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우리 몸은 거의 줄곧 다소 완벽하게 조화로운 방식으로 작동하는 37.2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우주이다. 두통, 배앓이, 별난 멍이나 뾰루지는 모두 우리가 불완전함을 선언하는 정상적인 과정들이다. 우리를 죽일 수 있는 것들은 수천 가지이다. 세계보건기구가 집대성한 국제 질병 사인 분류에 따르면, 8,000가지가 넘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 하나하나를 전부 피하다가 한 가지에 걸릴 뿐이다. 우리 대다수에게는 그리 나쁜 장사가 아니다.

(21)

인간 삶의 기적은 우리가 어떤 약점들을 타고난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에 매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신의 유전자는 심지어 거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에 인간도 아니었던 먼 조상들로부터 온 것임을 잊지 말기를, 그들 중에는 물고기도 있었다. 작고 털로 덮이고 굴속에서 살던 조상들도 많았다. 우리의 체제는 그들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우리는 30억 년에 걸친 진화적 비틀고 다듬기의 산물이다. 아예 새롭게 시작하여 우리 호모 사피엔스에게 필요한 것들을 갖춘 몸을 지닌다면 훨씬 더 나을 것이다. 무릎과 등이 망가지지 않은 채 서서 걷고, 목이 메어 캑캑거릴 위험 없이 음식을 삼키고, 자판기에서 뽑아내듯이 아기를 쑥쑥 낳는 몸을 갖춘다면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식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따뜻하고 얕은 바다에서 떠다니는 단세포 방울로서 기나긴 역사를 거치는 여행을 시작했다. 그 뒤로 일어난 모든 일들은 하나의 기나긴 흥미로운 사건이었지만, 꽤 영광스러운 사건이기도 했다.

(37)

우리 손가락 끝에 소용돌이무늬를 만들게 한 진화적 명령이 무엇이었을까? 아무도 모른다. 우리 몸은 수수께끼로 가득한 우주이다. 몸의 안팎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에는 우리가 그 이유를 알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분명히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일어나는 일도 아주 많을 것이다. 어쨌거나 진화는 우연한 과정이니까. 지문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개념은 사실은 하나의 가정이다. 당신과 지문이 일치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그 누구도 절대적으로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정확히 똑 같은 두 개의 지문을 발견한 사람이 아직까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43)

피부에서 자주 일어나지만, 왜 일어나는지 이유를 제대로 모를 때가 많은 또 한 가지가 바로 가려움이다. 모기에게 물렸거나 뾰루지가 났거나 쐐기풀에 찔려서라는 식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가려움도 아주 많지만, 원인을 설명할 수 없는 가려움도 아주 많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독자는 조금 전까지도 전혀 가렵지 않았던 이곳저곳을 긁고 싶은 충동을 느낄 수도 있다. 그냥 내가 가려움이라는 말을 꺼내서이다. 우리가 가려움 쪽으로 왜 그렇게 암시에 쉽게 넘어가는지, 아니 뚜렷한 자극 요인이 전혀 없음에도 왜 가려움을 느끼는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뇌에서 가려움을 전담하는 영역은 따로 없으므로, 가려움을 신경학적으로 연구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76)

뇌의 크나큰 역설은 우리가 세계에 관해 아는 모든 것이 그 자체로는 결코 세계를 본 적도 없는 기관을 통해서 우리에게 제공된다는 점이다. 뇌는 지하 감옥에 갇힌 죄수처럼 소리도 빛도 없는 곳에 있다. 통증 수용기도 전혀 없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따뜻한 햇볕도 부드러운 바람도 결코 느끼지 못한다. 우리 뇌에는 세계가 그저 모스 부호를 두드리는 것 같은 전기 펄스의 흐름일 뿐이다. 뇌는 당신을 위해서 이 밋밋하고 중립적인 정보로부터 활기차고, 삼차원이고, 감각적인 우주를 만든다. 말 그대로 창조한다. 당신의 뇌가 바로 당신이다. 그밖의 모든 것은 그저 배관과 비계(飛階)일 뿐이다.

(116)

더욱 비정상인 부위는 코이다. 포유동물은 대개 둥그스름하게 튀어나온 코가 아니라, 주둥이가 달려 있다. 하버드 인류진화생물학과 교수 대니얼 리버먼은 인간의 코와 그 안의 복잡한 굴이 호흡 효율을 높이고, 오래 달릴 때 과열되는 것을 방지하는 데에 도움을 주려고 진화했다고 본다. 이 배치는 분명히 우리에게 딱 맞는다. 인류와 그 조상들은 약 200만 년 동안 튀어나온 코를 가지고 있었다.

(157)

한마디로 목젖은 신기한 부위이다. 우리 몸에서 가장 커다란 입구, 지나면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입구의 한가운데에 떡하니 자리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정말로 이상하게도 하는 일이 없어 보인다. 우리가 목젖을 잃을 일이 거의 없을 것이 분명하며, 설령 잃는다고 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기이하게도 이중으로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다.

(178)

적혈구는 수명이 약 4개월이다. 쉴 새 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바쁘게 일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제법 길다. 그 기간에 몸을 약 15만 번, 수백 킬로미터를 돌 것이다. 이윽고 너덜너덜해지면 청소 세포(scavenger cell)가 수거하여 지라로 보낸다. 지라는 매일 약 1,000억 개의 적혈구를 폐기한다. 분해된 적혈구는 대변을 갈색으로 만드는 주된 요소이다.(같은 과정의 부산물인 빌리루빈은 소변을 노랗게 만들며, 멍히 사라질 때 노랗게 변하는 것도 빌리루빈 때문이다.)

(200)

뇌하수체는 종종 으뜸샘(master gland)이라고 불린다. 아주 많은 것들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뇌하수체는 성장 호르몬, 코르티솔, 에스트로겐, 테스토스테론, 옥시토신, 아드레날린 등 많은 호르몬을 생산하거나 그 생산을 조절한다. 운동을 격렬하게 하면, 뇌하수체는 엔도르핀을 혈액으로 분출한다. 엔드로핀은 먹거나 섹스를 할 때에 분비되는 바로 그 화학물질이다. 엔도르핀은 아편제와 아주 비슷하다. 오랜 달릴 때면 느끼는 쾌감인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도 이 물질 때문에 나타난다. 우리 삶에서 뇌하수체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이지만, 우리가 그 기능을 대강이라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에 들어서도 한참 지나서였다.

(254)

운동이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점은 명백하지만, 어떻게 도움을 주는지는 말하기 어렵다. 덴마크에서 달리기를 하는 사람 18,000명을 조사한 연구자들은 규칙적으로 달리는 사람이 달리기를 하지 않는 사람보다 기대수명이 5-6년 더 길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그런데 과연 그 혜택이 진정으로 달리기 덕분일까? 아니면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아무튼 더 건강하고 절제하는 삶을 사는 경향이 있어서, 땀을 흘리며 뛰든 말든 간데 더 게으른 사람들보다 결과가 더 낫게 나온 것일 것?

(304)

문제는 당시의 흡연자의 비율이 엄청나게 높았지만-1940년대 말에는 미국 성인 남성의 80퍼센트가 피워댔다-폐암에 걸리는 사람은 그중 일부에 불과하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비흡연자들 중에서도 폐암에 걸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따라서 흡연과 폐암 사이에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는 것이 아주 명확해 보였다고는 할 수 없었다. 무엇인가를 하는 사람이 아주 많은데 그중 일부만 죽는다면, 그 죽음을 한 가지 원인 탓으로 돌리기가 어렵다. 폐암의 증가가 공기 오염 때문이고 본 전문가들도 있었다. 도로 포장용 아스팔트의 사용 증가가 원인이라고 생각한 이들도 있었다.

(307-8)

딸국질은 가로막이 갑작스럽게 경련하면서 수축하는 현상이다. 그럴 때 후두가 놀라서 갑자기 닫히면서 딸꾹 하는 소리가 난다. 딸꾹질이 왜 일어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딸꾹질 세계 기록은 아이오와 주 북서부에 살던 찰스 오스본이라는 농민이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는 67년 동안 계속 딸꾹질을 했다. 딸꾹질은 1922년 오스본이 도살하기 위해서 무게가 130킬로그램인 돼지를 들어올리려고 할 때 시작되었다. 무엇인가 딸꾹질 반응을 촉발했다. 처음에는 1분에 약 40분이나 딸꾹질이 나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1분에 20번까지 줄어들었다. 그는 거의 70년 동안 약 43,000만 번 딸꾹질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90년 여름, 갑자기 수수께끼처럼 딸꾹질이 멎었고, 그는 다음해에 세상을 떠났다.

(356)

모든 동물은 잠을 자는 듯하다. 선충과 초파리 같은 아주 단순한 동물들조차도 꼼짝하지 않는 시간이 있다. 필요한 수면 시간은 동물에 따라 크게 다르다. 코끼리와 말은 하루에 두세 시간만 잔다. 그들이 왜 그렇게 조금 자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른 대부분의 포유동물은 훨씬 더 많이 잔다. 포유동물 중 수면 챔피언이라고 여겨지는 동물은 세발가락나무늘보로서, 하루에 20시간까지도 잔다고 한다. 그러나 그 수면 시간은 포획된 개체들을 연구한 결과이다. 즉 주변에 포식자가 없고 달리 할 일도 없는 개체들이었다. 야생 나무늘보는 하루에 10시간 남짓 잔다. 즉 우리보다 엄청나게 더 많이 자는 것은 아니다. 특이하게도 몇몇 조류와 해양 포유류는 한 번에 뇌의 절반씩만 잘 수 있어서 반쪽이 쿨쿨 자는 동안 다른 반쪽은 깨어 있다.

(370-1)

우리가 하품을 왜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태아도 엄마 뱃속에서 하품을 한다. (딸꾹질도 한다.) 혼수상태인 사람도 하품을 한다. 하품은 우리의 삶에서 아주 흔하게 접하는 것이지만, 하품이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몸에 지나치게 많이 쌓인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일과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 나와 있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 그렇게 한다는 것인지를 설명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더 차가운 공기를 머리로 집어넣어서 졸음을 조금이라도 쫓는 역할을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나는 하품을 하고 나면 머리가 맑아지고 기운이 샘솟는다고 말하는 사람을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지금까지 그 어떤 연구도 하품과 활력 사이에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 적이 없다. 심지어 하품이 피로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도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사실 하품을 가장 많이 하는 시간은 밤에 잠을 푹 자고 일어났을 때의 처음 2분 동안이다. 가장 푹 쉬었을 때 말이다.

(481)

이런 건강의 차이는 태어날 때부터 모든 연령대에 걸쳐서 나타난다. 미국에서 태어나는 아이는 세계의 다른 부유한 국가들에서 태어나는 아이보다 유년기에 사망할 확률이 70퍼센트 더 높다. 부유한 국가들 중에서 미국은 의학적 건강의 거의 모든 척도에서 최저 수준이거나 그 근처에 놓인다. 만성 질환, 우울증, 약물 남용, 살인, 십대 임신, HIV 감영 면에서도 그렇다. 낭성섬유증 환자도 미국보다 캐나다에서 평균 10년을 더 오래 산다. 아마 가장 놀라운 점은 이 모든 불행한 결과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는 가난한 시민들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일 것이다. 대학 교육을 받은 부유한 백인 미국인들도 다른 나라들의 비슷한 사외, 경제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 비해서 열악한 양상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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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그의 첫아들이 트리어에서 1818 5 5일에 태어났다. 이 아이는 할례도 받지 않았고, 루터교 의식에 맞추어 세례를 받지도 않았다. 마치 도발이라도 하듯 유대인 전통에 따라 자기 아버지의 이름과 트리어의 제사장이었던 할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마르크스 하인리히 모르데차이라고 이름 지었다. 카를 마르크스가 태어난 것이다. 바로 그해에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부터의 세계>, 메리 셀리가 <프랑켄슈타인>을 출간했는데, 이 두 책은 25년 후 젊은 마르크스에게 깊은 인상을 주게 된다.


(59)

마르크스는 자기 책과 서류 들을 아무도 정리하지 못하게 했다. 겉보기에는 무질서했지만 실상은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으며, 그는 자기가 필요로 하는 책이나 공책을 언제나 힘들이지 않고 찾아냈다. 대화를 하는 가운데도 그는 종종 자기가 막 인용한 글귀나 숫자를 책에서 찾아 보여주려고 말을 멈추곤 했다. 그는 자기 작업실과 일체를 이루었고, 책과 서류는 마치 그의 몸의 일부인 것처럼 복종했다.”


(119)

그러니까 파리는 제네바, 브뤼셀, 런던과 더불어 중부 유럽 전체, 특히 독일에서 물밀듯이 밀려오는 망명객들의 피난처였다. 망명객들은 정치적인 검열이나 경찰의 박해를 피해 파리로 온 사람들이었다. 그중에는 재단사 빌헬름 바이틀링처럼 스위스를 거쳐 파리로 온 은행가의 아들인 루트비히 베르나이스와 요제프 바이데마이어가 있었고, 당시 유명한 독일 시인이었던 게오르크 헤르베그처럼 프로이센에서 직접 온 사람도 있었다.


(128)

마르크스는 머리말을 썼다.

사고하며 고통받고 있는 인류와 핍박당하며 사고하는 인류는 사고할 줄 모르고 소극적으로 즐기기만 하는 속물들의 동물적 세계에서는 당연히 참을 수 없고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가 될 것이다. 그리고 사고하는 인류로 하여금 일련의 사건을 통해 의식을 갖게 하고 고통받는 인류와 결합할 수 있게 할수록, 자기 뱃속에 품고 있는 결실은 더욱 완벽하게 태어날 것이다.”


(142)

그의 노동은 분리되고, 바깥에 존재하며, 그와 독립하여 낯선 존재가 되며, 하나의 자율적인 힘으로 그에 맞선다. 그가 사물에 투여한 생명은 그에게 맞서며, 적대적이고 낯설게 된다. 노동은 고단함이며, 그의 정신을 황폐화게 만들고 몸에 상해를 입히는 고통이며, 그의 활동은 고뇌처럼 보이고, 그의 생활은 인생의 희생처럼 여겨진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모든 노동은 고통이라고 생각했다.


(146)

공산주의란 인간 스스로 인간의 본성을 실질적으로 획득하는 것이고, 그것은 사적소유의 폐지와 모든 의미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이며, 이러한 의미가 인간적이라는 바로 그 이유로 공산주의는 해방이다…… 이로써 필요나 사용권은 이기적인 성격을 버리고, 자연은 그 순수한 유용성을 버린다. 그 유용성은 인간적인 유용성이 되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소외된 노동자는 인간에게 유익한 것을 만들면서 노동 속에서 즐거움을 찾고, 스스로 완전히 인간적이 된다.


(152-3)

훨씬 뒤에 엥겔스는 그들의 만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내가 1844년 여름 파리에 있는 마르크스를 방문했을 때 우리는 모든 이론 분야에서 서로 완벽하게 의견이 일치한 것을 확인했고, 그래서 우리의 협력은 시작되었다. 마르크스는 나와 같은 견해에 도달했을 뿐만 아니라, 그 견해를 <프랑스-독일 연보>를 통해 유포했다. 요컨대 부르주아 사회를 조종하고 지배하는 것이 국가가 아니라 국가를 조종하고 지배하는 것이 부르주아 사회라는 견해였다. 경제적인 조건과 그것의 발전에서 출발해 정치와 경제의 역사를 설명해야지, 그 반대로 해서는 안 된다.”


(196)

마르크스는 엥겔스가 전년도에 나열한 열두 조항을 열 조항으로 압축하고, 역사적 유물론에 관하여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설명을 시도했다. 또한 프롤레타리아가 빈곤화로 내몰린 계층, 당시 사람들의 표현대로 하자면 근본적으로 환상이 없는 계층으로 나타나 있는 최초의 글이 바로 <공산당 선언>이었다. 나이는 서른이 채 안 되었고,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았으며 브뤼셀에 망명해 사는 젊은 독일 철학자가 쓴 이 글은 비종교적인 글 가운데 오늘날까지 가장 많이 유포된 글이다.


(261)

엥겔스 추종자들이 후에 두 사람을 동등한 반열에 올려 놓으려 애썼지만 엥겔스는 자신이 마르크스 천재적인 지적 능력을 타고나지 못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엥겔스가 그토록 싫어한 공장의 사장 역할을 떠맡기 위해 런던을 떠나면서 포기한 것 중에는 저자가 되는 것도 포함되었다. 요컨대 엥겔스의 결단은 자기가 알고 있는 한 유일한 저자인 마르크스에게 돈을 대주기 위해서였다. 자본주의의 요새에서 트로이 목마가 된 엥겔스는 마르크스에게 자신의 이론적 연구에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마르크스와 함께 토론하기 위해 빈번히 런던에 왔다. 두 사람은 그때부터 거의 매일 편지를 교환했고, 그것은 20년 간 지속되었다. 사상사에서 그와 같은 희생의 예는 찾아보기 어렵고 이후로도 없을 것이다. 엥겔스는 마르크스 때문에 아무리 힘든 처지에 놓여도 그는 결코 마르크스를 문제 삼은 적이 없었다.


(275-6)

현대사회의 계급의 존재나 그들 간의 투쟁을 발견한 공로는 나에게 있지 않다. 나 이전에 오래전부터 부르주아 역사가들이 계급투쟁의 역사적 발전을 언급했고,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그것에 관한 경제적인 분석을 행하였다. 내가 새로 한 것이라고는 첫째, 계급의 존재는 생산의 일정한 역사적 발전 국면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 둘째, 계급투쟁은 필연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이어진다는 것, 셋째, 그 독재 자체도 모든 계급의 폐지와 계급 없는 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형성한다는 것 등을 논증한 것에 불과하다.


(345)

그 보잘것없는 원고가 끝이 났네. 하지만 보내지를 못했네. 우송을 하고 보험을 들 파딩(1961년에 폐지된 영국 화폐로서 4분의 1 페니에 해당했다-옮긴이)이 없기 때문이지. 그런데 보험은 꼭 들어야 하네. 왜냐하면 다른 복사본이 없거든. 그러니 월요일까지 약간의 돈을 보내주었으면 하네. 부탁하네.”

그러고 나서 그는 후에 아주 유명해진 다음 문장을 냉랭하게 덧붙였다.

이렇게까지 돈이 없으면서도 돈에 대해 글을 쓴 사람은 결코 없을 것이네! 돈에 관해 쓴 작가들 대부분은 자기들의 연구 주제와 사이좋게 살았지.”


(411)

런던에서는 마르크스의 이중 생활이 계속됐다. 낮에는 공식적으로 인터내셔널의 독일 통신 서기장으로, 유럽 전역의 수십만 노동자와 피고용인, 지식인을 곧 집결시키게 될 정치조직의 실질적인 우두머리로 활동했다. 밤에는 20년 전에 시작해서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한 시론>이라는 제목으로 아직 1장밖에 출간하지 못한 대작을 집필했다. 그는 <자본론>으로 명명할 이 책을 통해 자본주의를 무너뜨리는 데 공헌할 생각이다.


(418-9)

좋아하는 미덕은? 단순성. 남자에게서 좋아하는 미덕은? . 여자에게서는? 약함. 당신의 주요한 특징은? 고집. 당신이 좋아하는 일은? 나네트를 바라보는 것. 당신이 가장 혐오하는 결점은? 굴종. 당신이 가장 쉽게 용서하는 결점은? 속기 쉬움. 당신이 생각하는 행복은? 투쟁하는 것. 당신이 생각하는 불행은? 굴복하는 것. 당신이 좋아하는 시인은? 아이스킬로스와 셰익스피어. 당신이 좋아하는 산문 작가는? 디드로. 당신이 좋아하는 경구는? 인간적인 것은 그 어느 것도 나와 무관하지 않다. 당신의 좌우명은? 모든 것에 대해 의심할 것. 당신이 좋아하는 색깔은? 빨강. 당신이 좋아하는 이름은? 예니와 라우라.”


(513)

마르크스는 목표에 도달한 듯 싶었다. 그때 그의 나이 54세였다. 유럽에서는 아직도 코뮌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을 때 마르크스는 갑자기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언론에 의해 절대 권력자로 여겨지면서 그는 유일한 다국적 정치조직의 정상에 자리했고, 그의 이름을 내세운 정당과 비밀집단이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미국, 러시아에서 생겨났다. 코뮌의 마지막 무렵에 쓴 그의 마지막 <인터네셔널에 보내는 담화>는 서방의 모든 언론이 언급했고, 전 세계의 기자들이 그와 인터뷰하려고 몰려들었다. 독일의 수십만 노동자들과 학생들이 읽은 <공산당 선언>은 이제 프랑스어, 러시아어, 영어로 번역되었고,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 <자본론>도 마찬가지였다.


(538)

함부르크의 출판사에서 개정판 제1권이 출간되었을 때, 마르크스는 자기보다 아홉 살이 많은 다윈에게 한 부를 보냈다. 다윈은 <인간과 동물의 감정표현>이라는 책을 막 출간한 터였다. 마르크스는 다윈에게 보내는 증정본에다 충심의 숭배자라고 표현한 헌정사를 써 넣었다. 다윈은 자신은 그 책을 읽을 만한 능력이 없지만 책을 고맙게 받겠노라는 정중한 편지를 보내왔다. 다윈에게 보낸 마르크스의 책은 104페이지까지만(전체 804페이지) 페이퍼 나이프로 잘려 있는 것이 나중에 밝혀졌다. 다윈은 마르크스가 352, 385, 386페이지에서 제 차례 언급한 자신의 저서에 관한 부분은 보지 못한 것이다.


(559)

이상한 인연이다. 이 시기에 마르크스는 리사가레의 책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일을 끝마쳤다. 이 책의 번역자로 제의를 받은 사람들은 모두 거부하고는 자신이 직접 번역한 것이다. 그는 딸이 좋아하고, 그녀를 충심으로 사랑하는 듯이 보이는 그 남자와 딸이 결혼할 수도 있다고 체념했다. 하지만 예니는 그 프랑스 남자에 대한 생각을 절대로 바꾸려 하지 않았다. 마르크스와 예니는 의견이 서로 다른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이 문제로 부딪치곤 했다.


(568-9)

독일에 실망한 마르크스에게 러시아는 일정의 집착, 또는 새 희망의 초점이 되었다. 그는 자주 러시아의 민중주의자들과 토론을 벌였다. 그의 책을 번역한 니콜라이 프란체비치 다니엘손과 구에르만 알렉산드로비치 로파틴, 그리고 표트르 라브로비치 라브로프가 그의 상태였다 .니콜라이 콘스탄티티노비치 미하일로프스크와 베라 자술리치 같은 아주 극단적인 혁명가들도 마르크스의 자문을 구하러 왔다. 자술리치는 경찰청장인 트레프포 장군을 암살했는데 러시아에서 방면되어 영국에 와 있었다.


(583-4)

몇몇 친지들이 예니를 묘지까지 동반했다. 엥겔스가 추도사를 했다. 라우라와 엘레아노르, 예니헨과 샤를롱게 등과 함께 있던 라파르그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독일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랐음에도 그녀의 평등의식은 그 누구보다 철저했다. 그녀에게 사회적인 차이와 구분은 존재하지 않았다. 자기 집과 식탁에 노동복 차림의 노동자들을 맞이할 때면, 왕족에게 대할 때와 똑 같은 예의와 배려를 보이며 맞이했다. …… 그녀는 마르크스를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렸고, 극도로 헐벗은 날들에도 자신이 선택한 것을 결코 후회한 적이 없었다.”


(592-3)

314일 오후 3 15, 살아 있는 가장 위대한 사상가가 생각을 멈추었습니다. 그를 혼자 둔 것은 겨우 10분이었는데, 돌아와보니 그는 잠들어 있었습니다. 자신의 안락의자에서 마지막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의 죽음은 유럽과 미국 프롤레타리아의 투사들을 위해, 그리고 역사과학을 위해 측량할 길 없는 손실입니다. 우리는 이 위대한 정신이 떠나면서 남긴 공백을 곧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다윈이 자연 발달에 관한 법칙을 발견한 것과 마찬가지로, 마르크스는 인간 발달에 관한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 게다가 마르크스는 현재의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움직임과 그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부르주아 사회를 이끄는 법칙도 발견했습니다. …… 이 두 발견만으로도 한 사람의 인생으로서는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 둘 중 하나만 이룩한 사람일지라도 행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모든 영역들을 아주 많이 연구했고, 그 모든 영역들 중에서 피상적으로 연구된 것은 하나도 없으며, 하다못해 수학에 대해서까지 그는 발견의 업적을 이룩했습니다. 그는 과학자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이룬 업적의 반도 되지 않습니다. 과학은 역사의 원동력, 혁명의 힘이었습니다. 힘들게 예측한 결과를 담은 이론적 법칙을 발견하는 기쁨을 넘어서서 그는 산업에서의 혁명적 변화의 주역이기도 했습니다. …… 왜냐하면 그는 우선 무엇보다도 혁명가였기 때문입니다. 그의 필생의 사명은 자본주의 사회와 그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모든 국가 제도를 무너뜨려서, 현대 프롤레타리아를 해방시키는 일에 헌신하는 것이었습니다. 프롤레타리아가 해방될 수 있는 조건을 처음으로 정의 내린 사람은 마르크스였습니다. 투쟁은 그의 기본 요소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열정적으로, 끈질기게, 필적할 만한 상대가 없는 성공을 거두며 투쟁했습니다. …… 마르크스는 당대에 가장 미움받고 모략을 가장 많이 당한 사람이었습니다. 절대주의 정부들도 공화주의 정부들도 그를 유배시켰습니다. 부르주아들, 보수주의자들 또한 민주주의들이 모두 그에 대항하려고 단합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극단적으로 필요한 경우가 아닌 한,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는 시베리아 광산부터 캘리포니아에 이르기까지, 유럽에서 미국에서 수백만 혁명 동지들이 사랑하고 존경하고 눈물 흘리는 가운데 죽었습니다. 그에게 많은 반대파가 있기는 했어도 개인적인 적은 없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그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영원히 길이길이 남을 것입니다.


(608)

마르크스가 구상하고 구축한 인생은 자기를 열정적으로 만드는 활동과 초조하게 만드는 글쓰기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팡질팡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이론을 투쟁의 도구로 만들었다. 그이 정치경제학은 헐벗은 자들, 핍박당하는 자들, 모욕당하는 자들의 항거 도구로 쓰였다. 그는 정신의 힘을 믿는 유물론자였으며, 경제는 역사의 기반이며 행동이 이론보다 먼저라고 생각하는 철학자였다. 그리고 인간을 신뢰하는 비관론자였다. 곧 다른 사람들이 그의 이론을 왜곡해 태도를 흉내 내려 애쓰면서 이론을 실행에 옮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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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아시다시피 <공산당 선언>은 평생의 혁명 동지였던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함께 쓴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정치 팸플릿입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참가한 <공산주의자 동맹> 조직의 출범 선언문으로 1848 2월에 발표되었습니다. 19세기에 등장해 20세기 내내 전 세계를 뒤흔들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불씨가 꺼지지 않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공산주의 운동의 사상적 배경이 매우 잘 요약되어 있지요. 공산주의에 대한 선호와는 별개로, 왜 공산주의 운동이 탄생했으며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꼭 읽어야 할 필독서입니다.

(33)

현대 부르주아(자본가) 계급은 갑자기 하늘에서 툭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아오른 것이 아닙니다. 서양 중세 사회 내부에서 상공업의 씨앗이 태동(“봉건사회 내부의 혁명적 요소”)해 발전해나가는 긴 과정의 산물입니다. 소비재의 생산에 증기기관과 기계가 도입되고, 아메리카의 발견’(적절한 단어는 아닙니다만)으로 세계시장이 형성되며, 새로운 동력원을 이용한 철도 및 증기선의 등장으로 운송 비용이 극적으로 줄어들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세력이 바로 상공업자들인 부르주아 계급니다.

(45)

중세 시대를 그리워하는 반동주의자는 모든 것을 돈으로만 따지는 자본주의에 염증을 느끼며 중세 시절 기사들의 무용담이나 전쟁 이야기를 동경했겠지요. 그런데 기사와 귀족이 무용담을 떨치고 전쟁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농노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농노를 착취해 생계를 해결하면서 나태하고 게으르게살 수 있었기 때문에, 전쟁을 벌이고 무용담을 떨칠 수 있었던 것이지요. 부르주아 계급은 기존 봉건사회의 노골적인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무너뜨렸습니다. 모든 봉건적 권위를 파괴한 것이지요. 그리고 모든 인간 관계를 순수한 금전 관계로 바꾸었습니다.

(71)

앞서 봉건사회가 자본주의사회로 이행하게 된 과정을 새로운 생산력과 낡은 생산관계 사이의 모순과 갈등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곧바로 우리 눈앞에 동일한 모순과 갈등(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 일어나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자본주의사회 내부에서도 새로운 생산력과 낡은 생산관계의 모순과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자본주의사회 내부에서 다른 사회로의 변화 가능성을 포착한 것이지요.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공황입니다.

(79)

한편,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인건비 이상을 벌 수 있을 때만, 그래서 자신이 보유한 자본을 증식시킬 수 있는 상황에서만 노동자를 고용합니다. 노동자는 예전의 노예처럼 자신의 몸 전체가 예속되지는 않지만 하루 24시간 중 일부(“한 조각씩”)를 자본가에게 판매합니다. 이렇듯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노동자 역시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일 뿐이며, 결국 노동력의 판매 여부(고용 여부)는 전적으로 시장의 상황 변화에 달려 있습니다.

(109)

의무교육의 도입은 부르주아 계급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필요한 조치였습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복잡한 기계장치로 가득 찬 공장에 모여서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한 치의 오차 없이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문자 해동 능력 및 업무 지시를 이해할 수 있는 공통 지식이 요구되었기 때문이지요. 이것을 국가적 차원에서 준비하고 지원하는 것이 바로 의무교육입니다. 하지만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획득한 지식과 교양을 활용해 부르주아 계급에 맞설 무기를 만들어냅니다. 부르주아가 가르쳐준 글자로 부르주아를 비판하는 책과 유인물을 쓰고 함께 읽습니다. 부르주아가 가르쳐준 과학과 합리성을 응용하여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197)

좀 맥락이 다른 예기이지만, 러시아나 동유럽에 존재했던 현실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추구했던 모습과 다르게 변질되었으므로 그 체제는 엄밀하게 보았을 때 사회주의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진정한 사회주의는 아직 지구에서 구현된 적이 없다는 이야기일 텐데요. 아마도 현실 사회주의를 가짜 사회주의로 비판하면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진짜 사회주의를 방어하고 옹호하려는 의도 같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진짜와 가짜를 딱 잘라 구분할 수 있는 단순한 문제일까요? 안타깝지만 현실은 언제나 복잡합니다.

(217)

하지만 여전히 자본가 계급에게 권력의 추가 크게 기울어 있으며 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들의 힘이 상대적으로 미약한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몇몇 복지국가를 제외한 대다수의 나라에서 공공 부문에 비해 시장의 영향력이 여전히 큽니다. 1 1표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1만원 1표의 냉혹한 시장에서는 거대한 부를 지닌 자본가가 유리할 수밖에 없지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을 쓰던 시절에 비해 사회가 진일보한 것은 명백하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멉니다.

(309)

부연하자면 사회민주주의와 사회주의(혹은 공산주의)와의 차이도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합니다. 사회민주주의는 자본가 계급에게서 세금을 걷어 서민들을 위한 복지 재원으로 사용하는 정책을 추진합니다. 일종의 부의 재분배 정책이지요. 하지만 사회민주주의는 바로 그 지점이 최종 목표지입니다. 사회주의(혹은 공산주의)는 단순히 조세 정책을 통한 부의 재분배만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생산수단에 대한 사회적 소유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개혁(혁명)을 추동합니다. 이를 프롤레타리아 계급 스스로의 힘으로 실현하려는 것이지요. , 사회민주주의와는 최종목표가 다른 것입니다.

(310)

공산주의자들은 자신의 견해와 의도를 감추는 것을 경멸한다. 그들은 자신의 목적이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질서를 폭력적으로 전복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천명한다. 지배계급들을 공산주의 혁명 앞에서 벌벌 떨게 하라.프롤레타리아가 공산주의 혁명으로 잃을 것이라고는 쇠사슬뿐이다. 그들에게 얻어야 할 세계가 있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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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미국과 영국에서 1990년대 말 이후 꾸준히 성장해온 이른바 현대화폐이론(MMT) 학파는 이러한 사고방식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화폐와 국가재정의 본질에 대한 독일 역사학파와 미국 제도주의 학파의 접근의 전통 위에 서서, 자국 화폐를 발행하는 주권국가라면 그 세금징수 능력 이외에는 재정지출에 재한을 가해야 할 아무런 제약조건 따위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균형재정론이란 이제 없어져야 할 미신에 불과하며, 오히려 민간부문의 경제를 위축시키고 심지어 파산에 이르게 하는 위험한 정책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재정의 운용은 매년 균형재정을 달성한다는 족쇄에서 풀려나 경기순환의 심한 등락과 그것이 경제와 사회에 가져오는 충격을 완화하는 것에 가장 우선적인 목표를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17)

가계에서는 부채가 부채일 뿐이다. 가급적이면 줄일수록 좋고 결코 방만하게 늘려서는 안된다. 하지만 국가는 영원토록 그 국민들로부터 세금을 징수하는 영속 기업이며, 국가의 부채란 발행할 때에 비로소 본원통화를 위시한 각종의 금융자산이 생겨나고 금융시스템 전체가 작동하게 된다. 따라서 국가가 부채를 발행하지 않으면 본원통화도 줄어들고 민간의 금융자산도 줄어드는 일이 벌어진다는 전혀 뜻밖의 결과가 나오게 된다.


(25)

예를 들면, 지금 한국에서 행해지는 조치들이 민주적 모델이라고 봅니다. 한국은 선거로 집권한 정부가 긴급사태 권한을 행사하지 않고도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 정확한 진단검사, 사회적 거리두기, 격리, 감영자 동선 추적 등등이 그러한 조치들이죠. 그것들은 이 순간 꼭 실행하지 않으면 안되는 필수적인 조치들입니다. 우리에게는 다른 무기는 없습니다. 현재로서는 백신도, 치료제도 없으니까요. 나는 지금 우리가 위기에 대응하려면 독재자가 필요하다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8)

지구화 시대인 우리 사회가 반영하고 있는 또하나의 취약성, 그것은 범지구적인 불평등입니다. 미국과 같은 부유한 나라에서도 이 질병은 누구든 감염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불균형적으로 가장 잘 감염됩니다. 지구화 시대인 우리 시대에는 가장 약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세계 도처의 모든 사람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그게 우리가 코로나바이러스라는 거울에서 보는 우리 모습입니다만, 별로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죠.


(64~5)

미국 질병통제예방 센터(CDC) 2019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 태어난 흑인 아기의 기대수명은 같은 해에 태어난 백인 아기의 기대수명보다 3.5년 짧다. 만약 현재 수준의 인종적 불평등이 지속된다면, 이 흑인 아기는 백인 아기에 비해 가난하게 살 가능성이 약 2.5,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기 전에 학교를 그만둘 가능성이 약 2, 감옥에 갈 확률이 백인보다 6배 이상 높을 것으로 예측됐다.


(117)

스마트폰 한 개에는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트랜지스터가 수백만 개 들어 있다. 순도 98%의 야금학적 등급의 실리콘을 얻기 위해 우선 석영, 순수한 탄소, 천천히 타는 목재가 약 1,600 ℃로 유지되는 용광로로 이송된단다. 그렇게 만들어진 야금학적 등급의 실리콘은 증착(蒸着) 공정을 위해 다시 약 1,000 ℃로 유지되는 정제공장으로 운송된다. 1ppb 불순도의 전자 등급 실리콘을 만들어내자면 여기서 또 에너지 집약적인 과정을 몇 단계 더 거쳐야 한다.


(128~9)

코로나19 사태는 자연을 외면하고 생태계와 절연한 인간의 삶이 빚어낸 예고된 참사이다. 지구생태계의 유기체적 구성원임을 부정하고 끊임없이 자연과 불화한 결과다. 근대 이후 인간은 개발과 성장이란 미명 아래 자연을 학살하고 자원을 약탈하는 야만을 일상화했다. 인간의 기계론적 세계관은 자연과 교감하고 공존할 수 있는 영성과 감성, 치유력이나 면역력까지 앗아갔다. 자연과의 유기적 관계가 깨진 상태에서 자연의 일부인 바이러스와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결과이다. 코로나 사태를 극복하고 인류의 지속적인 생존을 위해서 백신과 치료제도 필요하겠지만, 그보다는 생태계의 일원으로 돌아가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무차별적인 개발로 만신창이가 된 지구생태계를 온몸으로 감싸 안으며 소생을 돕고, 더는 훼손하거나 고갈시키지 않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다. 그런 점에서 코로나19 사태는 기후위기에 맞닿아 있다.


(153)

그러니까 기독교의 이름으로 사이비가 창궐하는 것은, 이러한 기독교의 자체의 비논리성에 주요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그 비논리성이 바로 기독교의 위대함의 원천이라고 할 수도 있다. 예컨대, 구원을 받기 위해서 우리가 굳이 좋은 일을 하고 착한 사람이 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아니 뭔가 공적을 쌓아서 구원을 받겠다는 생각 자체가 죄악이다, 구원의 길은 은총에 있다, 라는 독실한 기독교 신앙인과 사상가들의 한결 같은 메시지도 결국 그 비논리성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일을 하고 착한 인간이 되겠다는 생각 자체가 이미 자기애라는 관념의 씨앗에서 발아한 생각임은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그렇게 본다면, ‘은총이라는 것은 가장 근원적인 자유와 인간해방을 겨냥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156)

역병이 예기치 못한 사태를 촉발시킨 사례 중 이주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1차 세계대전 종결 때 이야기. 당시 연합국 수뇌들 사이에 독일의 전쟁책임을 둘러싸고 의견 대립이 있었는데,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은 독일에 대해 과도한 배상금을 부과하는데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는 회담 기간 중에 스페인 독감에 걸렸고, 그 바람에 기력이 쇠잔해져서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지 못하고 양보해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독일은 엄청난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고, 그 때문에 국가경제가 완전히 붕괴하고 미증유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초래하면서 마침내 히틀러가 등장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졌다그러니까 극악한 만행을 저지른 나치즘의 출현의 배경에 스페인독감이라는 역병이 있었다는, 기막힌 이야기다.


(160)

최근에 세계적인 지적 총아로 등극한 유발 하라리, 이 젊은이는 공부를 얼마나 했는지 모르지만, 마치 세계의 미래에 관해서는 자기가 자장 잘 안다는 듯이 예언자행세를 거침없이 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지배할 세계에 대한 경고를 그런 식으로 하는 것이라고, 간혹 선의로 해석하는 논자들도 있지만, 내가 보기에 유발 하라리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의 그 어두운 예언을 즐기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이 점을 가장 용서할 수 없지만, 실은 이것은 소위 지식인이라는 자들이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이기도 하다.


(162)

며칠 전부터 몸이 이상하다. 누워 있으면 좀 견딜 만하기는  해도 그리 편치는 않다. 왜 이럴까. 안 그래도 코로나 때문에 심란한 터에 몸이 이러니, 자연히 기분이 처진다. 소위 코로나블루가 내게도 이런 식으로 오는가.


(206)

심지어 코로나바이러스에서도 흑인의 비율은 압도적이다. 보도를 종합하면, 시카고 확진자의 50%, 전체 사망자의 70% 이상이 흑인이었다. 그러나 시카고 주민 중 흑인의 비율은 30%에 불과하다. 위스콘신주는 전체 인구 중 흑인의 비율이 고작 6%이지만 사망률에선 거의 40%를 차지했다. 미시간주의 경우 사망자 중 흑인 비율은 40%에 이르렀지만 주 전체 인구 중 흑인의 비율은 고작 14%이다.


(226~7)

아파트를 짓기 위해서는 일단 기존 건축물을 부수어야 한다. 우리는 흔히 30년 이상 되면 노후 건축물이라 말하고 40년 이상 되면 철거해야 할 건물로 인식한다. 수백 년 된 유럽의 건축물을 부러워하면서도 오늘날 우리의 도시는 플라스틱의 짧은 생애처럼 30년이 지나면 폐기 대상이 된다. 이렇게 철거되는 건축폐기물은 대부분 수도권 매립지로 가고 서울, 경기도, 인천이 사용하는 제3수도권 매립지의 폐기물의 42%는 서울에서 온다. 문제는 반입되는 폐기물의 절반이 건설폐기물이고 30%는 사업장 폐기물이란 사실이다. 생활폐기물은 18%정도이다. 재개발과 재건축이 늘어날수록 매립지의 수명은 단축될 것이고 현재 수도권 매립지의 수명은 5년이 채 남지 않았다. 2025년 이후에는 서울시의 폐기물을 받지 않겠다는 인천시의 공언에도 불구하고 조성까지 7~10년 걸리는 대체 부지는 여전히 없는 상황이다. 쓰레기 대란이 몇 년 내에 현실화된다는 말이다. 서울시가 열심히 원전 1기 줄이기 운동을 통해 에너지 사용을 줄이더라도 아파트 단지 재건축하면 말짱 도루묵인 것처럼, 아무리 생활쓰레기를 줄이는 노력을 해도 건축폐기물이 이렇게 많이 쏟아진다면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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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9 1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19 2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7~8)

<무반주 첼로 모음곡> 1890년 어느 날 13살의 카잘스가 중고 악기점에서 곰팡내 나는 필사 악보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작곡 후 200년 가까이 오직 소수의 음악가들과 바흐 전문 학자들에게만 알려져 있던 곡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콘서트홀에 어울리는 음악이기보다는 테크닉 연습곡으로 더 적합하다고 여겼다. 이 곡은 카잘스가 발견하고 갈고닦아 대중적인 매력을 입힌 후에서야 하나의 독립된 연주곡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19)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슬픈 일에 연주되는 경우가 많은 이유는 첼로라는 악기의 어둡고 서글픈 음색과 더불어 이 곡이 외롭게 하나의 악기만 요구한다는 사실로 대부분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첼로는 인간의 목소리와 가장 닮은 악기라서 암울한 소리만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장조로 쓰인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경쾌하고 떠들썩하게 웃고 즐기는 태평한 태도와 황홀한 유기 또한 어느 정도 들어가 있다. 그 뿌리는 춤이다. 악장의 대부분이 유럽의 옛 춤곡들도 구성되어 있다. 무용가들은 이 곡을 위한 안무를 만들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루돌프 누레예프, 마크 모리스, 대만의 클라우드 게이트 무용단이 이 곡의 추진력 있는 리듬에 맞춘 안무를 선보였다.


(56)

부자는 비좁은 거리를 지나면서 첼로 악보를 찾아 중고 악기점을 샅샅이 뒤졌다. 칼레 암플레에서 또 다른 악기점에 들어갔다. 곰팡내 나는 악보 꾸러미를 뒤지다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를 발견했다. 그런데 이게 뭐지? 싯누런 표지에 멋들어진 검은색 글씨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솔로 비올론첼로를 위한 6개의 소나타 또는 모음곡이라고 적혀 있는 게 아닌가. 정말 제목 그대로인가? 불멸의 바흐가 정말로 첼로만을 위해 음악을 작곡했단 말인가? 페세타로 악보값을 치렀다. 파블로는 첫 악장 프렐류드부터 시작해 악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상상 속에서 형태가 갖춰지는 음악의 리듬을 따라 구불구불한 거리를 미끄러지듯 지나서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발걸음부터 손끝까지 채워지는 악보의 감각적 계산이었다.


(67)

클래식 콘서트에는 숨 막히는 분위기가 거대한 장막처럼 드리워진다. 소리 내어 말하면 안 되는 것처럼 느껴지고 목을 가다듬는 것도 악장 사이에 해야 한다. 연주가 완전히 끝나기 전까지는 박수를 치고 싶어도 치면 안 된다. 하지만 클래식 콘서트의 분위기가 처음부터 이렇게 엄격했던 것은 아니다.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관객들은 한 악장이 끝날 때마다 박수를 쳤다. 관객들이 멋진 솔로 연주를 실시간으로 환호하거나 반응하지 못할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바흐 시대에는 이렇게까지 숨죽인 숭배 분위기가 아니었다. 교회에서는 아닐지 몰라도 바흐가 자주 공연한 짐머만 카페 같은 장소에서 관객들은 자유롭게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담소를 나누었었다. 바흐가 클라비코드로 난해한 푸가를 연주할 때면 낮은 탄성을 자아냈으며 현란한 솔로 파트에서는 손가락이 ㅂ h이지 않을 정도로 박수갈채를 터뜨렸다.


(89)

살아생전에 바흐는 유명하지 않았다.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혹은 동년배인 헨델처럼 유럽 전역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인물과는 거리가 멀었다. 독일이 되기 전인 이름 없는 변두리 도시에서 세간의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커리어를 쌓았다. 빈이나 런던, 파리 등 다른 작곡가들을 생전에 유명하게 만들어준 대도시에서는 산 적이 없다. 오페라를 만든 적도, 오페라 하우스가 있는 도시에서 일한 적도 없다. 오페라는 당시 음악가가 명성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120~1)

미샤 마이스키의 웅장하고 표현력 넘치는 연주 스타일을 지나치다고 말하는 평론가들도 있다. 가장 나쁜 평가를 찾자면 도스토엡스키의 감성이라는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이 첼리스트는 이렇게 항변한다. “바흐를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로 제한하는 것은 천재 작곡가에 대한 모욕입니다. 바흐는 그보다 훨씬 거대한 존재였어요. 바로크 시대 작곡가인 것은 우연히 그 시대에 살았기 때문일 뿐이죠. 그 시대의 가장 위대한 낭만파 음악가이며 그 시대의 가장 위대한 모더니즘 음악가입니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 5번 사라반드>를 들어보세요. 요즘 만든 곡이라 해도 손색없죠! 바흐의 음악이 위대한 이유는 특정한 시대나 장소에 제한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154~5)

카잘스가 연주한 <무반주 첼로 모음곡 3번 프렐류드>를 들어보면 장엄한 몰락으로 시작해 다시 일어선다. 가속도가 붙은 채 대혼란 속으로 뛰어들어 거의 한계점에 이를 정도로 안간힘을 쓰다 화음의 부케와 사라의 맹세가 나타난다. 매번 들을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음반이다. 가장 낮은 음과 높은 음을 분리시키면 매력적인 별개의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프렐류드 중간의 불협화음도 한번 떠올려보자. 놀라울 정도로 소음에 가깝지만 첼로 속 어딘가에 숨겨진 오케스트라가 아우성치며 귀 기울이게 만든다. 그 뒤로 경쾌함, 다듬어지지 않은 에너지, 영웅적인 면모, 대대적인 파괴, 풍부한 선율, 시간의 경계를 뛰어넘는 무한성이 연속으로 이어진다.


(313)

안나 막달레나에게도 약간의 공로가 있다. 안나 막달레나의 매뉴스크립트에는 보잉 관련 오류가 많은데 첼리스트가 아니어서 오류를 바로잡거나 현의 테크닉에 주의를 기울일 수 없었다. 이러한 오류 문제로 안나 막달레나의 매뉴스크립트는 오랫동안 남편에게 매뉴스크립트가 보기보다 바흐의 원본과 가깝다고 말하는 시각도 있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안나 막달레나의 내뮤스크립트가 느긋하고 여러 음악적 세부 사항이 일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그루츠마허에서 카잘스까지 첼리스트들이 저마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에 자기만의 개성을 남기게 되는 다행스러운 결과를 낳았다. 안나 막달레나는 사라진 남편의 원본에 충실하게 필사함으로써 36개 악장의 타임캡슐을 조립해 미래의 감상자들에게 서양 음악의 걸작을 선사한 것이다.


(324)

1973 9, 카잘스는 이스라엘에서 유스 오케스트라 페스티벌을 위한 모차르트의 교향곡을 지휘하고 있었다. 찌는 듯한 더위를 뚫고 자동차로 오래 이동을 했는데도 놀라울 정도로 활기찬 모습이었다. 물론 가끔 휠체어를 사용했지만. 오케스트라 리허설에서 마에스트로(당시 96)는 좀 더 풍부한 표현력을 요구하며 한 악절을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젊은 음악가들에게 힘주어 설명했다. “악보에는 표시가 안 되어 있습니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악보에 표시되어 있지 않는 게 수없이 많습니다! 그냥 음표를 연주하지 말고 음표에 담긴 의미를 연주하세요!”


(326)

카잘스는 언젠가 잡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어쩌면 많은 사람의 생각만큼 종교적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의식이 있다면 신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나는 깨어 있을 때 신을 발견합니다. 일어나자마자 바다로 나가면 사방이 신입니다. 크고 작은 것에 모두 들어 있어요. 나는 신을 색깔과 디자인, 형태로 봅니다.”

카잘스가 바흐의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친구들이 테이프 레코더와 헤드폰을 가져왔다. <브란덴베르크 협주곡 1>이 흘렀다. 의식을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카잘스는 영면했다. 마침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유엔의 휴전 요청을 받아들였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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