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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 쇼퍼 - Face Shopper
정수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1월
평점 :
휴가 때 '성형'을 계획을 세웠다가 예상보다 일찍 회사로부터 호출당하는 바람에 무산됐다는 동기의 말에 뜨악했던 기억이났다. 의료 관광 주요 마케팅 포인트가 '성형'이라는, 관련 업계 종사자의 말도 생각났다.'약간 의학의 도움을 받았다.'며 성형 사실을 고백하는 연예인들을 칭찬해주는 신문 기사들도 떠올랐다.
[페이스 쇼퍼], 제목부터 발칙하다. 칙릿 소설 전문가답게 작가 정수현은 20~30대 여성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성형'이라는 주제를 아주 경쾌하게 그러나 너무 가볍지 않게 - 생각할 문제까지 던져주며 - 이야기를 풀어냈다. 탄탄한 내용을 뒷받침하는 성형 전문용어들이 작가의 성형 수술 의혹을 불러일으킬만큼 상당히 디테일하다. 그러나 이는 에필로그에 드러난 것 처럼, 실제 의사들에 대한 작가의 끈질긴 인터뷰 때문에 가능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전반부는 성형외과 전문의, '나'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끝까지 이름을 밝히지 않으려는지 '내 병원'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들이 주를 이뤄 '나'의 에세이 같다는 느낌이 든다. 중반부 에서는 로맨틱 소설의 냄새가 난다. 시크한 성형외과 여의사와 넉살좋은 소아과 남자의사가 등장하며 주인공 '나'의 이름도 밝혀진다. 각자의 사연과 트라우마가 밝혀지며 에피소드를 만들 준비를 한다. 종반에서는 추리 소설을 읽는 듯 하다. 두 의사와 다른 인물들이 만들어 내는 일들 그리고 그것의 해결과정이 나타난다. 설마 이렇게 확연히 범인을 드러낼까 싶어 비틀어 생각하던 내 추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사건이 밝혀지는 과정은 단순하지만 흥미롭다.
'성형'이라는 책의 주제가 '여자' '질투' '연예인' 얼굴' '돈' '수술' '아름다움'과 같은 뻔한 이야기들을 연상시킬 수 있다. 그러나 [페이스 쇼퍼]는 무수한 아포리즘을 남길 만큼 무게있는 생각들이 가득하다. 우선, '성형'에 대한 단상이 있다.
"성형도 쇼핑이라는 말 맞아요. 하지만 영리를 목적으로, 단지 이윤만을 위해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올려 아름다워지고 싶은 여성들을 이용했다는 건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성형은, 여성을 행복한 천국으로 안내하기도 하고 불행한 지옥으로 안내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325p)" "성형은 콤플렉스를 고쳐줌으로 인해 수동적인 자세를 능동적으로 바꾸준다는 겁니다.(350p)" 에서 처럼 '성형'은 단순히 '신체의 일부를 고침'을 넘어선 의미를 갖는다. 즉, 물리적인 수술(혹은 시술)은 궁극적으로 내적 의지와 삶에 대한 자세까지 변화시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美'에 대해 여배우들의 자세도 다시 곱씹게 한다."얼굴이 확 녹더라도 새살이 돋아 예뻐질 수만 있다면 황산이라도 뒤집어쓰는 게 여배우야.(61p)" "여자는 무섭지만, 여배우는 더 무서워요. 성형으로 지옥의 문턱까지 다녀온 톱스타 여자는 더욱더 상상을 초월하죠.(340p)"에서 여배우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탐닉은 실로 굉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용에 등장하는 - 실제로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듯한 - 여배우들의 성형외과에 대한 독점욕과 젊음에 대한 시기는 생각보다 더 대단했다. 그러나 그 수위에 대한 놀라움 이전에 외모로 연예인을 평가하는 시선이 느껴져 씁쓸했다.
그리고, '환자에 대한 의사들의 자세'이다. "그 환자가 왜 그 수술을 하고 싶어 하는지, 수술을 결심하기까지 어떤 절박한 상황이 있었는지, 또 수술을 한다면 그 절박한 상황이 나아지는지, 수술만이 유일한 방법인지, 그런 건 묻지 않았겠죠? 물론 환자 자체를 이해하려고 들지도 않았고요.(109p)" 이 말을 접하기 전까지 의사들은 '환자가 하자는데로 해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이윤이 목적이든 아니든 간에 상관없이. 하지만 의사들은 사람들의 '병'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그들의 삶을 치유하는 일종의 심리치료사라는 생각을 했다. 한마디로, 환자들의 본질적 문제를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행하는게 진정한 의술이 아닐까? "환자가 원하는 수술과 환자에게 적합한 수술. 과연 어떤 게 옳은 것일까.(242p)"라는 '나'의 말처럼.
마지막은 세상에 '대처하는' 자세이다. 본문에 등장하는 연예인 K양처럼 자신의 이득을 위해 대중도, 의사도, 병원도, 돈도, 사람도 이용할 수 있는 세상이다. 하지만 해피엔딩의 결말은 "남에게 상처 주는 일을 하는 건 나쁠 뿐 아니라 멍청하기도 한 거야.(345p)"라는 소아과 의사의 말이 절대 옳다는 걸 알려준다.
'고등학교 졸업 선물은 쌍꺼풀, 대학교 입학 선물은 코'라는 말이 쉬운 시대가 왔다. 강남, 압구정, 청담동은 유명한 성형외과들이 가득해 성형 거리라고도 한다. 성형 관련된 온라인 모임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따라서, '통과의례'처럼 되버린 '성형'에 대한 올바른 접근이 더할 나위없이 중요한 때이다. 그리고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재고해야 한다. 세상이 '견적내기'를 종용한다고 생각하는가. 성형 거리를 방문하기 전에 이 책부터 읽어보자. 지금 우리가 방문할 곳은 병원이 아니라 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