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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사 우종영의 바림
우종영 지음 / 자연과생태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좋아하는 나무의사 우종영 님이 몇 년 전에 쓰신 에세이
한 편을 읽었단다. 제목은 <나무의사 우종영의 바림> 책 제목에 있는 ‘바림’이란
단어는 아빠는 처음 보는 단어였단다. 지은이 우종영 님이 나무의사이고 나무와 산을 무척 사랑하시는 분이라서, ‘바림’의 ‘림’이 한자로 수풀 림(林)이라고
생각하고 바림이 어떤 숲의 한 종류라고 생각했단다. 하지만 그런 뜻이 아니더구나.
바림은 순 우리나라 말로 그림을 그릴 때 물을 바르고 마르기
앞서 물감을 먹인 붓을 대어, 번지면서 흐릿하고 깊이 있는 색이 살아나도록 하는 일이라고 하더구나. 뜻도 좋고 발음소리도 좋은 순 우리말을 하나 알게 되어 시작부터 좋았단다. 이
책은 나무의사 우종영 님에 틈틈이 적어두었던 글들을 주제별로 엮은 글이란다. 틈틈이 문득문득 생각을
적은 글이라고 해서 결코 가볍지 않았단다. 인문학적인 지식을 쌓을 수 있는 글도 있고, 자연과학 지식을 쌓을 수 있는 글도 있고, 삶을 뒤돌아보게 하는
글들이 많았단다. 물론 나무에 관련된 글들이 가장 많았지. 자, 그럼 아빠의 마음에 스며드는 듯한 바림 같은 우종영 님의 글들 몇 개를 소개해 볼게.
1.
총 5 부로 구성되어
있어. 1부에서는 나무가 사람에게 편지를 쓸 수 있다면 어떤 내용으로 쓸까? 라는 지은이의 상상에서 시작된 글들의 모음이란다. 첫 번째는 가로수가
쓴 편지였는데, 아마 나무의사 우종영 님이 가장 불쌍하게 여기는 나무가 가로수였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구나. 시멘트의 작은 틈에 뿌리를 내리고, 툭하면 가지를
잘리는 고통을 받는 가로수. 하루 종일 매연과 소음으로 시달리는 가로수. 아빠는 그 동안 별 생각이 보던 가로수였는데, 이 글을 읽고 보니
정말 불쌍한 생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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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도시 빌딩숲은 광합성을
방해한다. 바람이 불어도 움직이지 않는 숲, 나무는 흔들리지
않는 빌딩을 처음 만난 날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와 흔들린 만큼 빛이 뿌려지는
공평한 숲이 아니다. 그나마 햇빛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이는 건 다행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당시 최고 권력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우쭐대며 무엇이 필요한지를 물었을 때, 햇빛을 가리지 말아 달라고 했다. 나무는 디오게네스와 달리 우쭐대는
빌딩 숲 사이에서 ‘나무 큰 나무들 사이로 이사 온 것 같구나. 나도
얼른 커야겠다’며 긍정적인 마음으로 빛을 향해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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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부는 나무 예찬에 관한 글들이 실려 있단다. 아빠도 나무를 좋아하는 편이란다. 산에 가면 많은 나무들이 함께
뿜어내는 향기가 좋고, 곧게 뻗어 중력을 거스르며 자라는 나무의 기개가 좋고, 스스로 아름다운 모습을 주기도 하지만, 다른 것과 함께 어우러져
환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도 좋단다. 예를 들어 겨울에 눈 덮인 나무의 모습을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잖아.
그런 나무들을 잘 자라는 게 하는데 여러 요소들이 있어. 햇빛, 흙 속의 영양분, 적당한 물 등.
그런데 아빠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단다. 바람. 바람은 나무에게 방해만 주는 녀석인 줄 알았거든. 가끔 세차게 불어대는
바람으로 나무가 뿌리지고, 뿌리 채 뽑히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야. 물론
그런 강한 바람은 나무의 적이지만, 살살 시원하게 부는 바람은 나무에게 필수라고 하는구나. 나무의 대사활동에 도움을 주고, 뿌리는 튼튼하고 하고, 과일 나무는 과일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말이야. 음.. 숲 속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문득 떠오르니 갑자기 산에 가고 싶구나.
우종영 님의 책들을 읽을 때마다 늘 산에 가고 싶게 만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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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바람은 빛에너지가 운동에너지로
바뀐 것이다. 만약 바람이 없다면 잎의 온도는 엽록소가 파괴될 만큼 올라갈 것이며, 증산작용을 하지 못해 대사활동이 떨어진다. 맛있는 과일과 곡식과
맺지 못한다. 바람은 나무에게 매우 중요한 존재다. 꽃가루를
옮겨 주기도 하고, 씨앗을 멀리 보내 주며, 뿌리의 발달을
돕는다. 나무를 옮겨 심고 지주목을 받쳐 주어야 하는 것도 바람에 흔들려 새롭게 태어나는 뿌리가 끊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 지주목이 오래도록 나무가 흔들리지 못하게 한다면 뿌리는 깊고 멀리 뻗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바람이 불 때 흔들리지 않으므로 자기 뿌리가 그만큼 든든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반면에 너무 강한 바람은 나무를 넘어트리거나 가지를 부러트리기도 하고, 깃발이
흔들리는 것처럼 한쪽 가지를 몽땅 빼앗아 가기도 한다. 특히 외따로 자라는 나무에게 바람은 가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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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부에서는 나무의 본성에 대한 글들이란다. 같은 생명체이긴 하지만 사람을 비롯하여 다른 생명체들과 다른 나무만의 특징들을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다른 생명체와 다른 나무의 가장 큰 특징은 아무래도 오래 사는 것이 아닐까 싶구나. 몇 백 년, 몇 천 년 된 나무들을 예사로 볼 수 있으니 말이야. 그런 오래된 나무들의 속은 대부분 비어 있다고 하더구나. 마치 노자의
사상처럼 말이야. 비어야 채울 수 있다는 듯… 실제로 그
비어 있는 곳에 다른 생명체들을 품는다고 하는구나. 작은 동물들의 안식처가 되는 것이지… 도(道)란 것은 나무처럼
오래 사는 생명체여야 깨달을 수 있는 것 같구나. 비움이 좋다는 진리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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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오래된 나무는 대부분
속이 비어 있다. 나무는 하늘과 땅이라는 두 개의 젖꼭지를 물고 양쪽에서 자양분을 취하는 유일한 생명체다. 가지는 하늘에 근본을 두고 뿌리는 땅에 근본을 둔다. 두 개의 근본을
가지며 나이를 먹을수록 중심을 비우므로 하늘과 땅의 소통을 이룬다. 속이 비어 있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텅 빈 공간이다. 노자는 비어 있음으로써 유용하다고 했다. 마차
바퀴통은 중심이 비어야 살을 끼워 저항을 줄이며 구를 수 있고, 그릇은 비어 있어야 쓸모가 있다. 사람도 어딘가 비어 있어야 다른 사람이 비집고 들어갈 공간이 있듯이, 나무는
속을 비워 냄으로써 많은 생명체를 품는다. 나무의 텅 빈 속은 아늑하며 따뜻하고 숨기 좋으므로 하룻밤
쉬어 가는 동물이 번갈아 드나드는 공간이 된다. 살아서 몸을 보시하는 보살의 화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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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부에서 나무와 바람에 관한 이야기를 한 번 더 하셨는데, 그 이야기가 너무 공감이 가고 좋아서 또 발췌해 보았단다. 아빠도
너희들에게 바람 같은 존재가 되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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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
나무에게 바람은 어떤
존재일까? 만약 나무가 태어나자마자 학교에 들어갔다면 바람은 무서운 훈육주임이고, 사춘기에는 친구, 청년기에는 연인,
사회에 진출하면 질서와 규율, 노년기에는 스킨십을 잊지 못하게 하는 추억이다. 숲속에서 태어난 어린 나무에게 바람이란 큰 나무나 겪는 일이지만, 가끔씩
큰 나무도 감당 못하는 바람이 불어올 때면 어린 나무에게도 무서운 존재로 다가온다. 그럴 때마다 뿌리를
사방으로 뻗어 나갈 것이다. 좀 더 커서는 바람을 맞아놀 준비가 되어 있으므로 친구처럼 대하고, 이제 어엿한 나무가 되면 바람을 그리워하게 된다. 장성해 숲의 주인이
되어 갈 즈음이면 바람은 누구랄 것도 없이 더 크고자 하는 욕망을 통제한다. 노년이 되면 무성했던 가지와
잎도 사라지고 엉성한 가지 사이로 바람마저 피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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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우종영 님의 책 중에 가장 처음 읽은 책은 <나도 나무처럼
살고 싶다>란 책이란다. 그 책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문구가 나무는 그리움의 간격으로 서 있다는 거야. 그러면서 사람도 어느 정도 간격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거야. 사랑하는 가족들도 마찬가지이고 말이야. 그
문구가 이번 책에서도 다시 한번 소개되어 반가웠단다. 나무처럼 일정 간격 두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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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
나무들은 그리움의 간격으로
서 있다. 오래된 숲일수록 소소해지며, 적당한 간격으로 서
있음을 볼 수 있다. 생물학 용어에서 개체거리란 어떤 생물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다른 개체와 유지해야
할 거리를 말한다. 너무 가까이 있으면 경쟁관계가 되며, 너무
떨어져 있으면 관계를 맺을 수 없으므로 개체거리가 중요하다. 풍매화의 꽃가루나 곤충을 이용해 수분하는
나무도 개체 간 거리가 필요하다. 나무는 움직이지 못하므로 근친관계가 이루어지기 쉽다. 따라서 무리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을 경우 서로 유전자 교환이 이루어질 수 없기에 집단적으로 분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꽃에 신경 쓰지 않는 풍매화는 바람이 부는 봄날 일시에 꽃가루를 날려 보내야 한다. 나무에게는 부부라는 개념이 없고, 정자에 해당하는 꽃가루를 무작위로
방출해 암술의 주두에 닿으면 수정되는 방식, 즉 물고기처럼 체외사정으로 성교하는 셈이다. 그런 일은 분류 기준에 따라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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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부에서는 나무가 우리에게 베풀어 준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단다. 나무가 우리에게 베풀어 준 것을 어디 손으로 헤아리겠니. 지은이는
그 중에 나무들이 자신에게 걷기를 충동질했다고 하는구나. 좋아하는 나무를 보기 위해서는 걸어야 하니까. 그러면서 걷기에 대한 예찬을 쏟아내는데, 좋은 글들이 참 많았단다. 모든 글들을 마음에 새기고 그의 말 따라 아빠도 부지런히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지은이가 이야기한 걷기에 대한 예찬을 모두 적고 싶지만, 너무 양이
많아서 두 문단만 뽑아 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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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
걷기는 끊임없이 몸과
타협해야 한다. 기계를 돌보는 엔지니어처럼 몸 구석구석을 점검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동안 쓰지 않아서 퇴화한 근육들이 아우성을 치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마음은 낮은 곳으로 내려간다. 가슴에 있어야 할 영혼은 발바닥에 머무르며 온몸은 발바닥의 지시를 받는다. 걷기는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일이다. 잔잔한 고통을 통해 몸과
마음이 화해하는 행위다. 그동안에 잊었던 몸 구석구석을 돌아보게 하며 서로가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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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2)
걷기란 이동 수단이 아니라
내면과의 대화를 시도하는 수단이다. 걷기란 수많은 질문과 답이 오가는 과정이다. 자연스럽게 그동안 잊고 지냈던 의문점들이 떠오른다. 어느 쪽이 먼저랄
것도 없이 말하고 있는 자신을 만나게 된다. ‘그동안 잘 있었니, 미안해’ 등, 주로 마음이 몸에게 일방적으로 화해를 청하는 모습이다. 몸 철학자 메를로-퐁티는 몸과 마음이 둘이 아니고 하나라고 강조하지만, 그런 경지는 걷기를 통해 잠시 맛볼 수 있다. “나는 나의 몸이다”라고 한 그의 말처럼 걷기에서 내 몸과 나는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하나 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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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제 5부는 지은이 우종영 님의 직업인 나무의사로서 나무에 대한
예우와 나무의사로서의 경험들을 이야기해 주었단다. 그러면서 나무를 생명체라고 생각하지 않고 함부로 다루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했어. 나무들이 사람들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아서 그렇지, 그들도 아마 그들만의 언어로 이야기할 텐데 말이야. 최근 인권에
빗대어 동물권이라는 말들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그것처럼 생명체인 나무권에 대한 이야기도 했단다. 그러면서 최소한의 생존권을 주어야 한다고 했어. 가로수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간신히 목숨만 이어가는 그런 환경에 처해진 나무들은 없도록 말이야.
지은이 우종영 님은 정말 나무를 사랑하는 분 같더구나. 아빠가 그런
나무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지만, 길가에 있는 가로수를 보면서 위로의 쓰다듬을 하곤 해야겠구나. 그들 또한 생명체임을 생각하고 말이야. 고맙다. 나무야.
PS:
책의 첫 문장: 가을, 가로수 낙엽들은 갈 곳을 잃고 가벼운 몸을 뒤척이다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책의 끝 문장: 나무의사가 되려는 사람은 모름지기 명의가 되려 하지 말고 직업인으로서 존경받는 직종을 만들어 나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나무뿌리에는 살아있는 세포들이 밀집되어 있다. 그런 만큼 신선한 산소도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토양 속 틈은 뿌리들에게 생명의 공간이다. 제주도나 울릉도에 가서 숲길을 걸으면서도 마음이 편한 것은 화산석이라 뿌리들이 숨 쉬는 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제주 산천단의 천연기념물인 곰솔을 보면 탐방객 때문에 길옆은 답압이 심할 텐데도 싱싱하게 잘 자란다. 화산석에 숭숭 뚫린 공기구멍 덕분이다. 나무의 뿌리 분포는 대부분 지표면 15센티미터 안에 물려 있다. 뿌리들이 얼마나 절박하게 숨 쉬기를 원하는지 알 수 있는 증거다. 가로수는 늘 어두운 땅속에서 물과 양분, 신선한 산소를 찾아 길을 떠난다. 부족함을 벗 삼아 느린 숨을 쉬며 길 위에서 수행한다. - P20
나무는 사람을 닮고 사람은 나무를 닮는다. 오랜 세월 동안 같이 겪었을 홍수와 가뭄, 추위와 더위, 전쟁의 포화 속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옹이 박힌 나이테를 가슴에 새기고 살아왔다. 사람은 갔지만 나무는 살아남아 사람의 삶을 증언하기도 하고, 질긴 생명력으로 이 땅에 살다간 조상들과 닮아서 그들의 숨결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신선했던 민초들의 삶을 보듬어 주고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해 주며 스스로 신이 된 신목들을 만나 본다. - P34
토머스 파켄엄의 말을 들어보자. "오래된 나무들의 크기는 수령과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대신 나무의 장수는 스트레스와 관련된 같았다. 가장 오래된 브리슬콘소나무는 더할 수 없이 고통스럽고 열악한 환경을 선택했다. 겨울에는 눈보라에 시달리거나 폭설에 파묻혔고 봄여름에는 뙤약볕에 바짝 말라 버렸다. 눈 녹은 물 이외에는 마실 것도 없었고 생장이 가능한 시기는 1년에 고작 몇 주에 불과했다. 스트레스로 인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최저 수준으로 생장이 느려졌다." - P63
흙이 발효되는 냄새와 얼굴에서 온몸으로 전해지는 따뜻한 습기, 들뜬 꽃들의 분 냄새, 나는 그것들을 내 몸 안에 가두어 두려고 큰 숨을 들이쉬고는 내뱉질 못했다. 며칠 전만 해도 인쇄소에서 잉크 냄새에도 숨도 못 쉴 지경이었다. 밤에는 기계 위에 걸쳐 놓은 마루에서 잠을 자야 했다. 무엇인가가 내 몸을 꽃향기와 흙 내음 속으로 격렬하게 내몰았다. - P80
멈춤이 자람보다 중요한 것은 대형 사고를 막을 수 있어서다. 나무의 생장을 멈추게 하는 상태를 스트레스 상태라고 하며, 생장하기에 적절치 못한 상태에 접어들었을 때를 뜻한다. 나무는 고온과 저온, 동해와 냉해, 바람, 대기오염, 수분 등이 많고 적음에 따라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이때 생장을 멈추기 못한다면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모든 나무가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각 나무는 반응하는 정도가 다르므로 상대적인 개념으로 생각해야 한다. 혹독한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온 나무는 상대적으로 좋다고 여겨지는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 P182
나무 진단은 어느 순간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한다. 나무의 껍질은 나이와 환경을 대변한다. 세월에 따라 변하는 시간의 지문이다. 젊은 껍질과 늙은 껍질이 공존한다. 해쓱한, 까칠한, 촉촉한, 검은, 검버섯, 푸른, 이끼, 거칠고 부드러움, 질감과 색감이 조응하며 언어로 드러난다. 본질은 그 언어 속으로 숨는다. 마침내 나무의사는 언어를 뒤지며 원인을 찾아낸다. - P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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