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은유 지음, 임진실 사진 / 돌베개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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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가끔 힘에 부쳐 '못 하겠다'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 목구멍까지 울분이 차올라 싫은 소리라도 뱉으면, 소위 어른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런 것도 못 버티면 앞으로 뭘 할 수 있겠어." 상황에 대한 불평은 곧 잘 '무능'으로 귀결되고, 그 희한한 논리에 말문이 막힌 당사자는 '무능한 자'가 되버린다. 이해받지 못하는 현실과 부조리 앞에서 억울함을 토로하는 법은 무엇일까,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닥쳤을 때 어디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까. 이런 것들에 대해 우리는 보지 못했고, 듣지 못했고, 배우지 못했다.


"내일 난 제정신으로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요? (김동준군의 트위터 기록)"


은유 작가의 책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은 김동준 군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인터뷰집이다. 특성화고 졸업 후 CJ제일제당에서 현장실습생으로 근무하던 동준 군은 2014년 1월, 고3의 나이에 죽음을 선택했다. 일터 괴롭힘 때문이었다. 하지만 스스로의 선택이라는 이유로 동준군의 죽음은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지는 듯 했지만,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산재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책의 1부 '김동준'에는 김동준 군의 유가족(어머니와 이모님)과 동준군의 사건을 담당했던 노무사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그리고 2부 '김동준들'에는 또 다른 현장실습생이었던 이민호 군의 아버지와 특성화고 선생님, 학생들의 인터뷰가 등장한다.


책은 여러 화두를 던진다. 첫째, 편견이다. 사람들은 동준군의 죽음에 대해 '특성화고' 혹은 '자살'이라는 수식어로 그의 맥락을 쉽게 추측하고 단정짓는다. 가정은 불우했을 것이고, 학교에는 자주 가지 않던 학생일 것이고, 부모님은 자주 싸우거나 이혼한 상태일 것이라는 생각들 하지만 동준군은 그 반대였다. 또 특성화고에서 이렇게 부조리한 문제들이 있다면서 왜 관계자들은 가만히 있는 걸까? 여기에 대해 저자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일에 소홀했다고 말한다.


"그동안 거리에서 장애인을 못 봤다면 장애인이 없어서가 아니라 장애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만한 여건이 아니라서 그렇듯이, 지금까지 성폭력 피해자를 못 봤다면 그런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사실을 말해도 들어주는 사회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듯, 특성화고 학생도 그런 사회적 분위기와 맥락에 따라 자연스레 비가시화된다. (중략) 대개의 편견이 그러하듯 '잘 모름'에서 생겨나고, 편견은 '접촉 없음'으로 강화된다. (중략) '특성화고 학생'이나 '현장실습생'이라는 분류 코드의 구성원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일은 우리 공동체에서 진지하게 시도되지 못했다." (p.10~11)


둘째, 노동 환경에 대한 생각. 동준군의 죽음이 단지 '청소년'이기에 의미있는 걸까? 저자는 동준군과 같은 청소년 역시 '동료 시민'으로 볼 때 문제의 관점이 달라진다고 말한다. 경험과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적은 그들에게 가장 '기피하는' 업무를 시키고 '방치하는' 노동 시스템이 문제인 것이다. 즉, 노동 환경이 나쁘다면 그건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나쁜 것이다. 여기에 대해 저자는 "청소년 노동에 대해 ‘안쓰럽다’ 혹은 ‘보호해야 한다’고 막연히 생각하던 나 같은 어른의 입장이 왜 문제인지를 알았다. 그건 청소년을 동료시민으로 보지 않는 ‘친절한 차별주의자’의 태도에 다름 아니다.(p.27)"라고 일갈한다.


동준군은 너무 괴로운 나머지 담임 선생님께 '무섭다'는 문자를 보내고 스스로 목숨을 내던졌다. 동준군의 친구, 정래관 군은 인터뷰에서 "저라도 담임선생님께 먼저 고민을 이야기했을 것 같거든요. 왜냐하면 회사나 상사에게 이야기하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더 큰 문제를 불러왔을 거라 생각해요. 회사 사람들이 다 알게 되면 보호를 받지 못할 테니까요."라고 말했다. 취업률을 따지는 학교에서는 '기업'으로 아이들을 '배출'하기 바빴다. 그들이 회사에서 어떤 경험을 하게 될 것이고, 위험하거나 곤란한 상황이 되었을 때의 방법에 대해 알려주지 않는다. 여기서 셋째, 자신들을 돌볼 권리다. 세월호의 학생들은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에 차가운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동준군은 괴로운 나머지 선생님께 문자를 보내고, 트위터에 글을 남기는 것 말고는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동준군의 이모 김수정씨의 말 “싫으면 하지 마. 넌 하기 싫은 것을 안 할 권리가 있어. 기존의 잣대로 널 재려고 하지 마. 그 자가 틀렸을 수도 있어. 다른 이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넌 자유롭게 네가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할 수도 있어. 때론 가족도 너 자신보다 중요하진 않아.(p.95)"라는 말이 마음에 밖힌다.


팟캐스트에서 은유 작가는 '주제가 무겁다보니 책을 쓰기가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에 "힘드니까 해야하는거 아닌가, 이런 삶을 산 분도 있는데 듣고 쓰는 건 해야하겠더라."고 말했다. 2016년 5월 26일,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참변을 당한 김군도 역시 동준 군과 비슷했다. 가장 기피하는 업무에 그를 몰아넣은 어른들은 그를 방치했다. 모두의 책임이고 잘못이다. 우리 모두가 만들어 낸 죽음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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