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혁명의 구조 - 출간기념50주년 제4판 까치글방 170
토머스 S.쿤 지음, 김명자.홍성욱 옮김 / 까치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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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심지어 친정에) 있는 이 책을 손에 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마도 작가라는 명함을 파고 글로 밥벌이를 하던 시절, 사두었던 책이 아니었을까. 추측이 맞다면, 지금으로부터 강산이 딱 한번 변하기 전, 그러니까 2010년에 구입한 책이다. 책을 사두고, 봐야지, 봐야지.. 했지만 언젠가 보겠지, 보겠지.. 하면서 미뤄뒀던 책. 부채감이라고나 할까. 그 책을 이제야 손에 들고 한 장씩 넘기며 읽었다. 정독을 하고 싶었으나 통독을 하고 말았지만.

                            

책 <과학혁명의 구조>는 말 그대로 ‘과학혁명이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다룬다. 토마스 쿤은 과학혁명을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했다. 그럼 패러다임은 무엇일까? 정권이 바뀌면서 등장했던 창조경제, 4차 산업혁명 등의 개념을 언급할 때 우리는 보통 ‘패러다임’이라고 해왔다. 쿤에게 패러다임이란, 사회 구성원들에 공유되는 신념, 가치, 기술 등을 말한다. 특히 그는 과학자 사회 안 에서의 범위로 한정해 설명한다. 결국 책에서 말하는 ‘과학혁명’이란 ‘기존의 과학적 발견을 파괴하는 과정’ 즉 ‘패러다임의 변화’로 정의할 수 있겠다.

 

쿤은 과학의 발전을 세 단계로 나눠 설명한다. 현재 믿고 따르는 이론을 정상과학(패러다임이라고도 할 수 있다)이라고 한다. 이 정상과학 안에서 과학자들은 뚜렷하게 밝혀진 사실, 혹은 예측 가능한 사실, 또는 조금 더 명확하게 개념을 파악하기 위한 연구 등을 진행한다. 일종의 과학 활동이다. 그 과정에서 ‘어? 원래 알던 것과 다른데?’라며 기존 명제의 오류를 찾게 된다. 쿤은 이것을 ‘위기’라고 명명했다. 이 위기는 기존 이론에 대한 의심과 연구를 만들어내며 곧, 새로운 이론을 등장시킨다. ‘NEW 정상과학’의 탄생이다. 따라서 오류의 발견과 새로운 이론이 등장하기까지의 시간을 쿤이 설명하는 ‘과학혁명’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 정리하면 과학은 <정상과학1 > 위기 봉착 > 과학혁명 > 정상과학2 탄생>의 과정으로 진행된다.

 

이 책의 가치는 무엇일까? 고통스럽게 300p를 읽으며 느낀 바로는 실제와 이론의 불일치를 파악하고 새로운 이론(혹은 원리, 혁명의 과정)을 제시했다는 점이라고 본다. 물리학을 전공한 쿤은 사실 학부시절 과학에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다만 박사 논문을 준비하며 ‘수용된 견해’라고 불리던 과학관 – 논리경험주의적 과학철학에 대한 이론 - 이 실제와는 다르다는 걸 알았다고 한다. 당시 과학관은 경험에 의거한 원리를 중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차이를 학부때 인지한 쿤은 박사 졸업 후 코페르니쿠스에 대해 연구해 <코페르니쿠스 혁명(1957)> 발간했다고 과학사학자로 자리매김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결론적으로 경험을 중시한다는 당시의 과학이론과 과학이 개념을 정립하며 발전해가는 과정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리라. 그의 용어를 빌리자면, 이해에 대한 패러다임 변화를 경험하며 과학사를 꿰뚫는 관점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으로 읽힌다. 어쩌면 과학사에 대한 이런 과점은 전 문명에도 적용할 수 있는 원리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매우 고통스럽게 읽었다. 무언가를 썼지만 확신도 없다. 번역 핑계를 대고 싶다. 책은 한글인지 영어인지 알 수 없는 문장으로 가득하다. 원문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고 싶었던 걸까. 세상에 이런 책이 있을까 싶은 번역에 휘둘려 열었다 닿기를 반복했다. 여건이 된다면 차라리 원문을 읽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1월 토론도서가 아니었다면 절대 읽고 쓰지 못했을 것이다.(또 하필 1월 도서라서, 이걸 안읽는다면 올해 독서가 모두 어그러질 것만 같은 강박에 시달렸기 때문인지도) 하지만 또 1월 토론도서인 덕분에 이 어려운 책을 읽어냈다. 뭐라도 쓸 수 있을 정도로 읽어낸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다.

+ 덧, 매끄러운 번역으로 개정판이 나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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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시간 여행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고상숙 옮김 / 북레시피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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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은 미래 세상 - NAS - 에서 시작한다. 피부색(Skin Color)에 따라 사람은 ST1~ST10으로 분류된다. 체제에 저항하는 사람은 죄질에 따라 '추방' 또는 '삭제' 당한다. 추방이 기억이 사라진채 또 다른 세상으로 내던져저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이라면, 삭제는 증기처럼 사라지는 일이다. 아드리안 스트롤이 펜스보로 고등학교에서 졸업생 대표로 연설을 한다. 그녀의 졸업연설은 예상을 뛰어넘는 내용이었고, 바로 그 자리에서 소녀는 체포되고 만다. 이제 소녀는 반역자로 분류되어 80년 전의 과거로 '추방'당한다. 1959년 위스콘신 주의 작은 마을, 소녀는 이제 '메리 엘렌 엔라이트'로 살아야 한다.

소설 <위험한 시간 여행(원제 Hazards of Time Travel)>은 1938년생 미국 작가, 조이스 캐롤 오츠의 작품이다. 58편이 넘는 작품을 발표하고 다양한 작품상을 수상한 바 있는 그녀는,미국에 생존하는 가장 뛰어난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기도 한다. 그녀는 책에서 미래의 미국을 억압적인 디스토피아 사회로 설정한다. 피부색에 따른 구분, 항상 감시하는 정부, 추방 또는 삭제라는 형벌. 그 파괴성은 아드리안 스트롤(또는 메리 엘렌 엔라이트)를 통해 그려진다.

작가는 SF소설의 문법에 어울리는 소재 두 가지를 활용한다. 첫째는 시간여행이다. 2039년의 미래에서 형벌을 받아 와버린 1959년의 세상. 책은 소녀의 카오스적 상황을 설명하는 데 상당부분 할애한다. 마이크로칩으로 일부의 기억만 사라진 아드리안은, 미래를 '알고'도 있지만 현실을 '살기'도 해야한다. 그런데 혼란스러움은 예상외로 단순하게 마무리되고 만다. 탈출을 계획했지만 실패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삶을 영위하려는 주인공, 종국에 이런 생각을 밝힌다. "삶은 생각이 아니고, 투영되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고, 삶은 현재의 그것이며 TV에 비치는 것처럼 항상 지금이다. (P.378)"라고. 즉, 전복적 시도를 반복하며 추방의 상태를 벗어나려던 주인공은 갑자기 현실순응주의자로 변하면서, 책은 미래에서 과거로 단 한차례 시간여행만 이뤄질 뿐, 다른 시점의 시간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큰 바탕에서 다양한 시점이동과 혼란스러움이 가중됐다면 디스토피아 사회가 더 피부로 와닿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책에는 아드리안이 과거 세상에서 사랑하고, 믿고, 의지하는 인물이 한 명 더 등장한다. 웨인스코샤 대학의 심리학과 조교수 울프만 박사다. 아드리안은 울프만을 보자마자 '동일한' 상태임을 직감한다. 우여곡절 끝에 둘은 믿고 의지하는 사이가 되는데, 울프만 박사가 아드리안에게 이런 말을 한다. 바로 여기서 작가는 두번째 장치가 등장한다. "여기 제9구여, '행복한 곳'이라고 부르는 이곳은 다 가상이야. 난 너의 친구야. 하지만 동시에 나는 컴퓨터 전략국의 연구원이기도 해. (중략) 너도 깝박 넘어갔지? 추방자들이 다 그래! 그렇게 믿었던 거는 죄책감 때문이고 또 순진해서야. 제9구역은 가상이라고. 실재가 아니야. 컴퓨터 전략국의 연구진으로 내가 이 가상 현실 세팅 작업을 직접 했어. 1959~60년을 배경으로 위스콘신, 웨인스쿄샤 주립대학 복제판을 만들어낸 거지. 이곳은 지도에 존재하지 않아. 컴퓨터 전략국의 지도상에만 있지. 정말 멋지지. 공간과 시간을 완벽하게 현실과 맞는 축도로 만들었으니까. (중략) 사실을 말하면 아드리안, 너는 아직 청소년 규율부에 수감되어 있어. 넌 뉴저지를 떠난 적이 없다고. 너는 지난 8개월 동안 혼수상태나 최면 뭐 그런 상태에세 계속 그곳, 아니 여기 있었던 거야. 그곳에서 그들이 너에게 영양분을 공급하고 또 카테터를 통해 비워주고 있지. 그리고 네 부모님에겐 아무 통보도 해주지 않았어. 부모님은 당신들이 뭔가 잘못해서 네가 사라진 거라고 생각하며 죄책감을 느끼고 계실 거야." 바로 추방당한 세상은 사실 '가상현실'이라는 말이다. 영화에서 봤던 수액 속에 잠긴 인간, 그 속에서 또 다른 세상에서 시간을 보내는 자아라니. 아드리안은 물론 독자도 혼란스럽기 시작한다. 그럼 1959년은 과거가 아니었던건가? 미래에서의 추방은 수액에서의 시간을 말하는 건가? 그럼 울프만은 왜 탈출을 계획하는 거지?

책은 아드리안(또는 메리 엘렌 엔라이트)의 심리묘사에 지면의 상당부분을 할애한다.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곳에 내던져졌다는 외로움, 동일한 처지라는 울프만을 봤을 때의 반가움, 그에게 자신을 노출시키고 싶은 간절함, 그에 대한 사랑까지. 17세 고등학생의 풋풋하고 서툰 이런 모습들은 주인공의 심적 어려움을 알기에는 충분하다. 그렇지만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리는 데는 실패한 것 같다. 미래에서 과거로 왔다는 '시간여행' 설정은 가상현실을 등장시키며 개연성을 떨어뜨렸고, 가혹한 형벌같던 추방과 삭제는 '가상현실일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통해 허무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자아란 기능적으로 통합된 반응체제를 대변하는 기제일 뿐이다.

스키너 <과학과 인간 행동>

작가의 의도는 마지막에 이해가 된다. 탈출을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만 주인공은 마지막에 "나는 '여기가 나를 위한 곳, 지금이 나를 위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p.378)"며 현실순응적 자세를 취한다. 다소 맥이 빠지는 이 대사는 책에서 줄곧 등장하는 '행동주의', '자유의지', '스키너'와 버무려지면서 '지금을 살아라'라고 말하는 듯하다. 조이스 캐롤 오츠의 철학을 녹여낸 부분이 아닐까? <위험한 시간 여행>은 SF소설이지만 다소 로맨틱하고, 미래 세계에 대한 생각보다 '현실을 어떻게 봐야하는지'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SF장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도전해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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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은유 지음, 임진실 사진 / 돌베개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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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가끔 힘에 부쳐 '못 하겠다'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 목구멍까지 울분이 차올라 싫은 소리라도 뱉으면, 소위 어른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런 것도 못 버티면 앞으로 뭘 할 수 있겠어." 상황에 대한 불평은 곧 잘 '무능'으로 귀결되고, 그 희한한 논리에 말문이 막힌 당사자는 '무능한 자'가 되버린다. 이해받지 못하는 현실과 부조리 앞에서 억울함을 토로하는 법은 무엇일까,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닥쳤을 때 어디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까. 이런 것들에 대해 우리는 보지 못했고, 듣지 못했고, 배우지 못했다.


"내일 난 제정신으로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요? (김동준군의 트위터 기록)"


은유 작가의 책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은 김동준 군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인터뷰집이다. 특성화고 졸업 후 CJ제일제당에서 현장실습생으로 근무하던 동준 군은 2014년 1월, 고3의 나이에 죽음을 선택했다. 일터 괴롭힘 때문이었다. 하지만 스스로의 선택이라는 이유로 동준군의 죽음은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지는 듯 했지만,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산재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책의 1부 '김동준'에는 김동준 군의 유가족(어머니와 이모님)과 동준군의 사건을 담당했던 노무사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그리고 2부 '김동준들'에는 또 다른 현장실습생이었던 이민호 군의 아버지와 특성화고 선생님, 학생들의 인터뷰가 등장한다.


책은 여러 화두를 던진다. 첫째, 편견이다. 사람들은 동준군의 죽음에 대해 '특성화고' 혹은 '자살'이라는 수식어로 그의 맥락을 쉽게 추측하고 단정짓는다. 가정은 불우했을 것이고, 학교에는 자주 가지 않던 학생일 것이고, 부모님은 자주 싸우거나 이혼한 상태일 것이라는 생각들 하지만 동준군은 그 반대였다. 또 특성화고에서 이렇게 부조리한 문제들이 있다면서 왜 관계자들은 가만히 있는 걸까? 여기에 대해 저자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일에 소홀했다고 말한다.


"그동안 거리에서 장애인을 못 봤다면 장애인이 없어서가 아니라 장애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만한 여건이 아니라서 그렇듯이, 지금까지 성폭력 피해자를 못 봤다면 그런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사실을 말해도 들어주는 사회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듯, 특성화고 학생도 그런 사회적 분위기와 맥락에 따라 자연스레 비가시화된다. (중략) 대개의 편견이 그러하듯 '잘 모름'에서 생겨나고, 편견은 '접촉 없음'으로 강화된다. (중략) '특성화고 학생'이나 '현장실습생'이라는 분류 코드의 구성원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일은 우리 공동체에서 진지하게 시도되지 못했다." (p.10~11)


둘째, 노동 환경에 대한 생각. 동준군의 죽음이 단지 '청소년'이기에 의미있는 걸까? 저자는 동준군과 같은 청소년 역시 '동료 시민'으로 볼 때 문제의 관점이 달라진다고 말한다. 경험과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적은 그들에게 가장 '기피하는' 업무를 시키고 '방치하는' 노동 시스템이 문제인 것이다. 즉, 노동 환경이 나쁘다면 그건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나쁜 것이다. 여기에 대해 저자는 "청소년 노동에 대해 ‘안쓰럽다’ 혹은 ‘보호해야 한다’고 막연히 생각하던 나 같은 어른의 입장이 왜 문제인지를 알았다. 그건 청소년을 동료시민으로 보지 않는 ‘친절한 차별주의자’의 태도에 다름 아니다.(p.27)"라고 일갈한다.


동준군은 너무 괴로운 나머지 담임 선생님께 '무섭다'는 문자를 보내고 스스로 목숨을 내던졌다. 동준군의 친구, 정래관 군은 인터뷰에서 "저라도 담임선생님께 먼저 고민을 이야기했을 것 같거든요. 왜냐하면 회사나 상사에게 이야기하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더 큰 문제를 불러왔을 거라 생각해요. 회사 사람들이 다 알게 되면 보호를 받지 못할 테니까요."라고 말했다. 취업률을 따지는 학교에서는 '기업'으로 아이들을 '배출'하기 바빴다. 그들이 회사에서 어떤 경험을 하게 될 것이고, 위험하거나 곤란한 상황이 되었을 때의 방법에 대해 알려주지 않는다. 여기서 셋째, 자신들을 돌볼 권리다. 세월호의 학생들은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에 차가운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동준군은 괴로운 나머지 선생님께 문자를 보내고, 트위터에 글을 남기는 것 말고는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동준군의 이모 김수정씨의 말 “싫으면 하지 마. 넌 하기 싫은 것을 안 할 권리가 있어. 기존의 잣대로 널 재려고 하지 마. 그 자가 틀렸을 수도 있어. 다른 이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넌 자유롭게 네가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할 수도 있어. 때론 가족도 너 자신보다 중요하진 않아.(p.95)"라는 말이 마음에 밖힌다.


팟캐스트에서 은유 작가는 '주제가 무겁다보니 책을 쓰기가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에 "힘드니까 해야하는거 아닌가, 이런 삶을 산 분도 있는데 듣고 쓰는 건 해야하겠더라."고 말했다. 2016년 5월 26일,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참변을 당한 김군도 역시 동준 군과 비슷했다. 가장 기피하는 업무에 그를 몰아넣은 어른들은 그를 방치했다. 모두의 책임이고 잘못이다. 우리 모두가 만들어 낸 죽음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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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독서 - 개인주의자 문유석의 유쾌한 책 읽기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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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후반, 주말 점심과 저녁을 모조리 스파게티와 피자, 그러니까 이탈리안 식당에서 처음보는 남성과 해결하던 때가 있었다. 소개팅을 정주행하며 맛없는 음식에도 입맛에 맞는다고 답하는 예의를 발휘하고, '걷는 걸 좋아한다'는 말에 눈치없이 석촌호수를 두 바퀴나 걷게 해도 미소를 잃지 않던 당시. 이제 그만할까 싶었는데 헛! 했던 사람이 있었다. 책을 좋아하고, 문학에 조예가 깊으며, 문화생활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정수리 머리숱이 부족해보이는 첫인상에 다소 실망했지만(이런 내가 너무 속물적으로 보여도 어쩔 수 없다), 그와 나눈 책 이야기는 너무 재밌었다. 두 시간이 넘게 서로의 추천도서에 대해 침을 튀며 얘기했고 한 영화의 장면들을 사시미 포처럼 분석하며 나눴다. 그는 여전히 내 기억 속에 '책 좋아하는 소갈머리 없는 남자'로 남아있다. (남편 미안)

문유석 판사의 <쾌락독서>를 읽으며 '그 남자'가 떠올랐다. 차이점이 있다면 저자는 유머까지 겸비했다는 것. 어릴 적 '야한 대목이 있는지'를 기준으로 소설을 탐독했다고 한다. 어른이 되어서는 '짜샤이 이론'에 따라 읽었단다. 짜샤이 이론이란 중식당 기본 반찬인 짜샤이가 맛 있으면 그 집 음식도 맛있다는 경험에 따라, 책 초반 30페이지를 읽고 괜찮다 싶으면 끝까지 읽는다는 그만의 방법이다. 혹시 어깨를 들썩이며 웃고 있는가. 짜샤이 이론에서 드러나듯 <쾌락독서>에는 문유석 판사의 '유머'가 가득하다. 문유석식 유머의 결정체를 소개한다. (세상을 염세적으로 보며 철학을 논하던, 대학시절의 선배들을 떠올리며 그가 하는 말)

지금 생각해보면 그 세상 이치에 통달한 심오한 철학자처럼 굴던

대학교 2학년, 3학년 선배들이 트와이스의 나연, 정연, 사나보다 어린 애송이들이었다.

이거야말로 심오한 인생의 진실 같기도 하다. (p.140)

그는 왜 책을 읽는걸까? "나는 그저 심심해서 재미로 읽었고, 재미없으면 망설이지 않고 덮어버렸다. 의미든 지적 성장이든 그것은 재미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얻어걸리는 부산물에 불과.(p.10~11)"하다고 말한다. 무릇 책이라고 하면 범우주적 교훈과 의미를 찾아내야 할 것 같은 '신성'에 도전하는 다소 건방진(?) 입장이아닐 수 없다. 나는 바로 여기서 무릎을 탁 치고 말았다. 어디 한 번 보자. 나는 재미없는 책을 읽으라고 하면, 몸을 사정없이 꼬며 책을 열고 덮기를 반복한다. 어디 이뿐인가. 재미없지만 꼭 읽어야만 하는 책 - 토론도서, 참고도서, 특히 업무용 책 - 을 읽으라고 하면, 가능한 끝까지 안 읽다가, 마지막 날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만 정독하고 본문은 휘리릭 기법으로 넘겨버린다. 내용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건 당연지사. 문제는 더 있다. 다 읽지 못했기에 언젠가 읽어야 한다는 '부채의식'에 사로잡히고 만다. 이제 그 책은 버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읽지도 않는 난감한 상황에 빠져 책장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는 슬픈 이야기. 이제 책장에 놓여있지만 내가 안읽을 것 같은 책을 보며 굳이 미안해하지 않으련다.

책에는 그럼 유머와 자신감만 있느냐. 그건 아니다. 저자는 "민주주의를 수호할 최후의 보루라는 곳들이 서열주의, 상명하복, 튀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 평판에 대한 두려움, 청탁문화, 아랫사람은 쥐어짜면서도 윗사람에게는 순종적인 이중성으로 얼마나 병들어 있는지를 다양한 내부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고발하고 있다.(p.210)"며 <불멸의 신성가족>을 언급하고 가능한 동료들(판사)에게 권한다고 한다. 일반인보다 객관적이라는 자기 확신을 점검하고 무오류성이라는 착각을 철폐하기 위해. 즉, 판사로서의 자기객관화를 위해 책을 읽는다는 설명이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로서의 일종의 직업적 고찰로 읽히는 부분이다. 게다가 저자는 가능한 법조계를 다룬 책들은 꼭 읽으려고 한단다. '무전유죄 유전무죄'를 들어온 한 사람으로서 판사가 이런 노력을 하고 있다니 아주 살짝 위로가 되기도 한다.

저자는 '책'의 특징도 설명한다. 정보가 넘쳐나는 미디어 시대에 왜 책을 읽어야 할까? 저자는 말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커피 두 잔 값으로 타인의 삶 중에서 가장 빛나는 조각들을 엿보는 것(p.183)"이라고. 인간의 비열함과 어리석음, 그악스러움은 공기와 같아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 반면 사람의 보석같이 반짝이는 순간들은 어떻게 드러나는가. 그걸 표현한 정수가 바로 '글'이며 이걸 엿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책'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연신 ㅋㅋㅋㅋ 하면서 읽었다. 250페이지가 조금 넘는 <쾌락독서>는 문유석 판사라는 사람의 매력에 빠져들고, 그가 읽었다는 책을 읽고 싶게 만다는 책이다. 종일 '문유석'이라는 사람을 찾아봤다. 다소 장난기 넘치는 사진 속 표정이 '역시'하며 감탄하게 된다. 요즘들어 이런 생각이 많이 든다. '일 잘하는 사람들이 글도 잘 쓰더라'는. 기생충박사 서민 교수가 그랬고(<서민의 개좋음>), 영어가르치는 박균호 선생님이 그렇고, 이번에 문유석 판사도 그렇다. 그러고보니 나도? 그렇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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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만삭스를 신고 차이나를 걷는 여자 - 어떻게 최고의 커리어를 얻는가
이은영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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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골드만삭스를 신고 차이나를 걷는 여자>는 글로벌하게 성공한 여성직장인의 에세이다. 주인공은 GLG 이은영 전무. 연대 영문학 전공, 미국 코넬대 대학원 언어학을 졸업하고, 이후 맥킨지, 골드만삭스, 리먼브러더스, SK그룹, 중국 안방보험까지 국내외 내로라하는 기업을 섭렵했다. 한 마디로 이 책은 저자가 직장을 선택하고 진입하고, 난관을 맞닦뜨리고, 헤쳐나가 다시 성공하는 '직장'을 중심으로 한 분투기다.

 

 

1장. DKNY와 프라다 그리고 맥킨지

2장. 프로들의 집합소, 골드만 삭스

3장. 역사의 현장, 리먼 브러더스

4장. 글로벌 기업이 되고 싶은 로컬 기업, SK그룹

5장. 마침내 신대류을 밟다, 안방 보험

<골드만삭스를 신고 차이나를 걷는 여자> 목차

 

 

저자 이은영은 여성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겪거나(생각하는) 유리천장을 익숙한 방식으로 헤쳐나간다. 각 기업에서 그녀는 동양인 여성으로서 여러 고초들을 겪는다.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방식을 선택해 해결했다고 책에서는 설명한다. 예를들어, 맥킨지 컨설턴트 시절 고객에게 머리채를 잡히는 수모를 당하고, 이를 방관하는 동료들에게 실망한다. 저자는 직접 매니저에게 불합리한 상황을 설명하고 프로젝트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결국 본인이 프로젝트에서 배제되고 만다. 또, 국내 대기업 임원시절 '사내정치'가 곧 '관계'를 의미하며 각종 '술자리'와 연결된다는 걸 알게된다. 저자는 '나도 한다 사내정치' 챕터에서 '술을 한 잔도 입에 대지 못해요'라고 말을함으로써 술자리를 피할 수 있게 됐고, 대신 부족해진 '잘 지낼 기회'는 외국어 등 자신의 강점을 활용했다고 설명한다. 너무 평이한 솔루션 아닐까. 직장에서 알고/보고/경험하는 유리천장 혹은 부조리를 글로벌하게 성공한 여성이 무언가 '특별한' 해법을 제시하길 기대했던 독자에게는 다소 김이 빠지는 마무리일 수 있겠다.

반면, 저자의 열정과 적극성은 누구에게나 매력적으로 보일테다. 책에 줄곧 등장하는 '점 뿌리기'는 '원하는 바를 좇아라'의 다른 말이다. 언어를 전공했지만 컨설팅 회사에 발을 내딛고, 기업을 직접 속속들이 파악해 딜을 하는 M&A에 손을 뻗고 이후 '차이니스월'이 존재하는 중국기업의 임원까지 이뤄냈다. 그녀는 "나는 알 수 없는 끌림에 의해 도전해보는 모든 행위를 점 뿌리기라고 말한다. 점 뿌리기는 계산이나 계획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이 점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명확한 선이 만들어질지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점 뿌리기기는 호기심, 도전과 맞닿아 있다.(p.149)"며 '마음이 원하는 바'를 좇으라고 한다. '하고싶은 걸' 하다보면 각각이 하나의 점이 되고, 여러 방면에 뿌려진 점들은 어느 순간 선으로 모이며 자신의 스펙과 경쟁력이 된다는 설명이다. 적극 공감한다. 각 순간마다 집중하고 열정적으로 몰입했던 무언가는 어느 순간 튀어나와 내 삶의 구원자가 되기도 한다.

Life is not fair. Deal with.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받아들이고 헤쳐나가길.)

이 책을 학생 때 읽었다면 어땠을까. 외국에 나가고 싶은 내 마음에 촉매제가 되지 않았을까. 책은 저자의 경험만큼 다양한 외국기업의 사례를 담고 있다. 들어가고 나오는 방법 뿐 아니라 자세와 삶에 대해서도 언급된다. 따라서 이 책은 해외 기업을 속속들이 알고 싶고, 글로벌한 커리어를 쌓고 싶은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더불어 '직장인'으로서의 '여성'을 적나라하게 아는 데도 효과적이다. 모든 사회초년생들에게도 한번쯤은 꼭 읽히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짧막하고 쉽게 술술 읽히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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