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심리의 재구성 - 연쇄살인사건 프로파일러가 들려주는
고준채 지음 / 다른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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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비밀의 숲>에 빠져있다. 드라마는 '검경수사권 조정'이라는 대의 아래, 여러 사건들이 발생하고 해결되는 과정을 그린다. 드라마에서 인상깊은 캐릭터는 검사 황시목(조승우)다. 공감력이 떨어져 다소 눈치없는 캐릭터인 그는, 사건 해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사건 현장을 누비며, 범인의 마음과 사건의 진행 과정을 추측해낸다. 조각난 단서들에서 핵심 정보를 찾아내기도 한다. 드라마에서 황시목 검사의 행동이 일종의 '프로파일링'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프로파일링이란, 사건의 현장에서 범인의 행동 특징을 파악하여 용의자를 선별하는 수사기법이다. 그러나 이제 '통계적 검증과 과학적 방법론을 적용하여 각종 데이터를 해석하고, 프로파일러가 범죄자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범죄자자신도 모르는 범죄심리를 분석하여 실제 범행 동기를 밝히는 방향(p.6)'으로 프로파일링의 역할이 확장되고 있다고 한다.


1. 프로파일링과 프로파일러

책 <범죄 심리의 재구성>은 프로파일러 고준채가 프로파일링을 소개한 책이다. 구체적으로는 '프로파일러가 범인의 유죄를 입증해나가는 프로파일링과 수사 과정에서 만나는 인간의 범죄심리에 관한 이야기(p.6)'라고 할 수 있다. 경기남부경찰청 국립과학수사연구소를 거쳐 현재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저자 고준채는 범죄 현장의 흔적을 분석해 범행 동기와 수법을 파악하고 용의자를 특정지으며, 그 사람의 심리를 분석해 재발을 막는 사람이 바로 '프로파일러'라고 소개한다.

2. 주취감경은 구시대의 유물

책은 범죄 현장의 사례와 개념들을 소개한다. 첫번째는 '주취감경'으로 성폭행 가해자 조두순의 만기출소와 관련해 최근 여러 뉴스에서 다뤄졌던 개념이다. 주취감경이란 현행법에는 없지만 '형법 제10조'를 적용해 음주로 인해 심신미약의 상태였다면 형벌 수위를 낮춰주는 관습이라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책에서 주취감경은 '구시대의 나쁜 유산'이라며, 이것은 '산업화 과정에서 음주가 잦다 보니 술 마시고 사고 좀 칠 수 있다는 의식이 관례처럼 굳어진 것(p.38)'이라고 말한다. 조두순 사건 이후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주취감경을 양형 감경 요소에서 제외했다지만, 아직 사라지지 않은 관행이라고 한다. 유독 관대한 법조항과 함께 수정되어야 할 부분 아닐까.

3. 범죄자의 감정에 이입되지 않을까?

두번째는 언제나 궁금했던 부분으로 프로파일러를 비롯한 관계자들이 '사건을 사건 그 자체로 대할 수 있느냐'에 대한 것이다. 프로파일러들은 범죄자들의 변하는 심리를 따라간다. 그들의 감정 변화를 가능한 똑같이 복기해내는 것이 그 사건을 가장 정확하고 빠르게 해결하는 길이다. 혹시 이럴 때 범죄자들의 감정을 따라가다 자신의 마음까지 전이되지는 않을까? 동화되지는 않을까? 궁금했다. 저자는 '프로파일러는 자기 자신을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p.59)'고 말한다. 자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경우 범죄자를 이해하고 판단할 때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범죄자나 피해자에게 전이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다는 것이다. 프로파일러가 되기 위해서 심리학 전공을 요하는 것이 이런 맥락 때문이며, 인간의 행동을 잘 이해하는 것이 프로파일링에서 중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4. 최면수사

책에서는 '최면수사'에 대해서도 소개한다. 한 사람의 무의식을 끌어내는 최면은 마술처럼 보였다. 하지만 저자는 '범행을 감추려는 피의자에게 최면으로 자백을 받아내기는 어렵다(p.135)'며 최면이 만능수사가 아니라고 말한다. 최면에 걸린 상태더라도 의지에따라 감출 수 있다니 너무 놀랍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IT가 발달하면서 최면수사가 사양추세라고 한다. CCTV, 블랙박스 등을 활용한 물리적 증거 기법에 대한 신뢰가 쌓인 결과라고.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물리적 증거들을 조작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던데, 오히려 현장에서는 이런 것들을 더 신뢰한다니 의아하기도 하다. 오히려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기억을 꺼내려는 노력이 '범죄해결' 관점에서는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만약 이런 기술이 개발된다면 반드시 범죄 사건 해결에만 사용한다는 전제가 필요할 테지만 말이다.


2020년 3월 디지털성범죄 'N번방' 사건, 7월 아동성착취 사이트 '웰컴투비디오' 손정우 석방 등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이번해 12월 13일 조두순이 출소한다. 왜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걸까? 현장에는 피해자의 고통 혹은 죽음이 있다고 한다. 경험하고 싶지 않고, 더 이상 뉴스에서도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이런 사건들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프로파일러 고준채는 '누군가 그 피해자의 아픔을 공감하고, 다시는 똑같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p.228)'는 사명감으로 이 책을 썼단다. 책은 프로파일러라는 직업과 프로파일링이라는 수사기법을 소개한다. 다양한 사건들을 예로 들고있어 프로파일링의 세계를 쉽게 그려볼 수 있다.

반면, 이런 생각도 든다. 사건의 가해자들도 또 다른 측면의 피해자 아닐까? 가정이, 사회가, 국가가 그 사람들을 그렇게 만든건 아닐까? 그래서 끔찍한 사건들이 반복되는 건 아닐까? 라는 궁금증들. 저자는 범죄를 해결하고 예방하는 데는 '(경찰, 검찰 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각자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며 노력할 때 조금씩 사회는 발전한다. 안전하고 좋은 나라는, 누구 하나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그는 거듭 말한다. 그렇다면 그저 내 자리에서 내게 주어진 역할들을 충실히 해나가는 것이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하는 방법인걸까? 궁금증이 남는다. 과연 범죄가 없는 세상이 가능하기는 한걸까라는 물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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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난임일기
김정옥 지음 / 유노북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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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임'의 터널을 지나는 과정은 참 고단하다. 체외수정만 하더라도 '과배란-채취-이식-기다림-종결'로 이뤄지는 단계들을 모두 거쳐야한다. 정해진 시간, 매일 내 배에 스스로 주사를 꽂아야 하고 입에 약을 털어넣어야 한다. 임신에 대한 기대, 임신테스터기 한 줄이 주는 좌절을 넘나들며 심장이 쪼그라들다 못해 없어지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왜 아직도..?'라는 끊임없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모두에게 모르쇠하며 감정을 숨기거나, 나만의 비밀을 커밍아웃해야 한다. 모두가 겪지 않았지만, 제법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고, 가능한 겪지 않으면 좋은게 바로 난임 아닐까? '난임'은 정상적인 성관계를 1년이상 가졌으나 임신이 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난임은 임신을 할 수 없는 정확한 이유가 있는 '불임'과 다른 것으로 요즘 의학계에서는 난임을 infertility보다 subfertility로 쓴다고도 한다.


그림에세이 <분노의 난임일기>는 김옥자/김무상 부부, 유빛나/한푸근 부부, 강한이/이과묵 부부의 '임신'과 관련한 이야기를 그린다. 여기서 세 여성은 기쁨과 고민을 함께 나누는 동창으로, 빛나는 연애중 아이가 생겨 결혼한 반면, 옥자와 한이는 난임을 진단 받은 상태로 나온다. 책은 세 커플이 어떤 과정을 거쳐 난임을 버티고 이겨내는지 그린다. 결혼한지 2년이 되지 않자 병원에 방문하기로 한 옥자 부부, 설마 난임일까? 싶었는데 정말 난임이라는 진단을 받고 충격에 빠진다.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이었던 한이는 회사를 그만두고 이사마저 가버린다. 빛나의 육아 푸념을 듣기가 힘들어서였다. 한이는 친구들 몰래 시험관 시술을 진행하고 있었다.

세 여성의 이야기는 현실 그 자체다. 난임이라는 진단의 충격, 부끄러운 일도 아니지만 외부에 말하기 꺼려지는 시술들과 내 상태, 친구의 임신에 마냥 축하를 보내기 힘든 마음, 채취나 이식이 있을 때의 두려움, 굴욕의자에 대한 마음까지. 난임을 경험한 사람들이 한번쯤 느끼는 구체적인 마음들이 주인공들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된다. 특히, 두 명의 친구가 동시에 임신을 준비하고 한 사람만 성공했을 때는, 너무 내 얘기같아서 울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아직도 난임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월경이 시작되면 병원에가고, 초음파를 보면서 난포가 몇 개 컸고, 자궁내막이 얼마나 잘 자랐는지를 묻는다. 남편의 건강을 최상의 상태로 끌어올리기 위해 몸에 좋다는 영양제를 꾸준히 챙겨먹이고, 하루에 한번씩 산책하며 걷기 운동을 한다. 언젠가 예능프로에서 여자 개그우먼의 시험관 시술과 실패 결과까지 다루는 것을 봤다. 밝은 성격상 방송에서는 툴툴 털고 일어나는 것으로 그려졌지만, 나는 그 분이 걱정됐다. 세상에 난임을 밝혔다는 것, 주변에서 관심이라는 명목으로 끊임없이 아픈 부분을 건드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임신 실패에 따른 상심이 얼마나 클지 알기에 걱정 했다. 그 분은 지금, 잘 이겨내고 있을까?

에세이 <분노의 난임일기>는 만화지만 가볍지 않다. 난임의 정의, 난임 시술과정(인공수정, 시험관)과 비용, 시술 선택 방법, 각 단계를 거치며 느껴지는 마음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난임 대백과사전' 같다다. 이 책은 다양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내가 난임인가?' 의심되는 사람들은, 책을 통해 난임에 대한 전반적 상황을 미리 알아볼 수 있다. '이미 난임'을 진단받고 치료중인 사람들은,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다시 확인하며 주인공들에게 공감하고, 나 혼자만 그런 게 아니라는 위로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뭐가 문제라서 난임이야?' 혹은 '왜 아직도 아이가...?'라는 질문폭격을 해대는 사람들에게 아주 맞춤하다. 관심을 핑계로 난임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칼을 꼽거나, 무리없이 임신했기에 난임을 질병 취급하는 사람들 말이다. 이 책을 빌어 그런 사람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세상에는 난임인 사람들이 생각보다 꽤 많다고. 당신 주변에 있는 그 누구도 그럴 수 있다고. 단지 말을 안할 뿐이라고. 그러니 이 책 읽고, 그 사람들이 얼마나 힘든 시간을 버텨내고 있는지 알고 입조심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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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택트 시대 일상을 버티게 해주는 고독의 힘 - 고독은 어떻게 삶의 힘이 되는가
오가와 히토시 지음, 권혜미 옮김 / 책이있는풍경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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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식 대신 배달음식을, 장보기 대신 주문을, 회의 대신 랜선미팅을 한다. 수업도 온라인으로 바뀌었고, 업무는 집에서 처리한다. 코로나가 바꾼 일상의 모습이다. 사람 얼굴을 보는 대신 핸드폰이나 컴퓨터를 마주하는 시간이 늘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데 점차 디지털인간으로 변하는 것 같다. 코로나가 만든 사회적 단절은 많은 사람들에게 '고독'을 심었다. 고독, 과연 문제일까? 일본 철학자인 오가와 히토시는 책 <언택트 시대 : 일상을 버티게 해주는 고독의 힘>에서 '고독한 시간을 차라리 즐기라'고 말한다.


"정신이 풍부한 사람은 혼자서도 작은 세계를 만든다. (p.156)"

강연을 하며 '고독'을 고민하는 사람들을 만나온 저자는 '적극적으로 고독을 선택하라'고 조언한다. 고독을 피하지 말고 즐긴다면, 그 시간은 오히려 개인에게 긍정적으로 다가온다는 것. 그 근거는 "인간의 힘은 조용한 곳에서 최대치가 된다."는 세네카의 말, "혼자 있으려는 노력이 사랑의 전제조건이다." 에리히 프롬의 말과 같은 것이다. 또한 자신도 고독을 느끼는 순간이 있었지만, 생각을 전환한 후, '고독'이 어느 순간 '친구'가 되었다며 '긍정적인 고독레슨 7스텝'으로 자신만의 노하우를 제시한다. 좋아하는 일 찾기, 정보에서 벗어나기, 다른 사람 의식하지 않기, 거절하기, 혼자 즐길 방법 생각하기, 단시간 혼자 지내기, 장시간 혼자 지내기다.

사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고독은 필수불가결하다. 인간과 교류하고, 정보를 끊임없이 주고받는 가운데, 나와 타자를 구분하는 건 어쩌면 '고독'을 거치며 '품어온' 생각과 마음 때문일 테다. 나이를 먹을 수록 '고독'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책은 그런 감정이 한 사람에게 내적 힘을 제공하는 원천이 된다고 끊임없이 말한다.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책이다. 실천방법이 모호하고, 너무 뻔한 이야기로 읽힐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지금의 시간을 버틸 수 있는 '희망'을 준다. 고독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면, 그 생각의 각도를 바꿔보자.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가 기회라고 말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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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5분 내 몸 관리법 (양장 스프링) - 피지컬갤러리의
라이프에이드 지음 / 시간과공간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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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친구들! 빡빡이 아저씨야!"

빡빡이 아저씨의 인사가 시작된다. 빡빡이 아저씨는 유튜브 '피지컬갤러리'에서 탄단지 영양소, 뼈와 근육의 움직임, 운동할 때 주의사항 등 건강관련 정보를 5분 남짓한 시간동안 알려준다. 피지컬갤러리 계정에는 어깨가 뻐근할 때 할 수 있는 동작부터, '가짜사나이' 시리즈까지 이해가 쉬우면서 재밌는 콘텐츠들이 업로드된다. '피지컬갤러리'는 라이프에이드(LIFE AID)라는 건강 전문가 그룹이 만든 건강 브랜드다. 라이프에이드는 의학 전문가, 운동 전문가 등 스포츠 및 의학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라이프에이드가 <피지컬갤러리의 하루 5분 내 몸 관리법>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책은 목, 어깨, 팔/팔꿈치/손목, 등/가슴, 허리/골반, 무릎/허벅지, 발목/발가락 등 7개 파트로 나눠 설명한다. 각 부위 통증 형태에 따라, 관여하고 있는 근육명, 근육의 특징, 가동범위, 정확하게 통증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 등을 안내한다.


 

지난 8월, 운동 중 어깨를 다친적이 있다. 집중적으로 팔운동을 하고 잠을 자려는데 차렷자세가 불가능했다. 자연스레 만세자세를 취해야 했다. 어깨의 열감이 엄청났다. 역시나 다음날 아침 출근 준비를 하는 데 팔을 올리기가 힘들어 남편의 도움으로 옷을 입어야 했다. 하루종일 아팠다. 고개를 의자에 기대거나, 차안에서 미세한 움직임이 몸에 느껴지면 곧바로 통증이 느껴졌다. 정형외과에서 주사를 맞을 수 밖에 없었다. 그때 이 책을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나의 어깨 통증 상황은 part2, 2장 '팔을 밖으로 돌리기가 힘들어요'에 있다. 팔을 앞으로 올리고 내릴 때 통증이 있고, 심할 때는 팔을 올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 책에서는 이와 관련한 근육 '삼각근'을 설명한다. 삼각근은 '어깨 관절을 둥글게 감싸고 있는 세 갈래로 이루어진 근육으로 (중략) 어깨와 팔의 모든 움직임에 관여한다. (p.43)'고 책은 말한다. 이러한 삼각근은 어깨에 직접적인 외상이 있거나, 무거운 물건을 무리하게 들어 올리거나 혹은 어깨에 메는 등의 행동을 할 때 다칠 수 있다고 한다. 아마 전날 운동에서 무리하게 아령을 들고 팔을 움직였던 것에 화근이 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세워서 볼 수 있다. 건강관련 일반 책이지만, 보통 책들과 다르다. 책은 책상 위에 세워서 볼 수 있는 '특허 받은 제본'을 사용했다고 한다. 몸에 아픈 부위가 있을 때 책을 책상 위에 세워두고 동작을 따라하기가 좋고, 책을 읽기 위해 고개를 숙일 필욕 없어서 편하다. 독자들의 책읽는 자세까지 고려했다는 점이 건강 전파 그룹답다 느껴진다.


한창 시절(?)에는 평생 몸의 아픔없이 살 줄 알았다. 어른들이 영양제를 챙겨먹고 밥먹듯 운동하는 모습이 이상하게만 느껴졌는데, 이제 내가 영양제와 운동을 챙긴다. 하루만 운동을 쉬어도 몸 상태가 다르다는 걸 섬세하게 느껴가면서. 건강과 웰빙, 소소한 행복들이 주목받는 요즘, <하루 5분 내 몸 관리법>처럼 필요한 책이 있을까. 운동도 정확하게 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근육의 쓰임과 특성을 정확히 알고 운동해야 내 몸에 활력과 에너지를 불어넣을 수 있으리라. 건강과 몸에 관심많은 분들께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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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의 죽음과 시민의 침묵
이일영 외 지음 / 지식공작소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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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그 사람이 사회에 무수한 발자취를 남겼다고 하더라도, 부끄러움 속에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을 기억하는 이들이 슬픔 속에 남겨졌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행했던 일은 결코 지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p.82)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시신이 발견된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던, 지난 7월 16일 서울대 중앙도서관 게시판에 붙은 대자보 문구다. 7월 10일 오전이 기억난다. 출근 준비를 할 때, 뉴스를 보던 남편이 박원순 전 시장의 죽음을 알렸다. 사무실에서는 온종일 '이 사건'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죽음의 원인을 추측하고, 고인을 애도하고, 성폭행 피해자의 입장을 걱정하고, 정치적 의견까지 오갔다. 한 정치인의 죽음과 그 죽음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사건이 여러 결로 확장되고 추측되는 상황이었다. 지식공작소의 책 <박원순의 죽음과 시민의 침묵>에는 그 상황이 고스란히 활자로 녹여져있다. 책은 사회를 맡은 이일영(교수)과 세 명의 패널, 이인미(시민단체 활동가), 이재경(역사학과 정치학 전공자), 도이(정치 활동가)가 2020년 7월 24일 '젠더 좌담회'에서 다룬 이야기들을 기록하고 있다.

좌담회는 박원순 시장 유고 사태를 비롯해 여성에 대한 인식, 미투, 페미니즘, 안희정 전 지사 사건, 정치적 권력 등에 대해 얘기한다. 가장 먼저 박원순 전 시장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박 전 시장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로 당선되기 전까지, 1993년 서울대 성희롱 사건의 변호를 맡아 승소했고, 양성쓰기 운동, 호주제 폐지운동 등에 힘 쏟으며 여성인권 향상에 기여한 인물로 일컬어진다. 이러한 그의 죽음은 많은 사람에게 혼동의 감정을 야기했다. 이일영 교수는 좌담회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도 공격을 받는다"며 "(이것은) 이야기를 하면 양 극단으로 맥락이 만들어져 어떻게든 공격이 나오기 때문(p.26)"이라고 말한다. 이재경 님이 경험한 카톡방 사례도 등장한다. 누군가 추모글을 올리면, 또 다른 누군가가 들이 받고, 말이 없던 몇 사람이 우르르 나가는 상황. 이것에 대해 이 교수는 "삼분의 일과 삼분의 일이 싸우고 나머지 삼분의 일은 숨는다."며 "우리 사회가 세 쪽이 난 셈"이라고 얘기한다. 한쪽은 박, 다른 한쪽은 피해자, 나머지는 회색분자가 되는 셈이다.

박원순의 죽음과 고소가 함께 회자되며 '사건'에 대한 입장은 주로, 두 가지로 나눠졌다. (1)박원순 전 시장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성폭력 사건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2)피해자 입장을 두둔하는 것=페미니스트 또는 박원순을 지지하지 않는 것. 프레임 양 끝에는 박원순과 피해자가 서 있다. 이것은 박원순 전 시장의 죽음이 보도된 후 더 선명해졌다. 서울시장(葬)이 도마위에 오르며 정치적 색이 덧입혀졌다. 쉽게 생각하려는 걸까? 하나의 논점으로 정리하고 싶은걸까? 혹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걸까? 패널 이재경님의 "추모와 슬픔이라고 하는 감정과 이 피해자 문제를 좀 분리해 생각하고 싶다. (p.25)"고 말한다. 진일보한 정치인이라 믿었던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문제와 그 사람이 행한 성 관련 이슈는 별개의 것으로 떨어뜨려 놓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서울대 대자보의 핵심이 이것이리라.

패널들은 '정치권력'도 논의한다. 이일영 교수는 "뛰어났던 존재가 막다른 길에 몰려 극단적 선택까지 하게 되는 걸 보면 정치권력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게 생긴다.(p.27)"며 "권력이 주어졌을 때 자기 정체성을 지키는 게 너무 너무 어려운 일인가 보다 하는 공포감(p.28)"이 든다고 말한다. 공포감. 이것이 박 전 시장에게는 '정치인으로서의 생명'과 맞닿은 공포였을 것이다. 반면, 안 전 지사의 피해자 김지은 씨는 다르다. 그녀는 '언짢게하면 안되는' 사람을 모시는 수행비서였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 한마디면 직장이 하루아침에 날아갈 수 있는 상황에서 그녀는 '(여러차례 말을 했지만) 쉽게 말을 하기 어려웠다'고 수차례 언급한다. 이것은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한 사람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권력에 대해 느끼는 공포다. 결국 정치권력은 각자의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르게 작동한다.

박 전 시장의 사건과 안 전 지사의 사건, 유사해 보이는 두 사건에는 두 명의 피해자가 등장한다. 박 전 시장의 죽음으로 우리나라가 들끓었을 때 정치인과 연관된 사건에 호기심이 생겨 책 <김지은입니다>를 읽었다. 틈틈히 읽으려 책을 사무실에 가져다 놓았다. 지나가며 책 제목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주로 (많이 순화한 표현이다) "그 사람 책도 냈어? 별일이네" "뭐 그런 책을 읽어?"였다. 책을 읽으며 그녀의 고통이 간접적으로 전이돼 힘들었고, '그저 별일 아닌 것'으로 치부하는 주변의 반응에 나도 모르게 상처받았다. 이게 왜 아무일도 아니지? 묻고 또 물었다. 보통 두 사건의 피해자들을 비난하며 입막음 시키는 공통적인 의견이 하나 있다. 바로 "그때 얘기했어야지" 라는 것. 책에는 '여성들이 피해를 당했을 때 바로 반발하지 못하는 이유'에 논의도 나온다. 이인미 활동가는 "여성들이 자기결정권을 죽여야 이 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양육된다는 데 원인이 있다고 본다."며 "태어나서 한 번도 자기 결정권을 행사해보지 못한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어른이 되었다고 그걸 행사할 수 있을까? (p.37)"라고 되묻는다. 그러면서도 피해자 역시 그 과정에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배우며 성숙해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사회문화적 맥락을 짚으면서도 피해자로 수렴되는 삶보다는 나아가고 발전하는 삶을 지향하라는 목소리로 들린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쉬운 걸까.

얼마 전, 일년간 휴직하고 돌아온 (연차 차이 많이나는) 남자선배가 복직했다. 펑퍼짐한 원피스를 입고있던 나를 엘리베이터에서 본 그는 "혹시 임신했어? 좋아보이네?"라며 친근함을 표시했다. "살쪘다고 놀리시는 건가요?"라며 받아쳤지만, 엘리베이터 안에 있던 동료들이 순식간에 모두 나를 돌아보며 웃었다. 놀림거리가 된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주변에 있던 몇명의 동료들이 '요즘 그런 얘기하면 큰일나'라고 농을 칠 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려 순식간에 상황은 종료됐다. 다수의 눈빛과 웃음이 내내 기억에 남아 나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몇 시간을 앉아 사건을 복기하다 용기를 내서 그 분을 따로 만났다. 이래저래해서 기분이 나빴고, 그런 말은 앞으로 삼가해주셨으면 좋겠다고. 그는 내가 이와 관련해 어떤 처분을 내리더라도 달게 받겠다며(회사안에는 성희롱 관련 정식 절차가 존재한다) 정말 미안하다고 사죄하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 되었지만, 그 선배는 왠지 다시 마주치고 싶지가 않다.

책에는 '온정적 차별'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온정적 차별이란, '저 사람이 선한 의도로 말했다는 게 다 보이지만 나에게는 불편한 차별 (p.57)'이다.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안 그러자니 마음이 불편한 그런 차별. 결은 서로 다르지만 박 전 시장의 피해자도, 안 전 지사의 피해자도, 그리고 펑퍼짐한 원피스를 입었던 나도, 한 켠에는 그런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차이가 있다면 빈도와 강도였을 것이다. 책 <박원순의 죽음과 시민의 침묵>은 여러 '성'관련한 사건을 담고 있다. 박원순에서 시작해 안희정, 이윤택, 고은 사건과 서지현 검사의 미투와 이를 비롯한 여러 사건들을 시간순으로, 공식발표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다. 가짜뉴스를 걸러내고 사건의 진짜 사안을 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568p에 달하는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복잡했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보이는 것들이 사건관계자들 눈에 안보이는 것 같아 답답했고, 도돌이표를 반복하는 우리나라 성 관련 사건들이 도돌이표를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에 암울했다.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과, 남녀의 한 부분으로서의 인간의 결은 많이 다른걸까. 누군가에게 해를 입히지 않으면서 '한 사람'으로 사는 것은 어려운 걸까. '#피해자와연대합니다'라는 해시태그 대신 '한 사람이 바르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먼저 생각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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