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마음 죽을 때까지 - 101가지 지혜로 유쾌하게 살아가기
노하라 스미레 지음, 김정화 옮김 / 와우라이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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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글을 보는 당신, 노후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아마도 대부분 '노후준비' 카테고리에 넣을 만한 '어떤 것'도 하지 않는다고 대답할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공부, 취업, 결혼 등 인생의 주요 단계에 대해서는 무척 많은 관심을 갖고 준비를 함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간혹 미디어를 통해 어떤 사건을 접하거나 주변에서 죽음을 경험할 때 뜨끔하는 정도일 뿐이다. 바로 이러한 '죽음'에 대한 가벼운 인식에 경종을 울리고자 준비된 책이 [스무 살 마음 죽을 때까지]이다.

 

이 책은 15년 동안 친정 부모와 시부모의 병 수발을 들고, 주변인을 통해 '늙음의 현실'을 직접 겪은 저자의 글로 이루어져있다. 특히 '나'보다 '가족'을 위해 살아가도록 강요 받는 여성들을 위한 것으로 어떤 배우자를 선택해야 하는지, 경제 활동 기간에 어떻게 노후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지 등 실질적인 조언들이 가득하다. 또, '나'에게 관심을 쏟을 즈음, 손주들의 보모로 전락하고 그 손주들이 다 자란 후엔 뒷방 늙은이 대우를 받는 상황에 대한 조언도 있다. 아주 직설적으로 저자는 실버 타운은 남 얘기고 그나마 위로할 점은 -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더라도 - 가족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더 최악의 상황, '혼자'가 될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할까? 이를 위한 저자의 조언은 다음과 같다. 1.어디를 가도 잘 수 있도록 연습하라. 2. 응급 상황에 대비하라. 3. 혼자 노는 연습을 한다. 4. 사기 당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5. 컴퓨터를 배워라. 6. 몰두할 수 있는 취미를 가져라. 7. 늘 사회와 연관을 맺도록 노력하라. 8. 멋을 부리고 밖으로 나가라. 9. 피로를 다스려라. 10. 엽서 마니아가 되어라. 11. 마음을 표현하라 (180~181p)

 

아직 나에겐 '노후'란 단어가 크게 와닿지는 않는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나의 노후 뿐만 아니라 부모님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윤곽을 그릴 수 있었다. 또, 재테크 뿐만 아니라 각종 요양보험과 생활 법률에 공부가 필요함을 깨달은 것도 큰 소득이다. 혹 일본인 저자의 글이라 우리 나라 실정에 맞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에는 친절하게도 대한민국 사정에 맞는 제도와 사례가 - 다른 색의 글씨로 - 적혀있다. 책을 읽는 동안 어색한 문단 연결과 통일성 없는 문장들이 간혹 눈에 띄지만 '죽음'과 '노후'에 대한 색다른 접근을 할 수 있단 점에서 관심을 갖고 읽어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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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vs 구글 - 디지털 맞수의 패권경쟁
오가와 히로시.하야시 노부유키 지음, 김경인 옮김 / 위키미디어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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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은 전화기요, TV는 공중파의 전유물이던 시절은 지나갔다. 이제 진정한 convergence 시대가 온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스마트 폰'이 있다. 하루가 다르게 더 새로운 기능의, 더 빠른 속도의, 더 예쁜 디자인의, 핸드폰이 출시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두 기업이 있다. i-phone의 '애플'과 android-phone의 '구글'이라는 거대하고 막강한 기업.

 

[애플 vs 구글]은 이 두 기업에 대해 IT에 뼈가 굵은 두 명의 일본인 저자들이 분석한 글이다. 그 내용은 순차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스마트 폰 시대 개막 전, 두 회사가 "과거"에 어떤 준비를 해왔었는지, 이 시대의 선두를 유지하기 위해 "현재" 내부적으로 어떤 전략과 기술 혁신을 감행하고 있는지, 다채롭게 변화하는 핸드폰 업계 외에 "미래"의 post-smart phone 시대를 위해 두 회사가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런 두 회사의 보조를 맞추기 위해 일본 기업들에게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가 그것이다. 결론적으로, 애플과 구글의 과거/현재/미래이다.

 

그러나 난 이 책을 통해 애플과 구글만 알고 넘어가는데 그치고 싶지 않다. 사대주의적 발상이라고 치부될 수 있지만 동종 업계 기업들이 대한민국에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애플 vs 구글]이 나왔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뒤쳐졌다는 반증 아닐까? 그래서 기업 측면에서 대한민국이 어떤 점을 배우고, 고치고, 발전시켜야 할 지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두 기업의 "기술에 대한 접근 방식"이다."애플처럼 먼저 '의지'와 '지향하는 방향'을 정해놓고 거기에 맞춰 토론을 거듭하고 여러 가지를 연계시키는 방식과는 달리, 구글은 사내 곳곳에서 여러 가지 기술을 연구 개발하게 하고 그러한 서비스 가운데 인기가 있고 적용 가능한 것이 나왔을 때 신기술을 확대해가는 출발점으로 삼거나, 혹은 신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소재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196p)"에서 보면, 두 기업의 공통분모가 있다. 바로 접근 방식은 다를지라도 '자체적인 핵심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어떨까?  한 마디로 압축하자면, '베끼기'라고 하겠다. 예를 들어, i-phone이 A방식으로 카메라를 개발해 인기를 얻으면, 국내 기업은 A방식을 그.대.로. 따라하여 개발한다. 그리고 B방식으로 개발한 카메라가 탑재된 폰이 인기를 얻으면, 이제 B방식을 또 그.대.로 따라한다. 그런데 문제는 부족한 기술로 똑같아 보이기 위해 애쓰다 보니 결국 졸작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실패 원인을 '핵심 기술'이 아닌 잘못 베낀 '방식'이라 여기는 것이다.  과연 베끼기를 통해 '세계를 이끄는 Global Company'가 나올 수 있을까?

 

둘째, "S/W에 대한 인식"이다.한 대학 CEO강연에서 우리나라 대기업 사장님께서 'software는 hardware의 부속품이다'라고 했던 일화가 있다. 그렇다면  Mac, i-pad, i-phone와 같은 제품들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hardware회사로 인식되어온 애플은 어떨까?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애플은 소프트웨어 회사다. 우리는 소프트웨어에 단지 아름다운 옷을 입혀서 팔고 있을 뿐이다.(184p)" 우리 나라 대기업사장님께서 hardware 전공자라는 따위의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미국처럼 소프트웨어 개발자에게 영웅 대접을 해달라고까지 바라지도 아니다. 本末轉到의 현실을 이제라도 깨닫자.

 

마지막으로, "본질적 성공을 위한 장기적 비전"이다. 직원들의 창의력 향상을 위한 구글의 20%룰(업무 시간의 20%를 자기 개발에 사용)은 너무도 유명하다. 창의성, 자주성과는 상관없이 야근과 주말근무 정도는 해야 일 좀 한다는 말을 듣는 대한민국의 '무거운 엉덩이 문화'와 너무 다르지 않은가? 그럼 직원들의 관심도에 따라 다양한 프로젝트가 진행되기 때문에 구글의 전체상은 주주들도 파악하기 힘들다는 점은 어떤가. 우리 나라는 분기별 매출에 따라 조직을 개편하고 회사의 경영 방침을 바꾸기 일쑤다. 또, 그 동안의 노력과 상관없이 새로 온 사장님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하고 있던 프로젝트도 접는다. 더 나아가 그 동안 쌓아온 기술도 사장된다. 매출에 따라 희비쌍곡선을 그리며 그 때 그 때 단기목표에 따라 움직이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때다.

 

정말 숨 가쁘게 우리 나라 기업을 비판했다. 애플과 구글만 알면 되지 뭐 이렇게 열 내냐고 하지 말자. [애플 vs 구글]을 단지 남의 나라 기업 알기용으로만 읽기엔 너무 핵심 정보들이 많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만 읽으면 미래의 윤곽이 그려질 정도다. 이제 대한민국 기업들도 제법 '세계적'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다. 외국에 나가 삼성이나 LG를 말하면 'Good Company'라는 대답이 돌아오곤 한다. 그러나 'good'이미지를 심어주는 효과적인 마케팅 만으로 살아남던 시대는 끝났다. 원천기술의 보유와 미래를 내다보는 식견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이 책은 꼭 한번! 정말! 읽어야 할 책이다. 일반인들에겐 우리가 쓰는 핸드폰의 실체에 대해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고, 관련 업계 종사자들에게는 현재를 반성하고 자세를 가다듬게 해준다. [애플 vs 구글]을 통해 Global Leading Korea를 만드는 초석을 세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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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 이야기
베르나르 키리니 지음, 임호경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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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은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듯한 베르나르 키리니의 상상력을 질투하며 왜 그보다 먼저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한탄할 것이다. 확실히 그는 재능 있는 작가다. 특허를 받아도 좋을 만큼!'라는 권위있는 프랑스 문학잡지 Le Magazine Litteraire의 평처럼 베르나르 키리니의 상상력은 독보적이었다. 탄탄한 전개와 독특한 발상, 기묘한 연결고리,,, [육식 이야기]는 문학을 구성하는 모든 필요충분을 갖춘 하나의 '예술 작품'이었다.

 

서로 다른 두 가지 에피소드를 교차시켜 서술하거나 개별 토막들이 결국 종합되는 구성에 관성화된 나는 어리석게도 책을 읽는 내내 이 책이 단편집일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심지어 [밀감]의 오렌지 아가씨와 [아르헨티나 주교]의 주교가 말미에 그 어떤 개연성으로 엮일 거라는 기대마저 했었다. 그러나 [육식 이야기]는 '서문'의 이름을 단 '고인들의 목록'을 포함한 총 열 다섯 편의 이야기들이 실린 단편집이었다. 

 

그 중 단연 인상깊은 것은 저자가 오렌지를 까는 한 여자를 보고 구상했다는 [밀감]이다. 칼에 베인 괴물의 등이 악어가죽 같다는게 일반적인 상상력으로 만들어내는 극한 상태의 '피부'일까!  여기에는 온 몸이 '오렌지'인 여자가 등장한다. 이 여자는 주스를 마시고 나면 향이 감도는 유리 잔만 남듯, 한 껍질 한 껍질 조심스럽게 벗겨 신비를 풀고 나면 방 안 가득 오렌지 향만을 남긴다. 또 하나 특징적인 이야기는 [기름 바다]다. 기름이 유출된 바다의 美에 빠진 한 남자가 있다. 아주 운 좋게 간혹 볼 수 있는 이 아름다운(?) 광경을 보기 위해 이 남자는 기름 유출 현장을 보러 다닌다. 이미 벌어진 일을 아름답게 해석하자는 궤변도 펼쳐 놓는다. 책의 제목과 같은 [육식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 걸작이다. 파리지옥과 식물학자의 애증을 그린 이 이야기는 책을 통틀어 가장 괴기스럽지만 마지막 반전은 마치 추리 소설을 읽는 듯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이렇겠지 싶으면 역시 이렇게 끝나고 저렇겠지라고 생각하면 저렇게 끝나는 '뻔한' 소설이 답답한 사람과  한정된 사고에 갈증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육식 이야기]는 필독서라 하겠다. 열 다섯 편을 전부 읽는 것 만으로도 상상력의 역치가 무한 상승하는 짜릿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해결되지 않는 궁금증도 있다. 서로 다른 이야기에 자꾸 등장하는 '피에르 굴드'는 누구일까? 폴 오스터 [뉴욕 3부작]의 3D 인물 구성처럼 키리니의 다른 소설들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 걸까? 혹, 저자의 자아를 표현한 걸까? 지극히 유럽스럽고 의뭉스러운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 당장 그의 다른 작품들을 섭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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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철학의 뿌리는 내게 있다 - 나는 책을 통해 여행을 한다
윤정은 지음 / 북포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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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새침해 보였다. 다른 작가들과 달리 자신의 책을 참석자들에게 풀지(?)도 않았다. 이후 일정이 있다며 일찍 자리를 뜨는 바람에 질문할 시간도 없었다. 올 봄에 있었던 한 북 콘서트에서의 일이다. 한 마디로 그녀의 첫 인상은 긍정적이지 않았다. 또, <하이힐 신고 독서하기> <20대 여자를 위한 자기 발전 노트>등 20대 여성들을 타깃으로 하는 책을 주로 냈던 그녀에게 '철학'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 이 책은 그 생각을 180도 바꿔주었다.

 

<내 철학의 뿌리는 내게 있다>는 책을 통해 사유하고 얻어진 윤정은 작가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작품이다. 각 챕터마다 자신의 일상 혹은 생각과 그에 얽힌 의미있는 책에 대한 해설이 곁들어져 있어 마치 그녀의 독후감 리스트를 보는 것 같다.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의 윤정은 판이랄까? 그래서 더 쉽게 저자의 깊은 사고에 접근할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이 자기의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 그가 그들과는 다른 고수의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과 맞추어 걸어가도록 내버려두라. 그 북소리의 음률이 어떻든, 또 그 소리가 얼마나 먼 곳에서 들리든 말이다. 그가 꼭 사과나무와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로 성숙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그가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말인가?" (151p)

 

예전에 인생을 나뭇잎에 비유한 글을 봤다. 제 각기 다른 모양의 잎들이 모여 한 그루의 나무가 이뤄지는데 우리네 삶은 이 한 그루를 이루는 각각의 나뭇잎이라는 것이다. 즉, 나무(사회)라는 틀에 있지만 다른 나뭇잎(타인)들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나의 잎새(나)를 바꿀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 구절도 그런 뜻이 아닐까? 모든 사람은 서로 다른 얼굴과 재능을 갖고 태어난다. 서로 다른 잎새를 가진 나뭇잎들처럼,,,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타인의 눈에 근사해 보이기라는 '목표'를 위해 살아간다.

 

<내 철학의 뿌리는 내게 있다>를 읽으면서 '자신의 봄'을 지키며 자신의 '잎새'데로 살아가는 저자 윤정은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다양한 경험이 있어 '있어 보이는' 직업을 갖을 수도 있고, '예쁘다'는 소리를 듣는 만큼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해 편안하게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북소리에 따라 '진정한 작가'가 되기 위해 책을 찾고 사유한다. 그리고 글로써 풀어낸다.

 

선택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내게 <내 철학의 뿌리는 내게 있다>를 통해 본 저자 윤정은의 모습은 그 어떤 채찍보다 쓰렸다. 아마도 난 입으로는 '대중의 심금을 울리는 작가'를 외쳤지만 내심 '돈도 잘 벌고 이름을 날려 허접데기 글이 나와도 잘나가는 작가'가 되고 싶었나보다. 그래서 보물을 대하듯 책을 사랑하는 그녀의 자세에 감동받고, 깊이 사유하는 태도에 나 자신을 반성했던 것 같다.  

 

50여권이 넘는 양서들과 가슴 속에 평생 남을 만한 어구들이 매 페이지마다 등장하는 윤정은 작가의 책. <내 철학의 뿌리는 내게 있다> 진로 따위의 고민으로 하루하루가 힘겹다면,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내일이 두렵다면, 이 책을 꼭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매일매일 방황하는 내 자신을 달래주자. '내 철학의 뿌리는 내게 있다.'고. 더불어 점점 내공을 쌓아가는 윤정은 작가의 다음 작품들도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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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 쇼퍼 - Face Shopper
정수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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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때 '성형'을 계획을 세웠다가 예상보다 일찍 회사로부터 호출당하는 바람에 무산됐다는 동기의 말에 뜨악했던 기억이났다. 의료 관광 주요 마케팅 포인트가 '성형'이라는, 관련 업계 종사자의 말도 생각났다.'약간 의학의 도움을 받았다.'며 성형 사실을 고백하는 연예인들을 칭찬해주는 신문 기사들도 떠올랐다.

 

[페이스 쇼퍼], 제목부터 발칙하다. 칙릿 소설 전문가답게 작가 정수현은 20~30대 여성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성형'이라는 주제를 아주 경쾌하게 그러나 너무 가볍지 않게 - 생각할 문제까지 던져주며 - 이야기를 풀어냈다. 탄탄한 내용을 뒷받침하는 성형 전문용어들이 작가의 성형 수술 의혹을 불러일으킬만큼 상당히 디테일하다. 그러나 이는 에필로그에 드러난 것 처럼, 실제 의사들에 대한 작가의 끈질긴 인터뷰 때문에 가능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전반부는 성형외과 전문의, '나'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끝까지 이름을 밝히지 않으려는지 '내 병원'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들이 주를 이뤄 '나'의 에세이 같다는 느낌이 든다. 중반부 에서는 로맨틱 소설의 냄새가 난다. 시크한 성형외과 여의사와 넉살좋은 소아과 남자의사가 등장하며 주인공 '나'의 이름도 밝혀진다. 각자의 사연과 트라우마가 밝혀지며 에피소드를 만들 준비를 한다. 종반에서는 추리 소설을 읽는 듯 하다. 두 의사와 다른 인물들이 만들어 내는 일들 그리고 그것의 해결과정이 나타난다. 설마 이렇게 확연히 범인을 드러낼까 싶어 비틀어 생각하던 내 추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사건이 밝혀지는 과정은 단순하지만 흥미롭다.

 

'성형'이라는 책의 주제가 '여자' '질투' '연예인' 얼굴' '돈' '수술' '아름다움'과 같은 뻔한 이야기들을 연상시킬 수 있다. 그러나 [페이스 쇼퍼]는 무수한 아포리즘을 남길 만큼 무게있는 생각들이 가득하다. 우선, '성형'에 대한 단상이 있다.

"성형도 쇼핑이라는 말 맞아요. 하지만 영리를 목적으로, 단지 이윤만을 위해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올려 아름다워지고 싶은 여성들을 이용했다는 건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성형은, 여성을 행복한 천국으로 안내하기도 하고 불행한 지옥으로 안내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325p)" "성형은 콤플렉스를 고쳐줌으로 인해 수동적인 자세를 능동적으로 바꾸준다는 겁니다.(350p)" 에서 처럼 '성형'은 단순히 '신체의 일부를 고침'을 넘어선 의미를 갖는다. 즉, 물리적인 수술(혹은 시술)은 궁극적으로 내적 의지와 삶에 대한 자세까지 변화시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美'에 대해 여배우들의 자세도 다시 곱씹게 한다."얼굴이 확 녹더라도 새살이 돋아 예뻐질 수만 있다면 황산이라도 뒤집어쓰는 게 여배우야.(61p)" "여자는 무섭지만, 여배우는 더 무서워요. 성형으로 지옥의 문턱까지 다녀온 톱스타 여자는 더욱더 상상을 초월하죠.(340p)"에서 여배우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탐닉은 실로 굉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용에 등장하는 - 실제로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듯한 - 여배우들의 성형외과에 대한 독점욕과 젊음에 대한 시기는 생각보다 더 대단했다. 그러나 그 수위에 대한 놀라움 이전에 외모로 연예인을 평가하는 시선이 느껴져 씁쓸했다.

 

그리고, '환자에 대한 의사들의 자세'이다. "그 환자가 왜 그 수술을 하고 싶어 하는지, 수술을 결심하기까지 어떤 절박한 상황이 있었는지, 또 수술을 한다면 그 절박한 상황이 나아지는지, 수술만이 유일한 방법인지, 그런 건 묻지 않았겠죠? 물론 환자 자체를 이해하려고 들지도 않았고요.(109p)" 이 말을 접하기 전까지 의사들은 '환자가 하자는데로 해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이윤이 목적이든 아니든 간에 상관없이. 하지만 의사들은 사람들의 '병'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그들의 삶을 치유하는 일종의 심리치료사라는 생각을 했다. 한마디로, 환자들의 본질적 문제를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행하는게 진정한 의술이 아닐까? "환자가 원하는 수술과 환자에게 적합한 수술. 과연 어떤 게 옳은 것일까.(242p)"라는 '나'의 말처럼.

 

마지막은 세상에 '대처하는' 자세이다. 본문에 등장하는 연예인 K양처럼 자신의 이득을 위해 대중도, 의사도, 병원도, 돈도, 사람도 이용할 수 있는 세상이다. 하지만 해피엔딩의 결말은 "남에게 상처 주는 일을 하는 건 나쁠 뿐 아니라 멍청하기도 한 거야.(345p)"라는 소아과 의사의 말이 절대 옳다는 걸 알려준다.

 

'고등학교 졸업 선물은 쌍꺼풀, 대학교 입학 선물은 코'라는 말이 쉬운 시대가 왔다. 강남, 압구정, 청담동은 유명한 성형외과들이 가득해 성형 거리라고도 한다. 성형 관련된 온라인 모임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따라서, '통과의례'처럼 되버린 '성형'에 대한 올바른 접근이 더할 나위없이 중요한 때이다. 그리고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재고해야 한다. 세상이 '견적내기'를 종용한다고 생각하는가. 성형 거리를 방문하기 전에 이 책부터 읽어보자. 지금 우리가 방문할 곳은 병원이 아니라 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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