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리의 크레이터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정남일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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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에 기대 '운명'이라 믿고 싶을 때가 있다. 바닥을 쳤을 때, 끝이 없다 생각될 때, 그러다 한 줄기 빛이 비출 때. 소설 <세리의 크레이터>의 주인공들은 '우연히' 이뤄진 어떤 것들을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운석이 떨어지는 걸 보고서 엄마는 생각을 바꾼 거였어,"(p.14) 박혁거세에 버금가는 탄생 스토리를 가진 세리는 자신이 임신한 배 속의 아이에게도 같은 원리를 투영한다. 운석이 떨어지진 않았는데, 운석이 떨어진 곳이라도 가보겠다는 심산이다. 친구의 전 여친, 그녀와 살게된 나, 배 속의 아기, 운석이라는 탄생비화, 믿음. 세리와 두 남자가 등장하는 이 작품은 참으로 답답하다. 그런데 또 궁금하기도 하다. 각 장을 넘기며 나도 모르게 책 속의 '나'에게 질문한. 도대체 어떤 결정을 내릴거야? 나는 세리가 데려간 초계분지를 비행하며 왜 이곳에 오게된 것인지 이해한다. 결말을 예상하게 만드는 마지막 그의 말에 답답함은 배가 되지만, 작가는 끝끝내 결말을 보여주지 않는다.

작가의 이력을 찾아봤다. 현재 소설가 겸 공인중개사로 일하고 있다는,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1988년생 정남일의 작품이었다. 크레이터를 보며 느꼈던 답답함과 애매함은 <옆집에 행크가 산다>에서도 이어진다. '나'는 옆 집 남자가 '행크'라고 생각한다. 링위의 야수, 어깨부상으로 선수 생명이 끝났지만, 다시 링 위에 올라 스스로 망가진 그 남자 말이다. 옆집남자는 극구 부인한다. '나'는 맞나? 아닌가?를 생각하며 갈팡질팡한다. 이 작품에서는 '행크의 정체' 외에 또 다른 서사가 갑자기 시작된다. '나'의 아내 '민정'의 말 "흑인이잖아. 우리 집값 떨어져."(p.50) 떄문이다. 남편에게 행크와 사진을 찍되 SNS에 올리지 말라는 당부를 하는 터다. '행크'라는 사람의 서사에서, '우리'라는 범위에서 발생하는 '혐오'와 '구별짓기'가 새롭게 더해진다.

두 작품 모두 예상밖의 결말을 '예상'하게 한다. 그래서 매력적이다. 일반적인 범주의 사고를 하느냐 관점에서는, 작품의 인물들 모두 예사롭지 않다. 그러나 이런 일이 내게도 일어난다면?의 가정하에서는, 인물들의 결정에 수긍이 가기도 한다. 공인중개사와 소설가. 작가의 이력을 읽으며 '참 독특하네' 싶었는데 그 면모가 작품에도 드러나는 듯 하다. 우연같은 필연을 기대하게 하는, 앞으로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기대하게 되는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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