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 권여선 장편소설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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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 작가의 소설 <레몬>을 읽었다. 소설은 빠르게 읽히지만 서사는 복합적이다. 책의 초반이 사건의 범인을 추적해나가는 추리소설 느낌이라면, 중반부터는 다언과 상희를 주연으로 내세우며 사건을 '겪어낸'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담고있다. 권여선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범인을 잡고 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방식으로 비극을 해결하고 싶지 않았어요. 독자들이 불행을 겪은 인물들의 마음과 그들의 삶이 변화되는 과정에 공감하면서 각자 삶의 의미를 생각해보길 바랐습니다.”고 말했다.

소설 <레몬>은 매 챕터 서로 다른 인물의 시점으로 그려진다. 다언 - 태림 - 상희 - 다언 -... 독자는 다소 혼란스울 수 있지만 인물이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가감없이' 들려줌으로써 누군가의 감정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윤태림은 신정준을 만나 합리화하고 과거를 버텨내며 살아간다. 사건 후 17년만에 만난 한만우는 난쟁이 엄마와 여동생의 가장이지만, 육종에 걸려 한 쪽 다리마저 잘라내었다. 다언은 한만우를 만나 당시 정황을 따져물으려 했지만 17년 후의 한만우는 사건이 후 파괴되어있었다. 그마나 객과적인 인물은 상희. 상희는 다언을 여러 각도에서 회상한다. 밝았던 아이, 얼굴이 달라진 아이, 혜언이라는 사람을 곁에 두고 있는 아이. '불행을 겪은 인물들의 마음과 삶'이 인물들에게서 드러난다.

다언이 그 정점에 있다. 상희는 다언을 보며 '억지로 해언을 복원시켜놓은 모습' 같다고 말한다. 다언의 아름다움을 세상 자랑스러워하던 엄마는 다언에게 성형수술비를 보탠다. 엄마와 다언의 상실감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면서, 다언의 행위를 마냥 부정할 수 없는 지점이다. 작가의 생각을 가장 잘 담아낸 인물도 다언으로 읽힌다. 도서관에서 상희를 만난 다언은 신을 믿는지 묻고 그렇다는 상희에게 말한다. "믿고 싶은데.. 믿을 수가 없어요. 내가 죽었다 깨어나도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이 세상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어떻게 신을 믿을 수 있어요?(p.185)"라고. 나는 이 부분에서 세월호가 떠올랐다. 공지영 소설의 <도가니>도. 신을 믿는 곳곳에는 신에게 배반당한 사람들이 있다. 아프고 상처받고 버려지지만 믿음을 놓지 못하고 구원을 기다린다. 이 모든 게 신의 섭리라 믿으면서. 다언은 덧붙인다. "언니, 이 모두가 신의 섭리다, 망루가 불타고 배가 침몰해도, 이 모두가 신의 섭리다,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야 신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 말할 수 없어요. 섭리가 아니라 무지예요! 이 모두가 신의 무지다, 그렇게 말해야 해요! 모르는 건 신이다. (p.187)"

소설 <안녕 주정뱅이>가 밀도높은 막걸리였다면 <레몬>은 진로소주의 느낌이다. 맑고 투명하고 후루룩 넘어가는데 속이 타들어가고 다음날까지, 그 다음날까지 여운을 느끼게 한다. 혜언의 죽음이 알코올 도수 16.9도, 두꺼비 상표가 레몬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내게는 이전 작품과 많이 다르게 느껴졌다. 미스터리 서사라는 장르적 기법을 처음으로 적용했다고 하니 그 영향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믿고 보는 작가, 권여선 작가의 책, 소설 <레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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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풀 - 넷플릭스 성장의 비결
패티 맥코드 지음, 허란.추가영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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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출액 116억달러(약 13조), 자산총계 190억달러(약 22조), 종업원 5500명. 1997년 8월 29일 리드 헤스팅스와 마크 랜돌프가 창업한 넷플릭스의 2019년 5월 성적표다. 세계 최대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 기업 넷플릭스(Netflix)는 인터넷(Net)과 영화(Flicks)를 합성한 이름이다. 이름처럼 넷플릭스의 모든 콘텐츠는 인터넷 연결이 가능한 모든 스크린에서 언제, 어디서나 광고와 약정없이 즐길 수 있다. 넷플릭스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14년간 넷플릭스의 기업문화를 창조하고 정착시켰던 前최고인재책임자 패티 맥코드가 <파워풀>을 통해 그 비결을 공개했다.

 

1장. 어른으로 대접하라

2장. 도전에 대해 끊임없이 소통하라

3장. 극도로 솔직해져라

4장. 격렬하게 토론하라

5장. 원하는 미래를 '지금' 만들어라

6장. 모든 포지션에 최적의 인재를 앉혀라

7장. 직원의 가치만큼 보상하라

8장. 멋지게 헤어져라

 

저자는 서문에서 "사업 환경이 놀라운 속도로 변화하는 오늘날, 높은 성과를 내는 조직문화를 구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안내하는 것이 핵심(p.12)"이라며 집필의도를 명확히 밝힌다. 도처에서 그녀에게 넷플릭스의 성공 비결을 물었으리라. 이에 대한 대답은 책에 총 8가지로 등장한다. 넷플릭스의 명성과 새빨간 표지만큼 그 비법이 특별한가를 묻는다면 그것은 '독자따라 다르다'고 답하겠다. 기업 운영 일반론에 가까운 부분도 있지만 넷플릭스의 명성을 느낄만한 유니크함도 있다. 특히 <극도로 솔직해져라(3장)>, <멋지게 헤어져라(8장)>는 내가 속해 있는 회사에 전파하고 싶은 정신이기도 하다.

책은 '인재'에 대한 강력한 믿음에서 시작한다. 직원들을 '관리의 대상'이 아닌 성과를 만들어내는 '믿고 지지할 어른'으로 본다. 저자는 "훌륭한 팀은 모든 팀원이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고, 그곳에 가기 위해서 뭐든지 할 때 만들어진다. 인센티브나 절차, 특전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중략) 훌륭한 팀을 구성하기 위해선 재능 있는 사람들을 채용해야 한다. 어른들, 그러니까 자기 일과 씨름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사람들 말이다. (p.26) "라고 말한다. 즉, 어른이라면 자신의 일에 몰두하고 성과를 내기 위해 분투하며, 이런 고성과자들로 구성된 팀은 기업에 분명한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의미다. 뒤집어 보면, 성과가 곧 '그 사람의 가치'이므로 저성과자면 바로 퇴출당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업논리라면 일견 당연해보이는 이 기준. 과연 우리나라 조직문화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을까.

넷플릭스는 '상호신뢰'를 중시하며 '솔직함'을 모델화한다. 경영진은 고위 결정권자를 포함한 회사 전체가 서로에게 개방적이고 솔직해지는 법을 배울 수 있길 원했다. 그 방법은 '시작해라, 그만해라, 계속해라' 운동이다. 동료에게 시작해야 할 것 한 가지, 그만해야 할 것 한 가지, 매우 잘하고 있고 계속해야 할 것 한 가지씩을 말하는 것이다. 넷플릭스는 팀회의에서 시작한 이 운동을, 시스템으로 적용하고, 1년에 한번 회사 사람 누구에게나 피드백을 보낼 수 있는 '연례 피드백 데이'를 개최한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도 비슷한 체계가 있다. 건의나 불편사항 등을 회사에 전달할 수 공식 채널로 자신의 생각을 일종의 '투고함'에 넣으면 된다. 기명여부는 작성자의 선택. 문제는 투고함 담당자가 익명으로 적힌 투고내용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작성자와 내용의 당사자를 찾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거나, 해당 내용이 와전돼 상호 불편함이 유발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데 있다. 결국 직원들은 더 이상 투고함을 이용하지 않는다. 이건 솔직함의 차이라기보다, 솔직함을 인식하고 수용하는 문화의 차이로 볼 수 있을테다.

넷플릭스의 정수는 <멋지게 헤어져라>에서 드러난다. 저자 패티 맥코드는 최고인재관리담당자였던 만큼 '사람'을 중시한다. 특히, 그녀는 자신만의 알고리즘 - (1)이 사람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이 뭐지? (2)이 사람이 특별히 잘하는 것은? (3)이 사람이 잘했으면 하는 것은? - 을 언급하며 이 질문들로 사람을 판단한다고 말한다. 만약 누군가에 대해 세 가지를 답해보니 현재 넷플릭스에서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면 바로 다른 곳으로 이직을 권한다는 게 그녀의 방법이다. 우리나라에서 가당키나 한 얘기일까? 몰인정해보이지만 누군가의 '쓸모'를 고민해준다는 지점이 인상적이다.

넷플릭스는 DVD 우편배달에서 시작해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로 진화했다. 직원들에 대한 신뢰, 개인의 자유, 업무에 대한 책임감, 이 세 요소가 시너지를 낸 결과다. 일부 독자들은 쓸모를 다하면 다른 회사에 추천해주고, 성과가 없으면 나가게 하는 문화가 냉정하다고 비난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파워풀>을 읽으며 직원을 '부품'이 아닌 '사람'으로 대해주는 넷플릭스의 문화가 부러웠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나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건 회사뿐만이 아니다. 그 방법과 적용이 다를 뿐이다. 솔직하게 소통하고, 쓸모를 분석해, 사람을 데려오고 나가게 하는 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오히려 순진해보이기까지 하는 방법같다.

 

저자가 인재책임자였던 만큼 책은 '사람'에 대한 경영방침을 상당부분 할애하고 있다. 전반부가 넷플릭스의 일반적인 얘기라면 후반부는 성과지표의 설정, 인재채용의 원칙, 경영진과 일반직원의 소통 등 인재책임자로서의 관심사항을 담고 있다. 인사관리 담당부서에 있는 사람들이기 꼭 한번 읽어봐야 할 이유다. 반면, 인재최고책임자가 아닌 인재담당자 또는 개발부서의 엔지니어와 같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함께 있었다면 넷플릭스를 더욱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책에는 다양한 넷플릭스의 작품과 제작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숨은 사연을 알고나니 더 구미가 당긴다. 책에서 언급된 작품들을 하나씩 찾아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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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하여 오늘의 젊은 작가 17
김혜진 지음 / 민음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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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내 결혼을 반대했다. 데려온 남자가 아빠와 동일한 경상도 출신이라는 점과 기대에 못 미친다는 게 이유였다. 내가 언제 결혼하겠다고 사람을 데려온 적 있느냐, 내 결혼은 나의 것이니 상관말아라, 엄마도 어쩔 수 없는 한국 엄마구나, 말이라는 칼을 뱉던 기간이 있었다. 그 지리한 시간 후, 팡파레는 울렸고 나와 그는 부부가 되었다. 그리고 엄마는 두고두고 '그 때'의 반대를 미안해하며 남편을 당신의 아들보다, 혹은 나보다, 더 예뻐한다.

김혜진 장편소설 <딸에 대하여>를 보며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왜 떨어지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은 옵션이다. 엄마는 최근 부쩍 말씀이 많아졌다. 한번 전화가 연결되면 끊기까지 오래 기다려야 했고, 혹여라도 (집에 있는 게 분명한 시간에)통화가 되지 않으면 서운해하셨다. 이야기는 끝이 없었고, 나는 언제부턴가 엄마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듣는 유일한 청자가 되었다. <딸에 대하여>는 엄마가 말하는 딸의 이야기다. 공부를 많이 시켰고 기대가 컸고 괜찮은 남자 만나 편하게 살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을, 딱 반대로 하고 있는 딸에 대한 것. 엄마는 분노하고 실망하고 원망하고 자책도 한다. 요양사인 엄마는 병원에서 '젠'이라는 치매노인을 돌본다. 외국에서 공부했고, 한국계 입양아들을 위해 일했고, 한국에 와서는 이주노동자들을 도왔다. 죽을 때가 됐지만 가족은 없고 그녀가 도왔다는 사람들은 연락조차 되지 않는다. 병원과 사람들의 행태가 미워 분노하고 실망한다.

신부대기실에 앉아있을 때 엄마는 내게 "둘리노래를 떠올려. 요리보고, 조리보고~ 우우~ 둘리는~"라고 했다. 결혼식 도중 부모님께 절하는 순서에 엄마랑 눈이 마주치면 눈물이 쏟아질테니 최면을 걸라는 얘기였다. 그 말이 무색하게 나는 눈물을 단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는 속으로 계속 둘리 노래를 부르셨다고 한다. 경상도 남자를 반대했던 이유는 당신이 너무 고생했기 때문이라는 걸 안다. 20대 청춘에 결혼해 시집살이에 시어머니 3년상을 혼자 치르셨다. 엄마는 그때 왜 그걸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지 지금도 억울해하신다. 병원에 근무한다는 이유로 무시로 불러대 건강제를 요구하거나 주사를 놔달라고 떼쓰는 할아버지에게 반항하지 못한 것도 여직 화가 난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경상도 집안에 가는 게 못마땅했다고, 당신과 비슷하게 살까봐, 살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위험을 겪어야할까봐, 법적으로 얽힌 후 후회하는 일이 생길까봐, 그래서 반대했다고 한다.

소설 속 엄마는 젠을 보며 자신과 딸의 앞날을 점쳐본다. "너희가 하는 게 사랑이니? 아이를 가질 수는 있는거니?" 엄마의 질문은 마치 '나도 젠처럼 혼자 병실에서 죽어가지 않겠니? 아니라고 할 수 있니?'를 확인하는 것처럼 들린다. 엄마는 젠에게 자신을 투영하며 딸만큼은 자신처럼 살지않기를 바라는 듯 하다. 김혜진 소설 속 '엄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한 '끈'을 놓지 않는다. 팍팍하고 이해가 되지 않고 마음에 드는 구석이 조금도 없지만, 어떻게든 살아내야 한다는 걸, 희뿌연 빛속으로 차분히 걸어가는 사람처럼, 담담하게 말한다. 딸이 마땅치 않더라도, 바라는대로 살아가지 않더라도. 드러나지 않게 조용히 살 수도 있을 것을 자꾸 튀어나오는 두더지 게임처럼 생을 살아내는 딸을, 이해하거나 이해못하지도 않고, 그저 살아내야 한다는 걸 자신에게 최면을 거는 걸로도 보인다. 소설의 엄마를 보며 우리 엄마가 더 애닯아 졌다. 피곤하고 할일이 쌓여 귀찮지만 자꾸 걸려오는 엄마의 전화를 받을 수도 없고, 안받을 수도 없었던 나의 시간들이 미안했다면 어떨까. 엄마 생각이 나서 미친듯이 눈물을 흘리며 읽을 수 밖에 없는 소설이었다. 둘리 노래를 부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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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efilm 2019-11-11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11월 22일 삼청동 과수원에서 열리는 김혜진 작가님 북토크 놀러오세요!
https://booking.naver.com/booking/5/bizes/259106/items/3217897?preview=1

책먹는엔지니어 2020-01-08 21:04   좋아요 0 | URL
아, 이렇게 귀한 댓글을 이제 봤네요ㅠㅠ 김혜진 작가님 무지 좋아하는데, 아쉬워요! 너무너무 늦었지만 좋은 알림 주셔서 감사합니다~
 
골든아워 2 -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13-2018 골든아워 2
이국종 지음 / 흐름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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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은 회사에 출근한다, 학생은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는다, 선생님이니까 가르치고, 대표니까 회사를 운영하고, 파티쉐니까 쿠키와 디저트를 만들고, 아나운서니까 카메라 앞에서 뉴스를 전달하고, 은행원이니까 대출 업무를 본다. 이국종 교수도 마찬가지다. 의사로서 죽어가는 환자를 살리고 싶다. 그 뿐이다. 그 뿐인데, 시스템과 시스템을 움직이는 정부는, 죽어가는 사람을 어떻게 살릴 수 있는지 그 과정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는다. 목소리 높여 외쳐봤지만 듣지 않는다. 병원에서는 돈이 되지 않으니 관심을 두지 않는다. 시스템이 없어 돈이 되지 않는 근본은 애써 외면한다. 정부에서는 지금 당장 실적이 나는 사업이 아니니 관심을 두지 않는다. 공무원들은 때가 되면 바뀌고, 현실의 애로사항은 공염불에 그친다. <골든아워2>에서 나는 이국종 교수의 '극에 달한 답답함과 울분'을 읽었다.

<골든아워2>에서 이국종 교수의 분투는 이어진다. 1권이 2002년부터 2013년까지의 기록이자 석해균 선장의 아덴만 여명작전이 중심이라면, 2권은 2013년부터 2018년까지의 기록이며, 중심에는 세월호가 있다. 1권을 통해 중증외상, 골든아워 라는 개념을 접했다면 2권으로는 이국종 교수의 '나아지지 않는'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나빠지는' 중증외상센터의 현실을 처절하게 보게된다. 그와 동료들은 다치고 부서지고 스러져간다. 유산을 하고, 몸이 망가지고 병가를 가고 퇴사를 하고, 몇 남은 인력이 대신 떼우는 악순환을 계속한다. 있는 힘을 쥐어짜 환자들을 살리려고 하는데 병원과 다른 의사들은 그를 비난하기 바쁘다. 정부는 정책을 수행할 의지가 없다. 헬기가 뜬다고 인근 주민들은 민원을 넣는다. 그리고 이국종 교수는 실명(失明)을 진단받는다. 그 와중에 책을 쓰고 방송에도 출연한다. 왜일까? 나는 그 지점에 마음이 쓰인다.

이국종 교수는 2018년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했다. 영국의 에어앰뷸런스 영상을 보며 우리나라 닥터헬기 출동횟수와 비교했고, 인계점이 없는 선진국을 언급했고, 헬기안에서 카카오톡으로 의사소통해야 하는 어이없는 상황을 보여줬다. 담담했다. 담담한 말투가 포기한 것 처럼 들려 마음이 또 쓰인다. 이국종 교수는 그저 중증외상의사로서 촌각을 다투는 환자들을 그저 조금이라도 빨리, 잘 완치시키고 싶을 뿐이다. 그 목표를 향해 움직였을 뿐인데 주변에서는 돈을 갉아먹고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로 만들어버렸다. 치사해 싸우고 싶지만 그래봤자 변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그만둔다.

책 <골든아워>가 그에게는 마지막 수단이지 않았을까. 지난 십년간 변한게 없는 중증외상치료계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도록 하고싶은 그의 마음을 담은. 따라서 이 책은 그의 마지막 비망록이다. 중증외상 환자의 경우 초 단위로 몸의 상태가 변하기 때문에 '골든아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시력을 잃어 치료가 불가능하단다. 담당 공무원은 또 바뀔 것이기에 말하기를 포기했단다. 초 단위로 스러져가는 중증외상분야를 조금이라도 진일보 시킬 수 있는 골든아워가 어쩌면 지금일지도 모르겠다.

<발췌>

중증외상 환자들은 대개 부서지고 터진 부위가 한 곳이 아니다. 그러나 한 번 열어 그 파열 부위들을 동시에 수술해도 한 곳만 인정받는다. 한 번 수술 시에 한 장기만 수술하는 일반적인 수술 기준에 따른 셈법이다. 신체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시행되는 검사들도 비교적 상태가 안정적인 일반 환자를 전제로 한다. 검사 횟수에 대한 기준은 정해져 있고, 그 기준은 '일주일에 몇 번씩'으로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중증외상 환자의 경우 초 단위로 변해가는 몸 상태를 추적해야 하므로 기존 지침보다 훨씬 많은 검사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 역시 일반 환자 기준이 적용되어 대부분의 검사가 삭감 대상에 오른다. (p.16~17)

'고귀한 임무를 수행한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에겐 보상이다.' (p.26) - 조현철의 메신저 글귀

한국 사회에서 시스템의 발전은 최소한의 권력이라도 쥔 자가 추락한 남자 같은 상황에 처하거나 언론이 주목해야 그나마 진일보를 보인다. (p.28)

가장 쉬운 결말은 누군가 나서서 내 일의 종료 시점을 정해주는 것이리라. 내게 맡겨놓는 한 나는 이 일을 그만두지 못할 것이고, 이 일을 지속하는 한 나는 위험한 상황을 좇는 본능에 따라 또다시 움직일 것이다. 나는 단지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인지를 알고 싶었다. 그러나 어떤 답을 들어도 무엇도 선명해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p.42)

배가 가라앉고 사람들의 생사 또한 알 수 없는 판국임에도 복잡한 행정 절차만은 견고하게 잘 유지됐다. (p.70)- 세월호

당시에 자문받으러 온 제작진에게 드라마 제목을 골든아워라고 해야 한다고 거듭 말했는데도 제작진은 골든타임을 고집했다. 두 단어는 각각 다른 의미를 가졌고 어느 쪽으로도 치환하여 사용 가능하지 않았다. [각주]골든타임 : 방송에서 하루 중에 시청률이 가장 높은 시간대, 또는 일정한 시간대에 집중적으로 고유 업무에 몰두하게 함으로써 업무 효율성 향상을 꾀하는 노동시간 관리법을 뜻한다. (p.86)

그들은 모두 '사실상 이제는 가망이 없다'라는 말을 하기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정부 관계자들이 발표하는 상황 묘사는 현실에 눈을 감은 채 러시안 룰렛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모두 자기 입에서 '진실'이 발사되지 않기만을 바라는 듯했다. 최정적으로 누구의 입에서 그 진실이 터져나올지, 그것이 누구를 향할지 알 수 없었으나 나는 그 모든 상황이 기막힐 뿐이었다. (p.89)

사람이든 국가든 진정한 내공은 위기 때 발휘되기 마련이다. 내가 아는 한 한국은 갈 길이 멀어 보였고 당분간은 개선의 여지가 없다는 사실에 힘이 빠졌다. (p.93)

사람은 자기가 사는 세계 밖의 일을 잘 보지 못한다.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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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고전 독서법 진경문고
정민 지음 / 보림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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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독서는 직접 자신이 책 속의 내용을

경험하며 산 것처럼 진한 흔적을 남기곤 하지.

책은 우리의 영혼에 늘 뭔가를 깊이 새겨 놓는다. (p.51)

 

언제였을까.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남편과 독서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인생 책 있어?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은 뭐야? 지금은 뭐 읽어? 다른 사람과 제법 나눴던 질문인데 최측근인 남편과는 처음인 것 같아 새삼 놀랐다. 나는 대학생이 된 후부터 책을 읽어왔다고 답한다. 책을 직접 샀고 그때 처음으로 서평단에 참여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릴 적 어떤 제약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책을 읽지 않았고 가족 중에도 책읽는 사람이 없었음을 고백한다.

어릴 때 책을 많이 읽지 못한 아쉬움은 지식의 짧음이 아니다. 당시의 ‘나’가 느꼈을 '그 때의 감정'을 전혀 알지 못하는 데 있다. 2018년 여성의 글쓰기를 공부하면서 소설 <폭풍의 언덕>을 처음 접했다. 당시 강사는 브론테 작품을 '언제 읽는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소설이라 설명했고 그 해 나는 <폭풍의 언덕>에 빠져 종이가 닳도록 읽고 또 읽었다. 삼십대인 내게 소설은 '광적인 사랑과 집착'으로 읽혔다. 만약 사랑은 어른이 되어야만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초등학생 때 읽었다면 어땠을까? 사랑을 정의내리기에 바빴던 고등학생때 브론테 소설을 접했다면 어땠을까? 영원히 알 수 없는 답이지만 너무 궁금하고 한편으로는 아쉽다.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고전독서법>은 한양대학교 국문과 정민 교수의 책으로 아들에게 책 읽기를 권하는 내용이다. "좋은 책을 읽고 나면 나는 더 이상 책을 읽기 전의 내가 아니지. 눈빛이 달라지고 마음속에 무언가 뿌듯한 것이 들어앉게 된다.(p.6)"고 말하는 정민 교수는 조상들에게 책은 어떤 존재였는지,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책을 넘어서 모든 것을 배움이라 여겼던 삶의 지혜를 설명한다. 그 근거는 과거 조상들의 책읽기와 글쓰기로, 아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하고 친근한 어투로 전달한다.

책은 조상들도 '독서'에 대해 오늘날 독서가들과 유사한 고민해왔다는 걸 알려준다. 정독과 통독의 방법에 대해 중국 진목이란 자는 소가 되새김질하듯 읽는 독서법과 통독은 고래가 큰 입을 벌려 새우를 삼키듯 읽는 독서법으로 설명한다. 되씹고 찬찬히 읽어야 하는 경우와 어마어마한 양으로 뱃속을 가득 채워야 하는 경우를 나눠 설명하며 "책의 성격에 따라, 또 나의 필요에 따라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p.54)고 말한다. 매년 독서계획을 세우며 '많이 읽느냐'와 '제대로 읽느냐'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길잡이가 되는 얘기다. 또 책을 언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말한다. 연암 박지원은 "책 읽는 방법은 날마다 일과를 정해서 읽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고, 읽다 말다 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이 없다."(p.61)며 많이 읽거나 빨리 읽으려는 욕심은 불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대신 몇 줄씩 읽을지 정하고 횟수로 제한해서 날마다 꾸준히 읽는다면 뜻이 정밀해지고 의미가 분명해진다고 조언한다. 이밖에도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 고전은 무엇을 말하는지, 책이 왜 좋은지와 같은 '책'과 관련한 '거의 모든'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렸을 때 내가 이런 책을 읽어봤다면 어땠을까. 남편에게 시기별 나의 인생 책을 말할 수 있지 았았을까? 책의 소중함을 아는 것도, 책을 통해 배움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정민 교수처럼 가족중에 책을 읽고 책을 권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한 사람의 성장에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고전독서법>은 2012년에 발매된 책이다. 7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벼리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아버지 정민의 뜻처럼 책을 읽으며 지혜를 키우며 성장했을까. 정민 교수처럼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고 싶은 부모님들이 읽어보고 실천해볼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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