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
도제희 지음 / 샘터사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인터넷 서점 서핑하다가 우연히 재미있는 책 제목과 책 표지를 하나 보았단다.

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

도스토옙스키. 너무나 유명한 위대한 러시아 작가.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분이 처음 그렇게 불렀는지 모르겠지만, 도스토옙스키는 도끼 선생님이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하단다. 아빠도 오래 전에 열린책들에서 나온 도스토옙스키 빨갱이 전집으로 나왔을 때 두 작품을 읽은 적이 있단다. 당시 그 책을 읽고 난 아빠의 느낌은, 재미는 있으나 읽기 무척 어렵다는 생각을 했어. 왜냐하면 당시 러시아의 시대상을 잘 알지 못한 상태이고, 지은이들의 이름이 이것저것으로 바꿔 나오기 때문에, 누구 누구인지 확인하면서 읽어내는 것이 힘들었고, 열린책들 도스토옙스키 빨갱이 전집 판본의 글씨 크기가 작고 엄청 빽빽했고그렇다 보니 두 작품까지만 읽고 그 다음 읽으려고 사 둔 책은 결국 책장을 장식하는 용도가 되어버렸단다.

하지만 여전히 아빠는 도스토옙스키 책들에 관심이 있고, 언젠가는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늘 했어. 그러다가 이 책 <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라는 책을 보니 급 관심이 가지 않겠니. 지은이는 도제희라는 분인데 아빠는 처음 알게 된 작가인데, 2015년 소설가로 등단했고, 책으로는 이 책 <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가 첫 번째 책이라고 하는구나.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지은이는 어렵게 재취업한 회사에서 회사 대표와 대판 싸우고 초고속으로 퇴사를 한 이후, 예전에 읽던 도스토옙스키의 책들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고 했다고 하더구나. 이후 다시 직장인도 되고, 소설가로 등단하고 하고그의 이력만 봐도 거침없이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겠구나. 아빠와는 다른 종류의 사람.


1.

이 책 소개를 보면 재미있을 것 같긴 한데, 아빠가 읽은 도스토옙스키의 책들이 적어서, 공감을 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읽기를 여러 번 망설였단다. 도스토옙스키의 책들, 특히 이 책에서 소개된 책들을 읽고 나서 읽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그러자면 이 책을 언제 읽게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그냥 에세이 읽듯이 읽어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어. 나쁘지 않았단다.

이 책을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도스토옙스키의 책들에 대한 리뷰와 지은이의 일상을 잘 믹싱한 에세이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렇다고 다른 책 리뷰를 엮은 책처럼, 책 한 권씩 하나의 챕터를 둔 것이 아니고, 지은이의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하면서 그에 맞는 도스토옙스키의 책들을 소환하여 이야기해서 읽는 이로 하여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속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네, 하는 공감을 불러 일으켰단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란다. 열혈퇴사를 하고 위로를 받기 위해 옛 동료에게 연락했는데, 그 옛 동료에게서, 아빠가 오래 전에 읽어서 대략적인 줄거리만 기억하고 있는 도스토옙스키의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에 등장하는 막내아들 알렉세이를 떠올리는 것이야.

======================

(20-21)

알렉세이는 도스토옙스키의 여러 작품에 등장하는 이름이지만 그중 대표를 꼽으라면 역시 그의 마지막 작품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의 알렉세이를 들어야겠다. 까라마조프 씨네 막내아들이자 참으로 비현실적이어서 기이하게 다가오는 캐릭터. 모두의 벗이자, 형제 같은 사람. 남녀노소 불문, 한 번이라도 그를 만나면 금세 사랑하게 만드는 마성의 남자. 누군가를 어떤 이유로도 비난하지 않으며, 그가 모든 이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믿게 만드는 사람. 그렇기에 부도덕하기 짝이 없는 그의 혈육들도 알렉세이만은 자신들과 다른 카테고리에 넣는다. 그러곤 모두 그에게 고백하고, 이해받길 원한다.

======================


2.

이 소설에는 많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들이 소환되었단다.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가난한 사람들>, <미성년>, <노름꾼>, <죄와 벌>, <백치>, <악령>,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 <백야>, <악령> 등등아빠가 빼먹은 작품이 있을 수도 있지만, 대략 이 정도였단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도스토옙스키의 책들을 읽기가 쉽지는 않단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여러 개로 부르고, 배경 지식도 부족하고, 가끔 지나친 묘사도 심하고 말이야. 그런데 그렇지 않은 작품도 있다고 하더구나. 예를 들어 <스쩨빤치코보 마을 사람들>이란 작품이 그렇다고 하는데, 나중에 도스토옙스키의 책들을 다시 읽기 시작한다면 이 작품을 앞쪽에 배치해야겠구나.

======================

(193)

도스토옙스키 소설을 읽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사람을 긴 풀 네임, 약칭, 여러 애칭으로 불러서 누가 누구인지 판단하는 데 시간이 걸리도록 하는 불친절함, 하루 이틀 밤 이야기를 1000쪽 이상의 분량으로 풀어내는 집요함과 심오함에 임하기가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대체 내가 왜 이 인간 소설을 이렇게 파고 있나 회의감을 느낄 즈음이었다. 도스토옙스키가 날 대체 뭘로 보는 거냐며 뒤통수를 한 대 쳤다. <스쩨빤치코보 마을 사람들>이란 소설을 통해서였다.

======================

이 책을 읽으면서 몇몇 관심이 가는 책들이 생겼어. 물론 다 읽으면 좋겠지만, 세상에는 읽어야 할 책들은 많고, 시간은 제한적이고 하니 일단 관심 있는 책들 먼저 읽어 봐야겠지. 이 책을 통해 가장 관심이 가는 책은 <노름꾼>이라는 책이란다. 도스토옙스키 본인이 실제로 도박을 좋아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어. 그런데 이 <노름꾼>을 쓸 때 도스토옙스키 자신도 도박으로 돈이 쪼들리던 시기라고 하니, 절박한 심정에 자신의 처지에 관한 책을 썼다는 생각을 하니 그 내용이 궁금하더구나.

======================

(206)

도스토예스키 장편 <노름꾼>은 여러 가지로 유명하다. 장편 <죄와 벌>을 쓰는 동안 27일 만에 완성했다는 것, 그것도 구두로 완성한 소설을 속기사 안나가 문자로 옮겨 출판사로 넘겼으며, 그 뒤 도스토예스크의 청혼으로 두 사람이 결혼했다는 것, 이 소설을 쓸 당시 작가 자신도 도박으로 인해 돈에 쪼들리며 급하게 완성했다는 사실 등 제목만큼이나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가 많다.

======================

….

그리고 또 하나의 책은 <악령>이라는 책이란다. 이 책은 아빠가 앞서 이야기한 책장의 장식이 되어버린 책이란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앞 부분 수십 페이지를 읽었던 기억은 있구나. 지은이의 소개를 읽어보면 그렇게 앞부분만 읽고 그만둘 소설은 아닌 것 같았는데, 약 이십 년 전이었으니 그 당시에는 아빠의 사정이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악령>은 뒷담화의 선을 넘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더구나. 뒷담화의 선을 넘는 인간으로 하급관리인 리뿌찐이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남 험담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어. 당사자게 비밀이니 아무에게도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이야기하고, 친구들이 뒷담화를 하지 말라고 말려도 이야기하고 친구들이 들은 이야기를 다시 재생산하기도 하고딱 들어봐도 짜증나는 스타일의 인간이구나. 리뿌찐이 호감을 두고 있는 바르바라라는 좋은 귀족 집안의 부인이 등장하고, 그 부인의 아들 스따브로긴이라는 사람이 나온단다. 스따브로긴은 불안정한 정신의 소유자이고 추문과 악행이 뒤를 잇는 사람이었어. 바라바라에게는 수양딸 다샤가 있는데, 다샤와 아들 사이의 안좋은 소문이 일어나자, 다샤를 어떤 중노인과 결혼시키려고 했어. 원래 수양딸과 사이가 무척 좋았는데, 이 일로 다샤와 사이가 틀어졌대. 또 중요한 인물로 쁘로호브나라는 산파가 나오는데, 무례함과 불경함을 장착한 인물이라고 하는구나. 대략 이런 개성 넘치는 인물들이 나온다고 했어.

이 책에서 소개한 다른 책들에 비해 <악령>에 대해 자세히 적어 둔 이유는 아빠가 조만간에 <악령>에 도전해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단다. 이 책은 우리 집에 장식용으로 잘 꽂혀 있으니 접근성이 좋잖아. 이 책을 덮고 <악령>을 책장에서 꺼내보았단다. 도스토옙스키를 좋아하는 분들이 전집 중에 최고 중 하나로 치는 열린책들 빨갱이 시리즈였단다. 오랜만에 펼쳐 본 책. , 아빠가 관리를 안 해서 그 예쁘고 정열적인 빨갱이의 책등이 빛에 바래 있더구나. 책을 펼쳐보니, 역시 빽빽한 글씨에 <>, <> 2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 권당 500페이지가 넘는 페이지, 읽을 수 있을까 싶더구나.

….

아빠가 자주 방문하는 알라딘 인터넷 서점에서 운영하는 블로그 알라딘 서재란 사이트가 있는데, 그 곳에 가면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들을 만화책 읽듯 쉽게 읽어내는 고수들이 있단다. 그렇게 도스토옙스키 소설들을 다 읽은 이들은 이 에세이가 더 공감이 가겠다 이런 생각을 했단다. 책 뒷면을 보니 도스토옙스키 전문가로 유명한 로쟈 이현우 님의 추천 글도 있구나. 이 책의 지은이와 도스토옙스키 매니아들을 보면 아빠도 다시 한번 정신무장을 하고 도스토옙스키의 책들을 한번 읽어봐야겠다 다짐을 해 보았단다. 몇몇 도스토옙스키의 책들을 장바구니에 넣는 것으로 시작해 보자꾸나.


PS:

책의 첫 문장: 초가을이었다.

책의 끝 문장: 알고 보니, 200년 전 유럽 동부 대륙의 사람들도 막장의 달인들이었다고, 우리 삶이 아름답지 않은 순간에 직면할 때 사실 우리와 전혀 상관 없을 법한 그 사람들도 그리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그 와중에 추운 계절의 동백꽃처럼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꽃피웠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프로가 되는 지름길이며 또 그것만큼 인생에 도움이 되는 조건도 없다. 그렇게 산다 해서 모든 일이 잘되진 않겠지만 모른 채 산다면 자신을 더 힘들게 할 선택을 하게 될 것만은 분명하다. 잘 맞지 않은 회사에 아무 문제의식도 없이 입사하고 퇴사하기를 반복했던 나처럼 말이다. - P48

물론 성숙한 인간이라면 죽는 순간까지 섣불리 자기 생각을 말하기보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세상 돌아가는 것도 살피며 진상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나 역시 성숙한 인간이 되고 싶다. 하지만 시대가 계속 변하고 있다는 사실, 그 변화 속도를 내가 따라가지 못해 때로 꼰대적 발상과 발언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 받아들이기로 했다. - P74

나는 자신만의 소박한 일상을 잘 지켜 나가면서도 품위 있고, 지적이며, 편안하고 자유롭게 관계를 맺는 이를 몇 알고 있다. 나는 그 사람들이 내적 자산을 비교적 쉬이 갖출 수 있는 환경에서 살아온 이들보다 대단해 보이고, 그래서 그들을 만날 때마다 질투하고 부러워한다. 그렇게 부러워하다 보면 나도 어느 정도는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 말은 어쩌면 틀렸다. 부러우면 이기는 건지도 모른다. - P102

솔직함은 그 내용이 자기 자신일 때 빛을 발한다. 타인의 장점을 인정하고 칭찬하는 것도 호감을 얻는 방법이겠지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는 용기에 타인의 마음은 더 크게 움직이지 않을까. 상대에게 자신도 진심을 내보여도 안전하겠단 느낌을 주니 말이다.
따라서 사람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고 싶다면 자기 자신을 잘 알 것, 그런 자신을 받아들일 것, 솔직함의 대상을 자기 자신으로 둘 것.
- P182

그렇다고 해서 삶의 주도권까지 내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직장에서 누군가 나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해서 내 삶까지 좌우하려 할 때, 즉 내 삶의 주도권이 본인에게 있는 양 굴려 할 때 거절할 만한 지혜와 배짱은 필요하다. 그러자면 우선, 내 인생의 모든 행운과 불운을 스스로 만들어 가고 감당하겠다는 주인 의식이 가장 필요하지 않을까. 물론 나는 아직 멀었단 걸 알았다. <노름꾼>의 가정교사의 대처에 정말 놀랐으니 말이다. - P214


댓글(7)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ni74 2021-08-30 00:2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이 글 읽으니 북플의 도선생님전문가들이 떠오르네요. 저도 먼저 도선생님 책을 읽고나서 ㅎㅎㅎ 이 책을 시작해야 될듯 합니다. 가끔 힘들어서 잠시 쉬어야겠어 하고 책을 미뤄놓으면 아이가 슬쩍 갖고가요. 뭔가 자신은 자신이 있다는 듯. 하지만 대부분은 곧 다시 돌아온답니다 ㅎㅎ

bookholic 2021-08-30 07:27   좋아요 4 | URL
아이와 책들을 함께 읽는 모습 좋아요...^^
그것도 도선생님의 책을....
읽고 나서 도선생님의 책에 대해 식구들과 토론하는 모습도 그려집니다~~~^^

새파랑 2021-08-30 00:3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노름꾼하고 악령은 대박 입니다 ㅋ 완전 👍 저도 도선생님 책 완독하면 이책을 꼭 읽어봐야 겠네요. 북홀릭님이 말씀하신 고수중에 저도 있는건가요? 😅

scott 2021-08-30 01:28   좋아요 4 | URL
새파랑님은 도끼 선생 매니아 넘버원 .🖐

bookholic 2021-08-30 07:31   좋아요 4 | URL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들을 만화책 읽듯 쉽게 읽어내는 고수들˝은 새파랑 님 생각하면서 쓴 문구입니다~~^^

scott 2021-08-30 01:0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저 이책 좋아 합니다 ㅋㅋ 자기계발서(실제로는 저자의 사회 생활 조직 생활의 벽에 부딪칠때마다 도끼 선생의 작품 속 인물들이 튀어나오는)보다 이렇게 문학적 은유가 담겨서 참신하고 좋았어요.

bookholic 2021-08-30 07:37   좋아요 4 | URL
네, 독특한 구성의 책인데 참 신선하고 좋았습니다...
도씨 선생님의 작품들을 가볍게 이야기하면서도 핵심을 콕콕 찍어 이야기해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