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 권여선 장편소설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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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 작가의 소설 <레몬>을 읽었다. 소설은 빠르게 읽히지만 서사는 복합적이다. 책의 초반이 사건의 범인을 추적해나가는 추리소설 느낌이라면, 중반부터는 다언과 상희를 주연으로 내세우며 사건을 '겪어낸'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담고있다. 권여선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범인을 잡고 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방식으로 비극을 해결하고 싶지 않았어요. 독자들이 불행을 겪은 인물들의 마음과 그들의 삶이 변화되는 과정에 공감하면서 각자 삶의 의미를 생각해보길 바랐습니다.”고 말했다.

소설 <레몬>은 매 챕터 서로 다른 인물의 시점으로 그려진다. 다언 - 태림 - 상희 - 다언 -... 독자는 다소 혼란스울 수 있지만 인물이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가감없이' 들려줌으로써 누군가의 감정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윤태림은 신정준을 만나 합리화하고 과거를 버텨내며 살아간다. 사건 후 17년만에 만난 한만우는 난쟁이 엄마와 여동생의 가장이지만, 육종에 걸려 한 쪽 다리마저 잘라내었다. 다언은 한만우를 만나 당시 정황을 따져물으려 했지만 17년 후의 한만우는 사건이 후 파괴되어있었다. 그마나 객과적인 인물은 상희. 상희는 다언을 여러 각도에서 회상한다. 밝았던 아이, 얼굴이 달라진 아이, 혜언이라는 사람을 곁에 두고 있는 아이. '불행을 겪은 인물들의 마음과 삶'이 인물들에게서 드러난다.

다언이 그 정점에 있다. 상희는 다언을 보며 '억지로 해언을 복원시켜놓은 모습' 같다고 말한다. 다언의 아름다움을 세상 자랑스러워하던 엄마는 다언에게 성형수술비를 보탠다. 엄마와 다언의 상실감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면서, 다언의 행위를 마냥 부정할 수 없는 지점이다. 작가의 생각을 가장 잘 담아낸 인물도 다언으로 읽힌다. 도서관에서 상희를 만난 다언은 신을 믿는지 묻고 그렇다는 상희에게 말한다. "믿고 싶은데.. 믿을 수가 없어요. 내가 죽었다 깨어나도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이 세상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어떻게 신을 믿을 수 있어요?(p.185)"라고. 나는 이 부분에서 세월호가 떠올랐다. 공지영 소설의 <도가니>도. 신을 믿는 곳곳에는 신에게 배반당한 사람들이 있다. 아프고 상처받고 버려지지만 믿음을 놓지 못하고 구원을 기다린다. 이 모든 게 신의 섭리라 믿으면서. 다언은 덧붙인다. "언니, 이 모두가 신의 섭리다, 망루가 불타고 배가 침몰해도, 이 모두가 신의 섭리다,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야 신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 말할 수 없어요. 섭리가 아니라 무지예요! 이 모두가 신의 무지다, 그렇게 말해야 해요! 모르는 건 신이다. (p.187)"

소설 <안녕 주정뱅이>가 밀도높은 막걸리였다면 <레몬>은 진로소주의 느낌이다. 맑고 투명하고 후루룩 넘어가는데 속이 타들어가고 다음날까지, 그 다음날까지 여운을 느끼게 한다. 혜언의 죽음이 알코올 도수 16.9도, 두꺼비 상표가 레몬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내게는 이전 작품과 많이 다르게 느껴졌다. 미스터리 서사라는 장르적 기법을 처음으로 적용했다고 하니 그 영향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믿고 보는 작가, 권여선 작가의 책, 소설 <레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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