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 : 어떤 일이나 의견의 근본 / 증거 : 어떤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근거
회사에서 작성하는 보고서에는 '관련 근거'라는 필수 항목이 있다. 통계 데이터 형태를 띄는 근거는 보통 주장에 대한 설득력과 신뢰도를 높인다. 이런 상황은 간혹 근거가 없다면 개인의 생각이 아이디어나 신산업의 계기가 될 수 없다고 여기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도 있다. 그렇다면 통계 형태로 등장하는 각종 근거들은 모두 믿을 수 있는 것인가? <증거의 오류>의 저자 하워드 S.베커는 이 물음으로 책을 시작한다.
데이터 생산자들은 수입을 극대화하거나 그 수입을 얻는 데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을 최소화하는 것을 업무의 일부로 삼기도 한다. 그들의 행위가 조직의 목표를 앞당길 때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데 이용되기도 한다. (p.225)
저자는 증거의 오류 원인을 '누가 데이터를 수집하는가'에 초점을 맞추며 그 예로 공무원들, 비과학자 등의 증거 수집을 든다. 세부적으로는 <5장. 공무원들이 증거로 수집하는 데이터>에서 법의관의 판정을 예로 든다. 법의관은 사망을 사고, 자연사, 자살, 타살 네 분류로 구분한다. 자살로 의심되는 타살은 없을까? 자살과 타살의 증거가 모두 존재할 때 과연 법의관은 어떤 결론을 내릴까. 저자는 이런 상황에 대해 스테판 팀에르만스의 저작을 소환한다. 팀에르만스는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사망할 때, 사망 원인을 밝혀내는 일을 하는 법의관에 대한 연구를 발표한 학자로, 그의 저작 문구 중에는 이런 말이있다.
자살로 분류하는 현상에는 분류 당사자의 기준과 업무 관행이 반영된다. (p.233)
즉, 수집절차, 증거해석, 이해당사자가 가하는 압력에 대한 반응이 판단에 영향을 미치며, 그 맥락이 자살과 타살 둘 중 하나로 가르는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하나의 위험성을 추가로 경고한다. 법의관의 ‘판단’은 실제 사고의 가족과 공중 보건 관료들이 자신의 업무 영역에서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전문가 관점에서 ‘자살’로 기록된 것은 ‘진짜 자살’이 된다는 것. 이것은 책에 등장하는 ‘업무관행이 만들어내는 판단의 오류’ 혹은 ‘사람에 의한 착오’의 넘쳐나는 사례 중 하나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