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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듣는다 - 정재찬의 시 에세이
정재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6월
평점 :
품절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몇 년 전에 정말 재미있게 읽은 시(詩) 에세이가 하나 있어. 한양대 정재찬 교수가 쓴 <시를 잊은 그대에게>란 책이었어. 그 책은 정재찬 교수님이 대학에서 강의한 내용을 보강한 책이었어. 시와
시인들의 숨겨진 재미있는 이야기들… 그리고 좋은 시를 알려주었고, 아빠의
메마른 감성에 촉촉히 적셔 주는 글들… 감동의 도가니였다고 해도 과장은 아닌 그런 책이었어. 그 책을 읽고 나서 선물할 일이 있거나 누군가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한동안 이 책을 선물하거나 추천을 해
주었는데 이 책을 이들을 읽은 이들은 모두 너무 좋았다는 회신을 주었단다.
그야말로 시를 잊는 아빠에게 시에 관심을 갖게 해주었던 책이야. 최근에는 <시를 잊은 그대에게>라는 드라마도 하더구나. 아빠가 그 드라마를 보지는 않았지만, 이 책과 연관이 있겠지. 그런 정재찬 교수님의 그 다음 책 <그대를 듣는다>라는 책을 이번에 읽었단다. 첫 번째 책 <시를 잊은 그대에게>가 너무 좋아서, 두 번째 책에 대한 기대감이 너무 커서 그 기대치까지는 조금 미치지 못했지만,
다시 한번 아빠의 영혼에 촉촉한 비를 내렸단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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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사랑이란 두 개의 심장을
가까이 포개는 거다. 두근거리며 안았을 때, 안긴 그의 두근거리는
심장이 느껴질 대 우리의 심장은 더 두근거리게 된다. 둘의 가슴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엄청난 파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 파동은 13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블랙홀 한
쌍이 합쳐져 생겨난 중력파와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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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의 소재는 무한하다는 것이 맞겠지. 그래도 그 중에 가장 많이 다루는
것은 사랑이 아닐까 싶구나. 사랑을 하게 되면 먼저 몸에 변화가 온단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몸의 변화… 그 중에 가슴이 두근두근…. 이 책의 시작의 첫 번째 꼭지의 제목은 “두근두근”. 사람의 감정을 가장 장 표현한 단어 두근두근… 이 단어만으로 참
많은 이야기를 풀어내시는구나. 너희들도 앞으로 이제 이런저런 일로 가슴 설레고 두근두근 거리는 일들이
많이 생길 텐데, 그 두근거림이 좋은 추억이 되길 바래.
2.
정재찬 교수님의 책은 분명 시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시뿐만 아니라
노래이야기도 있고 영화이야기도 있고, 소설 이야기도 있단다. 그래서
더욱 그의 글이 친근함이 느껴지는 것 같아. 책을 읽으면서 이 책에서 소개한 노래들을 찾아서 들으면서
책을 읽기도 했어. 생각나는 노래만 적어보아도, ‘나의 기타
이야기’, ‘서른 즈음에’, ‘사랑한 후에’, ‘서울 그곳은’, ‘시인의 마을’,
‘사노라면’…. 그 밖에도 많은 곡들을 소개해주었어. 소개해준
노래들의 공통점은 가사가 좋은 노래들이었어. 노래 없이 그냥 가사만 적어놓으면 한 편의 시가 되는 그런
노래들이었어.
그 중에 아빠도 좋아하는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 그 노래 가사 중에 그런 말이 있어. 내가 떠나 보낸 것도 아니고,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니라는 가사… 그 노래를 들을 때는 그게 의미를
두지 않았던 가사인데, 정재찬 교수의 글을 보니,,, 청춘이라는
것이 나빴네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나를 떠나갔냐… 청춘아… 그것도 언제 떠나갔는지도 모르게 떠나간 청춘… 떠나간 것은 떠나간
것이고, 이제 현실을 받아들인다는 가사… 정채찬 교수님이
이야기한 것처럼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는 서른에 들어도, 마흔에 들어도,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쉰이 되어도 또 같은 생각이 들겠지?
그런데, 아빠에게서 정말 정춘이 모두 떠나버린 걸까? 어디, 조금은 묻어 있지 않을까?
그래, 노래처럼 인정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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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떠나간 사랑을 한탄하는 듯하지만, 청춘의
세월이야말로 내가 잘못해 떠나가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이 억울함으로 어디선가 볼멘소리가 들릴 법도
한데, 잠시 흥분하는가 싶더니 이내 담담해진다. 그래서 더
애절하다. 가는 세월, 가는 청춘과 더불어 조금씩 잊혀 가는
것이 인생임을 받아들이려는 듯, 화자는 깨달음처럼 정의를 내린다. 산다는
건 매일 이별하는 거라고. 매일 하루하루와 이별하는 거라고. 이제
진짜 서른을 맞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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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 같은 영화 이야기도 소개를 많이 해주었단다. ‘마이 페어 레이디’, ‘두근두근 내인생’, ‘사운드 오브 뮤직’, ‘클래식’, ‘인 타임’, ‘우아한
세계’, ‘죽은 시인의 사회’…
이 책이 시에 관한 책이다 보니 ‘죽은 시인의 사회’는 자세히 이야기해주었어. 아빠도 고등학교 때 이 영화를 처음 보고
나서 그 이후에도 서너 번은 더 본 것 같아. 참 재미있는 영화였거든..
너희들도 조금 더 크면 같이 이 영화를 한번 더 보자꾸나. 이 영화에는 명대사가 많이 나오는데, 그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이제는 조금 식상하기까지 한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는 라틴어란다. 이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빼먹을 수 없는 말이야. 얼마 전에 읽은 <라틴어
수업>이라는 책에서도 이 영화화 이 말에 대해서 이야기했었잖아.
정채찬 교수님은 ‘카르페 디엠(Carpe Diem)’에
대하 해석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면서 그 말의 어원을 설명해 주시기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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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
그에 이어지는 장면에서
바로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는 라틴어가
나온다. 중세 기독교 시대를 지배했던 언어가 지상의 명령처럼, 하나의
성스러운 주문처럼 학생들에게 던져진다. 영화 속 한글 자막은 한결같이 이 구절을 “현재를 즐겨라” 또는 “오늘을
즐겨라”로 쓰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번역은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다. 원래 영화에서는 카르페 디엠에 대해 이야기하기 직전, 키팅이
한 학생에게 “장미꽃 봉오리를 따려면 바로 지금이니 언제나 시간은 쉼 없이 흐르고, 오늘 이렇게 활짝 핀 꽃송이도 내일이면 시들고 말지어다”라는 로버트
헤릭의 시 <To the Virgins, Make Much of Time>을 읽힌다. 그러나 나서 ‘장미꽃 봉오리를 따려면 바로 지금이니’의 정서를 가리키는 라틴어가 곧 카르페 디엠이라 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는 “때를 놓치지 말라”는 의미로 이해함이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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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디지털 세계가 되고, 스마트폰이 세상을 점령하면서 점점 문학하는 사람들의
밥그릇이 작아진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그 중에 시인은 더욱 그렇다는구나. 책을 읽더라도 시집보다는 소설을 선호하잖아. 뭐, 아빠도 그러니까 말이야. 그렇다 보니 시 짓는 것은 가난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 것 같아. 시에 관한 이야기를 써서 많은 돈을 번 정재찬 교수님이
시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어… 그래서 이 책에서 그런 시인들의 이야기도 해준 것은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좀더 시를 사랑해주고, 시인들을 사랑해
달라고 말이야. 아래와 같은 시를 읽으면 짠해지면서, 시에
더욱 관심 좀 가져야겠구나 싶더구나. 좋아하는 시 한두 편은 늘 외울 수 있는 그럼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싶었어. 시인들이 대접을 많이 받아서, 좋은 시들을
많이 써서, 메마른 디지털 세계를 촉촉히 적셔주는 단비 같은 역할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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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한 편 순산하려고
온몸 비틀다가
깜박 잊어 삶던 빨래를
까맣게 태워버렸네요
남편의 속옷 세 벌과
수건 다섯 장을
내 시 한 편과 바꿔버렸네요
어떤 시인은 시 한 편으로
문학상을 받고
어떤 시인은 꽤 많은
원고료를 받았다는데
나는 시 써서 벌기는커녕
어림잡아 오만 원 이상을
날려버렸네요
태워버린 것은 빨래뿐만이
아니라
빨래 삶는 대야까지 새까맣게
태워 버려
그걸 닦을 생각에 머릿속이
더 새까맣게 타네요
원고료는 잡지구독으로
대체되는
시인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시의 경제는 언제나 마이너스
오늘은 빨래를 태워버렸지만
다음엔 무얼 태워버릴지
속은 속대로 타는데요
혹시 이 시 수록해주고
원고료 대신
남편 속옷 세 벌과 수건
다섯 장 보내줄
착한 사마리언 어디 없나요
- 정다혜, <시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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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 누구에게나 상처 주고 상처받은 나날들이 있을 겁니다.
책의 끝 문장 : 의외로 시는, 소망은 힘이 쎄다.
(58)
무릇 욕망의 과잉은 예술적 성취에 오히려 해가 되는 법, 그러기에 대체로 아마추어가 전문 작가보다 더 감정이 풍부하고 진실하고 의욕적인 편이지만, 예술적 결과는 그에 비례하지 않는 것. 하지만 철없고 순수했던 그 시절, 열정으로만 가득 차고 미숙했던 그 시절이 그래서 아름답고 그리운 것 아니겠는가.
(70)
이야기보다 목소리를, 목소리만이 아니라 침묵까지 듣는 것이 진짜 경청이다.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도 퍽 소중한 일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궁극적인 전언(傳言), 곧 메시지가 아닐 때가 많다. 어떨 땐 그냥 말하는 것 자체가 그의 목적일 수도 있다. 진짜 말하고픈 전언이 표면의 전언과 반대일 때도 있다. 그러기에 고생한 시절을 이야기하면서 행복해하는 목소리가 들린다면 진실은 목소리에 있지, 이야기에 있지 않다는 것 아니겠는가. 더 중요한 것은 말하지 않은, 차마 말할 수 없는 침묵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112)
이제는 유행어처럼 즐겨 쓰게 된 말. "이 또한 지나가리라" 문제는 이 말을 고난의 시절에만 쓴다는 것이다. 원래 이는 구약 성서의 인물 다윗이 기쁠 때 교만하지 않게 하는 동시에, 절망에 빠지고 시련에 처했을 때 용기를 줄 수 있는 말로 반지에 새긴 글귀가 아니었던가. 기쁜 오늘 하루도, 힘든 오늘 하루도, 이 또한 모두 지나가리라. 그러기에 전인권은 <걱정 말아요 그대>라는 노래에서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다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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