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역사 : 근대 - 당신에게 가장 가까운
황현필 지음 / 역바연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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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역사를 가장 역사답게라는 슬로건으로 역사 유튜브를 운영하는 황현필 님의 신간 <요즘 역사:근대>를 읽었단다. 이번 책은 구독자 100만을 기념하기도 하는 책이라고 하는구나. 아빠도 가끔 황현필 한국사 유튜브를 보는데, 몰랐던 새로운 내용을 알게 좋았단다. 역사라는 것이 그것을 이야기하는 역사가의 주관적인 생각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황현필 님의 역사에 대한 주관적인 생각, 사관이 많이 공감이 되더구나. 아빠랑 아무래도 정치적 성향이 비슷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역사 사실을 합리적이고 이상적이고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그의 생각에 다들 동의하지 않을까 싶구나.

이번에 새로 출간한 책은 우리나라 근대사에 있어서 중요한 사건들 스물한 가지를 뽑아서 이야기를 해주고 있단다. 각각의 사건들은 아빠가 다른 책들을 통해서 여러 번 이야기를 해 준 것과 겹치기도 하더구나. 특히 작년에 읽은 강준만 님의 <한국 근대사 산책( 10)>과 올해 다시 읽은 조정래 님의 <아리랑( 12)> 읽고 이야기해준 부분에서도 소개된 부분들이 많았어. 그래서 오늘은 지은이의 색다른 시각으로 이야기한 것들을 몇 개 발췌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단다.

 

1.

우리나라 근대를 여는데 중요한 인물 중에 한 명인 흥선대원군에 대한 평가는 오늘날까지도 상반된 평가들이 많이 존재한단다. 쇄국정책으로 인해 우리나라 근대화가 지연되면서 일제에게 뒤쳐지게 하는 원인이 되었고, 천주교 신자들 수천 명을 죽인 이력이 있고, 민비와 권력 다툼으로 인해 국력을 소진했다는 안 좋은 평가가 있는 것도 사실이란다. 하지만 조선의 오랜 악습을 끝내는 공들도 있었다고 하는구나. 이 책에서는 그런 흥선대원군의 공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어. 하지만, 무너져가는 조선을 바로 세우기에는 너무 늦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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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8)

물론, 국가적으로 천주교를 문란하다고 여긴 시대였다고 할지라도, 무려 8천여 명에 달하는 천주교 신자를 학살하다시피 한 대원군을 마냥 존경할 만한 인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국가를 새로 창업하거나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 오직 개인의 통치력만으로 시대적 병폐를 끊고, 이전 세상과의 긍정적인 단절을 이룬 인물로 대원군만 한 인물이 또 있던가?

첫째, 60여 년의 세도정치를 끝냈다.

둘째, 300년 만에 비변사를 해체했다.

셋째, 300년 만에 붕당정치를 끝냈다.

넷째, 300년 만에 경복궁을 재건했다.

다섯째, 400년 만에 서원을 제대로 철폐했다.

여섯째, 역사상 최초로 양반들에게 군포를 부과했다.

어떤 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대원군이 300년만 일찍 태어났다면, 조선의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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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는 서양 열강이 이런 저런 이유를 대고 우리나라를 쳐들어오던 시절이었어. 프랑스가 쳐들어 온 병인양요에서는 프랑스군이 대패하고 돌아갔단다. 이때 강화도에 있던 <외규장각 의궤>를 훔쳐서 달아났는데, 이것이 100여 년 뒤에 우리나라 고속철도와 연결되리라곤 상상도 못했을 거야. 1995년 우리나라는 고속철도를 도입하면서 어느 나라와 손잡을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이 <외규장각 의궤>를 돌려줄 테니 프랑스의 TGV 도입을 제안했고,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받아들여 프랑스 TGV가 우리나라 고속철도로 들어오게 되었단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프랑스는 <외규장각 의궤>를 한참 동안 돌려주지 않다가 2011년에 되어서야 영구임대 조건으로 우리나라도 돌아왔다고 하는구나. 좀 치사하구나. 나라 간 약속인데 제때 지키지 않고, 나중에도 조건부로 지켰으니 말이야.

미국이 쳐들어온 신미양요에서는 혈전 끝에 미국이 승리를 하긴 했지만, 미국은 조선 백성들의 저항에 대해 깜짝 놀라고, 승리를 했지만 강화도에서 퇴각하기로 결정을 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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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미군 대위 틸톤(Mclane Tilton)은 부인에게 아래와 같은 편지를 남겼다.

나는 많은 전쟁을 겪었지만, 조선이라는 나라의 한 섬에서 치른 전투만큼 끔찍한 기억은 찾아볼 수 없소.”

신미양요는 미국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로저스 제독은 전투에서 승리한 다음 날 퇴각을 결정한다. 조선 출정을 통해 미국과 로저스 제독이 얻어 낸 것은 없었다. 조선을 개항시키기는커녕 제너럴 셔먼호 사건에 대한 사과조차 받아 내지 못한 출정이었다. 일본과는 너무나도 다른 조선에 큰코다친 미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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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선 시대 말기 우리나라 시스템은 이미 나라의 기틀로써 많이 무너진 상태였단다. 흥선대원군 마저 물러나고 고종이 친정을 하게 되면서, 일본과 서양 열강이 우리나라에 물밀 듯 들어왔단다. 군인들에게 임금을 주지 못하여 임오군란이 일어나고, 신 지식인들에 의해 갑신정변이 일어났지만 이내 실패하고, 부정부패한 지방 관리들에 불만이 쌓인 농민들 중심으로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는 등 조선은 대혼란의 시기였단다. 정부도 무능력하여 나라 안의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든 자국의 힘으로 해결을 해야 하는데, 일본과 청나라의 군대까지 끌어들였단다. 이웃 나라 간의 우리 정부의 위험한 줄타기는 결국 한 나라의 왕비가 우리나라 궁궐 안에서 다른 나라인 일본의 칼에 맞아 죽는 사건까지 일어났단다. 그 사건이 일어나고 왕은 겁을 먹고 러시아 공사관으로 대피하는 우스꽝스러운 촌극을 연출하였단다. , 창피하도다.

서재필이라는 사람이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들어와 우리나라 스스로 독립해야 한다면서 독립문을 세우고 독립신문을 창간했지만, 그가 그리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다고 하는구나. 그는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미국인으로 우리나라에 와서 활동을 할 때도 조선 사람이 아닌 미국인으로 행동했다는구나. 그가 나중에 현충원에 안장되려고 할 때, 많은 역사가들이 그를 막았다고 하는데, 정부 기관은 좀더 심사를 하고, 많은 역사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결정할 것이지, 뭐 급하다고 그리 빨리 결정했는지 모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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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서재필의 큰 오점은 따로 있다. 부유한 나라 미국 국적의 서재필이 가난한 나라 자신의 모국 조선에서 너무 큰 돈 욕심을 낸 것이다. 독립협회의 고문 자리를 받아들여 10년을 계약한 서재필은 독립협회가 문을 닫게 될 위기에 처하자, 남은 7 10개월의 급료를 지급하지 않으면 사퇴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황국협회까지 만들어 독립협의를 해산시키려 한 고종은 그깟 돈이 대수냐며 서재필의 남은 임기만큼의 급료를 모두 지급하였으니, 지금 돈으로 30억쯤이었다고 한다.

<윤치호 일기>에 이런 내용이 있다.

만일 봉급을 두 배로 올려 주었다면, 서재필은 조선에 남아 있을 생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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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204)

1951년 서재필은 88세의 나이로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눈을 감았다. 이후 미국에서 돌보는 이 없이 방치된 서재필의 묘소가 한국 뉴스에 나오자, 여러 기독교단체가 그의 유해 송환을 주도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서재필의 유해가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현충원에 안장되려는 순간, 한국의 역사가들은 현충원의 정문을 막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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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에도 계속되는 조선의 수난 역사다시 일으킬 희망도 없이, 1905년 을사늑약과 1910년 경술국치로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단다. 500년 긴 역사가 이어진 나라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나라를 다른 나라에 넘겨주었다는 것은 가만히 생각해보면 상당히 충격적인 일이란다.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은 이완용을 비롯한 친일파들의 책임도 컸지만 하필 이 시절 왕이 무능한 고종이었던 이유도 컸을 거야. 그래도 고종이 일제로부터 강제로 폐위당한 이후에는 나라를 되찾으려는 노력을 하는 등 왕다운 모습을 보였다는 평도 있는데, 이 책의 지은이 황현필 님은 고종은 끝내 무능했고, 그는 독립운동을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황제권을 지키기 위해 행동한 것이라고 평가 절하를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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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

고종은 황제 자리에서 물러나며 나라까지 잃었음에도 그는 대단히 풍족하게 살았다. 국권피탈기 고종의 행동들은 그저 황제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고, 나라가 식민지로 전락된 후 고종의 독립운동이란 것들은 모두 자신의 황제권을 되찾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고종이 독립운동을 했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최소한 잃어버린 강토의 회복과 일본의 식민통치 아래 신음하는 만백성의 자주성 회복을 천명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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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 정도로 간단히 이야기를 마치려고 해. 앞서 이야기했지만, 아빠가 그 동안 다른 책을 통해 한 이야기들과 중복이 되어서 짧게 했어. 황현필 님의 책들이 그렇듯 한 가지 소재에 대해서 짤막하게 요점 정리해서 말씀을 해주셔서 읽기 편했단다. 너희들 같은 청소년들도 읽으면 좋을 것 같았어. 문득 학교 교과서에 근대사가 어떤 식으로 기술했는지 궁금하구나. 한번 너희 교과서를 훑어봐야겠구나. , 그럼 오늘은 이만 할게.

 

PS,

책의 첫 문장: 1800, 정조가 갑자기 사망했다.

책의 끝 문장: 옆집 아저씨가 아무리 잘났어도 내 아버지를 더 사랑하고 존중하듯이 다소 아쉬운 역사라 할지라도 소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일설에 의하면 안동 김씨도 나름 계산을 했다고 한다.
왕이 되기 전, 어린 이 이명복의 연이 끊어져 어느 안동 김씨의 집으로 들어간 적이 있었다. 보통 아이들 같았으면 겁도 없이 대문을 두들기며 연을 달라고 하든지 그럴 용기가 없다며 차라리 포기할 텐데, 이명복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대문 앞에 않아서 하루 종일 울고만 있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안동 김씨는 이명복의 우유부단함이 마음에 들었다. 그를 왕으로 세워 설령 그의 아버지 이하응이 살아 있는 대원군이 된다고 하더라도 지금껏 이하응의 처신으로 보아 충분히 감당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 P15

한 사람만 더 언급하자면 동학을 진압한다고 핑계로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했을 당시의 일본군 사령관이 오시마 요시마사다. 오시마 요시마사라는 이 낯선 이름은 사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얼마 전까지 일본의 총리였던 아베 신조의 외고조부다. 그리고 전범임에도 사형을 면하고 일본의 총리까지 역임했던 기시 노부스케도 조슈번 출신이자 아베 신보의 외조부다. 당연히 아베 신조 역시 조슈번 출신이고, 그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정한론의 창시자 요시다 쇼인이었으니 최근 일본의 정치 권력을 잡은 주류들의 사상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 P96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본국으로 돌아가려는 일본군을 기어이 막아선 이순신.
우리 강토를 짓밟은 외적에게 공포감을 심어 주고, 침략자의 후손들이 우리의 후손을 업신여기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해 노량해전을 설계했던 이순신.
이순신은 비록 노량에서 전사하지만, 그는 일본 에도막부 탄생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이후 에도막부와 조선은 250년의 평화를 유지했으니, 이순신의 노력은 결코 헛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순신에게 짓밟히고 에도막부에 눌려 있던 자들이 에도막부를 몰아내고, 메이지유신을 단행하면서 정한론이 다시 대두됐다. 그리고 그들에 의해 한반도가 다시 침략당했다.
- P97

1592년 임진왜란
1894년 청일전쟁
1904년 러일전쟁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
1941년 태평양전쟁
일본이 외세와 치른 전쟁들이다. 모두 일본의 선제공격이었다. 이토록 수많은 선제공격에 앞서 일본은 단 한 번도 전쟁에 대한 선전 포고를 하지 않았다.
일본인이 그리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무사도, 즉 사무라이 정신은 형식이자 겉치레에 불과했다. 사무라이는 자신들이 동경하는 이상향이었을 뿐, 그들 내면의 뿌리에는 닌자 정신이 깔려 있던 것이다.
- P151

민비는 임오군란 당시 도망 중에 만난 진령군이라는 무당을 신처럼 받들고 살았다. 성리학 국가 조선의 궁궐을 무당이 마음껏 드나들었고, 그곳에서 굿판이 벌어졌다. 진령군의 권위는 하늘을 찔렀고, 무당의 결정으로 벼슬이 주어지기도 했다. 민비가 세자의 건강을 기원하며 금강산 1만 2천 봉마다 쌀을 뿌린 것 또한 진령군의 진언 때문이었다. 임오군란 이후부터 민비가 시해되기 전까지 조선의 서열은 고종 위에 민비가 있었고, 민비 위에 무당 진령군이 있었다. - P176

회고의 애국계몽운동단체는 1907년에 조직된 신민회였다.
회장 윤치호와 부회장 안창호를 중심으로 구성된 신민회는 실력양성운동을 전개하여 교육과 산업 진흥에 힘을 쏟았다. 안창호는 평양에 대성학교를 세웠고, 이승훈은 정주에 오산학교를 세웠다. 기호흥학회, 서북학회, 호남학회 등 각 지역에 학회가 설립된 것도 신민회의 역할이 컸다. 이 밖에 신민회의 주도로 평양에 자기회사가 설립되었고, 대국에는 태극서관이라는 출판사도 설립됐다.
신민회의 또 다른 특징은 비밀결사적 성격이 짙었다는 것이다. 누구도 신민회의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지 못했다. 비밀결사의 앞뒤 연락책 정도만 알 뿐이었다. 대신 비밀조직인 만큼 신민회는 일제의 눈을 피해 무언가를 계속 준비했다.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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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세상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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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 중에 한 명인 피에르 르메트르의 신작 소식을 듣고 바로 샀단다. 792페이지나 되는 책을 분책하지 않고 한 권으로 출간한 출판사 열린책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피에르 르메트르는 세계1차대전과 2차대전을 다룬 3부작 시리즈를 마무리하고 그 이후 프랑스 사회를 이야기하는 4부작을 쓰겠다고 했는데, 4부작 중에 첫 번째 책이 우리나라에서 번역 출간된 것이란다. 제목은 <대단한 세상>이라는 책이란다.

아빠가 프랑스 역사, 특히 현대사를 잘 모르기 때문에 소설을 읽으면서 배경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서 읽은 부분도 있단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서사가 재미있고, 작가의 블랙 유머 스타일의 글들도 재미있어 읽는 것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단다. 다만 책이 무거워 한 손으로 들기 어려웠다는 점…^^ 그래도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분책하지 않고, 두툼하게, 디자인도 예쁘게 잘 만든 것 같구나. 그러면 곧바로 이야기를 시작해볼게.

소설은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시작한단다. 레바논은 프랑스로부터 1943년에 독립했지만, 독립 이후에도 서로 협력 관계에 있었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레바논에 프랑스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던 것 같구나. 베이루트에서 비누 공장으로 크게 공상한 루이 펠티에라는 사람이 있었어. 루이의 아내는 앙젤이라는 사람이고, 그들에게는 아들 셋과 딸 하나가 있었단다.

루이는 첫째 아들 장에게 비누 공장을 물려주려고 했지만, 장은 비누 공장에 적성이 맞지 않았으며 태도도 불성실했단다. 우체국장 딸 준비에브와 결혼한 이후 파리에 취직하여 파리에 살고 있었단다. 장의 별명은 뚱땡이인데, 아내 준비에브도 장에게 뚱땡이라고 부르고 무시하는 발언을 많이 하더구나. 준비에브는 현모양처와는 거리가 먼, 그런 스타일의 아내였단다.

둘째 아들 프랑수아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고등사범학교를 진학하기 위해 파리로 갔단다. 하지만 고등사범학교에 적성이 맞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언론 관련 일을 찾다가 르 주르날이라는 신문사에 취직을 하게 된단다. 셋째 아들 에티엔은 베이루트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의 애인 레몽이 인도차이나 전쟁에 갔다가 소식이 끊겨 걱정을 하다가 레몽을 찾기 위해 직접 인도차이나로 가기로 마음 먹었단다. 에티엔이 남자인데 애인이 전쟁에 갔다고 하니 레몽이 여자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레몽은 남자란다. 에티인과 레몽은 동성애였단다. 마지막으로 딸 엘렌은 아직 학생으로 베이루트에서 부모님과 지내고 있는데, 오빠들이 하나둘 베이루트를 떠나고, 막내 오빠마저 인도차이나에 간다고 하니 엘렌도 베이루트를 떠나고 싶어한단다.

주요 등장 인물들은 이 정도로 하면 다 한 것 같구나.

 

1.

레몽을 찾아 인도차이나 반도로 온 에티엔은 사이공에 도착했단다. 당시 인도차이나 반도에 있는 베트남과 프랑스 사이에 전쟁을 벌이고 있던 시기였어. 베트남에 사이공이라는 도시가 있는데, 지금은 이름이 호치민으로 바뀌었단다. 베트남의 습하고 무더운 날씨에 익숙지 않은 에티엔은 그곳 생활을 적응하는데 애를 좀 먹었단다. 레몽이 베트민들에게 포로로 잡혔다는 소문을 들었어. 레몽을 찾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에티엔은 사이공에 있는 외환국에서 일하게 되었단다. 외환국에는 국장 장케, 동료 가스통 등이 있었어. 아참, 에티엔은 사이공에 자신의 고양이도 함께 데리고 왔는데 그 고양이의 이름은 조제프란다. 외환국에 일하면서 에티엔은 주변 사람들에게 레몽의 사촌이라고 하면서 레몽의 부대 소식을 물어보았어. 아무래도 애인이라고 하면 이상하게 볼 것이 뻔하니 사촌이라고 했나 보구나.

에티엔은 외환국에서 일하면서 환전 업무를 맡고 있었는데 이상한 환차익으로 부당하게 돈을 벌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그 환차익을 이용하면 돈을 두 배로 뻥튀기를 할 수 있었는데 그 사실을 외환국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었는데 쉬쉬하고 있었단다. 에티엔은 환전을 승인하는 업무를 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부당하게 환전을 하는 것으로 망설이게 된단다. 양심상 도장을 찍기 어려웠던 것이지. 그 일로 사이공에서 알게 된 사람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어.

….

, 이제 파리에 살고 있는 다른 형제들 이야기를 해볼게. 첫째 아들은 알고 보니 완전 싸이코패스더구나. 자기 뜻대로 안되면 화를 참지 못하고, 그때 눈에 띄는 약자들, 특히 여자들을 죽이곤 했단다. 그렇게 파리에서 두 명을 죽였는데, 알고 보니 베이루트에서도 살인을 저지른 전적이 있었고, 그것 때문에 베이루트를 도망쳐 파리로 온 것이었던 거야. 어느 날은 장은 준비에브, 프랑수아와 함께 영화를 보다가 화가 나는 일이 생겼고, 화장실에 갔다가 그곳에 일을 보고 있어 어떤 여인을 그 자리에서 죽였단다. 그냥 홧김에 말이야. 그 사건은 나중에 화장실에 온 다른 사람에 의해 발견되었단다. 영화는 중단되고 극장은 빠져나가려는 사람들로 혼란스러웠어.

장과 준비에브는 집으로 돌아왔는데, 준비에브는 피가 묻은 장의 옷을 보게 되었어. 그리고는 조심하라고 한 마디만 하고 말았단다. 준비에브도 장이 살인을 저지르는 것을 알고 있었나 봐. 극장에 있던 프랑수아는 화장실에서 일어난 여인, 그것도 미인의 살인 사건은 자신이 특종 기사를 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어. 프랑수아는 기자를 신분을 이용하여 살인사건 현장에서 가서 피해자의 수첩에서 신분증을 보고 깜짝 놀랐단다. 그 여자는 그들이 보고 있던 영화의 여자 주인공으로 초특급 여배우인 메리 램슨이었던 거야. 프랑수아는 곧바로 신문사로 들어가서 기사를 써 내려갔단다. 그리고 이 기사로 인해 프랑수아는 인해 인정 받는 기자가 되었고, 그 후속 보도로 인해 신문사도 매출이 올라갔어.

한편 베이루트에 홀로 남은 엘렌은 방황의 길을 걷는단다. 20살 많은 수학 선생님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그 수학 선생님은 유부남이었어. 그런데 그 사실을 엘렌의 아버지 루이 펠티에가 알고 있었어. 루이는 이걸 어떻게 해결했을까? 엘렌을 혼냈냐고? 아니야, 딸 몰래 수학 선생님을 파멸시키는 작전을 펼쳤는데, 그 작전이 성공하여 수학 선생님은 교직에서 쫓겨나고 말았단다. 아버지 루이는 그저 비누 공장으로 성공한 짠순이 부자인 줄 알았는데, 자식들을 사랑하는 남다른 방식이 있는 것 같구나. 앞으로도 그런 일이 더 나오는데 좀 이따 이야기해줄게.

 

2.

에티엔은 레몽의 뒷조사를 계속 했는데 결국 레몽이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단다. 이후 에티엔은 타락의 길을 걷는단다. 앞서 이야기했던 불법 환차익 거래를 승인해 주는 대신 뇌물을 엄청 받았고, 그 돈으로 도박장을 드나들었고, 아편도 하면서 타락의 길을 걸었지. 하지만 다시 정신차리는 계기가 있었는데, 적군인 베트민들도 외환국의 환차익을 부당 수입을 얻는 정황을 포착했어. 베트민들은 불법 환차익을 통해 벌어들인 돈을 군자금으로 써서 프랑스와 전쟁을 하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프랑스와 베트남이 전쟁을 하고 있는데, 베트남도 프랑스 돈으로 군수품을 사서 전쟁을 하고 있는 상황인 거지. 프랑스 돈으로 무기를 산 베트민들이 자신의 애인 레몽을 죽인 것이고이 사실을 외환국장에게 이야기를 하고 정부기관에도 이야기를 했지만 증거가 없다고 무시를 당했단다.

그 뒷이야기는 잠시 후에

다시 엘렌의 이야기를 해보자. 18살인 엘렌은 메모 한 장 남기고 베이루트를 떠나 무작정 파리에 왔단다. 오빠 프랑수아와 장을 차례로 만나 잠자리를 부탁했지만, 어쩔 수 없이 재워주긴 하겠지만, 싫어하는 표정들이었어. 화가 난 엘렌은 호텔에서 자겠다고 다시 거리로 나왔는데, 소매치기를 만나 돈과 짐을 모두 다 털리고 말았단다. 예나 지금이나 파리는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하는 모양이구나. 아버지의 지인이 호텔을 운영한다는 것이 생각나서, 그 호텔로 향했는데 그곳에는 이미 아버지 루이가 와 있었단다. 엘렌이 파리를 떠난 사실을 알고 바로 그 다음 비행기로 파리로 온 루이. 장과 프랑수아를 만나고 엘렌의 이야기를 듣고 혼자인 엘렌이 이 호텔로 올 것을 예상하고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역시..

이번에도 루이는 엘렌에게 화를 내기 않고 따뜻하게 대해주고 호텔 방도 알아봐 주었단다. 다음 날 아들들인 장, 프랑수아와 며느리 준비에브도 함께 모였어. 루이는 엘렌을 베이루트로 데려가는 것이 아니고 파리에 머물 수 있게 집을 구해주겠다고 선언했어. 그리고 엘렌이 어리니 그 집에서 프랑수아와 함께 지내라고 했고, 장과 준비에브도 서운하지 않게 그들이 준비중인 가게 비용도 보태주겠다고 했단다. 이런 배려심 깊은 아버지인데, 그런 아버지에게서 어떻게 장 같은 싸이코패스가 태어날 수 있는지

….

메리 살인사건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나도 진전이 없었어. 그러다가 증인이 나타났어. 메리가 죽기 전에 화장실에 나오던 어떤 여인이 남자와 어깨를 부딪혔다는 거야. 이 사실이 신문을 통해 알려지자 장은 긴장을 했단다. 증인의 진술에 따라 많은 남자들이 법원으로부터 소환장을 받았는데, 장은 자신이 명단에 빠진 것에 안심을 했단다. 하지만 준비에브는 법원을 찾아가 항의를 했어. 파리 시민으로 법원 소환을 받는 것은 의무인데 자신의 남편 장이 빠졌다면서 말이야. 준비에브, 참 독특한 캐릭터이구나. 그렇게 장은 다시 긴장을 했어. 법원에서도 잔뜩 긴장을 해서 벌벌 떨고 그랬어. 하지만 증인을 다른 사람을 지목했는데, 그 사람은 유사 범죄 이력이 있던 사람이었단다. 누구나 범인으로 생각할 만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그는 계속 부인하고 명확한 증거도 없어서 다시 풀려나고 사건은 다시 미궁에 빠지게 되었단다.

….

사이공에서 불법 환차익이 베트민들에게 들어간다는 정황을 포착한 에티엔계속 조사를 해보니 프랑스의 주요 정부 요인들이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증거도 확보하게 되었어. 기자로 일하고 있는 형 프랑수아에게 전화를 했어. 환차익 부당 거래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히 하고 기사를 써달라고 했어. 증거를 가지고 가겠다면서 말이야. 그리고 먼저 전화로 약자 10개를 불러주었단다. 에티엔은 증거 서류를 입수하고 떠날 준비를 했는데 그의 집에 누군가 침입하여 에티엔을 도와주었던 베트남 청년을 죽였단다. 그리고 에티엔도 공격을 당해 무작정 도망을 갔어. 추적을 피해 사이공을 탈출하는 경비행기를 탔지만 비행기 폭발 사고로 그만 죽고 말았단다.

 

3.

아버지 루이는 에티엔의 사망 소식을 전보로 받았단다. 여행 중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는 내용이었어. 루이뿐만 아니라 식구들 모두 큰 충격에 빠졌단다. 특히 에티엔과 가장 친했던 엘렌의 상심은 말할 수 없이 컸단다. 프랑수아는 에티엔의 죽음이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고 생각했어. 죽기 얼마 전에 전화통화한 내용을 알고 있었잖아. 프랑수아는 앨렌이 알려주었던 알파벳 10개를 이용하여 외환국 관련 사람들을 알아보았어. 그리고 두 사람의 거물급 인사를 의심하게 되었단다. 에티엔이 알려준 알파벳 10개와 관련된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 사이공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이력도 있었어. 프랑수아는 인터뷰를 가장해서 그 중 한 명을 만났어. 인터뷰를 마치면서 은근 슬쩍 그러면서도 기습적으로 사이공 근무 이력을 물어보았어. 그리고 그 얼굴에서 당황함을 볼 수 있었지.

그런데 얼마 후 프랑수아, , 엘렌은 모두 누군가에게 강제로 연행되었단다. 엘렌은 친구가 마약을 훔치는데 망 본 일이 있는데 그것으로 잡혀 들어간 줄 알고 걱정했고, 장은 자신의 살인 사건이 드디어 드러난 줄 알았어. 장은 메리를 죽인 이후, 또 한 명의 여자를 죽였는데 그 여자는 나중에 알고 보니 지인의 딸이었고, 현장에 지문이 남아 있다고 해서 초조하게 지내고 있었는데, 강제 연행되다 보니 그 일로 잡힌 줄 알았던 거지. 그런데 알고 보니 에티엔의 일 때문이었단다.

정보부에서 그들을 강제 연행한 것이었고, 부모님도 파리에 오고 있다고 했어. 정보부 요원들은 프랑수아에게 경고를 했어. 지금 조사하고 있는 것을 멈추지 않으면, 일가족이 제대로 생활하지 못 하겠다고 경고를 했어. 그들이 모르고 있었던 그들의 부모님의 온갖 비리도 온 세상에 다 퍼뜨릴 거라고 했어. 부모님의 비리가 무엇이냐고? 아버지 루이는 1차세계대전에 참전했었는데, 참전 이후 사기로 돈을 벌어들였고 그 돈으로 비누 공장을 차린 거라고 했어. 아버지와 어머니가 파리에 도착해서 아이들을 만났고, 아버지도 그 사실을 인정하고 더 이야기를 해주었어.

1차 세계 대전 참전 용사들에게 국가는 무관심하였고,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했으며, 그렇게 번 돈으로 참전용사협회를 만들어 생활이 어려운 참전 용사들을 도와주었다고그리고 나중에 사기로 번 돈은 모두 돌려주었다고 했어. 뿐만 아니라 정부의 주요 인사들과 친분도 있다고 했단다. 그동안 자식들에게 숨겨왔던 아버지 루이의 비밀을 다 이야기해주었어. 아빠가 들어보니 그리 큰 잘못도 아니구만루이는 알고 보니 자식들 몰래 뒤에서 후원을 해주고 있었더구나. 프랑수아는 에티엔의 준 정보에 대한 후속 조사는 하지 않기로 했단다. 남아 있는 식구들의 명예를 지키기로 했어.

엄마 앙젤은 에티엔의 유품을 가지러 직접 사이공에 가기로 했단다. 아들의 죽음에 대해서 알아볼 것이 있으면 알아보기도 하고앙젤은 딸 엘렌과 함께 사이공으로 갔어. 앙젤은 사이공에 오고 보니 에티엔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야겠다고 생각했어. 외환국와 정부 기관을 찾아가 에티엔이 밝히려고 했던 환차익 부당 거래 의혹을 이야기했지만 모두 증거가 없었고, 에티엔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고 했어. 에티엔의 친구 로안을 만났고, 로안으로부터 에티엔의 유품이 담긴 트렁크를 받을 수 있었어. 앙젤과 엘렌은 에티엔의 죽음을 조사하다 보니, 환차익 부당 거래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래서 에티엔의 죽음은 사고가 아닌 타살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지. 에티엔이 생전에 도움을 많이 주었던 중국인 차오를 만나게 되었는데, 차오를 통해서 여러 정보를 알게 되고, 에티엔의 죽음에 그의 친구였던 로안이 깊숙이 관련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로안이 친구를 배신하고 에티엔을 죽인 거야. 하지만 명확한 증거는 없었고, 사이공의 경찰들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 그들을 믿을 수도 없고 말이야.

결국 앙젤은 엄마의 해결법을 썼단다. 엄마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법. 앙젤은 청부업자를 고용해서 로안을 저격했단다. 그 일을 성공적으로 마친 앙젤과 엘렌은 레바논 베이루트로 돌아왔단다.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단다.

….

책의 뒷편에 옮긴이의 글이 실려 있는데, 그 글에 그런 내용이 있더구나. 이 소설의 이야기를 이전 3부작에 나왔던 사람의 가족 이야기라는 거야.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말해주지 않겠다고 하네. 아빠의 기억력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잖니. 그래서 이전 독서 편지를 뒤져보았단다. 찾았다.

<오르부아르>에 알베르 마야르라는 주인공이 나오는데…. 그 사람이 은행 돈을 빼돌려 추모비 카탈로그를 만들었다는 내용이 있구나. 그리고 <대단한 세상>에서는 배려심 깊은 아버지 루이 펠티에의 본명이 바로 알베르 마야르라는 하는 부분이 있었단다. 뒤늦게 알게 된 이 깨알 같은 재미. 아빠가 예전에 이사벨 아옌데 소설들을 읽으면서 이쪽 소설 등장인물이 저쪽 소설에 나오는 것에 대해 재미있다고 했던 적이 있잖아. 그런 것처럼 피에르 르메트르도 그런 기법을 사용해서 독자들을 즐겁게 해주셨구나. 옮긴이가 이야기해주지 않았다면 몰랐을 텐데, 힌트를 주어 알게 되었단다. 피에르 르메트르의 다음 소설을 읽을 때도 등장 인물들을 유심히 봐야겠구나. 피에르 르메트르의 새로운 4부작의 시작나쁘지 않구나. 아빠 취향에 딱 맞는 책이었어.

다음 편을 기대하면서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할게.

 

PS,

책의 첫 문장: 프랑세로()를 따라가는 가족 행렬은 해를 거듭해 가며 여러 모습을 보여 왔지만, 여태껏 장례 행렬처럼 보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책의 끝 문장: “…… 정말 잘됐다, 자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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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12 - 제4부 동트는 광야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조정래 님의 <아리랑> 마지막 12권에 대해 이야기해줄게. 주말마다 한 권씩 읽었는데, 금방 12권이 끝나는구나. 그만큼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 것 같구나. 2024년이 시작한 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 벌써 6월이구나. 너희들에게 계속 천천히 자라라고 주문을 외우고 있는데, 주문이 잘 안 먹히는구나. 어찌들 그리 쑥쑥 자라는지….

, 그러면 <아리랑> 12권을 시작해 보자.

윤철훈의 동지였던 최현옥이 체포되어 온갖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고문을 다하지만 끝내 정보를 불지 않고 견뎠단다. 하지만 자신이 여기서 살아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간수들이 방심한 틈을 타 벽에 머리를 박고 그만 자살하고 말았단다. 최현옥을 고문했던 인물은 <아리랑> 전체 중에 최고의 빌런 중에 한 명인 양치성이었어. 양치성은 독립운동가들을 체포하고 고문하는 악랄한 친일경찰이 되었는데, 그를 보고 있으니 실체 인물 노덕술이 떠오르더구나. 일제 시대 악랄한 친일경찰로 그의 별명은 고문전문가였단다. 더 열 받는 것은 그런 악랄한 친일파가 해방 후에 다시 대한민국의 경찰과 헌병의 요직을 맡았다는 점이란다. 반일 행위로 체포되었지만, 이승만의 입김으로 무죄판결까지 받았다고 하니, 이런 말도 안 되는 경우가 어디에 있단 말이냐.

공허 스님의 아들인 전동걸은 동경에서 공산주의 활동을 한다고 했잖아. 그리고 사랑에 있어서는 두 여자 사이에서 갈등을 한다고 했었지. 공산주의 동료인 일본인 지요꼬와 같은 교포 유학생인 이미화 사이에서 말이야. 시간이 갈수록 전동걸은 이미화에게 더 마음을 두었단다. 하지만 일본의 감시와 통제가 심해지면서 일본 내 공산주의 활동이 점점 어려워졌어. 그래서 중국으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독립군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단다. 전동걸도 그렇게 중국으로 떠나야 했단다. 이 때 지요꼬와 위장 연인으로 해서 중국을 갔단다. 그 머나먼 길을 위장 연인으로 가다 보니, 그것도 둘 사이에 애틋한 감정이 있던 사이였는데, 위장 연인에서 위장이 떨어지게 되었단다. 동경에 남아 있는 이미화만 불쌍하게 되었구나. 중국에 도착한 전동걸은 조선의용대에 참여하여 중국 팔로군과 함께 전투에 참여했단다.

 

1.

김제에서 대지주인 하시모토는 김제읍장까지 차지하게 되었어. 1940년대 들어서면서 일제가 벌인 전쟁들 때문에 공출이 점점 심해지고, 징용도 점점 늘어나다 보니 하시모토는 자신의 농장에서 일할 소작인들이 줄어들어 불만이 많았어. 그렇다고 겉으로 일본정부에 불만을 표출할 수 없으니 속으로만 삭혀야 했지. 나쁜 놈. 국내에서 젊은이들을 징용해가는 것은 노무보국회에서 주관했단다. 노무보국회 소속의 이시바시라는 악질이 있었는데, 그는 사람들을 징용해가는 사냥한다고 하는 놈이었어. 아무나 잡아서 징용을 보냈는데, 차득보도 농사짓다가 붙들려 끌려가고 말았단다.

….

징용뿐만 아니라 군대에 끌고 가는 징병도 이어졌어. 징병도 부족하다 보니 학생들을 상대로 징병을 하는 학병제를 실시했단다. 친일파 최남선과 이광수는 학병 지원을 권유하는 연설을 했다는구나. 변절의 아이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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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11월에 들어서 총독부에서는 대학, 전문학교, 고등학교에까지 징집영장을 일제히 발급했다. 그리고 중추원에서는 <학병 불지원자는 휴학시켜 징용키로 결정>했다. 그러니까 학도지원병이란 <지원>은 허울좋은 장식일 뿐이었다. 이에 발맞추어 이광수와 최남선은 학병지원 권유연설을 하기 위해 일본 동경으로 건너갔다. 결국 제1차로 학병적격자 1천 명 중에 959명이 지원을 완료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가운데 관부연락선 곤륜환이 미국잠수함에 격침되어 544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행했다. 그리고 12월로 접어들면서 징병 적령을 1년 낮추는 긴급사태가 야기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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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규와 유승현은 학생들이 학병으로 끌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 학생들을 지리산으로 빼돌리려는 계획을 세웠단다. 지리산에는 이현상 중심으로 빨치산이 조직되어 있었거든. 송중원의 아들 송준혁도 학병 대상자였단다. 무작정 준혁을 지리산을 빼돌리게 되면, 남아 있는 식구들이 피해를 보게 되므로, 정도규와 유승현은 방법을 하나 찾았단다. 송준혁이 가짜 유서를 쓰고 지리산으로 도망가고, 송준혁의 엄마가 그 가짜 유서를 들고 경찰서에 가서 아들을 찾아달라고 울면서 연기를 하는 것이었지. 당시 학병을 가지 않고 자살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하니 참 가슴 아픈 일이구나.

학병으로 끌려가는 많은 조선 학생들이 불쌍했지만, 학병으로 끌려가서 고소한 이도 있었으니 박용화였단다. 박용화 생각나지? 어렸을 때부터 일본을 숭상하던 이로 초등학교 선생님 하다가 더 성공하고 싶어서 동경법대에 입학한 사람. 그냥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었으면 학병에 끌려가지 않았을 텐데, 동경법대에 들어가는 바람에 학병에 끌려가고 말았단다. 본인 자신도 얼마나 억울해 하는지…. 일본의 재판관이 되려고 했던 일이니 자신이 감수해야겠지. 박용화는 결국 버마 전선에 배치되었단다. 훈련 받을 때는 일본이 계속 승리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실전에 와보니 일본이 계속 밀리고 있는 상황이었어. 그제서야 일본에 속은 걸 알았는데 방법이 있나. 뿐만 아니라 그 전쟁터에서 조선의 소녀들이 위안부로 있다는 것을 알고 또 한번 분개를 했단다.

이 시절 또 하나 아픈 역사인 위안부 이야기도 가슴 아프지만 해야겠구나. 일본 공장에서 일하면서 돈 벌 수 있다면서 조선의 젊은 여인들을 속여서 동남아 전선까지 끌고 가서 위안부로 만들어 버리는 만행을 저질렀어. 그렇게 속여서 데리고 오기도 했지만 강제로 끌고 가기도 했단다. 친일파로 전향한 문인들은 위안부가 되라는 시들을 쓰고 연설을 하고 있으니, 화가 치솟는구나. 지난 총선에서 김활란을 욕했다고 비판 받은 후보자가 있었는데, 이화여대에 김활란 동상이 아직도 있다는 것을 더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한단다. 이화여대 학생들을 김활란의 행적을 알고 있다면, 그 동상을 쓰러트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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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228)

시인 주요한은 1941 <국민문학> 11월호에 <댕기>라는 시를 썼다.

 

나라의 부름받고 가실 때에는

빨간 댕기를 드리겠어요

몸에 지니고 싸우시면

총알이 날아와도 맞지 않아요.

 

북쪽에서 돌아오는 기러기는

갈대 밑에 재우겠어요

꿈에 돌아오시는 당신은

원앙침에 주무시게 하겠어요.

 

아무르의 얼음도 여름에는 녹겠지요

녹았어도 소식이 없는 여름일랑

까만 댕기에 하이야 간호복 입고

저도 나라 위해 있는 힘 다 바치겠어요.

 

서강 저녁놀의 타는 듯한 붉은 핏빛은

장렬하게 싸우다 산화하신 당신의 피

무언의 개선, 마을 역 앞에서

하이얀 댕기 드리우고 만세를 외치겠어요.

 

그리고 시인 노천명은 1942 3 4일자 <매일신도> <부인근로대>라는 시를 썼다.

 

부인근로대 작업장으로

군복을 지으려 나온 여인들

머리엔 흰 수건 아미 숙이고

바쁘게 나르는 흰 손길은 나비인가

 

총알에 맞아 뚫어진 자리

손으로 만지며 기우려 하니

탄환을 맞던 광경 머리에 떠올라

뜨거운 눈물이 피잉 도네

 

한 땀 두 땀 무운을 빌며

바늘을 옮기는 양 든든도 하다

일본의 명예를 걸고 나간 이여

훌륭히 싸워 주 공을 세워주

 

나라를 생각하는 누나와 어머니의 아름다운 정성은

오늘도 산만한 군복 위에 꽃으로 피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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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또한 시인 모윤숙은 친일의 시들을 쓰는 것만이 아니라 일본군이 진주만을 기습한 직후에 <조선임전보국단>이란 친일어용단체가 주최한 강연회에서 <우리들 여성의 머릿속에 대화혼(大和魂)이 없고 보면 이 위대한 승리의 역사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며 여성들이 일제의 전시동원체제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나설 것을 역설했다.

그리고 이화여전 교장인 김활란은 1942 <신세대> 12월호의 <징병제와 반도여성의 각오>라는 글에서 <이제야 기다리고 기다리던 징병제라는 커다란 감격이 왔다. 반도여성은 웃음으로 내 아들과 남편을 전장으로 보내야 한다>며 여성들이 일제의 전시동원에 앞장서라고 충동질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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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동남아 전선까지 위안부로 끌려간 이들의 삶은 더욱 비참했단다. 위안부 생활 자체가 비참한 생활이었는데, 그 외에도 병에 걸려 죽고, 실성해서 버림 받고, 뱀에 물려 죽고, 군대와 함께 있다 보니 폭격에 의해 죽기도 했단다. 생존자가 거의 드물었단다. 이런 짓을 하고도 일본은 사과를 안 하려고 하니 기가 차는구나. 그런 일본에 과거를 잊자고 하는 우리나라 사람도 있다는 것은 더 기가 차는구나.

 

2.

배필룡은 비행장 활주로로 징용을 와서 생활했단다. 고통의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도 흘러 약속했던 2년이 거의 다 되었단다. 어느덧 한 달 반이면 2년이야. 일제는 지금 하고 있는 활주로 작업을 일찍 끝내면 일찍 집에 보내준다고 해서, 사람들은 더 열을 올려서 작업을 했단다. 그런데 그곳에 호열자라는 전염병이 돌았어. 걸린 사람들을 격리하는 것이 맞지만, 일제는 그들을 산채로 묻기로 했단다. 그리고 그 일을 다른 조선인 노무자에게 시켰어. , 잔인한 놈들

드디어 활주로 작업이 끝난 어느날. 미군의 공습 때문에 반공호에 피신해 있었는데, 일본 군인들이 그 반공호에 수류탄을 던지고 기관총을 난사했단다. 그리고 입구를 시멘트로 막아버렸대. 그곳에서 죽은 사람이 4000여명이라고 하니 패망을 앞둔 일제는 점점 미쳐가고 있었단다.

사할린으로 징용 갔던 노무자들도 2년이 지났지만 배가 없다는 핑계로 집에 보내주지 않았고, 그곳에서 비인간적인 처우를 받으면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단다. 징용으로 끌려온 차득보는 북해도에서 도로 작업에 투입되었단다. 차득보 또한 계약 기간이 끝나도 집에 오지 못했어. 일본이 보내주지 않았거든. 간혹 도망가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 잡혀와 공개처형을 당했단다. 그런데도 도망가려는 이들이 계속 생기는 이유는 이곳 생활이 그렇게 비인간적이고 고통의 연속이었기 때문이야. 차득보도 억수로 비가 오는 날, 도망을 갔단다. 북해도에 살고 있는 아이누 족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을 했단다. 차득보는 조선인들이 모여 사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어.

….

일제의 패망이 가까워오고 있었단다. 총독부는 마지막 발악을 했어. 국내뿐만 아니라 만주에 있는 조선인들도 징병해갔어. 만주의 지삼출의 마을에도 징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끌려갔단다. 그러던 어느날 만주 정착지에 일본군이 싹 사라져 버렸단다. 일본이 드디어 패망한 거야. 그곳에 있던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내로 돌아가기로 했단다. 하지만 귀향길도 쉽지 않았어. 중국 사람들의 공격으로 패싸움이 일어났어. 중국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공격한 것은 그들도 일본인과 한패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결국은 국내로 돌아오던 발길을 다시 만주로 돌린 이들이 있었단다.

그렇게 소설은 끝까지 비극적으로 끝이 났단다. 우리나라도 비록 해방이 되었지만, 이내 둘로 나뉘면서 해방 아닌 해방을 맞이했어. 그리고 둘로 나뉜 나라는 또 전쟁으로 이어지고,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단다. 또 다른 비극이 기다리고 있었지. 그 비극 이야기는 조정래 님의 <태백산맥>에서 이어진단다.

….

이렇게 조정래 님의 <아리랑> 두 번째 읽기가 끝이 났구나.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3차 읽기도 해보고 싶구나. 그 정도로 이 책에 담긴 내용들을 아빠 머릿속에 저장해두고 싶구나. 너희들도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는데, 지금은 학교 공부에 정신이 없으니 읽기 어려울 테고나중에 성인이 되어 꼭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 <아리랑>뿐만 아니라 <태백산맥>, <한강>도 모두 추천한다. 시대 순으로 읽는 것이 좋을 것 같으니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 이런 순서로 읽으면 좋을 것 같구나. 그 때는 함께 책 이야기도 하면 좋을 것 같구나. <아리랑>은 두 번 읽었고, <태백산맥은>은 세 번 읽었으니, 다음에는 <한강> 2차 읽기를 해야겠구나. 아빠 생각에 내년쯤 <한강> 2차 읽기를 해보려고 한다.

그럼, 이제 <아리랑> 12권 끝.

 

PS,

책의 첫 문장: 지하최조실은 어둠침침했다.

책의 끝 문장: 남자들이 거의 다 쓰러져 갈 즈음 여자들과 아이들의 모습은 끝없는 광야 저쪽에 점으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전동걸은 3개월 동안의 군사훈련을 마쳤다. 조선의용군의 기본 군사훈련은 혹독하리만큼 강도가 높고 맹렬했다. 사격이며 분대전투 같은 훈련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유격전 훈련은 가히 살인적이라고 할 만했다. 먹을 것이라고는 조금도 지니지 않고 완전무장을 한 채 태항산록 그 끝없는 골짜기와 봉우리를 열흘 이상씩 타넘는 것이었다. 먹을 것은 어떻게 해서든 산중에서 구해야 했다. 뱀이고 개구리고 승냥이고 까마귀고 닥치는 대로 잡아먹어야 했다. 산열매도 따먹었지만 절대로 따먹으면 안되는 것이 있었다. 감, 호두, 대추가 그것이었다. 그것들은 태항산록을 따라 마을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꾸고 있는 과실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생업으로 삼아오는데다 수확량도 엄청나 그 세 가지는 태항산 명물로 널리 알려져 있을 정도였다. 그 열매들을 단 하나도 손댈 수 없는 것은 <인민의 것>이기 때문이었다. - P198

그들이 지리산 속에 있으면서도 나라 밖에서 최근에 일어난 사건들까지 샅샅이 알고 있는 것은 <미국의 소리> 단파방송을 청취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소식은 이렇게 선요원들을 통해서 각 조직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오키나와를 점령당한 위기 속에서 일제가 일억총옥쇄(一億總玉碎)라는 새로운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는 것을 학생들이 아직 모르고 있었다. 일억총옥쇄의 일억이란 일본사람들 7천만, 조선사람들 3천만을 합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일억총옥쇄란 일본과 천황에게 충성을 다바쳐 일본사람 7천만과 조선사람 3천만은 다같이 깨끗하게 죽자! 하는 뜻이었다. 그건 패전의 위기에 직면한 일제가 발악적으로 내세운 집단자살의 구호였다. 그런데 지식인들은 총독부가 조작하고 있는 승전의 보도에 취해 일본이 조선을 2백 년 동안 지배할 거라는 사실을 굳게 믿으며 일억총옥쇄를 여기저기서 열창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 P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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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 이야기.낯선 여인의 편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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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단편 소설 두 편을 읽었단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로 출간된 책으로 <체스 이야기> <낯선 여인의 편지> 두 편이 실려 있단다. 아빠가 슈테판 츠바이크에 관심을 가진 이후로 그가 쓴 책들을 하나 둘 모았는데 그 중에 하나란다. 이야기꾼 슈테판 츠바이크이 진면목을 보여주는, 짧지만 강렬한 두 작품이었단다.

 

1.

첫 번째 이야기는 <체스 이야기>란다. 체스는 많은 소설과 영화, 드라마 등에서 다루는 단골 소재란다. 아빠도 체스를 다룬 여러 작품들을 보았는데, 비교적 최근에 본 것은 드라마 <퀸즈 갬빗>이 생각하는구나. 이번에 읽은 <체스이야기>를 읽을 때 그 드라마가 간혹 생각이 나더구나.

체스를 다룬 여러 작품들이 그러듯이 이 작품에는 천재 체스 기사가 나온단다. 남슬라브의 작은 도시에 뱃사공이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고아가 된 미르코 첸토비치라는 소년이 있었어. 어떤 신부님이 첸토비치를 양자로 거둬들여 보살펴 주었지. 그 소년이 말을 어눌하게 하고 좀 모자라 보였단다. 그런데 신부님이 다른 사람과 체스를 두는 것을 곁눈질로 보고 배웠는데 그 실력이 정말 뛰어났어. 당시 첸토비치는 열다섯이었어. 신부님은 첸토비치의 체스에 대한 천부적 소질을 바로 알아보고 그에세 체스를 가르쳐주었는데 곧바로 남슬라브 지역의 모든 체스 고수들을 꺾으면서 유명해졌단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전세계에서 가장 체스를 잘 두는 사람이 되었단다.

뉴욕에서 경기를 마치고 아르헨티나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기 위에 배를 탔단다. 시대적 배경은 1940년대 초반이라서 비행기가 아니고 배를 타고 가는 그런 시절이란다. 이 배에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도 같이 타게 되었단다. ‘는 호기심에 많은 사람으로 그가 탄 배에 체스 세계 챔피언이 타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와 체스를 두고 싶어했단다. 하지만 그와 체스를 두려면 큰 돈이 필요했어. 탑승객 중에 매코너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이 큰 사람이었어. ‘는 매코너에게 첸토비치 이야기를 하자, 돈 많은 매코너는 바로 첸토비치를 찾아가 체스 경기를 성사시켰단다. 아무래도 첸토비치는 세계챔피언이니, 매코너는 혼자가 아닌 팀을 이루어 하기로 했어. 물론 도 참가를 했지. 그렇게 첸토비치 vs 매코너 팀의 체스 경기가 열렸는데, 1차전은 첸토비치의 승리로 끝이 났단다. 그리고 이어진 2차전에서 역시 매코너 팀이 불리하게 흘러갔는데, 구경을 하던 B박사라는 사람이 훈수를 두면서 무승부로 끝이 났단다.

갑자기 나타난 B박사라는 사람에 관심이 쏠렸어. B박사는 지난 30년간 체스를 둔 적도 없다고 했어. 그런 사람이 어떻게 세계챔피언을 상대로 무승부를 할 수 있었을까. ‘ B박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어. B박사는 오스트리아 출신 유대인이었어. B박사는 유대인으로 게슈타포에 의해 감옥에 1년간 갇혀 있었다고 했어. 그 고립된 생활은 B박사에는 큰 고통이었어. 미치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생각했지만 한계가 있었어. 감금생활은 그를 미치게 하기 일보직전이었지. 어느날 간수의 대기실에 있게 되었는데, 간수의 외투 주머니에 있는 책을 한 권 훔쳤어. 그 책은 체스 게임을 기록한 책이었단다. 체스에 관심이 없던 B박사는 그 책이 체스에 관한 책이란 걸 알고 크게 낙심했어. B박사는 그 책이라도 봐야겠다며, 그 책에 나와 있는 체스 게임들을 모두 통달했단다. 그리고 그 이후는 혼자 상상으로 체스를 둔 거야. 그렇게 감금해있으면 머릿속에 온통 체스 생각만 해서 체스중독증에 걸린 것 같았어. 신경과민으로 몸에 이상 증세가 나타나서 병원까지 갔단다. 그런 연유로 B박사가 지난 30년간 체스를 두지 않았는데도, 체스챔피언과 대등한 경기를 했던 것이란다.

이제 다시 첸토비치와 B박사와 일대일 체스 경기가 펼쳤는데 그 경기에서 B박사가 이겼단다. B박사는 흥분하기 시작했어. 첸토비치와 B박사가 다시 체스 경기를 했는데, B박사의 증상을 유심히 보던 B박사를 설득하여 게임을 포기하게 했단다. 왜냐하면 체스중독 증세를 보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야. B박사를 말리지 않으면 신경 과민 증상으로 몸에 이상 증세가 나타날 것 같았어. 그렇게 B박사의 포기로 첸토비치의 승리로 끝이 났단다. <체스이야기>는 이렇게 이야기가 끝이 났단다. B박사의 이야기가 체스 기술을 터득하는 방법이 오늘날 인공지능이 기술을 터득하는 방식과 비슷한 방식인 것 같구나. 그리고 B박사의 그 뒷이야기가 궁금했는데, 이야기가 그렇게 끝이 나서 다소 아쉬웠단다.

이 작품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죽기 전 발표한 마지막 작품이라고 하니, B박사의 뒷이야기도 없겠구나. 아빠의 헛된 바람이겠지만, 이제 와서 뒤늦게 그의 유고 중에 B박사의 뒷이야기가 발견되었으면 좋겠구나.^^

 

2.

두 번째 작품 <낯선 여인의 편지>는 어떤 여인이 유명 소설가 R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되어 있단다. 시작부분은 그 소설가의 열렬 팬의 팬심 담긴 편지인가 싶었는데, 뒤로 갈수록 그 소설가를 욕하게 되더구나. 유명 소설가 R은 마흔한 살이란다. 마흔한 살 생일날 긴 편지 한 통을 받았단다. 무려 스물네 장이나 되었어. “결코 저를 모르는 당신에게로 시작했지.

편지 쓴 여인은 최근에 자신의 아이를 잃고 큰 슬픔에 빠졌다고 했어. 그러면서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했어. 여인이 13살 때 빈에서 처음으로 소설가 R을 알게 되었대. 여인이 살고 있는 건물로 소설가 R이 이사를 왔던 거야. 13살이던 여인은 한 눈에 소설가 R에 사랑에 빠졌지만 속으로만 좋아할 수밖에 없었어. R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설렜고, 그의 발자국 소리도 사랑했고, 그의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되었단다. 그런데 어느날 엄마의 재혼으로 그곳을 떠나게 되었는데, 여인은 심한 좌절감과 상실감에 빠졌어. 소설가 R과 멀리 떨어져 인스부르크로 가야 했거든. 18살이 되었을 때 여인은 독립하겠다면서 빈으로 돌아왔어. 빈에 있는 친척집에 머무르면서 일하기 시작했는데, 독립은 핑계였고, 소설가 R을 보기 위해서 빈에 온 것이었어. 매일 그의 집 앞에서 창문으로 바라보았어. 우연히 그와 마주치기도 했는데, 소설가 R은 여인을 알아보지 못했어. 몇 번을 마주치고서야 소설가 R은 여인에게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단다. 여인은 흔쾌히 저녁을 함께 하고, 그 이후 매일 만나 사랑을 나누었단다. 여인의 소망이 드디어 이루어진 거야. ‘매일만났다고 했지만, 3 일이 전부였어.

3일 뒤, 소설가 R은 여행을 간다면서 당분가 연락하지 못한다고 했어. 여행을 다녀온 후에 연락한다고 했지만, 그것이 끝이었단다. 그런데 그 3일간의 사랑으로 인해 여인은 임신을 하게 되었단다. 소설가 R을 다시 찾아가보려는 마음도 있었지만, 버림받고 아이를 지우라고 할까 봐 여인은 혼자 아이를 낳았단다. 돈도 없어서 보호 시설에서 아이를 낳았어. 편지 첫 부분에서 여인의 죽은 아이가 이 아이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단다. 편지를 읽는 소설가 R도 그렇게 느꼈겠지?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깨닫게 될까? 여인은 아이를 낳고 가난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잘 지냈단다. 여인의 외모가 뛰어나서 여러 번 청혼을 받았지만 다 거절했단다. 혹시나 소설가 R에게 연락이 올까 봐 말이야. 하지만 그런 건 없었단다.

어느날 오랜 만에 친구와 클럽에 갔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소설가 R을 다시 만났단다. 그런데 소설가R은 여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심지어 여인을 꼬셨단다. 그렇게 여인과 소설가 R은 다시 하룻밤을 보냈는데, 여전히 소설가 R은 여인을 알아보지 못했단다. 소설가 R이 얼마나 많은 여인과 이런 짓을 했는지 알겠구나. 그러니 여인을 알아보지 못하지. 이번에도 소설가 R은 곧 여행을 떠나야 한다고 했어. 거기에 여인에게 돈까지 주어 모욕을 안겨 주었단다. 이런 못된 놈. 여인은 가난하지만 아이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중 11살이던 아이가 그만 죽고 말았단다.

이제 여인의 삶의 희망이 완전히 사라졌어. 소설가 R로부터 완전히 버림받았고, 유일한 희망이었던 아이도 죽고 말았지. 여인은 이제 자신도 죽을 거라고 했어. 매년 소설가 R에게 생일마다 보낸 하얀 장미를 보낸 것도 자신이라고 밝히고, 이젠 못 보내니 스스로 장미를 사라고 했단다. 그렇게 편지는 마무리되었단다.

이 소설은 독자가 소설가 R에 감정이입하여 자신이 편지를 받은 것처럼 읽으면 더 실감날 것 같더구나. 그렇게 감정이입되어 읽다가 죄책감과 후회와 미안함이 가득 들었다면, (어찌 보면 그게 당연한 감정이겠지만) 소설가 R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런 놈들은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하려고 할 거야.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합리화를 하겠지. 아마 이 편지도 다 읽기도 전에 불 속에 던졌을 수도 있어. 소설가 R은 그런 사람이야.

, 오늘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단편 소설이 남긴 <체스이야기, 낯선 여인의 편지>라는 책 이야기를 해보았단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은 늘 옳다는 것을 다시 확인 확인하면서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자정 무렵, 뉴욕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출항 예정인 대형 여객선 위는 출발 직전 흔히 볼 수 있는 일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책의 끝 문장: 그는 눈으로 볼 수 없는 그 여인을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을 생각하듯 육체 없이도 정열적으로 생각했다.


체스는 하늘과 땅 사이 무함마드의 관처럼 이 범주들 사이를 부유하는 학문이요 예술이며, 대립하는 모든 것들을 유일하게 연결해주는 것이 아니던가? 즉 태곳적인 것이면서도 영원히 새로운 것이요, 그 구도가 메커니즘적이면서도 판타지를 통해서만 작동하며, 기하학적으로 일정 공간에 제한되어 있으면서도 그 조합에서는 무제한적이고 항상 자기 발전적이며 번식력이 없다. 무(無)로 이끄는 생각, 무에 이르는 수학, 작품 없는 예술, 실체 없는 건축, 그럼에도 명백하게 그 존재 자체가 어떤 책이나 작품보다 영속적이며, 모든 민족과 모든 시대에 속하는 유일한 게임이면서도, 지루함을 죽이고 감각들을 예리하게 하며 영혼에 긴장감을 주기 위해 신이 이 땅에 가져온 게임이라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 이 게임에서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가? 어떤 아이들이라도 기본 규칙을 배울 수 있고, 체스에 서투른 사람이라도 누구나 자신을 게임에서 시험해볼 수 있다. - P20

사랑하는 그대여, 당신에게 그 순간의 절망을 어떻게 묘사해야 할까요? 당신이 저를 알아보지 못하는 이 운명을 고통스럽게 느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당신이 저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알아보지 못할 거라는 그런 운명을 전 한평생 견뎌왔고, 그 운명과 더불어 죽게 될 테지요. 어떻게 제가 이 절망을 묘사할 수 있을까요! 보세요. 인스부르크에서 보낸 그 이 년 동안 매 순간 당신을 생각했습니다. 빈에서 우리가 다시 만나는 상상 이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낸 그 시절, 전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가장 행복한 순간뿐 아니라 가능한 최악의 순간까지도 꿈꾸었습니다. - P116

얼굴에 비치는 나이는 명암에 따라 묘하게 변하고, 입는 옷에 따라 달라지기도 합니다. 체념한 이들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답니다. 그러나 아직 소녀였던 저는 당신의 망각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당신을 끊임없이, 그리고 쉼 없이 생각하고 있으니 당신도 저를 종종 생각하고 기다려줘야 한다는 헛된 마음을 품었기 때문일 겁니다. 제가 당신에게 미미한 존재이며, 저에 대한 어떤 기억도 당신에게 남아 있지 않다고 확신했다면, 제가 어떻게 숨인들 쉴 수 있었겠습니까! 당신이 마음속에 저를 알아볼만한 그 어떤 것도 없으며, 당신 삶의 거미줄 같은 기억 한 오라기도 저와 연결된 것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신의 눈길 앞에서 정신이 퍼뜩 들었습니다. 그것이 현실로 떨어지는 최초의 추락이었고, 제 운명을 예감하는 최초의 순간이었습니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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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11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1년 10월
평점 :
품절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요즘 선거를 앞두고, 관련 영상을 본다고 너희들에게 써야 할 독서편지는 자꾸 늦어지는구나. 오늘은 영상 보기를 꾹 참고, 조정래 님의 <아리랑> 11권을 이야기해줄게.

정재규, 정상규, 정도규 삼형제 중에 둘째 정상규가 드디어 꿈을 이루었단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소작인들을 쥐어짜면서 결국 그의 꿈인 만석꾼이 되었어. 얼마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냐면, 아들의 교육까지 시키지 않으면서 돈을 아껴 만석꾼이 된 거야. 첫째 아들은 그런 아버지에게 불만을 갖고, 일도 안하고 술만 먹고 그랬대. 나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어차피 그 땅은 모두 자기 것이 된다는 생각으로만석꾼이 된 정상규는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만오천석꾼으로 목표를 상향 조정했단다. 식구들까지 쥐어짜며 만든 만오천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삼형제 중에 유일하게 사람다운 정도규는 국내에서 공산주의 활동이 어려워지자, 동료들과 협의하여 위장 전향하여 활동하기로 했단다. 위장 전향을 한 것은 몇몇만 알고 있다 보니, 다른 공산주의자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을 각오를 해야 했어.

10권에서 연해주에 살고 있던 우리나라 사람들이 강제로 중앙아시아로 이주했다고 했단다. 허허벌판 중앙아시아 땅에서 정착하기도 쉽지 않았어. 열악한 화물 기차 안에서 굶주림과 추위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중앙아시아에 도착해서는 풍토병으로 또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 윤선숙의 막내 아들 경환이도 그만 풍토병으로 죽었어. 오늘 길에 남편이 죽고, 막내 아들까지 세상을 떠나자 삶의 의욕을 잃었지만, 남아 있는 두 아이를 위해서 다시 이를 악물어야 했단다. 사람들은 폐허에 집을 집고, 다시 농사터를 일구었단다. 소련은 그런 조선인들을 탄압했어. 거주지 이동을 금지시키고, 당국에 무엇인가 문의하러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했어. 어느 정도 집들도 짓고 자리를 잡아가면서, 마을 사람들의 요청으로 윤선숙은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단다. 하지만 소련에서는 조선어 금지시켰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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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조선족에게 쏘련은 도대체 무엇인가. 쏘련은 왜 조선족을 이렇게 핍박하는가. 전인류적 해방을 외치고 있는 공산주의 모국 쏘련이 왜 이 모양인가. 약소민족의 독립을 지원한다는 쏘련이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그건 다 거짓이고 위장인가? 아니, 강제이주를 시키는 어떤 이유가 있다고 하자. 우리에게 알릴 수 없는 불가피한 이유가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정당하게 사람 대접을 해야 할 게 아닌가. 왜 할 일은 제대로 안하고 바른말을 하는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죽이는가. 제놈들에게 사람을 개 잡듯 죽일 권한이 어디에 있는가. 아니, 짐승도 이렇게는 취급할 수가 없다. 흉악무도한 놈들! 인민해방, 인민혁명, 인민의 천국, 전인류적 해방, 약소민족의 독립 지원, 새빨간 거짓말! 도둑놈들! 사기꾼 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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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윤선숙의 사촌오빠 윤철훈과 그의 아내 차은심은 만주에서 일본 장교를 상대로 사진관을 차리고 그들의 정보를 하나씩 빼서 독립군 동지들에게 전달했단다.

 

1.

만주 지역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독립운동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항일연군 소속이었는데,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해서 추위와 굶주림과 싸워야 했어. 거기에 일본의 심리전까지 더해지면서 투항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단다. 그래서 독립운동은 점점 어려워졌어. 방대근도 소수정예로 움직이면서 게릴라 작전으로 일본군을 공격했어. 보급창고를 공격하여 식량과 군수품을 훔쳐오기도 했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독립운동을 하기로 한 송가원은 의사 출신답게 비밀 아지트를 돌아다니면서 부상자들을 치료해 주었단다. 옥비는 송가원의 옆을 지키면서 치료하는 것을 도와주었어. 힘든 와중에 둘의 사랑을 무럭무럭 자라서 딸을 낳았단다.

일본 관동군들이 항일연군을 공격하는데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게 되어 독립군들은 더 힘들어졌단다.  관동군은 독립군에 현상금까지 걸고 교묘한 심리전을 펼쳤어. 방대근은 부대를 이끌며 게릴라 작전을 펼치는데, 여기저기 동료들의 시신들이 발견했단다. 그러던 어느 날 시신 무리에서 조카 오삼봉의 시신을 발견했단다. 독립운동을 하겠다고 스스로 만주로 온 조카의 죽음을 보았으니 얼마나 슬프고 가슴 아팠겠니그렇게 이름 없이 사라진 독립군이 정말 많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겠구나.

방대근 부대는 계속 행군을 해서 송가원이 소속된 부대과 재회를 했단다. 송수익이 죽고 나서 필녀와 수국도 독립운동을 하기로 했잖아. 필녀와 수국도 자진해서 전투 병력에 투입했어. 필녀와 수국도 일본군과 대치하여 끝까지 총을 놓지 않았지만 결국 전사하고 말았단다. 아리랑 초반부터 나온 이들의 죽음은 더욱 안타까운 것 같아. 독자와 소설 속 등장인물로 맺은 인연이지만, 정이 많이 들었는데 말이야.

한편, 만주국으로 이민을 온 조선사람들은 또 한번 일제에 속았다는 것을 알고 후회를 했단다. 남만석이라는 사람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는데, 자신의 가족뿐만 아니라 처남인 김진배의 식구들까지 다 데리고 와서, 처남에게 늘 미안함을 가지고 있었단다. 농사철이 아닌 겨울철에는 숯 공장에 끌려가 중일전쟁물자로 쓸 숯을 겨우내 만들어야 했어. 그것만이 아니었어. 일본 낭인들이 만주에 나타나서 마을 처녀들을 납치해가는 일들이 있었는데, 그만 김만배의 큰 딸도 그렇게 잡혀가고 말았단다. 이에 남만석의 자신의 잘못된 선택에 땅을 치고 후회를 했단다.

….

 

2.

다시 국내 사정을 이야기해줄게. 일제 지배 체제가 길어져서 그런지 너도나도 친일로 전향했단다. 송중원이 다니던 잡지사도 결국 친일 성향으로 바뀌자, 송중원은 잡지사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왔단다. 고향에 내려온 송종원 가족은 장인어른 신세호의 도움으로 자리를 잡고 농사를 지내며 지냈단다. 여전히 일본 형사들의 감시와 간섭은 계속 되었어. 송중원은 농사 지내는 것 이외에 동네 아이들에게 이야기도 해주었어. 대놓고 야학을 차리지는 못하니 옛날 이야기를 해주는 척 하면서 민족의식을 심어주는 그런 이야기들을 해주었단다. 그것이 경찰의 감시에서 벗어나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법이었어.

보름이는 아들 삼봉이가 피 흘리며 끌려가는 꿈을 자주 꾸었단다. 아무래도 삼봉이가 저승으로 가기 전에 엄마의 꿈에 나타났나 보구나. 보름이는 둘째 딸 금예와 홍씨 집에서 함께 지냈단다. 홍씨 누군지 알지? 공허 스님이 사랑했던 여인. 공허 스님과 홍씨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동걸이가 장성한 청년이 되어 일본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단다.

토지조사사업 때 땅을 빼앗긴 이후 평생 그 땅을 되찾으려고 일본의 항거했던 박건식이 병에 걸려 죽고 말았단다. 그의 첫 번째 아들 동화는 10권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아버지의 뜻에 따라 독립운동에서도 참여했었는데 결국 친일로 전향을 했잖니.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이제 노골적으로 전향했단다. 하지만 이전에 독립운동 이력과 공산주의 이력, 그리고 퇴학당한 이력 때문에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어. 박건식의 둘째 아들 용화는 형과 달리 어렸을 때부터 일본을 숭배했단다. 학교에서도 공부도 잘해서 사범학교에 진학을 했어. 박용화는 사범학교를 다니면서 일본인 학생 에이꼬를 개인과외를 하면서 돈도 벌었어. 그런데 그 에이꼬의 유혹에 넘어가 사랑을 하게 되었는데, 용화는 당연히 에이꼬와 결혼할 생각이었으나, 에이꼬는 결혼은 생각지도 않고 한 동안 사귀다가 일본으로 돌아가버렸어. 에이꼬와 연애를 하다가 공부를 게을리하다 보니 임용 시험에서 성적이 안 좋아 시골 학교에 발령을 받았어. 용화는 자신이 이렇게 시골에서 썩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다른 방법을 생각했어. 그 중에 하나가 관동군 장교가 되는 거였어. 이 부분을 읽다 보니 다카기 마사오, 박정희가 생각나는구나. 그는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다가 그만두고 일본 관동군 장교가 되어 독립군을 잡는 일을 했었잖니. 조정래 선생님도 그걸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싶구나. 용화가 성공하는 두 번째 길은 법관이 되는 것이란다. 용화는 고민 끝에 법관에 도전하기로 마음을 먹었단다.

….

 

3.

일본이 무리수를 두었단다. 1941 12 8,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했어.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려도 너무 크게 건드린 것 같구나. 당시 공허스님의 아들 전동걸은 동경에서 유학 중이었어. 전동걸은 비밀리에 사회주의 활동을 했어. 그 사회주의 활동을 하면서 만난 일본인 여자 지요꼬가 동걸에게 호감을 가졌어. 동걸도 지요꼬가 싫은 건 아니지만, 조선인 유학생 이미화에게 마음이 가 있었거든.. 동경 유학생 중에는 송중원의 아들 송준혁도 있는데, 가정교사를 하면서 어렵게 공부하고 있었단다. 또 동경 유학생 중에 박용화도 있었단다. 학교 선생님을 그만두고 동경 법대에 합격하여 유학을 온 거야.

….

만오천석꾼으로 목표를 상향한 정상규에게 큰일이 벌어졌어. 둘째 아들 의현이 아버지의 돈을 가지고 도망을 간 거야. 공부를 더 하고 싶은데 상급 학교를 보내주지 않자 아버지 돈을 훔쳐 도망을 간 거지.

그런데 셋째 아들 동현은 한 수 더 떴단다. 형과 마찬가지로 더 이상 학교에 못 다니게 하자, 동현은 아버지의 논 문서를 훔쳐가서 헐값에 팔아 넘기고 도망가버린 거야. 이 일로 정상규는 충격을 받고 쓰러져서 한쪽 몸은 쓰지 못하고 마비가 되었단다. 그렇게 욕심을 부리더니 끝이 아주 깨끗하구나.

….

보름이의 둘째 금예는 홍씨네 머슴 배필룡과 결혼을 했단다. 배필룡은 성실하고, 돈도 많이 모았고 홍씨가 잘 챙겨주었단다. 금예가 처음에는 배필룡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지만, 배필룡의 진심을 알게 되고 성실함에 서로 사랑하게 되었어. 결혼한 지 한 달 밖에 안된 깨 쏟아지던 어느 날 배필룡은 2년간 강제 징용을 떠나야 했단다. 일본은 여기저기서 전쟁을 벌이고 있어서 인력과 군수품이 부족한 상태였어. 강제 징용과 징병을 시작했는데 배필룡이 그렇게 끌려가게 된 것이란다.

일본의 진주만 폭격 소식을 중경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도 들었단다. 임시정부는 일본군이 분산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다시 한번 반격할 기회라고 생각하여 한국광복군을 창설하였단다. 조선의용군을 이끌던 김원봉도 한국광복군 소식을 듣고 찾아와 합류했단다. 한국 광복군 창설 소식은 하와이까지 이어져 하와이에서도 지원하겠다는 이들이 있었어. 하지만 이 일로 부부싸움을 하지고 했다는구나. 남편은 아들을 한국광복군으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아내는 나라가 무엇 해준 것이 있냐면서 보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어. 많지는 않지만 여섯 명이 하와이에서 한국광복군으로 지원해서 왔단다. 그들이 숫자는 적을지 모르지만, 영어를 잘해서 통역관으로 큰 공을 세우기도 했대. 인도에 주둔한 영국군 동남아전구사령관과 상호군사협정 체결에도 큰 역할을 했다는구나.

중경 임시정부에 또 하나의 안 좋은 소식이 들려왔어. 우리나라가 해방을 하더라도 자체적인 독립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의한 신탁통치를 받는다는 소식이었어. 이 소식을 들은 임시정부 요원들은 신탁통치에 대한 결사반대 결의를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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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7-308)

만장하신 여러분, 오늘 우리는 비통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현하 세계정세는 독일과 일본을 적으로 하고 중국 영국 미국 불란서를 중심으로 연합국 사이에 대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여러분들도 너무나 잘 알고 계시는 주지의 사실입니다. 우리 대한민국 임시정부 또한 진작에 대일선전포고를 함과 동시에 우리 청장년들이 이 전쟁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것도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시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심히 유감스러운 설()이 들려 우리 조선인들을 분노케 하고 실망케 하고 있습니다. 그건 다름아닌 대한민국의 신탁통치설입니다. 그건 연합국 중의 두 나라 대표인 영국의 처칠 수상과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종전 후 처리문제 중의 중대사인 아세아와 아프리카 식민지국가들의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대한민국의 신탁통치란 무엇입니까! 일본이 패망하면 우리는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국가를 세우지 못하고 연합국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그건 우리 민족이 스스로 국가를 세울 능력도 없고, 국가를 운영할 지질도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강대국의 일방적인 횡포이며, 처칠과 루스벨트의 무지를 백일하에 드러내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재론할 여지도 없이 신탁통치란 우리나라를 또다시 식민지로 만들겠다는 음모이며, 우리 민족에 대한 모독인 동시에 조선인들의 자존심을 능멸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하여 석달 전인 지난 2월에 임정의 조소앙 외교부장께서 비판의 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족하지 않아 우리는 좌시할 수 없어서 오늘 이렇게 비판대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자리를 통하여 신탁통치의 부당성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신탁통치를 절대 거부하는 조선인들의 불굴의 결의를 만천하에 밝히고, 그리하여 처칠과 루스벨트가 자신들의 무지를 자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기탄없는 비판을 바라 마지않습니다. 이상으로 인사의 말씀을 갈음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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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아리랑> 11권의 이야기란다. 국내, 만주, 중앙아시아, 일본, 하와이 등으로 이야기가 왔다갔다해서 줄거리를 이야기해주는 것이 쉽지는 않구나. 이제 <아리랑> 한 권이 남았구나. 아프고 슬픈 역사를 되풀이 되지 말아야겠지만, 부끄러운 역사도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한단다. 현시점으로부터 지난 2년간 우리나라 정치와 경제는 퇴보를 해서 많은 사람들을 부끄럽게 했단다.  3년이 너무 길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요즘이다.

, 그럼 오늘은 이만.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있는 천산산맥은 언제나 신비스럽고 우람하고 장엄했다. 천산산맥은 몸피가 거대하면서 길이도 끝없이 길었다. 그리고 능선은 톱니 모양으로 이어져 나가며 험준한 산줄기를 이루어내고 있었다. 천산산맥은 하늘을 가르며 하늘에 닿아 있었다. 마치 하늘에 도전하고 하늘에 제압하려는 것처럼. 천산산맥은 사람이 오르는 것을 거부하는 것처럼 아득히 멀리 있으면서도 언제나 사람들을 위압하고 있었다. 천산산맥을 보고 압도강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고 경건한 마음을 갖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 장엄한 모습을 보는 순간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솟는 경탄의 소리와 함께 압도당했고, 계절의 변화를 아랑곳하지 않고 언제나 순백의 자태를 드리운 만년설을 보면서 신비스러운 경건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 P23

사람들은 숯 굽는 일의 생소함이나 고달픔 이전에 숯 굽는 일 자체에 혐오감을 나타냈다. 일본세상이 되면서 숯은 장작이나 솔가리나무를 압도할 정도로 번창했다. 다다미방에서 겨울나기를 하는 일본사람들은 방마다 숯불화로를 끼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산속 숯가마에서 숯쟁이로 먹고 사는 조선사람들도 많아졌고, 숯장사로 떼돈을 버는 일본사람들도 많아지면서 목탄조합이 생겨나기까지 했다. 그러나 짚불이나 솔가리불을 화로에 담아 쓰는 농부들로서는 숯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더구나 코밑은 물론이고 손이며 옷에도 숯검정을 하고 다니는 숯쟁이나 숯장수들을 농부들은 싸잡아 <숯쟁이>라고 부르며 천시했다. 그건 단순히 자기들에 비해 그들의 몰골이 지저분하고 더러워서 그러는 것만이 아니었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대대로 물려온 자부심을 은근히 품고 있는 농부들은 기껏 일본사람들한테 빌붙어 먹고 사는 숯쟁이나 숯장수들을 경멸하고 있었던 것이다. - P81

김원봉은 1938년 9월에 조선의용대를 창설했다. 조선의용대는 곧 중일 양국이 치열한 공방전이 벌이고 있는 무한 전선에 참전했다. 그러나 무한은 함락되었고, 조선의용대들은 중국군 부대에 배속되어 일본군에 대한 선전활동, 일본구 포로들의 신문, 일본군 점령지에서 첩보수집, 암살, 파괴활동 같은 것을 수행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중국군의 보조군 역할에 지나지 않았다. 중국군의 지휘를 받는 그런 역할에 불만을 품은 대원들은 독자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조선독립군으로 무장하기를 주장했다. 그러나 김원봉 앞에 닥친 현실은 냉엄했다.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자기네 군대의 운영에도 정신이 없는 중국정부에서는 조선독립군의 지원을 냉정하게 외면했다. 김원봉은 중국정부를 상대하는 현실과 대원들이 주장하는 이상 사이에서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결국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공산주의 간부들이 이탈하면서 김원봉의 세력은 그 어느 때 없이 약화되고 말았던 것이다.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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