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
“지도는 넣어두렴.”
포피가 제안한다. “베니스는 미로 같은 곳이야. 방향을
절대 못 찾을 거야. 내가 늘 말하듯이, 길을 잃은 것 같거나
혼란스러우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돼. 마음이야말로 가장 믿음직스러운 길잡이란다.”
(180)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루시는 나에게 동정의 말을
듣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을 쥐고 흔드는 캐럴 숙모와 할머니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딱 매트가 말한 대로, 할머니를 기쁘게 하고 싶어서 내 간절한
바람을 다 억누르고 할머니 뜻대로 가는 나를 생각한다. 루시의 말이 맞을까? 루시나 나나 우리가 누군가의 애정을, 그 사랑을 완전히 믿지 못하면서도
언젠가 얻게 될지 모른다는 희망을 버리지 못해, 물불 가리지 않고 무슨 짓이든 해왔던 것일까?
(269-270)
“그래.” 포피가
대답한다. 하지만 반대 방향을 응시하고 있다. 포피의 시선을
따라가니 리코가 연주하던 장소인 넵투누스 분수가 있다. 팔각형 분수대 중앙에 대리석으로 만든 넵투누스
조각상이 우뚝 서 있고, 그 주위를 웃고 있는 사티로스들과 청동으로 된 강의 신들과 물에서 솟구친 대리석
해마들이 둘러싸고 있다. 긴 세월 동안 변화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은 도시로 돌아온 기분이 얼마나 묘할까. 이곳은 16세기에도 지금과 같은 모습이었고, 포피가 리코와 손을 잡고 광장을 거닐던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도시의
모든 조각상과 모든 분수가 포피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상기시킬 것이다.
(294)
나는 카프레스 샌드위치-껍질이 바싹한 빵에 신선한
모차렐라, 즙이 많은 토마토, 바질을 올린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은 후에 조심스럽게 포피에게 낮잠을 권한다. 포피는 낮잠이라는
발상 자체가 터무니없는 듯 불끈한다. “공원에 앉아 있을 수 있는데 왜 침대에 누워 있겠니?” 포피의 목소리는 확연히 티가 날 정도로 쉬어 있다. “자연이 최고의
치료제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니?”
(445)
“네 엄마가 너를 아주 많이 사랑했단다.”
나는 얼어붙는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겨우
두 살이었다. 그 두 해 대부분의 시간 동안 엄마는 아팠다. 나는
평생 궁금했다. 나 때문에 엄마가 병에 걸렸을까? 엄마가
나를 원망했을까? 나는 엄마한테 성가신 존재였을까?
“어떻게-?” 목이
꽉 조여 오지만 기어코 말을 잇는다. “어떻게 확실히 아세요?”
“너는 천사였단다.
네 엄마는 너를 그렇게 불렀어.”
눈물이 관자놀이로 흘러내린다. 평생 간절히 듣고
싶었던 말이다. “하지만 엄마는 저를 몰랐어요. 어떻게 자랐는지를. 그때 저는 그냥 갓난아이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