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어른
이옥선 지음 / 이야기장수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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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할 책은 얼마 전부터 인터넷 서점에서 계속 눈에 밟히던 책이란다. 어떤 할머니의 에세이라고 하는데, 그 글에 공감할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한동안 외면했단다. 그런데 계속 눈에 밟혀서 책소개를 읽어봤는데, 책 내용이 유쾌하면서고 인생 황혼에서나 나올 있는 깊이 있는 감동 같은 것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최근에 아빠가 몸 컨디션이 좀 좋질 않아서 재미있고 웃을 수 있는 그런 책을 가볍게 읽고 싶어서 이 책을 읽었단다.

지은이 이옥선 님은 사회 초년생 시절 학교 선생님을 3년 하시다가 그 이후에는 쭉 전업주부로만 사셨다고 하더구나. 그런 분이 일흔여섯 살에 에세이를 펴내시다니.. 쫌 뜬금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옥선 님이 따님이 김하나라고 하는 작가이기 때문에 출판사와 접근성이 좋지 않았나 싶구나. 그리고 몇 년 전에 이옥선 님이 오래 전에 쓴 육아일기를 책으로 펴내셨다고 했어. 이옥선 님의 따님이 작가셔서 책을 출판하는데 좀 쉬울 수 있겠지만, 그것이 오히려 독자에게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이옥선 님의 글들이 책소개나 먼저 읽은 사람들의 평처럼 맛갈스럽고 솔직하고 재미있고 웃음을 자아내는 그런 글들이었단다. 최근 좀 우울했던 아빠의 영혼을 힐링해주는데 충분한 내용들이었어. 이옥선 님의 나이가 일흔여섯이라고 하셨는데, 문체는 엄청 젊고 발랄하다는 기분도 들었단다. 책도 많이 읽으시는지 읽으신 책 이야기도 많이 하셨단다. 그런데 그 책들이 젊은이들이 즐겨 읽는 책들과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단다. 예를 들어 아빠도 얼마 전에 읽고 너희들에게 이야기해준 앤드루 포터의 <사라진 것들>이란 책도 소개해 주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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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3)

요즘 앤드루 포터의 <사라진 것들>이 주목받고 있는 모양인데, 도서관에 가면 틀림없이 아직 갖추어놓지 않았거나 있어도 누가 냉큼 빌려갔을 거란 말이지. 그러니 같은 작가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빌려올 작정으로 쪽지에다 써놓는다. 책을 사기에는 이미 내가 버린 책이 너무 많아서 이제 가능하면 책을 사지는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 또한 알 수 없다. 나는 아끼지 않기로 작정을 한 사람이다. 젊었을 때는 할머니가 되면 하루종일 책만 읽고 있어도 좋겠다 싶어 이 시기가 오기를 은근히 기다렸다. 그래도 사람 사는 게 언제나 기대와는 다른 양상으로 가기 마련인지라 나의 독서 생활 역시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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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은 어르신들만 찾는 책이 따로 있다는 아빠의 편견,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새삼 깨닫게 되었단다. 그리고 아빠도 나중에 나이 먹어도 이옥선 님처럼 책읽기에 관해서는 젊은 감각을 유지해야겠다고 다짐했단다.

 

1.

오랫동안 함께 했던 남편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실려 있는데, 남편을 보낸 아쉬움과 슬픔보다 홀로 된 것에 대한 장점을 더 많이 이야기해주셨어. 그렇다고 남편 생전에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 글 속에 담겨 있었단다. 남편과 처음 사별했을 때는 무척 슬퍼했지만 애도하는 기간이 지난 다음에는 또 자신의 삶을 살아가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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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116)

남편의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모든 결혼 생활에 해피엔딩은 없다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우리 삶의 끝이 결국 죽음이라면 인생 자체가 해피엔딩일 수 없을 테니까.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언젠가는 끝이 나게 되어 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결혼 생활이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을까? 많은 동화책이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나기 때문에, 당연히 결혼하면 행복하게 사는 결말만 있는 줄 알았겠지. 하지만 부부가 마지막까지 같이 살다가 같이 죽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더 큰 불행을 원하는 것과 같다. 같이 차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로 같이 죽거나 아니면 둘이 동반자살을 시도하지 않는 한 자연사로 같이 죽는 일은 아예 없다고 봐야 한다. 부부 중 어느 한쪽이 죽고 며칠 사이에 다른 한쪽이 죽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이때는 둘 다 아주 연로하여 실제로 더 딱한 경우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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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래도 연륜과 오랜 삶의 경험에서 나오는 말씀도 있는데 진중한 것보다 정말 듣고 싶었던 말씀들도 있었단다. 예를 들어 너무 애쓰지 말고 대충 살라는 이야기, 하지만 건강은 꼭 신경 쓰라는 이야기. 이 이야기는 지금 아빠에게 절실히 필요한 이야기인 듯 싶었어. 실천은 쉽지 않지만, 다시 한번 명심하자. 대충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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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74)

너희도 너무 애쓰지 말고 대충(이것이 중요하다) 살고, 쾌락을 좇는다고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뭔가 불편한 것이 있으면 이것부터 해결하는 방법으로 살면 소소하게 행복할 것이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건강을 잃으면 행복하기 어렵다) 한 종목의 운동을 늙어서까지 꾸준히 할 것이며 너무 복잡한 건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살도록 해라. 다행히도 재산이 많이 않아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본다. 아들딸 며느리 손자 손녀 너희들이 있어서 행복했고, 너희는 내가 지금도 씩씩하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원천이다. 나의 장례는 그 시기의 일반적인 방법으로 할 것이며 화장해서 유골은 너희 아빠를 장자 지낸 것처럼 하고, 제사는 지내지 말고 그날 시간이 나면 너희끼리 좋은 장소에 모여서 맛있는 밥을 먹도록 해라. 또하나 바라는 게 있다면 너희 아빠는 꽃 피는 봄에 돌아가셨으니 나는 단풍 드는 가을에 떠나면 좋겠네. 그러면 너희는 봄가을 좋은 계절에 만날 수 있을 테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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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해지지 말라는 충고와 함께 유능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라는 말도 와 닿았어. 유명해지면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되니 유명해지지 말라고 하고, 유능한 사람이 되어야 평균 정도의 삶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어. 우리나라에서 평균 정도의 삶을 살려면 평균 정도의 능력이 아니라 유능해야 하는 것이 현실인가 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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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나는 이제 할머니이지 엄마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비겁하지 않다. 나는 자유를 얻은 것이다. 내 자식들은 성인이 되었고 엄마의 역할은 미미하다. 나는 중년의 내 자식이 자신의 업계에서 유능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유능한 사람과 유명인은 다르다. 유능한 사람은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차질 없이 잘해낼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40 중반을 넘고 50을 향해 가는 사람들이 유능하지 않으면 평균 정도의 수준을 유지하며 살아가기도 힘든 것이 세상이기 때문이다. 인생살이에서 보통 정도의 수준을 유지하면서 선량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제일 좋지 않나 싶다. 젊은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금수저로 태어나면 거기에 상응하는 뭔가가 되어 보여야 하기 때문에 인생이 피곤해진다. 그렇게 좋은 환경과 뒷받침에도 별 볼 일 없는 존재에 머무른다면 그 또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겠는가. 누구나 자기가 짊어져야 할 생의 무게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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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게 살아 온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지은이를 보면서, 많은 욕심은 부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아빠도 뭐 지금까지는 가끔 스트레스 받는 회사 업무가 있고 가끔 몸이 아픈 경우도 있지만 평균적으로는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단다. 앞으로도 쭉 그런 생각이 드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구나. 이옥선 님처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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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214)

생각해보면 나는 참 운좋게도 그냥저냥 평탄하게 살아온 것 같다. 보통 사람들이 겪었을 여러 인생살이와 이런저런 사건사고와 경제적 결핍과 허약 체질과 남편과의 불협화음이 있었음에도 말이다. 익명으로 살 수 있었던 자유로움과 처치 곤란한 재물 때문에 머리를 썩여야 할 일이 없음에도 감사한다. 나는 이제 어느 정도 자유롭다. 관습과 도덕으로부터, 또 종교의 신념으로부터, 이런저런 인간관계로부터도 거의 자유롭다. 다만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는 아직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으며 지금까지 먼 길을 온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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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

우리가 살아오는 동안 다 평온하고 별일 없이 살 수는 없다. 이 정도의 소소한 불편은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일이지만, 실제 사는 집에 수해나 화재가 나거나 아니면 교통사고가 크게 나거나 갑자기 심각한 질병의 선고를 듣거나 하면 얼마나 막막할까. 그러니까 심란하거나 난감하거나 왕짜증이 나는 정도는 어쨌든 어찌저찌 해결할 수 있는 좀 불편한 일들에 불과한 것이다. 전 지구적 대책 없는 큰일들을 생각하면 그나마 이 정도로 살아올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다 싶다. 제발 기후위기나 자연재해, 대형 산불 이런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날들이 이어지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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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책에 나온 좋은 글들을 소개해 주는 것으로 독서편지를 대신했다. 너희들은 인생에 있어 이제 시작하는 봄이다 보니 이옥선 할머니의 글들에 공감을 갖지 못할 것 같아 이 책을 너희들에게 추천하지는 못하겠구나.^^ 오늘은 이상 끝.

 

PS,

책의 첫 문장: 성춘향과 이몽룡이 눈이 맞자마자 그날 바로 남녀 간에 만나서 할 수 있는 일은 다해버릴 수 있었던 것은 둘 다 열여섯 살이었기 때문이다.

책의 끝 문장: 그러니 인간끼리의 관계를 너무 심각해하지 말고 가뿐하게 생각하고 유연한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는 게 좋지 않겠나 싶다.


하기 좋은 말로 노년에 시간이 많으니 봉사활동이라도 하라고들 말한다. 나는 아무리 봐도 노년이라 시간이 많이 남아돌지는 않는 것 같다. 봉사라는 게 시간이 남아서 하는 게 아니라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봉사하고 싶지 않다. 그동안 남편에게 봉사활동을 너무 많이 한 관계로 그만하면 내가 해야 할 봉사활동은 다했다고 내 마음대로 생각한다. - P30

이 내용은 폴 존슨이 쓴 <지식인의 두 얼굴>(윤철희 옮기, 을유문화사)에 나온다. 이 책에 의하면 <두 노인>과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증 그 외의 많은 작품에서 하느님 찜쪄먹을 것처럼 기독교적 신앙심을 강조했던 톨스토이가 사창굴에 자주 드나들고 하녀들을 수시로 추행하고도 언제나 남녀 교체를 사회악이라고 생각했으며 여자들을 남자들과는 동등한 인격체라고 생각하지 않고 멸시했다는 것이다. 아, 이런 재수탱이 똘쓰또이. 내가 그 두꺼운 <전쟁과 평화>를 모조리 다 읽고, 수많은 인간의 심리를 이렇게 정확하게 묘사할 줄 아는 사람은 인간성 반듯하고 인격이 아주 높을 거라고 생각하며 존경의 마음을 보냈는데, 자기 어린 아내하고도 매일 불화하고 죽을 때도 기어이 집을 나와서 기차역에서 죽었던 것이다. 아이를 열셋이나 낳아놓고 자기 잘난 맛에 농지를 농노에게 배분해야 한다고 난리치니 어느 마누라가 좋아할까? 세상에 믿을 놈이 하나 없네. - P41

비단 부부간의 신의만이 의리가 아니다. 부모 자신 간의 관계라 할지라도 인간관계에서는 의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끔씩 정말 철없는 부모들이 자신이 낳은 아이들을 방치하고 때로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사건도 발생하지만, 혼자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없을 정도의 부모를 돌아보지 않는 자식들이 더 많은 게 현실이다.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보살핌을 받고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왔다면 내 부모의 안부를 묻고, 같은 공간에서 생활까지는 안 하더라도 근황을 파악하고, 필요시에는 마땅한 조치를 취하는 게 사람됨의 근본일 터이다. 요새는 부모가 장수하는 경우가 많아서 자식도 나이들어가다보면 부모 자식 간의 감정적 정은 줄어들지라도 사람이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의리가 있는 것이다. (사실 노노(老老) 케어 현상은 사회적 문제이다.) 이렇게 부부간이나 부모 자식 간에도 의리가 중요하다면 모든 인간관계의 핵심은 결국 의리에 있다 하겠다. - P90

길을 지나다니면서 보면 할아버지들은 뚱뚱한 사람들이 드문 편이다. 그런데 목욕탕에 온 할머니들은 배가 너무 많이 나와서 보기에 좀 답답하다. 다리와 팔은 보통인데, 복부가 숨쉬기도 어려워 보이는 분들이 많다. 이것은 아무래도 호르몬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살이 찌면 무릎이나 허리가 아픈 경우가 많고 관절염 약을 먹으면 살이 더 빨리 찐다. 게다가 나이가 많아지면서 체질이 바뀌어 알레르기라도 발생하면 피부과 약을 먹게 되고, 이 피부과 약이 또 비만을 불러온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나이가 70대 중반을 넘으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살이 찌고 싶어도 잘 안 찌고, 물론 할머니도 살이 찌고 싶은데도 안 찌는 경우가 있어서 너무 왜소하게 보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자들은 신경을 안 쓰면 살이 찐다. 조물주가 생애주기를 잘못 짰다고 불평해봐야 소용없고 적게 먹든지 더 많이 움직이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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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자연은 반복돼, 모우. 소멸하는 듯 보이지만 자신의 탈각(脫殼)을 집어삼키며 재생하고, 회복하고, 되살아나는 거야. 자연의 시간은 우리가 달라. 유한한 시간에 갇힌 건 인간뿐이야. 인간은 자연에서 떨어져나왔어. 아주 한때 하나였겠지만, 인간의 언어가, 언어를 가진 인간이, 모든 것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영원히 이 생태계의 이방인이 된 거야.

 

(49)

초우, 현혹되지 마. 실패한 것에는 이유가 있어. 인류의 진화와 발전을 자세히 들여다봐. 언어가 장착되고, 그리하여 많은 것은 정립되고, 끊임없이 전달되면서 세상은 전쟁과 빈곤, 파괴와 몰살, 멸종의 길을 걸었어. 시야는 좁아지고 감각은 둔해졌지. 언어에 지배당한 인류의 끝은 자멸이었다. 우리의 뇌는 언어를 탈락시키며 발전했어. 언어가 통제했던, 최초의 인류가 가졌던 감각을 다시 깨웠다. 우리의 소리는 언어에 정복되지 않기 위한 저항이다. 언어가 생겨나고 규칙이 정해지는 것을 거부하는 몸짓이지. 지켜라.

 

(64-65)

언어를 알게 되면서 엄마도 나와 같은 같은 시간을 살게 되겠지. 느려지고, 멀어지고, 작아지고, 힘겨워지겠지. 이건 저주야. 맞아, 저주가 맞아. 기껏 자연이 인간을 다시 지상으로 끌어내리는 저주의 주문이야.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고, 말을 하더라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영원히 말의 미로 속을 떠돌다 고립되고 외로워지는 인간이 되겠지. 하지만 나는 엄마가 그러길 바라.”

모우가 초우의 뺨을 어루만진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한 의음으로 초우에게 속삭인다.

엄마, 영원의 없어. 가려진 세상을 제대로 봐. 인간은 진화하지 않았어. 그의 말이 맞아. 나는 인간의 저주야. 그러니 우리의 만남부터 언어로 새겨보자. 모두가 볼 수 있게. 그 시작은 엄마의 말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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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데이션의 끝 파운데이션 시리즈 Foundation Series 4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김옥수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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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할 책은 파운데이션 시리즈 4권인 <파운데이션의 끝>이란다. 지난번 파운데이션 시리즈 3 <2파운데이션>의 뒷이야기지만, 출간연도를 보니 30년 차이가 나는구나. <2파운데이션> 1953년에 출간을 했고, <파운데이션의 끝> 1982년에 출간을 했어. 그러니까 원래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3권으로 끝난 이야기였던 것 같아. 그랬다가 오랫동안 인기를 끌자 다음 이야기를 써달라는 요청이 쇄도했겠지. 30년이 지나서야 4권의 이야기가 나오다니기다리다가 돌아가신 분들도 있겠구나. 갑자기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조지 R.R 마틴의 <얼음과 불의 노래> 시리즈가 생각이 나는구나. 5부에서 멈춘 지 10 여 년.. 과연 약속했던 6부와 7부는 나올 수 있는 것인지

다시 파운데이션 이야기를 할게. 파운데이션 시리즈 4권부터는 책 두께도 많이 두꺼워졌단다.  4권뿐만 아니라 그 뒤로 이어지는 5, 6, 7권 모두 두께가 만만치 않아. 두꺼워진 만큼 할 이야기도 많을 테니, 얼른 이야기를 시작할게. 4 <파운데이션의 끝>은 해리 셀던이 처음 셀던 프로젝트를 시작한 시점으로부터 498년이 지났단다. 3 <2파운데이션>의 마지막 부분에서 제2파운데이션이 트랜터에 있다는 것을 독자에게만 알려주면서 끝났잖니. 그때로부터도 약 120년이 흘렀단다. , 그럼 <파운데이션의 끝> 이야기를 시작할게.

 

1.

터미너스의 시장은 할리 브라노라는 여자가 맡고 있었어. 그리고 의원 중에 골란 트레비스란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파운데이션의 끝>의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어. 트레비스는 셀던 프로젝트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말을 했다가 브라노 시장에 의해 반역죄로 고소당했어. 트레비스도 억울할 만한데 사실 브라노 시장이 반역죄로 고소한 것은 트레비스에게 따로 임무를 주기 위함이었어. 반역죄 혐의로 추방당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몰래 제2파운데이션 위치를 찾는 임무를 맡아달라고 했단다. 그러면서 역사학자 페롤랫과 함께 하라고 했어. 그런데 페롤랫에게는 지구의 위치를 찾아달라고 했단다. 트레비스도 자신의 임무가 지구의 위치를 찾는 것이라는 알게 되었고, 이번 탐험은 어쩌면 다시는 터미너스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그런 여행이었단다.

그들은 먼저 트랜터로 가기로 했단다. 그곳 도서관에서 지구에 대한 자료를 검색하기 위해서 말이야. 그들에게 지구는 인류가 시작한 전설 속의 행성으로만 알고 있지, 위치뿐만 아니라 어떤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거든. 트레비스와 페롤랫은 트랜터로 가기로 했으나, 우주선 조종대를 잡고 있는 트레버스가 트랜터가 가지 않고 곧바로 지구를 찾으러 미지의 우주로 가겠다고 했단다. 페롤랫은 트렌터에 가서 지구에 대한 정보를 얻자고 했으나 트레비스는 자신의 뜻대로 우주로 향했단다.

한편 제2파운데이션은 19대 제1발언자 프림 팔버 이후 25대 제1발언자 퀸도르 섄디스가 이끌고 있었단다. 2파운데이션은 리더격인 제1발언자 이외에 여러 발언자들이 있었어. 젊은 발언자 중에 한 명인 젠디발은 섄디스와 의견충돌이 잦았단다. 하지만 섄디스는 젠디발의 능력을 인정했어. 섄디스는 셀던 프로젝트가 해리 셀던의 예언대로 잘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반면, 젠디발은 오히려 그렇게 딱 들어맞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고 생각했고, 언제든지 예외적인 상황이 생길 수 있으니 대비해야 한다고 했어. 그가 조사한 바로는 터미너스의 트레비스 의원이 추방되는 사건이 있었는데, 이것을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했어.

트랜터가 옛 은하제국의 수도였던 기억나지? 그 후예들이 지금은 주로 농업을 지내고 있는데 그들을 헤임인()이라고 했어. 어느날 젠디발이 헤임인들에게 잡혀 한동안 감금되는 사건이 일어났어. 그런데 헤임인 중에 슈라 노비라는 여성 농부가 젠디발을 구출해주었단다. 슈라 노비는 이후 젠디발을 찾아와 역사공부를 하고 싶다고 제자로 받아달라고 했단다. 젠디발을 슈라 노비가 헤임인이라 꺼렸지만 자신을 구출해준 은인이고, 열의가 있어 보여 받아주었단다. 슈라 노비는 감사한 마음으로 젠디발을 말이라면 다 따랐어. 1발언자 섄디스가 나이가 많아서 후계자를 뽑아야 하는데 가장 유력한 자가 젠디발이었어. 그런데 그의 라이벌 델라미가 젠디발을 탄핵하려고 했어. 청문회가 열리고 젠디발은 자신의 무죄 입증을 해야 했단다. 그러면서 젠디발은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여러 발언자들에게 이야기를 했어.

2파운데이션 내에 비밀조직이 있어 지구에 대한 자료를 모두 없앴고, 자신과 의회를 조정하려는 한다고 했어. 그리고 트레비스가 제1파운데이션에서 추방당한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사실은 추방이 아니라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 같다고 했어. 그러자 델라미가 그렇다면 젠디발이 트레비스를 추격하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을 했어. 젠디발이 없는 사이에 델라미 자신이 제1발언자가 되려는 계략이란 것을 누구나 알았어. 섈디스도 델라미의 계략을 알고 그 자리에서 젠디발이 트레비스를 추격하는 것은 좋다고 하면서 제1발언자로 공식 지명을 했단다. 그렇게 젠디발은 26대 제1발언자에 지명되었어. 그리고는 트레비스를 추격하러 우주로 길을 떠났단다. 그때 슈라 노비도 트레비스와 함께 떠났단다.

….

트레비스와 페롤랫은 20여차례 도약을 통해서 세이셸 행성이란 곳에 도착했단다. 그런데 다른 우주선을 타고 트레비스의 콤포도 그곳에 도착을 했어.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트레비스는 당황하면서 콤포가 자신을 정확하게 쫓아온 것을 보고 콤포가 아마 제2파운데이션의 정보원일거라고 추측했어. 콤포는 트레비스를 도와주려고 왔다고 하면서 지구는 방사능으로 못사는 행성이 되었다고 하면서도 콤포렐론 행성에 가면 지구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했어. 트레비스가 예상했듯이 콤포는 제2파운데이션의 정보원이 맞았어. 2파운데이션에서 정보원이란 발언자보다는 낮은 지위의 신분이었단다.

2파운데이션의 일원들의 특징 중에 하나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잖니, 기억나지? 콤포도 그런 능력이 있었어. 콤포는 젠디발과 연결하여 서로 정보를 주고 받고 있었단다. 그래서 젠디발도 트레비스가 세이셸 행성에 있는 것을 알고 세이셀 행성으로 방향을 틀었단다. 트레비스와 페롤랫은 세이셸 행성에서 퀸테세츠 교수와 만나서 지구에 대해 이야기를 전해 들었단다. 세이셸 행성은 지구의 인류가 가장 먼저 정착한 행성 중에 한 곳이라서 트레비스와 페롤랫이 찾아온 거야. 퀸테세츠 교수는 지구가 방사능에 뒤덮였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했어. 그리고 그곳에 아직 인간들이 있을 거라고 했어. 하지만 지구가 정확히 어떤 곳이 모른다고 했단다. 트레비스와 페롤랫은 세이셸 행성에서 이틀 동안 머물다가 다시 우주로 향했단다. 가이아라고 부르는 행성이 있는데 그곳이 지구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이아 행성으로 출발했단다. 트레비스는 누군가 그들을 가이아로 가라고 유도하는 것 같은 불안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마땅히 갈 다른 곳도 없었어.

….

 

2.

브라노 시장은 트레비스가 세이셸 행성에 갔다는 보고를 받고 그가 왜 세이셸 행성에 갔는지 골똘히 생각했단다. 그리고는 그들이 어쩌면 가이아 행성으로 갈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리고 가이아 행성이 어쩌면 제2파운데이션일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도 했어. 아직 터미너스에서는 제2파운데이션이 트랜터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지. 브라노 시장은 함대를 이끌고 세이셸 행성으로 가겠다고 마음을 먹었단다. 그의 생각은 곧바로 행동으로 이어져 보안국장 코렐과 함께 함대를 이끌고 세이셸 행성으로길을 떠났단다. 브라노 시장과 코델도 세이셸 행성 인근에 도착을 했고, 코델이 세이셸 행성에 먼저 가서 세이셸의 파운데이션 대사인 튜빙을 만났단다. 튜빙은 가이아에 가게 되면 외교적으로 세이셸과 갈등을 빚게 될 수 있으니 다시 터미너스로 돌아가라고 조언을 했지만 브라노 시장과 코델은 원래 계획대로 가이아로 출발했단다.

….

트레비스와 페롤랫은 가이아가 있는 항성계에 도착을 해서 가이아 행성에 착륙하기 전에 탐사를 했어. 그런데 가이아 행성 근처로 오자 그들이 우주선의 제어권을 잃어버리고 우주선이 저절로 어디론가 끌려갔단다. 가이아 행성 외곽에 우주정거장으로 끌려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가이아 사람인 블리스를 만나게 되었단다. 페롤랫과 트레비스는 블리스의 안내에 따라 가이아 행성에 착륙했단다. 그리고 가이아 행성의 지도자인 돔을 만났어. 돔은 가이아에 대해 설명해 주었어. 가이아라는 것은 하나의 행성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행성에 살고 있는 생물체와 무생물까지 포함한 집단 의식이라고 했어. 한 마디로 행성 전체가 살아 있다고 했어.

이전에 파운데이션 시리즈 2권에 나와 문제를 일으켰던 뮬 기억나지? 뮬도 가이아 출신이었는데, 가이아에서는 뮬을 가이아의 룰을 위반하고 가이아를 떠난 비정상적인 사람이라고 알고들 있었어. 뮬이 다른 사람의 정신을 읽고 조정할 수 있었던 것 기억나지? 가이아 사람들은 모두 이 능력을 가지고 있단다. 그래서 서로의 기억도 서로 공유할 수 있었어. 돔이 이야기하길 지금 가이아는 위기에 빠져 있는데 이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이는 트레비스라고 했고, 그래서 트레비스를 가이아로 오게 유도한 것이라고 했단다. 트레비스는 자신의 의지로 가이아에 온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가이아가 트레비스의 정신을 조정해서 이쪽으로 오게 유도했다는 거야. 트레비스는 이 이야기를 당황하면서 자신이 가이아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믿기지 않았단다.

젠디발과 슈라 노비는 세이셸에 도착해서 콤포와 만났어. 콤포의 우주선이 더 성능이 좋은 최신식이라서 우주선을 서로 바꿔 타고 젠디발과 노비는 가이아로 향했단다. 젠디발도 서서히 가이아로 이동하고 있었고, 그 뒤로는 브라노 시장이 파운데이션 함대를 이끌고 오고 있었어. 이제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어 통신하게 되었는데, 젠디발과 브라노는 의견 충돌도 있었지만 결국은 둘은 함께 가이아를 공격하자고 협의했단다. 그런데 젠디발과 함께 온 노비도 알고 보니 가이아 출신이었어.

지금까지 젠디발에게 이 사실을 숨기고 있었어. 노비는 자신이 가이아인이라면서 젠디발이 가이아로 오도록 유도했다는구나. 노비도 가이아인이니까 다른 사람의 정신을 조정할 수 있었겠지. 가이아에 한꺼번에 외부에서 우주선 세 개가 왔단다. 파스타 호를 타고 온 트레비스와 페롤랫. 2파운데이션에서 온 젠디발과 노비, 1파운데이션에서 온 브라노 시장과 코델. 노비는 이 모든 이들의 정신을 조정해서 모두 정신(생각)으로 대화할 수 있게 했단다. 그러니까 자신이 가지고 있는 텔레파시 능력을 모든 이가 가능하게 한 거야. 그리고 가이아가 그들을 이곳으로 유도한 이유를 설명해 주었어.

가이아에서 지켜본 바로는 제1파운데이션과 제2파운데이션이 강하게 발전하고 있었고 더 시간이 지나면 두 세력간 자칫 전쟁이 발생하게 되면 가이아를 비롯한 나머지 세력들은 큰 위협에 빠질 것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제1파운데이션과 제2파운데이션이 더 세력이 커지기 전에 가이아가 한쪽을 선택하겠다고 했어. 그 결정을 트레비스에게 맡기려고 했던 거야. 좀 설정이 이상한 것 같구나. 가이아라는 큰 행성의 운명은 다른 행성의 한 사람한테 맡기다니트레비스는 자신 없어 하다가 결국 선택을 했단다. 그런데 그 선택은 제1파운데이션도 아니고 제2파운데이션도 아닌 가이아를 선택했단다. , 가이아를 선택한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지? 그러면 선택하기 전과 같은 상황 아닌가? 1파운데이션과 제2파운데이션은 여전히 제 갈을 가고, 가이아 역시 제 갈 길을 가는 것 아닌가?

가이아의 목표는 행성을 하나의 집단 의식의 가이아로 만든 것처럼 우주 전체를 하나의 집단 의식인 갤럭시아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단다. 아무리 생각해도 트레비스의 선택으로 바뀐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구나. 책이 두꺼워서 아빠가 책 후반부로 오면서 집중력이 떨어져서 제대로 이해를 못한 부분이 있었나? 아무튼 트레비스의 선택과 함께 제1파운데이션의 브라노 시장은 터미너스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돌아가는 길에 세이셸과 무역협정을 맺어 연맹에 들어오게 하는 성과를 냈고 젠디발은 제1발언자 자리에 오를 것에 기뻐하며 돌아갔단다. 모든 갈등이 정리되고 트레비스는 돔을 만나 지구를 가고 싶다고 했단다. 원래 트레비스의 목적은 지구에 가는 것이었으니 그것도 바뀐 것이 없구나. 바뀐 것은 페롤랫 교수였어. 페롤랫은 블리스와 사랑에 빠져서 가이아에 남겠다고 했단다. 그런데 블리스가 정교하게 만든 로봇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있었어. 블리스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는데, 상대방이 못 알아챌 정도라면 무슨 상관이겠니

이렇게 파운데이션 시리즈 4 <파운데이션의 끝>의 이야기가 끝났단다. 좀 이해 안가는 부분도 있었지만, SF 소설이니까 세계관이 다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어. 아빠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가치로 자꾸 생각하게 되니까 말이야. 이제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3권이 남았구나. 3권을 미리 살펴보니 3권 모두 두께가 꽤 두껍네. 심호흡을 하고 팔뚝 힘도 좀 길러서 읽어야겠구나.

,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골란 트레비스는 셀던 홀의 넓은 계단에서 태양빛을 받아 반짝이는 도시를 먼발치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책의 끝 문장: 트레비스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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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이스마트 2024-12-04 0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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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holic 2024-12-06 21:31   좋아요 0 | URL
감사여~
 
















(18-19)

필요한 내용을 찾았는지 한동안 집중해서 읽던 산아가 사전을 가리키며 물었다. 나는 오늘 면접에서 받아 온 옛날 건축에 관한 사전이라 설명하고 몇몇 용어를 알려두었다. 중수는 손질하여 고치는 것, 중창은 다시 짓는 것, 재건은 크게 일으켜 세우는 것이라고. 한옥에서 문은 창살무늬에 따라 이름이 다 달라서, 세로살을 꽉 채우고 가로살을 위아래와 중간에만 넣은 건 세살문, 가로살과 세로살을 다 채운 문은 만살문, 문 중간에 빛이 들어갈 수 있도록 사각형이나 팔각형으로 작은 창을 낸 문은 불발기문, ‘자 형태로 살을 짠 문은 완자문, ‘자 무늬가 있으면 아자문이라 한다고.


(84)

학생 수가 많아서 그런지 교실은 마치 퍼즐판처럼 세밀한 경계로 각자 나뉘어 있었다. 전교생이라고 해봤자 서른명도 되지 않는 석모도에서 그물처럼 성글었던 구분들이 여기서는 한층 촘촘해졌다. 어디 사는지, 출신 초등학교가 어딘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어느 학원을 다니는지가 너무 중요한 기준이었다. 내 하굣길을 누가 볼까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어 보였다. 학교가 끝나면 아이들은 각자 학원 승합차를 타고 일시에 사라졌기 때문이다.


(158)

그러자 당연한 수순처럼 순신이 수난이 뭐냐고 물었다. 나는 순신에게 손바닥을 펼쳐보라고 했다. 그리고 거기에 얼음조각이 놓여 있다고 상상해보라고. 그러면 어떻겠어? 하고 물었다. 순신은 아주 시원할 것 같다고 해서 내 김을 빼놓았다. 나는 지금이 겨울이라 생각해보라고 다시 조건을 달았다. 이제 더 이상 매미도 울지 않고 나뭇잎도 일렁이지 않는다고, 길이 얼어 자전거를 탈 수도 없고 옷 밖으로 몸을 내놓으면 아플 정도로 바람이 차고. 그런 겨울에 손바닥에 얼음이 있으면 손이 얼겠지, 아프고 따갑고 시렵겠지, 그런데 얼음을 내던질 수는 없고 가만히 녹여야만 한다고 생각해봐. 그 시간이 너무 길고 험난하게 느껴지겠지. 그런 게 수난이고 그럴 때 하는 게 기도야.


(344-345)

우리는 방을 나와 서로의 얼굴을 최대한 보지 않은 체 인사하고 퇴근했다. 나는 차창을 열어놓고 속력을 내어 섬으로 돌아갔다. 얼른 가서 무화과나무가 있는 마당을 지켜보며 마루에 누워 섬의 소리를 듣고 싶었다. 정작 마을에서는 파도가 소리가 들리지 않지만 물결치는 소리만이 섬 소리의 전부는 아니었다. 배를 타고 나갔다 빈 배로 돌아온 사람들의 불평 소리, 어느 집에서인가 쓰레기를 쌓아놓고 타닥타닥 태우는 소리, 밥을 짓거나 부엌에서 그릇을, 외할머니가 설음질이라고 부르던 것과 똑같이 설렁설렁 닦는 소리, 말린 생선을 노리는 고양이들의 착지, 마을 노인정에서 들려오는 노래방 소리, 소라껍데기에 귀를 가져다대고 그 안에서 바닷소리를 발견해내듯 그런 섬의 소리를 변별하다보면 다시 평정이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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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
이미리내 지음, 정해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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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해줄 책은 이미리내 님의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이라는 책이란다. 이 책은 우연히 알라딘 인터넷 서점 신간 코너에서 알게 된 책이고 귀가 얇은 아빠는 출판사의 광고성 책소개에 이 책을 장바구니에 넣었단다. 미국의 대형 출판사와 선인세 계약을 맺는 등 여러 나라에서 출간이 확정되었다는 내용이 아빠의 손가락을 움직이게 했단다. 지은이 이미리내 님은 스스로 자신을 미국 교포로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다고 했는데, 아빠도 작가의 약력을 자세히 읽기 전까지는 미국 교포인 줄 알았어. 왜냐하면 이 책은 영어 원서가 있고, 번역가가 따로 있었기 때문이야. 최근에 외국에 있는 우리나라 교포들의 책들이 번역 출간되는 일이 많아져서 이 책도 그런 책들 중에 하나인 줄 알았어. 그런데 책 앞에 한국어판 서문을 읽고 나서야 지은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렇다면 왜 한글이 아닌 영어로 소설을 썼을까? 의문이 들었는데 그 이유도 한국어판 서문에 나와 있었단다. 지은이 이미리내 님은 20살까지는 우리나라 일반 학교에 다녔고 20살이 되어서야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왔대. 그리고 나중에 결혼을 하고 남편이 홍콩으로 발령을 받아서 홍콩에서 살았는데 그곳에서 문예 창작을 공부하고 위해 대학원을 들어갔어. 홍콩이다 보니 영어로 가르치는 대학원을 들어간 것이고, 영어도 문예 창작을 공부하게 되어 소설도 영어로 쓰게 되었지,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는구나. 그렇게 영어로 쓰다 보니 우리나라보다 영미권에 먼저 소설이 소개가 되었고, 단편 소설로 상도 받았다는구나. 그리고 이번에 첫 장편 소설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8 Lives of a Century-old Trickster)도 영어로 써서 영미권에 먼저 출간되었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화제를 모으게 되자 우리나라에도 번역 출간하게 된 것이란다.

출판사의 광고성 책소개가 거창할수록 실망하는 경우가 많아서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책을 펼쳤는데, 기대 이상이었단다. 우리나라 현대사를 꿰뚫은 삶을 산 한 여인의 이야기인데 무척 재미있었어. 일제 시대 우리의 아픈 역사도 담겨 있고, 이후 분단 국가의 아픈 역사도 담겨 있었단다. 이 소설을 영어로 쓰셔서 우리나라 현대사를 외국에 소개했다는 점에도 지은이를 칭찬하고 싶구나. 한글이 아닌 영어로 소설을 쓰신 것도 잘 하셨네.

 

1.

그럼 지금부터 책 이야기를 해줄게. 황홀요양원에서 부고 담당으로 일하는 이새리는 흙을 먹는 괴짜 할머니, 묵미란 할머니를 알게 되었어. 묵미란 할머니는 새리에게 부고를 써달라고 하면서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여덟 개의 단어로 이야기해 주었단다. 그런데 그 단어들이 예사로운 단어들이 아니었어. 노예, 탈출 전문가, 살인자, 테러리스트, 스파이, 연인, 어머니. 한 할머니의 인생을 대표할 만한 단어라고 생각되지는 않지? 어떤 삶이길래 저런 단어들을 나열했을까? 궁금증이 확 늘어나더구나. 그런데 위 단어들은 여덟 개가 아니고 일곱 개였단다. 나머지 하나는 이야기를 하면서 할 모양이구나. 어떤 사연인지 묵미란 할머니는 긴 이야기를 하게 된단다. 책의 순서는 시간 순서가 약간 섞여 있는데 그것도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았어. 나중에 시간 순서대로 짜맞추면서 이전에 읽은 부분의 궁금했던 떡밥들이 하나씩 수거되는 기분이었단다.

시작은 다섯 번째 인생, 1961년의 이야기란다. 참고로 다섯 번째 인생은 단편으로 먼저 출간되어 미국에서 무슨 상도 받았다고 했어. 다섯 번째 인생 1961년의 이야기는 처음 읽을 때는 어찌된 사연인지 궁금한 부분들이 많은데 다른 인생들을 읽다 보면 어떤 일이 있는지 이해가 간단다. 그러니 지금은 일단 다섯 번째 이야기를 쭉 해볼게. 1961는 임진강변 금파리라는 마을에서 살고 있었어. 여기서 는 묵미란 할머니는 아니고 또 다른 화자란다. 그 동네에는 임진강변에 돌아다니는 미친 여자가 있었단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얼마 안 된 시점이라 마을마다 정신 나간 미친 사람이 하나둘 있는 것은 예사이던 시절이었어.

사람들은 그 여자를 처녀귀신이라고 불렀다가 나중에는 여자가 돌아다니면서 소리내는 것을 흉내내어 야다다라고 불렀단다. 하지만 는 그 여자를 얄루라고 불렀어. ‘얄루도 그 여자가 흥얼거리는 말 중에 하나였거든. 주석으로 얄루는 압록강의 영어 발음이라고 하는구나. ‘는 그 여자에게 동정심 또는 연민 또는 어쩌면 사랑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았어. 어느 비 오는 날 는 메기를 잡으러 갔다가 그만 지뢰를 밟고 정신을 잃었단다.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되어 전쟁 때 뿌린 지뢰가 터지지 않고 있다가 비 오는 날이면 떠 내려와 사고가 나기도 했는데 가 그만 그 지뢰를 밟은 거야. 정신을 잃었다가 깼다 잃었다가 했는데, 얄루가 자신을 안고 병원까지 데려다 주었단다. 미친 여자로 알려진 있던 얄루가 말이야.

병원에 한참 있다가 퇴원을 했는데 친구 이 와서 그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었어. 용의 형 이 얄루를 찾아가 못된 짓을 하려고 하다가 둘이 몸싸움을 하게 되었는데 얄루의 몸 속에서 권총이 나와서 완이 빼앗았고 도망가는 얄루를 향해 권총을 쐈는데 맞추지는 못하고 얄루는 그 길로 도망을 갔다고 했어. 그후 얄루의 행적은 모른다고 했어.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얄루가 가지고 있던 권총이 북한 권총이었다는 거야. 그러니까 미친 여자가 아니고 북한에서 넘어온 간첩이었다는 거지. 미친 척 하면서 남한과 미군부대의 정보를 빼간 걸로 의심되는 상황. 서울에서 조사하러 내려왔지만 끝내 얄루는 찾지 못했단다. 이렇게 다섯 번째 인생 이야기가 끝이 났단다. 그 얄루의 정체가 너무 궁금해서 바로 다음 장을 넘길 수밖에 없구나.

첫 번째 인생. 1938. 묵미란 할머니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온단다. 어린 시절이니 그냥 편이상 미란이라고 할게. 미란은 어머니와 아버지와 동생과 함께 평양 인근에서 살고 있었어. 미란의 아버지는 고래잡이를 하셔서 집에 없는 날이 많았는데 집에 있는 날이면 어머니를 패는 가정폭력범이었단다. 사실 어머니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단다. 어머니의 아버지는 한의사였는데 독립운동을 하다가 발각되어 체포되었어. 딸도 감옥에 가게 될까 봐 빨리 결혼시킨다는 것이 지금의 아버지와 결혼하게 된 것이란다. 나중에 어머니의 어머니도 감옥에 가게 되고 두 분은 모두 감옥에서 돌아가셨어.

어머니는 아이들이 있으니 가정폭력범 남편으로부터 도망가지 못하고 그냥 살고 있었어. 미란은 흙 먹는 버릇이 있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단지 좋아서 그런 거라고 했어. 아버지는 툭하면 어머니를 죽도록 팼는데 어느날은 너무 맞아서 어머니의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단다. 미란은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하여 독초를 캐와서 몰래 아버지의 음식에 넣고 외출을 했단다.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는 이미 죽어 있었어. 어머니는 미란의 짓이란 것을 알고 있었지. 어머니는 땅을 깊이 타서 그곳에 아버지의 시신을 묻었단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미란은 더 이상 흙을 먹지 않았단다.

 

2.

세 번째 인생 1950. 미란은 전쟁 중에 엄마와 동생이랑 헤어졌단다. 엄마를 찾겠다고 남으로 피난을 왔어. 여자의 몸으로 혼자 다니면 안될 것 같아서 남장을 해서 돌아다녔는데, 체구가 작다 보니 다른 사람들은 소년이라고 생각했어. 미란은 부산까지 내려왔단다. 미란은 어렸을 때 선교사로부터 영어를 배워서 영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알았어. 그래서 미군부대에서 가서 일자리를 얻으려고 했지. 통역 일을 하게 되었는데 미군부대 하우스라는 곳에서 일하게 되었어. 그곳은 미군상대로 성접대를 하는 여자들이 있는 곳인데 그 여자들 대부분은 강제로 동원된 여자들이었어. 일제 시대 강제로 끌려간 위안부와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이야. 미란은 화가 났어. 사실 미란도 일제 시대 강제로 위안부로 끌려갔다가 간신히 탈출했었거든. 누구보다 하우스에 있는 여자들의 아픔을 알고 있었어. 미란은 하우스에서 알게 된 제니의 탈출을 돕기로 했어. 어느 날 미란은 하우스에 불을 지르고 도망을 갔단다.

두 번째 인생은 1942. 년도만 봐도 암울하고 아픈 시대로구나. 공장에서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미란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게 되었단다. 많은 위안부들의 현재의 삶에 좌절하여 목숨을 끊기도 했지만 미란은 그대로 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버텨냈단다. 그리고 공격해온 미군들에 항복하여 그 지옥 같은 곳을 탈출할 수 있었어.

네 번째 인생은 1955. 전쟁이 끝나고 얼마 안 된 시점. 미란은 평양으로 돌아왔단다. 위안부 시절 엄청 친한 친구 용말이라는 이가 있었어. 친한 것뿐만 아니라 미란과 용말은 서로 닮아서 자매냐는 소리를 많이 들었고, 어떤 일본군은 둘을 헛갈리기도 했었어. 용말은 말하기를 좋아할 뿐만 아니라 재미있게 이야기를 잘 해서 다른 위안부들에게 인기도 좋았어. 자신의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해서 미란도 용말의 많은 부분을 알고 있었단다. 용말은 위안부에 끌려오지 않으려고 빨리 결혼하려도 보니 나이 많은 남자랑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다행히 남편은 마음씨 착한 남자였다고 했어. 하지만 세 달 밖에 못 살고 시장에 장보러 갔다가 강제로 붙들려 위안부로 오게 되었다고 했어. 그런데 안타깝게도 용말은 병이 걸려 전장에서 죽고 말았단다.

전쟁이 끝난 미란은 갈 곳이 없어서 용말의 집으로 갔어. 용말의 남편 영민은 미란을 보고 당연히 용말이라고 생각했어. 자신의 집에 찾아온 여자인데 용말과 비슷한 용모에 세 달을 살다가 10년만에 봤으니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미란은 그렇게 영민과 함께 지내게 된단다. 영민은 지난 10년 간에 일에 대해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어. 그리고 둘은 서로 사랑하게 되었단다. 영민은 10년 만에 만났지만 아내의 미세한 차이를 눈치챘어. 눈에 확 뛰었던 점이 사라져 있었고, 더욱이 발 사이즈가 작아졌던 거야. 하지만 그녀에게 정체를 물어볼 수는 없었어. 지금 이 여인을 사랑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영민은 아내가 스스로 말해줄 때까지 기다리고 했단다.

 

3.

여섯 번째 인생 2005. 갑자기 시간은 훌쩍 뛰어 세기가 바뀌어 2005년이 되었단다. 다섯 번째 인생이 1961년이었으니까 40년이 훌쩍 넘어섰네. 최선생이라는 사람과 박수사관의 신문. 대화 내용을 들어보니 최선생은 대남 경찰이었어. 최선생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다름 아닌 미란이었단다.

용말의 남편과 살고 있던 미란이 실수를 한 것이 있었어. 돈벌이를 위해 영어를 쓰게 되었는데, 영어를 너무 잘 하는 것을 의심 받아서 당국의 조사를 받게 되었어. 당국에서는 미란이 미군 부대에 불을 지르고 도망쳤다는 이력을 확인하고 자신들 편이라고 생각하고 미란에게 제안을 했어. 스파이 일을 해달라고.. 미란이 거절한다고 안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미란은 남편에게는 비밀로 해달라고 하고 스파이 일을 시작했단다. 그렇게 스파이, 그러니까 간첩 일을 하게 된 거야.

그러면 이제 처음에 이야기해 준 다섯 번째 인생에서 미친 여자인 척 하면서 미군 부대의 정보를 빼간 간첩이 누구인지 알겠지? 남편 영민의 누나가 기차사고로 죽고 나서 누나가 입양하여 키우던 아이 미희를 영민과 미란이 입양하여 키우기로 했단다. 그리고 압록강 근처 혜산이라는 곳으로 이사를 가서 그곳에서 지냈어. 미란은 미희를 친딸처럼 잘 보살피며 잘 키웠어. 사실 미란은 위안부 시절 몸이 망가져서 아이를 가질 수 없었거든. 미희는 커가면서 미란의 영향으로 외국어를 잘 하게 되었고 외국어 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단다. 그리고 미희도 스파이 일을 하게 되었어. 미희가 어쩌다가 엄마가 하는 일을 할게 되었는데 자신도 엄마처럼 스파이가 되고 싶다고 한 거야.

이런 과거가 있었던 것이란다. 미란은 이념과 사상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어. 어쩌다 보니 스파이가 되어 자신의 일을 했을 뿐이었어. 그런데 지금은 어쩐 일인지 수사기관에서 신문을 받고 있었어. 미란을 신문하는 박수사관은 다른 간첩 명단을 달라고 했어. 미란은 그 명단을 다 줄 수 있으나 실명은 모른다고 했어. 한 명만 실명을 알고 있는데, 그 사람도 전향하는데 도와달라는 식으로 이야기했단다. 그 한 명 누군지 알겠지? 딸 최미희였어.

….

일곱 번째 인생 2006. 에이드리언 루소라는 젊은 목사가 있었어. 루소는 프랑스 아버지와 한국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지내다가 중국의 새생명교회에 선교사 자격으로 가서 탈북자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었단다. 그곳에서 배성미라는 탈북자를 만났어. 배성미는 그 교회에 머물면서 루소 목사를 도와주며 생활하다가 둘은 사랑하게 되어 결혼까지 하게 되었단다. 아람이라는 아기까지 낳고 행복한 삶을 꾸려가고 있었는데 어느날 배성미는 쪽지 한 장만 남겨두고 사라졌단다. 도대체 무슨 일이….

배성미라는 여자가 최미희일 거는 것은 짐작이 가지? 맞아, 배성미는 최미희였단다. 최미희는 공작원 교육을 받고 스파이가 되었단다. 배성미라는 가명으로 탈북자로 위장하고 루소에게 접근하여 정보를 빼오는 임무를 맡게 된 거야. 그런데 루소가 미희에게 빠져서 사랑하게 되었고, 루소는 브로커에게 거금을 주고 남한에 데리고 와서 결혼까지 하고 딸 아람을 낳은 거야. 미희는 한 달에 한 번씩 엄마와 접선을 했단다. 그런데 어느날 엄마는 더 이상 이 일을 하게 않을 때가 되었다면서 미희를 설득하기 시작했어. 자신이 먼저 자수를 하고 미희에 대해서 잘 이야기하겠다고 했단다. 일이 그렇게 된 거였어. 어느 날 갑자기 성미, 아니 미희는 루소에게 돌아왔단다. 그리고 그 동안 숨겼던 자신의 정체를 이야기했단다.

….

이제 다시 첫 장면의 황홀요양원. 부고 작가 이새리와 묵미란 할머니. 미란은 자신의 딸과 사위가 미국에 살고 있다고 했어. 새리는 속으로 그 말이 거짓말이라고 했어. 요양원에 살고 있는 어르신들이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이 자신의 자식들이 외국에 살고 있어 바빠서 찾아오지 않는다는 말이니까 말이야. 요양원 사람들은 묵미란 할머니는 지금 뇌종양을 앓고 있어서 머리도 이상해져서 이상한 이야기를 하고 흙도 먹는다고 했어. 그래도 새리는 묵미란 할머니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주었어. 묵미란 할머니는 자신이 한 이야기들을 적은 일곱 권의 노트도 건네주었단다. 그런데 얼마 후 묵미란 할머니는 요양원을 탈출해서 근처 빈터에서 죽은 채 발견되고 말았단다. 어떤 일이 있었을까.

더욱이 그날은 딸 최미희와 사위가 찾아와서 함께 미국으로 가기로 했어. 그 전에 모시러 올 수도 있었는데, 2006년 전향한 미희는 한 동안 숨어 지내야 했고 미국으로 건너 간 다음에도 합법적인 미국 시민이 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어. 이제서야 합법적인 미국 시민이 되어 엄마 미란을 데리러 온 것이었단다. 그러나 묵미란 할머니는 떠나기 싫었던 거야. 딸에게 부담되는 것도 싫어했어. 그래서 자기답게 자신의 삶을 선택한 것이란다. 뇌종양으로 남아 있는 삶도 얼마 안 남았으니까소설의 이야기상 그런 마무리가 나을 지 몰라도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는 그래도 딸과 만났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아빠가 재미있게 읽은 책을 이야기해줄 때면 편지가 길어지곤 하는데 오늘 편지가 참 많이 길어진 것 같구나. 그만큼 재미있었다는 이야기. 이미리내 작가님의 다음 작품들이 기다려지는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그 생각이 처음 떠오른 건 내가 이혼을 겪고 있는 동안이었다.

책의 끝 문장: 예상했던 대로 그녀의 혀는 마치 사탕에 입힌 새콤달콤한 가루처럼 굵은 흙에 한 겹 덮여 있었다.







"말이란 건 그냥 말이 아니란다, 아가. 말은 우리의 의도를 전달하기 위한 단순한 도구 이상이야. 말은 그 자체로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에 영향을 줄 수 있고, 말로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에 영향을 줄 수 있지. 그건 절대 일방통행이 아니야."
나는 엄마의 말을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고, 자랑스러움에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나는 이보다다 더 똑똑한 엄마를 기대할 수 없었다.
"말을 부드러운 무기라고 생각하면 된단다, 아가. 네가 아버지가 모르는 말을 썼을 때 아버지가 왜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하니? 알겠니?"
- P65

어느 날 너는 우리에게 자기는 왜 할아버지, 할머니가 없냐고 물었다. "금주는 할아버지가 둘인데, 어째서 난 영이야?" 네가 투덜댔다. 나는 돌아가셨다고 대답했다. 이 대답은 우리를 새로운 질문의 무한루프로 빨아들였다. "돌아가신 게 뭐야?" 그건 죽은 걸 뜻한단다. "죽었다는 게 무슨 뜻이야?" 더 이상 여기에 우리와 함께 있지 않다는 뜻이란다. 하늘나라로 가서 돌아올 수 없다는 뜻이야. "하늘나라에서는 뭘 해?" 누구도 확실히 알지는 못한단다, 미희야. "왜?" - P182

나는 우리 결혼의 첫 번째 미세한 균열을 찾아내기 위해 내 기억을 샅샅이 뒤졌다. 언제부터 우리 자신을 우리가 딱하게 여겼던 다른 평범한 부부들과 다름없는 존재로 보기 시작했을까. 예를 들어 식당에서 서로의 얼굴이 아닌 서로의 어깨 너머 빈 공간을 쳐다보는 부부. 이제 싸우고 싶지도 않을 만큼 서로에 대한 관심이 고갈된 부부. 마지막으로 잠자리를 한 것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부부. 오로지 자식 때문에 함께 사는 부부처럼 말이다. - P232

미희는 마치 납치범이 존재하지 않는데도 협상에 임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당신이 이 아이가 다른 평범한 아이들처럼 살아서 성장하게 해준다면, 무슨 짓이든 하겠어요. 내 몸에서 무엇이건 가져가도 해준다면, 무슨 짓이든 하겠어요. 내 몸에서 무엇이건 가져가도 좋고 내게 당신이 원하는 다른 어떤 비극을 줘도 좋아요. 내 다리를 앗아 가도 좋고, 내 눈을 앗아 가도 좋고, 심지어 내가 간 뒤에 이 아이가 정상적으로 살 거라고 보장만 해준다면 내 목숨을 가져가도 좋아요. 깨어 있으면서 고통스러워하는 나의 작은 핏덩이를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음을 아느니 차라리 영원히 잠들겠어요. - P317

갓 태어난 아람이는 하나의 블랙홀이었고 우리는 그 블랙홀에 기꺼이 빨려 들어갔다. 울음과 단속적인 짧은 잠과 수시로 폭발하는 식욕으로 우리의 잠을 앗아 가고 우리의 모든 일상을 거꾸로 뒤집어놓은 완벽한 폭풍이었다. 동시에 아람이는 우리가 깨어 있는 모든 시간을 경이로움으로 채웠다. 그 아이는 우리가 지금은 잊은 어린 시절의 놀라운 경험들-우리가 이 세상의 신참자로서 주변 세상을 어떻게 인식했으며, 어떻게 모든 평범한 물건이나 사람이 우리의 무한한 호기심에 불을 붙였는지-을 떠오르게 해주었다. 삶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한 누군가의 곁에 있는 것은 그토록 정신이 고양되는 경험이다. - P333

"내가 전에 갈망한 적 없던 흙을 갈망하게 되면 그냥 먹는 거지. 내 몸을 새것처럼 보존해서 110세까지 살려고 애쓸 생각은 없어." 묵 할머니가 킬킬거렸다. 그녀는 카르페디엠은 안 그래도 충분히 무모한 10대들에게 설파할 것이 아니라고, 그녀처럼 쪼그라든 늙은 몸들을 위한 경구라고 말했다. "오늘을 즐겨라. 그야말로 내일이 없을지도 모르잖나." 그녀가 속삭이고는 또 다시 킬킬거렸다. - P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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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4-11-29 23: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편지가 길어져도 상관없이 열심히 읽는 bookholic님의 독서 편지 독자중 하나입니다. ㅎㅎ 오늘도 좋은 책 리뷰 감사 합니다. _()_

bookholic 2024-11-29 22:44   좋아요 1 | URL
오타도 많고 앞뒤 문맥도 잘 맞지 않는 글을 읽어주시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날씨가 쌀쌀해졌는데 감기 조심하시고,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