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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없는 사람
커트 보니것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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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도착한 책 더미 가운데 만만한 두께의 이 책을 먼저 집어 들게 되었다. 김중혁 작가를 비롯해서 보네거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유난스럽기까지 해서 그의 책을 한 번쯤은 읽어봐야겠다고 벼르고 있던 참이었다. 기대했던 대로 커트 보네거트의 글은 유쾌하고 통쾌하다. 웃음을 통해 드러나는 날카로운 통찰력은 재미와 진지함을 모두 충족시켜준다. 보네거트는 풍부한 인생 경험을 바탕으로 유머, 가족제도, 정치, 음악, 문학, 예술, 종교, 과학기술, 행복, 인생 등 누구나 한 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보았을 문제들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명쾌하게 들려준다. 무엇보다도 미국에도 ‘좌파’라는 것이, 그것도 문학을 하는 좌파의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 가장 신선하게 와 닿았다.

그의 생각을 대충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유머론: 유머 구원론

유머는 두려움과 좌절에 대처하는 인간만의 방식이다.(13쪽)


“내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일은 사람들에게 웃음으로 위안을 주는 것이었다. 유머는 아스피린처럼 아픔을 달래준다”(127쪽) 


그러고보니, 결국 유머와 예술과 종교의 역할은 같은 것이로구나!


* 가족제도: 대가족주의

이혼의 진짜 이유는 외로움(대화 상대의 결핍)이며, 대가족 제도만이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재미있는 통찰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혼을 하면 딱 한 사람과 가정을 이룬다. 신랑은 친구가 하나 생기는데 그나마 여자다. 신부는 이야기 상대가 하나 생기는데 그나마 남자다.”(56쪽)


풍성한 지적 대화가 오가는 분위기의 예술가 집안에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이로서 충분히 할 법한 생각이지만, 오히려 인간을 고립시키는 억압적인 역기능 가정도 많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 정치적 입장: 휴머니즘으로써의 사회주의

보네거트는 미국의 거만함, 물질주의, 돈에 대한 집착, 리더들의 비양심적인 사리사욕에 기반한 파괴욕을 줄기차게 비판한다. 이미 오래 전에 셰익스피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악마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성경 구절을 인용한다.”(110쪽) 부시 일당만이 아니라 다수의 정치인들과 소위 사회지도자임을 자처하는 이들의 언행을 정확히 꿰뚫는 말이다. 

양심에 기반한 상식적인 판단을 헌신짝처럼 저버리기 위해서 비싼 하버드나 예일의 졸업장이 필요한 건 아니라는 그의 통렬한 지적에 완전한 공감을 보낸다. 동정심이나 수치심을 상실한 미국의 정치지도자들을 부끄럽게 여기는 보네거트 같은 지성인이 있어 미국에겐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수는 너무도 적다....


* 종교(기독교)에 관한 입장: 인간에 대한 사랑과 평등의 사도, 휴머니스트로서의 예수(산상수훈의 가르침) 지지


“사실 기독교와 사회주의는 똑같이,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어느 누구도 굶주려서는 안 된다는 명제를 실현하고자 한다.”(21쪽)


“휴머니스트라면 누구나 그렇듯 나는 예수를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그의 가르침이 훌륭하고 대부분의 말이 절대적으로 아름답다면 그가 신이든 아니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러나 만일 그리스도가 자비와 동정의 메시지가 담긴 산상수훈을 설파하지 않았다면 나는 인간으로 태어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방울뱀으로 태어나는 게 나았으리라.”(82쪽)


*소설에 관한 생각: 과학기술 발달이라는 현실을 반영하는 소설 지향

코넬 대학 화학과 출신이라는 지적 배경을 지닌 지식인답게 보네거트는 작가들의 과학에 대한 무지를 비판하고 자신이 SF 소설가로 규정하는 이들을 향해 일리 있는 항의를 한다.


“나는 과학기술을 생략함으로써 인간의 삶을 왜곡하는 소설은 섹스를 생략함으로써 빅토리아 시대의 삶을 왜곡하는 소설만큼이나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25쪽)


*예술론: 바람직한 삶의 방식으로써의 예술 찬양


“만일 부모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고 싶은데 게이가 될 배짱이 없다면 예술을 하는 게 좋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예술은 생계수단이 아니다. 예술은 삶을 보다 견딜 만하게 만드는 아주 인간적인 방법이다. 잘하건 못하건 예술을 한다는 것은 진짜로 영혼을 성장하게 만드는 길이다. 샤워하면서 노래를 하라. 라디오에 맞춰 춤을 추라. 이야기를 들려주라. 친구에 게 시를 써보내라. 아주 한심한 시라도 괜찮다. 예술을 할 땐 최선을 다하라. 엄청난 보상이 돌아올 것이다.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 않았는가!”(31-32쪽)


보네거트는 <햄릿>의 위대함은 그것이 삶의 진실(우리에게 일어난 일 가운데 어떤 것이 좋은 소식이었는지 혹은 나쁜 소식이었는지를 알 수가 없다는 사실)을 말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열광적인 감동을 주는 스토리텔링의 방식보다 중요한 것은 진실을 이야기하는 데 있다고 강조한다.


자신이 다른 소설가들과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에 대한 보네거트의 질문에 솔 스타인버그가 대답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예술관을 피력한다.


“예술가엔 두 종류가 있는데 이건 결코 뛰어남의 차이가 아니야. 하지만 한 부류는 지금까지 자기가 만든 작품의 역사에 대응하고, 다른 부류는 인생 그 자체에 대응한다네.”(131쪽)예술의 진정성에 관한 지적이다.

타고난 재능 여부에 관한 질문에는, 솔은 그런 건 없으며 다만 “어떤 작품에서든 사람들의 반응은 예술가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노력했는가에 맞춰진다”(131쪽)고 답한다. 우리 모두에게 용기를 주는 말이기도 하지만, 예술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전자공동체에 관한 의견: 부정적

보네거트는 몸과 몸이 직접 만남으로써 이루어지는 소통의 우연적 특성에서 빚어지는 정서적 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직접적인 마주침에서 발생하는 정서적 반응을 생략한다면 우리 인생은 훨씬 삭막해질 것이라는 그의 우려에 공감한다.


“전자 공동체에는 실체가 없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인간은 춤추는 동물이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고 대문을 나서서 뭔가 한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우리가 지구상에 존재하는 것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냄새를 피우기 위해서다. 누군가 다른 이유를 대면 콧방위를 뀌어라.”(66쪽)


그러나 현재의 SNS가 직접적인 만남을 대체하지는 못하더라도 만남과 소통의 범위를 확장함으로써 소통의 공간적, 시간적 한계를 넘어서게 해주는 측면이 있음을 간과할 수는 없다. 전자공동체는 직접 만남을 대체하기 보다는 보완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음악 애찬론:


“음악은 세상 모든 사람이 음악이 없을 때보다 인생을 더 사랑하게 만든다.”(70-71쪽)


보네거트는 특히 우울증에 특효를 발휘하는 치료제로 블루스를 꼽는다. 미국의 노예제 시절, 노예들이 그 주인들에 비해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비율이 낮았던 원인은 바로 그들이 블루스를 연주하고 노래한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울한 음악은 우울한 현실을 견딜 수 있도록 위안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현실을 더욱 우울하게 바라보도록 우리의 뇌를 길들이는 측면도 있지 않나?


*행복론:

사람들이 행복할 때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게 문제다. 이에, 보네거트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다음과 같다.


“행복할 때 행복을 느끼고 그 순간에 나처럼 외치거나 중얼거리거나 머릿속으로 생각해보라. “이게 행복이 아니면 무엇이 행복이랴!””(129쪽)


사회주의자, 휴머니스트, 음악 애찬론자, 유머 애찬론자인 소설가 커트 보네거트를 혼자서 뒤늦게 발견하고는 어느새 그의 팬의 대열에 동참한 나를 발견한다. 


12. 03.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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