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페미니즘하다 더 생각 인문학 시리즈 11
이은용 지음 / 씽크스마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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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신저 앱을 통한 디지털 성범죄, 성 착취 사건이 일어났다. 피해자는 초등학생, 중학생 등 미성년자가 대다수, 가해자는 수십만명으로 추정된다. 가장 전문적이고 처리가(?) 확실하다는 박사방의 경우 최소 74명의 회원이 있었고, 이곳에서는 어린 소녀들을 대상으로 벌어진 성착위 영상물들이 거래되고 있었다. 인문학자 임옥희의 책 <여성혐오가 어쨌다구?>에서 “정보가 넘쳐날수록 익명성 속으로 가라앉는 아이러니한 시대에 사람들은 자기 존재를 알리기 위해 점점 더 극악스럽게 혐오 강도를 높여 간다”고 말한다. 메신저 앱에는 포토라인에 선 자에대한 추모방이 생긴다고 한다. 당사자는 '악마의 삶을 멈추게 해주어 고맙다'고 말했다. 마치 그들에게 '악마'란 상징적이며 거대한 권력으로 보이나보다. 그리고 그의 추종자들은 그 악마를 '낭만화'해 더욱 불편하게 만든다. 익명성에서 자기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다양한 요구조건으로 혐오 강도를 높였던 그들의 소식에 임옥희의 분석이 새삼 와닿는다.

기자 이은용은 대학생이 된 아들과 대화를 주고 받다가, 또래 친구 하나가 성추행 피해를 세상에 알린 양예원씨를 비웃으며 놀린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 경찰서에 불려간 일을 듣게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걸까 생각하던 기자 이은용은 ‘혐오’라는 말을 떠올린다. “세상 그 누구든 컴퓨터 자판 위 손가락 따위가 빚은 혐오 때문에 괴롭거나 아프지 않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p.11)”라고 생각한 그는 그렇게 여성에 대해, 누군가의 아픔에 대해, 관계에 대해 톺아보기 시작한다. 그렇게 기자 이은용은 책 <나, 페미니즘하다>을 세상에 내놓는다.

페미니즘’은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살펴보고, 여성이 사회제도 및 관념에 의해 억압되고 있다는 것을 밝혀내는 여러 가지 사회적, 정치적 운동과 이론들을 포괄하는 용어다. 개인적으로는 ‘페미니즘’은 다소 피로하다. 어떤 사안을 페미니즘의 기준 아래에 둘 때, 보통 나는 약자이거나 피해자다. 목이 막혀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경우가 대다수, 힘을 내 소리를 내더라도 혼자 오해하는 이상한 사람이 되기 일쑤다. 용기내 기준선 위로 끌어올리면, 얘기를 듣는 누군가의 생각은 곧 잘 ‘여혐’에 닿는다. 의도와 상관없이 여성의 어떤 것을 논하는 건 페미니즘이고 이건 여성 우월주의에 따라 남성 불평등을 조장해, 결국 여성혐오와 연결되는 사고체계. 지금까지 경험한 페미니즘은 내게 그런 인상을 주었다.


책에는 양예원씨의 ‘합정(동) 불법 누드 촬영 수사 및 진상 규명’관련 사건 청원에 동의 버튼을 누른 수지가 등장한다. 수지는“용기 있는 고백에 힘을 보태 주고 싶었다”말하지만 누리꾼들에게 뭍매를 맞고 만다. 그러자 “그분이 여자여서가 아니다. 페미니즘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 대 사람으로 끼어들었다. 휴머니즘에 대한 나의 섣부른 끼어듦이었다. (p.82)”고 말했단다. 사안에 대한 연관단어가 만들어 낸 두려움에 급히 의견을 철회하고 싶은 모양으로 읽혔다. 아마 수지도 그런걸 느끼지 않았을까? 피로감. 그래서 없던 일로 덮고 싶은 마음.

문득 ‘페미니즘(feminism)’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궁금하다. 단어의 어원에 따라 ‘메니즘(menism)’혹은 ‘메니미즘(menimism)’정도 될까 싶었지만, 그런 단어는 검색되지 않았다. 조금 더 찾아보니 평등주의로 읽히는 ‘이퀄리즘(equalism)’이 페미니즘 반대말의 근사치라고 한다. 모든 사람이 주요 객체일텐데 여성과 연관된 페미니즘만 개념어로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페미니즘이 '여성의 단어'라기 보다 젠더를 바탕으로한 인간 관계를 분석한 개념이기 때문이거나 그도 아니라면, 철저히 남성 중심으로 굴러가는 사회에서 남성들의 어떤 사상과 관계는 언급할 필요조차 없는 모르겠다. 그렇다면 왜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는 즉각 여성 혐오와 연관되는걸까?

거울을 손에 든 채 ‘못된 남자가 욕한 그대로 돌려 주는 데’ 매이지 않고 여성 삶을, 아니 한국 사회를 ‘고르고 판판하게 바꿔 보자’고 말하기 시작한 겁니다. (p.57)

이에 대해 이은용 기자는 책에서 여러 증거를 든다. 책 <못생긴 여자의 역사>를 지은 클로딘느 사게르는 ' 마녀'가 “독신 혹은 과부로 흔히 아이가 없으며 당대 사회의 가치와 규범에 문제를 제기하는 태도를 가진 독립적인 여성(p.27)”이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또 "가난하고 힘없는 남자일수록 ‘여성을 제대로 알거나 함께 살 기회’가 없었고 경제적으로 홀로 선 채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이 두려웠을지도 모른다(p.28)"고 덧붙인다. 즉, 힘없는 남자들 사이로 두려움이 퍼지고 이게 마녀 허상을 만들고 점차 혐오의 틀로 굳어졌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책에서 마지막 쐐기를 밖는다. “힘센 여성 때문에 나와 내 삶이 쪼그라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솟자 남자들끼리 은근히 ‘여성을 하찮게 여겨 깔보는 짬짜미’를 이뤘다. (p.28)”라고. 여성과 혐오가 유닛처럼 붙어 자연스레 떠오르는 이유가 남성 중심 사고의 표현이고 그들끼리 만들어낸 ‘남자들의 짬짜미’라는 분석이다.

남성 기자분이 페미니즘을 어떻게 분석했을까 궁금했다. 저자는 여러 뉴스와 현재의 이슈를 페미니즘과 버무려 쉽게 설명한다. 강남역 살인과 마녀사냥에서 시작해 메갈리아 워마드, 아이돌 페미니즘, 김학의, 안태근, 안희정, 불꽃페미액션 등. 기자의 시각이어서일까? 글은 굉장히 중립적으로 읽힌다. 그리고 책에는 새로운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톺아보기(샅샅이 더듬어 뒤지면서 찾아보기), 핫아비(유부남), 매조지(일의 끝을 단단히 단속하여 마무리하는 일) 등. 숫자나 영어 표현을 쓸때도 한글로 적는다. 시시 티브이(CCTV), 시월 3일 이런식으로. 이은용 기자는 책날개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꾸준히 올곧고 이로운 글을 쓰며 살아가기로 마음을 다진다"고 했다. 지향하는 바가 무엇이든, 세상의 한 단면을 그의 표현대로 '톺아보아' 책을 낼 수 있었음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생태계의 다양성은 중요하면서 젠더의 다양성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순사회, 인권은 중요하면서 여성의 그것은 나중문제로 치부해버리는 우월주의, 요즘의 뜨거운 감자 N번방과 얽히며 여러 생각할 지점을 건드리는 책이었다. 저자는 말미에 "귀 기울일수록 한국에 사는 남자로서 많이 낯부끄러웠다. (p.192)"고 말한다. 또 "페미니즘은 오랜 가부장제 때문에 비틀어지거나 잘못된 걸 바로잡으려는 생각이자 움직임입니다. (p.188)"라고 정의내린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서라도 배우고 익힐 수 있었으면, 그래서 귀 기울이고, 조금 더 나은 세상 만들기에 동참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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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 (리커버 에디션)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21세기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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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사무실에 앉아 한숨부터 쉬었다. 회사는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팀별 1/3의 인원만 출근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더 나아가 우리팀 리더는 육아를 하고 있는 직원들은 100% 재택근무를 시키겠다는 자체결정을 내렸다. 직원이 네 명인 팀에서 육아중인 팀원은 절반이다. 결국 나와 또 다른 한 명이 번갈아가면서 출근을 해야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해는 한다. 하지만 화가났다. '손해보는 기분'이 들었다.


책 <그때, 나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에서 정여울은 나이, 포기, 선택, 독립, 관계, 자존감 등 20개의 키워드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뭐랄까. 단순한 위로는 아니다. 대신 자신의 30대를 반추하며 그때의 감정들을 섬세하게 드러내며 공감과 통찰로 읽는 이의 마음에 여백을 만들어준다. 정여울 작가는 '나의 일은 세상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서 글쓰기라는 일을 언급하며 "'내가 일을 함으로써 이 세상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깨닫는 마음씀씀이야말로 소중한 마음 챙김의 기술이 아닐까(p.212)"라고 말한다. 일이란 죽지못해 살고, 입에 풀칠은 해야하니 마지못해 하는 것이라기 보다, 자신과 세상의 연결 끈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맞네, 맞다.

손해본다는 생각으로 가득한 머리속에서 각도를 10도만 돌려보면, 프리랜서로 혼자 일할 때의 내가 있다. 더럽고 치사하고 화나고 억울해도 돈은 벌어야 하니 고객님 말에 대답봇처럼 반응하며 일을 꾸리던 때다. 시공간의 자유로움 대신 나는 이 사람을 놓치면 먹고살 걱정을 해야했다. 친구를 만나 커피 한잔 순순히 사주지 못했던 그때, 나는 얼마나 '소속'을 원했던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누가 있다면,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다면. 당당하게 홀로 살아가는 내가 자랑스럽기보다 걱정되고 불안하던 시절이었다.

작가는 책에서 이런 말을 덧붙인다. "'내 일을 잘해냈는가'를 묻기 전에, 이제는 조금 색다른 질문을 해보자. 나는 일을 통해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었는가. 일을 통해 나 자신의 마음은 얼마나 크고 깊어졌는가.(p.212)"라고. 나는 어떠한가. 누군가의 일을 대신 떠맡는것도, 남보다 더 많은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회사냐 집이냐의 물리적 공간 비교로 마음을 날카롭게 돌렸다. 그렇게 동료를 원했으면서, 같이 있는 동료의 상황도 보듬지 못하는 나를 보니, 작고 쓸쓸하게 느껴진다.

30대는 내게 찬찬히 가르쳐주었다. 나이 들수록 책임이 커지는 것은 부담감만 커지는 게 아니라 능력, 관계, 인격, 나아가 내 인생의 울타리가 커지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책임은 늘 무겁고 어려운 것이라고 두려워하던 내가, 지금은 더 많이 책임을 기꺼이 떠맡는 삶을 꿈꾼다. 더 많은 책임이란 더 많은 사랑을, 더 깊은 우정을, 더 뜨거운 믿음을 실천하는 것이다. (p.11)

책장을 넘기며 작가를 들여다보고 나를 끄집어 낸다. 일하는 나, 선택하는 나, 고민하는 나, 흔들리는 나, 그리고 살아가는 나. 정여울 작가의 한 마디를 읽으면서 그 '나'들은 간혹 부끄럽기도 혹은 자랑스럽기도 하다. 먼저 이 지난한 시간을 보낸 언니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나의 언젠가 저질렀던 행동에 손발이 오그라들기도 하고, 왜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한탄도 하게 된다. 안도가 된다면, 작가도 나와 같은 시기가 있었다는 동질감 뿐. 작가의 문장에 눈이 머물며 눈물이 나기도 한다. 그리고 나를 놓아두고 토닥이자 생각한다. 삶을 살아간다는 건, 살아가는 존재 그 자체로 아름답고 의미있다. 작가의 말처럼 30대는 무언가를 진짜로 해낼 수 있는 시간들이다. '누군가와의 비교대조로 나를 작고 초라하게 만들기 보다 '내 안의 감정'에 솔직하자. 나를 타인의 삶처럼 만들기 위해 애쓰기 보다 내 안의 진심어린 누군가를 살펴보고 안아주자.' 리커버에디션으로 출간된 정여울 작가의 책 <그때, 나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을 통해 나는 그런 마음들을 스스로에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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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텍 이삭줍기 환상문학 2
윌리엄 벡퍼드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림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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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줍기 환상문학의 두번째 작품 책 <바텍>이 나왔다. 열림원의 '이삭줍기 시리즈'는 다양한 세계문학 목록을 발굴하는 것을 목표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시리즈는 기존에 널리 알려진 세계문학 작품 외에 문화적 이질감이나 특정 나라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명작들을 발굴하기 위한 프로젝트라고. 프랑스 작가 아벨베르트 폰 샤미소의 <그림자를 판 사나이>가 이상줍기 환상문학의 첫번째 작품이었다면, 두번째 작품은 바로 영국 작가 윌러엄 벡퍼드의 <바텍>이다.

이 작품에는 특이한 배경이 있다. 작품 해설에 따르면, 윌리엄 벡퍼드가 1782년 <바텍>을 불어로 썼다. 그 후, 새뮤얼 헨리가 저자의 감독하에 이것을 영어로 번역했지만 1786년 영국에서 이 번역판을 출간할 때 저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마치 아랍의 텍스트를 번역한 것 처럼 꾸몄다고 한다. 결국 "벡퍼드는 1816년 내용과 주석을 고쳐서 제3판을 냈고, 영어판 <바텍>은 이 제3판을 가리킨다(p.183)"고 한다. 우리말로 번역된 현재의 <바텍>역시 제3판이 원전인 셈이다.

책은 이슬람 국가의 칼리프 바텍이 신 - 지아우르 - 를 따르지 않고 재물과 욕정을 탐하다 저주를 받는 이야기다. 책에는 두 가지 큰 욕망이 등장한다. 바텍의 어머니 카리타스의 욕망과 바텍의 그것이다. 카라티스가 절대권력으로 모든 신하들과 재물을 활용해 신조차 압도하려드는 반면, 바텍은 그저 아름다운 여인과 풍류를 즐기는 데 그친다. 이런 대조적 설정은 후반부로 갈수록 더해지며 독자들에게 점점 카리타스의 위세에 눌린 칼리프 바텍이 초라해 보이도록 한다.

“알지 말아야 할 것을 알려고 하는 인간, 또 자신의 능력을 벗어난 일을 하려고 하는 무모한 인간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그렇다면 그대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p.22)”

이야기는 풍부하고 과장적이다. 공상과 상상의 극한이라고 할까.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묘사는 이야기 속 장면이 머리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무언가를 그리게 만든다. 상상력의 극한을 보여주는 부분은 바로 '공차기'다. 소설의 초반과 후반에 마치 수미상관을 노린 것처럼 공차기가 등장한다. 초반의 공차기가 인도인을 공으로 몰아서 바텍과 궁중 신하들이 차는 것이라면, 후반의 것은 바텍이 공이 되어 온 도성 사람들이 그 공을 차기 위해 서로 달려드는 장면이다. '공'이 된 주체는 다르지만 모두 '분출'한다는 측면에서 동일하고, 마지막의 공차기는 도성 사람들의 분노로 읽힌다. 더 나아가 내게는 바텍의 몰락으로 보여 쾌감마저 느껴진다.


환상문학은 '현실을 반영하는 요소보다 가정적이고 비사실적인 요소 등으로 상상력이 강조된 문학(네이버 지식백과)'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이라면 현실의 한 부분에 빗대어 생각할 수 있는 지점을 가질 때 힘을 내는 것 아닐까. 이전에 접했던 환상문학에서는 "삶은 생각이 아니고, 투영되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고, 삶은 현재의 그것이며 TV에 비치는 것처럼 항상 지금이다."라는 말이 등장했다. 소설 <바텍>에서의 '그 지점'은 권선징악의 결말로 보인다. 욕망에 사로잡힌 바텍은 지아우르의 말을 잊고 공이 되고 희화화된다. 온갖 사람들이 너도나도 그 공을 차고자 밀치고 달려드는 장면은 씁쓸하면서도 희열이 느껴진다. 독자는 여기서 '결국 돌아온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책 <바텍>을 읽으면서 작가가 어떻게 이런 세계관을 그릴 수 있었을까 끊임없이 물었다. 그간의 작품에서 보지 못했던 구조나 묘사와 달라 신선하고 발칙하다. 이게 바로 작품의 다양성일까? "우리는 고정관념에 얽매이거나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풍성한 책의 잔칫상을 차리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책의 기획위원 김석희는 밝힌다. 이전에 보지 못한 새롭고 다양한 작품을 기다렸던 독자들에게 희소식이 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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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한 머리가 총명한 머리를 이긴다 - 메모는 제2의 두뇌이다
김연진 지음 / 더로드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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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하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 된다.’ (p.64)

책 <둔한 머리가 총명한 머리를 이긴다>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메모’를 통해 삶이 달라진 저자 김연진의 ‘메모’에 관한 에세이다. 책은 메모의 중요성, 메모가 행동에 미치는 영향, 인생을 바꾸는 가장 쉬운 습관, 메모 스킬 등을 담고 있다. ‘메모’라는 단순한 주제로 이렇게나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낼 수 있다니! 업무에 적용했던 메모, 가족과의 메모, 틈틈이 자신이 했던 메모, 메모를 하기 위한 환경, 대가들의 메모, 수감자들의 메모까지. 책은 한 마디로 ‘메모’를 중심으로 사방팔방 뻗어가는 저자의 ‘메모 애니어그램’으로 보인다. 나도 메모를 즐겨 한다. 저자와 다른 점이 있다며 메모를 다시 보며 복기하고, 되새김질하는 과정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저자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아무나 할 수 없는 일’로 만들어 버린 비기(祕器) 아닐까.

책에는 메모에 대한 저자의 생각과 스킬을 담고 있다. 가장 공감가는 부분은 세 가지. 첫째, 다이어트에 대해 메모하라. 저자는 “무엇을 먹었는지, 언제 먹었는지를 딱 한 달만 낱낱이 적어보아라.(p.161) ”고 한다. 식이 습관을 상세히 적다 보면 자신의 패턴을 알게 되고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맞다. 한창 건강을 챙길 때 매일 운동과 식이를 기록했다. 기록해보니 나는 삼시 세끼를 제외하고도 생각보다 자주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이걸 파악해 제거하고 식단을 조절하는 것만으로도 건강한 식습관을 실천할 수 있지 않겠는가. 둘째, 그의 여러 메모습관 중 하나로 소개된 ‘구글 킵’이다. 저자는 “글을 쓰거나, 콘텐츠를 만들 때 사용하면 좋을 것 같은 단어들을 만날 때(p.194)” 구글 킵을 사용한다고 말한다. 컬러별로 설정할 수 있는 이 어플을 열면 마치 단어 카드가 쫙 진열되어 있는 느낌을 준단다. 나도 단어장을 만들 생각을 여러 번 했었는데, 종이수첩은 짐이되고, 어플은 단어끼리 모여있지 않다보니 정리되지 않았다. 그래서 저자를 따라 구글 킵을 사용할 생각! 이 외에도 저자는 네이버 메모, 편한 가계부, 네이버 블로그 등을 자신의 메모를 도와주는 툴로 소개한다. 세 번째는 아내와 하고 있다는 감사메모다. 저자는 아내와 함께 하루에 하나씩 감사한 일을 서로에게 준다고 한다. 이를 통해 다툼도 줄고 금슬도 좋아졌다고. 오그라들지만 감사하는 마음은 좋은 것이니 나도 남편에게 바로 적용! 포스트잇에 짧게 글을 써서 남편에게 줬다. 그의 얼굴이 빨개지고 얼굴 가득 미소를 띄는 걸 보면 효과가 있는 게 분명하다.

적는 행위가 상대방으로 하여금 신뢰와 열정도 보여주게 된다. (p.178)

저자는 현재 경기도 여주에 있는 소망교도소 교도관으로 일하고 있다. 교도관과 메모. 다소 낯선 조합이지만, 그 덕에 책에서는 교도소와 관련된 사안들을 확인할 수 있다. 운동하고 책 읽고 공부할 수 있는 환경, 교도관들과 제소자들이 1박2일 모임을 갖는 것 등. 저자는 수용자들에게 노트를 한 권씩 나눠주고 감사일기를 쓰게 했다고 한다. 이를 통해 수감자들은 늘 반복되고 지루한 일상에서 감사함을 찾아내기 시작했고 불평의 삶에서 감사한 삶으로 변했다고 한다. 한 수용자는 “이제는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감사한 삶으로 변해가고 있는 나의 삶이 좋아서 매일 감사 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좋은 정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p.254)라고 말했다고.

감사를 기록하는 일은 위대하다. 나는 그 어떤 일보다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불평불만은 누구나 쉽게 한다. 불평불만이 쉬운 만큼 자신의 삶도 쉽게 초라해진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감사 제목을 찾아야 한다. (p.254~255)

저자의 말에 적극 공감한다. 감사를 기록하는 일은 위대하다. 메모는 작지만 큰 힘을 지니고 있다. 업무에서는 정리와 신뢰를, 가정에서는 감사와 행복을, 관계에서는 믿음과 교감을 전달한다. 그리고 누구나 메모가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실천에 있을 뿐이다. 나도 메모를 꽤 좋아한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방법을 배우고, 여러 사람들의 사례를 읽으며 나의 메모 방식을 점검했다. 책 <둔한 머리가 총명한 머리를 이긴다>는 ‘메모’라는 간단한 소재를 ‘에세이’로 쉽게 풀어낸 책이다. 어느 때보다도 편안하게 즐기면서 읽을 수 있었다. 기록이 기억을 지배하는 세상, 그 시작은 메모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이 책을 통해 익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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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생각 - 우리는 이 우주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스티븐 와인버그 지음, 안희정 옮김, 이강영 감수 / 더숲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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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3의 생각>은, 1979년 대부분의 자연현상에 적용할 수 있는 표준모형 이론을 발견한 과학자 스티븐 와이버그의 에세이집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대 물리학자 중 가장 권위있는 사람이라고 일컬어지는 그다. 그렇다면 '제 3의 생각'은 무엇일까? 그의 전작 <과학전쟁에서 평화를 찾아(Facing Up)>, <호수의 경관: 이 세계와 우주(Lake Views)>에 이은 세번째 에세이 모음집이라는 걸로 봐서 '제3의 생각'의 세번째 책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현재 87세의 나이에도 끊임없이 연구하며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는 그는 책을 통해 자신의 다양한 관점을 전한다. 천문학의 쓸모, 양자역학, 과학의 역사, 지식의 한계 등. 보통 사람으로서는 감히 생각해보려고 도전조차 않았던 일에 대한 이야기가 책에서 쏟아진다.

이 책이 마지막 에세이 모음집이 아니기를 빕니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하면 지금 이 책이 지난 수십 년간 나의 글을 기꺼이 읽어 준 독자들에게, 그럼으로써 내게 물리학 너머의 세상과 만날 수 있게 해 준 그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할 적기인 듯합니다. (p.7)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있다. 1부 '과학의 역사'에서는 전반적인 과학의 역사 이야기를, 2부 '물리학과 우주론'에서는 그 중에서도 물리학과 천문학의 역사를 다룬다. 3부에서는 오바마의 우주예산, 세금의 구멍 등 공적인 관심사를 설명하고, 4부에서는 과학에 대한 글쓰기와 실패에 대하여 등 개인적 관심사를 다룬다. 카테고리는 단 4개에 불과하지만 책에는 저자의 관심사만큼이나 여러 과학자와 과학 이론들을 빌어 폭넓은 과학적 주제를 설명한다. 이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19장. 유인 우주선에 반대한다'이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강조해온 관점으로 여섯가지 근거 - 과학, 국제협력, 탐사, 영감, 파생기술, 인류의 생존 - 를 들어 반대한다. 여기서 저자는 인류의 생존에 대해 "유인 우주선이 장기간 꾸준히 유지되는 가장 큰 이유는 종의로서의 생존 때문(p.226)"이라며 외계에서 살아남을 기회를 가지려면 영구적으로 자급자족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인류가 아직 남극에서조차 자급자족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터무니없는 꿈을 꾸는 건 아닌지 점잖게 반박한다.

그밖에도 책은 평소 생각해보지 않았던 양자역학, 이론물리학 등의 주제를 강의식으로 펼쳐놓는다. 과학과 예술의 대조 등의 표현에서는 저자가 다소 꼰대처럼 읽히는 부분도 있지만, 마지막 장을 닫을때는 그의 통찰력과 사고에 경이를 표하게 된다. 에세이집이 아닌 그의 전문 서적은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도 궁금하다. 아마도 양자역학 관계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과학을 속속들이 파헤치고 이를 대중에게 전파하려는 저자의 노력이 참 멋지고 대단하다. 과학의 진면목을 알고 싶다면 어렵더라도 도전해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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