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표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이대연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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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부표>는 바다의 부표를 교체하는 '나'가 아버지를 회상하는 이야기를 담은 소설 <부표>와 인조반정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 <전>이 담겨있다. 첫번째 작품은 의외였다. 선박의 안전한 항해를 돕기 위한 설치물 '부표'라는 제목은, 끈적한 땀냄새를 연상시켰다. 그러나 작품은 화자의 고단한 부표 교체 작업에 느닷없이 아버지의 죽음을 끌어들이며 예상외의 흐름을 보여준다. 화자는 쇠사슬을 밀고 당기고, 줄을 누르고 고정시키는 과정 중에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거금을 '보여주겠다'는 말을 하며 원양어선을 탔던 아버지.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후 가족들은 아버지가 숨겨왔던 진실을 알게 된다. "사 톤짜리 거대한 돌덩이 두 개가 쇠사슬 끝에 매달려 허공으로 떠올랐다. 침추까지 인양하면 어려운 고비는 넘긴 셈이었다. (중략) 새 부표에 연결된 쇠사슬이었다."(p.29) 화자에게 아버지는 엄청난 돌덩이가 허공에 매달린 것처럼 위험천만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새 부표가 쇠사슬에 결국 연결되 듯, 책 속에서 아버지의 일부는 또 다른 삶과 연결된다. 등부표의 교체가 아버지의 생사와 병치된 셈이다. 담담한 어조가 부표와 아버지라는 주제를 끌어들여 깊은 여운을 남긴다.

두번째 작품 <전>도 의외였다. 배대유, 곽재우, 허균 등의 실존인물과 정유재란, 인조반정 등의 역사적 사건을 다루어 마치 사극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작품의 핵심은 '졸기'에 있다. 졸기란 망자에 대한 마지막 평가를 담은 간략한 전기를 말한다. 졸기를 써야하는 배대유가 현실과 이상 사이에 혼란스러워 하며 결국 '무엇을' 적는 지가 작품의 흐름이다. 유학자 배대유는 생과 사를 가르는 정치 현실과 전쟁, 부패 등을 견뎌야 하는 당시 백성의 삶을 고뇌하며 졸기를 통해 '희망'을 노래한다. 유학자로서 있을 수 없는 글을 쓴 셈이다. 삶과 죽음, 현실과 이상, 그 괴리가 명분을 중시하는 '유학자'의 '졸기'를 통해 현현한다. 표면적으로는 배대유와 무명의 대결 구도를 그린 듯 하지만 실은 현실을 비판하고 이상을 꿈꾸는 구성이 읽을 맛을 배가시키는 작품이다.

작가 이대연은 소설 <검란>으로 등단했다고 한다. 알의 부화를 디테일하게 묘사하며 이를 인생에 빗댄 작품이라고 한다. 책 <부표>에서도 구체적 묘사를 통해 삶을 반추하게 만들며 진한 여운을 남겼다. 앞으로 눈여겨 보고 싶은 작가다. 한 해를 정리하는 지금의 시기와도 어울리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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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분 이해하는 사이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김주원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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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십분 이해하는 사이>에는 두 편의 소설이 실려있다. <십 분 이해하는 사이>와 <우주맨의 우주맨에 의한 우주맨을 위한 자기소개서>다. 저자의 색이 진하게 드러나는 두 편에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이해'다. <십 분 이해하는 사이>의 '십 분(10분)'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물리적 10분과 '충분히, 넉넉히'라는 뜻의 십분이다. 표제작은 옥상에서 이뤄지는 누군가의 하소연 혹은 설득의 이야기다. 너도 그렇구나, 나도 그런데. 반전이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결론을 통해 독자들은 휴 가슴을 끌어내린다. 그런데 결국에는 너도 나도 그 상황에 놓였었구나 하는 안타까움에 마음이 아려온다. <우주맨의 우주맨에 의한 우주맨을 위한 자기소개서>도 '옥상'에서 시작한다. 주인공은 옥상에서 뛰어내리려던 형을 구하며 우주인이 된다. 표제작으로 부터 바통을 넘겨받는 듯한 구성이다. 두번째 작품에서는 백수 김세종과 조카 김한솔이 등장한다. 조카의 실종이 작품을 미스터리로 끌어들이는 순간, 김세종은 우주맨이 되며 장르가 코믹으로 변하는 듯 하다. 우주맨은 상대방의 전화번호를 말하거나 생각하면 실제 통화를 할 수 있게 되는 특별한 능력을 지녔다.

책은 말도 안되는 내용 같지만, 슬픈 현실을 담고 있다. 학교폭력, 왕따, 자살 등 늘 사회면에 등장하는 이슈들이 떠오른다. 그러면서 독자들을 위로하기도 한다. "오늘 정말 찬란한 봄날이에. 근데 중요한 건 마음의 날씨 아니겠냐?"나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양파 껍질처럼 벗겨지는 현실의 속살을 눈물 참고 응시하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와 같은 문장을 통해서다. 작가의 독특한 구성과 표현이 인상적이다. 슬프기도 하면서 재밌기도 하다. 빠른 흐름이 정신을 못 차리게 하기도 한다. 존재의 이해와 위로를 다룬 멋진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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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송지현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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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철에 소설 <김장>이라니. 딱이네 싶었다. 고춧가루 범벅인 손으로 수육에 갓 절인 김치에 돌돌 말아먹는 장면이 등장하려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간다. 주인공 '나'는 성인이 되어 김장철만 되면 할머니 댁으로 향한다. 유년 시절 동네 언니 오빠들과 아이 엠 그라운드를 하고 엄마와 산딸기를 땄던 곳이다. 깊었던 강이 작은 시내로 변했다. 할머니는 옆옆 집 손자 성철이 강에서 죽었다며 무심히 말하신다.

나는 산딸기를 따겠다고 한다. 칼바람이 부는 겨울에. 책은 '기억'과 다른 '지금'을 말한다. 할머니와의 김장 때 늘 작년 묵은지전이 함께했던 것이 '기억'나지만, 산딸기를 여름에 딸 수 있다는 것은 기억에 없다. 문학평론가 노지영은 송지현 작가의 <김장>을 두고 '두 계절을 통과하는 한 청년의 생애가 꼼꼼히 기록되어 있는 비망록을 읽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책은 겨울에서 여름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나'를, ‘기억’과 그것과는 조금 다른 ‘지금’ 사이에 있는 모습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주인공은 결국 산딸기를 따지 못한다. 소설은 '홀로 걷는 나'로 끝난다. '저 멀리 자그맣고 희미한 불빛이 보이'고 '멀리서 보면 어둠을 향해 걸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곳'으로(p.36) 걷는 나. 평론가의 비망록이라는 표현이 딱 맞춤하다. '김장'이라는 제목보다도.

책의 두번째 작품 <난쟁이 그리고 에어컨 없는 여름에 관하여>도 비슷한 맥락으로 읽힌다. '아티스트 네트워킹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의 파티'가 배경이다. 그 안의 '나'. 나는 '제이'라는 동갑 친구를 유심히 바라본다. 맥주도, 아티스트도 싫다지만 모임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제이. 기호와 정체가 모호한 제이처럼 '나'는 알 수 없는 말을 반복적으로 듣는다. "----엔 날개가 없다. ----은 추락"이라는. "슬픔엔 날개가 없다. 인간은 추락. 아니 더 큰 단어로. 감정엔 날개가 없다. 생명은 추락. 다시 작은 단어로. 가위엔 날개가 없다. 가윗날은 추락.'(p.63)이 근거로 한걸까? 노지영 평론가는 이 '말'과 주인공의 관찰을 두고 ''구멍'을 통해 '나'는 그동안 자신을 억압해온 언어의 질서를 발견'(p.80)한다고 말한다.

결국 책은 송지현 작가의 소설을 '아주 작은 슬픔들의 결정체'(p.82)로 이루어졌고, ''소인'들만의 '가능한 질서'들을 세워나가는 이야기'(p.83)라고 말한다. 전자에 대해서는 두 작품이 모두 일반적인 인물을 내세웠다는 점에서 수긍이 가지만, 후자에 대해서는 이해가 어려웠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고 싶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아마 그 바람이 <김장>에서 <난쟁이~ 관하여>에서 '나'로 나타났던 걸까. 두 작품의 '나'는 평범하게 시작해 '비상(非常)'하게 끝난다. 난데없이 어려웠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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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의 크레이터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정남일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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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에 기대 '운명'이라 믿고 싶을 때가 있다. 바닥을 쳤을 때, 끝이 없다 생각될 때, 그러다 한 줄기 빛이 비출 때. 소설 <세리의 크레이터>의 주인공들은 '우연히' 이뤄진 어떤 것들을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운석이 떨어지는 걸 보고서 엄마는 생각을 바꾼 거였어,"(p.14) 박혁거세에 버금가는 탄생 스토리를 가진 세리는 자신이 임신한 배 속의 아이에게도 같은 원리를 투영한다. 운석이 떨어지진 않았는데, 운석이 떨어진 곳이라도 가보겠다는 심산이다. 친구의 전 여친, 그녀와 살게된 나, 배 속의 아기, 운석이라는 탄생비화, 믿음. 세리와 두 남자가 등장하는 이 작품은 참으로 답답하다. 그런데 또 궁금하기도 하다. 각 장을 넘기며 나도 모르게 책 속의 '나'에게 질문한. 도대체 어떤 결정을 내릴거야? 나는 세리가 데려간 초계분지를 비행하며 왜 이곳에 오게된 것인지 이해한다. 결말을 예상하게 만드는 마지막 그의 말에 답답함은 배가 되지만, 작가는 끝끝내 결말을 보여주지 않는다.

작가의 이력을 찾아봤다. 현재 소설가 겸 공인중개사로 일하고 있다는,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1988년생 정남일의 작품이었다. 크레이터를 보며 느꼈던 답답함과 애매함은 <옆집에 행크가 산다>에서도 이어진다. '나'는 옆 집 남자가 '행크'라고 생각한다. 링위의 야수, 어깨부상으로 선수 생명이 끝났지만, 다시 링 위에 올라 스스로 망가진 그 남자 말이다. 옆집남자는 극구 부인한다. '나'는 맞나? 아닌가?를 생각하며 갈팡질팡한다. 이 작품에서는 '행크의 정체' 외에 또 다른 서사가 갑자기 시작된다. '나'의 아내 '민정'의 말 "흑인이잖아. 우리 집값 떨어져."(p.50) 떄문이다. 남편에게 행크와 사진을 찍되 SNS에 올리지 말라는 당부를 하는 터다. '행크'라는 사람의 서사에서, '우리'라는 범위에서 발생하는 '혐오'와 '구별짓기'가 새롭게 더해진다.

두 작품 모두 예상밖의 결말을 '예상'하게 한다. 그래서 매력적이다. 일반적인 범주의 사고를 하느냐 관점에서는, 작품의 인물들 모두 예사롭지 않다. 그러나 이런 일이 내게도 일어난다면?의 가정하에서는, 인물들의 결정에 수긍이 가기도 한다. 공인중개사와 소설가. 작가의 이력을 읽으며 '참 독특하네' 싶었는데 그 면모가 작품에도 드러나는 듯 하다. 우연같은 필연을 기대하게 하는, 앞으로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기대하게 되는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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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메인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유재영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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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도메인>은 열리고 확장되고 결말내지 않지만, 각각이 연결되고 한 점에 다다르는 신기한 소설이다. 영역(領域)을 뜻하는 말 '도메인'이라는 제목에 두 단편 「영」 「역」이 묶였다. 캠핑, 사고, 죽음, 다이아몬드, 관리인, 소설, 유튜버, 작가, 사라 윈체스터. 제 각기 존재하는 듯 흩뿌려진 각 단어들이 얽혀 '신비로움' '긴장'이라는 지점에 다다른다.

참 신기한 소설이다. [영]이 캠핑을 위해 모인 성인 네 명이 모닥불에서 공포이야기를 나누고 죽음을 목격하는 스토리라면 [역]은 유튜버의 이야기를 듣고 보는, 과거 누나의 죽음을 목격한 자의 기억 혹은 경험이다. 서스펜스냐 하면, 공포고, 호러냐 하면 추리기도 하다. 뫼비우스 띠처럼 연결되지 않으면서도 유기적이다. 두 작품 모두 결말이 열려있고 감정이나 서사를 부득불 끌고가지도 않는데, 독자는 지속적으로 '긴장'하게 된다. 누가 범인이지? 어떻게 일어난 일이지? 묻고 또 추리한다. 작품들은 답을 내지 않는다. 이런 전개를 두고 조형래 문학평론가는 '분명 무슨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지만 '단지 그럴 뿐'(p.88-89)이라고 분석한다.

제목을 보고 인터넷 세상이 등장하리라 예상했다. 아니었다. 조형래 평론가의 말처럼 '예측이나 기대에 부합하지 않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특이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저자 유재영은 '저마다 다른 이름으로 부르던 이것을 작은 이야기에 담'(p.95)았다고 말한다. 현수막, 사유지, 족적, 인간, 땅 등을 보고 나서다. 1차원적으로 추론해보았다. 누군가의 '자산'이지만 실제로 자신에게는 '없는 부분'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딛고 있는 땅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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