을 제한했던 거야. 뒤늦게 경교장으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김구 주석의 비서 역할을 하고 있던 장준하는 가족에게 가 볼 틈도 없이 바쁜 생활을 하게 되었단다. 이제 그에게 조국 독립의 일이 아닌, 조국 재건에 대한 막중한 일이 떨어진 거야. 김구 주석을 보좌하면서, 열심히 일을 하지만, 강대국들이 양분해버린 조국을 하나로 만든다는 것은 험난한 길이라고 생각했어. 그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났단다.

.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일구어내려고 했던 조국의 독립. 아직도 우리나라는 홀로 서지 못하고, 둘로 나뉘어져 있단다. 비록 그렇더라도 반쪽인 나라에서라도 독립운동가들이 내세웠던 국가의 가치들.. 그런 것들이 잘 만들어져 살기 좋은 나라가 되어야 하지만, 요즘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 정말 답답하구나. 뒤늦게 진실들이 밝혀지면서, 다시 제대로 된 나라로 갈 기틀을 마련했지만, 아직도 잘못을 저지른 이들은 자신의 죄를 사과는커녕 인정도 하지 않고 있단다. 과거 친일파들이 이러했을려나. 올해는 우리나라가 다시 정상궤도를 되찾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구나. 너무 멀리 와버린 기분이 드는구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7)

누군가가 끼어들어 제지하려 했으나 나는 멈추지 않았다. 나는 술을 마시면 멈추는 법이 없었다.

저는요. 젊은이들더러 도전하라는 말이 젊은 세대를 착취하려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뭣 모르고 잘 속는 어린애들한테 이것저것 시켜봐서 되는지 안 되는지 알아보고 되는 분야에는 기성세대들도 뛰어들겠다는 거 아닌가요? 도전이라는 게 그렇게 수지맞는 장사라면 왜 그 일을 청년의 특권이라면서 양보합니까? 척 보기에도 승률이 희박해 보이니까 자기들은 안 하고 청년의 패기 운운 하는 거잖아요.”

이름이 뭐랬지? 넌 우리 회사 오면 안 되겠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빈정대는 말투로 한마디 내뱉었다.

거 봐, 아까는 도전하라고 훈계하더니 내가 막상 도전하니까 안 받아주잖아.”

(186)

1978년 이후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유지, 보수자의 운명을 띠고 세상에 났다. 이 사회에서 새로 뭔가를 설계하거나 건설할 일 없이 이미 만들어진 사회를 잘 굴러가게 만드는 게 이들의 임무라는 뜻이다. 이들은 부품으로 태어나 노예로 죽을 팔자다.

나는 여기서 나를 포함해 이런 사명을 부여받은 우리 세대의 젊은이들이 어떻게 해서 만성적인 좌절감에 빠지는지 밝히고, 그런 좌절감이 누구의 탓이라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원인에서 기인한 근본적인 문제임을 증명해보겠다. 또 타고난 능력과 근면, 성실함으로 개인적인 성취를 이루는 것은 우리가 겪고 있는 굴욕에 대한 답이 아니며, 그런 성공은 본질적으로 시시한 것임을 논해보겠다.

(191-192)

새로운 담론을 제기할 수조차 없는 환경은 우리 세대의 가치관에도 예상치 못한 영향을 미친다. 이른바표백 세대의 등장이다.

이 세대에게는 실질적으로 어떤 사상도 완전히 새롭지 않으며, 사회가 부모나 교사를 통해 전달하는 지배 사상에 의문을 갖거나 다른 생각에 빠지는 것은 낭비일 뿐이다. 그런 시도는 기껏 잘돼봤자 기존 지배 사상이 얼마나 심오하고 빈틈없는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는 효과만 낳는다.

이들에게 지배 사상은 큰 틀에서 항상 옳으며, 그 사상을 받아들이는 데 개인마다 과정과 깊이가 다를 수는 있으나 결론은 언제나 같다. 이들은 지배 사상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

따라서 실제 삶에서 온갖 종류의 불편함과 부당함을 겪어야 하는데도, 이에 대한 문제 제기는 개인이나 작은 이익집단 단위를 넘어서지 못하게 되며, 세계는 사상적으로 완전무결한 상태가 된다.

이것이 바로 표백 과정이다. 아무도 더 나은 시스템을 떠올리지 못한다. 거대한 흰색 세계는 모든 빛을 흡수하며 무결점 상태를 유지한다.

(196)

표백 세대는 같은 세대뿐 아니라 이미 사회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기성세대들과도 경쟁해야 하는데, 사회 각 분야가 고도로 발전해 있고 표백 세대들이 가진 자원이 거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불리한 게임이다. 분배 방식이라는 게임의 규칙조차 기성세대가 정한 것을 따라야 한다.

(200-203)

표백 세대가 완성된 사회를 살아가는 방법은 순응, 타협, 소극적 저항, 적극적 저항의 네 가지로 분류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순응은 완성된 사회의 시스템과 경쟁 체제를 받아들이고 그에 맞는 삶을 사는 것이다. …중략

타협은 완성된 사회의 가치관에 대해 약간의 의심을 품으면서도 대체로 그에 따라가는 삶의 형태다. 이런 삶의 유형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이타적인 행위를 통해 자기만족을 얻으며 그런 의심을 억누른다. …중략

소극적 저항은 완성된 사회의 가치관을 전복시키고자 하는 의도는 없으나 적어도 그 가치관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닌 삶의 형태다. … 중략이들은 완성된 사회의 가치관을 따르는 일을 경멸하지만, 자신들이 완성된 사회로부터 제대로 된 존경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에 괴로워하기도 한다. …중략소극적 저항자들은 대체로 연대를 하지 않으며 사회 시스템을 전복하려는 의도가 없기 때문에, 수가 너무 많아지지 않는 한 완성된 사회의 관점에서 대체로 무해하다.

적극적 저항은 사회에 대한 폭력적인 타도를 시도하는 것이다. 정의에 따라, 완성된 사회에서 적극적 저항은 이념적 근거를 가질 수 없다. 적극적 저항자들은 처참할 정도로 논리가 없거나 아니면 일반인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극단적인 원리주의를 자신들의 이념으로 채택한다. …중략

완성된 사회는 이들을 사회의 적으로 규정하는 데 망설임이 없으며 이념적으로 물리적으로든 적극적 저항자들이 성공 가능성을 따져보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들은 기껏해야 기억에 남는 테러를 몇 건 저지를 수 있을 따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를 놓아줄게 미드나잇 스릴러
클레어 맥킨토시 지음, 서정아 옮김 / 나무의철학 / 201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는 2016년을 마무리하면서, 회원의 관심분야를 파악해서 알려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단다. 회원마다 관심분야를 20여 개 정도로 알려주는데, 관심이 많을수록 큰 글씨로 보여준단다. 아빠의 경우 “추리/미스터리소설” 부분이 제법 큰 글씨로 보여주었어.


맞아. 아빠는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야. 어렸을 때는 책을 거의 읽지 않았지만, 초등학교 때 읽은 셜록 홈즈 문고판들은 아직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단다. 그런 것을 보면 아빠는 그때부터 추리 소설을 좋아했던 것 같아. 요즘도 누군가 재미있게 읽은 추리 소설을 소개해주면 읽고 싶은 책 목록에 추가를 해. 아빠가 이번에 읽은 클레어 맥킨토시의 <너를 놓아줄게>도 웹상에서 알게 된 책이야. 전직 경찰이었던 지은이의 경험을 통해 쓴 소설이라고 하는데, 지은이의 첫 소설이라고 하는데, 괜찮았단다. 작가의 이름을 잘 기억해 두어야겠구나.
 
1.
영국 브리스톨에 살고 있는 다섯살 제이콥은 유치원을 마치고 엄마와 함께 집으로 향하고 있었어. 집에 가까워지자, 제이콥은 혼자 달려갔단다. 그날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이었어. 제이콥이 차도에 들어섰는데, 갑자기 차 한 대가 나타나 제이콥을 쳤어. 제이콥의 엄마는 손을 쓸 수도 없는 찰나였단다. 쓰러진 제이콥에게 달려가 엄마는 비명과 눈물로 끌어안았지만, 제이콥은 이미 … 그리고 급하게 선 자동차... 그 차는 잠시 서있다가 후진을 하고 바로 그 자리를 떠났어. 뺑소니.
이 사건은 곧 언론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두 사람이 비난을 받게 되었단다. 아이를 치고 뺑소니를 친 범인, 주택가에서 그렇게 빠른 속도로 차를 몬 것도 잘못한 것인데, 사고를 내고서 그 자리를 도망친 것은 범죄를 저지른 것이었어. 그리고 다섯살 아이를 혼자 뛰어가게 한 제이콥의 엄마에게도 비난이 쏟아졌어. 결국 제이콥의 엄마는 경찰 조사의 어느 정도 끝나게 되자, 집을 떠나 잠적하였단다. 이 사건은 레이라는 경험이 많은 경사와 신참내기 케이트가 수사를 맡았어. 하지만, 그들은 수사에 난항을 겪게 되었단다. 비가 오는 날 한적한 주택가였기 때문에 목격자도 거의 없었고, 뚜렷한 증거도 없었기 때문이야. 제보도 거의 들어오지 않고 말이야. 사건 장소에 있던 제이콥의 엄마도 충격을 받아 거의 아무것도 보질 못했어. 어둡고 비오는 오후, 라이트가 밝게 켜진 채 서있던 자동차 만을 기억하고 있었어.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정보였지. 시간은 흘러 육 개월이 흘러갔고, 경찰 상부에서는 그 사건에 대해서 종결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어. 레이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려고 했지만, 신참내기 케이트는 무척 열을 받았단다. 왜냐하면 아직 수사할 것은 많이 있었기 때문이야. 결국 케이트와 레이는 경찰서의 공식적인 지원 없이 몰래 그 수사를 하기로 했어. 하지만 여전히 수사의 실마리를 풀어나가기에는 자료가 터무니없이 부족했단다. 제이콥 사건은 아무런 성과없이 일 년이 다 되어갔어. 케이트는 상부에 이야기해서 1주년을 맞이하여 다시 한번 제보를 받아보자고 했어. 그리고 나타난 결정적인 제보. 그래서 레이와 케이트는 단서를 잡고, 차 주인인 용의자를 찾아냈고, 현재 용의자가 머물고 있는 곳을 주소를 확보하게 된단다.
 
2.
제나는 그 사건 이후 밤마다 제이콥이 차에 부딪치는 그 순간의 꿈을 꾸었어.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에 이기지 못하고, 결국 브리스톨을 떠나 낯선 곳으로 가기로 했어. 핸드폰도 버리고 새로운 곳으로 가면 제이콥을 잊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 제이콥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 그래, 제나는 제이콥의 엄마였어. 제나는 브리스톨을 떠나 웨일즈의 작은 해변마을 펜파흐라는 곳에 작은 오두막집에서 살게 되었어. 한동안 집 밖으로 나오지 않고, 밤마다 악몽을 꾸었단다. 늘 똑같은 꿈. 어느날 이른 아침 힘들게 발을 떼고 해변가에 나와서 사진을 몇 컷 찍어봤어. 그날 이후 그것이 제나의 유일한 바깥 활동이었어. 제나의 거의 유일한 이웃 베선이 어느날 그의 사진을 보고 사진이 너무 좋다고 했어. 심지어 사겠다고까지 했는데 제나는 그냥 주었어. 이후 베선은 제나의 사진을 엽서로 만들어 팔 수 있도록 도와주었어. 제나도 돈이 점점 줄어들어 무엇인가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그것이 큰 도움이 되었단다. 그러면서 제나는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어.
어느날 제나는 길 잃은 강아지를 동물병원에 데려가 치료를 해주었어. 그리고 제나에게는 친구 둘이 더 생겼단다. 길 잃은 강아지와 동물병원의 수의사 패트릭. 패트릭이 관심을 보였지만, 제나는 아직 트라우마에서 깨어나지 못했어. 그러나 패트릭의 정성이 제나의 마음을 열게 했고, 사랑을 시작하게 되었어. 그리고 제나는 일년 만에 처음으로 악몽을 꾸지 않고 개운한 잠을 잤단다. 그날 아침 초인종이 울렸어. 그리고 경찰이 방문했어. 제나에게 수갑을 채우고, 뺑소니 용의자로 체포하겠다고 말했단다. 아빠는 처음에는 잘못 읽은 줄 알았어. 용의자라니? 제나는 제이콥의 엄마였는데? 아, 아니었나? 아빠가 그렇게 생각했을 뿐인가? 소설에서는 단 한번도 제나가 제이콥의 엄마라고 한 적이 없었던 것이었어. 지은이가 독자들을 속인 것이지.. 반전을 꿈꾸면서 말이야. 제이콥의 엄마가 잠적을 했지? 그런데, 제나가 제이콥의 엄마라고 한 적은 없었던 거야. 그리고 제나가 밤마다 악몽을 꾼 이유는 자신이 사고를 내고 뺑소니를 쳤기 때문이었던 것이지. 수갑을 찬 제나는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경찰을 따라 나섰단다.
 
3.
소설은 이제 2부로 들어선단다.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어. 바람둥이 이안. 이안이 오래 전에 여대성인 제나를 꼬시는 이야기로 2부는 시작했어. 이안은 케이트를 꼬시기 위해 별짓을 다하고 온갖 거짓말을 늘어놓았단다. 그렇게 케이트를 자신의 여인으로 만들었어. 그리고 제나를 친구와 가족으로부터 떨어뜨리기 위해 이간질을 했고, 오직 자신만의 소유물로 만들었어. 이안은 성격파탄자에 의처증이 심하고, 분노조절장애도 있고 거짓말쟁이였어. 대충 어떤 사람인지 알겠지? 이안은 심지어 제나의 고양이까지 질투를 해서 제나가 없는 사이 고양이를 죽였어. 이안은 제나와 결혼하게 되었는데, 결혼 첫날 욱하는 마음에 제나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단다. 제나는 깜짝 놀랬지만, 이안의 거짓 어린 사과에 용서를 했단다. 이후 제나의 결혼 생활은 공포 그 자체였단다. 툭 하면 이안은 폭행을 휘둘렀어. 하지만, 제나는 자신을 죽인다는 위협 앞에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어. 그런 생활을 제나가 했던 거야. 이안은 그 전에 이미 결혼도 했었고, 폴란드에서 온 어린 아가씨를 임신시키기도 했었어.
 
4.
경찰에 체포된 제나는 자신의 죄를 순순히 인정하고 자백했어. 무서워서 뺑소리를 쳤다고 했어. 미안하다고 했어. 레이와 케이트는 제나가 너무 순순히 죄를 인정해서 뭔가 숨기고 있다는 생각을 했단다. 그것은 아빠도 마찬가지였어. 이안이라는 나쁜 사람의 존재를 알고 나서는 더욱 그랬지. 분명 운전자는 이안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 제나는 재판 전까지 잠시 보석으로 풀려나서 펜파흐로 돌아왔는데, 이웃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고, 제나의 집에는 온갖 낙서로 덮여 있었어. 패트릭도 제나를 차갑게 외면했어. 베선만이 제나에게 이유를 물어보는 등 친절히 대해주었어.
제나에게는 언니 이브가 있었어. 어렸을 때는 아주 친하게 지냈어. 그런데 이안의 이간질로 인해 사이가 멀어졌어. 그런데 이안이 어느날 이브를 찾아왔어. 왜냐하면 이브의 집에서 제나가 어디에 숨어있는지 단서가 될만한 것을 찾기 위해서 말야. 그리고 얼마 전 제나가 선물한 펜파흐 해변가의 사진을 찾아냈어. 이브 몰래 그 사진을 찢었고, 이안을 제나의 집을 결국 찾았어. 이안은 제나를 찾아가서 폭행하여 제나는 정신을 잃었단다. 깨어보니 패트릭이 사과를 한다면서 찾아왔어. 이안이 다녀간 다음 이브는 경찰에 찾아가서 자기동생을 이안으로부터 보호 신청을 요청했어. 경찰은 알겠다고 했고,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어. 그 이안이 제나의 남편이었다는 것을 몰랐던 거지.
자백을 한 제나에게 유죄가 내려지는 것은 명백했어. 그런데 재판 몇 시간 전에 패트릭이 레이에게 여권 하나를 전달해 주었어. 그 여권은 제나의 여권인데 지금까지 알고 있는 다른 성(family name)이 적혀 있었어. 결혼을 했었다는 것이지. 레이와 케이트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사실이지. 레이는 제나의 남편이 이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이안이 가정폭력범으로 전가 기록이 있다는 것과 첫번째 부인에게 접근금지령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것도 같이 알게 되었지. 그리고 이안이라는 이름이 낯익었는데, 이브의 보호 신청이 생각났어. 그래 거기에 적혀 있던 이름도 이안이었던거야. 재판이 열리기 전에 제나는 다시 경찰의 조사를 받았어. 그제서야 진실을 이야기했어. 이안이 그동안 해왔던 폭행들. 임신 7개월의 배를 발로 차서 자신의 아이를 죽인 사실까지.. 낱낱이… 그날 운전도 이안이 했다고 이야기했어. 그런데 사실을 이야기하면 이안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생각해서 자신이 운전했다고 이야기한 것이래…

사실 그날 이안은 단순한 사고를 냈던 것이 아니었어. 주택가로 들어선 순간, 자신이 임신시켰던 폴란드 여인이 살던 동네라는 것을 알았어. 그런데 길을 건너는 아이가 바로 그 아이였던거야. 자신의 아들.. 아이를 떼라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았던 그 여인에 적개심을 갖고 있었는데, 그 아이가 도로 위로 뛰어들자, 그는 브레이크가 아닌 악쎌을 더욱 힘있게 밟았던 거야. 우연한 사고 뒤 뺑소니가 아닌 살인사건이었던거야.
제나는 경찰서에서 모든 진실을 이야기하고 집으로 돌아왔어. 그런데 그곳에 또 다시 이안이 기다리고 있었어. 광분되어서 제나를 마구 폭행했어. 제나도 더 이상 맞을 수만 없다고 생각하고, 방심하고 있는 이안을 공격했어. 도망과 격투가 이어지다가 이안이 자제력을 잃고 싸우다가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말았단다.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어. 그래도 다행히 권선징악의 해피엔드로 끝이 났구나. 지은이는 이 소설을 자신이 경찰이었을 때 경험했던 사건을 바탕으로 썼다고 했는데, 실제에서는 결말이 어땠을까 궁금하구나.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거서 2017-01-04 0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의 잠자리 머릿맡에서 책을 성심성의를 다해서 읽어주는 아빠의 모습이 연상됩니다. ^^

bookholic 2017-01-05 00:22   좋아요 1 | URL
ㅎㅎ 그렇지는 않아요... 일찍들 자라고, 옆에서 자는 척 합니다. 그러다가 먼저 잠들기 일쑤이고요~
 

잘가라 201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