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새 - 1994년, 닫히지 않은 기억의 기록
김보라 쓰고 엮음, 김원영, 남다은, 정희진, 최은영, 앨리슨 벡델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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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작년은 우리나라 영화의 해인 것 같았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라는 영화가 칸 영화제 최고의 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하여 우리나라 최초로 아카데미 감독상, 최우수 작품상 등을 휩쓸었단다. 기생충이 그렇게 메인 영화제 최고의 상을 휩쓰는 동안 독립 영화 <벌새>는 각종 독립영화제 등 많은 상을 받았단다. 검색을 해보니 46개의 상을 받았대. 와우, 대단하구나. 하지만 독립 영화의 한계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보지는 않았지. 개봉관도 그리 많지 않았고 말이야. 아빠도 그런 영화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는데, <벌새>라는 책도 있더구나. 아빠는 책 소개를 자세히 보지 않고, 영화 <벌새> <벌새>라는 소설을 영화로 만든 줄 알았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이 많이 있잖아.

워낙 평이 좋다 보니 아빠도 이 책을 구입했단다. 원작 소설을 먼저 읽고 나서 영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말이야. 그런데 이 책은 영화 시나리오였단다. 아빠가 책 소개를 안 보고 당연히 원작 소설이라고 생각했던 거야. , 아빠가 영화 시나리오를 읽어본 적이 있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읽어본 적이 없는 것 같더구나. 한번 읽어봐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어. 재미있더구나. 아무래도 영화 시나리오다 보니까 아빠가 영화감독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읽게 되더라구. 이 부분은 카메라 움직임을 이렇게 하고, 배우들은 모습은 이렇게 하고저절로 이런 생각이 들더구나. 색다른 재미였어.


1.

이 책의 부제는 <1994, 닫히지 않은 기억의 기록>이란다. 1994. 벌써 26년전의 일이구나. 어떤 해는 아무런 의미도 없던 한해일 수 있지만, 어떤 해는 머릿속에 박혀 잊을 수 없는 한해일 수도 있어. 1994년이 바로 그런 해란다. 특히 아빠는 군대를 간 해이기도 하기 때문에 잊을 수가 없는 한 해란다. 1994년의 많은 날들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생생하구나. 우리나라에서도 이런저런 많은 일이 일어났어.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성수대교 붕괴였단다. 멀쩡하던 커다란 다리가 어느날 갑자기 무너질 수 있다는 이 사건은, 그 사건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커다란 트라우마를 주었단다. 아빠도 군대에서 작은 텔레비전에서 그 뉴스를 보면서 황당하게 생각했던 기억이 떠오르는구나. <벌새>의 배경에 성수대교 근처 동네가 나와 설마 했는데…. 그리고 1994년에 큰 사건으로 아빠는 김일성의 사망이 떠오르는구나. 몇 십 년 동안 북한의 절대권력을 누리고 있던 김일성의 죽음. 군대에 있던 아빠는 비상이 걸려서 고생을 했던 기억이 나는구나.

이런 1994주인공 은희는 중학생이었단다. 떡집을 운영하는 부모님의 둘째 딸. 언니 김수희는 고등학생이고, 오빠 대훈은 중3이었어. 은희의 아버지는 권위주의자에 똘똘 뭉친 사람이라고 보면 되고, 아들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란다. 그리고 딸들에게도 서슴지 않고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었어. 그렇다고 남편으로서는 훌륭하냐? 그렇지 않단다. 떡집은 대부분 엄마가 도맡아 하고, 은희 아버지는 춤바람도 났어. 오빠 대훈도 은희를 가끔 때리고 그랬어. 참 나쁜 오빠구나. 언니 수희는 그렇지는 않지만, 언니는 언니 나름대로 연애를 하느라, 은희와 많이 친하지는 않았어. 식구는 많았지만 은희는 집에서 늘 외로움을 느꼈어.

그런 은희에게 기댈 곳에 생겼어. 새로운 한문학원 강사 김영지. 서울대에 입학했지만, 학생운동으로 지금은 휴학생차분하고 꼭 필요한 말만 하고, 무엇보다 다른 학원 선생과 달리 학생들을 사람으로 대했어. 이애 은희는 김영지에게 깊은 이라는 것을 느꼈을 거야. 은희는 힘든 일이 있을 때 영지를 찾아갔어. 그리고 영지의 품에 안기기도 했어. 얼마나 원했던 것일까. 가족에서 얻지 못한 포근함.

은희가 귀에 혹이 생겨서 큰 수술을 한다고 잠시 학원을 그만둘 때 은희는 자신의 집에 있는 책을 영지에게 선물했고, 영지는 예상밖에 병문안을 해서 은희에게 큰 힘을 주었어. 그렇게 은희와 영희의 정은 깊어져 갔어. 그들의 그런 정은 어느날 갑자기 학원을 그만 둔 영지로 인해 끊겼어. 하지만 영지로부터 온 편지와 소포로 그 인연의 끈은 다시 이어지는 듯 했지. 소포에 써 있는 주소를 찾아 영지를 만나러 가는 은희의 모습은 이 영화에서 가장 행복한 모습이었지. 하지만, 은희를 기다리는 것은 영지의 죽음이었어. 성수대교의 희생자 중에 한 명이 바로 영지였던 거야. 꼭 이렇게 영화를 슬프게 만들었어야 했나. 부제에 1994년이 들어가 있다는 것은 성수대교 이야기가 나온다는 뜻이었지만은희의 언니 수희가 극적으로 그 사건을 피했다는 이야기로 성수대교 이야기는 끝이 났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영지를 죽게 만들다니은희를 너무 불쌍하게 만들었어…. 감독 나빠.

은희는 무너진 성수대교를 보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영지를 그리워했어. 어쩌면 영지를 가슴에 묻고 새 출발을 기약했을 수도


2.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영화 <벌새>도 보았단다. 배우들이 모두 낯설었지만, 다들 연기들을 잘 하더구나. 그리고 영화 시나리오대로 그대로 그려졌어. 비록 아빠가 생각했던 영상과는 달랐지만 말이야. 이 책은 영화에서 그려지지 않은 대본도 약 40분 분량이 있다고 했어. 영화를 보니 그 내용들을 굳이 화면이 옮기지 않아도 앞뒤 내막을 잘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이 영화의 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김보라님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했고, 후기에서 자신은 가족들과 화해를 했다고 하는구나. 그래, 가족은 그런 거지.. 김보라 감독의 이름을 잘 기억했다가 그의 새로운 영화가 나오면 한번 봐야겠구나. 기대되는구나.


PS:

책의 첫 문장 : 딩동.

책의 끝 문장 : 너무너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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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io99 2020-06-23 2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보시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bookholic 2020-06-24 07:49   좋아요 1 | URL
네, 저도 책을 읽고 영화를 봤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영화도 좋았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시고요^^
 














(13)

우리는 여태껏 영웅으로 간주되어 왔지만 실상은 그런 찬사를 들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 관해 진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왜 우리는 콜럼버스가 했던 일에 대해서 영웅답다고 생각해야만 하는 것인가? 이 땅에 도착해서 황금을 찾기 위해 광란의 폭력을 휘두른 게 그가 했던 일인데 말이다. 왜 우리는 앤드루 잭슨이 인디언들을 살던 곳에서 내몬 일을 영웅답다고 생각해야 하는가? 왜 우리는 시어도어 루즈벨트를 영웅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 그는 미국-스페인전쟁을 일으켜서 스페인 세력을 쿠바에서 축출했지만, 그것이 실상 쿠바의 통제권을 빼앗기 위해서 했던 일인데 말이다.


(26)

우리는 포와탄(인디언 추장)이 했다는 말에서 자기 영토에 침입한 백인들에 대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나는 우리 부족 그 누구보다도 평화와 전쟁 간의 차이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어찌하여 당신들은 사랑으로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것을 무력으로 빼앗으려 하는가? 어찌하여 당신들은 먹을 것을 제공한 우리를 파멸시키려 하는가? 전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어찌하여 당신들은 우리를 경계하는가? 우리는 무기도 들지 않았고, 당신들이 예의를 갖추어 대한다면 원하는 것도 기꺼이 내줄 것이다. 그리고 내 가족들과 함께 좋은 음식과 편안한 잠자리에 조용히 생활하면서 영국인들과 웃고 즐기며 동존과 도끼를 교환하는 것이, 영국인들을 피해 도망쳐 숲 속에서 도토리나 풀뿌리 등을 먹고 추적을 당하며 춥고 불안한 생활을 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것조차 모를 정도로 어리석지 않다.”


(29)

콜럼버스를 비롯한 유럽인들은 야생의 세계에 도착한 것이 아니었다. 유럽과 다를 바 없이 번화한 곳도 있었다. 인디언들은 고유의 역사와 법률, 문학이 있었다. 그들은 유렵인들보다 훨씬 훌륭한 평등을 누리며 살고 있었다. 과연 진보라는 말에는 그들의 사회를 파멸시켜도 될 명분이 충분히 있는 것일까? 인디언들의 이러한 운명은 정복자나 지배자들의 이야기보다 훨씬 중요한 무언가가 역사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74)

하지만 토머스 제퍼슨은 생각이 달랐다. 그는 그런 봉기들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한다고 여겼다. 그는 이따금 일어나는 작은 반란들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건강한 정부를 만드는 데 필요한 약이기 때문이다라는 기록을 남겼다.


(75)

1935년 역사학자 찰스 비어드가 발표한 헌법에 관한 새로운 견해를 접한 사람들은 분노했다. 찰스 비어드가 헌법 작성을 위해 모였던 55인에 관해 연구한 결과 그들 대부분이 부자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들 가운데 절반은 사체업자들이었고 대부분은 변호사였다. 그들은 현재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경제 시스템을 유지해줄 강력하고 중앙집권적인 연방정부를 만들 필요성이 있었다. 찰스 비어드는 여성, 흑인, 계약 노동자, 빈민들의 헌법 작성과정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힘없는 사람들의 요구 사항이 헌법에 반영되지 않았음을 밝혔다.


(120)

에이브러햄 링컨은 경제적인 요구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공화당과 정치적 야망을 공유하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그는 뛰어난 화술로 도덕적인 차원에서 열정적으로 노예제에 반대하는 연설을 했다. 동시에 그는 노예제 폐지론이 새로운 문제들을 일으키지 않을까 우려하여 정치적으로도 신중을 기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노예제가 옳지 못한 제도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지만, 흑인들이 백인들과 동등하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그가 생각했던 가장 좋은 해결책은 흑인 노예들을 해방시켜 아프리카로 돌려보내는 것이었다.


(144-5)

사회주의란 농장, 광산, 공장과 같은 모든 생산 수단들이 국가 또는 국민 전체의 소유가 되는 경제체제를 말한다. 이는 공동 이익만을 목표로 하는 것이지 사적 이익을 추고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공산주의는 더 치밀하게 사유재산 자체와 재산에 근거한 계급 구분을 폐지하는 것이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물건이 모든 사람의 소유이며, 필요한 사람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아나키즘은 정부라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며 불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무정부주의였다.


(205)

아돌프 히틀러는 자신이 아리안이나 노르딕이라고 불렀던 백인 게르만 민족이 다른 민족들보다 우수하다고 주장했다. 2차 세계대전은 이러한 민족우월주의가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틀림없이 미국의 흑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 군대는 인종별로 분리되어 있었다. 심지어 수천 명의 목숨을 구한 혈액은행조차도 백인의 혈액과 흑인의 혈액을 따로 보관했다. 혈액은행의 시스템을 만든 흑인 의사 찰스 드루는 혈액 분리에 반대하여 해고당했다.


(241-2)

여성운동에서 최초이면서 최대의 영향력을 갖는 저서는 베티 프리던이라는 중산층 가정주부가 쓴 <여성의 신비(The Feminine Mystique)>였다. ‘신비라는 것은 사회가 여성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 즉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아내로, 어머니로서 살아가는 데 완벽하게 만족하는 여성상을 의미한다. 그런 이미지에 맞추어 살기 위해 여성들을 공허함과 상실감을 느껴야 했다. 베티 프리던은 여성이 남성들처럼 자아를 찾고 자신이 한 명의 인간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기만의 일을 갖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288-9)

빌 클린턴은 자신이 내린 결정들이 미국 국민의 여론에 기초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실시한 여론조사는 미국인들이 사람들 모두 건강보험을 받을 수 있게 되기를 원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국민들은 안정된 일자리를 원했으며, 정부가 빈민들과 집 없는 사람들을 돕고, 군사 예산을 감축하고,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부과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공화, 민주 양당에는 이런 일을 추진하는 정치가가 없었다.

미국인들이 여론조사에 나타난 대로 행동했다면 어땠을까? 국민이 독립선언서에 적힌 대로 모든 사람들의 생활과 자유와 행복 추구의 권리를 보장하라고 정부에 요구하며 단결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것은 사려 깊고 인간적인 방식으로 부를 분배하는 경제체제의 요청이 될 것이며, 젊은이들이 탐욕을 숨긴 채 성공을 추구하라는 가르침을 배우지 않는 문화를 의미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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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 통권 172호 - 2020년 5월~6월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 녹색평론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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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우리는 지금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단다. 코로나가 처음 발생했을 때, 최근에 생겼던 다른 바이러스들처럼 몇 달이 지나고 나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하지만 다섯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기세 등등하구나. 조금만 틈만 보이면 비집고 들어와 놀라온 속도로 전염시키고 있는데, 아직도 이 바이러스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단다. 이젠 누구나 쉽게 코로나 이후 시대는 이전의 시대와는 다르다고 이야기를 한단다. 이번 녹색평론에서도 많은 꼭지를 두어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야기했단다. 녹색평론뿐만 아니라 많은 매체들이 코로나 이후 시대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시대가 결코 절망스러운 모습만은 아니라고 이야기를 하는구나. 자본주의 병폐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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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그런 점에서 코로나19 사태는 수많은 목숨을 빼앗아가고 막대한 불편과 불안을 안겨주었지만, 한편으로 이제와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생각하게 한 계기가 되었다. 생태계 위기에 대한 수많은 경고들에도 불구하고 절대 멈추지 않았던 개발과 소비가 현저하게 줄었고, 최소화된 삶의 규모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에 따라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바퀴가 잠시 멈춘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 이 바퀴가 멈추거나 느려져도 세상은 돌아가는구나. 그렇다면 유일한 대안이라고 믿었던 이 거대한 바퀴를 멈추고 다른 작은 바퀴들이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렇게 코로나19 사태를 개인적 일상뿐 아니라 문명사적 대전환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들려오는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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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인해 소비와 산업 활동이 둔화되면서, 자연이 되살아나는 모습이 지구촌 여기저기서 보이고 있단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코로나 이후 시대 사람들이 생각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구나. 지구온난화는 비록 돌이킬 수 없는 길에 들어섰지만, 아직 자연을 되살릴 수 있는 기회는 있다고, 어쩌면 아직 늦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볼 수 있었단다. 암울한 코로나 시대를 살면서 바라는 작은 희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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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최근의 언론보도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뉴스의 하나는, 지금 세계 곳곳에서 소비와 산업 활동이 일시적이나마 정지 내지는 둔화되자, 화석연료 사용량이 대폭 줄어든 것은 물론, 대기가 청명해지고, 소음이 잦아들고, 자연 만물이 모처럼 생기를 되찾았다는 소식이다. 이는 종래의 생활이 결코 정상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알려주는 확연한 증표가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은 하나밖에 없음이 분명하다. , 더 이상 생태계에 훼손을 끼쳐서 결과적으로 인간생존의 기초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함이 없이 인간다운 생존, 생활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길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직도 우리들 대다수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붙들려 있는 신화, 즉 새로운 과학기술의 개발을 통한 끝 없는 성장(혹은 진보)의 추구하는 관념과 깨끗이 결별하는 게 진짜 급선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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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재토끼 천상문>이라는 책의 지은이 김남일님이 얼마 전부터 녹색평론에 연재를 하고 있어서 재미있게 읽고 있었는데, 이번 호에서는 코로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필립 로스의 <네메시스>라는 책을 소개해주었단다. <네메시스>라는 책도 전염병에 관한 책이라서 말이야. 필립 로스의 <네메시스>란 책은 아빠가 사두고 읽지 않은 책 중에 있어서 녹색평론을 덮고 바로 읽어보았단다. <네메시스>에 관한 이야기는 그 책의 독서편지에서 이야기해줄게..

….

그런데 이 코로나는 과연 언제 어떻게 끝날까. 퇴근길에 아직은 걸을만한 날씨라서, 집에 걸어오곤 하는데, 마스크는 정말 답답하더구나. 다들 조금만 참고 노력하면 이 마스크를 벗어 던질 시간이 올 지 알았는데, 이젠 못 올 것 같구나. 여행을 가고 싶어도 어쩌면 코로나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큰 용기를 가지고 길을 나서야 하는 것 같아. 다음 녹색평론을 읽을 때쯤이면 코로나 바이러스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을지라도 조금이라도 진전을 보였으면 좋겠구나. 세계가 보이지 않는 적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 시대는 어쩌면 세계3차대전을 겪고 있는 것일 수도….


1.

우리나라 현대사의 비극 6.25 한국전쟁이 70주년이 되었단다. 하지만 남북 관계는 여전히 좋질 않단다. 2년 전만 해도 평화의 무드가 한반도을 뒤덮었으나, 최근에는 다시 상황이 악화되어 언제 다시 남북이 한 책상에 앉게 될지 모르겠구나. 2020년은 이것저것 다 안 되는 한 해인가 보구나. 

아빠가 어렸을 때는 6.25사변이라고 불렀는데, 요즘에는 한국전쟁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더구나. 이번 녹색평론에서는 6.25 70주년 특집으로 몇 꼭지에서 다양한 시각으로 6.25를 바라보았단다. 전쟁으로 만들어진 미국이라는 나라에게 한국전쟁은 또 하나의 일상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나라가 만들어진 이후 크고 작은 전쟁과 함께 했고, 그런 전쟁을 통해 나라는 부강해졌고, 세계 패권국가가 되었으니, 한국전쟁이 발생했을 때는 한쪽에서는 쾌재를 불렀을지도 모를 일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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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미국은 전쟁으로 만들어진 나라다. 독립전쟁(1776~1783)을 통해 근대 최초의 민주공화국을 설립했고, 멕시코전쟁(1846~1848)으로 국민통합을 이룩했다. 또한 식민지시대 이래 19세기 말까지 지속적으로 인디언전쟁을 벌였다. 스페인전쟁(1898)을 통해 북미대륙을 넘어 동아시아로 진출했고, 1차대전 참전(1917)으로 세계 최대의 채권국가이자 최강의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다(미국 역사학자 폴 케네디가미국은 태어날 때부터 제국이었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이런 역사를 지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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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를 거치고 나서 우리나라는 크게 변했단다. 변했을 수밖에 없겠지. 온 나라가 폐허가 되었으니 말이야. 그 중에 6.25를 거치면서 대표 종교로 거듭난 개신교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어. 개신교를 믿는 이들에게는 좋지 못한 글일 수도 있지만, 아빠는 그저 책에서 읽은 사실을 이야기뿐이란다. 한국전쟁 당시 개신교를 믿는 사람들은 3%도 안 된다고 했어. 하지만 한국전쟁 중에 개신교는 반공주의를 이용하고, 정치권력에 깊이 개입하면서 많은 이익을 챙기게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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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물론 한국 개신교는 가톨릭과는 달리 매우 복잡한 종단이다. 그만큼 어떤 관점을 취하는지에 따라,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 읽기를 시도하는지에 따라 다른 해석들이 도출될 수 있다. 하지만 오늘 한국의 시민사회가 개신교에 대해 확인하고자 하는 몇 가지 문제적 요소들, 가령 극우 반공주의 성향이 강하고, 교세에 비해 너무 막대한 사회적 자원을 과점하고 있으며, 정치권력에 깊이 개입되어 있는 점 등을 알고자 할 때, 한국전쟁이라는 시공간적 사건에서 한국 개신교의 형성을 살피는 것은 매우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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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심의 인물이 바로 한경직이라는 인물이란다. 한경직이라는 인물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오늘날 극우 세력의 선봉을 걸으면서 온갖 민폐를 끼치고 있는 전광훈 목사가 자신을 한경직에 비유했다는 내용을 보고, 한경직이라는 사람은 안 봐도 뻔하는 생각을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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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의 둘째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혁혁한 공로를 세운 일등 공신인 전광훈 목사가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을 한경직과 비유했던 것은 일견 타당성이 있다. 해방 정국의 한경직도 압도적으로 좌편향의 사회였던 남한을 극우파 사회로 바꾸었고 기어이는 극우적인 남한 단독 정부 설립에 누구보다도 큰 기여를 했지만, 그에겐 너무 과격한 목사의 이미지가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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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이후 개신교는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단다. 밤에 도심에 셀 수 없는 십자가가 그걸 대신 대변하고 있단다. 그런데 최근에 개신교는 위기를 맞은 듯 보인단다. 개신교를 믿는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개신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개신교의 이미지는 많이 안 좋아졌단다. 전광훈 목사 같은 이가 수구우익단체를 이끄는 일이나, 코로나 시대 다들 조심하는데, 정부지침에 따르지 않는 교회들을 중심으로 끊이지 않는 집단 감염. 그것을 집단 이기주의로 욕하는 사람들도 있단다. 여론의 시선이 무척 차갑고 매섭단다. 다들 힘들게 거리 두기를 하면서 더운 날씨에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 밀집지역에서 교회활동으로 인한 끊이지 않는 감염들. 다른 종교단체는 집단감염이 없으니, 더욱 그들의 행동은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키고 있단다. 개신교는 기독교도가 아닌 이들의 시선을 살펴보고, 반성을 하는 기회를 스스로 가졌으면 좋겠구나.

….

그밖에 한국전쟁을 페미니즘의 시작에서 살펴보았고, 한국전쟁을 다루는 문학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고, 북한문학에서는 어떻게 전쟁을 다루는지에 대한 특별 기사를 실었단다. 한국전쟁 70주년에 맞게 잘 준비한 글들이었어.


2.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인 적폐는 언론이란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수구언론들이 적폐의 온상이고 말이다. 그런데 요즘 그들의 행태를 보면 마지막 발악을 보는 것 같단다. 예전에 그들은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사람들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지금은 미디어가 변하고,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곧이곧대로 듣는 이는 별로 없는 것 같구나. 아빠도 그들의 기사는 스포츠 기사도 보지 않는단다.

이번 녹색평론에는 아빠가 좋아하는 분의 글이 실렸단다. 역사학자 한홍구. <조선*동아 100년 저물어가는 언론권력>이라는 속 시원한 제목으로 속 시원한 글을 써주셨단다. 최근에 신간 소식이 뜸했는데, 이렇게 녹색평론에서 글을 읽게 되어 반가웠단다. 조선, 동아 일보의 언론 같지 않은 행보는 오래되었지만, 완전히 망가진 것은 1987 6월 항쟁 이후라고 하는구나. 그때부터 권력에 빌붙어 아무를 떨더니, 권력까지 쥐어 잡고 아무도 그들을 건들 수 없게 되었단다. 그들 스스로 밤의 대통령이라고 불렀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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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많이 망가지는 했어도 1987 6월항쟁까지의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언론은 언론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화 이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그 자체가 권력으로 부상하면서 괴물이 되어갔다. 민주화는 그동안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군부와 안기부 등 정보기관이 뒤로 물러나고, 그 빈자리를 민간이 메우는 과정이기도 했다. 민주화로 인해 가장 득을 본 것은 최루탄을 마시며 민주화를 외쳤던 민주시민들도, 체포와 고문과 투옥을 무릅쓰고 투쟁한 민주화운동가들도 아니었다. 군부와 정보기관 대신 이 나라의 알짜 권력을 장악한 것은 재벌과 검찰 등 관료집단과 보수 언론이었다. 특히 1991 5월의 분신 정국당시 수구세력의 유서 대필 사건을 조작하여 위기를 돌파할 때 검찰과 조선일보는 새로 얻은 힘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청와대는 여전히 힘을 갖고 있지만, 대통령은 5년짜리 계약직 공무원에 불과했다. ‘민주화 5년 단임과 문민화에 머물러 있는 한, 진짜 권력은 그것을 죽을 때까지 손에 쥐고 있다가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재벌 총수와 언론사 사주들의 것이었다. 5년 임기의 새 대통령을 뽑기 직전인 1992 11, 방일영의 고희연에서 사원 대표인 스포츠조선 신동호가 낮의 대통령은 그동안 여러분이 계셨지만, 밤의 대통령은 오로지 회장님 한 분이라고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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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조선, 동아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단다. 그들을 오랫동안 미워했던 이들에게 얼마나 반가운 소식인지 모르겠구나. 힘을 잃은 언론의 권력.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자신들의 영향력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그들의 미래는 어둡다는 것에 행복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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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대한민국이 또다른 100년을 맞이하는 이 순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사라져야 할 존재로 지탄을 받기 시작한 것도 족히 20년은 넘었다. 어설픈 세무조사나 우리 안에서만 진행된 안티조선운동은 어쩌면 조선일보를 온갖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슈퍼박테리아로 만들어버렸다. 그런데 지금은 언론 지형이 그 어느 때보다도 급격히 변하고 있다. 조선일보의 영향력은 예전 같지 않다. 한때 노년층을 붙잡아두던 <TV조선>도 트로트 열풍을 선도하며 돈이나 벌 뿐, 정치적 영향력 면에서 유튜브에 자리를 내준 지 오래다. 가짜뉴스 생산의 원조였던 조선일보는 훨씬 독하고 막강한 수구 유튜브를 따라갈 수 없게 되었다.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가 지배하는 탈진실(post-truth) 시대의 도래는 비단 조선일보나 동아일보 등 수구 언론뿐 아니라, 그와 대척점에 선 진보적인 레거시 미디어’(전통 매체)들에도 엄청난 과제를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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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인데 벌써 무척 덥구나. 코로나 바이러스가 지구온난화도 없애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한 같구나. 그렇다고 지구온난화로 빨리 더워진 날씨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없애지도 못하고..

너희들도 얼마 전부터 학교를 가기 시작했는데, 마스크를 쓰고 따가운 햇볕 아래 걸어가는 모습을 보니 안쓰럽구나. 학교에서도 마스크를 제대로 벗지 못하고어느날 갑자기, 우리 주변에 아주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인데 몰랐던 무언가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천적임이 밝혀져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쉽게 없애는 기적이 생기길…. 그럼, 오늘은 이만 마칠게.


PS:

책의 첫 문장 : 인류가 소위 문명생활을 시작한 이래, 역병은 인간사회를 끊임없이 괴롭혀왔다.

책의 끝 문장 : 이후로 면에 산다는 것’, ‘오지 마을에 산다는 것등이 계속해서 나왔으면 좋겠다.


인류가 소위 문명생활을 시작한 이래, 역병은 인간사회를 끊임없이 괴롭혀왔다. 세계의 역사는 어떤 점에서 전염병의 역사라고 해도 좋을지 모른다. 세계의 역사는 어떤 점에서 전염병의 역사라고 해도 좋을지 모른다. 때로는 국지적으로, 때로는 대륙 전체에 걸친 역병의 창궐과 그 후유증으로 세계사의 큰 흐름이 바뀌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삶을 뿌리째 흔들어 놓고 세계사의 물줄기를 변화시킨 결정적인 요인은 생산력의 발전이나 계급투쟁, 혹은 전쟁이 아니라, 감염력이 강하고 치사율이 높은 전염병이었는지도 모른다. - P2

자연은 무심해 보인다. 도도해 보이기도 한다. 세상 꼭대기에 서서 무소불위의 존재처럼 날뛰던 인간들이 바이러스의 습격으로 세계 곳곳에서 비명을 지르는 공안, 여느 때처럼 봄은 오고 꽃이 피고 새순이 올라온다. 길가의 고양이는 봄볕을 즐기며 한가하게 졸고 있다. 인간만 자기가 만들어 놓은 아수라장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누구를 탓하랴. 지금이라도 자연을 존중하고 따르면, 자연은 우리를 다시 품을 것이다. 무시하고 거부하면, 더 심하게 내칠 것이다. 그렇게 인간의 자리가 비게 되면, 인간에게 쫓겨났던 동물과 식물이 다시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얼마 전, 코로나19로 인적이 뜸해진 도심을 찾았던 퓨마와 여우와 야생 염소는 바로 그 전조가 아닐까. - P30

민중의 입장에서 정당한 전쟁은 없다. 오로지 피할 수 없는 전쟁에 대응하는 민중의 숭고한 희생이 있을 뿐이다. 오직 지배체제만이 정당한 전쟁을 이데올로기적으로 구성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북한의 내밀한 관점을 이해하더라도 20세기 냉전체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는 한국전쟁에 대한 다각적 이해는 여전히 유효하다. 미국, 중국, 구소련의 관계 속에서 전쟁 발발의 원인을 역사적으로 규명하고, 동아시아적 차원과 세계적 차원에서 한반도 평화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문제는 현재적 과제이다.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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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urall1004 2020-06-20 2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혹시 블로그는 안하시나요? 글이 너무 좋아 계속 읽고 싶네요!

bookholic 2020-06-21 20:5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칭찬 고맙습니다~~~ 저는 알라딘 서재에서 노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즐거운 한 주 되시기 바랍니다.
 















(12)

한 도시를 이해하려면 그곳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사랑하며, 어떻게 죽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좋다. 우리의 작은 도시에서는 기후 때문인지 이 모든 것이 이곳 사람들은 권태로워하고, 습관이라도 가져보려고 애를 쓴다. 우리 시민들은 열심히 일을 하지만, 그것은 대개의 경우 부자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그들은 상거래에 특히 관심이 많고, 그들의 표현에 따르면 무엇보다 사업에 몰두한다. 물론 단순한 기쁨에 대한 흥미도 없지 않아서 여자와 영화, 해수욕을 좋아한다. 그러나 매우 합리적인 사람들이어서 이런 쾌락들은 토요일 저녁이나 일요일을 위해 아껴두고 주중의 다른 날에는 돈을 많이 벌려고 노력한다. 저녁에 퇴근하면 일정한 시간에 카페에서 모이거나 늘 같은 대로를 산책하고, 아니면 집에 가서 발코니에 자리잡는다. 젊은이들의 욕망은 격렬하고 짧은 데 반해, 나이든 사람들의 취미 생활은 공굴리기 모임이나 친목회 회식, 큰돈을 걸고 카드놀이를 하는 동호회 정도에 한정되어 있다.


(53)

몇 가지 사례만 보고 전염병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고, 예방책을 잘 세우면 그것으로 충분하겠지. 알고 있는 사실들에 집중해야 했다. 마비와 탈진 증세, 눈의 충혈, 구강 오염, 두통, 사타구니의 명울, 극심한 갈증, 정신착란, 전신에 돋는 반점, 몸안에서 느껴지는 찢어질 듯한 통증, 그리고 마침내는이런 것들에 이어서 어떤 문장이 리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의학서적은 이런 증상들을 열거한 뒤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을 맺고 있었다. ‘맥박이 실낱같이 약해지고 무의미한 몸짓을 하고는 사망한다.’ 그렇다. 이런 증상들이 모두 나타난 후에 환자는 한낱 실에 매달린 형국이 되고, 그들 중 4분의 3-이것은 정확한 수치였다-은 죽음을 재촉하는 그 미미한 몸짓을 서둘러 해버리는 것이다.


(82)

그 사이에도 봄은 주변 교외 지역으로부터 시장으로 도착하고 있었다. 인도를 따라 늘어선 꽃장수들의 바구니에서 수천 송이 장미꽃들이 시들어가면서 풍기는 달콤한 향이 온 시내에 떠돌았다. 얼핏 보면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 전차는 러시아워에 여전히 만원이었고, 낮에는 텅 비고 더러웠다. 타루는 그 작달막한 노인을 관찰했고, 노인은 고양이들에게 가래침을 뱉어댔다. 그랑은 수수께끼 같은 작업을 하기 위해 저녁마다 집으로 돌아갔다. 코타르는 쳇바퀴 돌 듯 맴돌았고, 수사검사 오통 씨는 여전히 자신의 동물원을 이끌고 다녔다. 늙은 해수병 환자는 콩을 옮겨 담았고, 신문기자 랑베르도 가끔 눈에 띄었는데 태연하면서도 극장 앞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다. 게다가 전염병도 수그러드는 듯했다. 며칠 동안 사망자 수는 십여 명에 불과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그 수가 급격히 늘었다. 사망자 수가 다시 삼십 명 선으로 늘어난 날, 베르나르 리외는 도지사가 건네준 전보 공문을 읽으며 이 사람들이 겁을 먹었군요.”라고 말했다. 전보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페스트 사태를 선언하고 도시를 폐쇄하라.’


(89)

그래서 우리 모두는 우리의 삶을 이루고 있던 감정, 더구나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감정(이미 말했듯이 오랑 시민들은 단순한 열정의 소유자들이다)에서 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면모를 발견했다. 배우자를 전적으로 믿어온 남편들이나 연인들은 자기들이 질투심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랑을 가볍게 여기던 남자들은 다시 성실해졌다.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어머니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아들들이 기억 속에 자꾸 떠오르는 어머니의 얼굴의 주름살 하나에도 염려하고 후회했다. 완벽할 정도로 갑작스러운데다 언제 끝날지 예견할 수도 없는 그 이별에 망연자실한 채, 우리는 그토록 가까이 있었는데 어느새 그토록 멀어진 존재, 그리고 이제 우리의 삶 하루하루를 다 차지해버린 존재에 대한 추억에 저항하지 못했다. 사실 우리는 이중의 고통-우리 자신의 고통 그리고 집에 없는 사람들, 즉 자식, 아내 또는 연인이 겪는 고통을 상상 속에서 함께 겪고 있었다.


(95)

사실 냉정을 잃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 시민들의 생각은 자기들이 기다리는 사람에게로 완전히 기울어 있었다. 모두가 하나같이 고뇌에 빠져 있는 가운데, 그들은 사랑의 이기적인 성격 덕분에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었고, 페스트를 생각할 때도 페스트 때문에 이별이 끝도 없이 계속될까봐 염려스럽다는 정도였다. 그래서 전염병이 한창일 때도 그들은 건전한 여유 같은 것을 누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침착함으로 착각했다. 절망감 때문에 공포심을 느끼지 않게 되었으니 불행에도 장점이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그들 중에서 누가 병으로 목숨을 잃는다 해도, 대개의 경우 그 병을 조심할 여유조차 없었다. 유령 같은 존재와 나누던 기나긴 마음속 대화에서 빠져나오자마자, 그는 지체 없이 대지의 가장 무거운 침묵에 내던져졌던 것이다. 그가 뭔가를 할 시간적 여유는 전혀 없었다.


(138)

그 늙은 경비원은 타루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 차라리 지진이면 좋겠어요! 지진은 한번 흔들리면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으니까요사망자와 생존자를 세고 나면 그것으로 끝이잖아요. 그런데 이 망할 놈의 병은! 그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까지도 마음으로 병을 앓게 한다니까요.”


(142-3)

새벽이면 아직 인적 없는 도시에 산들바람이 분다. 밤의 죽음과 낮의 고통 사이에 있는 그 시간에도 페스트도 잠시 쉬고 숨을 돌리는 것 같다. 가게의 문은 모두 닫혀 있다. 그러나 그중 몇 곳에 붙어 있는 페스트로 인해 폐점이라는 게시문은 다른 가게와 달리 이 가게의 문이 열리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신문팔이들은 조느라 뉴스를 외쳐대지는 않지만, 길모퉁이에 등을 기댄 채 몽유병자처럼 신문을 가로등 앞으로 내밀고, 잠시 후 첫 전차 소리를 듣고 깨어나면 도시 전역으로 흩어져 페스트라는 글자가 도드라진 신문들을 내밀고 다닐 것이다. ‘가을에도 페스트가 유행할 것인가? B교수는 부정적으로 대답.’ ‘페스트 발생 94일째, 사망자 124.’


(212)

재앙만큼 보잘것없는 것은 없고, 큰 불행은 오래 지속되기 때문에 단조롭게 느껴진다. 그런 불행을 겪은 사람들은 페스트 치하에서 보낸 끔찍한 날들을 화려하고 잔혹한 커다란 불길처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발아래 놓인 모든 것을 짓밟아버리는 끝없는 답보 상태로 기억하는 것이다.


(213)

우리 시민들, 적어도 이별로 인해 가장 고통받았던 사람들은 그런 상황에 익숙해졌을까? 익숙해졌다고 말하면 그것은 결코 정확한 표현이 아닐 것이다. 그들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헐벗음 때문에 괴로워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페스트 발생 초기만 해도 그들은 잃어버린 사람을 뚜렷이 기억하고 그리워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과 웃음,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이 행복해했던 어떤 날, 이런 것들은 모두 분명하게 기억났지만, 그들이 그 사람을 다시 그려보는 바로 그 순간에, 또 이제는 그렇게도 먼 곳이 되어버린 그 장소에서 그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결론적으로 그 시기에 그들은 기억력은 있었지만 상상력이 충분하지 않았다. 페스트가 둘째 단계로 접어들자 기억조차 희미해졌다. 얼굴을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같은 이야기지만, 얼굴에 살이 없어져 마음속에서 그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과 관련해 초기 몇 주 동안에는 환영만 상대한다고 괴로워하는 경향이 있었다면, 그후에는 추억 속에 간직해온 희미한 색깔마저 잃어버림으로써, 환영도 예전보다 살이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기나긴 이별을 겪자 그들은 전에 누렸던 친밀감을 더 이상 상상하지 못했고, 언제라도 손을 얹을 수 있었던 존재가 어떻게 그들 곁에 있을 수 있었는지도 더 이상 상상하지 못했다.


(214-5)

직업이 있는 사람들은 페스트와 보조를 맞춰, 꼼꼼하긴 하지만 생기라곤 전혀 없는 태도로 일을 해나갔다. 모두 겸손해졌다. 처음으로 헤어진 사람들은 헤어져 있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고, 다른 사람들이 쓰는 말투를 쓰기도 하고, 자기들의 이별을 전염병의 통계수치와 연결해 검토해보기도 했다. 그때까지는 자신의 고통을 집단적 불행과 완강히 분리해 생각해왔지만, 이제는 두 문제를 함께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은 기억도 희망도 없이 현재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사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현재로 변했다. 페스트가 모든 사람에게서 사랑을 나눌 힘을, 심지어 우정을 나눌 힘조차 앗아갔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사랑에는 어느 정도 미래가 요구되는데, 우리에게는 순간들만 남은 것이다.


(218)

어쨌든 이 도시에서 이별한 사람들이 처해 있던 정신 상태를 정확하게 알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남녀가 거리로 쏟아져나오는 동안 나무 한 그루 없는 도시 위에서 영원히 지속되는 것처럼 보이는 먼지 자욱한 황금빛 석양을 다시 한번 영원히 지속되는 것처럼 보이는 먼지 자욱한 황금빛 석양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당시 도시의 일반적인 언어였던 차량 소리와 기계 소리가 사라진 가운데, 아직 해가 비치는 테라스 쪽으로 올라오는 소리는, 이상하게도, 발소리와 둔탁한 목소리가 빚어내는 거대한 웅성거림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무겁게 덮인 하늘에서 들리는 재앙의 휘파람 소리에 리듬을 맞춰 수많은 구두창들이 고통스럽게 미끄러지는 소리, 저 끝없고 숨막히는 제자리 걸음 소리가 온 시가지를 차츰 가득 채우며 당시 우리의 마음속에서 사랑을 대신했던 맹목적인 고집에 저녁마다 가장 충실하고 가장 음울한 목소리를 부여했던 것이다.


(245)

자기가 사랑하는 것을 돌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가치 있는 대상은 이 세상에 없어요. 하지만 나 역시 이유도 모른 채 사랑하는 것을 돌보지 않고 있죠.”


(276)

시간이 지나면서 식량 보급 문제가 악화됨에 따라 또다른 걱정거리들이 생겨났다. 거기에 투기까지 끼어들어, 부족한 생활필수품들이 일반 시장에서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팔렸다. 그 결과, 가난한 가정은 무척 괴로운 상황에 놓인 반면, 부유한 가정은 부족한 것이 거의 없었다. 페스트가 가져온 공평성이 효과를 발휘해 시민들 사이에서 평등이 강화될 수도 있었지만, 사람들이 본래 갖고 있던 이기심 때문에 페스트는 오히려 사람들의 마음속에 불의의 감정만 심화시키고 말았다. 물론 죽음이라는 완전무결한 평등이 남아 있긴 하지만 그런 평등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비논리적이긴 하지만 사람들은 식량을 충분히 공급할 수 없다면 자신들이 떠나는 것을 막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더니 마침내 구호가 퍼져나가 벽보로 나붙기도 하고, 도지사가 지나갈 때 소리 내어 외치기도 했다. “빵 아니면 공기를.” 이 풍자적인 구호를 계기로 데모가 일어나기도 했지만 곧 진압되었다. 그러나 그 심각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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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관 3 - 2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2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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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풀잎관 3권을 이야기해줄게. 반전이라면 반전이라고 할까. 그동안 로마의 영웅이라고 일컬어지던 이의 무서운 변신. 그 옛날 우연히 들은 예언에 대한 집착. 바로 가이우스 마리우스의 이야기란다. 그가 이런 비참한 말로로 인해 역사 속 위인이 되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럼, 그 이야기를 해줄게.


1.

2권에서 가장 비극적인 이야기는 로마와 이탈리아가 결국 전쟁을 벌인 것이었잖아. 이 전쟁은 시간이 흐를수록 로마 쪽으로 기울었고, 결국 이탈리아의 패배로 끝이 났단다. 이탈리아를 이끌었던 실로와 무틸루스도 죽었단다. 전쟁은 로마의 승리로 끝났지만, 상처뿐인 승리였단다. 로마는 이 전쟁의 승리로 얻은 것은 없었고, 무척 많은 것을 잃었단다. 술피키우스 같은 이는 이 전쟁은 크게 잘못되었다면서 뉘우치기도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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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96)

이제 원로원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나 자신도 예외가 아니다. 로마 원로원은 사라져야 할 때다. 하고 술피키우스는 결심했다. 오래된 세도가문이 더 이상 존속해선 안 된다. 부와 권력이 집중된 소수가 이탈리아인에게 가했던 실로 무시무시한 부당행위가 또다시 자행되어선 안 된다. 우리는 잘못된 사람들이다, 하고 술피키우스는 생각했다. 우리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원로원은 사라져야 한다. 로마를 인민의 손에 넘겨야 한다. 우리는 인민의 손에 주권이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 인민은 우리의 저당물에 불과하지 않은가. 최하층민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인민. 로마에서 최대 다수를 차지하면서도 제일 적은 권력을 누리는 2, 3, 4계급. 진정 부유하고 힘있는 1계급 기사들은 모든 면에서 원로원과 차이가 없다. 그러니 1계급 기사들 역시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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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지. 로마와 이탈리아의 내전을 내심 기쁜 눈으로 바라보는 이가 있었으니, 아시아 속주의 폰토스 왕 미트리다테스 왕이었단다. 그런 미트리다테스 왕의 불 같은 성격에 불을 붙인 이가 있었어. 아시아 속주에 집정관 대행으로 아퀼리우스라는 사람이 왔는데, 황금만 탈취하고 온갖 못된 짓을 했거든. 결국 폭발한 미트리타테스 왕은 아시아 속주에 상주하고 있는 로마군과 싸워 대승을 거두었단다. 그리고 아시아에 거주하고 있던 로마인과 이탈리아인들을 참혹하게 죽였는데, 그 수가 십 수만 명이라고 했어.

국내에서는 로마와 이탈리아가 서로 싸우고 있었는데, 아시아에서는 그들을 하나로 보고 모두 죽여버렸으니로마가 얼마나 옳지 못한 선택을 했는지 알 수 있겠지? 미트리다테스 왕은 이 승리로 여세를 몰아 로마로 진출하려고 에게 해로 진출했지만, 해전에서는 약했는지 패배하여 일단 후퇴를 하였단다. 그리고 아시아 속주의 여러 나라들을 침략하여 대부분을 차지했어.


2.

이런 아시아 속주의 소식은 로마에도 전달되었어. 예전에도 아시아 속주의 골치거리를 술라가 해결한 적 있잖아. 이번에도 술라가 대표로 뽑혔어. 하지만 술라는 돈이 없다며 출정을 망설였단다. 이탈리아와 전쟁을 해서 재정이 바닥이 난 거야. 이런 재정 상태에서 섣불리 원정을 가면 질 수 있다고 생각을 한 것이지.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 의견이었어. 하지만, 마리우스는 이를 강하게 비판했단다. 그러면서 술라가 가지 못한다면 자신이 아시아 속주를 가겠다고 했어. 그러나 원로원은 젊은 술라를 선택했어. 술라는 원로원의 선택이므로 전쟁을 준비하고 동방으로 길을 나섰단다.

그런데 마리우스와 한편이었던 호민관 술피키우스는 평민회의 합법적인 방법으로 술라의 총사령관 직위를 박탈시켰단다. 그리고 마리우스를 총사령관으로 임명했어. , 어려운 시국에 내부적으로 분열되는 모습을 보이는 로마. 술라는 동방으로 향하던 중 총사령관직에서 잘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술라는 이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어. 그리고 그의 부대원들은 모두 그를 지지하고 있었지.

술라는 어려운 결정을 했단다. 로마의 군대를 데리고 로마로 향하는 것이었어. 로마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고, 잘못되면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을 따르던 부하들의 목숨도 남아나지 않을 결정이었어. 술라는 부대원들에게 명령했어. 로마로 진군하되, 로마인들을 약탈하지 말라. 무력시위이자 쿠데타였어. 로마에는 제대로 된 수비대는 없었어. 마리우스가 급하게 노예들을 중심으로 군대를 만들고 술라의 부대에 맞섰지만, 오합지졸 군대로 술라의 정예부대를 막을 수는 없었어. 마리우스는 도망을 갈 수 밖에 없었단다.

로마에 입성한 술라는 원로원을 장안하고, 법을 바꿔서 평민회와 호민관의 권한을 대폭 축소해 버렸어. 그리고 원로원의 권한을 높였고, 부족한 원로원 의원을 충원했고, 백인조회라는 것을 창설해서 자신의 부하들 중심으로 조직했단다. 그리고 다음 집정관으로 자신의 측근인 나이우스 옥타비우스를 선출하게 만들었단다. 술라가 그렇게 원로원을 장악했지만, 그를 모두가 지지한 것은 아니었나 봐. 차석 집정관으로는 술라의 반대진영인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가 되었거든. 술라는 자신을 총사령관의 자리에서 쫓아낸 술피키우스와 마리우스를 대반역죄로 판결했어. 술피키우스는 잡혀와 처형당했고, 마리우스는 어디론가 도망을 가서 잡지 못했단다. 이렇게 로마를 정리하고 나서, 그는 다시 동방 원정을 떠났단다. 킨나라는 작은 불씨를 남겨 두고 말이야.


3.

마리우스는 아들과 측근 몇몇만 데리고 로마를 떠나 도망신세가 되었어. 그를 쫓는 군인들에게 잡혀 처형에 위험에 빠지기도 했지만, 그 지역의 백성들의 도움으로 위를 탈출하기도 했단다. 로마 백성들에게 아직 그는 영웅이었어. 그러나 속주들은 그를 받아들이는 것을 무척 부담스러워했어. 마리우스는 이해했지. 아프리카 지역의 누미디아의 왕이 받아주었지만, 마리우스의 아들이 왕의 첩과 눈이 맞는 바람에 다시 쫓겨났단다. 그러다가 아프리카의 조그만 섬에서 그들을 받아주었단다. 받아준 정도가 아니라 대환영이었어. 그 섬에는 마리우스에 옛날에 해방시켜준 옛 노예 군사들이 정착해서 살고 있었거든. 그들에게 마리우스는 영웅이고, 마리우스를 위해서라면 죽음을 내놓고 싸울 수 있는 이들이었어.

한편, 로마에서는 차석 집정관 킨나와 수석 집정관 옥타비우스 사이에 알력 다툼이 있었어. 옥타비우스는 킨나의 지지세력을 참살시키는 일이 벌어졌어. 그리고 신성모독이라는 누명을 씌워 킨니와 여섯명의 호민관을 추방시켰단다. 킨나는 로마에서 추방당해 이탈리아 지역에 머물면서 반격을 준비했단다. 군대를 준비해서 로마로 진군할 예정이었어. 술라의 부대가 로마를 진군한 사례가 있으니, 두 번째는 어렵지 않았지.

그리고 세 번째는 더 쉬웠을 거야. 무슨 말이냐고? 마리우스도 노예부대를 이끌고 로마로 향하고 있었거든. 킨나와 마리우스는 연락이 되어 같이 로마를 진군하기로 했어. 하지만, 킨나의 부하 중에는 마리우스와 동행을 경고한 이가 있었어. 마리우스는 더 이상 예전의 그 마리우스가 아니라고 했어. 자신의 탐욕과 권력 욕심에 사로잡힌 늙은이라고 말이야. 그리고 그 옛날 들은 예언, 즉 집정관을 일곱 번 한다는 것에 집착을 하고 있다고 말이야.


….

4.

마리우스는 노예부대를 이끌고 로마로 입성했어. 그들의 부대를 대항할 이들이 없었어. 그렇게 로마를 차지한 마리우스는 차석 집정관이 되었단다. 그에게 수석이든 차석이든 상관 없었어. 그저 일곱 번째 집정관이 되면 되는 거니까 말이야. 당시 수석 집정관은 킨나가 되었어. 하지만 차석 집정관이 된 마리우스는 거의 황제처럼 행동했단다. 그것도 폭군처럼 말이야.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변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어. 그의 로마 부대는 로마인들을 야만족 다루듯이 약탈을 했어. 그리고 반대파는 가차없이 죽여버렸단다. 그 이전 수석집정관이었던 옥타비우스도 마리우스에게 죽음을 당했어. 그의 내면 깊숙이 이런 폭군이 숨어 있었는데, 그걸 참고 있었던 것일까. 돌변한 그의 모습에 그 어떤 조언도 할 수 없었어. 그런데 그는 화를 내다가 다시 한번 쓰러졌단다. 다시 찾아온 뇌졸증. 하지만 이번에는 다시는 회복하지 못했어. 일곱 번째 집정관은 그렇게 6일만에 끝났단다. 비록 6일이었지만, 6일은 평생 오랫동안 쌓아왔던 명예와 명성을 쓰러뜨리는데 충분한 6일이었단다.

이렇게 풀잎관 3권이 끝이 났단다. <마스터즈 오브 로마> 2부도 끝이 났고 말이야. 풀잎관 3권을 읽은 약 열흘간 아빠는 고대 로마를 여행한 기분이었단다. 마리우스와 술라의 숨소리를 듣는 느낌이었어. 7 부 중에 2부가 끝이 났구나. 또 그들의 이야기가 그리워지면 또 읽고 이야기해줄게.


PS:

책의 첫 문장 : 술라는 로마를 통치하면서 한 가지 중요한 부분을 아예 간과하고 있었다.

책의 끝 문장 : “저도 알아요, 루키우스 데쿠미우스, 저도 알아요!”


"트리부스 수는 지금의 서른다섯 개가 적당하고, 더 늘어나서는 안 됩니다!" 술피키우스가 외쳤다. "또 트리부스회와 평민회에서 시민 수가 고작 3,4천 명인 몇몇 크리부스가, 시민 수가 10만 명이 넘는 에스퀼리누스 트리부스나 수부라 트리부스와 투표권이 동등한 것도 옳지 않습니다! 이처럼 로마의 통치 제도는 모든 면에서 저 전지전능한 원로원과 1계급을 보호하려는 목적에 따라 설계되었습니다! 원로원 의원이나 기사가 에스퀼리누스 트리부스나 수부라 트리부스에 속합니까? 당연히 아닙니다! 그들은 라비우스, 코르넬리우스, 로밀리우스 트리부스를 프리페르눔, 부키, 비비니움 출신 사람들이 공유하게 합시다. 그들의 파비우스, 코르넬리우스, 로밀리우스 트리우스를 에스퀼리누스 언덕과 수부라 지구 출신 해방노예들이 공유하게 합시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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