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의 무덤 - 바티칸 비밀 연구
존 오닐 지음, 이미경 옮김 / 혜윰터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3년 11월 24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신앙의 해’ 폐막 미사에서 뼛조각 9개를 대중에게 공개했다. 성 베드로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이었다. 이 조각들은 어떻게 등장할 수 있었을까? 책 <어부의 무덤>은 바티칸 성당 지하에서 시작된 75년간의 발굴 과정을 담은 탐사 기록이다. 책에서 ‘사도 프로젝트’라고 불리는 이 75년간의 행위는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고 극비리에 진행되었다. 그 결과가 ‘뼛조각 9개’로 나타난 것. 교황 비오 12세와 교황 바오르 6세의 특별 계획으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에는 조지 스트레이크, 비오 12세, 마르게리타 과르두치 등이 참여했다.

스트레이크에게는 아주 이상한 비밀이 하나 있었다. 그는 자신이 방대한 콘로 유전의 일개 주주에 불과하며, 콘로 유전이 자신의 총명이나 가치의 결과가 아닌 신의 선물이라는 특이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p.37)

책은 조지 스트레이크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교황 비오 12세는 미국 텍사스의 정유갑부인 그에게 비밀 특사를 보낸다. 자금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서다. 그에게 사도 프로젝트는 운명이었던 걸까. 그는 자신이 방대한 콘로 유전의 일개 주주에 불과하며, 콘로 유전이 “자신의 총명이나 가치의 결과가 아닌 신의 선물(p.37)”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스트레이크 이후 카스, 페루아, 과르두치 등이 프로젝트에 합류한다. 거대한 자본과 인력을 요하는 일이었지만 극비였기에 전동공구도 사용하지 못했다. 그렇게 성당 지하에서 발굴 작업은 시작된다. 책은 75년간 일어난 일을 사실 중심으로 나열한다. 월터 캐럴의 활동, 페투아의 행위, 과르두치의 해석 등. 결정적인 일은 1951년 일어난다. 프로젝트에서 흡사 엑스맨 같았던 페루아가 명문을 자신의 집에 옮겨두지만, 과르두치가 논문에서 이를 발견한 것이다. 초기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통용되던 문자 전달방식에 따르면 그 명문은 ‘베드로가 여기 있다’로 해석되었다.

미국의 정치활동가인 존 오닐은 머리말에서 ‘내가 휴스턴에 살고, 스트레이크 집안과 친분이 있고, 석유 탐사에 정통하며, 로마와 기독교 고고학에 관심과 조예가 깊고, 평생을 복잡한 국제 문제를 연구하며 보냈다는 뜻밖의 우연 때문에’ 이 이야기를 집필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75년이 흐른 지금 이것이야말로 전 세계가 귀 기울여 경청해야 할 이야기(p.12)”라고 강조한다.

바티칸 지하 성당에서 남몰래 탐사가 시작되고, 여러 이해관계를 넘어 베드로의 유골이 발견되기까지. 저자는 책을 통해 이것을 말하고자 한다. 탐사 기록인만큼 책은 그 과정에서 시시각각 벌어진 안팎의 사실들을 늘어놓는다. 다만 독자들에게는 다소 산만하게 느껴질 수 있겠다. 순서대로 사실을 다룬다기 보아 인물에 대한 설명이 필요 이상으로 많고, 로마, 이탈리아 등의 역사를 함께 다루면서 흡사 세계사 공부를 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내용이 전개될수록 실화가 소설보다 한층 더 기이하고 환상적임을 알게 될 것이다. (p.26)”라며 이 이야기의 위대함을 강조한다. 종교 분야의 문외한이다 보니 저자가 말하는 위대함을 사실 깨닫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기독교 정신과 사상을 이해하고 있는 독자들에게는 더할나위없이 소중한 자료가 될 수도 있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쓰레기책 - 왜 지구의 절반은 쓰레기로 뒤덮이는가
이동학 지음 / 오도스(odos) / 2020년 2월
평점 :
일시품절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한 적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쓰레기를 만들지 않겠다는 생활 속 실천 운동입니다. 실천할 당시에는 식재료를 살때, 마트에 가면 플라스틱에 든 제품을 사야하니 '물품'만 살 수 있는 전통시장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모든 물품을 집에서 가져 간 에코백에 담아왔습니다.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사야할 것이 적다면 문제없지만, 구매 물품이 많다면 에코백 수십개에 식재료를 담을 통 몇 개를 챙겨가야 했죠. 방울토마토 담을 통, 가지 담을 통, 온갖 통을 미리 챙겨가야 합니다. 깜빡하고 대형 통을 챙겨가지 못하면, 생물 생선 구매는 엄두도 내지 못했죠. 이사를 오면서 마트에서만 장을 볼 수 있는 구조로 바뀌고 자연스레 제로웨이스트 실천은 제게서 멀어졌습니다.

이쯤되면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이 지구를 지배한 것인가.

플라스틱이 지구를 점령한 것인가. (p.32)

저자 이동학은 2년간 오대양 육대주 61개국 157개 도시를 누비며 여행합니다. 지구인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 떠난 그 여행에서 저자는 ‘환경문제’를 깨닫습니다. 기후변화가 기후위기로 불리고, 각국 도시에서 편리하게 쓰고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가 개발도상국 해안가로 모여드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이런 상황들을 보며 위기감을 느낀 저자가 <쓰레기책>을 적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에 나선다면 우리 문명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생각하면서요.

책은 쓰레기가 ‘어디로 가는지’ 설명합니다. 먼저 필리핀의 바세코 마을입니다. 어릴 때부터 흙이 아닌 쓰레기더미에서 논다는 이 지역 아이들은 플라스틱이나 유리병 등 재활용 자원에 대한 의식이 높다고 합니다. 재활용 재료를 모아내는 것이 수입원이기 때문이죠. 몽골 울란바토르도 있습니다. 과거 소련에서 50만 명 정도의 도시민이 거주할 것을 예상하고 만든 이 도시에는 현재 180만명이 거주한다고 합니다. 비싼 임대료와 집값을 피해 주민들은 산 등성이에 ‘게르’를 지어 살고 생석탄과 타이어를 태워 겨울을 납니다. 울란바토르는 타이어에서 만들어진 오염물질로 가득합니다. 호치민도 있습니다. 베트남 정부는 쓰레기 매립률을 2050년까지 20%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합니다만 소각장이 부족한 형편입니다. 게다가 정부 여건상 소각장 건립은 요원하고요.

이런 답답한 상황에 대해 저자는 반드시 원인을 분석하고 성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인류가 만든, “의도는 없었지만 그런 결과로 나타나고 있는 현실(p.124)” 즉 미필적 고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도시화, 세계화, 자본주의라는 맥락을 지적합니다. 저자는 쓰레기와 도시와의 연결고리를 ‘배달체계’에서 찾습니다. 배달경제는 상품을 포장한 상태로의 배달을 의미하고 자연스럽게 플라스틱이나 스티로폼을 사용해 쓰레기를 만드는 구조라는 겁니다. 즉, 배달체계는 곧 ’24시간 쓰레기 생산체계’라는 겁니다. 자본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본주의는 고용도, 월급도, 소득도 발생시키지만, 그 연쇄작용으로 다시 소비를 촉발하는 구조입니다. 중요한 건 자본주의는 앞으로만 질주할 뿐 이후의 남는 문제는 고려하지 않는다는 거죠. 저자는 한 지역에서 생산되는 세탁기 수를 통해 이 문제를 지적합니다. 100명이 사는 마을에 130대의 세탁기가 생산되었고, 30대의 재고품은 쓰레기가 되어버렸다는 것을요.

“이 세계가 중대한 환경 위기를 목전에 두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정치인들 중 다수는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의 현실을 부정하거나 그것을 되돌릴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부인하고 있다. (중략) 필요한 것은 오직 정치적 의지이다.” - 스티븐 호킹 <호킹의 빅퀘스천에 대한 간결한 대답> 인용 (p.220)

이러한 끔찍한 쓰레기 현실 앞에 저자는‘개입해야 한다’고 단호히 말합니다. 위험징후들을 눈감지 말고, 대응 시점을 놓치지 말자고요. 사실 이미 전 세계 국가는 지구가 쓰레기 포화상태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실행하자고 말합니다. ‘오션클립업’과 같은 국제적 프로젝트여야 할까요? 저자는 덴마크에서 실행되는 기부와 나눔 지역 네트워크, 한국의 ‘당근마켓’도 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나아가 ‘학교로 가져가 분리수거하기’ 또는 ‘영종도 NO 플라스틱 섬 선언’과 같은 아이디어도 던져봅니다.

쓰레기에 대해 얼마나 생각해봤을까요? 분리수거만 잘해도 환경보호에 일조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지 않을까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책은 쓰레기 문제의 똑부러진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쓰레기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보자 호소합니다. 저도 그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공터나 폐건물에 소유가 불분명한 쓰레기더미가 남겨져있다는 뉴스를 심심치 않게 보았다면, 이런 쓰레기들을 단숨에 없애는 건 불가능하리라는 걸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럼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지구촌장 이동학의 <쓰레기책>은 그 방법을 고민해보자고 제안하는 책입니다. (참, 지구촌장이라는 말은 어머니가 저자 이동학에게 붙여준 직함이라고 합니다.) 정부는 쓰레기 처리를 위한 세계적 협업 방안을, 기업은 쓰레기가 될 플라스틱 생산을 줄일 방안을, 개인은 쓰레기를 더 적게 소비할 방안을 한 번쯤 고민해보면 어떨까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제로웨이스트’를 다시 시작해볼까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슈퍼버그 - 보이지 않는 적과의 전쟁
맷 매카시 지음, 김미정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4년 10월 어느 날, 뉴욕 프레스비테리안 병원 의사인 맷 매카시는 환자 ‘잭슨’을 만난다. 총상을 입은 잭슨의 왼쪽 다리에는 총알의 궤적에 따라 상처가 나 있었다. 상처에 대한 미생물 검사 결과를 본 맷은 ‘보호 장비 없이 이 환자를 만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주위에 있던 다른 팀원들에게 밖으로 나가라고 소리친다.잭슨은 콜리스틴을 제외한 모든 항생제에 내성을 갖는 신종 박테리아에 감염되어 있었던 것이다. (콜리스틴은 항생제의 일종으로, 사용한 적도 몇 번 안 되고 너무 독성이 강한 약이라 예후 또한 좋지 않다고 한다.) 저자는 이것을 계기로 슈퍼버그를 치료하기 위한 달바 임상시험에 뛰어들게 된다. 슈퍼버그란 항생제로도 치료되지 않는 변이된 박테리아를 말한다.

“생명의 보존에 이바지하는 것은 모두 선이며 생명을 파괴하는 것은 모두 악이다”(p.52)

책은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4년 알렉산더 플레밍의 연구에서 시작한다. 인플루엔자 사망자가 수천만명에 달할 때, 플레밍은 전장에서 곰팡이를 연구하며 페니실린을 발견한다. 하지만 플레밍에게 페니실린은 연구 재료였을 뿐, 인체감염의 치료약이 될 가능성은 1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나고 또 한번의 세계대전을 겪은 후 밝혀진다. 감염병과 관련한 역사적 안타까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책에서 과거에 행해진인체실험들을 알려준다. 특히 '불량한 한 연구원의 소행이 아닌 국가가 후원한 학대’로 언급되는 터스키기 생체실험이 등장한다. 이것은 정부와 연구자가 협업의 형태로 주민들을 40년간 매독 연구의 데이터로 활용한 실험으로, 주민들은 자신들이 어떤 연구에 대상이 되는지, 왜 치료를 못받는지에 대해 전혀 듣지 못했다. ‘통제된 집단 학살 프로그램’이라고도 불리는 이 실험을 언급한 이유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인체실험의 역사는 불안하기도 하고 불유쾌하기도 하지만, 오늘날 임상 연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려주는 동시에 내 달바 임상시험이 왜 그렇게 어려운지 설명해줄 것이다. (p.45)”라고.

책은 맷과 그의 동료들이 함께한 달바 임상시험 과정들을 다룬다. 우선 임상시험 계획서를 작성한다. “서두르거나 부주의해 보이지 않으면서도 임상시험의 긴박함을 설명해야(p.77)”하는 IRB(현대적 연구윤리위원회)의 장벽에 부딪히기를 몇 번, 저자는 결국 그 단계를 뛰어넘고 임상시험 지원자들을 찾아 나선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희소 감염병을 앓고 있는 소녀, 911테러 현장을 지켰던 소방관, 홀로코스트에서 생존한 여성 등 다양한 환자들을 만난다. 이후 저자는 임상시험의 장애물들을 뛰어넘으며 달바 최초 투여자를 만나고 보란 듯이 항생제 개발을 성공해낸다. 성공은 “잭슨의 주요 장기를 파괴하지 않으면서 독특한 특성을 보이는 그의 감염을 안전하게 공략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법”이자 “연구는 비싸지만 항생제가 대도시 병원에 도입될 수 있고, (투약 횟수를 줄임으로써)돈을 절약할 수 있음(p.377)”을 의미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임상시험이라는 낯선 과정과 어려운 의학용어가 다분히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슈퍼버그>는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저자 맷 매카시의 감정이 곳곳에서 잘 드러나, 직업윤리나 건강한 삶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그 진면목은 저자가 삶이 얼마남지 않은 사연 깊은 환자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잘 드러난다. 저자는 "환자들이 자신의 삶 속으로 나를 끌어들이는 방식에 놀라워하며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이날뿐 아니라 많은 날 나는 생각했다. ‘나는 그럴 만한 사람이 아닌데. 그럴 자격이 없는데.’ 의사 가운은 환자들에게 속내를 털어놓게 만든다."며 " 사람들은 가장 친한 친구와 가족에게도 절대 털어놓지 않을 사연을 내게 들려준다. 나는 플로리다 근교의 가톨릭 가정에서 정기적으로 고해성사를 하며 자랐는데, 지금 나는 고해소의 반대쪽, 신부님의 자리에 앉아 있는 기분 (p.265)"이라고 고충을 토로한다.

저자는 의사로서의 자아성찰 뿐 아니라 의료산업에 대한 깨달음도 남긴다. 맷은 달바의 임상시험 과정을 통해 “FDA가 반드시 수행해야 할 임무가 얼마나 어려운 건지도 인식할 수 있었다. 환자를 보호하는 것은 큰 책임이며, 이를 위해 FDA는 환자는 물론 제약사와 의사, 신약 개발자 간의 상충하는 이해관계의 균형을 잡아주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가장 효과적인 신약을 제공하는 목표를 공유하지만, 그 목표에 도달하는 가장 좋은 방법에 대해서는 종종 의견이 다를 것이다. 나는 달바를 연구하면서 항생제와 연구 윤리, 의약품의 경제적 현실 등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나 자신의 한계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p.378) ”고 말한다. 의무와 책임의 무게를 견뎌야하는 ‘직업의 세계’에서 그 누구보다 혹독한 과정을 겪으며 '소명'을 찾는 이야기라니. 자긍심과 자부심으로 일하는 것이 너무 요원해진 듯한 오늘날에, 항생제 달바의 성공보다 더 극적이고 짜릿하게 읽히는 장면이다.

“우리는 방어력이 없는 이들을 방어해준다” (p.183)

다시 한번 말하자면, 책은 임상시험에 관한 기록이다. 동시에 맷 매카시라는 의사의 은밀한 일기이기도 하다. 박테리아와 세균이라는 낯선 주제를 저자는 자신의 감정과 잘 버무려 독자들에게 친근한게 소개한다. 동시에 임상시험과 항생제 개발이라는 와닿지 않는 분야를 간접 체험하게 한다. 강력한 박테리아에 대항하는 항생제를 만드는 의학도서이면서, 직업과 소명의식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에세이로, 코로나19로 시끄러운 시국에 참 잘 어울리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실은 나도 식물이 알고 싶었어 - 정원과 화분을 가꾸는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식물 이야기
안드레아스 바를라게 지음, 류동수 옮김 / 애플북스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람이 많이 불어서 얘가 못 자라나봐.’, ‘해가 뜨거워서 잎이 뾰족한거 같애.’ 여행지에서 내가 경치에 집중할 때, 남편은 주변 식물에 빠진다. 연애 당시 나는 그에게 화분을 선물로 받았다. 신선하다 생각했는데, 데이트 장소가 간혹 화훼단지나 수목원으로 정해지는 걸 보고 그가 식물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사람이란 걸 알았다. 마음 참 예쁜 남자네 싶었다. 결혼 후 본격적으로 식물 사랑을 실천하는 남편. 때마다 초록 친구들을 사들인 그 덕에 우리집에는 20여개의 화분들로 가득하다.

안드레아스 바를라게의 책 <실은 나도 식물이 알고 싶었어>를 보자마자 남편이 떠올랐다.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보며 힐링하고, 주말 아침 아이들에게 물을 주며 시작하고, 매년 봄 어떤 새로운 식물을 키울까 고민하는 그에게 안성맞춤인 책. 독일의 원예학자인 저자는 원예학을 공부한 후, 관련된 분야에서 일을 해왔고, 어릴 때 부터 집의 정원사로부터 식물에 대한 지식과 관리법을 배웠다고 한다. 이사를 다닐 때마다 새롭고 다양한 환경에서 정원을 관리하는 방법을 살폈다는 저자. 책은 식물에 대한 총 82개의 사소하지만 중요한 지식을 담고 있다.

확실한 것은 식물 없이 또 엽록소 없이는 ‘땅 위의 생명’도 없다는 사실이다. (p.19)

저자는 식물의 특성, 환경, 생장 등 식물에 대한 모든 것을 애정어린 눈으로 관찰하고 설명한다. 자연의 순리로 여겨 무심히 받아들였던 사실들에 대한 원리를 하나씩 설명해준다. 예컨데 씨앗은 싹틀 때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뿌리는 아래로 뻗어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까? 난초 가꾸기는 왜 그렇게 어려울까? 와 같은 것들이다.

식물들에게 말을 건넬 때 우리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이는 식물에게 좋은 작용을 한다. (중략)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식물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이라면 자기가 아끼는 초록 친구들의 다른 모든 요구에도 틀림없이 귀 기울였으리라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물도 때맞춰 주고, 안성맞춤인 자리도 찾아주고, 비료도 알맞게 주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말을 걸어주고 음악을 들려주는 것은 그야말로 화룡점정이다. - 식물에게 말을 걸면 더 잘 자랄까 (p.63)


또 다시 남편 소환. 남편은 집에와 가끔 초록 아이들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나누곤한다. 언제 한번 왜 그렇게 식물에 대고 말을 하느냐 물어봤더니, 그러고나면 괜히 마음이 편해진다고 했다. 그의 이런 행동은 물을 주고, 분을 갈아주고, 빛을 알맞게 쬐어주는 애정 속에서 만들어진 소소한 습관이겠지. 이게 식물들에게 더할나위없이 좋다니, 사랑이 만들어 낸 ‘화룡점정’이라는 저자의 표현이 깊이 와닿는다.

진화의 과정에서 하나의 원리가 생존에 도움이 되면 그것은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된다. (p.39)

책을 읽을수록 식물의 경이에 눈 뜨게 된다. 더운 지역에서는 뾰족하게, 선선한 지역에서는 표면적을 넓게 만다는 적응력. 세포속에 가진 묵직한 평행석을 통해 중력을 느끼며 뿌리는 점점 아래로, 물은 점점 위로 켜올리는 생장력. 꽃과 향기로 곤충들을 유인하고 또 혼내주기도 하는 특성까지. 여린 잎으로 빛과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널리 뻗은 가지로 물을 빨아들여 자신의 생을 묵묵히 살아내는 식물들은 그 자체가 자연의 힘을 느끼게 하는 놀라움이다.

책은 식물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처럼, 예쁜 세밀화와 부드러운 말투로 채워져있다. 그 자체만으로 힐링이 된다. 다만 ‘정원’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하니, 주로 아파트 생활을 하며 화분 몇 개에 그쳐야 하는 나와같은 독자들에게는 아쉽게 느껴질 수 도 있다. 하지만 ‘엽록소로 성장한다’는 학창시절 배웠던 지식 외에 식물에 대한 A to Z를 알 수 있어 유익하다. 책은 식물에 관심없는 사람에게는 식물을 키우고픈 마음을 선사해주고, 식물에 관심많은 사람에게는 조금 더 초록 친구들을 잘 깊숙이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남편과 같은 사람에게는 계절마다 열어봐야 하는 ‘식물 바이블’로 다가갈 수도 있겠다. <실은 나도 식물이 알고싶었어>는 식물을 사랑하는 남편에게는 인센티브보다 값진 선물이요, 그보다 조금 덜 식물에 관심있는 내게는 좋은 식물 선생님이었다. 다가오는 봄에 어울리는 싱그럽고 산뜻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증거의 오류 - 데이터, 증거, 이론의 구조를 파헤친 사회학 거장의 탐구 보고서
하워드 S. 베커 지음, 서정아 옮김 / 책세상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근거 : 어떤 일이나 의견의 근본 / 증거 : 어떤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근거

회사에서 작성하는 보고서에는 '관련 근거'라는 필수 항목이 있다. 통계 데이터 형태를 띄는 근거는 보통 주장에 대한 설득력과 신뢰도를 높인다. 이런 상황은 간혹 근거가 없다면 개인의 생각이 아이디어나 신산업의 계기가 될 수 없다고 여기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도 있다. 그렇다면 통계 형태로 등장하는 각종 근거들은 모두 믿을 수 있는 것인가? <증거의 오류>의 저자 하워드 S.베커는 이 물음으로 책을 시작한다.

데이터 생산자들은 수입을 극대화하거나 그 수입을 얻는 데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을 최소화하는 것을 업무의 일부로 삼기도 한다. 그들의 행위가 조직의 목표를 앞당길 때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데 이용되기도 한다. (p.225)

저자는 증거의 오류 원인을 '누가 데이터를 수집하는가'에 초점을 맞추며 그 예로 공무원들, 비과학자 등의 증거 수집을 든다. 세부적으로는 <5장. 공무원들이 증거로 수집하는 데이터>에서 법의관의 판정을 예로 든다. 법의관은 사망을 사고, 자연사, 자살, 타살 네 분류로 구분한다. 자살로 의심되는 타살은 없을까? 자살과 타살의 증거가 모두 존재할 때 과연 법의관은 어떤 결론을 내릴까. 저자는 이런 상황에 대해 스테판 팀에르만스의 저작을 소환한다. 팀에르만스는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사망할 때, 사망 원인을 밝혀내는 일을 하는 법의관에 대한 연구를 발표한 학자로, 그의 저작 문구 중에는 이런 말이있다.

자살로 분류하는 현상에는 분류 당사자의 기준과 업무 관행이 반영된다. (p.233)

즉, 수집절차, 증거해석, 이해당사자가 가하는 압력에 대한 반응이 판단에 영향을 미치며, 그 맥락이 자살과 타살 둘 중 하나로 가르는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하나의 위험성을 추가로 경고한다. 법의관의 ‘판단’은 실제 사고의 가족과 공중 보건 관료들이 자신의 업무 영역에서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전문가 관점에서 ‘자살’로 기록된 것은 ‘진짜 자살’이 된다는 것. 이것은 책에 등장하는 ‘업무관행이 만들어내는 판단의 오류’ 혹은 ‘사람에 의한 착오’의 넘쳐나는 사례 중 하나에 불과하다.

“싫어요. 내가 유죄라고 하면 그렇게 결정되는데 어떻게 그래요.” 작년에 개봉했던 한국영화 <배심원들>이 떠오른다. 영화는 사건의 원인과 결과가 ‘답’으로 정해진 재판이, 우리나라 최초의 ‘국민참여재판’으로 바뀌면서 벌어지는 헤프닝을 그린다. 여기서 정부가 국민을 재판에 끌어들인 이유는 명확했다. 정답이 있으므로 무리 없이 하나의 쇼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 하지만 배심원들이 자꾸 의심하고 묻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고 만다.

하워드가 지적한 법의관의 판단은 어쩌면 영화 속 ‘정해진 답’ 아니었을까. 또한 배심원들의 의심은 저자가 제기하는‘신뢰도에 대한 의심’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 책은 사회적 데이터의 오류 원인을 ‘원인을 입증할 수 없을 때 적용되는 미확인을 제외하는 범주(p.229)'라고 표현한다. 그 예로 경찰, 검찰, 판사를 드는데 그들은 ’갈등을 피하고 자신의 업무를 수월히 진행할 수 있는 방식으로 행위를 규정한다‘며 상황적 요소가 판단의 오류를 조장한다고 설명한다.

책은 총 2부로 구성되어있다. 1부에서는 연구모형과 데이터, 과학자들의 연구 방법을 통해 '상황'을 설명한다. 이런 상황은 2부에서 데이터 수집 주체의 판단, 수집과정의 오류 등으로 만들어지는 '문제점'을 얘기한다. 사회과학자는 사회 현상을 보며 아이디어를 얻고, 관찰, 연구하며 분석과 해석을 진행한다. 그 지난한 과정에는 언제나 '객관적 데이터'라는 것이 존재한다. 하지만 책은 객관적이란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싶은 듯 하다. 이런 측면에서 볼때, 신뢰성을 높인 다는 것은 단지 ’보다 그럴듯한 답을 찾는 과정‘ 아닐까.


사회과학적 데이터에 대한 분석을 담은 책 <증거의 오류>는 다소 난해하다. 단조로운 문체와 학문적 용어가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의 가치는 명확하다. 무분별하고 자극적인 정보의 홍수 속에서 과연 우리가 보고 있는 데이터는 믿을 수 있는가? 혹 누군가의 조작과 일반화에 내가 속고 있는 것은 아닌가? 책을 읽고 나면 한 번쯤 의심하게된다. 이런 태도는 가짜 정보들 속에서 진주를 찾아내는 혜안을 키우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 회사와 사회가 원하는 ’관련근거‘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관련근거'와 '증거'로 머리를 쥐어뜯어본 경험이 있다면 한번쯤 읽어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