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난임일기
김정옥 지음 / 유노북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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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임'의 터널을 지나는 과정은 참 고단하다. 체외수정만 하더라도 '과배란-채취-이식-기다림-종결'로 이뤄지는 단계들을 모두 거쳐야한다. 정해진 시간, 매일 내 배에 스스로 주사를 꽂아야 하고 입에 약을 털어넣어야 한다. 임신에 대한 기대, 임신테스터기 한 줄이 주는 좌절을 넘나들며 심장이 쪼그라들다 못해 없어지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왜 아직도..?'라는 끊임없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모두에게 모르쇠하며 감정을 숨기거나, 나만의 비밀을 커밍아웃해야 한다. 모두가 겪지 않았지만, 제법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고, 가능한 겪지 않으면 좋은게 바로 난임 아닐까? '난임'은 정상적인 성관계를 1년이상 가졌으나 임신이 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난임은 임신을 할 수 없는 정확한 이유가 있는 '불임'과 다른 것으로 요즘 의학계에서는 난임을 infertility보다 subfertility로 쓴다고도 한다.


그림에세이 <분노의 난임일기>는 김옥자/김무상 부부, 유빛나/한푸근 부부, 강한이/이과묵 부부의 '임신'과 관련한 이야기를 그린다. 여기서 세 여성은 기쁨과 고민을 함께 나누는 동창으로, 빛나는 연애중 아이가 생겨 결혼한 반면, 옥자와 한이는 난임을 진단 받은 상태로 나온다. 책은 세 커플이 어떤 과정을 거쳐 난임을 버티고 이겨내는지 그린다. 결혼한지 2년이 되지 않자 병원에 방문하기로 한 옥자 부부, 설마 난임일까? 싶었는데 정말 난임이라는 진단을 받고 충격에 빠진다.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이었던 한이는 회사를 그만두고 이사마저 가버린다. 빛나의 육아 푸념을 듣기가 힘들어서였다. 한이는 친구들 몰래 시험관 시술을 진행하고 있었다.

세 여성의 이야기는 현실 그 자체다. 난임이라는 진단의 충격, 부끄러운 일도 아니지만 외부에 말하기 꺼려지는 시술들과 내 상태, 친구의 임신에 마냥 축하를 보내기 힘든 마음, 채취나 이식이 있을 때의 두려움, 굴욕의자에 대한 마음까지. 난임을 경험한 사람들이 한번쯤 느끼는 구체적인 마음들이 주인공들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된다. 특히, 두 명의 친구가 동시에 임신을 준비하고 한 사람만 성공했을 때는, 너무 내 얘기같아서 울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아직도 난임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월경이 시작되면 병원에가고, 초음파를 보면서 난포가 몇 개 컸고, 자궁내막이 얼마나 잘 자랐는지를 묻는다. 남편의 건강을 최상의 상태로 끌어올리기 위해 몸에 좋다는 영양제를 꾸준히 챙겨먹이고, 하루에 한번씩 산책하며 걷기 운동을 한다. 언젠가 예능프로에서 여자 개그우먼의 시험관 시술과 실패 결과까지 다루는 것을 봤다. 밝은 성격상 방송에서는 툴툴 털고 일어나는 것으로 그려졌지만, 나는 그 분이 걱정됐다. 세상에 난임을 밝혔다는 것, 주변에서 관심이라는 명목으로 끊임없이 아픈 부분을 건드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임신 실패에 따른 상심이 얼마나 클지 알기에 걱정 했다. 그 분은 지금, 잘 이겨내고 있을까?

에세이 <분노의 난임일기>는 만화지만 가볍지 않다. 난임의 정의, 난임 시술과정(인공수정, 시험관)과 비용, 시술 선택 방법, 각 단계를 거치며 느껴지는 마음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난임 대백과사전' 같다다. 이 책은 다양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내가 난임인가?' 의심되는 사람들은, 책을 통해 난임에 대한 전반적 상황을 미리 알아볼 수 있다. '이미 난임'을 진단받고 치료중인 사람들은,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다시 확인하며 주인공들에게 공감하고, 나 혼자만 그런 게 아니라는 위로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뭐가 문제라서 난임이야?' 혹은 '왜 아직도 아이가...?'라는 질문폭격을 해대는 사람들에게 아주 맞춤하다. 관심을 핑계로 난임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칼을 꼽거나, 무리없이 임신했기에 난임을 질병 취급하는 사람들 말이다. 이 책을 빌어 그런 사람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세상에는 난임인 사람들이 생각보다 꽤 많다고. 당신 주변에 있는 그 누구도 그럴 수 있다고. 단지 말을 안할 뿐이라고. 그러니 이 책 읽고, 그 사람들이 얼마나 힘든 시간을 버텨내고 있는지 알고 입조심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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