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 캐드펠 수사 시리즈 1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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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얼마 전에 아빠가 기차를 탈 일이 있었단다. 오랜만에 기차를 타게 되어 조금 설레기도 했단다. 기차 안에서 커피 한잔 마시면서 책을 읽을 생각에,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재미있는 책을 읽어야 할 것 같아서 고른 책인 엘리스 피터스의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이라는 기이한 제목의 책이란다. 얼마 전부터 알라딘 인터넷 서점 블로그에 자주 소개되고 있는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란다. 리뷰하시는 분들이 모두 재미있게 읽었다고 해서 아빠도 어떤 책인가 싶어 캐드펠 수사 시리즈 1권을 구입했었어.

지은이는 엘리스 피터스라는 사람으로 아빠는 처음 알게 된 사람인데, 지난 세기에 이미 고인이 되셨지만 꽤 유명한 추리 작가인 것 같구나. 이전에도 우리나라에서 출간되었다가 이번에 완간 30주년 기념으로 전면 개정판을 내놓는다고 하는구나. 모두 21권인데, 그 중에 10권이 출간되었더구나. 세상에는 읽을 책들이 정말 많구나. 아빠는 이제 1권을 읽었으니, 가끔씩 읽어야겠구나. 아무튼 기차 여행에는 재미있는 추리 소설이 제격이라 생각하여 가지고 갔는데, 앞부분은 낯선 시대적 배경과 인물들을 이해하는데 애 좀 먹었단다. 본격적으로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는 책장이 날개 돋친 듯 넘어갔단다. 주인공 캐드펠이라는 사람도 원칙주의자라기 보다 융통성을 발휘하는 사람이라서 더 마음에 드는 캐릭터더구나. , 그럼 1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을 이야기해줄게.

 

1.

때는 1137. 잉글랜드의 베네딕토회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늙은 수사 캐드펠이 주인공이란다. 젊었을 때는 십자군 경험하고 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하고, 지금은 수도원에서 은둔하면서 지내고 있었어. 그 수도원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 중에 콜롬바수스라는 젊은 수사가 어느 날 갑자기 간질발작을 일으켰어. 동료인 제롬 수사가 콜롬바수스를 간호해주었는데 콜롬바수스가 꿈속에서 계시를 받았다면서 어떤 숲으로 콜롬바수스를 데리고 가서 샘물의 성수를 뿌렸어. 그랬더니 콜롬바수스의 간질이 사라졌다고 했어. 사람들인 이 일을 신성하게 생각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조작이라는 의견도 있었단다. 또 꿈의 계시에서 성녀 위니프리드의 유골을 슈루즈베리 수도원으로 모셔달라는 했대.

콜롬바수스의 간질을 낫게 한 꿈의 계시이기 때문에 성녀 위니프리드의 유골을 모셔오라는 계시도 무시할 수 없었단다. 그래서 그들은 이 일을 주교님과 왕자님께 이야기하여 허락을 받게 되었어. 그래서 사절단을 꾸려서 성녀 위니프리드의 묘지가 있는 웨일즈 귀더린 지방으로 떠났단다. 사절단은 모두 여섯 명이었는데, 로버트 부수도원장이 단장을 맡았고, 웨일즈 출신인 캐드펠 수사도 통역으로 사절단에 포함되었단다.

귀더린에 도착한 사찰단은 귀더린의 휴 신부님을 비롯한 신부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자신들이 온 이유를 설명했어. 신부님들은 계시라고 하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위니프리드 유골을 가져간다는 것을 안 좋게 생각했어. 그런데 귀더린의 주민들은 더욱 격렬히 반대를 했단다. 사절단은 주민들을 좋은 분위기에서 설득하려고 했지만, 주민들은 더욱 격렬히 반대를 했단다. 자신들의 동네에 안장되어 있는 성녀의 유골을 가져간다고 하니 누가 좋아하겠는가. 주민 중에 리샤르트라는 지주가 있었어. 로버트 부수도원장은 그를 개인적으로 찾아가 돈으로 설득하려는 우를 범했단다. 리샤르트는 자신을 돈으로 매수하려고 했다면서 더욱 반대하게 되었어. 사절단도 한번에 합의되리라 생각하지 않았어. 다음 만남을 갖기로 약속을 했단다.

그런데 다음 만나기로 한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 리샤르트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어. 리샤르트의 딸 쇼네트가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시지 않는다면서 회담 장소에 왔단다. 그러니까 리샤트르는 회담 장소로 떠났는데, 회담 장소에는 도착하지 않은 거야. 사람들은 마을 곳곳을 찾아 다녔고, 리샤르트는 숲 속에서 화살을 맞고 죽은 채 발견되었단다. 그런데 그 화살은 누구 것인지 누구나 알 수 있었어. 바로 리샤르트의 충실한 일꾼 엥겔라드의 것이었단다. 누가 봐도 엥겔라드에게 죄를 덮어씌우기 위한 것처럼 보였으나, 사건 현장의 엥겔라드의 화살이 있었기 때문에 엥겔라드는 감금해서 조사를 받아야 했어.

리샤르트와 엥겔라드는 서로 신임하는 사이였는데,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었어. 쇼네트와 엥겔라드가 서로 사랑하고 있었는데 리샤르트가 그걸 반대했던 거야. 쇼네트는 어렸을 때 부모님들에 의해서 이미 페레디르라는 이웃집 청년과 정혼을 맺었단다. 그러니까 어찌 보면 엥겔라드에게는 리샤르트 살해 동기가 한 가지는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이지. 범인도 그걸 노리고 엥겔라드의 화살을 이용해서 리샤르트를 죽인 것은 아닐까. 엥겔라드는 여기서 잡히면 난처한 입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일단 도망을 갔고, 그것을 존 수사라는 사람이 도와주었단다. 존 수사는 사절단의 멤버로 온갖 잡일을 하겠다면서 자진해서 온 사람이었어. 그런데 그가 왜? 존 수사도 엥겔라드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지. 그래서 그를 도와준 것 같았어. 존 수사는 엥겔라드의 탈출을 도와주었다는 벌로 쇼네트 집의 마구간에 감금되었단다. 사실 그게 존 수사가 바랬던 것일 수도 있어. 왜냐하면 쇼네트의 하인과 사랑에 빠졌거든.

 

2.

로버트 부수도원장은 이 사건을 두고 입을 가볍게 놀려서 논란이 되기도 했단다. 리샤르트가 계시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벌 받은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어. 리샤르트가 덕망 받는 지주라는 것을 모르고 한 이야기였지. 아무튼 이 사건은 캐드펠이 조사를 하기로 했어. 사절단 중에는 사건이 발생한 시간에 회담 장소에 없는 사람이 콜룸바수스와 제롬 수사였어. 그들은 성녀 위니프리드가 안장되어 있는 교회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어. 하지만 둘이 서로 알리바이를 해줄 수 있으니 사절단 중에는 범인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다음날 콜룸바수스가 찾아와 사건이 발생한 날 자신은 교회에서 하루 종일 잠들어 있었다면서 사죄하겠다고 했어. 그러니까 이제 제롬의 알리바이가 성립되지 않는 것이었어.

이런 안 좋은 일이 있고 보니 귀더린의 휴 신부님과 마을 사람들은 성녀 위니프리드의 유골을 가지고 가라고 허락했단다. 그래서 로버트 부수도원장은 유골을 이장하기 위한 의식을 진행했어. 3일간 24시간 동안 쉬지 않는 기도를 했는데, 사절단 여섯 명이 번갈아 가면서 했단다. 캐드펠은 콜롬바수스와 마지막 날 밤샘 기도하게 되었는데, 콜롬바수스는 또 시작하자마자 기절하듯 잠을 잤단다. 몸이 경직되어 죽었는지 확인할 정도였어. 또 다른 간질처럼 보이기도 했단다.

캐드펠은 시신을 살펴보다가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어. 화살이 사인이 아니고 가늘고 긴 비수에 의해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화살은 리샤르트가 죽은 다음 누군가 손으로 비수 구성에 꽂은 것이었어. 오래지 않아 화살을 꽂은 사람이 밝혀졌어. 어느 정도 예상이 되었던 페레디르가 자백을 했단다. 리샤르트의 시신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 때 엥겔라드에게 혐의를 뒤집어 씌우겠다는 생각이 떠오른 거야. 자신의 정혼녀와 사랑하는 사이니까 말이야. 페레디르는 깊이 사죄를 하면서 용서를 빌었단다. 페레디르가 시신을 처음 본 사람이지만 범인에 대한 단서는 아는 것이 없었어. 이 일로 페레디르 어머니가 놀라서 발작을 일으켰단다. 캐드펠은 페레디르 어머니를 진정시키려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약 성분 진정제를 주려고 했는데 이미 4분의 3이 사라지고 없었어. 누가? 이걸 가져갔지?

이것으로부터 범인은 점점 누구인지 점점 좁혀지게 되었단다. 샤르트르의 딸 쇼네트가 캐드펠을 도와서 범인을 찾는데 도움을 주었어. 범인은 다름 아닌 콜롬바수스였단다. 사건이 발생한 날 콜롬바수스가 잠들었다고 했지만, 잠든 것은 함께 있었던 제롬 수사였고, 제롬 수사를 잠들게 한 것은 콜롬바수스가 몰래 마약 성분 진정제를 먹였기 때문이야. 제롬 수사는 자신이 잠든 것이 잘못된 것을 알았기에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은 거야. 콜롬바수스는 그렇다면 왜 리샤르트를 죽였는가. 콜롬바수스가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것을 꾸민 것이야. 자신이 신의 계시를 계속해서 받아 기적을 만들어내는 사람처럼 꾸미려고 했던 거야. 그래서 수도원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고 했던 거지. 그 일을 반대하는 리샤트르는 그에게 눈엣가시였던 거야. 그래서 리샤르트를 죽인 것이란다.

캐드펠과 쇼네트는 그런 리샤르트의 마음을 이용하여 자백하게 만들었어. 하지만 쇼네트가 흥분하여 정체가 드러나서 콜롬바수스가 쇼네트를 공격하고 엥겔라드가 콜롬바수스와 싸우다가 그만 콜롬바수스가 죽고 말았단다. 캐드펠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법대로라면 엥겔라드는 처벌을 받아야겠지만, 캐드펠의 기준에서는 그것이 옳은 것이 아니야. 콜롬바수스는 리샤르트를 살해한 죄를 지었고, 죽음으로 벌을 받게 된 것이란다. 캐드펠은 기상천외한 생각을 했단다. 콜롬바수스의 교회 바닥에 겉옷만 남기고 시신은 위니프리드의 관에 넣고 봉합을 했단다. 위니프리드의 유골은 원래 묘지에 두고 바꿔 치기 한 거야.

뒤늦게 달려온 사람들에게 설명하기를, 콜롬바수스의 신의 계시를 받고 하늘로 승천했다고 했어. 긴가 민가 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정황상 믿을 수 밖에 없었단다. 그렇게 사건은 마무리되고, 사절단은 위니프리드의 유골이 들었을 것이라고 믿는 관을 들고 슈루즈베리 수도원으로 돌아왔단다.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단다. 아빠가 마지막 부분은 스포일러라서 이야기를 안 하려다가 그러면 시간이 지난 다음에 아빠의 기억이 사라져서 이 소설의 결말을 알 수 없을 것 같아서 스포일러를 다 적었단다. 양해 바람. 캐드펠 수사 시리즈 앞으로 간간히 찾아봐야겠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귀더린의 유골에 얽힌 대사건이 시작되려 하는 5월 초순의 어느 맑고 화창한 아침이었다.

책의 끝 문장: 게다가 그와 한 잠자리를 쓰시는 분은 자신의 화환에서 꽃잎 한두 장 떼어 넘겨주는 것도 싫다 할 만큼 인색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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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금연은 정말 힘들다. 마크 트웨인은 역설적으로 말했다. “담배를 끊는 일은 아주 쉬운 일이다. 나는 백 번도 넘게 끊었으니까.” 20년 전 경험에 의하건대 금연은 매정하게 결별하는 의지밖에 없다. 금연 뒤에 찾아올 기쁨을 기대하며 끊어야 한다. 이제는 아침마다 칵칵거리지 않게 되고 양치질할 때 나오는 조갯살만 한 가래도 없어질 것이다. 방에선 곰팡내가 사라질 것이고, 얼굴엔 살이 뽀송하게 오르며 피부도 맑아질 것이다.

 

(77-78)

그래서 1905년에 발표한 대한제국 규정은 우측통행을 명시했다. 그런데 기찻길이 좌측통행으로 들어오면서 혼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일제가 강점하면서 조선총독부는 아예 1921년 도로 규칙을 일본과 똑같이 좌측통행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지금은 모두 철거된 서울 시내 전차들도 좌측으로 달렸다. 그때는 기차, 자동차, 사람 모두 영국, 일본과 마찬가지로 좌측통행의 나라였던 것이다.

그러나 8.15 해방이 되고 미군이 들어오면서 미국식 우측통행 자동차가 거리를 누비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의 찻길은 우측통행이 되었다. 미군정은 1946년 차량 우측통행을 규칙으로 명시하였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기존의 습관대로 좌측통행을 하고 있었다. 더욱이 1962년 제정된 도로교통법이 보도와 차도의 구분이 없는 도로에서는 좌측보행이 원칙이라고 규정하면서 좌측보행이 굳어지게 되었다.

 

(82)

각 나라의 백자에는 자연스럽게 그 민족의 미적 정서가 반영되어 있다. 일찍이 일본의 민예학자 야나기 무네요시는 한중일 동양 3국의 도자기를 조형의 3요소인 선, , 형태와 비교하면서 중국은 형태미가 강하고, 일본은 색채가 밝고, 한국은 선이 아름답다고 했다. 때문에 중국 도자기는 완벽한 형태미를 강조하고, 일본 도자기는 화려한 색채미를 보여주는 데 반하여 한국 도자기는 부드러운 선맛을 자랑한다고 했다. 그래서 도자기 애호가들은 중국 도자기는 멀리 높은 선반에 올려놓고 보고 싶어하고, 일본 도자기는 옆에 가까이 놓고 사용하고 싶어지는데, 한국 도자기는 어루만지게 싶게 한다는 것이다. 그 따뜻한 친숙감과 사랑스러운 정겨움이 조선백자의 특질이다.

 

(95)

1. <조선왕조실록>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리고 천재지변 등 다방면의 자료를 수록한 종합 사료로서 가치가 높다.

2. 중국, 일본, 베트남 등 실록이 있는 나라 중 편찬된 실록은 후손 왕이 보지 못한다는 원칙을 지킨 나라는 조선왕조뿐이다.

3. 위 원칙의 고수로 <조선왕조실록>은 기록에 대한 왜곡이나 고의적인 탈락이 없어 세계 어느 나라 실록보다 내용 면에서 충실하다. 책 권수로 치면 중국 명나라 실록이 2,900권으로 더 많으나 실제 지면 글자 수는 1,600만자 정도로, 4,965만자인 <조선왕조실록> 3분의 1에 불과하다.

4. 중국, 일본, 베트남 등의 다른 나라 실록들은 대부분 원본이 소실되었고 근현대에 만들어진 사본들만 남아 있으나 <조선왕조실록>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왕조 시기의 원본이 그대로 남아 있다.

 

(176)

미족미술협의회(민미협)는 이 그림을 1989년도 달력에 실었다. 그런데 이를 이용하여 부채를 만든 인천 지역의 한 재야청년단체를 수사하던 서울시경 대공과에서 느닷없이 신학철 화백의 집을 압수수색하고 신 화백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연행하였다. 경찰은 어이없게도 이 그림이 북한을 찬양한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해석인즉, 그림 아래쪽에서는 남한 사람들이 힘겹게 노동을 하고 있고, 위쪽에서는 북한 사람들이 푸짐한 밥그릇을 앞에 놓고 춤을 추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그림을 한반도 지형으로 보면 초가집은 평양의 생가를 암시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식으로 그림을 해석할 수 있다는 경찰의 대공적 상상력이 어처구니없음을 넘어 경이롭기만 했다. 미술비평엔 인상비평, 양식비평, 재단비평 등이 있는데 가히 공안비평이라 할 장르가 나타난 것이다.

 

(256)

<더불어 숲>은 신영복 선생이 세상을 떠나기 보름 전에 쓴 작품이다. 이 마지막 작품은 대작인 데다 획에 흔들림이 없이 전혀 절필 같지 않고 오히려 이제까지 당신이 살아온 삶과 사상과 예술이 이 한 작품에 담긴 것 같은 웅혼함이 있다. 더불어 숲이라 쓴 네 글자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다.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

 

(337)

그런데 <실천문학> 남도 답사에서 황석영 형은 3시간 만에 마이크를 내려놓고 내가 8시간 마이크를 잡으면서 나도 구라의 반열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때 아마도 윤재걸 시인이 한 말 같은데 백기완 선생이 라디오 시대 이야기꾼, 황석영이 흑백텔레비전 시대 이야기꾼으로 통했는데 유홍준이 컬러텔레비전 시대 이야기꾼으로 등장했다고 해서 모두 박수 치며 웃었다. 이후 방동규 선생은 끝까지 재야의 라디오로 남고 내가 백기와, 황석영과 함께 조선의 3대 구라로 꼽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와 별도로 도올 김용옥의 등장 이후 나는 이어령, 김용옥과 함께 세칭 ‘3대 교육 방송으로 불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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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지도는 넣어두렴.” 포피가 제안한다. “베니스는 미로 같은 곳이야. 방향을 절대 못 찾을 거야. 내가 늘 말하듯이, 길을 잃은 것 같거나 혼란스러우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돼. 마음이야말로 가장 믿음직스러운 길잡이란다.”

 

(180)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루시는 나에게 동정의 말을 듣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을 쥐고 흔드는 캐럴 숙모와 할머니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딱 매트가 말한 대로, 할머니를 기쁘게 하고 싶어서 내 간절한 바람을 다 억누르고 할머니 뜻대로 가는 나를 생각한다. 루시의 말이 맞을까? 루시나 나나 우리가 누군가의 애정을, 그 사랑을 완전히 믿지 못하면서도 언젠가 얻게 될지 모른다는 희망을 버리지 못해, 물불 가리지 않고 무슨 짓이든 해왔던 것일까?

 

(269-270)

그래.” 포피가 대답한다. 하지만 반대 방향을 응시하고 있다. 포피의 시선을 따라가니 리코가 연주하던 장소인 넵투누스 분수가 있다. 팔각형 분수대 중앙에 대리석으로 만든 넵투누스 조각상이 우뚝 서 있고, 그 주위를 웃고 있는 사티로스들과 청동으로 된 강의 신들과 물에서 솟구친 대리석 해마들이 둘러싸고 있다. 긴 세월 동안 변화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은 도시로 돌아온 기분이 얼마나 묘할까. 이곳은 16세기에도 지금과 같은 모습이었고, 포피가 리코와 손을 잡고 광장을 거닐던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도시의 모든 조각상과 모든 분수가 포피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상기시킬 것이다.

 

(294)

나는 카프레스 샌드위치-껍질이 바싹한 빵에 신선한 모차렐라, 즙이 많은 토마토, 바질을 올린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은 후에 조심스럽게 포피에게 낮잠을 권한다. 포피는 낮잠이라는 발상 자체가 터무니없는 듯 불끈한다. “공원에 앉아 있을 수 있는데 왜 침대에 누워 있겠니?” 포피의 목소리는 확연히 티가 날 정도로 쉬어 있다. “자연이 최고의 치료제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니?”

 

(445)

네 엄마가 너를 아주 많이 사랑했단다.”

나는 얼어붙는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겨우 두 살이었다. 그 두 해 대부분의 시간 동안 엄마는 아팠다. 나는 평생 궁금했다. 나 때문에 엄마가 병에 걸렸을까? 엄마가 나를 원망했을까? 나는 엄마한테 성가신 존재였을까?

어떻게-?” 목이 꽉 조여 오지만 기어코 말을 잇는다. “어떻게 확실히 아세요?”

너는 천사였단다. 네 엄마는 너를 그렇게 불렀어.”

눈물이 관자놀이로 흘러내린다. 평생 간절히 듣고 싶었던 말이다. “하지만 엄마는 저를 몰랐어요. 어떻게 자랐는지를. 그때 저는 그냥 갓난아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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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도 많았지만, 안 좋은 일이 더 많았던 2024년아~ 잘 가라~ 얼른~

....

알라딘 친구분들도 2024년 한 해 잘 마무리 하시고,

새해에는 좋은 일들만 있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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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정 2024-12-31 2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다 종이책으로 읽으셨군요. 대단하십니다. 전, 다 e-book입니다. 내년에도 건승하시고 자주 뵙겠습니다. 🙇‍♂️🙇‍♂️

bookholic 2025-01-01 23:52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대장정 님도 올 한 해 즐거운 독서 계속하시길 바랍니다.
좋은 책 소개와 좋은 글, 올해도 부탁드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한 한 해 되시길 바랍니다~~

서니데이 2025-01-02 17: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ookholic님 새해복많이받으세요.

bookholic 2025-01-05 12:52   좋아요 1 | URL
메시지를 이제서야 봤습니다...^^
서니데이 님도 좀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많으세요..
올 한 해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김약국의 딸들 - 박경리 장편소설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얼마 전에 우리나라 출판계에 큰 경사가 있었단다. 다름 아닌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거야. 우리나라 최초의 노벨문학상일 뿐만 아니라 아시아 여성 작가로도 최초로 수상한 것이지. 아빠도 마음 속으로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기뻐했단다. 그런데 한강 이전에 많은 우리나라에는 뛰어난 작가들이 많았단다. 우리나라의 위상이 높고, 번역이 잘 되어 널리 알려졌다면 이미 여러 번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해. 그 중에 대표적인 분이 대하 소설 <토지>를 지으신 박경리 선생님이야. 선생님이라는 칭호가 저절로 나오는 대단하신 작가라고 할 수 있겠구나. 박경리 선생님의 작품은 <토지>가 워낙 대작이다 보니, 다른 뛰어난 작품들이 오히려 <토지>에 가려지는 느낌이 들더구나. 아빠도 박경리 선생님의 산문집은 두 권 읽었지만, 소설은 <토지> 전권 읽은 것이 전부였단다.

아빠가 토지를 읽은 것이 2002년이니 엄청 오래되었구나. 그래서 <토지>를 다시 한번 읽어볼 계획을 갖고 있어. 그러다가 문득 박경리 님의 한 권짜리 장편소설도 읽어보고 싶더구나.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김약국의 딸들>을 이번에 읽었단다. <김약국의 딸들>은 대하소설 <토지>를 시작하기 전인 1962 년에 출간한 책이란다. 시대적 배경도 구한말부터 일제 시대까지 이어지는데, 이는 <토지>와도 다소 겹쳐지는구나. 아빠는 잘 모르겠지만, <김약국의 딸들>을 쓰시면서 <토지>를 구상하지 않으셨을까 싶었어.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대작 <토지>에서 가려서 그렇지, <김약국의 딸들>도 탄탄한 구성과 전개되는 이야기, 인물 묘사 등 어느 하나 흠잡을 수 없는 명작이라는 것을 이번에 읽으면서 알게 되었단다.

그 시절 통영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같았어. 아주 실감나는 이야기이고, 군더더기 없는 전개로 금방 책장이 넘어갔단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런 소설이 외국에 소개가 되었다면 박경리 님이 먼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지 않았을까 싶구나. 더불어 나중에 너희들도 좀 더 크면 이 책을 한번 읽어봤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도 들었어.

 

1.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곳은 통영이란다. 너희들이 어렸을 때 통영을 한번 간 적이 있었는데, 너무 어려서 너희들은 잘 기억 못할 수도 있겠구나. 한 번 또 가고 싶은데, 아무래도 거리가 멀다 보니 큰 마음을 먹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의 시작은 통영의 풍경으로 시작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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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0)

통영은 다도해 부근에 있는 조촐한 어항(漁港)이다. 부산과 여수 사이를 내왕하는 항로의 중간지점으로서 그 고장의 젊은이들은 조선의 나폴리라 한다. 그러니만큼 바다빛은 맑고 푸르다. 남해안 일대에 있어서 남해도와 쌍벽인 큰 섬 거제도가 앞을 가로막고 사철은 온난하여 매우 살기 좋은 곳이다. 통영 주변에는 무수한 섬들이 위성처럼 산재하고 있다. 북쪽에 두루미 목만큼 좁은 육로를 빼면 통영 역시 섬과 별다름이 없이 대부분의 집들이 송이버섯처럼 들앉은 지세는 빈약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주민들은 자연 어업에, 혹은 어업과 관련된 사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일면 통영은 해산물의 집산지이기도 했다. 통영 근처에서 포획하는 해산물이 그 수에 있어 많기도 하거니와 고래로 그 맛이 각별하다 하여 외지 시장에서도 비싸게 호가되고 있으니 일찍부터 항구는 번영하였고, 주민들의 기질도 진취적이며 모험심이 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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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제, 김봉룡 형제가 있었어. 김봉제는 약국을 하고 있었고, 아내 송씨와 딸 연순이 있었어. 안타깝게도 연순은 어렸을 때부터 병을 앓고 있어 늘 신열이 있었어. 동생 김봉룡은 성격이 완전 개망나니였어. 첫 번째 부인은 일찍 사별했는데, 김봉룡이 죽였다는 소문이 있었어. 두 번째 부인 숙정과 결혼하여 아들 성수를 낳았단다. 그런데 숙정이 결혼하기 전에 숙정을 짝사랑하던 남자가 있었어. 그 남자가 숙정을 잊지 못하고 찾아왔는데, 이걸 봉룡이 알게 된 거야. 그 남자는 도망을 갔는데, 봉룡이 쫓아가서 때려 죽이고, 집에 와서 아내 숙정도 때려 죽이고 도망을 가버렸단다. 갓난 아기 성수만 남았어. 결국 김봉제와 아내 송씨가 성수를 데리고 와서 양자 삼아 키웠단다. 김봉제에게는 남동생 말고 여동생 김봉희가 있었는데, 김봉희는 남편이 일찍 죽어 홀로 아들 중구를 키우고 있었단다.

….

성수는 김봉제의 집에서 자랐고, 김봉제의 딸 연순과 남매처럼 자라났단다. 김봉제의 딸 연순은 어렸을 때부터 병이 있었다고 했잖아. 그래서 결혼도 늦어졌어. 아무래도 당시에는 병약한 여자의 결혼자리를 알아보는 것이 쉽지 않았을 거야. 강택진이라는 사람과 결혼시켰는데 강택진이라는 사람은 누가 봐도 성격도 안 좋았고, 김봉제의 재산을 노리고 결혼하는 것처럼 보였어. 김봉제도 좀 내키지 않았지만, 딸이 처녀 귀신으로 죽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어. 오늘날 같았으면 당연히 결혼을 시키지 않았을 것 같은데연순을 잘 따르던 성수도 반대했지만, 성수의 의견이 반영되는 분위기는 아니었지.

연순이 결혼을 하고 나서도 김봉제는 사위 강택진을 못 마땅하게 생각하여 자신의 약국과 소작지는 성수에게 물려주려고 했어. 하지만 아내 송씨는 그래도 딸을 생각하여 사위에게 물려주어야 한다고 했어. 이걸 안 강택진은 장모님인 송씨를 이용하여 돈을 빼가게 되었단다. 그런데 어느날 김봉제가 갑자기 죽고 말았어. 아내 송씨가 약국을 강택진에게 넘기려는 것을, 봉제의 동생이자 성수의 고모인 김봉희가 우겨서 약국은 성수가 물려받게 되었어. 성수도 탁분시라고 하는 여자와 결혼하여 아들 용환을 낳았어. 그리고 연순은 얼마 안 가 결국 죽고 말았단다. 연순이 죽는 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강택진은 곧바로 재혼을 했어 아내 송씨는 이런 사위의 행태에 화병이 날 지경이었지. 그런 송씨에게 가장 큰 위안은 성수의 아들, 용환이었단다. 손주를 사랑하지 않는 할머니가 없겠지만 송씨에게 용환은 모든 것이었어. 그런데 용환이 일곱 살에 그만 마마로 허망하게 죽고 말았단다. 송씨는 이때 크게 충격을 받아 쓰러져 그만 죽고 말았어.

성수의 친아버지 김봉룡이 도망을 가기 전에 김봉룡을 따르던 하인 지석원이 있었는데, 김봉룡이 도망간 이후 지석원은 홀로 생활하다가 최근에는 의병 활동을 했단다. 그 지석원이 김성수의 집에 갓난아이를 데리고 찾아왔어. 아이의 엄마는 죽고 없다고 했어. 지석원은 그 갓난아이를 두고 몰래 길을 떠났단다. 그리고 얼마 후 지석원도 죽었다는 소문이 들려왔어. 김성수와 아내 봉시는 그 아이를 거둬들였단다. 그때가 경술년 국치가 있었던 1910년이었단다.

 

2.

그로부터 약 20년이 흘렀단다. 김성수는 약 10년 전에 약국을 그만두고 어장 관리를 하며 돈을 꽤 벌었단다. 하지만 사람들은 김성수를 여전히 김약국이라고 불렀어. 성수의 아내 분시는 한실댁이라고 불러서 이제 한실댁이라고 할게. 첫 번째 아들 용환이 죽고 나서는 딸만 다섯 명만 낳았단다. 용숙, 용빈, 용란, 용옥, 용혜. 소설의 제목 속의 김약국의 딸들이 드디어 등장했구나. 그 딸들은 외모도 제각각, 성격도 제각각이었어. 소설 속에서 그들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어 그대로 발췌해 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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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86)

큰딸 용숙은 열일곱 때 출가를 시켰으나 과부가 되었고 지금 나이가 스물네 살이다. 둘째가 용빈이, 셋째가 용란이다. 그는 열아홉이며 그 다음이 용옥이, 막내가 열두 살짜리 용혜다. 고모할머니 봉희가 살아 있을 때 용혜는 봉룡이 할아버지를 많이 닮았다고 했다. 돌아갈 날을 몰라 칠월 백중에 제사를 모실 때도 고모할머니는 용혜를 보고 언짢게 혀를 끌끌 차곤 했다. 그러나 김약국은 용혜를 두고 연순을 연상하였다. 입 밖에 말을 내지는 않았으나 어떤 때는 심한 착각을 일으키는 일까지 있었다. 김약국은 연순이가 어릴 때 봉제 영감이 그랬듯이 용혜를 노랭이라 부르며 사랑하였다. 다른 딸들은 모두 머리털이 칠빛처럼 검었는데 용혜만은 밤색 머리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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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숙은 일찍 과부가 되어 아들 동훈을 기르며 살고 있었고, 용빈은 서울에 대학에 입학하여 공부하고 있었어. 홍섭이라는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김성수는 홍섭의 부친 정국주가 악질 친일파여서 싫어했단다. 용란은 왈가닥 스타일인데, 하인 한돌과 밤마다 산에서 몰래 사랑을 나누었단다. 참고로 한돌은 앞서 이야기했던 지석원이 맡겼던 그 아이였단다. 용란과 한돌의 몰래 사랑은 아버지 김성수에게 걸려서 한돌을 도망을 가게 되었어. 이 소문은 동네에 다 퍼져서 용란의 혼사길이 막히나 싶었는데, 얼굴이 예뻐서 그런지 그 지역 지주의 아들 연학과 결혼하게 되었단다. 하지만 연학에게 툭하면 얻어 맞아서 친정에 자주 오곤 했어. 연학은 아편도 하는 것 같았어.

김성수가 어장 관리를 한다고 했잖아. 그에게는 믿음직한 일꾼이 서기두라는 사람이 있었어. 사실 기두도 용란을 짝사랑하고 있었지만 용란이 그렇게 말썽을 피우고, 결혼을 해서 상심이 컸어. 첫째 딸은 일찍 과부가 되고, 셋째 딸은 남편한테 얻어 맞아 친정에 자주 오고김성수와 한실댁은 마음 고생이 클 거야. 김성수는 둘째 딸 용빈에게 많이 의지하는 편이었단다. 반면 김성수의 고종 사촌인 중구의 아이들은 제법 건실하게 자랐단다. 첫째 아들은 의사가 되어 병원에서 일하고 있었고, 둘째 아들 태윤은 일본에서 유학 중이었어. 그런데 태윤이 일본에서 독립 운동을 하다가 감옥에서 3개월을 살다 나와 귀국을 했단다.

….

김약국(아빠가 김성수와 김약국이라는 호칭을 번갈아 쓰는 점 양해바람)은 어장뿐만 아니라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잡기 위해 배 두 척을 투자했단다. 그런데 첫 번째 출항에서 배 두 개 모두 탈이 나서, 한 대는 표류하여 일본까지 떠내려갔다가 돌아왔고, 한 대는 행방불명이 되고 말았단다. 그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도 모두 행방불명이 되고 말았어. 실종자 가족들이 와서 소동을 벌였지만, 김약국도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어. 김약국은 실종자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보상을 해주긴 했지만, 경제적 손실이 가장 큰 사람은 다름 아닌 김약국이었어. 이 일로 김약국의 가세는 크게 기울어지고, 김약국도 심적으로 크게 타격을 입었어. 그렇게 힘든 시기, 김약국에게 위로가 된 것은 소청이라는 기생이었단다. 그래서 김약국은 소청을 소실로 두게 되었는데, 이 일은 딸들과 한실댁에게 상처를 주게 되었단다.

 

3.

용숙은 아들 동훈이 아팠을 때 왕진을 온 의사와 정분이 나고 말았어. 소문이 이상하게 돌아 그 의사의 아이를 낳았다가 아이를 죽였다는 했어. 이 일로 재판까지 받게 되었지만 무죄 판결로 풀려났단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따가웠어. 그 의사는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참지 못하고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버렸단다. 용빈은 대학 졸업 후 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었어. 남자친구였던 홍섭이 그녀와 헤어지고 다른 여자랑 결혼했단다. 김성수에게는 어차피 잘 된 일이었지. 친일파 아들을 사위로 두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야.

용빈은 막냇동생 용혜를 서울로 불러서 자신의 학교에 입학시켰단다. 가장 문젯거리는 셋째 용란이었어. 남편 연학은 아편쟁이뿐만 아니라 결혼 때부터 남자구실을 못하는 사람이었어. 연학은 늘 약에 취해 있어 용란을 때렸어.. 연학은 그 일로 경찰서에 갇히게 되었는데, 시댁 식구들도 그게 낫다면서 연학을 경찰서에서 빼내올 생각도 하지 않았어. 용란도 거의 삶을 포기한 듯 폐인 같이 생활했단다. 그러던 어느날 한돌이 돌아왔어. 산에서 몰래 용란과 사랑을 나누다가 김성수에게 걸려 도망갔던 한돌. 용란은 다시 삶을 되찾은 듯했어. 누가 뭐라 해도 이젠 한돌과 따로 살림을 차렸어. 이 소문을 들은 한실댁이 찾아가 만류를 했지. 그러지 말라고그런데 하필 그날 용란의 남편 연학이 경찰서에서 풀러난 날이었어. 연학이 용란과 한돌의 집에 찾아온 거야. 여전히 약에 취해 있었지. 화를 주체하지 못한 연학은 도끼를 휘둘러 한돌과 한실댁이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단다.

용란에게 한돌이 마지막 희망이었는데, 그렇게 비참하고 죽고 나서 용란은 결국 미쳐버렸단다. 용란은 친정 집으로 왔어. 용란이 미쳐 제대로 생활을 못하지 서울에서 공부하던 용혜가 내려와서 용란을 보살폈단다. 이제 김약국의 그 큰 집에는 한실댁도 죽어서, 김약국, 미쳐 버린 용란, 용혜 이렇게 셋이 쓸쓸하게 살고 있었어.

넷째 용옥은 어디에 갔냐고? 용옥은 아버지의 어장을 관리하던 서기두와 결혼하게 되었단다. 서기두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용란을 여전히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김성수의 말에 따라 용옥과 결혼했단다. 용옥의 결혼생활도 그리 행복하지 않았어. 서기두는 일 핑계로 집에 거의 들어오지 않아서, 용옥은 홀아비 시아버지와 시동생과 지내야 했어. 그런데 그 시아버지가 용옥을 음흉한 눈초리로 쳐다보곤 했단다. 그러다가 결국 터지지 말아야 할 일이 터졌어. 시아버지가 용옥을 강제로 성폭행하려고 했고, 용옥은 간신히 뿌리치고 도망을 가서 아기를 업고 서기두가 일하고 있는 부산으로 갔단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때 서기두는 통용 집으로 오고 있던 중이었어. 부산에서 허탕을 친 용옥은 다시 통용으로 향했는데, 그만 용옥이 탄 배가 폭우로 침몰하게 되어 죽고 말았단다. 지은이 박경리 님께서 너무 가혹하신 것 같구나.

….

이 일이 있기 얼마 전, 용빈은 아버지의 얼굴이 안 좋아 보여 병원에 모시고 가서 검진을 받게 했어. 조금은 예상한 대로 암이었어. 길어야 다섯 달밖에 못 산다고 했어. 용빈은 아버지의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용옥이 아버지보다 먼저 죽은 것이야. 그리고 김약국도 얼마 못 가 죽고 말았단다. 용빈은 아버지의 장례를 마친 후, 통영을 떠나기로 했단다. 여전히 미쳐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용란을 고향 친지에게 맡기고, 막내 동생 용혜를 데리고 통영을 떠나면서 소설은 끝을 맺는단다.

소설은 그렇게 끝이 났지만 용빈과 용혜.. 두 사람은 이제 더 이상 비극적인 일은 일어나지 말고, 좋은 일만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저절로 빌게 되더구나. 그만큼 아빠가 소설에 몰입되어 읽었던 것 같구나. 읽으면서 역시 박경리라는 생각이 몇 번씩 들었단다. 한 가족을 너무 가혹하게 무너뜨리기는 했지만 말이야. 박경리 님의 또 다른 장편 소설들을 좀더 찾아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단다. 그리고 이 소설의 또 다른 장점은 최근에는 많이 사용하지 않는 아름다운 우리 말들이 많이 상용되었다는 점. 그런 말들은 책 뒤편이 어휘풀이를 실어주어 또 좋았단다.

,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통영은 다도해 부근에 있는 조촐한 어항(漁港)이다.

책의 끝 문장: 봄이 멀지 않았는데, 바람은 살을 에일 듯 차다.



"논쟁에는 흥미가 없다. 하여간 너는 과대망상증에 걸려 있어. 너의 그 크나큰 사상과 이상은 영웅들에게나 맡겨둬라. 네가 항상 말하는 그 영웅들에게 말이다. 너는 네 분수에 넘는 망상에 사로잡힌 환자다. 너의 행위는 일보의 전진커녕 백보의 후퇴가 아니냐 말이다. 바로 이번 일이 그 표본이다. 넌 대체 뭘 했냐 말이다. 쓸데없이 아가리 놀린 것밖에 더 있었나? 그 아가리 놀린 것으로 누구 한 사람이 구제됐는가? 바늘귀 떨어진 것만큼이라도 조선의 자주성에 도움이 되었단 말인가? 너는 매만 맞고 집안을 시끄럽게 했을 뿐이지 일본 놈의 통치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 P206

"나를 묶어두려고 의식적으로 과소평가를 하는군. 허지만 난 언제나 걸어갈 것입니다. 그러면 부딪칠 것입니다. 반드시 무엇에 부딪칠 것입니다. 만일 사람이 형과 같이 안일하게 산다면 그건 사는 게 아니고 죽은 겁니다. 역사는 없을 겁니다."
"역사가 없음 어떠냐? 역사는 곰팡내 나는 기록이지, 사람은 어떤 입지적 조건이나 생활양식 속에서도 그 당대를 살게 마련이니까."
"교묘한 회피군요. 물론 나도 역사는 그 당대에서 끝나는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끝나면 다시 시작되죠. 마치 사람이 죽고 또 사람이 태어나듯이……"
"되풀이되는 건 없으니만 못하다."
"왜 되풀이되는 거요. 진화하는 거죠."
- P207

새터 아침장은 언제나 활기가 왕성한 곳이다. 무더기로 쏟아놓은 갓잡은 생선이 파닥거리는 것처럼 싱싱하고 향기롭다. 삶의 의욕이 넘치는 규환(叫喚) 속에 옥색 서린 아침, 휴식을 거친 신선한 얼굴들이 흘러간다. 새벽별은 밝고 축림, 전화도, 장대 방면에서는 호박, 고구마, 야채 등을 이고 지고 북문 안을 넘어서는 촌부들, 안뒤산 큰개, 작은개에서는 조개를 이고 충렬사를 지나오는 아낙들, 발개와 첫개에는 어장 배에서 생선을 받아가지고 판데굴을 지나오는 장사꾼들, 삼면 바다에서는 기관선으로부터 통구멩이까지 해초, 생선을 실은 어부들이 바다의 새벽을 뚫는다. 아니 그뿐이야. 통영 읍내에서도 비단 장수, 화장품 장수, 실 장수, 과일 장수, 본시장의 모든 장가꾼들은 서둔다. 이 무수한 움직임과 발소리들은 새터로 향하는 것이다. 새벽이 걷히고 옥색 아침이 서리면 읍 사람들은 장바구니를 들고 거리에 나서는 것이다. - P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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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4-12-31 2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이 마지막으로 2024년은 시간의 흐름 속으로 사라지네요. 올 한해 bookholic 님을 글을 읽으며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 했습니다. 새해에도 늘 건강하시고 가족과 행복한 새해 맞이 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bookholic 2024-12-31 22:29   좋아요 1 | URL
늘 정진하시는 모습이 존경스럽습니다...^^
마힐 님도 2024년 마무리 잘 하시고, 새해에도 좋은 글들 부탁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